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대중교통 페리 (Ferry)

[영상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대중교통 트램 (Tram)

[영상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대중교통 돌무쉬 (Dolmus)

[영상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육상교통 (Tram, Bus, Dolmus)

[영상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대중목욕탕 하맘 (Hamam)





위스퀴다르(Üsküdar)


우리나라 50년대 후반에서부터 30년간이나 유행했던 잊을 수 없는 노랫가락을
우리는 이스탄불의 위스퀴다르(Üsküdar)에서 만나게 된다.
터키의 민요로서 애창되는 Üsküdar'a Gider İken (위스퀴다라 기데르 이켄 - 위스퀴다르 가는 길에)는
오스만제국 시절에 관리를 사모하는 여인의 아름다운 사랑의 시를 노래로 읊은 것이라고 한다.


아시아쪽에 위치한 위스퀴다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에 반사되는 햇빛이
도시를 황금으로 빛나게 하여 일명 "황금의 市"라 불렀다.
소아시아의 모든 도로가 여기서 끝나 소위 아시아의 땅 끝인 이곳을
오스만 제국의 왕들은 모스크와 대상들의 숙소로 장식했고
그 당시만 해도 아시아쪽 메카 참배객들은 매년 그들의 순례 여행을 이곳에서 시작했다.


이스탄불 유럽쪽이 로마~파리~런던까지 가는 오리엔트 특급의 출발지라면
이곳은 소아시아를 횡단하는 바그다드철도의 시발점이다.

유럽 근대사에서 위스퀴다르는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활약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1854년 이곳에 야전병원을 설치하고 크림(Krim)전쟁의 부상자를 치료했다.


Üsküdara Gideriken Şarkısı. / 에일리


“Uskudar’a gideriken aldida bir yagmur (위스퀴다라 기데리켄 알디다 비랴 무르)”
대충 이렇게 귀에 들린 이 노래를 초중학교 시절 뜻도 모르고 따라서 흥얼거리다가
외국민요로 학생 애창곡집에 가사와 악보가 수록되어 배운 기억이 있다.

이 곡은 터키의 민요인 《Kâtibim》(카티빔, '나의 서기' 라는 뜻)으로
연인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담고 있는 노래다.

오스만투르크 시절, 위스퀴다라의 세관원이 재상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야 하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정기선.
이들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노래가 ‘위스퀴다라’라고 한다.


참르자 (Çamlıca) 언덕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아시아 지역 위스퀴다르(Üsküdar)에 있다.


텔레비전 송신탑을 중심으로 조성된 공원이지만  터키인들 사이에 섞여 산책을 하거나
카페 등에 머물러 여행 중 지친 몸을 잠시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참르자(Çamlıca) 언덕에서 보는 이스탄불과 보스포루스 해협.
해발 650m로 이스탄불의 많은 언덕 중에서도 가장 높은 언덕으로 꼽히는 참르자 언덕은 전망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참르자는 터키의 이스탄블 전체를 볼 수 있는 높은 곳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영상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참르자 언덕 (Camlica Hill)





돌마바흐체 궁전 정원






궁전에서 바다로 바로 통하는 문이 있다. 궁전 입구를 기준으로 동문.

술탄이 배를 타기 위한 정박장이었다.




보스포러스해협과 돌마바흐체 궁전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의 유럽 쪽 해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궁전 중 하나가 서 있다. 

이 궁전은 자신의 하렘과 궁정, 그리고 외국의 군주들과 사신들을 영접할 넓은 응접실을 갖춘 건물을 원한 

오토만 투르크의 술탄 아브뒬메시드 1세를 위해 지어졌다. 


술탄의 전속 건축가였던 가라벳 아미라 발리얀(1800~1866년)은 이러한 기능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웅장하고 압도적으로 큰 궁전을 세웠다. 

발리얀이 채택한 스타일은 정교한 신 바로크 양식이었다. 

2층 높이의 포르티코와 풍부한 조각은 웅장함과 정교하고 값비싼 장식을 결합하는 효과를 낳았다.


오스만 제국의 국력이 쇠퇴하던 때 국력쇄신을 위해 베르샤이유 궁전을 본떠 초호화판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너무 막대한 건축비 지출로 오히려 오스만 제국의 멸망을 초래하게 만든 비운의 궁전이다..

중앙홀에 설치된 세계에서 2번째 큰 4톤에 달하는 샹드리에와 난간을 모두 크리스탈로 장식한 수정계단

상상을 초월하는 그 호사스러움은 과연 오스만제국의 호사스러움의 극치이다.


이 궁전은 특히 시계 궁전으로 유명한데 모두 160여 개에 달하는 갖가지 시계가 있고....

더 재미있는 것은 이전의 대통령이 이곳에서 집무를 보다 사망하였는데 그 시간에 맞추어 모두 9시 5분으로 맞추어져 있다.




20세기 들어서 터키가 공화국이 되면서 돌마바흐체는 국가 지도자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이스탄불 관저가 되었다. 

1938년 무스타파 케말은 돌마바흐체에서 세상을 떠났고, 이곳에 묻혔다. 

오늘날 터키에서 돌마바흐체는 무스타파 케말에게 바치는 기념비와도 같다.





옥으로 된 계단 난간


대리석으로 된 세면대

마블 특유의 무늬에 섬세한 부조까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돌마바흐체 궁전 세면대


돌마바흐체 궁전 세면대


돌마바흐체 궁전 목욕탕


돌마바흐체 궁전 목욕탕


돌마바흐체 궁전 목욕탕


대리석으로 된 화장실


지도 문양의 카페트


카페트


카페트


카페트


카페트



칼과 권총 등


금으로 만든 술탄의 갑옷



화려한 금제 식기세트

오스만투르크의 말기 술탄 압둘마지드에 의해 지어진 이 궁전은 역대 왕족들이 사용하던 화려한 식기들로 유명하다

















돌마바흐체 궁전 세람르크


화려한 석조 건축물로 세워진 이 궁전은 원래는 목조 건물이었으나, 

1814년의 대화재로 대부분 불타고 31대 술탄인 압둘마지드에 의해서 1856년에 재건되었다. 

