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10일. 6.10 항쟁은 대한민국의 방향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었다. 
마치 3.1항쟁이 수많은 사람들을 각성시키고 그 운명을 바꾸는 결단을 내리게 했듯이.  
숙명여대 약학대학 4학년 고미애도 그랬다. 
유복한 집안의 딸. 공부 열심히 하며 약사의 꿈을 실현해 가던 대학생은 
6월 항쟁을 맞아 그 인생을 바꾸게 된다. 

 

 

 


46년 만의 초혼, 여덟 송이 동백꽃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 여덟 분의 영혼에 바치는
이산하의 시와 글 
김정희의 곡
2021.10.6.(수) 오후 7:30 돈화문국악당

작사가의 말               --이산하(시인)

‘인혁당 사건’의 죽음 앞에서는
유가족만 상주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상주이다.
뒤늦게나마 여기 8개의 향불을 피운다.
꽃필수록 아프다.


작곡가의 말               --김정희   

말과 글로 차마 다 못하여
노래한다
목소리로, 악기로
 
말과 글로 차마 다 못한
아픔과 슬픔, 분노와 절망, 
그리움과 적막함을 

*여덟 송이 붉은 동백꽃의 영혼 앞에 
이제야 진혼곡을 바칩니다. 

(공연 후 유가족분들의 발언이 이어집니다.
끝까지 시청 바랍니다.)

 

 

일제 앞잡이가 영웅 되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겠나

정희상 기자 / 2020.07.09. 09:51

 

맞아 죽더라도 잘못된 군 역사 하나는 바로잡겠다고 각오했다. 독립군과 조선인을 죽이고, 전공을 과장해 스스로 영웅이 된 백선엽이 국립현충원에 묻힌다면 역사의 후환을 면치 못할 것이다.

 

시사IN  조남진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박경석 예비역 준장은 나쁜 것까지 가지고 가는 보수는 참된 보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박경석 장군(88·예비역 육군 준장)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야전에서 두루 거친 노병이다. 한국전에서는 화랑무공훈장을, 베트남전에서는 최고 무공 수훈인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이른바 육사 생도 2출신이다. 195061일 첫 4년제 정규 육군사관학교 생도로 입교했다가 20여 일 만에 6·25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임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전장에 투입됐다. 박경석과 함께 포천 전투에 참가한 동기생 330명 중 86명이 초기에 전사했다. 17세의 초급장교였던 박경석도 전투 중에 수류탄 파편에 맞아 몸의 왼편을 크게 다친 와중에 인민군 포로가 됐다. 그가 포로가 된 뒤 부대에서는 전사자로 처리한 다음 서울 동작동 국군묘지(국립현충원)에 가묘를 설치했다. 집에서는 장례식까지 치렀다. 지금도 동작동 국립현충원 15-2묘역에는 고 육군 소위 박경석의 묘가 그대로 남아 있다(박경석은 지금도 우울할 때면 자신의 묘지를 찾아가 상한 마음을 달랜다고 한다).

 

인민군 10사단에 포로로 잡힌 박경석은 심문을 받다가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석방됐다. 이후 원대 복귀한 그는 1950년 겨울 평창 전투에 참가해 큰 전공을 세우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베트남전에서는 맹호부대 초대 재구대대장(강재구 소령 추모 대대)’을 맡아 전공을 세웠다. 귀국해서 군 생활을 휴전선 등 야전에서만 보내던 그는 박정희 정권 아래 독버섯처럼 자라던 군내 정치 사조직에 맞서 입바른 말을 곧잘 했다. 이 일로 일찌감치 정치군인들 눈 밖에 난 박경석은 1975년 늦깎이 장군으로 진급한 뒤 1980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을 끝으로 군을 떠났다. 당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전두환 신군부가 그에게 진압 부대에 무공훈장을 수여하도록 심사를 맡아달라고 강요했다. 그는 단호히 거부하고 스스로 군복을 벗었다.

 

야전 군인 박경석은 초급장교 시절부터 숨은 문인이라는 특이한 이력도 갖고 있다. 그는 육군 대위 때 필명 한사랑(韓史郞)’으로 등단해 틈틈이 시와 소설을 썼다. 산전수전 다 겪은 야전 경험을 토대로 지금까지 총 83권의 저서를 냈다. 이 가운데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시기 명장으로 꼽히는 김홍일과 채명신 등 원로 장성 15명에 대한 평전과 회고록도 포함돼 있다. 현재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등 전국의 군 시설 11곳에는 박경석의 시비가 들어서 있다.

 

군 예편 이후 문인이자 군사평론가, 군사연구자의 길로 들어선 박경석은 왜곡되고 굴절된 한국 군사(軍史)를 바로잡는 데 일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한다. 6·25전쟁 과정의 가짜 영웅실태를 조사하고,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국군 창설 초기 친일파와 독립군 장교를 연구했다. 특히 6·25전쟁 영웅으로 알려진 백선엽이 일본군 간도 특설대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앞장서고 일왕에게 충성을 다짐했던 숨은 행적을 추적하는 데 오랜 기간 매달렸다. 더 나아가 한국전쟁 과정에서 육탄 10용사’ ‘육탄 5용사라는 일본군과 비슷한 영웅담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서도 꼼꼼한 사실조사를 벌였다. 그는 6·25 영웅담이 상당수 날조·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일본군 출신 지휘관들이 부하의 죽음을 자신의 공적으로 미화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2010년 무렵 이명박 정부는 백선엽을 한국군 최초 명예원수(5성 장군)로 추대하려고 시도했다. 이때 박경석은 자신이 필생의 과업으로 모아온 친일 행적 근거자료 등을 토대로 앞장서 반대했다. 외로운 그의 외침에 쟁쟁한 군 원로들이 동참했다. 이런 기세에 눌린 이명박 정부는 결국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 작전에 백기를 들었다.

 

민족사 최대 비극인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또다시 백선엽이 소환됐다. 이번에는 그의 사후 국립현충원 안장을 둘러싼 논란이다. 박경석은 이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대전 유성구에 사는 박경석 장군 자택을 찾았다. 80대 후반의 고령임에도 시종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한 그는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도록 백선엽 미화에 매달리는 보수 진영에 대해 가짜를 알면서도 신봉하면 참된 보수가 아니다라고 개탄했다.

 

일본군 출신 장교들을 연구해오셨는데.

 

일본 군대 출신 장교라고 무조건 척결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비록 일본군 출신이라 해도 독립운동을 직접적으로 탄압하지 않고 해방 뒤 잘못을 인정한 다음 대한민국에 기여한 장군들도 많다. 자칫 잘못하면 백선엽 때문에 그분들까지 한꺼번에 매도당할까 하는 걱정이 없진 않다.

 

일본군 출신 사이에도 차이점이 있다?

 

그렇다.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안 하고는 천지 차이다. 이종찬, 이한림 장군은 일본군 출신이었지만 과거 잘못을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김종오 장군도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그분들은 백선엽처럼 간도 특설대에 근무하거나 독립운동가를 혹독하게 다룬 적이 없다. 그러나 백선엽, 정일권 같은 일본군 출신은 끝까지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간도 특설대 근무가 문제인 이유는?

 

일제 만행을 담은 역사 화보에서 사람 목을 칼로 베는 장면이 바로 간도 특설대가 조선 사람 죽이는 모습이다. 오랑캐의 손으로 오랑캐를 잡는다는 이이제이 전법을 적용해 조선인 손으로 조선인을 잔인하게 제압하라고, 일본군이 만든 부대가 바로 간도 특설대다. 백선엽은 간도 특설대에 지원병으로 들어간 사람이다. 일본과 중국에서 관련 증거서류를 다 확보했다. 국내에 나도는 백선엽의 간도 특설대 활동 증거는 모두 내가 수집해온 것이다.

 

자료를 어떻게 입수했나?

 

일본에 건너가서 간도 특설대 연구 전문가인 다나카 히사이로 박사를 만났다. 그가 모든 관련 자료를 넘겨줬다. 보니까 기가 막혔다. 백선엽은 한국군 생활을 마친 박정희~전두환 정부 시절에 일본을 오가며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일본어판 회고록까지 냈더라. 일본 만주군관학교 동기생들 모임에 나가서 간도 특설대에서 근무한 게 영광이라는 연설도 했다. 독립군과 조선인을 죽인 것도 군인으로서 임무를 수행한 거라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더라.

 

백선엽은 1993년 일본에서 간도 특설대의 비밀이란 회고록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가 전력을 다해 독립군을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일본을 배반하고, 오히려 항일 게릴라가 되어 싸웠다고 해도 대한민국 독립이 빨라졌으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이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라는 소회를 밝혔다.

 

백선엽 같은 일본군 출신을 중용한 이승만 정부의 책임이 크지 않나?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군 출신을 활용했지만 나름 최소한도의 안전장치를 두었다. 국방부 장관을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인 이범석 장군으로 앉혔다. 일본군 출신들에 대해선 후보생으로 받아 한국군 소위에서부터 시작하는 코스를 밟게 했다. 건국과 창군 초기에 어쩔 수 없이 일본군 출신을 썼지만 원칙은 지켰다고 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야심차게 밀어붙이던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를 좌절시켰는데.

 

간도 특설대에서 독립군을 잡았던 사람이 초대 명예원수가 되고, 영웅으로 부각된다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겠나? 대한민국 최초의 명예원수 추대라면 그 의미와 상징성이 매우 크다. 6·25전쟁 참전 원로 장군들이 백선엽 영웅화를 이구동성으로 반대했던 이유도 그것이다.

 

백선엽이 저지른 친일행위보다 6·25전쟁의 공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6·25전쟁사를 모르는 일반인, 특히 정치인들은 마치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 백선엽이 인민군을 다 막아서 대한민국이 구출된 것처럼 주장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낙동강 전선이 240였다. 그 전선에서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 8개 사단이 합심해서 방어해낸 것이다. 백선엽은 그중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낙동강 방어에서 미군도 큰 역할을 했다.

 

미국 공군 B29 폭격기가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미 연합군 8개 사단을 지휘하면서 불퇴전의 결의로 앞장섰던 미군 워커 장군의 공도 컸다. 워커 장군은 나중에 교통사고로 작고했지만 우리 정부도 낙동강 전선의 공로를 기려 그의 이름을 딴 워커힐 호텔까지 만들었다. 훗날 일각에서 백선엽이 낙동강 전선을 혼자 사수한 것처럼 과장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누가 과장했나?

 

6·25전쟁 공로를 과장해 스스로 영웅화한 주역은 백선엽 자신이었다. 그는 군복을 벗은 뒤 박정희 정부 때부터 30년간 전쟁기념관에 사무실을 두고 출근하면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을 자원해 맡았다. 참전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고, 백선엽 장군이 내신 6·25 관련 책이니까라며 덮어놓고 찬양했다. 그러나 참전 장군들은 다 안다. 그분들은 백선엽 장군을 영웅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6·25전쟁의 진짜 영웅이 있다면?

 

당시 전쟁기를 통틀어 김홍일 장군과 김종오 장군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김홍일 장군은 중국 정규군 중장 출신으로 일제 말기 임시정부 광복군 참모장을 지냈다. 6·25전쟁 초기 김홍일 장군 아니었으면 대한민국글자가 없어질 뻔했다. 이 역사가 아직까지 너무 묻혔다. 일본군 출신 백선엽 때문에 묻혔다. 국민들이 거의 모른다.

 

연합뉴스  1955927일 제1군사령부 주최 전군사격대회에 참석한 정일권 육군참모총장(앞줄 가운데)과 각 군단장. 앞줄 맨 오른쪽이 당시 1군사령관이었던 백선엽 대장.

 

묻힌 이야기는?

 

6·25 개전 초기 국군이 무너져 내렸다. 개성의 1사단장 백선엽 대령은 전날 서울 육군회관 파티에 외출 나갔다가 6·25가 터진 그날 오전까지 부대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단장이 없는 동안 닥친 전쟁에서 1사단은 속수무책 후퇴했다. 임진강 남쪽의 일부 병사들이 고향 집으로 달아나버릴 정도로 부대는 엉망진창이 됐다. 백선엽에겐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이었다. 유재홍 준장의 의정부 7사단도 무너졌다. 춘천 지구를 방어하던 김종오 대령의 6사단만 제대로 싸우며 3일을 버텼다. 김종오 대령은 (전쟁 발발 전부터) 위기의식을 느끼며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대대장 이상 계급에 대해 전부 외박을 금지해두었다.

1사단과 7사단이 붕괴되자 김홍일 장군이 군 원로회의를 소집해 신성모 국방부 장관과 채병덕 총참모장을 앞에 두고, (북한군에 쫓겨 내려오는) 부대를 수습해서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자고 주장했다. 신성모와 채병덕은 반대했다. 대구·광주·대전의 후방 3개 사단을 서울 근방으로 불러올렸지만 올라오는 족족 인민군의 공세에 붕괴됐다.

 

당신은 어디에서 싸웠나?

 

그때 나는 육사 생도로서 포천 전투에 나갔다. 부대가 완전히 붕괴되어 86명이 계급·군번도 없이 전사했다. 후퇴해서 수원으로 내려와 특공대를 모집해 한강 방어선에 참가했다. 광복군 원로인 김홍일 장군이 신성모·채병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만든 방어선이었다. 김홍일 장군이 한강 방어선을 적극 주장하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그를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김홍일은 장교와 헌병을 진두지휘하면서, 1번 국도와 야산을 통해 썰물처럼 퇴각해 내려오는 국군 패잔병을 수습해 만든 임시 사단을 한강에 배치했다.

그해 628일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이 이틀을 주춤한 이유가 있다. 우선 북측은 한강 이북 서울 중심부를 점령한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을 다 차지한 거나 다름없다고 자만했다. 당시 북측은 인민군 2사단이 춘천에서 국군 6사단을 물리친 뒤 이천을 거쳐 수원 남방에 포위망을 구성해서 한국군을 궤멸시키는 작전을 세웠다. 그런데 춘천에서 (김종오의) 국군 6사단이 잘 버티며 그 작전을 무산시켰다.

아주 교묘하게 맞물렸다. 김홍일 장군이 한강 방어를 안 했거나 춘천에서 김종오 대령이 인민군을 막지 못했다면 나라가 무너지는 판국이었다. 두 사람의 작전이 맞아떨어지면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르는 사흘을 얻은 것이다.

 

개전 직후 사흘이 중요했던 이유는?

 

미국 조야에서는 초기 전세로 판단할 때 참전 시점이 늦었다고 봤다. 오키나와로 이승만 정부를 망명시킨다는 말까지 돌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김홍일과 김종오가) 초반 3일을 벌면서 미군과 유엔군의 참전 결정에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다. 대한민국 구출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김홍일 장군과 김종오 대령의 공로는 백선엽의 초기 행각에 대비해보면 철저히 과소평가되었다. 이런 구체적인 전쟁사를 요즘 군인이나 군사 전문가들은 잘 모른다. 백선엽 영웅 만들기에 가려져버렸다.

 

백선엽의 1사단 병사들이 개전 초기에 인민군 전차를 육탄 돌격으로 막았다는데.

 

일본군 출신 일부 장군들이 스스로를 전쟁 영웅으로 미화하기 위해 과장하고 날조했다. 적 전차를 육탄으로 부쉈다는 심일 소령과 육탄 5용사’, 적 토치카를 맨몸으로 파괴하고 장렬하게 산화했다는 육탄 10용사사건이 대표적인 해프닝이다. 육탄 10용사 중에서 한 병사가 북한 방송에 나와 귀순 월북을 종용한 사건은 (우리 군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런 영웅들을 기리는 동상이 아직도 육사에 그대로 남아 있고, 교과서에도 실렸는가 하면 군가까지 만들어 불렸다. 그 뿌리는 일본 군국주의에 있다.

 

어떤 뿌리인가?

 

일제하 초등학교 교과서에 태평양전쟁에서 적의 전차를 파괴하고 목숨을 던진 육탄 3용사의 영웅담이 게재돼 있었다. 당시 조선 청소년들에게 그 글에 감동하라고, 혈서를 쓰라고 강요하면서 일왕에 대한 충성을 다짐시켰다. 그 영웅담은 일본 패전 후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백선엽 같은 일본군 출신 장군들이 똑같은 수법을 6·25전쟁사에서 되풀이한 것이다.

 

백선엽 장군이 6·25전쟁 가짜 영웅 만들기에 개입했다는 근거가 있나?

 

일본군 출신 장군들이 나에게 구체적으로 육탄 용사 영웅 만들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일본군 출신인 손 아무개 장군이 나에게 직접 그러더라. “월남전 영웅으로는 강재구 소령이 있지만, 일본군 출신 중엔 영웅이 하나도 없지 않으냐. 백선엽 장군이 직접 나서서 타당성을 주장하시는데 박경석 장군이 좀 도와달라.”

심일 소령에 대해서는, 내가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으로 당연직 공적심사위원장을 맡았던 1980년대 초반의 1차 조사 당시, ‘이미 허구가 드러났다고 거절했다. 그랬더니 나를 백선엽 장군 방으로 데려가더라. 백선엽은 그 자리에서 나에게 심일 소령을 영웅으로 만들자고 이야기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거절하며 그 자리를 나와버렸다. 그런데 3년쯤 지나니까 육군사관학교에 심일 소령 동상을 세우고 심일상을 제정했다. 내가 손 장군한테 전화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손 장군은 백선엽 장군이 참모총장한테 특별히 부탁해서 성사시킨 거니까 그런 줄로만 알고 잠자코 있어달라고 했다.

역사의식 없는 역대 국방 수뇌부들이 만든 어이없는 해프닝이다. 육사, 삼사 등 군 간부 양성기관에서는 소위 백선엽 도서 코너를 따로 만들어 그를 칭송한다. 백선엽이 낙동강에서 싸워 혼자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으로 만들어지니까,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국전쟁 60주년 기념으로 3개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하나는 명예원수 추대, 하나는 백선엽상 제정, 그리고 정부가 공적으로 간행하는 백선엽 회고록. 3개 프로젝트가 이명박 정부에서 결정됐는데, 내가 앞장서서 막았다. 백선엽 영웅화 반대 선언문을 발표했다. 당시 살아 있던 6·25 참전자들이 울분을 토하며 합류했다.

 

백선엽 지지 세력의 방해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맞아 죽더라도 잘못된 군 역사 하나는 바로잡고 죽겠다고 각오했다. 독립군을 잔인하게 죽인 일제 앞잡이가 대한민국의 초대 명예원수가 된다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겠나. 대한민국 건국이념은 어떻게 되나. 자칫 북한의 6·25 남침이 일제 잔재 소탕 전쟁으로 정당화되면 어떻게 하나? 이걸 바로잡지 않으면 이 나라가 세계적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거다.

 

보수 진영 내에서는 백선엽을 이순신 장군이나 홍범도 장군에 빗대 칭송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청춘을 야전에서 바친 군인으로서 스스로 보수라 자처하지만 나쁜 것까지 가지고 가는 보수는 참된 보수가 아니다. 가짜와 거짓은 털고 가야지, 속이고 갈 순 없다.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논란을 어떻게 보나?

 

비록 현행법상으로 백선엽이 현충원에 묻힐 자격을 가졌다 하더라도 내가 후손이라면 극구 만류하겠다. 그가 만일 국립현충원에 안장되면 역사의 후환을 면치 못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묻힐 곳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나. 백선엽 장군에게는 현충원 대신 인천에서 선인학원으로 형제애를 나눈 동생 백인엽씨가 묻혀 있는 가족묘가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다.

 

 


노비의 고통에 동참한 역사학자 정석종 선생 (1937〜2000) / 정지창


나는 1970년대의 대부분을 언론계에서 보냈다. 애당초 기자 노릇이 적성에 맞지 않고 박정희 유신체제가 언론의 입을 틀어막고 받아쓰기를 강요하던 때라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10•26 사건으로 독재자 박정희가 죽고 나서 국방부 출입기자로 김재규 재판 취재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1980년 2월 초순에 평소 가깝게 지내던 영남대 문화인류학과의 박현수 교수가 나에게 대학으로 자리를 옮길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영남대 국사과 정석종 교수의 친구가 부산의 모 대학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서울을 탈출하여 그해 3월부터 부산에서 새로운 인생 제2막을 시작했다. 총칼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정권이 갑자기 대학정원을 늘리고 학과를 증설해주는 바람에 석사 학위만 가지고도 운 좋게 대학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이 무렵 현장 노동자 수기를 출판하고 피신생활을 하던 후배가 평소 아옹다옹하던 어머니와 아내가 자식과 남편 걱정을 같이 하면서 사이가 좋아졌다고 “고마운 전두환이”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부산에 내려가기 전에 박교수와 함께 서울역에선가 정석종 선생을 만나 처음으로 인사를 드렸는데, 악수를 하는 손이 따뜻하고 얼굴 가득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때 이 분이 황석영 작가에게 『장길산』의 원자료를 제공하고 조선 후기의 민중사에 관심이 많은 학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산에서 4년을 지낸 다음 나는 1984년 영남대로 자리를 옮겼고, 정석종 선생을 좀 더 가까이서 뵙게 되었다. 정 선생의 연구실은 문과대학의 인문관 4층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연구실에 군용 야전침대를 가져다 놓고 걸핏하면 연구실에서 기거하며 공부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것이었다. 또 하나 놀라운 일은 연구실 창 밖 베란다에 벌통을 몇 개 가져다 놓고 양봉을 하는 것이었는데, 가끔은 벌에 쏘여 눈두덩이나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하였다. 한 두 차례 꿀 한 숟가락은 얻어먹은 것 같은데, 대체로 양봉의 소출은 신통치 않았다. 벌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벌의 주인이 다른 일로 바빠 바지런하게 벌을 돌보지 않은 탓이라는 것이 후배들의 중론이었다. 그후 정 선생이 연구년을 얻어 미국에 갔다 오느라 한동안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양봉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정 선생은 조선시대의 노비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 날 연구실에서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여자 노비의 매매문서를 뒤지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그 여자 노비가 나타나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을 하더란다. 선생은 그 여자 노비를 연구의 대상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수 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정서적 감정이입을 통해 그녀에게 애틋한 인간적 유대감을 느꼈기에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기막힌 일을 체험한 것이리라.

