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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박 씨의 시련
이튿날 새벽
형사들이 찾아 와 박 씨를 연행해 갔다.
그리고 그는 폭행치사죄로 구속되고
재판을 통해서 7 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나이 스물 여덟 살 때 일어난 일이니까
그가 만기 석방되려면 35 세가 된다.
이 일로 해서 그는 물론이려니와
그의 가정 또한 얼마나 큰 시련을 당했을까.
변호사 측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요구할 때마다
돈을 끌어대야 했고
결국에는 논과 밭을 떼어 팔아
재산이 반으로 줄어 들었다.
초범이고 범죄의 동기와 죄명
연령과 석방 후의 생활 보호 관계 등 여건이 좋으니까
형기의 3 분의 1 정도 복역한 다음
가석방될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해 보자는
변호사 측의 말을 한가닥 기대로 삼고
그는 징역형을 살아야 했다.
꿈에도 상상 못했던 별천지 지옥같은 교도소에서
하루하루를 살아 가는 동안
그는 부모님과 처자식이 있는 가정을 한없이 그리워했고
산과 밭, 논과 들이 있는 고향을 한시도 잊은 적없다.
수형 생활에 따르는 규율을 어기지 않고
모범적으로 살게 되면
2 년 반 후에는
그리운 처자식이 있는 고향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는 하루하루를
마음 속 깊이 다짐하고 노력하면서 생활했다.
세월이 흐르고 2 년 반이 지난 무렵부터
그는 감형이나 가석방 이야기가 나돌 때마다
'만기병'을 앓아야 했다.
이번에는 꼭 나가서
아버님 회갑연을 차려 드려야 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고
이번에는 정말로 꼭 나가서
귀여운 딸아이 손목을 잡고
초등학교에 입학시켜야만 했다.
다시 세월이 흐르고
어머니께서 아들 걱정에
한숨과 눈물로 지새우시다가
몸져 앓아 누우셨다는데...
이번에도 못 나가면
생전에 어머니를 뵙지 못하는
불행이 닥칠 것 같고
불효를 면치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살고 살다가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그는 마침내 특별 가석방으로
감옥문을 나서게 되었다.
4 년 여 동안 '만기병'을 호되게 앓던 끝에
7 년 형의 만기를 사흘 남겨 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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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아내를 지킨 사람들
그동안 혜숙의 병 간호는 구속되기 전까지 내가 근무하던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직원들과
동료들, 교인들 그리고 처제가 맡아 왔단다.
처제는 한양대 병원 간호사...
혜숙은 마침 동생이 근무하는 병동에 입원해 있다.
미처 대전까지 마중하지 못한 선후배 동료들이
삼삼오오 입원실로 몰려 온다.
손위 처남은 고등학교 선생님...
학교 수업을 조정해서 양해 구하고 오후 2 시 경 도착했다.
내가 해야만 했을 절차적 법적 보호자 역할은 처남과 처제가 맡아 왔다.
처남과 처제 나를 불러 세우더니 우선 먼저 조용히 할 얘기가 있단다.
처제가 1인용 빈 병실로 오라버니와 나를 안내한다.
나보다 한 살 연하인 손위 처남 매우 심각하고 어두운 표정이다.
순간 내 머리 속은 마치 내가 만든 스위시 영상 작품처럼
스위시 영상 작품에서처럼 자~알 정리 정돈되고 정열된 시 문장이
한줄한줄 비~잉빙 돌고 뒤집어 지고, 글자 하나하나로 쪼개지고 흩어지고
낙엽처럼 눈송이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휘날리 듯
1 년 6 개월 여 만에 만나고 보듬는 재회의 기쁨과 환희
그렇게 그렇게 비~잉빙 돌고 뒤집어 지고
뇌세포 마디마디 억만의 조각으로 쪼개 지고 떨어져 나가고
또다시 지옥같은 절망과 죽음의 공포가
뇌리에 박히면서 몸서리쳐 온다.