1843년 착공하여 1859년에 완공하였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하였다. 

유럽에서 보내온 수많은 현상품과 호화롭게 꾸며진 사방의 벽들을 보면 당시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오스만 제국 시대 후기 6명의 술탄이 일부 사용했다.


세람르크는 술탄이 공무를 보고, 각국의 대사를 접견하던 장소로 남성만 출입이 가능하였다. 

하렘은 왕실의 가정으로 술탄과 그의 가족들이 살았으며, 

터키의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도 이 곳을 관저로 사용하였다가, 

1938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에 집무실에서 사망하였다. 

그 때문에 집무실과 침실의 모든 시계는 9시 5분을 가리키고 있다.


궁전 내부는 카페트가 깔려 있어서 비닐 덧신을 신어야 입장할 수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 계단


화려한 석조 건축물로 세워진 이 궁전은 원래 목조 건물이었으나 

1814년 대화재로 대부분 불타고 31대 술탄 압둘마지드 1세가 1856년에 재건했다. 

1843년에 착공해서 1859년에 완공했으며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했다. 


유럽에서 보낸 수많은 현상품과 호화롭게 꾸며진 사방의 벽들을 보면 당시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오스만 제국 후기 술탄 6명이 일부 사용했다.

말발굽 모양의 층계는 크리스털 난간으로 유명하다. 


돌마바흐체 궁전 계단 샹들리에



돌마바흐체 궁전 계단 샹들리에


돌마바흐체 궁전 계단 샹들리에


돌마바흐체 궁전 황제의 방 대형홀


돌마바흐체 궁전은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남자들의 구역인 세람르크(Selamlik), 

술탄의 가족과 여자들이 거주하는 구역인 하렘(Harem), 

행사가 치뤄지는 커다란 홀.


세람르크는 술탄이 공무를 보고 각국 대사를 접견하던 장소로 남자만 출입이 가능했다. 

하렘은 왕실 가정으로 술탄과 가족이 살았으며 

터키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도 이 곳을 관저로 쓰다가 

1938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에 집무실에서 죽었다. 

그 때문에 집무실과 침실의 모든 시계는 9시 5분을 가리키고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 황제의 방에 걸린 화려한 샹들리에


홀에는 빅토리아 여왕이 선사했다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샹들리에가 있는데 그 무게는 자그마치 4톤이 넘는다.

웅장하게 반짝이는 샹들리에를 올려다 보니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가이드의 설명으로 홀 위층엔 오케스트라와 사절단이 자리하고, 

아래 층에 한 가운데에는 왕이 앉고, 그 맞은편은 신하와 남자들의 자리였다.

재미있게 들었던 것은 왕보다 높은 사람은 없으므로 왕의 자리 위에는 2층이 없다는 것.

또 여자들은 왕의 맞은편에 있는 창가에서 내부를 구경했는데 

남자들이 왕의 맞은편에 앉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들이 서로 볼 수 없게 했다는 것이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그 옛날 성대했던 행사를 상상해 본다.


돌마바흐체 궁전


돌마바흐체는 오스만 제국이 기울어가던 때에 국가의 부흥을 꿈꾸며 지어진 궁전으로 '최대한 유럽스럽게' 지어졌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따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정원에서부터 유럽에서 많이 보던 느낌이 짙게 배어 있다.

모든 역사에서 늘 그렇듯 이 궁전을 짓느라 국가 재정을 많이 탕진해 먹었고 국민의 비난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후대 술탄은 여기가 마음에 안 든다며 다른 궁전으로 떠나서 

이렇게 화려하게 지어 놓고도 거의 대부분 비어 있었다고 한다.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는 이스탄불에 오면 늘 이곳에 머물렀는데 그가 사망한 곳도 바로 이 돌마바흐체 궁전이다.


황제의 방에 걸린 화려한 샹들리에


압둘마지드 1세 이전 술탄의 궁전인 톱카프 궁전에는 이즈니크 타일과 오스만제국 스타일의 조각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면,

돌마바흐체 궁전은 금과 크리스탈로 장식되어 있다. 

천장을 장식하기 위해 14톤의 금이 사용됐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보헤미안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식장에 있다. 


샹들리에는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선물로 줬다고 전해지나, 

2006년에 영수증이 발견됨에 따라, 대금을 지불한 것으로 밝혀졌다. 

샹들리에의 램프는 750개이며 무게는 4.5 톤이다. 

돌마바흐체 궁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보헤미안 및 바카라 크리스탈 샹들리에 컬렉션이 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돔 천장


거대한 규모가 풍부하고 복잡한 장식과 결합한 건축물. 

수많은 방 중에서도 가장 웅장한 방은 36미터 높이의 돔과 늘어선 기둥들, 아치들로 꾸민 무도회장이다. 

그보다 조금 작은 것은 계단 홀인데, 이 중 말발굽 모양의 층계는 크리스털 난간으로 유명하다. 

또 끝없이 이어지는 접견실, 화려하게 도금한 개인실, 

그리고 설화석고를 두른 욕실 역시 돌마바흐체의 자랑거리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돔 천장


황제의 방에 걸린 화려한 샹들리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선사받은 750개의 전구로 장식된 샹들리에가 '황제의 방' 천장에 매달려 있다. 

또한 터키 건국의 아버지인 케말 아타튀르크가 1938년 서거할 때까지 사용했던 방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방의 시계는 케말 아타튀르크를 기리기 위하여 지금도 그가 사망한 시각인 9시 5분을 가리키고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 내부


돌마바흐체 궁전은 19세기 중반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하여 지어졌다.