1994년에 나온 선생의 역작 『조선후기의 정치와 사상』에는 홍경래의 난에 연루되어 체포된 오섬이라는 노비의 얘기가 나온다. 노비는 성이 없었으므로 오섬은 그녀의 이름이다. 보통 논문에서 개인사는 잘 다루지 않는 법인데 선생은 이런 관례를 무시하고 가엾은 여인의 하소연을 받아 적은 것처럼 세밀하게 그녀의 기구한 삶의 궤적을 소개한다. 그 이유를 선생의 육성으로 들어보자.


“민중사의 움직임 속에서의 개인사의 문제도 중요한 측면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전체적인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개인사는 잊혀지기 쉽고 소흘히 다루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시의 사회적 모순과도 깊이 관련되는 문제이다. 개인의 고통스런 문제가 곧 당시의 사회적 모순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와도 관련된다는 점 때문에도 개인사의 문제가 심각히 거론되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개인사의 극적인 일면을 홍경래란의 경우에서 제시하여 보기로 한다.”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 때 반란군에 항복한 신도 첨사 류재하가 반란이 평정된 후 대역죄인으로 처벌을 받게 되었는데, 가족 친지는 물론이고 그가 잠시 데리고 살았던 관비 오섬도 네 살 난 딸과 함께 잡혀오게 된다. 그녀는 류재하가 용천에서 벼슬을 살 때 그와 살면서 딸을 낳았으나 그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버림을 받는다. 살 길이 막막한 그녀는 용천의 백정 이방섭에게 재가하였으나 가난에 못 이겨 남편이 의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다시 버림을 받는다. 그녀는 살 길이 없어 구도라는 섬에 사는 차전묵에게 출가하였으나 그도 역시 가난하여 함께 살 형편이 못되었다. 들리는 소문에 청천강 이남은 흉년에도 살기가 낫다고 하여 딸아이를 데리고 남쪽으로 가다가 뱃사람 한홍서를 만나 부부가 되었다. 그러다가 한홍서도 배를 타고 남쪽으로 가버리고 그녀는 취라도라는 섬에 남아 있다가 홍경래란의 뒤끝에 류재하의 엣 여자라고 하여 잡혀온다. 오섬은 전에 딸을 데리고 신도로 류재하를 찾아간 적이 있으나 ‘너는 이미 다른 남자에게 출가했으니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매정하게 내치는 바람에 그후로는 전혀 왕래가 없었다. 결국 오섬은 먹고 살기 위해 네 번이나 출가했으나 네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자기를 버린 남자 때문에 대역죄인의 일당으로 몰려 곤욕을 치르게 된 것이다.


여기서 선생은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역사학자의 시점에서 벗어나 직정적으로 자기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당시 여종의 처지란 공•사노비를 막론하고 대개 오섬과 다를 바가 없어 한 지아비로부터 버림을 받으면 생활의 방도로 다른 지아비를 얻을 수밖에 없으며 자연히 여러 남자를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양반층은 이처럼 여종을 함부로 취급하였다. 조선시대 양반사회란 그같은 여성들의 고통과 희생 위에서 존재하였으며, 여종들은 더욱이 그들이 역사의 격랑 속에 던져졌을 때 그 소용돌이 속에서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비록 보잘것없고 하찮은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고통과 애환이 반영되지 아니한 역사서술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들의 원망과 희원은 평등한 사회의 실현이다. 그 희원은 하나의 도도한 흐름이 되어 역사를 소용돌이치게 하고 변혁시켜 갔으며 그것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정 선생이 강조하고 있는 이런 관점은 소설 『장길산』에서도 관철되고 있다. 조선시대 노비와 천민들의 비참한 삶과 그들의 피맺힌 원한, 그로 인한 숱한 저항과 반란, 그들이 바랐던 평등세상에 대한 희원이 소박한 미륵사상과 정감록 같은 민간신앙으로 면면이 이어져왔다는 사실을 정 선생은 작가 황석영에게 귀뜸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선생의 뜻을 내리받은 무당처럼 1974년부터 1984년까지 장장 10년에 걸쳐 조선시대 민초들의 얘기를 신들린 듯 써내려간 것이리라.

나는 『장길산』이 다른 역사소설에 비해 돋보이는 지점은 바로 노비들을 비롯한 천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중기 이후 노비의 수는 전체 인구의 40∼60%였다고 하니, 사실상 노예제사회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도망 노비의 아들로 길가에서 태어난 주인공 장길산과 창기라는 밑바닥 신분으로 그와 연을 맺으면서도 다른 사내들에게 생계를 의탁할 수밖에 없었던 묘옥. 해주 감옥에서 벌어지는 지옥도의 생생한 장면들. 토호의 모함에 빠져 패가망신하여 결국 화적패에 투신한 선비 김기. 원수의 자식과 연분을 맺은 그 딸의 기막힌 이야기. 『장길산』은 오섬과 같은 조선시대 여성의 운명에 가슴 아린 통증을 느낀 젊은 역사학자 정석종으로부터 발원하어 황석영이라는 탁월한 이야기꾼의 입담과 상상력에 힘입어 장강대하의 대서사로 굽이쳐 흐르며 1970∼80년대의 암울한 군사독재시대에 독자들의 허기와 갈증을 달래주었으니, 시대와 역사와 문학의 절묘한 합작품이라 하겠다.


이런 노비제도는 조선조 말기까지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이 1894년 충북 옥천군 청산에서 일본군의 경복궁 점거에 항거하여 2차 봉기에 나선 다음 그 딸인 최윤이 관가에 잡혀갔는데, 군수가 크게 선심을 써서 아전인 정주현과 결혼시켰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형제별’(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형제…)과 ‘짝짜꿍’, ‘졸업식 노래’ 등을 작곡한 음악가 정순철이다. ‘역적의 딸’이라는 멍에를 쓴 그의 어머니(최윤)는 그후 남편과 헤어져 계룡산 신도안을 거쳐 수운 최제우 선생의 고향인 경주 용담정을 지키며 만년을 ‘용담 할매’로 살았다고 한다. 권정생 선생의 『한티재 하늘』에도 안동지방의 양반가에서 도망친 노비 달옥이가 주막집 아들 이석과 함께 청송의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가 숨어 사는 대목이 나온다. 권정생 선생이 어머니에게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엮어낸 영남 북부지방의 민중사인 이 대하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구한말에서 일제시대에 걸쳐 있다.

조선시대의 민중사는 바로 노비의 역사임을 절감하고 마음으로부터 노비들의 고통에 공감한 역사학자 정석종 선생. 그의 따뜻한 손과 다정한 미소는 민초들의 고통에 대한 속깊은 연민의 정이 겉으로 스며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선후배 교수들과의 이런저런 회식이나 술자리에서 정 선생은 대체로 나이 많은 선배였지만 후배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고, 시국 선언의 서명이나 뒷풀이의 노래 권유에 망설이지 않고 언제나 흔쾌하게 응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도 언제나 깍듯이 존대를 하고 다정하게 웃는 얼굴로 대했다. 정 선생은 박사학위 논문과 역사문제연구소 일로 서울을 자주 왕래하면서 건강을 해친 것 같다. 특히 박사논문을 쓸 때는 워드프로세서나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라 지도교수가 수정, 보완을 지시하면 논문 전체를 다시 원고지에 고쳐 써야 하는 고역을 몇 번이나 반복하곤 하였다. 언젠가 내가 아는 한의원에 선생을 모시고 갔는데 젊은 여자 한의사가 진맥을 하더니 “외화내빈(外華內貧)이군요”라고 직설적으로 경고를 하는 바람에 우리 일행이 모두 뜨악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좀 더 철저하게 건강관리를 하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 같은 후배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건강에 신경을 쓰도록 채근했으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울 뿐이다.


정석종 선생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든 것은 어느 날 소문도 없이 운전면허를 따고 덩치에 아울리지 않은 소형차를 몰고 학교에 나타났을 때였다. 당시 정 선생 연배의 교수들 가운데 운전을 하는 분은 아무도 없었다. 이 무렵 정 선생은 대구 근교의 우록에 자그마한 농막을 마련하고 틈나는 대로 소형차를 몰고 드나들며 전원생활을 즐기셨다. 가창 골짜기를 지나 남지장사 못 미쳐 산허리에 붙은 농막의 당호는 ‘오수헌(五樹軒’이었다. 은사인 김용섭 선생이 지어주셨다면서 자랑스러워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서까래가 다 드러나게 개조한 오수헌에는 선생이 즐겨 보는 서책과 함께 바둑판도 비치돼 있었다. 선생의 바둑 실력은 크게 높지 않았으나 바둑 사랑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여기서 선생은 텃밭 농사도 짓고 화초도 가꾸면서 막걸리도 마시고, 낮잠도 자고, 바둑도 두며 유유자적 전원생활의 즐거움에 푹 빠져 지냈다. 불의의 병고로 쓰러지기 직전의 우록시대가 선생에게는 일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정석종 선생은 가고 오수헌이라는 당호만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아 있다.





민중사학 1세대의 선두주자...초대 역사문제연구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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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종, 그의 삶과 역사학' 책 표지.


'민중사학 1세대'의 선두주자이자 초대 역사문제연구소장을 지낸 정석종 영남대 교수(사학과) 타계 20주년을 맞아 '정석종, 그의 삶과 역사학'(정석종기념문집편찬위원회 엮음) 이 출간됐다.

정석종기념문집편찬위원회가 엮어 펴낸 '정석종,그의 삶과 역사학'에는 정석종 교수의 삶의 흔적을 그린 추모글과, 고인의 논문 중 민중운동사 관련 논문이 실려있다. 1부 '추모문집'에는 22인의 추모글과 1편의 대담글이 수록되어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한때의 정석종을 기억하는 단편의 글들이 모여 '정석종'이라는 한 인간의 삶을 재구성했다.

정석종 교수는 1937년에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나 1947년 월남한 실향민으로 1950년 대구에서 전시통합중학을 다녔다. 1957년 서울대 문리과대학 사학과에 입학하여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학풍 속에서 선학들의 지도보다는 학우들과의 토론을 통해 성장했고, 4·19의 현장에서 시위에 뛰어들기도 했다. 본격적인 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규장각의 사료 더미 속에서 목소리 잃은 민중의 흔적을 찾았다.

1968년 석사학위논문에서는 조선 후기의 신분제 붕괴 현상을 실증했고, 1983년 박사학위논문을 통해서는 당쟁사뿐 아니라 민중운동사를 조선시대 정치사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독특한 시각을 제시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범죄인 조사·신문·재판 기록인 '추안급국안'을 발굴하여 장길산 부대, 무신난, 홍경래난 등에 참가한 인물들의 정치·사회경제·사상사적 궤적을 생생한 역사적 사실로 그려냄으로써 민중운동사를 개척한 제1세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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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종 전 영남대 사학과 교수는 민중사학 1세대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치열한 학문의 길에서 건강을 다치기도 하고, 가난에 고통 받기도 했다. 대학 강단에 서면서는 후학들에게 '민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가르치고, 운동권 제자를 위해 보이지 않는 보호와 지원의 손길을 아끼지 않았다. 학자로서 현실 참여의 길을 모색하며 역사문제연구소의 초대 소장이 되었고, 자녀를 통해 1980년대 중·고등학교 교육민주화 운동과도 연을 맺었다.

1945년 이후 분단 구조와 이승만 독재 정권 아래에서 일제 식민사학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했고, 한국 사학계는 대부분 왕조사관에 매몰되어 있었다. 근대사의 이론이 정립되지 못한 학문 풍토에서, 이를 재정립하고 타파하려는 소장 연구자들이 하나 둘 등장했다. 이들은 민족 문제와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이승만 독재 정권과 박정희 군사 정권 및 유신 정권 아래에서 방황과 고통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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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종 교수는 후학들에게 '민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가르치고, 운동권 제자를 위해 보이지 않는 보호와 지원의 손길을 아끼지 않았다.


'모순과 갈등의 시대에 역사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역사는 현실에 맞서 교훈과 무기가 될 수 있는지'라는 화두를 품고 치열하게 학문을 탐구했다. 이들 소장 그룹의 한 멤버로서 한국 역사학계에 '민중사'라는 새로운 시선과 영역을 개척한 정석종 교수는 기존의 연구에 안주하지 않고 창의적인 이론을 제시하면서 독창적인 학문 세계를 수립했다. '추안급국안'을 비롯, 먼지 속에 파묻혀 있던 사료를 발굴하여 생명을 부여했다. 그리하여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 사학계를 이끈 리더가 되었다.

정석종 교수는 민중의 저항운동을 정치사의 한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논지를 폈다. 천민들의 비밀결사체인 살인계(殺人契)는 물론이고, 상인, 역관, 무인, 서얼 등 중인들의 움직임도 정치 현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역관들은 무역으로 축적한 재부를 이용해 정권 탈취에 나섰다. 정석종은 그 예시의 하나로 창우(倡優) 출신의 극적(劇賊) 장길산을 들었다. 끝내 조선왕실에 잡히지 않음으로써 신화를 완성했던 장길산의 이야기는 걸출한 이야기꾼 황석영에게 소개됨으로써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장길산'이라는 소설로 승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은 그의 규장각 시절에 시작된 치열한 사료 발굴로 가능했다. 그는 유명한 '추안급국안'을 비롯하여 '관서신미록', '진중일기', '안릉일기', '홍씨일기' 등 수많은 사료를 번역·해제·분석함으로써 한국 사학계에 '민중운동사'의 시작을 알렸고, 민중운동사를 탐구하고자 하는 후학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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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종 교수는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 사학계를 이끈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


2020년은 한국 민주운동사 1세대 연구자이자, 역사문제연구소 초대 소장이었던 정석종 교수가 타계한 지 20주기가 되는 해다. 고인은 학부 시절 4·19혁명을 경험했고,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에는 역사학계의 화두였던 민중 주체의 역사상을 규명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1986년에는 역사문제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아 역사인식의 심화와 대중화를 통해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진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의 사후 20년, 이제 동료와 후학들이 그의 삶과 역사학을 되돌아봄으로써 '역사학자'로서, 그리고 '시대의 증인'으로서 늘 눈앞의 과제를 정면 돌파하고자 했던 인간 정석종을 재조명한다.

정석종기념문집편찬위원회에는 김경희·박현수·배경식·이만열·이이화·임헌영·정지창·정진아·채희완씨가 참여했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산림청 선정 한국의 100대 명산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100대 명산"은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기념하고 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 2002년 10월 산림청에서 선정 공표하였습니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은 학계, 산악계, 언론계 등 1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추천받은 105개 산과 산악회 및 산악 전문지가 추천하는 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선호도가 높은 산을 대상을 산의 역사, 문화성, 접근성, 선호도, 규모, 생태계 특성 등 5개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심사 후 선정하였습니다. 100대 명산에는 국립공원(16), 도립공원(17), 군립공원(11) 지역에서 44개, 백두대간에 인접한 산 중에서 34개가 선정되었습니다. 또 대암산, 백운산, 점봉산 등 생태적 가치가 큰 산과 울창한 원시림을 자랑하는 울릉도 성인봉, 섬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인 홍도 깃대봉 등도 100대 명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료 출처 : 산림청]



100대 명산 중에 인기 순위 'TOP 20'에 항상 올라오는 산(山)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순위 변동이 많습니다. 순위를 정하는 통계가 '인터넷 검색 순위' '산행지에 있는 탐방객 체크 시설' '입장료(사찰 기준)'등이 있지만 대부분 '인터넷 검색 순위'가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다 보니 '100대 명산'에 포함된 산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접근성'도 작용할 것이고... 계절(봄꽃. 여름계곡. 가을단풍. 겨울설경)에 따라서 산행보다는 관광을 목적으로 찾는 것도 포함이 되기에 '100대 명산'을 순위로 정하는 것이 쉽지가 않죠. 그래서 산(山) 자체만으로 순위를 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산림청'에서 발표한 '100대 명산'의 선정 기준도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사찰'과 '도시' '휴양림'의 영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답사를 하다 보면 실망하는 산(山)도 꽤 됩니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산이 다르고... 산에서 보고 싶어하는 모습(꽃.식물.풍경.유적지... 등)이 다르기에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도 선정 이유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곳은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암튼 산에 자주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답사를 할 때 산행 코스나 날씨에 따라 산의 이미지가 다르게 느껴지기에 '명산(名山)'의 이미지가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계절에 상관없이... 날씨(풍경.조망)에 상관없이 산의 모습 자체만으로도 항상 멋진 풍경을 보여줬던 산을 개인적인 생각으로 평가를 해서 정리했습니다. 100대 명산을 떠나서  '꼭 가봐야 할 산'과 자주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는 계절을 선택해서 가보면 좋을 산'을 50곳 골라서 체크(바탕색) 했습니다. 바탕색이 없는 곳은 4계절 상관없이 가도 될 만한 평범한 곳이거나 한 두번 가봐서 자세히 알 수가 없어서 선택하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선정 사유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곳도 20곳 정도는 되는 것 같지만... 제가 전문가는 아니기에 보류하겠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으로 정한 것이니 답사 준비를 하는데 참고용으로만 보시면 됩니다.


제가 못 가본 곳 중에도 산세가 뛰어나고 아름다운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곳은 100대 명산에서는 제외되었지만 대부분 '인기명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흔히 말하는 '산꾼'들의 입소문에서 퍼져 나가서 알려진 '인기명산'이 더 멋진 곳이 많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니 매년 순위가 바뀌는 인기명산 명단도 조회해보고 산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래 표의 100대 명산 정렬은 '가나다'순이며 '이름'을 클릭하면 산에 대한 간단한 정보가 있는 곳으로 연결이 되고 '관련 정보'를 클릭하면 해당 관리 주체의 홈페이지와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산행기'를 클릭하면 다녀와서 작성한 산행기와 연결이 됩니다. 표 아래에 각 산에 대한 정보는 '산림청'에서 '100대 명산'으로 선정한 이유를 적은 것이고... 그 옆의 글은 제 개인적인 생각을 추가로 적은 것이니 참고만 하시면 됩니다. 추천 기준은 '봄은 꽃(진달래.철쭉.벚꽃...등)을 볼 수 있는 산행지' '여름은 계곡이 아름다운 곳이거나 물놀이하기 좋은 휴양림 등이 있는 곳' '가을은 산(山) 아래 초입에 단풍나무가 많거나 활엽수림이 많고 걷기 편한 트레킹 구간이 있는 곳' '겨울은 상고대가 자주 피는 곳이거나 눈이 내렸을 때 보이는 풍경이 좋은 곳'을 기준으로 적은 것입니다.


100대 명산 인기 순위 TOP 30 (서울 '청계산'이 '16위'이지만 100대 명산이 아닌 관계로 제외함 / 2015년~2016년 기준)

지리산(4계절). 설악산(가을 단풍). 북한산(4계절). 덕유산(겨울 설경). 가야산(가을 단풍). 대둔산(가을 단풍). 소백산(겨울 설경). 계룡산(봄 벚꽃). 관악산(4계절). 속리산(가을 단풍). 황매산(봄 철쭉). 월출산(봄 벚꽃). 마이산(봄 벚꽃). 주왕산(가을 단풍). 도봉산(4계절). 치악산(겨울 설경). 월악산(여름 계곡). 오대산(가을 단풍). 태백산(겨울 설경). 강천산(가을 단풍). 두타산(여름 계곡). 내연산(여름 계곡). 가지산(가을 단풍). 대야산(여름 계곡). 신불산(가을 억새). 한라산(겨울 설경). 사량도지리산(봄. 여름). 청량산(가을 단풍). 팔공산(봄 벚꽃). 운악산(가을 단풍) 


답사는 최고봉인 정상 혹은 그 주변의 봉우리들을 다녀온 기준이며 중탈을 했거나 주변 관광 트레킹은 제외했습니다. 대중교통의 접근성이나 차량 회수 등의 문제로... 혹은 규모가 작은 산은 코스가 단순해서 반복 코스 산행이 많으며 다른 곳들은 대부분 다른 코스로 다녀왔습니다. 산림청에서 제공한 지도는 예전 지도라서 그아래 추가로 산행지도를 올렸습니다. 산 주변의 대략적인 형세를 보기 위한 참고용 지도이니 거리나 소요시간... 난이도 등... 자세한 정보는 더 검색을 해보시고 가시길 바랍니다. 국립공원에 발행한 지도는 용량이 '2500px' 이상입니다. 산의 면적이 넓어서 화면에 자세히 안 나오니 다운 받아서 확대해서 보면 거리나 난이도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도나 자료의 용량이 크다 보니 인터넷 환경이 느린 경우에 이미지가 잘 안 뜰 수도 있습니다. 이미지가 보이지 않을 경우에 이미지를 클릭하면 다시 사진이 보입니다. 산행기가 있는 곳은 '산행기'를 클릭하면 산행후기와 함께 더 많은 산행지도가 있는 곳으로 연결이 됩니다.



