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아내를 지킨 사람들


그동안 혜숙의 병 간호는 구속되기 전까지 내가 근무하던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직원들과
동료들, 교인들 그리고 처제가 맡아 왔단다.

처제는 한양대 병원 간호사...
혜숙은 마침 동생이 근무하는 병동에 입원해 있다.

미처 대전까지 마중하지 못한 선후배 동료들이
삼삼오오 입원실로 몰려 온다.

손위 처남은 고등학교 선생님...
학교 수업을 조정해서 양해 구하고 오후 2 시 경 도착했다.

내가 해야만 했을 절차적 법적 보호자 역할은 처남과 처제가 맡아 왔다.
처남과 처제 나를 불러 세우더니 우선 먼저 조용히 할 얘기가 있단다.
처제가 1인용 빈 병실로 오라버니와 나를 안내한다.

나보다 한 살 연하인 손위 처남 매우 심각하고 어두운 표정이다.
순간 내 머리 속은 마치 내가 만든 스위시 영상 작품처럼

스위시 영상 작품에서처럼 자~알 정리 정돈되고 정열된 시 문장이
한줄한줄 비~잉빙 돌고 뒤집어 지고, 글자 하나하나로 쪼개지고 흩어지고
낙엽처럼 눈송이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휘날리 듯

1 년 6 개월 여 만에 만나고 보듬는 재회의 기쁨과 환희
그렇게 그렇게 비~잉빙 돌고 뒤집어 지고
뇌세포 마디마디 억만의 조각으로 쪼개 지고 떨어져 나가고

또다시 지옥같은 절망과 죽음의 공포가
뇌리에 박히면서 몸서리쳐 온다.

지금 마~악 감옥에서 빠져 나와 경황없고 충격이 클 줄 알겠지만
어차피 매제가 1 차 보호자이니만큼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대처하고 준비해야 할 것 아니냐며 처남은 내게 말문을 튼다.

약국을 하고 있던 아내는 얼굴빛이 꺼~어먹게 변하고
온 몸으로 시시각각 통증이 몰려 왔단다.

그럴 때마다 진통제를 집어 먹고 온 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약국에 딸린 방에서 떼굴떼굴 구르고 링거 주사를 맞고 했단다.

처남과 처제가 빨리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보자 했지만
아내 혜숙은 얼마 안 있으면 내가 감옥에서 나올텐데 그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석방되면 같이 가겠노라고 한사코 거절했단다.

본래 위궤양이 있어 그런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단다.

혜숙은 또 시어머니 칠순 잔치를 앞두고 준비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했단다.
그러다가 쓰러져 어느날 혜숙이 일어 나지 못했단다.

처남의 경기중 경기고 절친한 친구 중에
지역 인근 일대에서 제법 소문날 정도로 유명하게 내과병원을 운영하는 이가 있었다.

수유리 전철역 근처 '육동휘 내과'......
처남과 처제는 혜숙을 우선 그 병원으로 데려 갔단다.

두어 해 전에도 혜숙은 비슷한 증세로 집 가까운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은 적 있다.
그때 혜숙은 내시경 검사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던지
다시는 이런 검사 안 받겠다고 내게 여러번 얘기했었다.

그 당시 검사 결과로 담당 의사는 약국을 하면서 식사하는 시간과 양이 너무 불규칙하다 보니
위궤양이 좀 심해져서 그렇다고 했다.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고 자극성 있는 음식을 피하면 괜찮아 질 꺼랬다.

혜숙이 내시경 검사를 거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위궤양의 정도를 밝히려고 그토록 고통스런 검사를 받는다면
나부터서라도 그리 쉽게 받아 들일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육동휘 원장은 새로 도입한 기계라서 수면 상태로 검사하기 때문에
그전처럼 통증을 느끼지 못할꺼라고 겨우겨우 달래고 달래 검사를 받게 했단다.
검사를 마치고 내시경을 꺼내는데 검붉은 피가 솟구쳐 올라 왔단다.

육 원장은 증세가 심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소견에
여러 날 걸려야 하는 검사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했단다.

검사 결과 암세포가 위 전체적으로 퍼져 있어
수술이 불가능할 수도 있는 상태였단다.



'▷ 사랑과 희망으로 > 1. 네 번째 석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 가정을 지키시는 어머니  (0) 2008.01.22
11. 혜숙을 품에 안고  (0) 2008.01.22
13. 수술을 거부당하고  (0) 2008.01.22
14. 내가 지켜야  (0) 2008.01.22
15. 식은 땀만 흐르고  (0) 2008.01.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