돌마바흐체란 '가득찬 정원'이라는 뜻인데 해변이었던 자리를 메우고 정원을 조성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세계에서가장 화려한 궁전이기도 하다.

돌마바흐체를 꾸미기 위해서 무려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수백 개의 방과 연회장은 유럽풍의 화려한 가구와 장신구로 꾸며져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 내부


돌마바흐체 궁전 2층 접견실 탁자와 샹들리에



돌마바흐체 궁전 기둥


화려한 샹들리에


돌마바흐체 궁전 내부


돌마바흐체 궁전 내부 화려한 샹들리에


돌마바흐체 궁전 기둥


돌마바흐체 궁전 2층 접견실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 침실


1938년 11월 10일 아침 9시 5분에 아타튀르크가 숨을 거둔 방

그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 시계를 9시 5분에 멈춰 놓았다.




[영상 EBS 세계테마기행] 돌마바흐체 궁전 (Dolmabahce Palace)





돌마바흐체 궁전(터키어: Dolmabahçe Sarayı) 위치


19세기 중엽, 서구화를 통해 국운이 기울어 가던 오스만제국의 부흥을 꾀했던 압둘 메지드 1세가 건설한 궁전이다. 

이스탄불 신시가지의 보스포루스 해협에 위치한다. 

돌마바흐체의 돌마는 터키어로 '꽉 찼다'는 의미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작은 만을 메워서 간척한 곳에 정원을 조성해 '가득 찬 정원'을 뜻하는 돌마바흐체라 불리게 되었다. 

해안을 따라 600m가량 길게 뻗어 있어 '바다 위의 궁전'이라고도 불린다.


원래는 술탄 하흐메트 1세가 휴식처로 쓰던 건물이 있었는데,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제31대 술탄 압둘 마지드가 1853년에 대리석으로 새로 궁전을 지었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 지은 유럽풍 건축물이다.


돌마바흐체 궁전 앞에 있는 시계탑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건축물

1890 ~ 1895년 사이에 만들어진 이 시계탑은 돌마바흐체 궁전 건설 이후에 추가되었다고 한다.


돌마바흐체 궁전 앞에 있는 시계탑


돌마바흐체 궁전 안내도


티켓박스에 티켓을 사려고 길게 늘어진 줄


티켓은 궁전만 보는 것과 술탄과 가족들이 살았고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의 관저로도 사용되던 

하렘을 같이 보는 티켓으로 나누어서 판다. 

대게 가이드 투어는 시간상 궁전만 보여주고 말기 때문에 

가이드 투어보다는 개별 여행으로 꼭 하렘까지 보는 것을 추천한다.  

많은 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하렘까지 볼 경우 2시간 이상은 생각해야 한다.


돌마바흐체 궁전 (Dolmabahce Palace) 입구


원래 이 곳은 오스만 제국의 함대가 정박했던 곳이며, 17세기에 매립되기 시작,

제국의 정원으로 사용되면서 "돌마바흐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서구 열강에 밀려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면서 탄지마트(개혁)가 추진되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압둘 마지드 1세가 서구화를 지향하는 의미에서 베르사유 궁전을 본따 지은 것으로, 1856년 완공되었다.


돌마바흐체 궁전 (Dolmabahce Palace) 입구


돌마바흐체 궁전 (Dolmabahce Palace) 입구


돌마바흐체 궁전 정문은 화려하게 치장한 조각들로 유명하다.


양각문양의 화려한 대리석 벽면이 인상 깊다.


양각문양의 화려한 대리석


돌마바흐체 궁전의 문


돌마바흐체 궁전의 문


넓은 정원을 지나야 돌마바흐체 궁전 본전이 있다.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해 건설되었고 내부 인테리어와 정원도 프랑스식이다.

궁전 앞에 정원을 배치하고, 한가운데 연못이 있고, 연못 가운데는 조각상이 있는 것이 베르사유와 똑같다.


돌마바흐체 궁전 분수대


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백조가 물을 뿜고 있는 아름다운 분수가 있다.

터키 이스탄불. 19세기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유럽 스타일의 궁전이다. 

압둘 메시드 1세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해 지었다.


돌마바흐체 궁전 세람르크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이 혼재된 돌마바흐체 궁전은 웅장하고 화려하다. 

동양적인 형식미가 돋보이는 톱카프 궁전과 대비되는 서양식 궁전이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해 건설되었고 내부 인테리어와 정원도 프랑스식이다. 

오스만제국 말기의 술탄들은 톱카프 궁전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현재도 영빈관으로 이용된다.


건물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방 285개, 홀 43개, 발코니와 목욕탕이 각각 6개 있다. 

규모는 톱카프 궁전보다 작지만 눈길을 끄는 볼거리가 많다. 

궁전 건립에 금 14톤과 은 40톤이 사용되었으며 샹들리에 36개, 크리스털 촛대 58개, 명화 60여 점, 

시계 156개, 화병 280개 등으로 호화롭게 장식되었다. 

실내를 장식한 인테리어 소품과 가구들은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각지에서 수입한 것이다. 

바닥에는 최고급 수제 양탄자가 깔려 있다.


한편 돌마바흐체 궁전의 모든 시계가 9시 5분을 가리킨 채로 멈춰 있어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의 사망 시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는데 아타튀르크는 1938년 11월 10일 9시 5분, 집무 중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아타튀르크의 서거일이나 주요 국경일에는 아타튀르크가 머물던 당시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방을 특별히 공개하기도 한다.