NO


이름


높이


행정 구역


관련 정보


산행기

001

 가리산 

1.050m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ㆍ화촌면, 춘천시 북산면ㆍ동면

 홍천 문화관광 

 

 002 

 가리왕산 

 1.561m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ㆍ정선읍 회동리, 평창군 진부면 

 정선 관광문화 

 

003

가야산

 1.432m 

 경상남도 합천군ㆍ거창군, 경상북도 성주군 

 가야산 국립공원 

가야산 등산지도 & GPX 트랙 다운로드 

004

가지산

1.240m

 울산광역시 울주군, 경상북도 청도군, 경상남도 밀양시 

 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 [억산-운문산-가지산] 비박산행기 

005

감악산

 674m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양주시 남면, 연천군 전곡읍 

 파주 문화관광 

 

006

강천산

  583m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순천 문화관광 

강천산 가을 단풍 사진 

007

계룡산

 846m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논산시 상월면, 계룡시 

 계룡산 국립공원 

 

008

계방산

1.579m

 강원도 홍천군 내면, 평창군 용편면ㆍ진부면 

 오대산 국립공원 

 

009

 공작산 

  887m 

 강원도 홍천군 동면, 화촌면 

 홍천 문화관광 

공작산 등산지도 & GPX 트랙 다운로드 

010

관악산

 632m

 서울특별시 관악구, 경기도 안양시, 과천시 

 과천 문화관광 

관악산 가을 단풍 사진 

011

구병산

 876m

 경상북도 상주신 화북면, 충청북도 보은군 마로면ㆍ속리산면 

 보은 관광문화 

충북알프스 [구병산] 비박산행기 

012

금산

 704m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이동면, 삼동면 

 한려해상 국립공원 

 

013

금수산

1.015m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단양군 적성면 

월악산 국립공원

금수산 산행기 

014

금오산

 976m

 경상북도 구미시 칠곡군 북삼읍, 김천시 남면 

 금오산 도립공원 

금오산 산행기 

015

금정산

 800m

 부산광역시 금정구ㆍ북구, 경상남도 양산시 

 금정 문화관광 

 

016

깃대봉

 360m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홍도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017

남산

 495m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내남면 

 경주 국립공원 

 

018

내연산

  711m 

 경상북도 포항시 송라면ㆍ청하면ㆍ죽장면, 영덕군 남정면 

 포항 문화관광 

내연산 비박산행 사진 

019

내장산

 763m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동, 순창군 쌍치면ㆍ복흥면 

내장산 국립공원

 

020

대둔산

 878m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ㆍ금산군 진산면,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 도립공원 

대둔산 가을 단풍 사진 

021

대암산

 1.312m 

 강원도 양구군 동면, 인제군 서화면 

양구 문화관광

 

022

대야산

 931m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속리산 국립공원 

 

023

덕숭산

 495m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산 도립공원 

 

024

덕유산

1.614m

 전라북도 무주군ㆍ장수군, 경상남도 거창군ㆍ함양군 

 덕유산 국립공원 

덕유산 겨울 눈꽃 산행기 

025

덕항산

1.072m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태백시 하사미동 

 대이리 군립공원 

 백두대간 덕항산 구간 산행기 

026

도락산

 965m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대강면 

월악산 국립공원

 

027

도봉산

 740m

 서울특별시 도봉구,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ㆍ양주시 장흥면 

 북한산 국립공원 

 

028

두륜산

 700m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ㆍ북일면ㆍ북평면ㆍ현산면 

두륜산 도립공원

 

029

두타산

1.357m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삼척시 미로면ㆍ하장면 

  동해 관광문화 

백두대간 두타산 구간 산행기

030

마니산

 472m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강화 문화관광 

 

031

 마이산 

 687m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ㆍ마령면 

 마이산 도립공원 

마이산 벚꽃 축제 산행기 

032

명성산

 922m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ㆍ이동면 

  포천 문화관광 

 

033

명지산

1.252m

 경기도 가평군 북면ㆍ하면 

 명지산 군립공원

 

034

모악산

 795m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전주시 완산구,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 도립공원

 

035

무등산

1.187m

 광주광역시 동구,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ㆍ화순군 이서면 

  무등산 국립공원 

무등산 겨울 눈꽃 산행기 

036

무학산

 761m

 경상남도 창원시 교방동ㆍ두척동ㆍ내서읍 

 창원 문화관광 

 

037

미륵산

 458m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ㆍ봉평동 

 한려해상 국립공원 

 

038

민주지산

1.241m

 충청북도 영동군, 전라북도 무주군, 경상북도 김천시 

  영동군 문화관광 

 

039

방장산

 733m

 전라남도 장성군,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ㆍ정읍시 입암면 

 장성 문화관광 

 

040

방태산

1.445m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ㆍ상남면, 홍천군 내면 

 인제 관광 블로그 

 방태산 [깃대봉-주억봉-구룡덕봉] 비박산행기 

041

백덕산

1.350m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횡성군 안흥면, 영월군 수주면 

 평창 문화관광 

 

042

백암산

 741m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잔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내장산 국립공원 

백암산 가을 단풍 사진 

043

백운산

1.222m

 전라남도 광양시 진상면ㆍ옥룡면ㆍ봉강면ㆍ다압면, 구례군 간전면 

 광양 문화관광 

 

044

백운산

 883m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평창군 미탄면 

 정선 관광문화 

 

045

백운산

 903m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포천 문화관광 

 

046

변산

 459m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상서면, 진서면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변산 [남여치-관음봉] 산행기 

047

북한산

 835m

 서울특별시 강북구ㆍ성북구ㆍ종로구ㆍ은평구, 경기도 고양시 

 북한산 국립공원 

 

048

비슬산

1.083m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ㆍ유가면ㆍ가창면,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비슬산 참꽃 문화제 

 비슬산 진달래꽃 축제 산행기 

049

삼악산

 655m

 강원도 춘천시 서면 

 춘천 문화관광 

 

050

서대산

  904m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ㆍ군북면,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금산 문화관광 

 

051

 선운산 

  334m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ㆍ심원면ㆍ해리면 

선운산 도립공원

 선운산 [청룡산-천마봉-수리봉-경수봉] 비박산행기 

 052 

설악산

1.708m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인제군 북면ㆍ인제읍, 양양군 서면 

 설악산 국립공원 

 백두대간 설악산 구간 산행기  

053

성인봉

 986m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서면ㆍ북면 

 울릉도 문화관광 

 

054

소백산

1.439m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소백산 국립공원 

 소백산 등산지도 & GPX 트랙 다운로드 

055

소요산

 587m

 경기도 동두천시, 포천시 신북면 

 동두천 문화관광 

 

056

속리산

 1.058m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속리산 국립공원 

 속리산 [세조길-문장대-천왕봉] 산행기 

057

신불산

1.159m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ㆍ상북면 

 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 [영축산-신불산-간월산] 비박산행기 

058

연화산

 524m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ㆍ영현면 

 연화산 도립공원 

 

059

오대산

1.565m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홍천군 내면, 강릉시 연곡면 

 오대산 국립공원 

 오대산 비로봉 산행기 

060

오봉산

 777m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화천군 간동면 

 춘천 문화관광 

 

061

용문산

1.157m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ㆍ옥천면 

 양평 문화관광 

 용문산 [백운봉-용문사] 산행기 

062

용화산

 877m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ㆍ하남면, 춘천시 사북면 

 춘천 문화관광 

 

063

운문산

1.195m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 [억산-운문산-가지산] 비박산행기 

064

운악산

 934m

 경기도 가평군 하면, 포천시 화현면 

 가평 문화관광 

 운악산 등산지도 & GPX 트랙 다운로드 

065

운장산

1.125m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부귀면, 정천면, 완주군 동상면 

 진안 문화관광 

 

066

월악산

1.095m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덕산면 

 월악산 국립공원 

 월악산 [덕주사-영봉-중봉-보덕암] 산행기 

067

월출산

 810m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ㆍ군서면ㆍ학산면,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 국립공원 

 월출산 [산성대-천황봉] 비박산행 사진 

068

유명산

 864m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양평군 옥천면 

 가평 문화관광 

 

069

응봉산

 999m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ㆍ원덕읍,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삼척 문화관광 

 응봉산 덕풍계곡 등산지도 & GPX 트랙 다운로드 

070

장안산

 1.237m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계남면 

 장수 문화관광 

호남정맥 [영취산-장안산-수분재] 산행기 

071

재약산

 1.119m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ㆍ산내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영남알프스 

 

072

적상산

 1.030m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덕유산 국립공원 

 

073

점봉산

1.426m

 강원도 양양군 서면, 인제군 인제읍ㆍ기린면 

 설악산 국립공원 

백두대간 점봉산 구간 산행기 

074

조계산

887m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ㆍ송광면 

 조계산 도립공원 

 

075

주왕산

722m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ㆍ부동면, 영덕군 지품면ㆍ달산면 

 주왕산 국립공원 

 

076

주흘산

1.108m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문경새재 도립공원 

 

077

지리산

1.915m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산청군ㆍ함양군 

 지리산 국립공원 

지리산 종주 산행기 

078

지리산

399m

 경상남도 통영시 사량면 

 통영 문화관광 

사량도 [지리망산-칠현산] 비박산행기 

079

천관산

724m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대덕읍 

 천관산 도립공원 

 

080

천마산

810m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오남읍 

 천마산 군립공원 

 

081

천성산

 920m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상북면 

 양산 문화관광 

천성산 가을 풍경 사진 

082

천태산

715m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영동군 문화관광 

 

083

청량산

869m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ㆍ재산면, 안동시 도산면ㆍ예안면 

 청량산 도립공원 

 

084

추월산

731m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담양 문화관광 

 

085

축령산

 887m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가평군 상면 

 가평 문화관광 

 

086

치악산

1.282m

 강원도 원주시, 횡성군, 영월군 

 치악산 국립공원 

 치악산 등산지도 & GPX 트랙 다운로드 

087

칠갑산

559m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정산면, 장평면 

 칠갑산 도립공원 

 

088

태백산

1.566m

 강원도 태백시,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태백산 국립공원 

 

089

태화산

1.027m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영월 문화관광 

 

090

팔공산

1.192m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영천시 신녕면,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도립공원 

 

091

 팔봉산 

 328m 

 강원도 홍천군 서면 

 팔봉산 관광지 

 

092

팔영산

 606m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영남면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093

한라산

1.947m

 제주특별자치도 

 한라산 국립공원 

 

094

화악산

1.468m

 경기도 가평군 북면,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화천 문화관광 

 

095

화왕산

757m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고암면 

 화왕산 모바일 홈 

화왕산 억새 산행 사진 

096

황매산

1.113m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ㆍ가회면, 산청군 차황면 

 황매산 철쭉제 

황매산 철쭉 축제 사진 

097

황석산

1.192m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서하면, 서상면 

 함양 문화관광 

 기금거황 [기백산-금원산-거망산-황석산] 비박산행 

098

황악산

1.114m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김천 문화관광 

 

099

황장산

1.078m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월악산 국립공원 

백두대간 황장산 구간 산행기 

100

 희양산 

996m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괴산 문화관광 

 


가리산 [강원-홍천]

강원도에서 진달래가 가장 많이 피는 산으로 알려져 있고, 참나무 중심의 울창한 산림과 부드러운 산줄기 등 우리나라 산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홍천강의 발원지 및 소양강의 수원(水源)을 이루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암봉이 솟아있는 정상에서 소양호를 조망할 수 있고, 야생화가 많이 서식하여 자연학습 관찰에도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음 [답사 2회 : 정상부를 제외하고는 조망이 거의 없음. 대부분 평범한 육산이지만 정상 부근에 암릉 구간(밧줄)이 있음. 휴양림 시설이 좋음. 가을 단풍 추천]





가리왕산 [강원-정선]

가리왕산 8경이 전해질 만큼 경관이 수려하고, 활엽수 극상림이 분포해 있으며, 전국적인 산나물 자생지로 유명. 특히 백두대간의 중심으로 주목군락지가 있어 산림유전자원보호림과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는 등 경관·생태적으로 가치가 큰 점에서 선정. 동강(東江)에 흘러드는 오대천과 조양강의 발원지이며 석회암 절리동굴인 얼음동굴이 유명. 산의 이름은 그 모습이 큰 가리(벼나 나무를 쌓은 더미)같다고 하여 유래 [답사 2회 : 현재 평창올림픽 준비로 일부 구간 통제.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많고 원시림이 잘 보존된 곳이었으나 올림픽 준비로 많이 훼손되어서 문제가 됨. 정상 부근 조망이 좋음. 어느 코스로 올라가도 난이도가 있음. 겨울 설경 & 여름 계곡(장전리 이끼계곡) 추천]





가야산 [경남-합천]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12대 명산 또는 8경에 속하는 산으로서 '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특히 '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국보 팔만대장경과 해인사가 있는 등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점을 고려하여 선정. `가야국'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지며, `택리지'에서는 가야산의 기암괴봉을 불꽃에 비유하여 석화성(石火星)이라 하였음. 산위에서의 조망이 좋고, 특히 용문폭포와 홍류동 계곡 등이 유명 [답사 4회 : 4계절 아름다운 곳. 운해가 자주 보이고 조망이 뛰어남. 산행은 '만물상 능선' 추천. 트레킹은 '소리길(홍류동계곡)' 추천. 가을 단풍 추천]





가지산 [울산]

백두대간 남단의 중심으로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음. 수량이 풍부한 폭포와 아름다운 소(沼)가 많고, 천연기념물 224호인 얼음골과 도의국사 사리탑인 "8각운당형부도(보물 제369호)"가 보존되어 있는 석남사(石南寺)가 소재하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능선 곳곳에 바위봉과 억새밭이 어우러져 있고 전망이 좋으며 자연휴양림이 있음. 밀양강의 지류인 산내천과 무적천의 발원지이다 [답사 3회 : 4계절 아름다운 곳. 겨울 설경 추천]





감악산 [경기-파주]

예로부터 경기 5악의 하나로서 폭포·계곡·암벽 등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임진강·개성 송악산 등의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수량이 풍부한 운계폭포가 있고, 정상에는 글자가 모두 마멸되어 판독이 불가능한 비뜰대왕비(파주군 향토유적 제8호)가 있는데 `설인귀(薛人貴)'설과 `진흥왕 순수비'설이 나뉘어 속전되고 있음. 임꺽정이 관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숨어 지냈다는 장군봉 아래 임꺽정 굴이 있음 [답사 1회 : 최근 구름다리 개통으로 많이 찾고 있음. 한 번 가봐서 특별한 기억 없음]





강천산 [전북-순창]

군립공원(1981년 지정)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강천계곡 등 경관이 수려하고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신라 진성여왕때(887년) 도선국사가 개창한 강천사(剛泉寺)가 있으며, 산 이름도 강천사(剛泉寺)에서 유래.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성산성(金城山城)이 유명 [답사 3회 : 가을에만 가봐서 다른 계절에는 어떤지 모르겠음. 가을 단풍 추천]





계룡산 [충남-공주]

예로부터 신라 5악의 하나인 서악(西岳)으로 지칭되었고, 조선시대에는 3악 중 중악(中岳)으로 불리운 산으로서 국립공원으로 지정(1968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산 능선이 마치 닭의 벼슬을 쓴 용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계룡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정감록(鄭鑑錄)""에 언급된 십승지지(十勝之地)중 하나임. 신라 성덕왕 2년(724년) 회의화상이 창건한 동학사(東鶴寺)와 백제 구이신왕(420년)때 고구려의 아도화상에 의하여 창건된 갑사(甲寺)등이 유명 [답사 3회 : 4계절 아름다운 곳. 최고봉은 '천황봉'이나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관음봉'이 정상 역할하고 있음. 봄 벚꽃(동학사) & 겨울 설경 추천]





계방산 [강원-평창]

남한에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에 이어 다섯 번째로 높은 산으로서 산약초·야생화 등이 많이 서식하고, 희귀수목인 주목·철쭉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백두대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겨울철 설경이 백미. 내린천(內麟川)으로 흐르는 계방천의 발원지임 [답사 4회 : 난이도(운두령 출발)가 쉽고 정상 능선에서의 조망이 좋은 곳. 주목군락지 설경이 좋고 '노동계곡'으로 하산 시에 만나는 낙엽송 군락지가 아름다움. 겨울 설경 & 여름 계곡(노동계곡) 추천]





공작산 [강원-홍천]

울창한 산림과 수타계곡 등 경관이 수려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산의 형세가 마치 한 마리의 공작이 날개를 펼친 듯하다는데서 산 이름이 유래. 보물 제745호인 월인석보 제17권과 18권이 보존되어 있는 수타사(壽陀寺)와 수타사에서 노천리에 이르는 20리 계곡인 수타계곡이 특히 유명 [답사 2회 : 대부분 조망도 거의 없음. 굳이 가야 한다면 여름 계곡(수타사계곡) 추천]





관악산 [서울]

예로부터 경기 5악의 하나로서 경관이 수려하며, 도심지 가까이 위치한 도시자연공원(1968년 지정)으로 수도권 주민들의 휴식처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주봉은 연주대(戀主臺)로서 정상에 기상 레이더 시설이 있음. 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하고 조선 태조가 중수(1392년)한 연주암과 약사여래입상이 유명 [답사 100회 이상 : 동네산이라도 멋진 곳]





구병산 [충북-보은]

주능선의 북쪽 지역이 속리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고 서원계곡(書院溪谷) 등 경관이 수려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웅장한 아홉 개의 바위봉이 병풍처럼 연이어 솟아 예로부터 구봉산이라고 불리어 왔으며, 정상에서의 조망이 좋음. 예로부터 보은 지방에서는 속리산 천황봉은 지아비 산, 구병산은 지어미 산, 금적산은 아들 산이라 하여 이들을 `삼산(三山)'이라 일컬어왔음 [답사 3회 : 조망이 좋은 곳. 정상 부근 암릉이 많은 산. 위험(암릉)구간 더러 있음. 밖에서(속리산휴게소) 보는 풍경이 더 멋있음. 가을 단풍 추천]





금산 [경남-남해]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 공원으로 경관이 수려하고, 바다와 섬, 일출을 조망할 수 있으며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1974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본래 보광산이라고 불리다가 조선 태조와 관련된 전설에 따라 금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함. 조선 태조가 기도했다는 이씨 기단을 비롯하여, 사자암, 촉대봉, 향로봉 등 38경이 유명하며, 정상에는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소재 [답사 2회 : 정상 부근 암릉이 아름다운 곳. 남해 바다 조망이 좋은 곳. 정상 부근까지 차가 올라감. 계절 관계 없이 날씨 좋은 날 추천]





금수산 [충북-제천]

월악산 국립공원 북단에 위치하고 울창한 소나무 숲과 맑고 깨끗한 계류 등 경관이 뛰어난 점을 고려하여 선정. 봄철의 철쭉과 가을철의 단풍이 특히 유명하고 능강계곡과 얼음골이 있음. 정상에서 소백산의 웅장한 산줄기와 충주호를 조망할 수 있음 [답사 4회 : 객관적으로 그럭저럭 좋은 곳.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산. '미인봉' 코스와 '소용아능' 코스 추천. 날씨가 좋은 날은 주위 풍경(청풍호...등)이 아름다운 곳. 가을 단풍 & 여름 계곡(능강계곡) 추천]





금오산 [경북-구미]

기암절벽과 울창한 산림이 조화되어 경관이 수려하며, 문화유산이 많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70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높이 38m의 명금폭포가 있으며, 정상부근에는 자연암벽을 이용해 축성한 길이 2㎞의 금오산성이 있음. 해운사, 약사암 등의 고찰과 금오산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호), 선봉사대각국사비(보물 제251호),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5호) 등이 유명 [답사 2회 : 볼거리가 많은 산. 정상 조망이 좋고 '칼다봉' 코스에서의 조망이 좋음. 가을 단풍 & 겨울 설경 추천]





금정산 [부산]

산림이 울창하고 산세가 비교적 웅장하며 도심지 가까이 위치한 시민들의 휴식처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역사적으로 나라를 지키는 호국의 산으로서 호국사찰 범어사와 우리나라 5대 산성의 하나인 금정산성이 있음. 낙동강 지류와 수영강의 분수계(分水界)를 이루고, 금강공원 및 성지곡공원 등이 있음 [답사 1회 : 비오던 날 한 번 가봐서 잘 모름. 봄 철쭉이 좋다고 함]





깃대봉 [전남-홍도]

덩굴사철, 식나무 및 동백림 등이 자생하는 등 생태적 가치가 커 섬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1965년)되어 있으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1981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이름 그대로 깃대처럼 생긴 암봉이며, 홍도의 최고봉임. 깃대봉은 독립문, 석화굴 등 해안경관과 조화를 이뤄 홍도의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음 [답사 1회 : 산행보다는 관광으로 찾아야 할 곳. 자세히 보고 왔으나 그저 관광지의 기억으로 남은 곳. 대부분 '흑산도'를 경유한 관광과 함께 함. 봄 동백꽃이 이쁘다고 함. 섬이니 꼭 날씨 좋은 날 가는 것을 추천]