지금 마~악 감옥에서 빠져 나와 경황없고 충격이 클 줄 알겠지만
어차피 매제가 1 차 보호자이니만큼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대처하고 준비해야 할 것 아니냐며 처남은 내게 말문을 튼다.
약국을 하고 있던 아내는 얼굴빛이 꺼~어먹게 변하고
온 몸으로 시시각각 통증이 몰려 왔단다.
그럴 때마다 진통제를 집어 먹고 온 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약국에 딸린 방에서 떼굴떼굴 구르고 링거 주사를 맞고 했단다.
처남과 처제가 빨리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보자 했지만
아내 혜숙은 얼마 안 있으면 내가 감옥에서 나올텐데 그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석방되면 같이 가겠노라고 한사코 거절했단다.
본래 위궤양이 있어 그런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단다.
혜숙은 또 시어머니 칠순 잔치를 앞두고 준비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했단다.
그러다가 쓰러져 어느날 혜숙이 일어 나지 못했단다.
처남의 경기중 경기고 절친한 친구 중에
지역 인근 일대에서 제법 소문날 정도로 유명하게 내과병원을 운영하는 이가 있었다.
수유리 전철역 근처 '육동휘 내과'......
처남과 처제는 혜숙을 우선 그 병원으로 데려 갔단다.
두어 해 전에도 혜숙은 비슷한 증세로 집 가까운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은 적 있다.
그때 혜숙은 내시경 검사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던지
다시는 이런 검사 안 받겠다고 내게 여러번 얘기했었다.
그 당시 검사 결과로 담당 의사는 약국을 하면서 식사하는 시간과 양이 너무 불규칙하다 보니
위궤양이 좀 심해져서 그렇다고 했다.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고 자극성 있는 음식을 피하면 괜찮아 질 꺼랬다.
혜숙이 내시경 검사를 거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위궤양의 정도를 밝히려고 그토록 고통스런 검사를 받는다면
나부터서라도 그리 쉽게 받아 들일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육동휘 원장은 새로 도입한 기계라서 수면 상태로 검사하기 때문에
그전처럼 통증을 느끼지 못할꺼라고 겨우겨우 달래고 달래 검사를 받게 했단다.
검사를 마치고 내시경을 꺼내는데 검붉은 피가 솟구쳐 올라 왔단다.
육 원장은 증세가 심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소견에
여러 날 걸려야 하는 검사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했단다.
검사 결과 암세포가 위 전체적으로 퍼져 있어
수술이 불가능할 수도 있는 상태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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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식은 땀만 흐르고
감옥에서 출소할 때마다
나는 며칠 씩 미열이 오르고
식은 땀이 끈적지게 흐르면서
밤잠을 설치곤 했다.
처음에는 까닭을 알 수 없어
그저 몸이 허해지고
골아서 그렇거니 했다.
그런데.....
석방될 때마다
되돌이병처럼 계속 반복해서 앓게 되자
왜 이럴까??? 하고
까닭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감옥에서는 독방에서
웬종일 앉아 있고 누어 있고
잠자는 게 일과인데......
그러면서도 저녁 잠에 떨어지면
아침 기상나팔 소리에
단잠 깨기에 여간 꾀를 부리곤했는데......
방안을 밤새도록 밝혀 놓는
전기불도 없고
잠자리도 더 편안한데
왜 이리 잠이 안 오나......
처음에는 여러날 계속되고 나서야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신경안정제를 꺼내 주셨다.
그 후부터서 출소할 때마다 나는 한 일주일 가량
잠자리에 들기 전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야 했다.
감옥 안에 있을 때 눈에 들어오는 모습
시야에 잡히는 풍경은 항상 일정하다.
색깔도 단순하다.
담벽은 온통 백색으로 칠해져 있고
건물 내부는 허리춤을 기준으로 해서
아래쪽은 회색이고 위쪽은 백색이다.
옷 색깔은 청색
그리고 하늘과 땅.....