[영상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돌마바흐체 궁전, 황금 샹들리에 (Dolmabahce Palace, Golden Chandelier)





Kervansaray 터키 전통 밸리 나이트 쇼


아름다운 터키 이스탄불에서 가장 유명한 "Traditional Turkish Night Show"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땅, 동화의 땅에서 Kafkas Crew는 코카서스 산맥의 바람을 가져온다. 

아나돌루 모티틀리 그룹 (Anadolu Motifleri Group)은 손님들에게 전통 민속 무용의 진수를 보여준다. 

배꼽 춤 등 신비로운 댄스 쇼를 관람할 수 있다.


Kervansaray에서는 Enrico Macias, Gilbert Becaud, Sylvie Vartan, Adamo, Peppino di Capri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수년 동안에 걸쳐 수백만 명의 관중에게 공연을 해 왔다.

많은 국제 스타들이 Kervansaray 무대에 올랐고 맛있는 국제 요리와 화려한 쇼는 계속되고 있다. 


Kervansaray Turkish Night Show 이스탄불의 눈부신 쇼에는 

이국적인 춤과 관능적 댄스 쇼를 수행하는 가장 아름다운 터키 밸리 댄서, 

터키의 여러 지역에서 전통 무용 공연을 수행하는 다양한 민속 그룹과 

국제 및 현지 노래로 손님을 즐겁게하는 훌륭한 터키 가수와 쇼맨이 포함되어 있다.




























YILDIZAY_Turkish Belly Dancer

터키 최고의 밸리 댄서


벨리댄스(belly dance)


벨리댄스(belly dance)는 지중해 세계, 중동,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벨리댄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전하는데 다산을 기원하는 종교 의식에서 유래되었다는 가설, 

하렘에 거주하던 여자들이 술탄에게 간택되기 위해 추던 춤에서 유래되었다는 가설, 

하체를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사막 지형에서 자연스럽게 발달된 상체 위주의 춤에서 유래되었다는 가설, 

유랑 민족인 롬인들이 추던 춤이 중동 각지에 전파되면서 유래되었다는 가설 등이 전한다.


벨리댄스는 9세기부터 10세기 사이에 번영을 누리던 이슬람 세계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았을 정도로 성장했다. 

12세기부터 13세기에 걸친 페르시아 제국의 정밀화에서 벨리댄스를 묘사한 그림이 있어 그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벨리댄스는 오스만 제국 시대에 터키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관능적인 이미지를 띠게 된다.


벨리댄스(belly dance)는 "danse du ventre"("배의 춤")라는 프랑스어를 번역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danse du ventre"라는 말은 19세기 오리엔탈리즘이 유행하던 프랑스에서 

알제리 부족의 무용수들이 배의 움직임을 강조하여 추던 춤을 부르는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벨리댄스는 여성의 관능적인 몸매, 부드러운 곡선,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앞세운 스타일을 표방하는데 

이는 날씬한 몸매를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다이어트 스타일과는 대조적이다. 

벨리댄스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기본적인 스텝이나 테크닉은 신체의 부분마다 나뉘는 원 운동을 띠고 있는데 

이는 허리나 어깨를 바닥과 평행하게 따로 움직이는 것이다.


벨리댄스는 신체 전체의 근육 운동을 이용하는데 운동에 의해 표현되는 "어휘"에 기초를 두면서도 

그러한 표현을 추진해서 나가고 음악에 리듬에 의해서 그러한 어휘를 유동적으로 통합한 춤으로 여겨진다. 

벨리댄스 전문 무용가들은 춤을 통해 음악에서 연상되는 감정을 내면에 투영하여 표현하는데 

음악은 춤 운동의 어휘와 관련이 있다. 

무용가들의 목적은 음악이 관객들에게 가져다주는 리듬과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벨리댄스를 관능미로 채색한 성숙한 여성의 존재를 표현하기 위한 춤으로 여긴다.


터키의 벨리댄스는 동작이 활기차고 크며 쉬미가 많다. 

이집트 스타일에 비해 골반의 움직임이 위아래로 더 크고 에너지를 밖으로 발산하는 느낌이 있다. 

또한 이집트에서는 20세기 중반부터 금지된 floorwork (바닥을 기거나 쓰는 동작)가 가능하다. 

주로 상체의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상의는 배꼽을 노출하며 꼭 붙는 의상, 하의는 긴 치마 또는 바지를 입는다. 

여기에 골반의 움직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번쩍거리거나 쇠붙이가 줄줄이 달리거나 눈에 띄는 벨트를 골반 윗부분에 착용하기도 한다. 

흔드는 동작을 강조하기 위해 긴 술이 달린 옷을 많이 입는다. 


터키에서는 오스만 제국시절부터 전통적으로 결혼식의 흥을 돋우거나, 

결혼식 전 남자들의 파티에서 무용수들을 불러 추게 했다. 

덕분에 무용수의 가슴골에 돈을 찔러주거나 하는 퇴폐적인 이미지가 아직 남아있다. 

벨리댄스 자체가 오스만 제국 시절 터키를 통해 서유럽에 전파되었기 때문에 

터키인 부자들처럼 페스를 쓰고 물담배를 피우며 벨리댄스를 감상하는 이미지가 

19세기에는 터키의 전형적인 이미지이자 서유럽에서도 부유층 사이에서 유행이 되기도 했다.





터키 최고의 맛집 '베이티(beyti)' 레스토랑 위치


창업자 베이티 궐레(Beyti Guler)씨에 이어 3대째 양고기 전문레스토랑으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베이티 씨는 우리 일행이 방문했을 당시 현역으로 활동 중이었다


터키 최고의 맛집 '베이티(beyti)'


 '빌 클린턴과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찾은 식당, 터키 최고 맛집.' 

양고기 전문점인 베이티(beyti)

이 식당은 터키 고도 이스탄불 관문인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약 7~8분 거리에 있다. 