남산 [경북-경주]

길이 약 8km, 폭 약 4㎞의 산줄기 안에 불상 80여체, 탑 60여기, 절터 110여 개소가 산재하여 경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등 신라시대 역사 유물·유적의 보고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경주 남산 불적지'로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칠불암 마애석불 등이 유명. 동쪽에는 남산 산성 등이 있음 [답사 2회 : 볼거리가 많은 곳. 산행보다는 트레킹에 가까움. 봄 벚꽃 추천]





내연산 [경북-포항]

남쪽의 천령산 줄기와 마주하면서 그 사이에 험준한 협곡을 형성하고 있는 청하골이 유명. 원진국사사리탑(보물 제430호)과 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가 보존된 보경사(寶鏡寺) 등이 있음 [답사 2회 : 여름에 꼭 가봐야 할 곳. 숲이 울창하고 암릉과 어우러진 계곡미가 뛰어난 곳. '관음폭포'의 풍경은 압권. 여름 계곡(12폭포) 추천] 





내장산 [전북-정읍]

기암괴석과 울창한 산림, 맑은 계류가 어울어진 호남 5대 명산의 하나로 국립공원으로 지정(1971년)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내장사를 중심으로 서래봉에서 불출봉, 연지봉, 까치봉, 신선봉, 장군봉에 이르기까지 산줄기가 말발굽처럼 둘러쳐져 마치 철옹성 같은 특이지형을 이룸. 내장사(內藏寺) 부속암자인 원적암 일대에 있는 비자림(천연기념물 제153호)이 특히 유명 [답사 2회 : 4계절 아름다운 곳. 가을 단풍 관광지로 더 알려진 곳. 산 중턱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 있음. 산 자체의 풍경도 좋음. 가을 단풍 & 겨울 설경 추천]





대둔산 [전북-완주]

정상인 마천대를 비롯하여 사방으로 뻗은 바위능선의 기암괴석과 수목이 어우러져 경관이 뛰어나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80년)된 점 등을 감안하여 선정. 마천대에서 낙조대에 이르는 바위능선과 일몰 광경이 뛰어나며, 임금바위·장군봉·동심바위·신선바위 등이 있음.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잇는 금강구름다리와 태고사(太古寺)가 유명 [답사 3회 : 정상 부근까지 이어지는 케이블카가 있어서 관광지로 더 알려진 곳. 산의 규모는 작지만 암릉이 화려하고 풍경이 뛰어남. 가을 단풍 & 겨울 설경 추천]





대암산 [강원-양구]

휴전선이 가까운 지역으로 각종 희귀 생물과 원시림에 가까운 숲이 잘 보존되어 천연 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246호)으로 지정(1973년) 관리되는 등 우리나라 최대 희귀 생물자원의 보고인 점 등을 감안하여 선정. 대암산 정상부에 있는 약 9,000여 평이 넘는 풀밭 같은 넓은 초원에 큰 용늪과 작은 용늪의 고층습지가 있음. 그 주위가 마치 화채(punch) 그릇(bowl)같아 펀치볼로 불리우며 해안분지(亥安盆地)가 유명 [답사 1회 : 입산 허가 후 산행이 가능한 곳. 식물에 큰 관심이 없다면 큰 볼거리는 없음. 정상 부근에서만 조망이 가능함. 입산 허가받는 날 추천]





대야산 [경북-문경]

기암괴석과 폭포·소(沼)가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속리산 국립공원구역에 포함되어 있는 점 등을 감안하여 선정. 용추폭포와 촛대바위가 있는 선유동계곡 및 `월영대'가 유명 [답사 3회 : 산세가 암릉으로 이뤄져 있어서 험하면서도 주변 풍광이 좋음. 최근 정상 부근에 안전시설(계단)이 설치되어서 정규탐방로에는 위험 구간 없음. 백두대간 마루금은 위험구간 있음. '중대봉' 코스는 슬랩 구간도 있고 암릉구간이라 스릴도 있음. 여름 계곡(용추계곡) 추천]





덕숭산 [충남-예산]

지역 주민들이 소금강이라고 할 만큼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경관이 수려하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73년)되어 있는 점 등을 감안하여 선정. 백제 제29대 법왕 원년(599년) 지명법사가 창건한 수덕사(修德寺), 보물 제355호인 마애불과 덕산온천이 유명 [답사 1회 : 동네 야산 같음. 제대로 된 등산지도 찾기도 어려움. '수덕사' 입장료 있음]





덕유산 [전북-무주]

향적봉에서 남덕유까지 17km의 장대한 산줄기를 이루고 있으며, 금강과 낙동강의 수원(水源)이고 국립공원으로 지정(1975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덕유산 북쪽으로 흘러내리는 30여km의 무주구천동계곡(茂朱九千洞溪谷)과 자연휴양림, 신라 흥덕왕 5년(830년) 무염국사가 창건한 백련사(白蓮社) 등이 유명 [답사 12회 : 4계절 아름다운 곳.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고 접근이 쉬워서 겨울에 관광으로 많이 찾음. 정상 부근(설천봉)까지 '무주리조트'에서 운영하는 곤도라가 운행함. 요금 비쌈. 겨울 설경 & 여름 원추리 & 여름 계곡(구천동계곡) 추천]





덕항산 [강원-삼척]

전형적인 경동지괴(傾動地塊) 지형으로 기암절벽과 초원이 어우러져 있으며 갈매굴, 제암풍혈, 양터목세굴, 덕발세굴, 큰재세굴 등 석회동굴이 많이 소재하고, 대이동굴 군립공원(1996년 지정) 구역내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약 4∼5억년 전에 이루어진 길이 6.9㎞, 천장 높이 30m에 이르는 동양 최대의 동굴인 환선굴(幻仙窟 : 천연기념물 제178호)이 유명 [답사 3회 : '대이리 군립공원'에서 오르는 코스는 난이도가 조금 있음. '장암재'에서 '환선굴'로 이어진 코스가 기암괴석이 화려함. '환선굴'과 '대금굴' 관광 추천. 여름 관광(환선굴.대금굴) 추천]





도락산 [충북-단양]

소백산과 월악산 중간에 위치하며, 단양 8경인 하선암, 중선암과 사인암 등이 산재해 있는 바위산으로 경관이 수려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남한강 지류인 단양천 10여km 구간에 있는 하선암(下仙岩)과 쌍룡폭포·옥렴대·명경대 등 웅장한 바위가 있는 중선암(中仙岩), 경천벽, 와룡암, 일사대, 명경담 등이 있는 상선암(上仙岩)이 특히 유명 [답사 2회 : 암릉으로 이뤄진 곳이나 특별히 위험한 곳 없음. 정상부 조망이 좋음. 주변에 큰 계곡이 많아서 여름 산행도 좋음. 가을 단풍 추천]





도봉산 [서울]

최고봉인 자운봉을 중심으로 만장봉, 선인봉, 원도봉계곡, 용어천계곡, 송추계곡 등 경관이 수려하고 국립공원으로 지정(1983년)되어 있으며, 수도권 시민의 휴식처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암벽등산에 최적지이며, 회룡사(回龍寺), 망월사(望月寺), 천축사(天竺寺), 보문사(普門寺) 등이 유명 [답사 8회 : 코스가 다양함. 암릉 코스가 많음. 4계절 추천]





두륜산 [전남-해남]

한반도의 최남단 해남반도에 솟아 있는 산으로서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있으며, 다도해를 조망하기에 적합하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72년)된 점 등을 감안하여 선정. 봄의 춘백,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동백 등으로 유명하며 유자(柚子), 차(茶)의 산지로 알려져 있음. 보물 제320호인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는 대흥사(大興寺)가 있음 [답사 2회 : 예전에는 암릉 구간이 많아서 등로가 까다로웠으나 최근 정상부에 안전시설(계단 등)이 설치되어서 좋아짐. 시야가 좋은 날 선택해서 가면 주위 풍경이 좋은 곳. 가을 단풍 추천]





두타산 [강원-동해]

무릉계곡 등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삼화사(三和寺), 관음암(觀音庵), 두타산성(頭陀山城)이 있음. 바위에 50여 개의 크고 작은 구멍이 패여 산 이름이 붙여졌으며, 예로부터 기우제를 지내는 등 토속신앙의 기도처인 쉰움산(五十井山)이 유명 [답사 4회 : '두타산성' 코스가 어렵지만 풍광이 가장 좋음. '신선봉(문간재)'과 '하늘문'에서 '관음암'으로 가는 코스의 풍경이 좋음. 유명한 '산성12폭'과 '쌍폭포'와 '용추폭포'도 있음. 산세가 커서 한 번에 다 보기는 어려움. 4계절 모두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는 곳이나...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라 위험]





마니산 [인천-강화]

단군 시조의 전설이 간직된 산으로 역사·문화적 가치 등을 고려하여 선정. 사적 제136호인 참성단(塹星壇), 함허동천, 사적 제130호인 삼랑산성이 있음. 또한 많은 보물을 보존하고 있는 정수사(淨水寺) 및 전등사(傳燈寺)등이 있으며, 성화를 채화하는 장소이기도 함 [답사 3회 : 정상부에 암릉 구간이 많아서 재밌는 곳. 바다가 보이는 곳이니 날씨가 좋은 날 추천]





마이산 [전북-진안]

특이한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섬진강과 금강(錦江) 발원지이고 도립공원(1979년)으로 지정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중생대 백악기에 습곡 운동을 받아 융기된 역암이 침식작용에 의하여 형성된 산으로 산의 형상이 마치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으로 불려짐. 암마이산 남쪽 절벽 밑에 있는 80여 개의 크고 작은 돌탑이 있는 탑사(塔寺)와 금당사(金塘寺)가 유명 [답사 3회 : 최근에 최고봉인 '암마이봉' 개방. '탑사' '역고드름' '벚꽃 10리' 길이 유명. 난이도가 쉽고 볼거리가 많은 곳. 겨울 동절기에는 암마이봉 정상 입산금지. 봄 벚꽃 & 겨울 설경 추천]





명성산 [경기-포천]

도평천(都坪川), 영평천(永平川), 한탄강의 수계를 이루며, 산세가 가파르고 곳곳에 바위가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산 북쪽으로 삼부연폭포와 남쪽으로 산정호수를 끼고 있음. 전설에 의하면 왕건(王建)에게 쫓기던 궁예(弓裔)가 피살되었던 곳으로 유명 [답사 3회 : 가을 억새가 유명한 곳이나 겨울 설경도 좋음. '산정호수'가 옆에 자리하고 있어 관광으로 함께 가기 좋은 곳. 능선에서의 조망이 좋음. 등로도 좋고 난이도도 쉬운 편. 가을 억새 추천]





명지산 [경기-가평]

경기도 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으로 경기도의 최고봉인 화악산(1,468m)과 가평천을 사이에 하고 있으며, 강씨봉, 귀목봉, 청계산, 우목봉 등 산세가 웅장하고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점 등을 감안하여 선정. 20여km를 흐르는 산 동쪽의 가평천 계곡과 익근리 계곡의 명지폭포가 유명. 명지산 일대의 산과 계곡들은 경기도 내에서는 첫째가는 심산유곡으로 알려져 있음 [답사 2회 : 첫 번째 방문은 '귀목봉'과 연계해서 가느라 힘들어서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음. 두 번째 방문은 '익근리계곡'에서 올라가느라 별 볼 것이 없었음. 결론은... 그럭저럭 그런 산. 정상부에서의 조망은 있는 편. 여름 계곡(익근리계곡) & 겨울 설경 추천]





모악산 [전북-김제]

진달래와 철쭉이 유명한 호남 4경의 하나이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71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신라 말에 견훤이 이 곳을 근거로 후백제를 일으켰다고 전해짐. 국보 제62호인 미륵전을 비롯하여 대적광전(보물 제467호)·혜덕왕사응탑비(보물 제24호)·5층 석탑(보물 제27호)등 많은 문화재가 있는 금산사(金山寺)가 있음. 미륵전에 있는 높이 11.82m나 되는 미륵불이 유명 [답사 1회 : 정상에 방속국 중계탑과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음. 평야지대에 자리한 산이라 그런지 주위 조망은 그다지 볼 것이 없음. 봄 벚꽃(금산사) 추천]





무등산 [광주]

최고봉인 천왕봉 가까이에는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가 발달하여 기암괴석의 경치가 뛰어나고, 도시민의 휴식처이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72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보물 제131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등이 있는 증심사(證心寺)와 원효사(元曉寺)가 유명 [답사 4회 : 광주시민에게는 동네산이지만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멋진 곳. 정상(천왕봉.지왕봉.인왕봉)에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어서 '서석대'가 정상을 대신함. 1년 2~3차례 정상(천왕봉) 개방함. 최근 군부대 이전 계획 중이라고 함. 조망이 좋고 4계절 아름다운 곳. 겨울 설경 & 가을 억새 추천]





무학산 [경남-창원]

도시민의 휴식처로서 경관이 좋은 아기자기한 능선과 다도해를 바라다보는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정상 북서쪽에 있는 시루봉 일대의 바위는 좋은 암벽등반 훈련장임. 예전부터 양조업이 성할 정도로 수질이 좋음 서원골 입구에 최치원의 제자들이 세운 관해정(觀海亭)이 있고 부근 원각사, 백운사 등이 유명 [답사 1회 : 동네산 같은 분위기. 봄 진달래가 좋다고 함]





미륵산 [경남-통영]

충무시와 연육교로 이어지는 미륵도(彌勒島)의 복판에 솟은 산으로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등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지형도에는 용화산(龍華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석조여래상(경남유형문화재 43호)과 고려 중기의 작품인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등이 보존되어 있는 용화사(龍華寺)가 있음. 도솔선사(兜率禪師)가 창건한 도솔암, 관음사(觀音寺), 봉수대터 등이 유명 [답사 2회 : 정상 부근까지 케이블카가 올라가서 관광지로 더 적합한 곳. 바다가 조망되는 곳이니 날씨가 좋은 날 가는 것을 추천]





민주지산 [충북-영동]

1000m 이상의 고산준봉을 거느리고 울창한 산림과 바위가 어우러져 있으며, 국내 최대 원시림 계곡인 물한계곡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물이 차다는 한천마을 상류부터 약 20㎞를 흐르는 깊은 계곡으로, 원시림 등이 잘 보존된 손꼽히는 생태관광지인 물한계곡(勿閑溪谷)이 특히 유명. 정상 아래에는 삼두마애불상이 있음. 충북, 전북, 경북의 경계인 삼도봉과 연접 [답사 3회 : 백두대간과 근접한 산맥이라 비가 많이 오고 눈이 많이 내리는 곳. 정상부(각호산.석기봉.삼도봉) 조망이 좋음. 겨울 설경 & 여름 계곡(물한계곡) 추천]





방장산 [전북-고창]

옛부터 지리산, 무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으로 불려져 왔으며, 전북과 전남을 양분하는 산으로서 산세가 웅장하고 자연휴양림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옛 이름은 방등산으로 백제가요 중 `방등산가'의 방등산이 바로 방장산임. 정상에서 멀리 서해바다와 동쪽으로 무등산이 보임 [답사 1회 : 고도에 비해 오르는 등로가 쉬운 편. 능선에서의 조망이 좋음. 가을 단풍 추천]





방태산 [강원-인제]

가칠봉(1,241m), 응복산(1,156m), 구룡덕봉(1,388m), 주걱봉(1,444m) 등 고산준봉을 거느리고 있으며 한국에서 가장 큰 자연림이라고 할 정도로 나무들이 울창하고, 희귀 식물과 희귀 어종이 많은 생태적 특성 등을 고려하여 선정. 정감록에는 난을 피해 숨을만한 피난처로 기록되어 있음. 자연휴양림이 있으며, 높이 10m의 이폭포와 3m의 저폭포가 있는 적가리골 및 방동약수, 개인약수가 있고, 아침가리골(조경동 계곡)과 명지가리골, 연가리골 등이 유명 [답사 9회 : 4계절 모두 가봤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산. 봄에는 '깃대봉'에서 '주억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야생화가 많고... 여름에는 유명한 계곡(적가리골.아침가리골.연가리골...등)이 많아서 선택의 폭이 넓고... 가을 단풍으로도 아주 유명한 곳이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서 설경이 아름다운 곳. 각 봉우리에서의 조망이 좋고 특히 '구룡덕봉'에서의 조망이 뛰어남. 휴앙림에서 정상 주억봉으로 가는 난이도는 어려운 편. 전체적으로 암릉 구간 없는 평범한 육산이지만 겨울에는 길 찾기 힘들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라 위험한 곳도 더러 있음. 겨울 설경 & 여름 계곡(아침가리골) & 가을 단풍(휴양림 방향.이단폭포) 추천]





백덕산 [강원-평창]

사자산(1120m), 사갓봉(1020m), 솟때봉(884m) 등이 솟아 있어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 깊은 등 경관이 좋으며, 평창강(平昌江)과 주천강(酒泉江)의 수계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신라 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법흥사(法興寺)와 경내에 있는 보물 제613호로 지정된 징효대사보인탑이 유명 [답사 1회 : 눈이 많이 내릴 때 가서 설경은 꽤 아름다웠으나 특별한 기억은 없음. 정상으로 올라가는 코스(관음사)가 전체적으로 주위 조망이 없음. 정상부 조망은 좋음. 5대 '적멸보궁'인 '법흥사' 관광과 연계해서 가면 좋을 듯함. 겨울 설경 추천]





백암산 [전북-순창]

봄이면 백양, 가을이면 내장이라 하듯이 경관이 수려하고 천연기념물인 비자나무와 굴거리나무가 분포하고 있으며, 내장산 국립공원 구역에 포함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학바위, 백양산 12경, 영천굴 등이 있음. 소요대사부도, 극락보전, 사천왕문을 포함하여 청류암의 관음전, 경관이 아름다운 쌍계루 등 수많은 문화유산들을 보존하고 있는 백양사(白羊寺)가 유명 [답사 1회 : 기대 이상으로 풍경이 좋았던 곳. 능선에서의 조망이 좋음. '백양사' '쌍계루'의 가을 단풍 풍경은 꼭 봐야 함. 가을 단풍 & 겨울 설경 추천]





백운산 [전남-광양]

주봉을 중심으로 하여 또아리봉과 도솔봉, 매봉, 억불봉 등 산세가 웅장하며 경관이 수려하고 억새풀과 철쭉 군락, 온·한대 900종의 식물이 서식하는 등 경관·생태적 특징을 고려하여 선정. 자연휴양림이 있으며, 백운사(白雲寺), 성불사(成佛寺) 등이 유명 [답사 1회 : 능선과 각 봉우리에서의 조망이 뛰어난 곳. 주변 산맥(호남정맥)이 웅장해서 겨울에 가봤으나 다시 한번 가야 한다면 겨울에 가보고 싶은 곳. '억불봉'과 '노랭이봉'에서의 조망이 좋음. 봄에는 '광양 매화마을'이 있는 '쫓비산'과 연계해서 가도 좋을 듯함. 겨울 설경 추천]





백운산 [강원-정선]

동강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조망이 좋으며 생태계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흰구름이 늘 끼어 있는데서 산 이름이 유래, 오대산에서 발원하는 오대천과 조양강(朝陽江)을 모아 남한강으로 흐르는 동강 및 천연기념물 제260호로 지정(1979년)된 백룡동굴(白龍洞窟)이 유명 [답사 1회 : 그럭저럭 그런 산. 산 아래에서 보기에는 풍광이 좋지만 올라가서 보면 주위 조망도 거의 없고 특별함도 없음. 암릉(밧줄)구간도 더러 있음]





백운산 [경기-포천]

수려한 계곡미를 가지고 있으며 광덕산, 국망봉, 박달봉 등과 같은 높은 봉우리들과 무리를 이뤄 계곡·단애(斷崖) 등 독특한 경관을 가지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백운동 계곡 및 신라 말 도선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흥룡사(興龍寺)가 유명 [답사 4회 : 백운산 하나로만 본다면 그다지 특별함은 없음. 여름 계곡(백운계곡.도마치계곡) 추천]





변산 [전북-부안]

울창한 산과 계곡, 모래해안과 암석해안 및 사찰 등이 어울려 뛰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국립공원으로 지정(1968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산이면서 바다와 직접 닿아 있는 특징이 있음. 직소폭포, 가마소, 봉래구곡, 채석강, 적벽강 및 내소사, 개암사 등 사찰과 호랑가시나무, 꽝꽝나무 등 희귀동·식물이 서식 [답사 의상봉(1회) 내변산(5회) :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최고봉은 '의상봉'이나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어서 무허가 산행해야 함. 그래서 100대 명산으로 인정하는 봉우리는 '내변산'의 '관음봉'임. 내변산 코스가 워낙 다양해서 한 번에 다 보기는 어려움. 주로 '직소폭포'와 '내소사'를 연계하는 코스를 이용함. 4계절 아름다운 곳이나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곳. 가을 단풍(내소사.직소폭포) 추천]





북한산 [서울]

최고봉인 백운대를 위시하여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 등 경관이 수려하고 도시민들의 휴식처이며 국립공원으로 지정(1983년)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북한산성, 우이동계곡, 정릉계곡, 세검정계곡 등이 유명.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선사(道詵寺), 태고사(太古寺), 화계사(華溪寺), 문수사(文殊寺), 진관사(津寬寺) 등 수많은 고찰이 있음 [답사 약 40회 이상 : 서울을 감싸고 있는 근교산이기는 하지만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곳. 4계절 모두 추천]





