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비는 마음 / 문익환


개똥 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마는
조개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 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 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그러니 벗들이여!
보름달이 뜨거든 정화수 한 대접 떠 놓고
진주 같은 꿈 한자리 점지해 줍시사고
천지신명께 빌지 않으려나!


벗들이여!
이런 꿈은 어떻겠오?
155마일 휴전선을
해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
푸른 바다가 굽어 보이는 산정에 다달아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땅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 보면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그도 아니면
이런 꿈은 어떻겠오?
철들고 셈들었다는 것들은 다 죽고
동남동녀들만 남았다가
쌍쌍이 그 앞에 가서 화촉을 올리고
- 그렇지, 거기는 박달나무가 있어야지 -
그 박달나무 아래서 뜨겁게들 사랑하는 꿈,
그리고는 동해바다에서 치솟는 용이 품에 와서 안기는 태몽을 얻어
딸을 낳고
아침 햇살을 타고 날아오는
황금빛 수리에 덮치는 꿈을 꾸고
아들을 낳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그도 아니면
이런 꿈은 어떻겠소?
그 무덤 앞에서 샘이 솟아
서해 바다로 서해 바다로 흐르면서
휴전선 원시림이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만주로 펼쳐지고
한려수도를 건너뛰어 제주도까지 뻗는 꿈,
그리고 우리 모두
짐승이 되어 산과 들을 뛰노는 꿈,
새가 되어 신나게 하늘을 나는 꿈,
물고기가 되어 펄떡펄떡 뛰며 강과 바다를 누비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밝고 싱싱한 꿈 한자리
평화롭고 자유로운 꿈 한자리
부디 점지해 주사이다









겨울 공화국 / 양성우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눈을 뜨면서
뜨겁게 뜨겁게 숨쉬는 것을 보았는가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갈아앉으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부르면서


불끈 불끈 주먹을 쥐고
으드득 으드득 이빨을 갈고 헛웃음을
껄껄걸 웃어대거나 웃다가 까무라쳐서
한꺼번에 한꺼번에 죽어가는 것을
보았는가


총과 칼로 사납게 윽박지르고
논과 밭에 자라나는 우리들의 뜻을
군화발로 지근지근 짓밟아대고
밟아대며 조상들을 비웃어대는


지금은 겨울인가
한밤중인가


논과 밭이 얼어붙는 겨울 한때를
여보게 우리들은 우리들을
무엇으로 달래야 하는가


삼천리는 여전히 살기 좋은가
삼천리는 여전히 비단 같은가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다


날마다 우리들은 모른 체하고
다소곳이 거짓말에 귀기울이며
뼈 가르는 채찍질을 견뎌내야 하는
노예다 머슴이다 허수아비다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잠든 아기의 베개맡에서
결코 우리는 부끄러울 뿐


한 마디도 떳떳하게 말할 수 없네
물려 줄 것은 부끄러움뿐


잠든 아기의 베개맡에서
우리들은 또 무엇을 변명해야 하는가


서로를 날카롭게 노려만 보고
한 마디도 깊은 말을 나누지 않고
번쩍이는 칼날을 감추어 두고
언 땅을 조심 조심 스쳐가는구나


어디선가 일어서라 고함질러도
배고프기 때문에 비틀거리는
어지럽지만 머무를 곳이 없는
우리들은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들을 모질게 재갈 물려서
짓이기며 짓이기며 내리모는 자는
누구인가 여보게 그 누구인가


등덜미에 찍혀 있는 우리들의 흉터,
채찍 맞은 우리들의 슬픈 흉터를
바람아 동지섣달 모진 바람아
네 씁쓸한 칼끝으로도 지울 수 없다


돌아가야 할 것은 돌아가야 하네
담벼랑에 붙어 있는 농담거리도
바보 같은 라디오도 신문 잡지도
저녁이면 멍청하게 장단 맞추는 TV도


지금쯤은 정직해져서
한반도의 책상 끝에 놓여져야 하네


비겁한 것들은 사라져 가고
더러운 것들은 사라져 가고


마당에도 골목에도 산과 들에도
사랑하는 것들만 가득히 서서
가슴으로만 가슴으로만 이야기하고


여보게 화약냄새 풍기는 겨울 벌판에
잡초라도 한줌씩 돋아나야 할 걸세.


이럴 때는 모두들 눈물을 닦고
한강도 무등산도 말하게 하고
산새들도 한번쯤 말하게 하고


여보게
우리들이 만일 게으르기 때문에
우리들의 낙인을 지우지 못한다면
차라리 과녁으로 나란히 서서
사나운 자의 총끝에 쓰러지거나
쓰러지며 쓰러지며 부르짖어야 할 걸세


사랑하는 모국어로 부르짖으며
진달래 진달래 진달래들이 언 땅에도
싱싱하게 피어나게 하고
논둑에도 밭둑에도 피어나게 하고


여보게
우리들의 슬픈 겨울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일컫게 하고,
묶인 팔다리로 봄을 기다리며
한사코 온몸을 버둥거려야
하지 않은가


여보게







민족주의자의 길 / 장준하


1

민족주의자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한 인간이 민족적 양심에 따라 자기의 생애를 살아가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의 개인적인 인간적인 삶, 고달픔과 보람을 민족의 그것과 함께 하는 것이리라.