공항에서 차를 몰고 나오다 곧 샛길로 접어든다. 

잠시 후 골목길을 이리 저리 돌다보면 문득 초승달이 그려진 터키 국기를 가운데에 두고 

양편에 'Beyti'란 깃발이 걸려 있는 식당을 마주치게 된다.


베이티 역사는 1945년 베이티 귈레(Beyti Guler)라는 요리사가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그는 당시만 해도 이스탄불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현 위치에 조그마한 양고기 전문 점을 열었다. 

그 식당은 석탄불에 구운 양고기와 정성스러운 조리법으로 점차 명성을 쌓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자는 위치를 한번도 옮기지 않은 채 본래 문을 열었던 곳에서 건물을 확장했다. 

지금은 손님 100명을 수용하는 '돔 룸'을 포함해 홀 11개, 테라스 3개, 부엌 5개 등을 구비하고 있다.


주된 메뉴는 모듬 양고기. 

주 메뉴가 나오기 전에 우선 버섯을 곁들인 쌀밥과 샐러드를 주문했다. 

쌀밥은 맛이 담백해 한국인 입맛에 비교적 잘 맞고 샐러드는 양이 풍부하다.

 

주 메뉴로 접시에 담긴 것은 네모로 반듯하게 구운 햄모양 양고기, 뼈가 붙은 양갈비, 

감자 모양으로 통째 구운 양고기, 돌돌 만 양고기 등 총 네 가지. 

양고기 특유의 노릿한 냄새는 거의 없다. 

터키 전통요리였지만 한국인 입맛에도 전혀 부담이 없다.


터키 최고의 식당 베이티는 옛 오스만제국 전통 음식을 재현해 세계 각국 언론과 명사들에게 찬사를 받고 있다. 

창업자인 베이티 귈레는 터키 최초로 케밥(kebap)에 자기 이름을 붙인 '베이티 케밥'이란 요리를 창안할 정도로 뛰어난 요리사였다.

케밥은 '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운 고기'라는 의미로 

중국ㆍ프랑스 요리와 함께 세계 3대 요리 중 하나로 꼽히는 터키 요리 중에서도 대표적인 요리이다.

머나먼 이국 여행객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은 베이티(www.beyti.com). 

이곳은 음식에 있어 '가장 토속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1945년 개업년도가 새겨진 돌

1945년 개업한 "beyti"는 터키 최고의 레스토랑이라 불리는 유서깊은 고급 식당이다.


잘 정돈된 베이티의 입구.

고풍스러운 건물과 환상적인 조경이 조화롭다.


실내 입구

입구에 들어서면 매니저가 잘 맞아준다.

바닥과 벽 등이 모두 고급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실내 풍경


실내 풍경


2층 테라스로 올라가면 곳곳에 베이티의 역사를 알려주는 사진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고 

편한 소파도 마련해 놓았다. 흡연도 할 수 있다고.


2층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이곳을 다녀간 유명 인사들의 사진, 기증받은 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을 다녀간 유명 인사들의 사진, 기증받은 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 각국 정상들과 VIP들의 기념품, 선물, 증정품들 진열대.


세계 각국 정상들과 VIP들의 기념품, 선물, 증정품들 진열대.


진열품이 다양하다.


입구의 대기 공간


천정의 무늬가 인상적인 실내 풍경


메뉴판 위에 보이는 창업자 Mr.Beyti GULER 씨의 이름


메뉴


추가 메뉴와 디저트들

개인이 갈 경우 저녁식사로 케밥과 3~4가지 요리를 주문하면 1인당 10만원 정도라고.


정갈하게 셋팅되어 있는 좌석


식전빵과 피클과 버터, 그리고 물을 셋팅해 준다.


메브심 살라타 (야채 샐러드)


에피타이저로 주문한 돌마 타박

돌마는 각종 야채 안에 계피로 찐 밥을 얺어서 만드는 터키 전통 에피타이저이다.


터키의 양갈비. 

베이티의 양갈비는 냄새가 전혀 없고 맛이 고소해서 양갈비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분들도 좋아한다고.


베이티의 시그니처 메뉴 베이티 케밥.


소고기 안심을 소고기 비계가 있는 부분으로 감싸서 구운 요리.

고기의 잡내가 없고 육즙을 잘 살려 요리한 덕분에 쿄프테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잘 먹는다고.


양념통


저녁식사를 마치고 입구에서 인증샷


Beyti 레스토랑 안내 Video




보스포루스 해협


이스탄불 시내를 가로지르는, 지중해(에게 해, 마르마라 해)와 흑해를 잇는 해협. 

러시아의 우랄 산맥, 캅카스 산맥과 함께 유럽 지역과 아시아 지역을 나누는 지리적인 경계선이기도 하다. 

그리스 해협이라고도 한다. 

해협이라지만 폭은 바다치고는 상당히 좁아서 바다라기보다는 한강처럼 좀 큰 강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단폭이 700m에 불과하니 정말 한강과 폭이 비슷한 셈.


이 해협에 입지한 이스탄불은 바닷길과 육로가 맞물리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고대부터 중요한 도시였고, 

결국 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까지 수천 년간 수도로 기능하게 된다.


간단하게 말해, 미국이 터키를 버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해협이다. 

흑해는 반드시 이 해협을 통해야만 큰 바다로 나갈 수 있는 바다기 때문에 

흑해에 접한 불가리아,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조지아, 러시아 등의 나라들은 

터키의 허락이 없으면 사실상 호수에 접한 내륙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러시아는 넓은 바다로 나가는 길을 얻기 위해 수백 년 동안 터키와 티격태격했다(러시아-튀르크 전쟁). 


터키로서는 이 해협을 잃는다는 건 망한다는 것과 같았으므로 반드시 사수해야 할 지점이었고, 

2차대전 내내 중립국이었던 터키가 미국의 편에 선 이유도 소련의 협박에 굴복할 수 없어서였다. 