오로지 똑같은 풍경만 있어 사시사철 그런 풍경만 볼 수 있고
그런 색깔 그런 풍경에만 젖어 지낸다.
그러다가 감옥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세상에 널려 있는 온갖 색상이 눈으로 입력되고
갖가지 풍경이 스치면서 머리 속에 잔영으로 남게 된다.
눈으로 코로 귀로 피부로 온몸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스쳐 지나고 느껴지는 세상의 온갖 모습들은
감옥 안에서 담아 낸 용량에 비하면 가히 견줄 수 없을만큼
커다란 육체적 정신적 환경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대단하고도 엄청난 혼란이다.
그러니 출소할 때마다 복잡다단한 혼란과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한동안 식은땀이 흐르고 잠을 설쳐 댈 수밖에.....
나는 이미 온 몸이 식은땀에 젖을대로 젖어 있었다.
시시큼큼한 땀내가 진동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후각을 자극했다.
머리에서 발바닥까지 온통 기름으로 뒤집어 쓴 듯 온몸이 끈적거렸다.
그런 몰골로 망연자실해서 한동안 병실 벽에 몸을 의지하고 기대 있었다.
주치의 김용일 박사 방에서 진료실로 내려 오라는 전갈이 왔다.
처남과 처제 그리고 혜숙의 친구 천영초와 함께 진료실로 향했다.
나는 마치 재판정에 끌려가는 심정이었다.
마지막 판결을 받으러 가는 피고인의 심경이었다.
사형인지 무기 징역형인지.....
혹시라도 무죄 석방되는 기적은 없는지.....
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 심판하는
재판장의 처분을 받아야 하는
피고인의 심정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그보다 더더더더더.....
하느님 앞에서
최후의 심판을 받는 심정이었다.
지옥인지.....
연옥인지.....
기적과 희망의 천국은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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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주치의와 대면
드디어 내 아내 혜숙의 온전한 보호자로
주치의 김용일 박사와 마주 앉았다.
재판장 앞인지... 저승사자 앞인지...
뒤엉킨 심사로.....
▲ 주치의 김용일 박사
김용일 박사는 68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78년부터 94년까지 한양대의대 일반외과 교수를 거쳐
94년부터 삼성서울병원 외과에서 일반외과장, 소화기센터장, 성대의대 주임교수 등을 역임한
소화기암 수술분야에 대가이시다.
내 후배 동료이자 혜숙의 친구 천영초가
굳이 따라 들어와 옆자리에 배석했다.
판결문과 형량 그리고 운명을
직접 확인하고 증거하려는 듯.....
법정에서처럼
인정 신문부터 시작한다.
"부군 되신다고요?......
그동안 어떻게......?"
당연했을 김용일 박사의 첫 번째 신문 사항에 대한 답변부터
그러고보니 나는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었다.
순간 뭐라고 진술해야 할지 당황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지둥 두리번거리는 사이
혜숙의 친구 천영초가 눈치빠르게 수습하려 나섰다.
"오늘 아침에 대전 교도소 감옥에서 마~악 나왔어요...
그동안 1 년 반두 넘게 징역살다가요......"
나는 깜짝 놀라 정신이 번쩍했다.
나보다도 처남과 처제는 더 했다.
김용일 박사는 더욱 더 놀란 표정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하면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천영초 역시
이거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큰 실수를 했구나 싶었던지
뒤따라 놀라면서 어쩔줄 몰라 했다.
한동안 혼란스럽고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천영초는 기왕에 내친김이라 싶었던지 한번 더 까발리면서
진술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인해 준다.
"저.... 우리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다가 구속되었어요.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석방된 거라구요......"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 봐도 그렇다.
나는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감옥을 네 번씩 살고
그 안에서 절도 사기 횡령 등 파렴치범들과
강도 강간 폭력 등 흉악범들을 셀 수 없이 만나고 보아 왔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밖에서 만나거나 본 적은 없다.
내가 가까이 알거나 그저 막연하게나마 알만한 사람들 중에도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 징역을 살았다는 말조차 전해 들은 기억도 없다.