민족적인 삶이 헐벗고 굶주리고 억압받고 있을 때 민족적인 양심에 살려는 사람의 눈물과 노력은
모두 이런 민족적인 간난을 극복하려는 데 바쳐진다.
하물며 민족이 민족으로서의 존재조차 없어지려 할 어두운 시절에는, 민족이 외세의 침략에 눌리어
그 마지막 숨통이 끊어지려는 암울한 시절에는 민족주의자는 자기의 생명조차 민족적인 삶을 되찾는 싸움 속에 서 불태우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민족의 생명, 민족의 존재가 이미 없어져 버릴 때는
민족의 한 사람인 그의 개인적인 인간적인 생명과 존재조차 없어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적인 생명과 존재와는 따로 있는 자기, 민족의 생명이 끊어진 뒤에도 살아 있는 자기,민족이 눌리고 헐벗고 있을 때
그렇지 않은 자기는 이미 자기 아닌 자기이며, 그렇기에 자기의 생명을 실현하는 인간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민족적 양심에 살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자기의 삶을 사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참으로 인간적인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살아간 길의 갈림점이었다.
애국자의 길과 매국노의 길, 민족적 사랑의 길과 배신의 길이 갈리는 길목인 것이다.
그렇기에 비민족․반민족적인 길에 빠져버리거나 스스로 택하는 자의 모든 '개인적인' '인간적인' 번뇌는
아무리 그것이 절실하고 불가피하고 자기대로 푸념할 수 있는 것일지라도 이미 진실로 '인간적인' 것은 아닌 것이다.
인간의 가장 고귀한 모습, 또 그의 본질은 자기를 성장시켜 가고 실현해 가는 것이지 노예의 부귀와 영화에 있지 않은 것이다.
저 길바닥에 던져진 한 개의 돌멩이조차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끝까지 그가 돌임을 지켜갈 때
그는 자기를 실현하고 있다고 하겠거니와, 설사 옥으로 바뀐다 하더라도 그때는 하나의 돌은 아닌 것이다.


하물며 노예의 부귀와 영화야 참으로 인간적인 영광과는 정반대의 길이며,
오히려 노예 가운데도 이를 벗어나려는 싸움이야말로 고귀한 인간적인 삶의 모습인 것이다.
불행하게도 민족적인 삶의 길이 험난했던 민족의 경우에는 살아가는 일조차 이렇게 험난했다.
말 그대로 말은 쉽지만 행동은 힘들었고, 그랬기에 구슬처럼 맑게 살아간 젊은 시인조차"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옥중에서 조차 절규하지 않았는가?


우리 민족의 지난날, 더욱 가까이 최근에는 정말 험난의 연속이었다.
세계의 시궁창이 이리로 흘러들어 왔고, 세계의 모순, 세계사의 범죄가 이 땅을 무대로 일어났다.
산 곱고 물 맑은 강토에 살던 착한 우리 백성들은 홍수처럼,
악마의 불길처럼 밀려드는 이 세계사의 시궁창 물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사의 악 중의 악인 제국주의가, 악마 중의 악마인 군국주의가 그 가장 표독한 이빨을 우리 민족에 들이댔던 것이다.
누리고 뺏고 마침내 말도 빼앗고 성조차 갈려고 했다.
까닭 없는 싸움터로 내몰아 앞세워 죽이고, 마지막 땀방울까지 빼앗아 갔고, 인류의 족보 위에 한민족의 존재조차 말살하려는 것이었다.

하건만 이 표독한 이빨 앞에서도 끈질긴 항쟁이 있었다.
비록 총칼 든 전투, 이름난 의사․열사가 아니더라도 들판에서, 공장에서, 낯선 이국 땅에서 끊임없이 싸웠다.
이 싸우는 민중에게는 바로 민족적인 삶이 자기의 개인적인 삶이었고,
국토가 뺏기는 것은 생활의 터전이 뺏기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광복은 생활의 터전과 자기의 인간적인 삶을 되찾는 길이었다.


이와는 달리 애국이 자기의 삶과 일치하지 않고, 지식과 논리가 삶의 터전에
뿌리박지 못하고 있던 일부 지식인 지도층에서는 민족에 대한 배반도 일어났다.
하지만 항쟁의 길이 고달프고 외로운 듯했지만,
그 실은 온 민중과 함께 있는 것이기에 그렇지 않으며, 그렇기에 그 승리의 영광은 더욱 보람찬 것이었다.


2

장구한 싸움 끝에 일제는 패망하고 우리 민족에게는 광복이 왔다.
빼앗긴 자가 망하고, 억누르던 자가 쫓겨가고, 포악한 침략전쟁이 패망하여
우리 민족의 삶을 다시 찾은 이 해방의 순간보다 더한 감격이 어디 있겠는가?


민족해방의 환희, 그렇게도 그리던 기쁨, 이 기쁨을 기다리며 참고 견딘 어두운 고통, 이 고통스러운 싸움 속에서 그리던 희망,
그 기쁨과 희망을 이제 현실로 실현하려는 설렘, 이 벅찬 설렘을 무엇에다 비길 수 있으랴.
이 벅찬 설렘이 하나하나 실현되고 알차게 영글어 갔다면 이에 비길 행복이 어디 있으랴만,
세계사의 흐름은 이렇게 쉽사리 우리 민족의 앞길을 밝혀주지 않았다.