현대 터키는 민간선박의 통행은 자유롭게 허용하고, 대신 군함은 국적불문하고 순양함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현대 이스탄불의 해협 서쪽은 구시가지, 동쪽은 주거지이다. 

해협을 잇는 다리가 3개 있다. 1973년 개통한 보스포루스 제1대교, 

1988년 개통한 두 번째 다리인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 대교가 시내에 있으며 

보스포루스 해협 최북단에는 2016년 한국의 현대건설이 시공하여 개통한 제3대교인 야부즈 술탄 셀림 대교가 있다. 


남쪽엔 SK건설이 참여한 컨소티움이 아브라시아 해저터널(Avrasya Tüneli)을 

2016년 12월 20일 완공하여 2041년 중반까지 운영한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관통 하는 철도는 통근용 전철이 운행 중인 마르마라이 해저 터널이 있으며 

도시철도, 자동차 공용 터널인 뷔윅 이스탄불 터널(Büyük istanbul Tüneli)이 2020년을 목표로 공사 진행 중이다.


전통적으로 서구에서 부르던 '보스포로스'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리스어로 '소가 넘어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건드린 여자인 이오가 소로 변신해서 건넜다는 이야기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설이 있다. 

터키에서 부르는 İstanbul Boğazı는 단순히 '이스탄불 해협'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보스포로스 해협 서쪽으로 난 좁은 지협인 금각만(Κεράτιος κόλπος) 또한 

터키어로는 이를 직역한 Altın Boynuz를 쓰기도 하지만 이는 문학적인 표현에서 국한된 명칭이고, 

보통은 단순히 '만'이라는 의미인 할리치(Haliç)를 쓴다.


보스포루스 해협 크루징 


에미뇌뉘 선착장 중에서 고등어 케밥 바로 근처에 있는 투리욜(Turyol) 보스포루스 투어를 이용하면 된다.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해협인 보스포루스 해협은 흑해와 지중해가 만나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협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스탄불 여행 중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보스포루스 해협 크루징을 통해서는 과거와 현재를 뒤섞어 놓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며, 

부유층이 사는 별장가는 물론, 아름다운 해안가 궁전, 가난한 어촌 마을이 다양하게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배 안에서 마시는 차이 한잔의 여유를 즐기거나, 

배를 타기 전 미리 근처의 고등어 케밥을 준비해 배 위에서 먹는 것도 1시간 반의 유람을 더 재밌게 즐기는 방법이 될 것이다.


배는 정기선과 관광선 두 종류가 있으며, 정기선의 경우 가격이 저렴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편수가 많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보통 관광객들은 관광선을 이용해 약 1시간~1시간 30분 정도 제2 보스포루스 대교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보스포루스 크루즈는 주로 갈라타교 근처의 에미뇌뉘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갈라타 교를 지나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향한다.


보스포루스 해협 크루징  주요 코스


보스포루스 해협 크루징은 경우에 따라서 예약자가 없으면 배가 취소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해가 지기 한 시간 전에 타는 것이 가장 좋지만, 

예고 없이 배 시간이 바뀌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좋은 시간에 보스포루스 해협을 이용하는 것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참르자 언덕에서 보는 보스포루스 해협


에미뇌뉘 선착장


갈라타 다리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이어주며, 아시아 지구로 가는 배도 탈 수 있다. 

밤이나 낮이나 시끌벅적하고 맛있는 고등어 케밥을 파는 노점상들도 즐비하다.

배경으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가 보인다.


에미뇌뉘 선착장


에미뇌뉘 선착장에서 고등어 케밥을 파는 노점상


[영상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에미뇌뉘 선착장의 명물, 고등어 케밥 (Eminonu Pier, Mackerel Kebab)


에미뇌뉘 선착장


에미뇌뉘 선착장


에미뇌뉘 선착장 유람선을 타고 인증샷


에미뇌뉘 선착장 옆 갈라타 다리와 갈라타탑이 보인다.


점점 멀어지면서 멀리 갈라타탑이 멀리 보인다.


베벡(Bebek)


베벡은 보스포러스를 따라 매우 유행 마을이다.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멋진 카페와 상점으로 유명하다. 

또한 Bebek의 멋진 해변 산책로로 해협을 따라 긴 산책을 즐기기에도 매우 이상적이다.


베벡(Bebek)은 이스탄불의 부촌으로 아름다운 원목 주택과 잘 꾸며진 바 

그리고 보스포루스의 전망이 내려다 보이는 흥겨운 씨푸드 전문 레스토랑 등이 늘어서 있다.


베벡(Bebek)

보스포러스 해협의 유럽쪽 전망 좋은 해안가 언덕에는 모두 

유럽 부유층의 별장들이 그림같이 세워져 있다.


베벡(Bebek)은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가 있는 마을로도 유명하다.

스타벅스나 카페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기도 좋다.


베벡(Bebek)


베벡(Bebek)

부촌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수많은 보트들


아나돌루 히사르


오스만 왕조의 요새이다.

1390년 경에 바예지트 1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플(동로마제국의 수도)을 감시하기 위해서 세워졌다고 한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배를 타고 흑해 방향으로 지나면 오른편 아시아 쪽엔 아나돌루 히사르가

왼편 유럽쪽엔 루멜리 히사르가 바다를 마주하여 바로 건너편에 있다.


아나돌루 히사르


바다를 마주하여 바로 건너 루멜리 히사르가 보인다.


돌마바흐체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터키어: Dolmabahçe Sarayı)은 오스만 제국 궁전이다.

화려한 석조 건축물로 세워진 이 궁전은 원래 목조 건물이었으나 

1814년 대화재로 대부분 불타고 31대 술탄 압둘마지드 1세가 1856년에 재건했다. 