비슬산 [대구]

봄에는 진달래, 가을에는 억새 등 경관이 아름다우며, 조망이 좋고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북쪽의 팔공산과 함께 대구분지를 형성하며 낙동강을 끼고 있음. 고려말 공민왕 7년(1358년) 진보법사가 창건한 소재사(消災寺) 등이 유명 [답사 2회 : 최고봉인 '천왕봉' 일대의 억새와 '대견봉' 부근의 진달래 군락지가 유명한 곳. 매년 진달래 축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정상부와 능선에서의 조망이 좋으나 주변 산세는 화려하지 않음. 봄 진달래 추천]





삼악산 [강원-춘천]

고고시대에 형성된 등선 계곡과 맥국시대의 산성터가 있는 유서 깊은 산으로 기암괴석의 경관이 아름답고, 의암호와 북한강을 굽어보는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남쪽 골짜기 초입의 협곡과 등선폭포(登仙瀑布)가 특히 유명하고, 흥국사(興國寺), 금선사(金仙寺), 상원사(上院寺) 등 7개 사찰이 있음 [답사 4회 : 대부분의 등로가 암릉으로 이뤄져 있어서 재미있는 곳. 정상으로 오르는 등로(의암댐 코스)가 중간중간 조망이 있음. 한 번을 간다면 '등선봉'과 연계해서 가는 코스 추천. '등선폭포'는 관광으로 가도 됨]





서대산 [충남-금산]

충청남도에서는 제일 높은 산으로 곳곳에 기암괴석과 바위 절벽이 있어 중부의 금강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경관이 아름다우며, 산정에서의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용굴, 사자굴, 견우장년대, 직녀탄금대, 북두칠성바위 등이 유명 [답사 1회 : 그럭저럭 그런 산. '드림리조트' 주변 시설이 휴양림 분위기처럼 정비가 잘 되어서 숲이 좋음. 가을 단풍 추천]





선운산 [전북-고창]

산세는 별로 크지 않으나 숲이 울창하고 곳곳이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경관이 빼어나며 천연기념물 제184호인 동백나무 숲이 있는 등 생태적 가치가 크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79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백제 위덕왕 24년(577년) 검단선사가 창건한 선운사(禪雲寺)와 수령 5백 년의 동백나무 3천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선운사 동백 숲이 유명 [답사 5회 : 봄이면 동백꽃 가을이면 단풍이 생각나는 곳. 기암괴석도 화려해서 4계절 다 아름다운 곳이라 언제 가도 좋은 곳. 볼거리도 많은 곳.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서 날씨가 좋은 날 추천]





설악산 [강원-양양]

남한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한계령, 마등령, 미시령 등 수많은 고개와 산줄기·계곡들이 어우러져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으며, 국립공원(1970년 지정) 및 유네스코의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1982년)되어 관리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백담사(百潭寺), 봉정암(鳳頂菴), 신흥사(新興寺), 계조암(繼祖菴), 오세암(五歲庵), 흔들바위, 토왕성폭포, 대승폭포 등이 특히 유명 [답사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많이 함 : 감히 평가할 수 없는 곳]





성인봉 [울릉도]

휴화산인 울릉도의 최고봉으로서 울릉도 모든 하천의 수원을 이루고, 식생이 특이한 원시림이 잘 보전되어 있는 점 등을 감안하여 선정. 울릉도에서는 유일하게 평지를 이룬 나리분지(羅里盆地)와 천연기념물 제189호로 지정(1967년)된 원시림에 유명. 나리동의 울릉국화·섬백리향의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52호(1962년)로 지정되어 있음 [답사 3회 : 겨울을 제외하고는 항상 관광객으로 붐벼서 쉽게 갈 수도 없는 곳. 그나마 겨울에는 한가하지만 날씨 때문에 배 운항이 쉽지가 않아서 결항이 많음. 관광과 연계해서 최소 2박 이상으로 가는 것을 추천. 겨울 '성인봉'은 동네 주민도 잘 가지 않을 정도로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단단히 준비하고 가야 함. 개인적으로 봄.여름.겨울에 가봐서 다시 가본다면 가을에 가고 싶은 곳. 관광하기 좋은 봄 추천]





소백산 [충북-단양]

국망봉에서 비로봉,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해발 1,300여m의 일대 산군으로 1,000m 이상은 고원지대와 같은 초원을 이루고 있으며, 국망천과 낙동강 상류로 들어가는 죽계천이 시작되고 국립공원으로 지정(1987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주봉인 비로봉 일대에는 주목군락지(천연기념물 제244호)와 한국산 에델바이스인 솜다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음. 희방사(喜方寺), 구인사, 소수서원(紹修書院 : 사적 제55호), 부석사(浮石寺), 온달성, 국립천문대 [답사 11회 : 봄이면 철쭉이 화려하고 가을에는 억새가 피어있는 곳. 그러나 소백은 단연 겨울이 아름다움. 정상(비로봉)으로 향하는 등로가 대부분 거리가 길지만 난이도는 그리 어렵지 않음. 최근 '제2연화봉'에 '소백산대피소'가 새로 세워져서 명물이 됨. 겨울 설경 & 봄 철쭉 추천]





소요산 [경기-동두천]

규모는 작으나 상백운대, 하백운대, 중백운대 등 경관이 아름답고, 등산인의 선호도가 높아 '81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점을 고려하여 선정. 원효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절벽과 가을철 단풍이 유명하며, 신라 무열왕 1년(65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자재암이 있음 [답사 2회 : 가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해서 가을 단풍에 맞춰서 감. 가을 단풍 추천]





속리산 [충북-보은]

예로부터 산세가 수려하여 제2금강 또는 소금강이라고도 불리울 정도로 경관이 아름답고 망개나무, 미선나무 등 1,000여 종이 넘는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국립공원으로 지정(1970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법주사(法住寺), 문장대,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정이품송(正二品松) 및 천연기념물 제207호인 망개나무가 유명 [답사 8회 : 4계절 모두 아름다워서 언제 가도 좋음. 주능선(백두대간)에서의 조망이 좋고 코스가 다양해서 한 번에 다 보기는 힘듬. '묘봉~상학봉' 구간은 암릉 구간이 많음. '법주사(세조길)' 길이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곳. 가을 단풍 추천]





신불산 [울산]

영남알프스 산군에 속하는 산으로 광활한 억새와 바위절벽, 완만한 지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파래소폭포 등이 있고 군립공원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신불산 자연휴양림 등이 유명 [답사 6회 : 억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암릉도 화려하고 조망이 좋아서 알프스라 불릴만한 곳. 꼭 가봐야 할 산. '영축산' '간월재' 연계 코스 추천. 한 번을 간다면 가을 억새 추천]





연화산 [경남-고성]

경관이 아름답고 오래된 사찰과 문화재가 많으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83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산 중턱에 큰 대밭이 있음. 유서 깊은 옥천사(玉泉寺)와 연대암·백련암·청연암이 유명 [답사 1회 : 도립공원이라는 명성에 조금 부족한 곳.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음]





오대산 [강원-평창]

국내 제일의 산림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경관이 수려하여 국립공원으로 지정(1975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연꽃 모양으로 둘러선 다섯 개의 봉우리가 모두 모나지 않고 평평한 대지를 이루고 있는데서 산 이름이 유래. 월정사(月精寺), 적멸보궁(寂滅寶宮), 상원사(上院寺)가 있음. 골짜기마다 사찰, 암자 등 많은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는 등 우리나라 최고의 불교 성지로 유명 [답사 7회 : 4계절 다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는 곳. 볼거리도 많음. 가을에는 '노인봉~소금강계곡' 코스와 '오대천'을 따라 이어진 '선재길' 구간 단풍이 아름다움.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 주능선의 설경이 아름답고 '월정사' 전나무 숲의 눈 쌓인 설경은 꼭 한번 봐야 할 풍경임. 겨울 설경 & 가을 단풍 추천]





오봉산 [강원-춘천]

산세는 크지 않으나 바위와 수목이 어우러진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다섯 개의 바위 봉이 연이어 솟아있는 데서 산 이름이 유래. 신라 때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청평사(淸平寺)와 구성폭포가 유명. 청평사 경내에 있는 보물 제164호인 회전문이 유명 [답사 2회 : 아기자기한 바위를 걷는 재미가 있는 곳. '배후령'에서 출발하면 난이도가 적어서 쉽게 오를 수 있음. '청평사'로 하신 시에는 배를 타고 '소양호(소양강댐)'로 나갈 수 있어서 그 재미도 있음. 가을 단풍 추천] 





용문산 [경기-양평]

옛부터 경기의 금강산이라 불리워질 만큼 기암괴석과 고산준령을 고루 갖춘 경관이 뛰어난 산이며, 특히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한 용문사와 높이 62m, 둘레 14m에 달하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가 있는 등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점을 고려하여 선정.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으로 미지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조선을 개국한 이태조가 등극하면서 `용문산'이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음 [답사 5회 : 정상인 '가섭봉'과 '백운봉'에서의 조망이 좋은 곳이나 큰 화려함은 없는 곳. 한 번을 가야 한다면 백운봉과 연계해서 가는 것이 좋음. 여름에는 '함왕봉'에서 서쪽으로 내려서는 '사나사계곡' 코스가 좋음. 여름 계곡(사나사계곡) & 가을 단풍(용문사) 추천]






용화산 [강원-춘천]

파로호, 춘천호, 소양호 등과 연접해 있으며 산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다우며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성불사터가 있으며 광바위, 주전자바위, 바둑바위 등 갖가지 전설을 간직한 실물을 닮은 바위가 유명 [답사 1회 : 암릉 보는 재미가 있고 바위 타는 재미도 있는 곳. 한 번 가봤으나 날씨가 좋은 날 가서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곳. 가을 단풍 추천]






운문산 [경남-밀양]

구연동(臼淵洞), 얼음골이라 부르는 동학(洞壑), 해바위(景岩) 등 천태만상의 기암괴석이 계곡과 어우러져 경관이 수려하고 군립공원으로 지정(1983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보물 제835호 대웅전, 제678호 삼층석탑, 제193호 석등, 제316호 원응국사비, 제317호 석조여래좌상 등 각종 문화유적이 있는 운문사가 있음. 석남사 경내에 있는 4백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처진 소나무(반송 : 천연기념물 제180호)가 유명 [답사 3회 : '영남알프스'의 한 봉우리이지만 '간월재'나 '신불산'에 밀려 '영알 태극종주'가 아니면 잘 찾지 않는 곳. '신불공룡'이나 '간월공룡'에 밀리지 않을 만큼 주변 암릉이 화려한 곳. 연계하는 코스도 다양해서 한 번에 다 보기는 어려움. 정상에서의 조망이 좋음. 가을 단풍 & 여름 계곡(석골사) 추천]





운악산 [경기-가평]

주봉인 망경대를 둘러싼 경관이 경기 소금강이라고 불리울 만큼 뛰어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천년고찰인 현등사 및 백년 폭포, 오랑캐소, 눈썹바위, 코끼리바위, 망경대, 무우폭포, 큰골내치기암벽, 노채애기소 등 운악8경이 유명 [답사 3회 : '현등사' 코스로만 세 번을 가봐서 다른 코스는 어떤지 잘 모름. 암릉구간도 더러 있고 '병풍바위'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 가을 단풍 추천]





운장산 [전북-진안]

운일암(雲日岩)·반일암(半日岩)으로 유명한 대불천(大佛川) 계곡이 있으며, 물이 맑고 암벽과 숲으로 둘러싸여 경관이 아름답고 자연휴양림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북두칠성의 전설이 담겨있는 `칠성대'와 조선시대 송익필의 전설이 얽혀 있는 `오성대'가 유명 [답사 1회 : 운해가 자주 보이는 곳. 최고봉인 '운장대'보다 '칠성대'에서의 조망이 더 좋음. 겨울 설경 추천]





월악산 [충북-제천]

산세가 험준하고 기암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졌으며 송계 8경과 용하 9곡이 있고 국립공원으로 지정(1984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신라 말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마주 보고 망국의 한을 달래고 있다는 미륵사지의 석불입상, 덕주사의 마애불 및 덕주산성 등이 유명 [답사 3회 : '악' 소리가 날 만큼 난이도가 있는 편이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곳. 정상인 '영봉과' '중봉' '하봉'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최근 안전시설(계단) 설치로 좋아짐. 각 봉우리에서 보는 조망이 뛰어난 곳. 가을 단풍 & 여름 계곡 추천]





월출산 [전남-영암]

경관이 아름다우며 난대림과 온대림이 혼생하여 생태적 가치가 크고 국립공원으로 지정(1988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천황봉을 중심으로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제13호),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가 있음. 구정봉 밑 용암사터 근처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국보 제144호인 마애여래좌상이 유명 [답사 5회 : 제2의 설악산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곳. 정규탐방로가 몇 곳 안돼서 아쉽지만... 비법정 탐방로도 더러 있음. '천황사'지구에 구름다리 있음. 봄 벚꽃(백리길.왕인 벚꽃축제) & 겨울 설경 추천] 





유명산 [경기-가평]

능선이 완만하고 부드러우며, 수량이 풍부한 계곡과 기암괴석 및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신라 법흥왕 27년(540년)에 인도에서 불법을 우리나라에 들여온 마라가미 스님에게 법흥왕이 하사한 사찰인 현등사가 유명. 자연휴양림이 있음 [답사 4회 : 정상에서의 조망은 좋으나 등로가 단순하고 특별함 없음. 여름 계곡 추천]





응봉산 [경북-울진]

아름다운 여러 계곡들을 끼고 있어 계곡 탐험 코스로 적합하며, 산림이 울창하고 천연 노천온천인 덕구온천과 용소골의 폭포와 소가 많은 등 경관이 아름다운 점을 고려하여 선정. 울진 조씨가 매사냥을 하다가 잃어버린 매를 이 산에서 찾고는 산 이름을 응봉이라 한 뒤 근처에 부모의 묘자리를 쓰자 집안이 번성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음. 정상에서 멀리 백암산·통고산·함백산·태백산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 [답사 3회 : 산 자체보다는 온천(덕구온천)과 계곡(덕풍계곡) 때문에 유명함. 정상 조망은 좋음. '금강송'이 많은 곳. 여름 계곡 추천]





장안산 [전북-장수]

덕산계곡을 비롯한 크고 작은 계곡과 윗용소, 아랫 용소 등 연못 및 기암괴석이 산림과 어우러져 군립공원(1986년)으로 지정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산등에서 동쪽 능선으로 펼쳐진 광활한 갈대밭과 덕산 용소계곡이 유명 [답사 3회 : 정상부의 가을 억새와 겨울 설경이 유명한 곳. 여름에는 계곡(덕산계곡.지지계곡)이 유명. 능선에서의 조망이 좋음. 주변 산세가 좋아서 보는 재미가 있는 곳. 보통 '무령(무룡)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해서 난이도가 쉬움. 고원에 자리한 산이라서 비나 눈이 자주 내린다고 함. 가을 억새 & 여름 계곡  추천]





재약산 [경남-밀양]

산세가 부드러우면서도 정상 일대에는 거대한 암벽을 갖추고 있어 경관이 아름다우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억새밭인 사자평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삼복 더위에 얼음이 어는 천연기념물 제224호 얼음골이 있음.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하고 서산대사가 의병을 모집한 곳인 표충사가 유명 [답사 5회 : '영남알프스'의 억새 군락지 중에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사자평원'을 품고 있는 곳. 그러나 억새가 많이 훼손되어서 지금은 '신불평원'에 밀리는 것 같음. 최근에 재약산 정상에 전망데크가 만들어짐. 가을 억새 & 여름 계곡(얼음골) 추천]





적상산 [전북-무주]

가을에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네의 모습과 같다 하여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며 덕유산 국립공원구역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고려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이 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건의하여 축성된 적상산성(사적 제146호)과 안국사 등이 유명 [답사 1회 : 다시 가보고 싶은 단풍 산행지 중 한 곳. 정상 부근에 자리한 '안국사'에서 '머루 와인동굴'로 가는 도로의 단풍이 좋음. 안국사 아래에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어서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음. 가을 단풍 추천]





점봉산 [강원-인제]

원시림이 울창하고 모데미풀 등이 자생하는 등 생태적 가치가 커 유네스코에서 생물권 보존구역으로 지정하고,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관리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특히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보전되어야 할 숲으로 선정. 12담 구곡으로 불리는 오색약수터 및 주전골 성국사터에 있는 보물 제497호인 양양 오색리 삼층석탑이 있음 [답사 4회 : 작년에 문경 '황장산'이 개방되면서 유일하게 남은 비법정 탐방로 구역. 인근의 '곰배령'을 제외하고 산 전체가 출입금지 구역. '한계령'에서 접근하는 등로는 험함. '오색'에서 올라서는 등로가 좋은 편임. '십이담계곡' 등로는 풍경이 좋으나 등로가 훼손되어서 어려움. 곰배령에서 올라서는 등로가 길도 좋고 무난하지만 단속(곰배령 정상)에 걸릴 수도 있음. 봄 야생화 & 겨울 설경 추천]





조계산 [전남-순천]

예로부터 소강남(小江南)이라 부른 명산으로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폭포·약수 등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불교 사적지가 많으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79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목조삼존불감(국보 제42호),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 : 국보 제43호), 송광사국사전(국보 제56호) 등 많은 국보를 보유한 송광사와 곱향나무(천연기념물 제88호)가 유명 [답사 1회 : 날씨가 흐린 날 가서 별 기억이 없었으나... 특이한 점도 없었던 곳. '선암사'와 '송광사' 때문에 백대명산에 지정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산속에 있는 보리밥집 유명함. 가을 단풍(송광사) 추천]





주왕산 [경북-청송]

석병산으로 불리울 만큼 기암괴봉과 석벽이 병풍처럼 둘러서 경관이 아름다우며 국립공원으로 지정(1976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대전사(大典寺), 주왕암이 있음. 주왕굴을 중심으로 남아있는 자하성의 잔해는 주왕과 고려군의 싸움의 전설이 깃들여 있는 곳으로 유명 [답사 3회 : 기이한 암릉이 멋진 곳. 인근에 있는 청송 '주산지'가 봄 사진 출사지로 유명함. 정상 코스보다는 '주왕계곡'의 협곡과 '절골'의 단풍이 아름다움. 가을 단풍(주왕계곡.절골) & 겨울 설경(주산지) 추천]





주흘산 [경북-문경]

소백산맥의 중심을 이루고 문경새재 등 역사적 전설이 있으며, 여궁폭포와 파랑폭포 등 경관이 아름답고, 월악산 국립공원구역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야생화, 오색단풍, 산죽밭이 유명하며, 조선조 문경현의 진산으로 문경 1, 2, 3관문이 있음 [답사 1회 : 산 자체의 모습보다는 주위 풍광이 좋은 곳. 백두대간 '조령산'과 '부봉' '신선봉' 라인이 더 멋짐. 겨울 설경 추천] 





지리산 [경남-통영]

한려수도의 빼어난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특히 불모산, 가마봉, 향봉, 옥녀봉 등 산 정상부의 바위산이 기암괴석을 형성하고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지리산이 바라 보이는 산'이란 뜻에서 산 이름이 유래하였으며, 현지에서는 지리산이라고도 불리워지고 있음. 다도해의 섬을 조망할 수 있으며 기묘한 바위 능선이 특히 유명 [답사 3회 : 섬에 있는 인기명산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산. 4계절 아름다울 것 같으나 암릉이 많은 곳이라 겨울에는 비추천. 가을 단풍 추천]





지리산 [경남-산청]

신라 5악중 남악으로 남한 내륙의 최고봉인 천왕봉(1,915m)을 주봉으로 노고단(1,507m), 반야봉(1,751m) 등 동서로 100여리의 거대한 산악군을 이뤄 `지리산 12동천'을 형성하는 등 경관이 뛰어나고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생태계 보고이며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1967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고 한데서 산 이름이 유래.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쌍계사 등이 유명 [답사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많이 함 : 감히 평가할 수 없는 곳]





천관산 [전남-장흥]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을 만큼 경관이 아름다우며 조망이 좋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98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신라시대에 세워진 천관사와 동백숲이 유명하고, 자연휴양림이 있음 [답사 1회 : 바다가 보이고 가을이면 억새가 보이는 곳. 산 아래에는 단풍나무도 많음. 기암괴석도 볼만함. 날씨가 좋은 날 가면 좋음. 가을 억새 추천]





천마산 [경기-남양주]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능선이 사방에 뻗어있어 어느 지점에서나 정상을 볼 수 있는 특이한 산세와 식물상이 풍부하여 식물 관찰 산행지로 이름나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답사 4회 : 야생화가 많이 피는 곳이라 유명하긴 하지만 그 외에는 특별하게 볼 것 없음. 정상에서의 조망이 좋음. 팔현계곡이 여름 물놀이로 유명함]





천성산 [경남-양산]

