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건강하십시요
인신이 구속되고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는 미결 수용자의 신분으로 접견이 매일 허용된다.
하지만 재판이 끝나고 징역형이 확정되면 기결수가 되어서 지방 교도소로 이감되고
접견도 한 달에 한 두 번으로 제한된다.
내 아내 혜숙은 결혼하기 전부터 내가 구속될 때마다 미결수일 때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나를 접견했다.
기결수일 때는 접견이 허용되는 만큼 단 한번도 빠진 적없이
아무리 먼 곳이라도 꼬박꼬박 찾아 다녔다.
그런데 이상했다.
청년 단체(민청련)를 조직 결성하고 집회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어
1 년 6 월의 형을 선고받은 나는 87 년 4 월 14 일로 만기를 채우고
네 번째 감옥문을 나서게 되었다.
대전교도소에서는 나에게 한 달에 두 번 접견을 허용했다.
혜숙은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접견하는 날을 미리 계획해서
새벽 5 시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첫 고속버스 편으로 출발해서
언제나 아침 9 시 경 첫 번으로 나를 접견 왔었다.
그런데 3 월 말과 4 월 초 두 번의 접견 기회를 혜숙은 지나쳤다.
이런 적이 없었다.
'집안에 무슨 피치 못할 일이 생긴건 아닌가???...
혹시 혜숙이 병으로 쓰러진 건 아닌가???......'
불안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단전 호흡을 하고 명상에 잠기도록 애써 가면서
불길한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해도 자꾸만 내 머리 속에서 맴돈다.
동이 틀려면 아직 한 두 시간 쯤 더 남아 있을 새벽 4 시
하루 중에 가장 어둠이 짙다는 시간에 깊은 적막을 깨고 철창문이 열렸다.
마지 못해 하는 교도관의 제지를 뿌리치고 나는 그야말로 '만기'도 없고 '만기병'도 앓아 본 적 없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남은 여생을 칠흑같은 독방에서 지내야 하는지 기약할 수 없는
세계 최장의 장기수 분들께 한분한분 작별 인사를 올렸다.
▲ 대전교도소
"선생님!!!... 몸 건강하십시요...... 건강하세요 선생님......
살아서 다시 뵙겠습니다...... 살아서 꼭 다시 만나요 선생님......"
감옥 안에서도 겹겹으로 격리해서 감옥 속의 감옥으로 감시하고 관리하는 특별사동 문을 나서면서
나는 다시 한번 짙은 어둠과 적막을 부숴 버리듯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쳐댔다.
"선생님들!!!... 몸조리 잘 하시고 건강하십시요!!!......"
"건강하신 몸으로 꼭 살아서 다시 만나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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