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내가 지켜야


나는 피가 온 몸에서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손가락 끝으로 발가락 끝으로

술술술 새나가는 것 같았다.

머리에 배어 있는 피가
등줄기로 마구 흘러 내리는 것 같았다.

현기증이 왔다.
몸이 비틀리고 휘청거렸다.
털썩 주저 앉았다.
앞이 캄캄했다.

처남은 나를 부축하더니
당신이 잘 버텨 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무너지면 혜숙은 어떡하고
가정은 어떡하느냐고 했다.

혜숙은 전혀 모른다고 했다.
혜숙은 그저 위궤양이 심해서
간단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안단다.
어머니도 아이들도 전혀 모른다고 했다.

지금부터는 모든 일을
내가 맡아서 판단하고 처리하고
헤쳐 나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처남과 처제에거 물었다.

수술 결과는 어떤가......
아내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처남은 지금 이 순간부터
혜숙의 보호자 역할을
전적으로 내가 맡아 나가야 한다고 했다.

우선 주치의를 만나서
직접 들어 보라고 했다.

모든 일을 직접 맡아서 알아 보고
처리해 나가야 할 꺼라고 했다.

참으로 지극히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나는 처남이 야속했다.

야속했다기보다는
치떨리는 절망과 공포의 나락에서
밀려드는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외로움을 헤쳐 나갈 지푸라기가 필요했고
기댈 언덕이 필요했던 것이다.

전혀 알지도 못하고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져 온 채로
지금 마~악 감옥에서 빠져 나왔는데.....

나는 지금 제정신이 아닌 채로
감옥보다 더한 절망과 공포에 시달려
몸서리치고 있는데.....

하지만 처남의 말은 백번 옳다.
내가 버텨야 한다.

내가 맡아야 하고 내가 지켜야 한다.
내가 판단하고 내가 처리하고
내가 헤쳐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아내가 앞으로 겪어야 할
지옥같은 고통과 절망과 공포는
나보다 훨씬 더 크고 심할 테니까.....

아~~~!
아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니.....
내 사랑 혜숙이 죽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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