금강산의 축소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고, 특히 산정상부에 드넓은 초원과 산지습지가 발달하여 끈끈이주걱 등 희귀 식물과 수서곤충이 서식하는 등 생태적 가치가 높은 점을 고려하여 선정.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 가을에는 능선의 억새가 장관을 이루며,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내원사가 있음 [답사 1회 : 가을이면 생각나는 산행지 중에 한 곳. 정상 부근에는 억새가 화려하고 아래에는 단풍이 화려한 곳. '공룡능선' 코스 추천. 가을 억새&단풍 추천]






천태산 [충북-영동]

충북의 설악산으로 불려질 만큼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이 창건한 영국사와 수령이 약 500년 된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 3층석탑(보물 제533호),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등이 유명 [답사 2회 : 정상 부근에 있는 암릉(밧줄) 코스 말고는 특별함 없음. 난이도는 쉬움. '영국사'의 1.000년 된 은행나무 유명]





청량산 [경북-봉화]

산세는 크지 않으나 연이어 솟는 바위 봉우리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꼽힐 만큼 산세가 수려하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82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리보전, 신라시대의 청량사, 최치원의 유적지인 고운대와 독서당,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신한 오마대(五馬臺)와 청량산성, 김생이 글씨를 공부하던 김생굴, 퇴계 이황이 수도하며 성리학을 집대성한 오산당(청량정사) 등 역사적 유적지로 유명 [답사 2회 : 가을 단풍 산행지로 손꼽는 곳. 단풍에 물든 '청량사'의 모습은 이국적인 풍경임. 정상의 구름다리도 명물. 청량산 능선도 볼만하지만 건너편 '축융봉'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멋있음. 가을 단풍 추천] 





추월산 [전남-담양]

울창한 산림과 담양호가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다우며 추월난이 자생하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산 정상 아래에 있는 보리암(菩提庵)과 순창을 경계로 한 산록에 있는 용추사가 유명 [답사 3회 : 추월산 자체보다는 주위의 풍경이 가을에 보면 아름다움. '담양호'로 인해 운해가 자주 보임. 정상 부근에 있는 '보리암'이 인상적임. 가을 단풍 추천] 





축령산 [경기-남양주]

소나무와 잣나무 장령림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단애가 형성되어 있으며, 산 정상에서 북으로는 운악산, 명지산, 화악산이 보이고, 동남쪽으로 청평호가 보이는 등 조망이 뛰어난 점을 고려하여 선정. 가평 7경의 하나인 축령백림과 남이장군의 전설이 깃든 남이바위, 수리바위 축령백림 등이 유명. 자연휴양림이 있음 [답사 4회 : 휴양림으로 유명. 봄에는 '서리산' 능선 철쭉이 볼만함]





치악산 [강원-원주]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남대봉 (1,181m)과 매화산(1,085m) 등 1천여 미터의 고봉들이 연이어 있어 경관이 아름다우며 곳곳에 산성과 사찰, 사적지들이 널리 산재해 있고 국립공원으로 지정(1984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구룡계곡, 부곡계곡, 금대계곡 등과 신선대, 구룡소, 세렴폭포, 상원사 등이 있음. 사계절별로 봄 진달래와 철쭉, 여름 구룡사의 울창한 숲과 깨끗한 물, 가을의 단풍, 겨울 설경이 유명 [답사 5회 : 백대명산은 그렇다 쳐도 국립공원에 지정된 이유는 모르겠음.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 겨울 설경은 볼만함. 겨울 설경 & 여름 계곡 추천] 





칠갑산 [충남-청양]

백운동 계곡 등 경관이 아름다우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73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계곡은 깊고 급하며 지천과 계곡을 싸고 돌아 7곳에 명당이 생겼다는 데서 산이름이 유래. 신라 문성왕 때 보조(普照) 승려가 창건한 장곡사(長谷寺)에 있는 철조약사여래좌상(보물 제174호) 등이 유명 [답사 2회 : 아이들과 가기 좋은 곳. 캠핑장도 있고 겨울에는 눈꽃 축제도 함]





태백산 [강원-태백]

예로부터 삼한의 명산이라 불리웠으며 산 정상에는 고산 식물이 자생하고 겨울 흰 눈으로 덮인 주목 군락의 설경 등 경관이 뛰어나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89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삼국사기에 따르면 산 정상에 있는 천제단에서 왕이 친히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음. 망경사, 백단사 등이 유명 [답사 9회 : 2016년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곳.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고 난이도가 쉬운 편이라서 겨울이면 항상 생각나는 곳. 주위 조망이 좋고 '주목' 군락지로 유명함. 눈에 덮인 겨울 일출 사진은 장관. 겨울 설경 & 봄 철쭉 추천]





태화산 [강원-영월]

경관이 아름답고 고구려 시대에 쌓았던 토성인 태화산성 등 역사적 유적이 있고, 고씨동굴(高氏洞窟 : 천연기념물 제219호) 등이 소재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답사 1회 : 제대로 못 보고 온 것인지... 원래 그런 산인지... 숲 속의 작은 암자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것이 없었던 곳. 조망도 거의 없음. 억새가 많다고 하는데... 가을에 갔으나 그 풍경은 못 봤음]





팔공산 [대구]

비로봉(毘盧峰)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16km에 걸친 능선 경관이 아름다우며 대도시 근교에서는 가장 높은 산으로 도시민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80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동화사(桐華寺), 은해사(銀海寺), 부인사(符仁寺), 송림사(松林寺), 관암사(冠岩寺) 등 불교문화의 성지로 유명 [답사 2회 : 대도시를 감싸고 있는 곳이지만 산세는 험한 곳에 자리한 모습. 정상(비로봉)에 군부대와 중계탑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최근에 개방함. 케이블카 있음. 능선 조망이 좋고 암릉도 멋진 곳. 봄 벚꽃(동화사) & 가을 단풍(갓바위) 추천]





팔봉산 [강원-홍천]

산은 나지막하고 규모도 작으나 여덟 개의 바위봉이 팔짱 낀 8형제처럼 이여져 있고 홍천강과 연접하여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있음 [답사 5회 : 바위 타는 재미가 있는 곳이었으나 최근에 안전 시설물이 설치가 되어서 재미가 없어짐. 그 덕에 매력도 없어짐. 팔봉산 유원지에 캠핑장 있음. 여름 계곡(홍천강) 추천]






팔영산 [전남-고흥]

여덟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산세가 험준하고 기암괴석이 많으며 조망이 좋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98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예전에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 4대 사찰로 꼽히던 능가사가 있음. 신선대, 강산폭포 및 자연휴양림이 있음. 정상에서 대마도까지 보일 정도로 조망이 좋음 [답사 1회 : 다시 가보고 싶은 곳.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 날씨 좋은 날 추천]





한라산 [제주]

남한에서 가장 높은 우리나라 3대 영산의 하나로 산마루에는 분화구인 백록담이 있고 1,800여 종의 식물과 울창한 자연림 등 고산식물의 보고이며 국립공원으로 지정(1970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남한의 최고봉으로서 백록담, 탐라계곡, 안덕계곡, 왕관릉, 성판암, 천지연 등이 유명 [답사 11회 : 국내(남한) 산(山) 중에 최고봉. 말이 필요 없는 곳. 한국 3대 계곡(지리-칠선. 설악-천불동. 한라-탐라)이 '관음사' 코스에 있음. 등로가 좋은 곳이라 무난하게 올라감. 겨울 설경(백록담.윗세오름) 봄 철쭉(윗세오름) 추천]





화악산 [경기-가평]

경기 제1의 고봉으로 애기봉을 거쳐 수덕산까지 약 10㎞의 능선 경관이 뛰어나며 시계가 거의1백㎞에 달하는 등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집다리골 자연휴양림이 있으며, 정상에서 중서부 지역 대부분의 산을 조망할 수 있음 [답사 3회 : 정상에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어서 '중봉'이 정상을 대신함. '경기 제 1봉'인 것 말고는 특별한 것 없음. 여름 계곡(조무락골) 추천] 





화왕산 [경남-창녕]

억새밭과 진달래 군락 등 경관이 아름다우며 화왕산성, 목마산성 등이 있고 군립공원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해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정상 일대의 억새평전에서 달맞이 행사가 열림. 정상에 화산활동으로 생긴 분화구 못(용지)이 3개 있음. 송현동 고분군 및 석불좌상, 대웅전 등 4점의 보물이 있는 관룡사 등이 유명 [답사 3회 : 억새와 진달래가 유명한 곳. 가을이면 단풍도 화려함. '자하곡'에서 오르는 등로가 암릉도 있고 조망도 좋음. 정상에 자리한 억새 군락지가 인상적임. 거리는 있으나 난이도는 적음. 정상 부근에 드라마 '허준 촬영지'가 있음. 가을 억새 추천]





황매산 [경남-합천]

화강암 기암괴석과 소나무, 철쭉, 활엽수림이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합천호 푸른 물에 하봉, 중봉, 상봉의 산 그림자가 잠기면 세 송이 매화꽃이 물에 잠긴 것 같다고 하여 수중매라는 별칭으로도 불림. 산 아래의 황매평전에는 목장지대와 고산 철쭉 자생지가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고찰인 염암사지(사적131호)가 유명 [답사 2회 : 봄 철쭉으로 유명한 곳철쭉 군락지 부근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어서 봄이면 관광객이 많음. 산행은 '모산재'에서 오르는 코스 추천. 가을에도 억새 군락지가 자리함. 봄 철쭉 & 가을 억새 추천]  





황석산 [경남-함양]

거망에서 황석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있는 광활한 억새밭 등 경관이 아름답고 황석산성 등 역사적 유적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게 마지막까지 항거하던 사람들이 성이 무너지자 죽음을 당하고 부녀자들은 천 길 절벽에서 몸을 날려 지금껏 황석산 북쪽 바위 벼랑이 핏빛이라는 전설이 있는 황석산성이 있음 [답사 4회 : 정상 부근의 풍경이 좋은 곳. 주변 시야가 좋아서 날씨가 좋은 날 가면 주변의 큰 산(지리산.덕유산.가야산.대봉산... 등)이 다 보임. 정상 봉우리와 이어진 '황석산성'이 있음. 이 일대의 산맥을 연결한 '기금거황(기백산-금원산-거망산-황석산)' 산행이 종주 코스로 유명함. '거망산'과 '황석산' 아래로 흐르는 '용추계곡'이 여름 휴양지로 유명함. 여름 계곡(용추계곡) & 가을 단풍 추천]





황악산 [경북-김천]

전체적인 산세는 특징 없이 완만한 편이나 산림이 울창하고 산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은 곳곳에 폭포와 소를 이뤄 계곡미가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특히 직지사 서쪽 200m 지점에 있는 천룡대부터 펼쳐지는 능여계곡은 대표적인 계곡으로 봄철에는 진달래, 벚꽃, 산목련이 유명 [답사 2회 : 대사찰인 '직지사'로 유명한 곳. 정상 부근 조망 있음. 겨울 설경 추천]





황장산 [경북-문경]

울창한 산림이 암벽과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다우며 황장목이 유명하고 조선시대 봉산 표지석이 있는 등 경관 및 산림문화적 측면을 고려하여 선정. 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예천군 읍지 등에는 작성산으로 표기 [답사 3회 : 산림보호 명목으로 오래 묶여 있다가 2016년 05월에 정상을 개방한 곳. 월악산 국립공원 관할임. 개방 코스가 단순한 곳이라 정상 답사의 의미 말고는 없음. 아직 미개방 구간인 '낙타바위' '수리봉' 코스가 산행의 재미는 있음. 들머리인 '생달리' 마을은 '오미자'로 유명해서 와인동굴도 있음. 가을 단풍 추천] 





희양산 [충북-괴산]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위처럼 보이고 바위 낭떠러지들이 하얗게 드러나 있어 주변의 산에서뿐만 아니라 먼 산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기암괴석과 풍부한 수량이 어우러진 백운곡 등 경관이 수려하고 마애본좌상 등 역사유적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답사 6회 : 은근히 매력 있는 곳. 희양산 하나보다는 주위의 봉우리(마분봉.악휘봉.구왕봉... 등)와 연계해서 가면 좋음. 조잡한?? 암릉(밧줄) 구간이 많은 곳이니 주의. 1년에 한 번(부처님오신날) 개방하는 '봉암사'가 있음. 겨울을 제외하고 추천] 





출처: https://varama.tistory.com/538?fbclid=IwAR1aCFKzm4HZR8H17PHY81F0rfBn8xYcdBNRLRJT8D2TUUgPNrcMIYdILCs [설레임...널 만나러 가는 여행]





본 기고는 김정호 박사의 조국사태를 둘러싼 정국진단과 변혁운동에 대한 제언이다. 조국사태의 바탕에는 한국자본축적체제의 위기가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하는 필자의 견해가 돋보인다. 또한 이를 해결하는 근본은 재벌체제개혁이며, 변혁진영의 과제에 대해서도 매우 적극적인 제안을 던지고 있다. 이에 일독을 권한다. 분량이 많이 2회에 걸쳐 연속으로 연재한다[편집자]

‘조국사태’ 전후한 정세 동력과 변혁진영의 과제

1. 현 정세의 특징
2. 현 정국의 동력은 한국경제 축적체제의 위기로부터 온다
3. 관건은 재벌개혁
4. 재벌개혁에 대한 각 정치세력의 태도
5. 한국 변혁진영의 과제


4. 재벌개혁에 대한 각 정치세력의 태도

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반동 보수세력은 미국 등 국제 보수세력과 손잡고 신 냉전체제와 남북대결을 조장하는 가운데 어떻게든 현재의 재벌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이 경우 중국의 도전과 4차 산업혁명의 거센 물결 속에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는 한국경제는 ‘국제 하청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소위 ‘광주형 일자리’ 같은 값싼 일자리 창출모델이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다. 조선업이든 자동차산업이든 그리고 이후 반도체산업이든지 간에, 국제경쟁 속에서 점차 낙후되어가는 한국의 재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 길 밖에는 없다.

여기서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잠깐 부연 설명을 하도록 하자. 그것은 물론 현 문재인정부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 정권 재창출이 급한 문재인정부가 ‘일자리 창출’ 명목으로 서둘러서 추진한 것인데, 그러나 그 성격은 아직 확실히 결정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처음 이 사업이 제안될 무렵에는 ‘일자리 창출’ 외에도,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혁신기지’의 의미도 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벌체제’라는 한국적 현실을 무시한 정책은 애초부터 자신의 본뜻과는 달리 변질됨으로써 노동자들에게 큰 재앙을 안겨준다. 그 같은 실례는 많이 있는데, 예컨대 IMF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한 일이 그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주의 철학에 입각하여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고 그 보완책으로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자만 이루어진 채 후자는 불철저하게 수행되었다. 결국 이 때문에 한국사회는 이후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재앙이 발생하였다. 결국 재벌들에게 이용당하고 그들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이는 본질상 이들의 자유주의적 정치이념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번 ‘광주형 일자리’ 역시도 그렇게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이 같은 사업이 실현되면 기존의 노조체계와 정규직을 무력화시키는 선례가 남겨지게 되고, 이 정권 하에서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재벌들은 이후 이 같은 ‘제도혁신’을 충분히 활용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미 군산형, 대구형, 구미형 등 수많은 아류들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현대차를 비롯한 한국 자동차산업 전체가, 그리고 한국경제 전체가 이 같은 수많은 사실상의 비정규직들로 이루어진 ‘하청생산’ 체제로 변모되게 된다. ‘광주형 일자리’는 바로 현 재벌체제가 유지될 경우의 한국경제의 미래상을 미리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민주당과 문재인정부로 대변되는 자유주의세력의 재벌개혁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자. 이들 자유주의세력은 보수반동세력과는 달리 ‘재벌해체’를 바란다. 변혁진영 일각에선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별반 재벌개혁의 성과가 없었던 것을 놓고, 선거공약과는 달리 그 의지가 식었거나 이미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섣부른 예단을 한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2018. 8. 24.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내용을 한 번 보도록 하자. (1)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 요건의 강화 (2)공익재단의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 (3) 소기업이 직접 법위반 행위에 대한 ‘금지청구제도’를 도입 (4)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자료제출명령제’를 도입 (5)경성담합에 대한 ‘전속고발권 제도 폐지’ 등이다.(김남근 변호사,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의 10대 중요 개혁과제”) 이 같은 내용은 나름대로 현 상태에 비추어 보면 일정 수준 이상의 재벌개혁을 예상할 수 있다.

예컨대, (1)의 지주회사제 개혁의 경우, 신설 지주회사의 경우 자회사까지만 인정하고 손회사는 금지하며, 기존 지주회사에 대해선 자회사 및 손회사 지분보유 비율을 현 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에서 각각 30%와 50%로 상향조정하는 법안이다. 그럴 경우 현재 이미 지주회사제 전환을 완료한 LG, SK, 현대중공업 등 많은 재벌들이 자회사 지분을 더 많이 사들여야 한다. 이 때문에 일정하게 주력 기업에 집중하게 되며 그렇지 않은 기업들을 처분하게 된다. (2)번 재벌 설립 공익재단에 대한 운영규칙 강화 역시도, 이들 공익재단과 동일한 재벌 계열사 보유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박탈함으로써, 공익재단이 변칙적으로 재벌총수의 경영권유지나 후계상속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없도록 규제하기 때문에 재벌 소유권의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위 개정안이 나왔을 때 보수단체와 언론들은 ‘재벌 옥죄기’라는 비명을 질러댔던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정부는 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재벌개혁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다른 부대조건들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당장 위의 입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선 과반수 이상의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의석분포로 볼 때 그 통과를 자신할 수가 없다. 이 때문인지 당시 김상조 공정거래위 위원장은 “연성법률로도 재벌개혁이 가능하다”는 말을 하였다. 이는 아마도 입법 관련한 현 국회 역관계와 다른 여건을 고려한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연성법률’ 방식이란 상법이나 공정거래법 개정과 같이 꼭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법제정 방식이 아니더라도, 현행 법률제도 하에서 행정기관의 시행령이나 자체 법규만 가지고서도 할 수 있는 개혁을 말한다.
필자가 보기에도 이 같은 ‘연성법률’ 만이라도 실제 제대로만 실행하면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여 진다. 예컨대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은 총수일가가 주력기업인 삼성전자를 지배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서 금감위가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 기준을 바꾸어 건전성 자산에서 계열사 보유주식에 대한 지분을 제외시키거나, 같은 계열사 기업에 대한 금융회사의 보유주식 지분 의결권을 인정치 않는 방식을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현재 삼성의 재벌구조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으며, 지금의 금감원 자체 운영규칙 개정만으로도 그 실시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연성적 방안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이런 방안조차도 현실의 장벽을 넘어서기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금번 조국사태를 통해 경험하였듯이, 검찰-언론으로 이어지는 친 재벌세력들의 여론공세를 사전에 무력화시키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선 ‘경제난’을 가중시킨다는 죄명만 뒤집어 쓸 수 있다. 그것은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재벌과두체제’의 벽이 두텁다는 것을 말해주는 동시에, 문재인정부 재벌개혁안의 약점을 보여준다.
어쨌든 결국 이 같은 장애를 먼저 부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대중 밖에 없다. 현 재벌체제의 모순심화로 터져 나오게 되는 대중의 불만을 우선 검찰개혁으로 집중시키고, 그것을 다시 총선과 대선 승리의 밑거름으로 삼은 후 보수언론의 여론공세까지 무력화시키는 식으로 재벌개혁을 위한 전제조건들을 하나 둘씩 마련해 나가야 한다.
문재인정부의 재벌개혁 방안은 이렇듯 많은 전제와 여러 절차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설령 이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된다손 치더라도, 문재인정부의 재벌개혁 방안은 여전히 노동자계급이 보기에는 한계가 많다. 왜냐하면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시장 활성화’ 혹은 ‘독과점 폐해 극복’이라는 자유주의자적 시각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애초 재벌개혁을 위해 결정적 ‘동력’을 제공할 대중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 대중은 그 이상을 기대하고 있으며, 또한 그 같은 자유주의적 방식만으로는 현 시기 급박한 한국경제의 경쟁력 상실을 만회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예컨대,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여 점점 뒤처지는 기술경쟁력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시기임에도 이에 대한 검토가 미흡하다. 국가개입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도 한국의 입장에선 꼭 필요한 조치인데, 지금 현대차와 대우조선을 비롯한 많은 한국 대기업들이 경영위기의 늪에 빠져들며 영업이익률이 크게 저하된 상태이다. 이 같은 제약에 의해 시간이 갈수록 한국 기업들은 세계 경쟁사들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사회 전체의 기금이라 할 수 있는 ‘국가재정’을 체계적으로 투여할 수 있는 장치를 합법적으로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중국이 강점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국가의 국유기업에 대한 대폭 지원과 함께, 기업차원의 연구개발과 국가적 차원의 연구개발이 긴밀한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낙후된 기술력을 단시간 내에 높이는 데 성공하였다. 시장원리를 가장 중시한다던 미국 역시도 2009년 서브프라임 위기가 한창일 때는 GM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국가자금의 투여를 서슴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입장에선 또 재벌해체 이후 인공지능, 공장자동화와 같은 새로운 기술 환경 하에서 고용보장을 어떻게 이룰지에 대한 해결책을 문재인정부의 개혁안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자본가들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그것을 상용화 할수록, 노동자들에게는 곧바로 ‘고용불안’이 엄습한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이 선뜻 ‘독과점 폐해 극복’(시장합리화) 만을 목표로 삼는 재벌개혁에 지지를 보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재인정부의 재벌개혁 방안은 이렇듯 절차와 과정상의 번거로움 뿐만 아니라, 설정한 ‘목표’와 그 동력인 대중의 ‘기대치’ 사이에 모순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그 같은 재벌개혁은 다가오는 한국경제의 위기를 헤쳐 나갈 무기로 이용되기보다는, 그 위기 속에 휘말려 표류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서, 문재인정권은 경제위기를 재벌개혁의 ‘동력’으로 삼기보다는, 경제위기의 압력에 밀려 그것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자유주의적 방안은 느슨하고 불철저하며 오늘날의 긴박한 경제상황과도 걸맞지가 않다. 결국 이들의 재벌개혁이 좌초하게 되면 반동 보수세력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현 재벌체제 해체를 포기한 채 ‘국제 하청화’의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끝으로, 노동자계급과 변혁진영의 재벌개혁 방안을 소개하자면, 그것은 ‘재벌해체, 공기업화’로 요약될 수 있다. 필자는 이미 다른 글에서 한국의 재벌과두체제하에서 그 필연성을 지적하였다.(“재벌개혁의 세 방안”,[비정규직투쟁의 방향정립⑧-1] ,레디앙)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이다: (1) 재벌의 반항과 그것을 무력화시킬 대중의 기대 (2) ‘연기금’의 역할. 필자의 글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이들 각각에 대한 얼마간 설명을 덧붙여 보자.