1843년에 착공해서 1859년에 완공했으며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했다. 

유럽에서 보낸 수많은 현상품과 호화롭게 꾸며진 사방의 벽들을 보면 당시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오스만 제국 후기 술탄 6명이 일부 사용했다.


돌마바흐체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


크즈 쿨레시 (Kiz Kulesi 처녀의 탑)


해협 가운데 인공섬 크즈 쿨레시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알키비아데스가 키지쿠스 해전에서 승리한 후 흑해로부터 돌아오는 배들을 위해 

크리소폴리스(Chrysopolis ; 위스크다르) 앞의 작은 바위섬에 표지석을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1110년 알렉시우스 콤네누스 황제가 석벽으로 주위를 에워싼 뒤 목탑을 세웠다. 

1453년 정복 전쟁 당시 연합 해군총사령관을 맡았던 

베네치아인 가브리엘 트레비사노 제독이 지휘하는 비잔티움 수비대가 일부 주둔했으며, 

술탄 메흐메드 2세의 정복 이후에는 감시탑으로 사용되었다.


1509년 지진으로 파괴, 1721년 화재로 소실. 그 이후엔 등대로 이용되었다. 

1731년부터 주변 보수를 시작, 1763년 석재를 사용해 재건했다.


크즈 쿨레시 (Kiz Kulesi) 인증샷


크즈 쿨레시(처녀의 탑, Kız Kulesi)


크즈 쿨레시 (Kiz Kulesi)에는 여러 전설이 전한다. 

터키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전설에 따르면, 

황제가 사랑하는 딸이 16세 생일 때 독사에 물려 죽을 거라는 신탁이 있었다. 

황제는 공주의 요절을 막기 위해 뱀이 올 수 없는 보스포러스 해협 입구의 

작은 돌섬에 탑을 지어 공주가 16세까지 머물도록 했다. 

오직 황제만이 이따금 딸을 보러 갔다. 

공주의 16세 생일날, 황제는 저주스런 예언을 막아냈다는 기쁨에 들떠 

진귀한 과일로 가득 찬 바구니를 들고 공주를 찾아갔다. 

그러나 바구니에 숨어 있던 맹독성 뱀(아스프 ; Asp)에게 물려 공주는 신탁의 마지막 날, 

사랑하는 아버지인 황제의 품에 안겨 예언대로 죽고 말았다. 

그래서 이 탑을 ‘처녀의 탑’이라 부른다.


[영상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처녀의 탑 크즈 쿨레시 (Kız Kulesi)


쿠축수 궁전


왕의 여름 별장

쿠축수 궁전으로 알려진 곡수궁전은 아시아쪽 해안 아나톨리 히사리 옆에서 우아함을 드러내고 있다.


쿠축수 궁전


해안가의 고급 호텔 Four Seasons Hotel


Four Seasons Hotel


오르타쾨이(Ortaköy) 자미(사원)


공식 명칭은 따로 있는데 오르타쾨이 부두옆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 보이는 사원은 1854~1856년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돌마바흐체 궁전을 설계한 아르메니아 출신의 건축가 발얀 부자에 의해 건축되었다고 한다.


오르타쾨이(Ortaköy) 자미


오르타쾨이는 보통 관광객들에게는 쿰피르를 먹으러 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오르타쾨이 자미와 아타튀르크 제1대교를 바라보며 잠시 경치를 즐기기 좋다.

밤의 야경도 좋다.


오르타쾨이 모스크 내부. 미흐랍 너머가 바로 바다이다. @차노휘


오르타쾨이(Ortaköy) 자미


오르타쾨이 자미(Ortaköy Camii)와 보스포러스교


이스탄불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가장 인접하고 아름다운 자미(사원)

자미 뒤로는 보스포러스 제 1대교가 화려하게 뻗어 있다.


보스포러스 제 1대교와 오르타쾨이(Ortaköy) 자미 인증샷


궁전을 개조한 츠라안 팰리스 캠핀스키 호텔


313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는 5성급으로 터키에서 가장 호화로운 호텔이다.

터키 정부가 국빈급 손님은 언제나 이 호텔에서 영접한다고 하는데

네델란드의 공주도, 미국의 역대 대통령도 이곳에서 환대를 받았다.


이곳은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세계를 호령했던 오스만제국의 32대 술탄 압둘 라지즈가 기거했던 궁전으로

세계적인 호텔 체인업체인 캠핀스키호텔이 인수하여 호텔로 개조하여 운영하고 있다.

메인 건물의 길이가 300m이고 건물의 길이와 같은 정원, 파란 하늘과 바다가 맞다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고

VIP들은 별도의 선착장을 통해 출입한다고.


140평에 이르는 스위트룸은 하루 숙박료가 1,500만원에 이른다는데

이렇게 비싼 숙박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파티와 결혼 피로연을 위해 방을 빌리는 터키와 유럽의 부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심지어는 호텔을 통째로 빌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2개의 대형 레스토랑과 11개의 스위트룸, 300여 개의 객실을 빌렸으니 그 비용은 상상에 맡길 뿐.

호텔 한켠에 자리한 헬리콥터장은 이러한 고객을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오스만 왕가의 여름별장을 호텔로 개조한 츠라안 팰리스 호텔 전경. 

보스포루스 해협에 접해있는 유일한 호텔이자 터키 최고 호텔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1867년 지어진 궁전의 장엄하고 화려한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있다. 

하루 숙박료가 일반실 4,5백불이고 스위트 룸은 8,9천불에 달한다. 


이스탄불을 찾는 주요 국빈들이 이곳에 머무는 데 터키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도 이곳에 묵었다.