압제자 일본 군국주의를 무장해제하기 위해 남북한에 나누어 진주한 외국군은
군사적 진주와 점령에 그치지않고 이것을 정치적 진주와 점령으로 굳혀갔다.
세계사의 새로운 모순, 동서 냉전체제라는 새로운 범죄가
우리의 강토, 우리 민족의 생명 위에서 새로운 운명을 장난질했다.


그 위에 세계사의 이와 같은 새로운 모순이 우리 민족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이 새로운 외세에 의한 민족의 양분이란 것을 분명히 깨닫지 못하고, 이를 권력장악의 조건으로 이용한
일부 신생 권력층에 의하여 안에서, 밖에서 강요한 양분체제에 대응하였다.


통분스러운 일이지만 이렇게 민족은 양분되었고, 통일을 갈망한 민주의 염원은
현실적인 힘을 얻지 못하고 내외가 상응한 분단체제에 묶여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원통한 냉전체제에 의한 민족의 분단은 기억하기도 참혹한 열전으로까지 터지고 말았다.
세계의 갈등이 그 가장 참혹한 대결을 우리 민족을 택하여 벌이고 말았다.


도대체 우리에게 언제 그토록 불구대천의 원수로 갈라진 무슨 주의가 있었고,
그 주의에 따라 나라와 민족을 두 동강 내어 살기를 원했는가?
그뿐인가? 역사의 똥인 전쟁, 그 가장 더러운 동족상잔을 우리가 청부맡아 했다니
오천년 민족사 앞에, 아니 인류의 역사 앞에 무슨 낯을 들 수 있으랴.


회상하기도 끔찍하고 몸서리치기 싫지만 다시 다짐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에 평화보다 이긴 승자는 없다.
하물며 동족과 형제끼리 싸움에 평화보다 더 영광스러운 승리는 없다.


어떻든 우리 민족은 금세기 가장 더러운 세계사의 범죄를 청부맡았다.
전후 냉전체제에 의한 남북분단은 적어도 두 가지 의미에 있어서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자기부정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는 이 분단에 대응한 국내세력의 움직임이 어떠했든 기본적 계기는 외세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분단된 민족은 역사의 실천단위로서는
적어도 하나의 주체적 자기존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둘로 나누어진 그 한 쪽은 어느 쪽도 하나의 주체적단위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강변은 분단의 합리화를 위한 거짓 명분일 뿐이다.


어떻든 이 분단체제 그 세계적 주범인 양극 냉전체제도 긴장완화니 해빙이니 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 갔다. 미국과 소련, 미국과 중공의 대결과 대립의 완화,
소련과 중공의 동맹과 대립의 과정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주변정세를 바꾸어 놓았다.


적어도 냉전체제의 최전선에서 총칼을 앞세운 대결은 의미를 잃었고,
오히려 대국의 공존을 방해하는 것으로도 보이게끔 되었다.
이와 같은 양분 무력대결의 근본조건이 바뀌어 가는 상황 아래 우리 민족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외세에 의한 자기분열을 강요했던 자기부정의 조건이 스스로 변화하는데,
그래도 우리는 어리석게도 자기부정을 고집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3

이와 같은 새로운 정세 앞에서 우리 민족이 해야 할 결단은 스스로 분명해진다.
그것은 갈라진 하나를 다시 하나의 자리로 통일하는 것이다.
이직도 남아 있는 분단의 외적 조건을 주체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과 함을 갈라진 양쪽에서 함께 기울이며 기르는 것이다.


민족적 양심에 살려는 사람 앞에 갈라진 민족, 둘로 나누어진 자기를 다시 하나로 통일하는 이상의 명제는 없다.
이를 위한 안팎의 조건을 만들어 가는 일 이상의 절실한 과제는 없다.
어떤 논리도, 이해도 이 앞에서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


이런 대원칙 아래서 굳어진 논리, 고집스러운 자세를 고쳐 가야 한다.
근본과 말단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 무엇이 앞선 당위이며, 가치며, 무엇이 거기에 따르는 것인가를 가려야 한다.


모든 통일은 좋은가? 그렇다.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다.
통일이 갈라진 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이며,
그것이 민족사의 전진이라면 당연히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은 그 속에 실현될 것이다.

공산주의는 물론 민주주의, 평등, 자유, 번영, 복지 이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통일과 대립하는 개념인 동안은 진정한 실체를 획득할 수 없다.
모든 진리, 모든 도덕, 모든 선이통일과 대립하는 것일 때는 그것은 거짓명분이지 진실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의 통일은 이런 것이며, 그렇지 않고는 종국적으로 실현되지도 않을 것이다.


지난 7월 4일 남북한 공동성명이 발표되고
8월말과 9월초에는 적십자회담을 위하여 갈라졌던 동포가 27년만에 오고갔다.
민족적 양심에 살려는 사람의 지상과제가 분단된 민족의 통일이라고 할 때
어떻게 이 사실을 엄청난 감격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말로 따지고 글자로 적기 전에 콧날이 시큰하고 마침내 왈칵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으랴.