“자신의 막강한 경제력과 정치권력에 대한 통제력을 바탕으로, 기업 전문화와 책임경영 실현과 같은 자본주의의 정상적 개혁조차 거부하는 현 재벌체제에 대해선 이제 순수한 경제적 논리가 통할 여지는 사라진다. 그렇다면 이 같은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한 다른 대안은 무엇일까? 여기서 곧바로 '재벌국유화'라는 결론을 끌어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출자총액제한'과 같은 조치는 만약 그것이 엄격히 실행되기만 한다면 여전히 재벌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제도적' 방안으로 유효하기 때문이다. 대신 국가가 좀 더 과감하게 재벌에 대한 개혁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을 요구한다. 이 경우 문제는 다름 아닌 국가권력 자체에서 발생한다. (한국에서) '재벌과두체제'의 성립이 의미하는 바는 재벌이 이미 국가권력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을 자신의 방패 막으로 삼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재벌개혁의 선행조건으로서 '국가권력의 민주적 개조'가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즉 재벌개혁의 첫 수순은 현재 이들에 볼모로 잡혀있는 국가권력에 대한 민주적 개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재벌개혁의 세 방안”,레디앙)

지금 진행되고 있는 현실은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 해주는 듯하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검찰개혁은 바로 이러한 ‘국가권력 개조’의 중요한 부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계속해서 그 과정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러 통로를 통해 이미 국가권력을 통제하고 있는 재벌들은 필연적으로 이 권력을 사용하여 대항하려 할 것이다. 反재벌세력은 이 같은 저항을 분쇄하여야만 재벌개혁을 완수할 수 있다. 결국 국가권력의 통제를 둘러싼 재벌과 反재벌세력 간의 치열한 한판 승부가 불가피하다. 여기서 反재벌세력의 최종 승리는 단순한 선거를 통한 집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국가권력에 대한 철저한 민주적 개조를 통해 그것을 사회 다수의지의 직접적 통제 하에 놓음으로써만 비로소 그 임무는 달성된다. 과거 노무현 정권이 행정부를 장악하고 나중에는 국회에서 다수의석까지 획득한 상황에서도, 집권기간 내내 개혁에 저항하는 관료들의 복지부동과 검찰의 항명파동에 시달려 제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선례가 있다. 이 같은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약 이들 ‘국가권력의 실체’들을 그대로 둔 채 선거를 통해 형식뿐인 정권을 얻는 것만으로는 재벌개혁은 완수될 수 없다. 이들 관료와 검찰 뒤에는 앞서 '삼성공화국'에서 보았듯이 재벌의 손길이 이미 거미줄처럼 뻗쳐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위글)

이리하여 개혁진영이 이러한 국가권력의 ‘민주적 개조’를 완수하였을 때는, 막상 재벌과의 타협이나 앞서 언급한 ‘연성법률’ 식 개혁은 별반 의미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간 자신들의 반항 때문에 재벌은 이미 스스로의 입지를 상당 부분 축소시켰으며, 대중들 또한 재벌개혁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기대치가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재벌개혁은 '공기업화'라는 사회 다수의지가 직접적으로 관철되는 방식이 유력해진다.

다음으로 ‘연기금’의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이는 매우 현실적이고 곤란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즉 만약 재벌개혁이 진척되어 앞서 언급한 지주회사제에 대한 개정안이나 좀 더 엄격해진 금감위 규정이 실행될 경우, 주식시장에 쏟아져 나올 물량을 누가 소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과거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포기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역대 정권들이 재벌개혁의 유효한 수단으로 줄곧 미련을 갖고 추진해왔던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9년 3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를 통해 정식 폐기되었다. 여기서 출총제를 포기한 표면적 이유는, 원칙대로 그것을 감행할 경우 주식시장과 경제 전반에 대한 커다란 충격과 함께,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가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이유는 간단하게 ‘매수주체 부재’ 문제로 규정지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출총제 규정에 따라 초과 물량이 대량으로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경우, 그것을 소화해 줄 만한 국내 매수주체가 마땅치 않은 데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합당한 매수주체가 존재한다면 비록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일부 재벌들의 그룹 규모는 축소되겠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국내의 다른 주체에 의해 대체됨으로써 한국경제 전반에는 별반 큰 혼란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매수주체 부재’ 문제가 뜻하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다음을 보자.

“그것은 다름 아닌 ‘재벌과두통치’ 단계에 접어든 한국사회의 곤혹스러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한국에서 자본주의 기본모순인 생산사회화와 자본주의적 점유간의 모순이 너무 극대화되어 더 이상 정상적인 방식으로 치유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에선 재벌 대기업들이 글로벌화를 통해 국제독점자본으로 발전할 만큼 생산사회화가 고도로 진행되었음에 반해, 다른 한편에선 이에 상응하는 ‘자본사회화’가 충분히 진행되지 못하고 오히려 ‘재벌적 점유’, 즉 극소수 총수일가에 의한 거대한 사회생산력에 대한 점유가 계속해서 심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양자 간의 격차가 너무 커서, 재벌 대기업으로 하여금 (출총제의) 규정대로 순자산 40%를 넘는 지분을 매각케 할 경우 현실에서는 이를 소화시켜 줄 다른 국내의 사적 매수주체를 발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재벌개혁의 한계”, [비정규직투쟁의 방향정립⑧-2],레디앙)

만약 지금처럼 소수 상위재벌로의 거대한 경제력 집중이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면 재벌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위의 두 가지 문제, 즉 시장혼란과 경영권방어의 어려움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 시장이 소화해야할 물량의 규모도 작을 뿐만 아니라, 또 정상적인 M&A 때처럼 다른 많은 경쟁 자본들에 의해 충분히 그것이 소화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부딪쳐, 우리는 삼성이나 현대 재벌 산하의 대기업과 같은 거대한 사회적 생산력을 누구 의지의 지배하에 두는 것이 옳은가라는 문제를 마침내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문재인정부의 개혁방안도 여전히 ‘사적 주체’ 만을 염두에 두었기에 마땅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만약 상식대로 거대한 ‘사회적 생산력’을 ‘사회의지’의 통제 하에 두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재벌문제의 해결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매번 재벌개혁의 관건적 순간 마다 등장했던 시장혼란과 경영권방어 문제 역시도 쉽사리 해결될 수 있다. 한국사회는 이 같은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수단이 이미 존재하며, 그 방안 중 하나가 바로 ‘연기금’이라는 ‘공적 주체’를 동원하는 방식이다.
연기금은 현재도 사실상 많은 주요 재벌기업의 최대주주이다. 아래 표를 보면, 연기금은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3.38%)과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5.17%)보다 훨씬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문재인정부의 ‘손자회사 규제 등 지주회사의 경제력집중 억제’ 관련한 입법안이 통과되고, 보다 엄격한 금감원 자체 운영규칙 개정안이 실행되게 되면, 재벌기업들은 상당수의 계열사 주식들을 처분해야 한다. 이렇게 쏟아져 나올 주식들을 보태게 된다면, 연기금은 명실상부한 최대주주로서의 자격을 확고히 할 수 있다. 이 같은 연기금을 통한 방식은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가 연방준비위원회의 돈을 풀어 부실 금융기관과 GM자동차 등을 국유화했던 방식에 비한다면 훨씬 부드럽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정부는 ‘사적소유의 신성불가침성’ 신화에 여전히 갇혀 있기에 이러한 과감한 연기금을 통한 재벌개혁 방안을 검토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총수일가에 의한 재벌식 점유는 이 같은 ‘사적소유의 신성불가침성’과도 걸맞지 않으며, 오히려 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 총수일가는 채 1%에도 못 미치는 소유지분을 가지고서 나머지 그룹자산 전체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야 말로 나머지 99% 자산 소유자와 사회 전체에 대한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공정위가 2017년11월30일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 등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전체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은 0.99%에 불과하다. SK(0.32%), 금호아시아나(0.33%), 현대중공업(0.89%) 등도 총수일가 지분율이 1%를 밑 돈다.

5. 한국 변혁진영의 과제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한국사회에서 1990년대 이래 형성된 신식국독자 후기 축적양식이 가져온 상대적 ‘균형기’는 끝났다. 이제는 본격적인 ‘불균형기’에 접어들었으며, 그에 따른 혼란과 동요, 충돌의 시기에 돌입하였다. 이에 따라 다시 새로운 ‘균형’을 모색하기 위한 움직임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으며, 기존의 양식을 대체할 새로운 양식이 확정될 때까지 이 같은 동요와 혼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에 따라 사회 집단 간, 계급 간, 그리고 정치세력 간의 강한 충돌 역시 계속될 것이다.

한국의 변혁진영은 이처럼 중차대한 시기에 사회대개혁의 임무를 민주당과 문재인정부와 같은 자유주의세력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이들 자유주의세력과 현 시기 정국 주도권을 다투는 임무를 정식으로 제출하고, 이미 적극적인 정치적 행동을 시작한 대중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본격 나서야 한다.

이러한 정국 주도권의 쟁취는 지금처럼 단지 ‘정규직화 요구’나 ‘노동악법 개악저지’와 같은 권리투쟁이나 자기 계급적 요구만이 아니라, 자신의 총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출하고 이를 위한 적극적 실천에 나설 때라야 가능하다. 그 개혁안의 핵심은 ‘재벌해체’를 통해 주요 대기업들을 ‘공기업화’ 하는 것이며, 구체적 방안으로는 ‘연기금’을 활용한 과감하고 신속한 재벌개혁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 재벌개혁 없이는 비정규직 양산, 자영업자 몰락, 교육문제 등 우리사회의 중차대한 문제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할 수가 없다. 이 점을 대중에게 반복해서 설명해야 하며, 앞으로 정국 쟁점을 이러한 재벌개혁과 계속 연계시켜 나가야 한다.
한국 축적체제가 본격적인 위기를 맞이하며 해체기에 들어선 지금, 앞으로 현장에선 대규모 구조조정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조선업계뿐만 아니라, 아직은 본격화하진 않았지만 조만간 가시화 될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은 더욱 큰 충격파를 가져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보수언론들은 현대자동차 관련한 기사에서 일제히 40% 인원감축이 불가피하다는 군불 떼기를 시작했다(중앙일보 등,10월7일자 보도). 지난 9월 초 사측과 막 임단협을 끝내고 그들의 ‘정년보장’ 약속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에게 있어, 이것은 충격적이고 믿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국제 자동차산업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결코 엄포나 선전용 차원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앞으로 4차 산업의 주 격전장은 다름 아닌 자동차산업이 될 것이며,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공유자동차로 상징되는 미래자동차는 그 발전 속도에 있어 우리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에 따라 향후 미래자동차산업의 패권을 둘러싸고, 기존 자동차회사들과 새롭게 속속 진입하고 있는 애플, 구글, 인텔, 바이두, 삼성 등 세계 IT업계 거두들 간의 경쟁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도 훨씬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후자 진영은 거대한 자본규모와 핵심기술인 인공지능 분야에 있어서의 우세를 앞세워 세계 자동차업계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국제 자동차시장은 (1)GM-오로라 (2)구글-웨이모 (3)인텔-BMW-모빌아이(IBM) (4)바이두-중국계 자동차회사 (5) 도요타-일본계 자동차회사로 대표되는 몇 개의 연합진영에 의해 분할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한전부지와 같은 엉뚱한 곳에 돈을 쏟아붓고, ‘수소차 우선’이라는 잘못된 전략을 선택한 현대자동차는 이미 선두그룹과의 격차가 많이 벌어져 있는 상태이다. 최근 현대차 경영진이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 미국 앱티브사와의 ‘4.8조원 규모 합작사 설립’, ‘2025년 완전자율주행 실현’, ‘하늘을 나는 자동차’ 운운하는 것은 화려한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보여 진다. 그것은 현대차의 위기상황을 가리기 위한 위장수법이며, 또 다른 한편으론 현대차 조합원들을 방심케 하고 사회적으로는 더 많은 정부지원을 타내기 위한 속임수일 가능성이 크다. 자율주행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전기자동차 관련해서도 현대차는 지금 밧데리 등 핵심부품을 자체 개발하려던 애초 전략의 차질로 인해 점점 더 외부 조달에 많은 부품을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기업의 수익성이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매년 1~2천 명의 정년퇴직자에 의한 자연감축으로 향후 2030년까지 무리한 구조조정 없이 인원감축을 하겠다는 사측의 발표는 지켜지기 어렵다. 지난해 이미 4% 이하로 떨어진 영업이익률은 이 같은 판단을 뒷받침해 준다.

따라서 현대차에겐 자연감축을 기다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으리라 보여진다. 결국 지금 보수언론들이 하나 둘씩 군불떼기 식으로 내어놓고 있는 보도는 앞으로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위한 사전 준비일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가 임단협이 끝난 9월 중순 이후에도 계속해서 현장에 대한 강도 높은 침탈을 강화하면서 소위 군기잡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전례 없던 일이다. 이러한 현장침탈은 지난 해 이래 계속되고 있는데, 요즘 들어 부쩍 두드러진 느낌이다. 따라서 이는 결코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는 향후 구조조정을 위한 ‘현장조직 와해’를 겨냥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변혁진영은 앞으로 한국 축적체제의 위기와 함께 필연적으로 발생할 이 같은 대공장 사업장의 구조조정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공기업화’ 강령을 대중적 요구로 전환시켜야 한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동안 그럭저럭 비정규직을 보호막으로 삼아 상대적으로 나은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그들 역시도 비정규직화나 실업자가 될 운명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요행히 본인 세대는 피해갈 수 있을지라도, 그들의 자식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 같은 운명을 벗어나는 길은 지금으로서는 ‘공기업화’ 밖에는 없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 인공지능과 자동화 도입이 보편적 추세가 될 앞으로는 더욱 그러하다.

비정규직노동자 투쟁에 있어서도, 단순한 ‘정규직화’ 요구만을 제기하는 수준을 넘어설 수 있는 의식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비정규직문제는 성격상 단사차원의 사안이기 보다는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정리해고제의 도입, 기간제노동의 다양화, 파견근로 범위의 점진적 확대 등 한국의 각종 노동악법은 그간 여러 방식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노동자를 끊임없이 양산시켜 왔다. 이 같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과 제도의 밑바탕에는 재벌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이 근원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비정규직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끝으로, 변혁운동진영은 앞서 제기한 과제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통일적 대오’를 건설할 임무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재벌체제로 상징되는 후기 신식국독자 축적체제가 본격적인 해체기로 들어선 지금, 이 교체기의 역동적인 정세변화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현재와 향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다양한 대중투쟁을 근본적인 재벌개혁을 위한 투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도 통일적 대오의 형성이 시급하다. 특히 자유주의세력과 정국 주도권을 다투기 위해서는 그 임무를 잠시도 망각할 수 없다.

혹자는 변혁진영이 지금처럼 뿔뿔이 흩어진 상태에서 애초 ‘노동계급 주도성’ 운운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치정세에 대한 개입을 사실상 포기한 채 현장투쟁에 더욱 전념할 것을 촉구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변혁진영은 적극적으로 정치문제에 대한 관심과 개입을 통해 거꾸로 현재의 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와 동력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과정(원인)과 결과의 변증법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정세에 대한 적극적 개입과 실천을 할수록, 서로 간의 차이가 무엇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구체화 할 수 있게 된다. 지금처럼 정치정세에 대해 별반 태도표명을 하지 않은 채, 그냥 서로 간의 ‘차이’ 만을 강조하는 것 보다는 차이를 해소하기에 훨씬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준다. 예컨대 우리가 구체적 실천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반드시 현 정국의 성격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그것이 한국사회 축적체제의 위기와 관련된 것인지 아닌지를 밝혀내야 한다. 또 그 핵심 과제에 ‘재벌문제’가 놓여 있는지, 향후 정국의 초점은 무엇이 될 것이며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은 재벌개혁 방향으로 나아 갈 것인지를 미리 예측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실제로 재벌개혁에 대한 입장이 제출되어야 한다면, 변혁진영은 어떻게 그러한 입장을 정리할지를 논의해야 한다. 즉, 재벌해체와 공기업화(국유화)가 올바른 방향인지, 만약 공기업화 요구를 전면에 내건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들 공기업에 대한 관리체계는 어떠한 것인지 등등 대중들이 궁금해 할 문제들에 대해 미리 답변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는 우리가 이렇게 정세에 대한 개입을 적극화할수록, 그리고 자유주의세력과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명확한 임무로 내세울수록, 변혁진영 내부의 통일 기운은 높아지고 단일 대오의 형성은 눈앞의 실제 과제로 떠오른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른 면에서는 또한 노동계급의 ‘정국 주도성’이 실현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현재의 분열과 각자의 왜소함을 이유로 이 같은 임무를 스스로 포기한다면, 우리에겐 단일대오 형성의 기회도 주도권 장악의 기회도 좀처럼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끝)

김정호 북경대 박사  webmaster@minplusnews.com








1979년 계엄포고 1호 위헌·무효 첫 법원 판단

“계엄포고 발령 당시 국내외 정치·사회 상황

군병력을 동원해야만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민주화 인사들이 1979년 대통령 직선제 요구 시위인 ‘YWCA(와이더블유시에이) 위장결혼’ 사건 재심에서 39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15일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조용현)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임채정 전 국회의장,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등 11명의 계엄법 위반 재심 사건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1979년 발령된 계엄포고 1호가 위헌이고 위법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공소사실 또한 무죄라고 판단했다. 당시 계엄포고 1호가 무효하다고 본 법원의 첫 판단이다.


와이더블유시에이 위장결혼 사건은 1979년 결혼식을 가장해 열렸던 대통령 직선제 요구 시위다. 그해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되자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계엄포고 1호를 발령했다. 백 소장 등은 11월 24일 서울시 중구 명동의 와이더불유시에이 강당에서 결혼식을 가장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를 열었다. 제적학생 모임인 민청협 활동가 홍성엽씨를 신랑으로 위장 결혼식을 연 뒤 500여명 앞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에 의한 대통령 선출을 반대한다”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유신헌법 철폐를 주장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듬해 백 소장 등은 계엄법 위반 혐의로 군사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최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계엄포고 1호는 △모든 집회는 허가를 받고 시위와 같은 단체 활동 금지 △언론, 출판, 보도 사전 검열 △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 금지 △ 모든 대학 휴교 조치 등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담겼다.

백 소장 등은 2014년 3월 재심을 청구해 지난 10월 재심이 개시됐다.



당시 와이더블유시에이 위장결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민주화 인사들이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을 방문했다. 권진관 전 교수(앞줄 왼쪽부터)·김정택 목사·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이상익 복지관장(뒷줄 왼쪽부터)·양관수 교수 ·임채정 전 국회의장·이우회 출판인·최민화 출판인 ·박종열 목사 ·김진영 사건 담당 변호사·고 강구철씨 유족. 사진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재판부는 당시 계엄포고 1호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발동 요건(군사상 필요할 때)을 갖추지 못했고 그 내용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계엄포고가 발령될 당시 국내외 정치·사회 상황이 경찰력만으로는 비상사태의 수습이 불가능하고 군병력을 동원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 헌법 규정이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도록 했는데, 계엄포고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영장주의를 위배했다. 계엄포고가 규정한 위법 행위 또한 추상적이고 모호해 죄형법정주의에도 어긋난다”고 밝혔다.

백 소장은 이날 몸이 아파 재판에 출석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재판 결과를 전해들은 백 소장은 “법률적으로 무죄라고 판결을 냈다는데 피해 당사자로 볼 적에 그동안 겪은 정신적인 고통, 왜곡된 인권 유린의 현장을 잊을 수가 없고 달랠 수가 없다”며 “형식적인 재판 절차로 끝낼 게 아니라 (당시) 권력을 담당하고 있던 집권자들이 진정으로 사과를 해야하고 이런 끔찍한 고문의 역사는 낱낱이 조사해서 말끔히 청산해야 하고 정신적 피해까지도 어루만져 줘야한다고 본다”고 말했다고 통일문제연구소 관계자가 전했다.


