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8장] ‘2012년을 점령하라’ 유언 남기고 영면
2012/11/04 08:00 김삼웅
김근태가 꿈꾼 나라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였다.”(인재근)
그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자 정치민주화와 경제민주화에 생애를 바쳤다. 그는 불의에는 강하되 약자에는 따뜻한 품성이었다. ‘투사’의 이미지 때문에 흔히 극단적인 인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그는 혁명보다 개혁, 투쟁보다 참여를 선택한 민주주의자였다. (한승동)
김근태는 말했다.
“나는 정직과 진실에 이르는 길을 국민과 함께 가고 싶다. 정직하고 성실한 99%의 사람들이 무시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믿는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
“정치가 다만 현실일 뿐이라면 개선과 개혁은 어떻게 가능하며, 왜 우리가 피흘리며 군사독재와 싸워야 했는가.”
이명박의 반동적 ‘민간독재’에 분노를 터뜨리며 ‘2012년의 결단’을 추구했다.
2010년 가을부터 그의 말투는 어눌해지고, 거동이 불편해진 데다, 두 어깨가 굽어져갔다. 고문의 깊은 트라우마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민주화의 훈장’이라고 덕담을 건넸으나 결국 그는 ‘훈장’을 내세우지 않았다. “모든 고결한 혼들은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까뮈) 그대로였다.
그가 생애를 두고 추구하는 목표가 민주주의였다면, 병마에 쓰러질 때까지 스스로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인간의 존엄’이었다. 민주주의적 ‘목표’는 인간존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수단치였다. <한겨레> 성한용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담론과 슬로건’을 묻자 “경제의 인간화라고 할까,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정책을 도입하자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근태를 비롯하여 수많은 선각(지)자들, 무릇 권력을 탐하는 쿠데타 패거리가 아닌,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선 혁명가와 민주인사들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만이 ‘인간의 존엄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근태가 군부독재 시절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던진 것이나, 정치판에 진출했던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해서였다. 그리고 탁류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켜냈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불변의 가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애착은 종교의 엄숙주의에 가까웠다. 그가 운명했을 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민주주의자 김근태’란 정명을 붙였다. 그에게 하나의 수식어만 주어진다면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자’다. 그래서 <민주주의자 김근태 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덧붙이거니와 김근태가 추구한 본원적인 가치는 ‘인간의 존엄’이었고, 민주주의는 이를 위한 수단이고 외피였다. 그의 말과 글과 행위를 분석하면, 인간을 경외하고 인권을 존중하면서 소외된 사람들을 보듬는 따뜻한 속살이 드러난다.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소록도를 방문하여 한센병 환자들을 껴안은 것이나, 서울역 노숙자들을 찾고 노숙을 체험한 일 등은 입이나 구호로만 떠드는 사람들의 ‘소외계층 사랑’과는 격이 달랐다. 지난날의 힘겨웠던 삶이 내면을 깨끗하게 하고, 내면에 꽉찬 휴머니즘이 ‘인간의 존엄’으로 배양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인류의 발전이나 문명의 진보는 ‘인간의 존엄’을 향한 긴 여정이다. 모든 철학ㆍ사상ㆍ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고 확산하기 위한 것일 터이다. 천부인권, 주권재민, 사인여천이 모두 이에 속한다.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피코 델라 미란돌라(1463~1494)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하여>(1486)를 간행하여 이슈로 제기한 이래 학문과 철학, 종교적으로 연구가 지속되었다. 대표적으로는 프린스턴 대학 교수 조지 카텝이 근년에 쓴 <인간의 존엄성>이다.
카텝은 “인간의 존엄은 인간 개개인이나 인류 전체의 정체성에 부여된 실존적 가치”라고 정의한다. 인간의 존엄이 도덕적 가치가 아닌 실존주의적 가치라는 주장이다. “정체성이 흔들리면 존재 자체도 위태로워진다. 따라서 문제는 실존적이다. 인간 존엄성이라는 관념은 개인 혹은 인류의 적절한 정체성에 대한 인식, 즉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개인, 그리고 다른 종들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인류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을 강조한다.”(조지 카텝 지음, 이태영 옮김, <인간의 존엄>, 말글 빛냄)
이제 마무리 하자.
김근태의 이름에는 동시대의 인물들과는 크게 다른 실존적 울림이 담긴다. 젊은 시절 그는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기를 원한다”며 독재와 싸우고 모진 놈들을 만나 지옥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스노부들이 판치는 정치판에서 정권교체와 정치개혁에 온몸을 던졌다. 많은 일을 이루었으나, 정상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하지만 삿된 정상보다 그의 길과 역할은 훨씬 값지다.
그의 생애는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민중의 아픔, 민주주의의 상처를 자신의 상처로 겪으면서, 반동적 권력 그리고 시대의식이 없는 도구적 지식인ㆍ정치인들과의 힘겨운 싸움이었다. 두려움 없는 저항정신과 사심없는 비판으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심했으나, 따뜻한 심성과 깨끗한 도덕성으로 이를 극복하였다. “2012년을 점령하라”는 유언과 함께 대회전을 앞두고 파란많은 생을 접었다.
64세, 아직 할 일이 많은 나이였다.
하지만 그는 범인들이 600년을 산대도 하기 어려운 일을 다하고 갔다. 새는 떠나도 울음소리는 남듯이, 그는 실존적 긴 울림을 국민들 가슴에 남긴 채 홀연히 떠났다. 어느 죽음인들 애절함이 없으련만, 김근태 선생의 때 이른 죽음에는 애절함과 더불어 통절함이 묻어났다. 많은 국민이 애통해하였다.
아시아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도 벵갈 출신의 작가 타고르의 시, <혼자서 걸어가라>를 김근태 선생의 영전에 헌사한다.
혼자서 걸어가라
당신이 불러도 그들이 대답하지 않거든 혼자서 걸어가라.
그들이 면벽한 채 움츠리고 떨고 있다면
오, 고독한 이여,
마음을 열고 혼자 외쳐보라.
황야를 건널 때 그들이 당신을 버리고 떠난다면,
오, 고독한 이여,
가시밭길을 내딛고,
붉은 피를 흩뿌리며, 혼자서 걸어가라.
폭풍이 몰아치는 맘 그들이 빛을 밝혀주지 않는다면,
오, 고독한 이여,
고통의 번갯불로, 당신 가슴에 불을 붙여라.
그리고 홀로 타게 내버려두라.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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