사람사는 세상이 이토록 천차만별인데
밑도끝도 없이 징역형을 살다가 새벽에 감옥문을 나섰다는 사람을
오후에 탁자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마주 앉아 상담하고 있다는 사실은
김용일 박사를 저으기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하게 만들 법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제서야 해외에서
마~악 돌아왔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사람이
아무리 사정이 그렇더라도
좀 더 빨리 올 수는 없었느냐고 지적하면서
뭔놈의 사정인지 환자 대신으로
따끔하게 훈계 한 번 하고 넘어 가려던 주치의는
느닷없는 상황 변화에 충격을 받을 만했다.
계속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긴장이 감싸고 도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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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사형만은 면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디선가 본 듯하고
고운 모습에 편안한 인상을 풍기는
김용일 박사에게 매달리고 싶었다.
사형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떼를 쓰고 싶었다.
기왕에 들통났으니 하는 말인데...
이날 이때껏 생명과 재산을 바쳐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고통당하고 감옥살이 하다가
지금 마~악 출소해서 나왔는데.....
양식있는 분이라면 나를 또다시
지옥으로 밀어 넣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그러면 벌 받을 꺼라고
항의하고
싶 - 었 - 다.
"이렇게 뒤늦게 찾아 뵙게 돼 죄송합니다...
저는 사정을 전혀 몰랐습니다.
여기로 오는 동안 잠깐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도무지 무슨 얘긴지 못 알아 듣겠는데...
제 처는 어떻습니까?...
지금 어떤 상탠가요???......"
판결을 구했다.
기적과 희망을 갖게 해 달라고
마음 속으로 빌었다.
"우선..... 수술은 자~알 되었습니다.....
이제 환자가 최선을 다 해서 견뎌내고
투병 생활도 잘 해야겠지요.
가족의 도움도 절대적으로 필요하구요....."
그러면 그렇지... 수술이 자~알 되었다잖냐...
혜숙은 최선을 다 할꺼야...
가족들도 절대적으루 도울 꺼고...
희망이다!!!...
기적이다!!!......
김용일 박사는 왼손을 내밀어
주먹을 쥐고 설명했다.
처음 암세포가 발생한 곳이
주먹 바깥등 넓은 부위로
신경세포가 몰려있는
주먹 안쪽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무딘 부위라 했다.
혹시 신경세포가 몰려 있는
안쪽 부위에서 발생했더라면...
좀 더 빨리 통증을 느낄 수가 있고
그런만큼 좀 더 일찍 발견할 수가 있었을 테고...
이렇게까지 심각하지는 않았을 꺼라고 한다......
불행하게도 암세포가 위 전체로 다 퍼진 다음에서라야...
환자가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환자가 통증을 견딜 수 없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암세포가 위뿐만 아니라...
비장과 췌장 일부에까지 번진...
다 음 이 었 다 고 한 다 . . . . . .
환자가 젊다는 것도...
병이 악화된 요인이라 한다......
사람이 젊고 건강한 만큼...
암세포도 젊고 건강하다는...
것 이 다 . . . . . .
내시경 검사 결과로는...
위암 4 기로 나타나서...
과연 수술이 가능한지...
자신이 없 었 다 고 한 다 . . . . . .
더군다나...
1 차 보호자가 없는 상황이라서...
더더욱 수술하기가...
꺼 려 졌 다 고 한 다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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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수술할 수 있어서 다행
하지만 경기중고등학교 후배인 육동휘 원장과 처남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처제
그리고 이네들과 연고있는 주위 분들의
간곡하고 애절한 부탁을...
때로는 강요를 저버릴 수 없어
결심하고 수술에 들어 갔단다.
일단 열어 보니까
도로 닫아 버릴 상황은 아니었단다.
그래서 최선을 다 해
수술할 수 있었단다.
위는 전체를 다 잘라 냈고...
위 부근에 있는 비장과 췌장도...