이것을 감상이라고도 하고 감정적이라고도 할지 모르지만 이 감상이 감정 없이
그가 하나의 인간, 민족분단의 설움으로 지새워 온 민족양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생활에 바빠, 일에 쫓기어 이런 소식에 늦은 우리 동포가 있을지 모르나 그 모든 민중의
소리내지 않는 가슴의 밑바닥에 파도처럼 철렁이는 감격을 누가 부인할 수 있으리오.
그리고 이 뜨거운 눈물과 감동과 열정 없이 어떻게 얼음처럼,
소처럼 차디차게 얼어붙었던 분단의 벽이 녹아 내릴 수 있겠는가?


실로 남북을 잇닿은 전화줄은 한두 사람의 대화의 수단이 아니라
갈라졌던 형제 동포의 눈물과 호소와 환희를 서로 만지는 가슴이며 손이어야 한다.
남북공동성명과 적십자회담의 결과로 진실로 평화적인 민족통일의 길이 열렸다면
이보다 더 위대한 일은 세계사에도 우리 민족사에도 없을 것이란 말을 감히 하겠다.


생각해 보면 지난 4반세기의 민족분단은 얼핏 말하던 이념과 제도의 차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민족 한 사람의 생활의 분단이자 곧 파괴요, 나 자신의 분열이요 파괴였다.
남북한에 걸쳐서 민족의 정력은 모두 민족적 적대, 자기파괴를 위해 고갈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 가난이, 부자유의 최대의 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민족분단에서 찾지 않을 수 없다.


그보다 더는 이산가족, 흩어진 가족이란 말에도 보이듯, 우리들 한 집안 또 한 사람의 가장 큰 인간적 불행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따져 생각해 본다면 그 역시 민족분열에서 왔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부모 형제가 만나지 못하고, 부부가 헤어져 살고, 형제끼리 죽이고 죽었고, 어버이와 자식을 잃은 불행이 어디에서 왔던가?
남북 분열, 적대적 대결로 남북 양쪽 모두 정치․경제․사회․문화가 얼마나 삐뚤어져 달리기만 해서
마침내는 모두 절름발이가 될 지경에 이르고 말았지 않은가?


그러하기에 우리 민족의 양분, 무력대결은 휴전선의 튼튼한 철조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 또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것의 파괴와 왜곡을 뜻한다.
진실로 남북공동성명과 적십자회담이 민족평화통일의 첫 발이 된다면 그것은 우리 민족 모두의 인간적 고통의 해결이요,
민족사가 자기파괴와 왜곡의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막을 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4

우리가 남북공동성명과 적십자회담과 같은 역사적인 감격을 통째로 받아들이면서도
'정말', '진실로'와 같은 군더더기 같은 말을 그 앞에 붙이지 않으면 안될 애절한 사연이 있다.
그것은 이제 다시는 이 민족적 감격이 짓밟혀 버리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국제정세나 국내정치적 이유로도 적어도 지금까지 진전된 남북관계를 후퇴시키거나
동결시킬 명분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국제정세나 이 새로운 후퇴와 동결을 강요한다면 우리는 거기에 맞서 싸워야 하며,
국내정치적 이유로 이런 일이 획책된다면 우리는 오천만 민족의 이름으로 이를 용납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는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남북공동성명과 적십자회담이 가질 수 있는 골자라는 점이나
부정적인 측면을 냉정하게 가리어 염두에 두고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자주평화통일이 전체 민족의 염원이었으되 그 진전이 방해받아 온 것은 기본적으로는 국제정세의 탓이었고,
이번 계기도 국제정세의 발전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국제 정세와 주변 열강의 이해가 우리의 남북의 긴장을 요구하기도 했고, 이제는 긴장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조건이 이제 다시 긴장을 요구할지, 아니면 긴장완화와 무력만 사용하지 말고 대결하면서 공존할 것을 요구할지 모른다.
아마도 국제정세와 주변 열강은 이런 남북의 평화공존을 요구함이 분명할 것이다.
이것은 무력대결보다는 나은 것이지만 진정 우리가 바라는 통일의 길은 아니다.
만약 이와 같은 주변 열강의 요구에 따라 남북한이 평화공존으로 동결되고, 그 이상의 통일에의 노력을
실질적으로 포기한다면, 그것은 더욱 분단을 항구화하고 통일과는 반대쪽으로 치달리게 된다.


그 다음 지금 남북한의 정권 담당층은 주변 열강의 요청과 함께 긴장완화에 적극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밖으로부터의 요청일 뿐 아니라 안으로부터의 요청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 만약 주변 열강의 요청이 현상동결일 때 이와 맞서서 통일에의 길을 전진시킬 수 있을지 그것이 문제다.
우리는 허심탄회하게 말하여 이러한 점을 일부러 의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는 미래를 보는 거울이며,이 지난날의 거울에 비추어볼 때 어찌 이런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두 번 실패를 되풀이하는 어리석음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물리치는 길은 양쪽에서 함께 주변 열강이 우리의 통일에의 길과 반대될 때는 물리칠 각오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이것은 지배의 발판을 민족적 양심, 민주에게 두었을때만 가능한 일이요,
적어도 민중은 이런 각오를 굳게 다지지 않는다면 또다시 지고 말 것이다.
통일은 지배층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민중에게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적지 않은 염려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무력대결을 회피하고 긴장완화와 평화를 얻는 데 성공해가고 있다.
통일이 급하고 지상과제이기는 하되 전쟁은 참혹하다.
참혹할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그것은 통일로 가는 가능한 수단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참혹한 경험을 통해 그것을 배웠다.
전쟁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잃게 만들었음을 거듭 확인해야 한다.