고한솔 정환봉 기자 sol@hani.co.kr

등록 :2019-11-15 17:13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7218.html#csidx8caf21c9c5b9bee92db49daf10d11f0 





‘조국사태’ 전후한 정세 동력과 변혁진영의 과제(1)



본 기고는 김정호 박사의 조국사태를 둘러싼 정국진단과 변혁운동에 대한 제언이다. 조국사태의 바탕에는 한국자본축적체제의 위기가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하는 필자의 견해가 돋보인다. 또한 이를 해결하는 근본은 재벌체제개혁이며, 변혁진영의 과제에 대해서도 매우 적극적인 제안을 던지고 있다. 이에 일독을 권한다. 분량이 많이 2회에 걸쳐 연속으로 연재한다[편집자]

‘조국사태’ 전후한 정세 동력과 변혁진영의 과제

1. 현 정세의 특징
2. 현 정국의 동력은 한국경제 축적체제의 위기로부터 온다
3. 관건은 재벌개혁

4. 재벌개혁에 대한 각 정치세력의 태도
5. 한국 변혁진영의 과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적격성 여부를 따지는 얼핏 사소한 쟁점이, 끈질기게 두 달 넘게 계속되었다. 한 쟁점이 이토록 오래도록 지속될 경우 대중들은 대개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이 같은 피로감은 자칫 정치에 대한 대중의 전반적인 무관심을 낳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집중도를 높여 강한 스트레스를 자아낸다. 만일 후자일 경우, 이 같은 스트레스는 사회적 긴장도를 너무 팽창시킨 나머지 자칫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평소엔 어떤 정치세력이나 언론들도 이렇듯 한 쟁점을 지나치게 파고드는 일을 터부시한다. 이러한 관례에 비추어 본다면 금번 조국사태는 매우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투쟁양상 역시도 매우 비타협적이다. 상대에 대한 일격필살의 ‘치명타’를 노리면서 각자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과 카드를 동원하여 전력투구(올인)하고 있다. 한쪽은 마치 놓칠 수 없는 좋은 ‘먹이감’을 발견한 듯 여기서 끝장을 보겠다는 태도이며, 이 때문에 다른 쪽도 쉽게 발을 빼지 못하고 함께 맞설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한 마디로, 정치세력들이 서로 배수진을 쳤다는 것은 이번 조국사태를 보는 사람들의 공통된 느낌일 것이다.
이 같은 정국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지금 한국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과연 현 정세를 밀어붙이는 진정한 ‘동력’은 무엇일까? 일련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1. 현 정세의 특징

정치권에서 이렇듯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이유에 대해, 어떤 이는 내년 총선 혹은 더 나아가 내후년 대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렇다면 매번 선거 때마다 정치세력들은 지금과 같이 격렬한 공방전을 벌였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매번 선거를 앞둔 공방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강도와 양상은 각기 달랐으며 그 목적 또한 똑같을 수는 없다.
현 정세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 정국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국가권력 내부의 다툼이라 할 수 있다. 즉 하급기관인 검찰 권력이 상급기관인 청와대 권력에 노골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과거 노무현정부 시절에도 한 차례 나타난 적이 있었다. 사실 조국사태가 예상치 않게 이렇듯 커지고 완강하게 지속되는 것은, 검찰 권력의 저항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좀 더 깊은 분석이 필요하다.
얼핏 검찰의 반항은 ‘부처 이기주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대통령이 검찰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을 강력히 주장하는 조국을 굳이 법무장관에 앉힌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는 것이다. 여기에 때마침 그간 ‘적폐청산’이라는 대의명분에 밀려 내내 수세에 몰리면서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한국당과 검찰이 죽이 맞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수언론이 이에 가세하였다. 이리하여 검찰은 조국과 가족에 대한 혐의사실을 계속해서 흘리고, 이를 보수언론이 대대적으로 받아쓰고, 한국당은 국회에서 강력한 정치 공세를 폄으로써 지금의 조국정국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니며, 실제 사태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표면상으로 드러난 것 이상의 좀 더 내면적인 것에 천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검찰개혁’ 사안 자체가 갖는 중요성이다. 만약 그것이 진보세력이 수구세력과 맞붙는 수많은 적폐청산 과제 중의 하나가 아니라, 현 한국사회의 보수연합세력에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결정적’ 사안이라고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럴 경우 검찰개혁은 개혁세력 입장에서나 보수세력 입장에서나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일종의 ‘전략 고지’의 성격을 지니며, 이 때문에 정치세력 간에 일전이 불가피해진다.

실제로 조국사태가 상당기간 지속되면서 검찰개혁과 관련하여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이 언론과 SNS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대체로 모아지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검찰은 한국사회에서 특별한 지위와 역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처럼 노골적 폭력에 의존하기가 어렵게 된 지배세력이, 오늘날의 형식 민주주의 진전에 발맞추어 자신들의 보호막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검찰 권력이라는 것이다. 한국 검찰은 국제적으로도 드물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치중립’이라는 명목 하에 그 수장인 검찰총장의 임기는 보장된다. 이리하여 검찰은 사실상 국민의 감시통제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며,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의 지휘통제권마저 미칠 수 없는 권력기관으로 변했다. 재벌과 보수언론 등 기득권세력들은 이러한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의 속성을 파악한 후, 대기업 사외이사, 전관예우, 김&장 같은 법률로펌에의 영입과 같은 갖가지 매수와 특혜 수단을 통해 이들 소수정예 집단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이리하여 검찰 권력은 재벌총수와 언론사주, 그리고 고위 권력층이 법을 위반할 때마다 축소수사, 불기소 등으로 그들을 보호해주는 방패막이 되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정적을 쓰러뜨리는데 있어서는, ‘피의사실 유포’를 통해 언론과 공조함으로써 그 무엇보다도 예리한 공격무기가 되었다.
여기서 검찰-언론의 밀착 사례는 해외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인데,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이 자신의 칼럼에서 소개한 책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일본의 사례, 1945-2012년』(마코사키 우케루 저)의 내용에 따르면, 일본의 자민당 내 친미파와 자주파 간의 대립에서 미국은 자주파를 견제하고 관리하는 수단으로 일본의 검찰 권력과 언론을 종종 이용한다는 것이다. 다음을 보자.

“정치인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피의자가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기 전까지 수많은 언론 보도가 쏟아진다. ‘단독’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는 대부분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또는 ‘익명을 요구한 검찰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이라고 정보의 출처를 댄다. 검찰 쪽에서 누군가가 흘려줬고, 언론이 그대로 받아쓴다는 의미다. 검찰이 ‘유포’하고, 언론이 ‘추정’한 혐의들은 독자들에게 유죄의 ‘심증’을 갖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피의자는 재판을 받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을 통해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마녀사냥을 당하는 셈이다.”(이의엽, “정치검찰을 물리쳐야 한다”)

작금의 조국사태의 진행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또 브라질의 온라인 저널 ‘디 인터셉트(The Intercept)’의 보도에 따르면, 얼마 전 브라질의 노동자당 권력이 몰락하고 룰라가 구속된 최대의 부패 스캔들 ‘페트로브라스 사건’(일명 ‘세차작전’,Operation Car Wash)에서도 현지 검찰-언론의 콤비가 큰 역할을 하였다고 전한다.
이 같은 국내외 사례들을 보노라면, 우리는 왜 그동안 삼성 이재용 등 재벌총수와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의 사주들이 그토록 많은 범법행위들을 저지르고서도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 마디로 검찰 권력은 1987년 이후 파쇼권력이 사라지고 형식적 민주화를 이룬 한국사회에서 재벌을 비롯한 지배세력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보호장치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검찰개혁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는 조국사태를 단순한 보수세력이 만난 우연한 ‘호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개혁과 수구세력 간에 ‘전략 고지’를 놓고 벌이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라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여진다. 그런 면에서 일찍이 노무현정부 시절의 개혁 추진과정에서 검찰 권력에 막혀 일차 패배의 쓰라린 경험을 겪었던 것은 개혁세력 모두에게 있어선 소중한 교훈이었다. 지금 이 ‘전략 고지’를 둘러싼 전투의 승패가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이후 정국의 양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정권은 왜 이렇듯 보수세력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조국 임명을 강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적당한 타협의 길은 없었던 것일까?
그것은 문재인정권으로서도 그 정도 강도의 ‘적폐청산’을 수행해야지만 촛불혁명을 통해 자신에게 권력을 맡긴 대중의 분노를 잠시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사회적 모순이 격화할수록, 그리고 이 때문에 대중들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 강할수록, 그것을 대변하는 ‘개혁정부’ 역시도 급진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개혁세력의 공세가 거칠어짐에 따라 보수세력의 저항 역시도 필사적이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개혁-반개혁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정세를 한 발짝씩 고양시켜가는 변증법이다. 지금은 이 같은 변증법이 작동하는 정세인 것 같다.

2. 현 정국의 동력은 한국경제 축적체제의 위기로부터 온다

여기서 우리는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 긴장도가 고조됨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과 같은 강도 높은 개혁을 계속해서 밀고 나갈 수밖에 없게 하는 대중의 불만의 강도에 주목해야 한다. 그 같은 대중적 뒷받침이 없었다면 검찰-언론-한국당 보수세력이 조성하는 입체적인 여론전에 밀려 아마 조국카드를 진작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사실 9월28일 서초동집회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집권 민주당 내부의 동요는 상당하였다. 따라서 다시금 시작된 ‘촛불집회’의 진정한 원인을 규명하는 일이 필요하다.
먼저 우리가 유념할 것은, ‘촛불집회’라는 형식은 동일할 지라도 군중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동원이 가능한 ‘상비군’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그 핵심부대는 일정하다 할지라도, 집회 군중은 매 시기 갖가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문재인정부를 탄생시킬 때의 촛불집회의 군중과 이명박정부의 수입 쇠고기 파동 때의 그것은 서로 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3년 전 박근혜 탄핵을 몰고 왔던 촛불집회의 군중 역시도 이번 조국사태의 그것과 완전히 동일할 수는 없다. 따라서 촛불집회 ‘형식’이나 누가 표면상 주최했느냐는 측면보다도, 우선 금번 대규모 촛불집회가 성립하게 된 사회적 요인에 더 주목해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한 ‘축적양식’이 근본적으로 한계에 부딪칠수록, 정치적으로는 그 변화와 개혁에 대한 요구의 폭과 강도는 높아진다. 지금의 대중의 불만과 고통은 1990년대 이래 한국사회에 정착된 축적양식의 위기를 반영한다. 그 근거는 앞서 언급한 대로, 개혁세력과 보수세력 간에 검찰개혁이라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전략 고지’를 놓고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987년 이후 파쇼권력이 사라지고 형식적 민주화를 이룬 한국 정치사회 현실에서, 검찰 권력은 재벌을 비롯한 지배세력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보호장치이다. 이것이 제거되면 통치세력은 큰 타격을 받게 되며 이 때문에 결사저항을 하고 있는데, 문재인정부는 그 저항을 기필코 돌파하기 위하여 군중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정면충돌이야말로 한 사회의 대변혁기에나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한국경제는 1990년대 들어 외주화, 고용 유연화, 비정규직 확대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소위 ‘신경영’ 정책을 추진하였다. 1990년대 후반의 IMF 외환위기를 넘긴 후 이 같은 신경영에 기반한 새로운 축적체제는 한국사회에 정착되었다. 때마침 확장기를 맞이한 세계경제와 거대한 이웃나라 중국의 고도성장은 이 같은 한국경제의 신축적체제의 발전을 위한 우호적인 외부환경을 제공하였다.
2000년대 초 이후 비정규직을 적극 활용하고 여기에 일정 수준의 응용기술을 결합시킨 한국경제는 세계시장에서 상당한 위력을 떨쳤다. 2008년 말 금융위기가 도래한 이후에도, 아직 세계 각국이 기존의 금융 중심 패러다임에서 제조업으로의 전환을 미처 이루지 못한 2014년까지만 해도 이러한 새로운 축적모델은 여전히 유효하였다. 철강, 조선, 자동차, 전자, 반도체 등 한국경제를 대표하는 주력산업은 이 시기에도 계속해서 호황을 누렸다. 비록 사회 전반으로는 비정규직이 꾸준히 증가하고 사회적 빈부격차 역시도 확대됨으로써 사회적 불안요인이 누적되어 갔지만, 그 대신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은 상대적 고임금과 안정된 직장을 보장받아 자본에 포섭됨으로써 전체적으로 노사관계는 큰 무리 없이 안정되었다. 우리는 이 시기까지를 (비정규직에 기초한) 새로운 축적양식의 상대적 안정기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상대적 안정은 세계 각국이 금융위기의 충격으로부터 점차 회복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동요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각국은 ‘제조업’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경향은 마침 앞으로 기존 경제에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몰고 올 ‘4차 산업혁명’이 접목되면서 가속화되었다. 다른 한편, 이 무렵부터 중국이 산업화 과정을 일차 마무리함으로써, 이제 중국은 한국의 거대한 수출시장이 아닌 무서운 경쟁상대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이후 정착되어 온 한국의 ‘비정규직(저임금) + 중간수준 응용기술’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중국의 노동력은 한국의 비정규직보다도 아직까지 훨씬 저렴하고, 그러면서도 기술수준은 거의 한국을 추격하고 일부 분야에선 앞서나가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특히 튼튼한 기초과학을 바탕으로 친환경에너지, 양자통신,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에서는 기초과학이 취약한 한국을 크게 앞서고 있다. 이제 한국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동안 황금알을 안겨주던 중국시장에서 밀려나고 있으며, 다른 세계시장에서도 중국에 밀려 국제시장 점유율이 점차 축소되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까지의 축적방식으로는 더 이상 한국경제의 존립이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 이제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전통산업 분야에서는 중국에 밀리고, 그렇다고 해서 미래 산업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듯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생존을 유지할 수 없으면서도, 새로운 대안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한 사회 ‘위기상황’의 전형적인 규정이다. 현재 대중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고통, 예컨대 날로 증가하는 실업자와 고용에 대한 불안감, 자영업자의 파산, 가계부채의 끝없는 증가, 젊은 청년세대들의 좌절감, 입시지옥 등은 바로 이처럼 갈수록 생명력을 다해 가고 있는 한국경제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대중은 지금 이 같은 절망적 상황에 처해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하라고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며, 그를 위한 대대적인 사회 전반의 개혁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1990년대 이후 정착되어 온 비정규직에 기초한 새로운 축적양식은, 과거 ‘개발독재하의 축적양식’(1960~1987)이 그러하였듯, 대략 ‘30년 주기’의 자기 생명을 마쳐가고 있으며 그 본격적인 해체기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가 신경영 전략의 도입과 정착기였다라고 한다면, 2000-2014년은 그 발전기라 볼 수 있으며, 조선업종 불황과 4차 산업혁명 및 중국경제의 부정적 영향이 본격화한 2015년 이후는 쇠퇴기에 해당된다. 이제 2020년 이후에는 해체기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정세를 밀어부치고 있는 동력은 바로 이 같은 축적양식의 위기가 불러일으키는 광범위한 대중의 불안과 고통이라 할 수 있다.

3. 관건은 재벌개혁

위에서 거론한 1990년대 이후의 한국 축적체제는 ‘재벌체제’로 상징되며, 따라서 당연히 재벌개혁이 초점이 된다. 그동안 문재인정부가 걸어온 2년 반의 기간을 되돌아보면, 이 핵심문제를 건드리지 않은 채 주변만 맴돌면서 우회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정치 분야에서는 박근혜,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키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다른 분야 특히 경제 분야의 성과는 미진하였다. 예컨대 경제분야의 대표적 정책이라 할 수 있는 최저임금제와 52시간 노동시간단축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갖가지 장애에 부딪쳐 그것을 주도하던 청와대 경제수석 장하성의 교체에서 보듯 거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공공기관 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약속 역시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또 다른 대표적인 문재인정부의 야심작인 북방정책 역시도 북미 간 핵협상의 부진함으로 별반 진척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내외적인 각종 악재에 휩싸인 한국경제는 나날이 악화되어 가고 있으며, 경제문제는 문재인정부의 그간의 개혁성과를 모조리 빼앗아갈 만큼 최대의 우환이 되고 있다. 이처럼 문재인정부의 지금까지의 개혁이 보여주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재벌문제를 비켜가고서는 어떠한 성과도 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30대 재벌 매출액이 GDP의 80%에 이르는 한국적 상황이 말해주듯, 사회적 부의 대부분을 재벌이 장악한 상황에서 그 점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1980년대 후반까지는 많은 문제가 주요하게는 '민주화' 문제로 귀결되었다. 그 점은 노동자, 재야지식인, 청년학생, 종교계, 농민 등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게 보였다. 왜냐하면 이들이 무슨 일을 할라치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가 나서 탄압하고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각 부문의 주체들은 민주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예컨대 노동자들이 자본가에 대항해 자신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기본 조직인 노조를 하나 만들고 싶을 때도 그러하였는데, 이 시기엔 이 같은 노조결성 조차도 '반공'의 이름 아래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이처럼 언론, 결사, 사상의 자유가 심각하게 억압받는 상황 속에서 노동운동은 제대로 성장하기가 힘들었다. 또 농민이 추곡수매가 인상과 농가부채 탕감을 요구할 때도, 학생들이 자치조직으로서의 학생회 부활과 학내 민주화를 요구할 때도 그러한 탄압에 직면하여야만 하였다. 문인과 언론인과 예술인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들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심각한 제약을 받았다. 그러기에 이들은 민주화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투쟁 대상을 '군사독재'로 설정하고 그것의 타도를 위해 자신들의 부문운동의 고유한 영역을 넘어 반독재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오늘날 재벌문제는 한국사회 곳곳에 침투되지 않은 곳이 없다. 한국의 재벌들은 '글로벌 경영'이라는 화려한 외형과는 달리, 여전히 기본적으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기반함으로써 비정규직을 양산시킨다. 한국의 재벌문제는 또한 이 같은 비정규직문제를 매개로 해서 기타 사회문제를 한층 증폭시킨다. 예컨대 교육과 청년실업 문제가 그러하며, 남녀 성차별 문제 역시 그러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는 청년실업의 주요한 원인이며, 그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를 매개로 하여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또 이 같은 비정규직의 비참한 삶을 피하기 위해 학생들은 일찍부터 입시준비에 매달려야 하는데, 이는 복잡한 교육문제를 야기시킨다. 최근의 '미투'로 명명되는 성폭력 문제 역시도 비정규직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예컨대, 직장 내 성폭력은 상 하급 간의 신분상 차이를 매개로 발생하는데, 정규직 상사와 비정규직 하급자 간의 심각한 격차는 그 같은 성폭력이 매우 손쉽게 발생할 수 있게끔 만든다.

한국의 재벌체제는 또한 우리사회의 각종 비리의 온상이자 공적체계를 무너뜨리고 비선조직의 번성을 낳게 하는 비옥한 토양이기도 하다. 얼마 전 탄핵정국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던 '최순실 사건' 역시도 좀 더 근원을 캐보면, 외환위기 이후 출현한 한국경제의 소수 ‘상위’ 재벌에의 경제력집중 문제가 놓여 있다. 외환위기 이후 살아남은 삼성, 현대, SK, LG 등 상위 재벌들은 자신들의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계는 물론 사법·관료·언론·문화계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전반에 '재벌장학생'을 키울 정도로 무소불위한 힘을 갖게 되었다. 이 같은 재벌체제야말로 불법상속, 비자금조성, 탈세, 뇌물공여, 회계조작, 정경유착 등 갖가지 부정부패와 범죄의 온상이 된다.

이렇듯 한국의 중대한 사회문제는 그 어느 것 하나 재벌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1970-1980년대에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통해 군사독재를 타도하지 않고서는 사회진보가 불가능하였듯이, 지금은 재벌체제의 근본적 개혁을 통하지 않고서는 한국사회의 발전은 꿈꿀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을 문재인정부도 잘 알고 있으리라 본다. 현 정부가 그동안 재벌개혁에 소극적이었다고 해서 아예 그것을 포기했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문재인정부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인데, 지금 웬만한 반대를 무릅쓰고 검찰개혁을 강하게 밀어부쳐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즉 검찰개혁은 재벌개혁이라는 한 단계 높은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 경제가 줄곧 하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의 생활고에 대한 불만을 달래 줄 다른 마땅한 방책이 없다.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서 검찰개혁을 통해 문재인정권은 자신의 개혁 이미지를 쇄신하여야만 한다. 그와 함께 다음 단계의 더 지난한 개혁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볼 때 지금은 현 정권이 사활을 건 승부수를 던질 때인 것이다.

여기서 잠시 문재인정권의 검찰개혁이 성공할 경우를 상정해 보자. 이 경우 재벌개혁의 본격화로 인해 한국사회는 1990년대 들어 성립된 신 축적모델 (필자는 이를 ‘후기 신식국독자’ 체제라고 부른다)의 해체과정이 보다 가시화될 것이다. 그리하여 누구의 눈에도 한국사회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이 명확해질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의 검찰개혁을 둘러싼 공방은 1987년 민주화 대투쟁과 마찬가지로, 한 축적체제를 마감키 위한 ‘선행적인 상부구조 변화’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 주도세력인 자유주의자들이 애초 의도하는 바대로 그것이 좀 더 발전적인 축적제제가 될 것인지는 별도의 문제이다. (계속)

김정호 북경대 박사  webmaster@minplus.or.kr

http://www.minplus.or.kr/news/articleView.html?idxno=8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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