일부를 잘라 냈단다......
주변과 임파선으로 전이된 암세포도
확인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 해서 찾아 내어
제 거 했 단 다.
결과적으로
수술할 수 있어 다행이었고
수술도 매우 자~알 되었다는 말씀이시다.
앞으로가 문제인데...
창자와 창자를 바로 이어 놓은 상태라서
위 역할을 창자가 맡아 할 수 있도록
환자는 항상 조심하고
참고 견뎌내야 한단다...
암세포가 더이상 전이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싸워서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호자와 온 가족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란다...
나는 김용일 박사의 말씀 가운데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내용이 담긴 대목에서는
차마 알아 듣기에 치를 떨었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내용에만
집요하게 매달리려고 발버둥을 쳐 댔다.
" 그렇다면... 앞으로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그리 자상하고 성의껏
자세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말귀를 전혀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멍청한 상태에서 불쑥 튀어 나온 내 말에
김용일 박사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머~엉하니 바라본다.
한참을 그러더니
환자의 의학적 상태를
객관적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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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십중팔구는 죽는 병
" 암에 대한 생존 가망성을...
의학에서는 일반적으로 5 년 생존율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위암으로 진단받게 되면...
앞으로 5 년을 생존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의학적으로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5 년을 견디고 무사히 넘기면
암에서 해방된 것으로 보는 거지요.
나라에 따라서는 7 년 생존율을 기준으로 삼기도 합니다마는.....
5 년을 생존할 수 있는 가망성의 정도에 따라서
의학적으로 1 기에서 4 기까지로 구분하고 있어요.....
위암 4 기라고 하면 보통 말기라고도 하는데...
5 년을 생존할 수 있는 가망성이 거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박혜숙 환자의 경우에는 내시경과 조직검사 결과로는
말기암으로 판단했는데...
수술하고 나서 보다 정밀하게 검사한 바로는
3 기에서 말기로 진행하는 상태로 밝혀 졌습니다....."
나는 온 몸이 조여 들면서
또다시 식은땀을 흘렸다.
또다시 재판장의 심판을 받는
피고인의 심정이 되고
하느님 앞에서 최후의 심판을 받는
죄인의 심정이 되었다.
" 그럼... 제 처의 5 년 생존율은 어떻게?..."
" 한 15 퍼센트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
아~~~!
이게 무슨 말인가......!
뒤집어 말하면 사망 가능성이 85 퍼센트란 말 아닌가......!
내 사랑 혜숙이 십중팔구는 죽는다는 말 아닌가......!
나는 치떨리는 가슴을 쓸어 앉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댔다.
아~~~! 내가 정신차려야지...
혜숙이 겪어야 할 공포와 절망을
당장 어떻게 해야 하나......
" 선생님! 이럴 때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는지요?...
제 처는 지금 위암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나본데요...
직업이 약사이다 보니까 치료받는 과정에서
당장 이상해 할테고 어차피 알게 될 텐데요...
그럴 때마다 겪게 될 절망과 공포를
견뎌 내기도 어려울 테고요......"
17. 사형만은 면하게..... (0) | 2008.0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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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보호자에게 맡겨진 생명 (0) | 2008.01.22 |
20. 암 환자의 심리 변화
김용일 박사
한동안 뜸을 드린다.
그제서야 말귀를 알아 듯나 싶었던지
벙벙하던 표정이 조금씩 풀어 지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제정신 못 차리고
뒤죽박죽인 내 심리 상태를
찬찬히 들여다 보는 듯했다.
" 암 환자의 심리와 심경의 변화 상태에 대해서도
연구한 결과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맨 처음... 자신이 암에 걸리고
죽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암 환자는 의심하고 믿지 않는 것으로 반응합니다.
첫 번째 단계로 자신의 병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심리 상태입니다.
내 몸은 내가 잘 안다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이 병원 이 의사가 알지도 못하고 그런다고...
나는 암에 걸릴 몸이 아니라고...