새삼 이를 확인하는 것은 불행하게도 역사는 때로 작용과 반작용을 되풀이하는 수가 있다.
지금 이렇게 추구되고 있는 긴장완화와 평화는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지 한치도 물러서서는 안 된다.
우리뿐이 아니다. 저 참혹한 월남전쟁 30년 동안 모두가 죽어가고 있지,아무도 이기지 못함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이 귀중한 교훈을 새겨서 귀한 옥동자를 다루듯 벅찬 희망과 감격을 안고도 그 어루만지는 손길은 조심스러워야 하고,
지금부터 온 민중이 이 어렵게 얻은 옥동자를 떨어뜨려 다치지 말아야 한다는 굳은 결의가 있어야 한다.


또한 지금 통일은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새로운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는 민족통일을 민중과 달라, 현실적으로 이를 다루는 정부나 관계기관의 일로 보이게 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는 고향이 그립다든지 흩어진 가족이 보고 싶다든지 하는 감정적 차원에 그치게 하여
직접 이산가족이 아니라면 민중의 실생활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릴지 모른다.


통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민중의 일이다. 통일은 감상적 갈망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루하루 사는 생활과 직결되는 것이다.
통일 없이는 가난, 부자유, 이 모든 현실적 고통은 결코 궁극적으로 해결되지 못함을 알고 알려야 한다.
그러므로 통일문제는 민중 스스로가 관여하고, 따지고, 밀고 나가야 한다.


현재 진전되고 있는 남북문제는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점들은 보다 보충하고 염려해야 할 점이지,
남북관계의 진전 자체를 부정해야 할 근거는 못됨은 변함이 없다.


 5

어떻게 하면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보충하고 더욱 진전시킬 수 있을까? 여기에 우리의 노력이 집중되어야 한다.
그 부정적 측면에 빠지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하고, 그 긍정적인 면을 더욱 앞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먼저 우리는 분단의 민족사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분단의 기본적 계기는 외세였지만, 우리의 힘이 이런 외세를 주체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만 책임을 통감해야 하고,
 더구나 분단을 더욱 굳혀만 온 지난 26년을 반성해야 한다.

특히 이점에서는 집권층을 비롯한, 또 지식인들까지 포함한 우리 사회의 상층부가 더욱 진지하게 반성하고 절실하게 책임을 느껴야 한다.
분단체제의 모든 가치와 논리, 그리고 정책과 그 실행을 반성해야 한다.


다음으로 이 반성이 진실하고도 진지했다면 그것은 현재의 우리, 현재의 나의 희생을 요구함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이 희생은 보다 가치 있는 삶과 세계로의 전진임이 물론이다.
나의 사상, 주의, 또한 지위, 나의 재산, 나의 명예가 진실로 민족통일에 보탬이 되지 않는분단체제로부터 누리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를 과감하게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위대한 자기 희생 없이는 통일은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은 또 새로운 반역이 될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분단체제 때문에 누리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것, 우리의 것이 아니며, 언젠가 민족 앞에 희생해야 할 것이다.
이 위대한 희생을 거름으로 민족통일은 이루어지고, 통일조국은 새롭게 자라날 것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정치적 자유의 확보를 위해 싸웠다. 정치적 자유는 그 자체도 기본적인 것이지만,
보다 큰 민족적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기에 더욱 중요한 것이다.
오늘 민족적 자유가 현실적으로는 확대되고 있음을 인정 안 할 도리가 없다.
 다만 그 과정,그 방법에서 정치적 자유의 억압으로 민족적 참여가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 과정을 탓함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적어도 집권자에 의해 확대된 만큼의 민족적 자유를
민족 전체가 향유할 정치적 자유가 확보되어야 함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이를 위한 법적인 또는 현실적 제조치가 단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민족 전체에게 확보되지 못한 민족적 자유란 민족 전체에게는 새로운 외압이며,
따라서 이것은 말만 있고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확대된 자유 위에 통일을 향한 전진이 이루어져야 한다.
통일을 향하여 경제구조가 바뀌어야 하고, 국토계획이 마련되어야 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함양하는 문화구조가 세워져야 한다.


