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들통난 감옥살이

 


 " 주치의 선생님 만나 봤어?...
 어디에 가 있다 이제사 나타나느냐고 혼나지 않았어??? "

 

 혜숙은 밝게 웃으면서 나를 반긴다.
 자기 자신의 몸 상태야 별로 궁금할 것도 없고
 염려할 것도 없다는 표정이다.

 

 주치의 선생님은 내가 감옥에 있다 나온 줄 모르고 계실텐데
 도대체 뭐라고 해명했느냐는 것이 오로지 궁금한 거다.


 혜숙을 어떤 낯으로 바라보고
 혜숙에게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 지...
 갈피 잡을 수 없던 나로서는
 분위기를 받아 넘기기가 차라리 편했다.

 

 "... 으~~~응. 들통나 버렸어....."

 

 "... 에~~~엥??? "

 

 거두절미하고 장난끼 어린 표정으로 대답하면서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문병 겸 출소 마중 겸 와 있던 사람들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는 듯한 내 모습에서
 느닷없는 말이 튀어나오자
 분위기를 바꾸는데 한몫 거들어 주려는 듯
 모두들 소리내어 함께 웃었다.

 

 혜숙이만 혼자서
 무슨 농담을 그리 하느냐는 듯
 어이없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이 때 혜숙의 친구 천영초가 나섰다.

 

 " 아 글쎄 요 녀니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완조니 초칠해 버렸어야 ~ ...
 내 친구 혜숙이 신랑... 우리 선배가 어떤 분인데
 아직도 모르고 계신 거냐고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얼릉 나서서 말 해 버렸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민주화 운동 하다가 감옥에서 고생하다가 나오는 길이라고...
 뭐 어떠니? !!!... "


 주치의 선생도 당연히 알고 계시리라 여겼던 탓에
 그만 본의아닌 실수를 저지르고 만 천영초는
 계속 당당하다.

 

 " 에구~~~ 잘했다 자~알 했어...
 아무리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그렇지.....
 신랑이란 작자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여태 안 나타나나...
 혜숙이 남편한테 버림받은 여자 아닌가...
 제대로 말도 안 해 줘서 궁금해 주~욱 껐었을텐데.....
 어물어물 했다가는 신랑 몰골하며
 우리 혜숙이 체면만 더 깎일 뻔했자나? "

 

 나와 같은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살인적인 고문을 당하고
 계속 감옥 안에서 고생하고 있던
 김근태 선배의 부인이자 혜숙의 친구인 인재근이

 달덩이같은 얼굴에 함지박만한 웃음끼로
 입심좋게 너스레를 떨어 댔다.

 

 그제서야 혜숙은
 이리 된 바에야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듯
 나를 보고 눈을 사~알짝 흘기더니
 웃음을 머금는다.


 주위에 많은 분들이
 혜숙의 생명을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

 

 때로는 죽음의 사신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못하도록


 혜숙을 유일한 관객으로 삼아서

 주위에 많은 이들이
 배역과 역할을 나누어 맡아
 세련되게 종합 연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지기도 했다.

 

 이미 연기하고 연출하는 이들은
 줄거리를... 혜숙의 운명을 다 알고 있는데

 정작 스토리의 주인공이자
 유일한 관객인 혜숙이만
 그 내용을 모르는 듯 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미 다 아는데
 정작
 아내와 우리 가족만
 전혀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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