어디서 이따위 병원 이따위 의사가 있느냐고...
다른 병원에 가 보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을 놓치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다가
그야말로 손을 댈 수 없게 돼서야
다시 찾아 오는 경우도 있고요...
설혹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그런 심리로 반응한다는 거지요...
두 번째 단계로는 증오하고 저주하게 됩니다.
몸이 점점 쇄약해 지고 통증이 심해지면서
암이라는 사실을... 죽음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르게 되면...
환자는 세상을 증오하고 저주하는 심리 상태를 겪게 됩니다.
건강한 사람을 증오하게 되고 아름다운 생물을 저주합니다.
내가 왜... 왜 나만 이 세상만물 생명체를 두고 죽어 없어져야 하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미웁고 싫어 지게 되지요......
세 번째 단계는 그러다가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증오하고 저주하다가 지치고 지쳐서
세상을 포기하고 자기자신을 포기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절망에서 헤어나 죽음과 협상하게 됩니다.
네 번째 단계로 환자가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정신적으로 아주 피폐해 지기도 하구요.....
시기적으로는 환자마다 제각기 다른데...
이 상태는 거의 마지막 순간에 오기도 합니다.
죽기 하루 이틀 전... 몇 시간 전까지 밀려 가서야 오기두 하고요......
마지악 5 단계는 자포자기한 후에 자기 삶을 정리하고 안정하는 단곕니다.
종교적으로 깊이 위로받고 안정하기도 하고...
살아 남아 있어야 할 가족을 위해서 삶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운명적으로 받아 들이게 됩니다.
대개의 환자들은 이 마지막 단계까지 이르기가 쉽지 않아요......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암이라는 사실을... 죽는다고 하는 사실을...
보호자가 끝끝내 환자에게 밝혀 주지 않는 경향이 심해서
대부분 2 단계나 3 단계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보호자의 심리 상태도 애증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이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보호자는 4 단계를 다 거칩니다.
아무래도 환자 자신보다야 생명에 대한 여유...
생명에 대한 여유가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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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5 퍼센트에 매달리고...
아~~~!
혜숙의 삶이
내 사랑 혜숙의 생명이
나와 혜숙의 운명이 이 지경이 되다니......
그런데... 그러면...
앞으로 닥쳐 오는 절망과 공포...
나와 혜숙의 운명은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나...
그렇지!!!
생존율이 있지...
15 퍼센트가 있지...
혜숙이 꼭 죽는 건 아니지!!!
가망이 있는 거야!......
혜숙은 이 날 이 때껏
남들에게 그리 뒤떨어지지 않아 왔어...
15 퍼센트가 뭐야???
어디에 내 놔도... 뭐를 해도...
5 퍼센트 안에도 들겠다...
달리기도 잘 한다고 그랬지 참...
나는 중간 정도밖에 못 했던 그누무 달리기를
혜숙은 수송초등학교에서도 선수로 뽑혔다고 그랬어...
공부로라면야 더 말 할 것 없고...
혜숙은 뭐를 해도
맘 먹고 하겠다면 100 명 중 15 등 안에는 들꺼야...
아니아니 5 등 3 등 안에도 들 수 있을꺼야...
그러려면 혜숙이 스스로가
용기를 가져야 될 꺼야...
맘 먹고 싸울 준비하고
극복해 내려는 의지를 가져야 될 꺼야...
그런데......
혜숙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약사니까
어차피 자기 병을 서서히 알아 가게 될 꺼고
그럴 때마다 부정하고 거부해야 하는 고통과
증오하고 저주해야 하는 공포를...
그러다가 자포자기하는 절망을 겪게 될 텐데......
그러기보다는 차라리
혜숙이 지금 처해 있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대처해 나가는 게
보다 효과적일 지도 몰라...
혜숙이 맘 먹고 용기를 가지게 되면...
희망을 가지고 이겨내려는 의지를 가지게 되면...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꺼야...
.
.
.
15 퍼센트 안에는 들고도
남 을 꺼 야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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