첫째는 정치․경제․문화 어디서나 자주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다음은 하나의 민족을 향해 서로 개혁해 나가야 한다.
그 현실적인 단계로, 지금 일컬어지는 복합국가론 같은 것은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하며,
이것은 또 외형의 문제이고 내부체제에 있어서 복합사회라고 할 제 제도와 체제의 병존과 같은 사회체제도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이스라엘의 사회체제에서 귀중한 시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를 향한 현실적인 하나의 단계이지 궁극의 목표는 아니다.
적어도 각 분야에서 대외의존이 청산되고, 자주성이 세워지고,
이에 따라 통일민족의 이식과 도덕이 확립된다면 복합적 사회체제가 불가능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통일에의 길은 아직도 멀고 험난하다. 그렇지만 그 길은 기필코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우리 한 사람 몇 사람의 재산과 지위와 명예가 희생되어서라도 가야 할 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다.
희생과 설사 있을지 모르는, 지는 것이야말로 보다 영광스러운 이감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민족통일의 혈로를 뚫기 위해 몸을 던질 때,
이제 내가 가는 길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던 그 길을 이제야 우리는 다시 가야 한다.
지금 우리가 가는 길도 다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 길이 민족적 양심에 살려는 사람이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씨알의  소리』 1972년 9월호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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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 김구
1948년 2월 10일


친애하는 삼천만 자매 형제여! 우리를 싸고 움직이는 국내외 정세는 위기에 임하였다.
제2차 대전에 있어서 동맹국은 민주와 평화와 자유를 위하여 천만의 생령을 희생하여서 최후의 승리를 전취하였다.
그러나 그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 세계는 다시 두 개로 갈리어졌다.
이로 인하여 제3차 전쟁은 되고 있다.


보라!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을 다시 만난 아내는,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아들을 다시 만난 어머니는,
그 남편과 그 아들을 또 다시 전장으로 보내지 아니하면 아니 될 운명이 찾아오고 있지 아니한가?


인류의 양심을 가진 자라면 누가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바랄 것이냐?
과거에 있어서 전쟁을 애호하는 자는 파시스트 강도군밖에 없었다.
지금에 있어서도 전쟁이 폭발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자는 파시스트 강도 일본뿐일 것이다.
그것은 그놈들이 전쟁만 나면 저희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남북에서 외력(外力)에 아부하는 자만은 혹왈 남침 혹왈 북벌하면서
막연하게 전쟁을 숙망(宿望)하고 있지마는 실지에 있어서는 아직 그 실현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발발된다 할지라도 그 결과는 세계의 평화를 파괴하는 동시에
동족의 피를 흘려서 적을 살릴 것밖에 아무 것도 아니 될 것이다.


이로서 그들은 새 상전의 투지를 북돋을 것이요 옛 상전의 귀여움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이 난다 할지라도 저희들의 자질(子姪)만은 징병도 징용도 면제될 것으로 믿을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왜정 하에서도 그들에게는 그러한 은전(恩典)이 있었던 까닭이다.


한국은 일본과 수십 년 동안 계속하여 혈투하였다.
그러므로 일본과 전쟁하는 동맹국이 승리할 때에 우리도 자유롭고 행복스럽게 날을 보낼 줄 알았다.
그러나 왜인은 도리어 환소(歡笑) 중에 경쾌히 날을 보내고 있으되 우리 한인은 공포 중에서 죄인과 같이 날을 보내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말이라면 우리를 배은망덕하는 자라고 질책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 신문 기자 리처드의 입에서 나온 데야 어찌 공정한 말이라 아니하겠느냐?


우리가 기다리던 해방은 우리 국토를 양분하였으며 앞으로는 그것을 영원히 양국 영토로 만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의 해방이란 사전상에 새 해석을 올리지 아니하면 아니 되게 되었다.


유엔은 이러한 불합리한 것을 시정하여서 인류의 행복을 증진하며 전쟁의 위기를 방지하여서
세계의 평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조직된 것이다.
그러므로 유엔은 한국에 대하여도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임시위원단을 파견하였다.
그 위원단은 신탁 없는 내정 간섭 없는 조건하에 그들의 공평한 감시로서 우리들의 자유로운 선거에 의하여
남북 통일의 완전 자주 독립의 정부를 수립할 것과 미소 양군을 철퇴시킬 것을 약속하였다.


이제 불행히 소련의 보이콧으로써 그 위원단의 사무 진행에 방해가 불무하다.
그 위원단은 유엔의 위신을 가강(加强)하여서 세계 평화 수립을 순리(順利)하게 진전시키기 위하여
또는 그 위원 제공들의 혁혁한 업적을 한국 독립 운동 사상에 남김으로써 한인은 물론
일체 약소 민족 간에 있어서 영원한 은의(恩誼)를 맺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만일 자기네의 노력이 그 목적을 관철하기에 부족할 때에는
유엔 전체의 역량을 발동하여서라도 기어이 성공할 것을 삼척동자라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이 서광이 비치고 있는 것이다.
미군 주둔 연장을 자기네의 생명 연장으로 인식하는 무지몰각한 도배들은 국가 민족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도 아니하고
박테리아가 태양을 싫어함이나 다름이 없이 통일 정부 수립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음으로 양으로 유언비어를 조출(造出)하여서
단선 군정의 노선으로 민중을 선동하여 유엔 위원단을 미혹케 하기에 전심전력을 경주하고 있다.


