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주치의와 대면


드디어 내 아내 혜숙의 온전한 보호자로
주치의 김용일 박사와 마주 앉았다.

재판장 앞인지... 저승사자 앞인지...
뒤엉킨 심사로.....


▲ 주치의 김용일 박사


김용일 박사는 68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78년부터 94년까지 한양대의대 일반외과 교수를 거쳐
94년부터 삼성서울병원 외과에서 일반외과장, 소화기센터장, 성대의대 주임교수 등을 역임한
소화기암 수술분야에 대가이시다.

내 후배 동료이자 혜숙의 친구 천영초가
굳이 따라 들어와 옆자리에 배석했다.

판결문과 형량 그리고 운명을
직접 확인하고 증거하려는 듯.....

법정에서처럼
인정 신문부터 시작한다.

"부군 되신다고요?......

그동안 어떻게......?"

당연했을 김용일 박사의 첫 번째 신문 사항에 대한 답변부터
그러고보니 나는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었다.

순간 뭐라고 진술해야 할지 당황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지둥 두리번거리는 사이
혜숙의 친구 천영초가 눈치빠르게 수습하려 나섰다.

"오늘 아침에 대전 교도소 감옥에서 마~악 나왔어요...
그동안 1 년 반두 넘게 징역살다가요......"

나는 깜짝 놀라 정신이 번쩍했다.
나보다도 처남과 처제는 더 했다.

김용일 박사는 더욱 더 놀란 표정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하면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천영초 역시

이거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큰 실수를 했구나 싶었던지
뒤따라 놀라면서 어쩔줄 몰라 했다.

한동안 혼란스럽고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천영초는 기왕에 내친김이라 싶었던지 한번 더 까발리면서
진술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인해 준다.

"저.... 우리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다가 구속되었어요.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석방된 거라구요......"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 봐도 그렇다.
나는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감옥을 네 번씩 살고
그 안에서 절도 사기 횡령 등 파렴치범들과
강도 강간 폭력 등 흉악범들을 셀 수 없이 만나고 보아 왔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밖에서 만나거나 본 적은 없다.
내가 가까이 알거나 그저 막연하게나마 알만한 사람들 중에도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 징역을 살았다는 말조차 전해 들은 기억도 없다.

사람사는 세상이 이토록 천차만별인데
밑도끝도 없이 징역형을 살다가 새벽에 감옥문을 나섰다는 사람을
오후에 탁자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마주 앉아 상담하고 있다는 사실은
김용일 박사를 저으기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하게 만들 법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제서야 해외에서
마~악 돌아왔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사람이

아무리 사정이 그렇더라도
좀 더 빨리 올 수는 없었느냐고 지적하면서

뭔놈의 사정인지 환자 대신으로
따끔하게 훈계 한 번 하고 넘어 가려던 주치의는
느닷없는 상황 변화에 충격을 받을 만했다.

계속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긴장이 감싸고 도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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