클린턴이 국빈 방문시 호텔 전 층을 비워줄 것을 요구했으나 다른 투숙객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며 거절해 

터키의 자존심을 지켜준 호텔로 유명하다고 한다.


쿨렐리 군사고등학교 (Kuleli military highschool) 


이 건축물은 1845년 술탄 압둘메지드 1세에 의해 세워진 군사 고등학교이다.

터키 내 수재들이 모이는 특수 목적 고등학교로 대통령, 정치가, 축구선수, 작가 등을 배출한 명문이라고 한다.

교실에 앉아 있으면 풍경이 너무 좋아 공부가 제대로 안 될 것 같기도...


붉은 지붕의 건물들은 모두 학교라고 한다.

맨 왼쪽 끝에 있는 건물은 해양직업고등학교, 가운데는 갈라타 사라이 대학교, 그리고 오른쪽도 고등학교라고 한다.


제1보스포러스 대교


제1보스포러스 대교


보스포러스 제 1 대교 앞 아시아 지역에서 잠시 멈췄다가 떠난다.


보스포러스 대교 아래로 펼쳐진 콘스탄티노플

좌측에 유럽 부호들의 별장이 있고 중앙측 왼쪽이 블루모스크, 가운데가 성 소피아 성당, 오른쪽이 톱카프 궁전 모습이다.


유럽쪽의 화려함과 달리 아시아쪽 해안은 조금 초라한 모습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를 대표하듯 빈부의 차이가 뚜렷이 보인다.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교


보스포러스 해협에 있는 두번 째 다리로 '제2 보스포러스교'라고도 하는데 제1교보다는 길이가 짧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관광하는 유람선들은 유럽쪽 해안을 따라 이곳까지 와서 아시아쪽 해변을 따라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갈라타탑


이스탄불 갈라타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망대에서는 보스포러스 해협과 골든혼 그리고 이스탄불 시내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인증샷


성 소피아 사원


인증샷


베일레르베이 궁전 (Beylerbey Sarayi)

술탄의 여름 별궁


“왕 중의 왕 궁전”이라는 뜻의 베이레르베이 궁전은 1860년대부터 여름이 되면 오스만 제국의 황제가 거주하던 곳이었다. 

술탄 압둘 아지즈(Abdülaziz)가 제작 의뢰한 이 궁전은 방문하는 국가 수반을 대접하기 위한 '작은' 궁전으로 건립되었다. 

이 궁전을 찾았던 중요한 내빈으로는 프랑스 외지니(Eugénie) 황후와 러시아 니콜라이(Nicholas) 대공 등이 있다. 

현재는 사회 각계각층의 방문객이 궁전을 찾아 그 장엄함을 칭송하고 있다.


사르키스 발얀(Sarkis Balyan)이 설계한 베이레르베이 궁전은 좀 더 절제된 터키 궁전의 건축 양식이 잘 나타나 있지만, 

그럼에도 장식이 화려해 대다수 유럽이나 미국 건축물보다 더 호화롭다. 

방이 20개 넘게 있는 이 3층짜리 궁전에는 여성과 남성을 위한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화려한 스타일의 독창적인 벽지와 가구, 카펫, 커튼 그리고 기타 내부 시설이 감탄을 자아낸다고 한다. 

베이레르베이 궁전의 나무 의자와 캐비닛은 대부분 유능한 공예가이자 20세기 초 권력 이양기에 

이곳에 가택 연금되었던 술탄 압둘 하미드(Abdülhamid) 2세가 제작했다.


바닥에 깔린 호화로운 이집트 갈대 매트와 천장의 묵직한 크리스털 샹들리에를 살펴보고 

중앙 응접실에 놓인 분수를 감상하면서 10세기 초로 돌아가 이 궁전에서 시간을 보내던 내빈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좋을 듯.


밖으로 나가 궁전 뒤편으로 향하면 테라스와 마구간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수영장이 보인다. 

정원도 거닐고, 매력적인 곳에 자리 잡은 카페에 앉아 분주한 도심 속 오아시스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해도 좋다.


베일레르베이 궁전 (Beylerbey Sarayi)


베일레르베이 궁전 (Beylerbey Sarayi)


하이드라파샤 역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선물한 역이라고 한다. 




이집션 바자르와 그랜드 바자르 위치


그랜드 바자르 - 카팔르차르슈 (터키어: Kapalıçarşı, 영어: Grand Bazaar)


카팔르차르슈 (터키어: Kapalıçarşı, 영어: Grand Bazaar)는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바자르이다. 

1,200여개의 가게가 모여 있고 매일 250,000명에서 400,000명의 관광객이 이 곳을 찾는다. 

2014년에는 약 91,250,000명 관광객이 방문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명소에 리스트를 올렸다. 

카팔르차르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몰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카팔르차르슈는 이스탄불의 테오도시우스 성벽 안에 위치해있으며, 행정구역 상 파티흐에 있다. 

베야지트 모스크와 누루오스마니예 모스크 사이에 동서로 길게 뻗어있다. 

대중교통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스탄불 트램 베야지트-카팔르차르슈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그랜드 바자르는 비잔틴 시대부터 시장으로 사용되었다. 

정복자 메흐멧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1461년 나무로 지붕을 놓고 대상들의 무역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잦은 화재로 여러 번 재건되었으며, 

오늘날 벽으로 둘러싸이고 돔 형식으로 된 건물은 그 면적이 20만 평방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이곳에는 5000여 개의 상점들이 작은 거리와 통로로 된 미로에 퍼져 있으며, 

카펫, 공예품, 금, 은, 가죽제품 등을 취급하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그랜드 바자르는 사람 사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곳이다. 


























[영상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가장 큰 실내시장 그랜드바자르 (Grand Bazaar)


[영상 Travel-Isfahan] 그랜드바자르 (Grand Bazaar) 페르시아 카펫과 전통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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