미군정의 난경(難境) 하에서 육성된 그들은 경찰을 종용하여서 선거를 독점하도록 배치하고 인민의 자유를 유린하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태연스럽게도 현실을 투철히 인식하고 장래를 명찰하는 선각자로서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각자는 매국매족의 일진회 식 선각자일 것이다.
왜적이 한국을 병합하던 당시의 국제정세는 합병을 면치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애국지사들이 생명을 도(賭)하여 반항하였지만 합병은 필경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 현실을 파악한 일진회는 동경까지 가서 합병을 청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자들은 영원히 매국적이 되고 선각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설령 유엔 위원단이 금일의 군정을 꿈꾸는 그들의 원대로 남한 단독 정부를 수립한다면
이로서 한국의 원정(寃情)은 다시 호소할 곳이 없을 것이다.
유엔 위원단 제공은 한인과 영원히 불해(不解)의 원(怨)을 맺을 것이요,
한국 분할을 영원히 공고히 만든 새 일진회는 자손만대의 죄인이 될 것이다.


통일하면 살고 분열하면 죽는 것은 고금의 철칙이나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남북의 분열을 연장시키는 것은 전 민족을 사갱(死坑)에 넣는 극악극흉의 위험한 일이다.
이와 같은 위기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최고 유일의 이념을 재검토하여 국내외에 인식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가 유엔 위원단에 제출한 의견서는 이 필요에서 작성된 것이다.


우리는 첫째로 자주 독립의 통일 정부를 수립할 것이며 이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먼저 남북 정치범을 동시 석방하여 미소 양군을 철퇴시키며 남북 지도자 회의를 소집할 것이니
이와 같은 원칙은 우리 목적을 관철할 때까지 변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 불변의 원칙으로서 순식만변(瞬息萬變)하는 국내외 정세를 순응 혹은 극복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중국 장 주석의 이른 바 '불변으로 응 만변'이라는 것이다.


독립이 원칙인 이상 독립이 희망 없다고 자치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을 왜정 하에서 충분히 인식한 바와 같이
우리는 통일 정부가 가망 없다고 단독 정부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단독 정부를 중앙 정부라고 명명하여 자기 위안을 받으려하는 것은
군정청을 남조선 과도 정부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사은망념(邪恩忘念)은 해인해기(害人害己)할 뿐이니 통일 정부 독립만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삼천만 자매 형제여!
우리가 자주 독립의 통일 정부를 수립하려면 먼저 국제의 동정을 쟁취하여야 할 것이오
이것을 쟁취하려면 전 민족의 공고한 단결로써 그들에게 정당한 인식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미군정의 앞잡이로 인정을 받은 한민당의 영도 하에 있는 소위 임협은 나의 의견에 대하여
대구소괴(大口小怪)한 듯이 비애국적 비신사적 태도로서 원칙도 없고 조리도 없이 후욕(詬辱)만 가하였다.


한민당의 후설이 되어 있는 xxxx는 xxx란 여자의 이름까지 빌어가지고 나를 모욕하였다.
일찍이 조소앙 엄항섭 양씨가 수도청에 구인되었다고 허언을 조출하던 그 신문은
이번에 또 '애국 단체가 제출한 건의를 김구 씨 동의 표명'이라는 제목으로써 허언을 조출하였다.
이와 같은 비열한 행위는 도리어 애국 동포들의 분노를 야기하여 각 방면에서 시비의 성한(聲恨)이 높았다.
이리하여 내가 바라던 단결은 실현도 되기 전에 혼란만 더 커졌을 뿐이다.
시비가 없는 사회에는 개량이 없고 진보가 없는 법이니 여론이 환기됨을 방지할 바이 아니나
천재일우의 호기를 만나서 원방에서 내감(來監)한 귀빈을 맞아가지고
우리 국가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려는 이 순간에 있어서 이것이 우리의 취할 바 행동은 아니다.


일절 내부 투쟁은 정지하자!
소불인(小不忍)이면 난대모(難大謀)라 하였으니 우리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용감하게 참아보자.


삼천만 자매 형제여!
한국이 있어야 한국 사람이 있고 한국 사람이 있고야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또 무슨 단체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자주 독립적 통일 정부를 수립하려 하는 이때에 있어서
어찌 개인이나 자기의 집단의 사리사욕을 탐하여 국가 민족의 백년대계를 그르칠 자가 있으랴?


우리는 과거를 한 번 잊어버려 보자.
 갑은 을을 을은 갑을 의심하지 말며 타매(唾罵)하지 말고 피차에 진지한 애국심에 호소해 보자!
 암살과 파괴와 파공(罷工)은 외군의 철퇴를 지연시키며 조국의 독립을 방해하는 결과를 조출할 것뿐이다.
계속한 투쟁을 중지하고 관대한 온정으로 임해 보자!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지고야 땅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내가 불초하나 일생을 독립운동에 희생하였다.
나의 연령이 이제 70유 3인 바 나에게 남은 것은 금일 금일 하는 여생이 있을 뿐이다.
이제 새삼스럽게 재물을 탐내며 영예를 탐낼 것이냐? 더구나 외군 군정 하에 있는 정권을 탐낼 것이냐?


내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주지하는 것도 일체가 다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국가 민족의 이익을 위하여는 일신이나 일당의 이익에 구애되지 아니할 것이요,
오직 전 민족의 단결을 위하여서는 삼천만 동포와 공동 분투할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는 누가 나를 모욕하였다 하여 염두에 두지 아니할 것이다.


나는 이번에 마하트마 간디에게서도 배운 바가 있다.
그는 자기를 저격한 흉한을 용서할 것을 운명하는 그 순간에 있어서도 잊지 아니하고 손을 자기 이마에 대었다 한다.
내가 사형 언도를 당해본 일도 있고 저격을 당해본 일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 있어서는 나의 원수를 용서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지금도 부끄러워한다.


현시에 있어서 나의 단일한 염원은 삼천만 동포와 손을 잡고 통일된 조국 독립의 달성을 위하여 공동 분투하는 것뿐이다.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요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나는 내 생전에 38 이북에 가고 싶다.
그쪽 동포들도 제 집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서 죽고 싶다.
궂은 날을 당할 때마다 38선을 싸고도는 원한의 곡성이 내 귀에 들리는 것도 같았다.
고요한 밤에 홀로 앉으면 남북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동포들의 원망스런 용모가 내 앞에 나타나는 것도 같았다.


삼천만동포 자매 형제여!
붓이 이에 이르매 가슴이 억색하고 눈물이 앞을 가리어 말을 더 이루지 못하겠다.
바라건대 나의 애달픈 고충을 명찰하고 명일의 건전한 조국을 위하여 한 번 더 심사(深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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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서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A_13_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mp3
1.49MB





화살 / 고은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화살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A_11_화살 (고은).mp3
1.61MB





815를 위한 북소리 / 정희성

 
북을 치되 잡스러리 치지 말고 똑 이렇게 치렸다


부자유를 위해
쿵 딱
식민주의와 그 모든 괴뢰를 위해


하나가 되려는
우리들의 꿈
우리들의 사랑을 갈라놓는
저들의 음모를 위해

저들의 부동산과 평화로운 잠을 위해


우리들의 피어린 희생을 위해
가진 것 없는 우리
하나뿐인 영혼
하나뿐인 몸을 던져


외진 땅 서러운 아들딸들아
아닌 밤 네 형제가 없어져도
북채 잡고
세상의 모든 압제자를 위해
눈물 삼켜
딱 한 번


북을 쳐라
한밤이 가까워오면
돌고 도는 지구도 제 자리를 바꾸고
파수꾼은 우주의 시계판 위에
시간의 흐름을 표시하리니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나고
때가 되면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하게 될 것


북을 쳐라
새벽이 온다
새벽이 오면 이방인과 그 추종자들이
무서움에 떨며 물으리니
누가 아침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타오르는 해를 보게 하라


오오 영광 조국
동방에 나라가 있어
거기 사람이 살고 있다 하라


때가 오면 어둠에 지친 사람들이
강변으로 나가 머리를 감고
밝은 웃음과 사랑 노래로
새로운 하늘과 땅을 경배하리니


북을 쳐라
바다여 춤춰라

오오 그날이 오면
겨울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모든 언어 모든 은유를 폐하리라




A_09_815를 위한 북소리 (정희성).mp3
2.27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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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요양 가는 길목에서 / 백기완


여기는 지금 어디쯤일까
흙먼지 한참 날리며 달려온
강원도 산비탈 인적 없는 마루턱
 

벗들은 살점을 뜯어주며
살아서 돌아오라고
살아서 이기고 돌아오라고
몸부림쳤지만
질경이는 밟히는 한이 있어도
바람 따위엔 안 쓰러지는 거
여보게들 거 알지 않는가
 

까마득한 산중턱엔
더덕 캐는 화전민이
한줌 됫쌀을 사려고
허리 굽는 분노가
산불처럼 산불처럼
목이 타는 덤불 속
그대로 뛰어들어
산사람의 그 짓거릴 하고싶은 건
 

여보게들 벗이여
정배길 같은 예까지 왔지만
나는 결코 어디에서고
홀로가 아님을
이제사 알겠네그려
저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마다
파랗게 무르녹는 병사들


소나무 병사
오리나무 병사
지난겨울 깡추위에 상한
참나무 병사까지
 

오라오라 따라오라고
지팡일 던지고
허리를 펴고 따라오라고
그 어느 때였던가
바로 이곳에서
나라를 지키고 세상을 건지려다
쓰러진 영웅들의 전설을
깃발처럼 날리며 일어서는
저 천만 군사의 아우성소리


벗이여
살점을 뜯어준 벗이여
이렇게 인적없는 첩첩산
이 골짝에서 만약
내가 살아서 돌아간다면
반드시 내 속에 병마 놈들이 박아 놓은 살과 싸워
이기고 돌아가는 줄 알라
 

그러나 만약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렇게 전해달라
결코 죽어서 못 가는 것이 아니라고
저 아우성 소리
저 이름 없는 영웅들의 전설에 묻혀
한 여름엔 비바람과 싸우고
또다시 쓸쓸한 가을이
가랑잎으로 한 잎 두 잎 떨어져도
겨울을 박차고


개나리 진달래 피는
새봄을 위하여
 

그들 푸른 병사들과 묻혀 있다고
묻혀서 사랑하는 내 조국땅 통일을 위한


-81년5월 추곡약수터로 신병치료 하러 가는 길 산마루턱에서

A_08_전지요양의 길목에서 (백기완).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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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_04-419날 고향에 와서 (신경림).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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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산천 / 신동엽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 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 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 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에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A_02_진달래 산천 (신동엽).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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