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에 맞선 그때 운동권은 어떻게 살았냐면
[서평] 민청련 역사의 기록 '청년들, 1980년대에 맞서다'
이준영(news)
<오마이뉴스>에 연재됐던 '투사들의 이야기, 민청련의 역사'가 수정과 보완을 거쳐
<청년들, 1980년대에 맞서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왔다.
이에 성균관대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이준영 씨가 서평을 보내왔다. [편집자말]
▲ 서울 종로구 삼각동 소재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하는 김근태 의장과 장영달 민청련 부의장 ⓒ 푸른역사 제공
2019년 6월에 방영된 SBS스페셜 다큐멘터리 <요한, 씨돌, 용현>의 주인공 김용현씨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시대의 의인(義人)'이라고 불렀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는 그가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었다.
그는 1950년대 초반 생으로 1987년 6월 항쟁에 참여했으며, 그해 13대 대선 부정선거 감시 및 폭로활동에도 앞장선 민주화운동가였다. 1989년에는 천주교정의구현연합 사회정화위원회 위원으로 정연관 상병의 의문사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활동에도 나섰다.
민주화운동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감시와 미행은 물론이고, 연행에 이은 구타·고문도 감내해야 했다. 이후 그는 권력의 감시를 피해 강원도에 은거했다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 갑자기 나타나 민간구조대로 제 몸을 사리지 않고 사고현장을 지켰다. 사태가 수습되자 홀연히 산으로 떠난 그는 봉화치 산으로 다시 돌아가 산불감시원으로, 토종벌 지킴이로 은거하며 살았다. 이후 그는 풀벌레, 들짐승과 함께 묵묵히 자신만의 생명운동을 이어가며 자연인으로 살았다.
혁명가라기보다는 순교자에 가까웠다
▲ 민청련 초대 집행위원을 자원한 1.장영달 2.박우섭 3.연성수 4.박계동 5.이범영 6.홍성엽 ⓒ 푸른역사 제공
김용현씨의 이야기는 점점 세속화·기득권화되어가는 민주화세대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세대론에 기대 민주화운동 세대를 쉽게 폄하하는 세태에도 경종을 울렸다. 권위주의와 독재로 점철된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헤쳐오는 과정에서 김용현씨와 같이 민주화운동의 현장과 우리 사회의 모순이 드러나는 그곳에 언제나 함께했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잠시나마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 책 앞표지 ⓒ 푸른역사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책 <청년들, 1980년대에 맞서다>는 전두환 정권에 맞서 싸웠던 청년들의 이야기다. 교과서를 통해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배운 세대나, 영화 <1987>과 같은 미디어를 통해 이 시대를 접한 젊은 세대들에게 1987년 6월항쟁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고 하면 흔히 캠퍼스를 중심으로 한 대학생들의 시위를 상기하기 쉽다. 아니면 정치적 민주화를 주도했던 김대중·김영삼 등 야당 정치인이나 연단에 올랐던 문익환 등의 재야지도자의 이미지가 떠오를 수도 있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주인공들은 역사의 무대 뒤편에서 민주화운동의 실질적인 전술을 제시하고 조직사업 등의 실무를 집행한 주체였지만, 그 후 민주화운동의 결실을 탐하지 않았고 묵묵히 자신의 운동을 지속했다는 점에서 '어디에나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었던' 세대였다. 이들은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아래 민청련)'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자 했다. 이 책은 민청련의 이름으로 쓰인 영화의 각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1987년 당시 30, 40대의 청년들로서, 197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다. 이들은 박정희 정권에 맞서 반유신투쟁을 전개했던 학생운동 출신의 역전의 용사들로서 민주화운동의 '허리'와 같은 세대였다. 이들은 스스로에게 혁명가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어쩌면 민청련 세대는 혁명가라기보다는 순교자에 가까웠다.
이들은 스스로를 '빵잽이'라고 부르며 우스갯소리 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이들이 웃어넘기는 죄목과 공소장, 신문기사들에는 체제전복·국기문란·좌경용공과 같은 무서운 단어들이 즐비했다. 이들에게 순교자와 같은 희생정신과 낙관주의가 없었다면 전두환 정권의 무도한 국가폭력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고문과 투옥은 계속되었지만, 그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김근태 등 민청련의 초기 지도자들은 196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였다. 이들은 4.19학생혁명의 후예였으며, 한일협정 반대운동을 통해 사회의식·민족의식을 각성한 세대였다.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박정희 정권의 독재체제가 유신으로 치달아가던 시기에 몇 차례의 수배와 투옥을 거치며 직업적인 운동가의 길을 걷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1960년대 이래로 지하에서 형성되어온 민주화운동의 네트워크를 가동해 광범한 청년운동가 집단을 묶어세우고자 했다. 이들의 뒤를 받쳐준 중추 세대는 1970년대에 대학에 입학한 학생운동 출신의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서울 유수의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경험하고 투옥과 수배를 거치며 단련된 운동가들이었다. 이들은 전쟁 후 베이비부머세대로서 대체로 농촌 출신이었으며 여러 명의 형제들 가운데 가장 촉망받는 구성원이었다. 이들의 대학진학은 다른 형제·자매와 가족구성원들의 희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명문대 학생이 된 이들은 선택된 자식들이었고, 집안을 일으킬 기대주였다.
이러한 성장배경을 지닌 이들은 강한 엘리트의식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지닌 또래집단이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사회의 모순적이고 억압적인 현실에 더욱 커다란 분노를 품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운동의 길에서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현실에 대한 저항감은 입신양명이라는 개인적 욕망을 초월하는, 자기희생적인 사회적 결단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1980년대 청년이 되어서도 민주화운동을 지속하며 고민과 결단 끝에 자기희생을 실천한 세대였다.
내 이웃의 현대사이자 민청련 세대의 무용담
▲ 1987년 대통련선거 유세장에서 민청련이 제작한 책자 <광주는 지속되고 있다>와 <민중의 소리>를 나눠주고 있는 민청련 회원들 ⓒ 푸른역사 제공
민청련이 창립된 1983년 시점에서의 조직구도는 40대가 대표직을 맡고, 30대들이 기층조직을 이루는 양상이었다. 민청련은 1980년대 내내 명확한 정치노선을 제시하고, 선도적인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한국 민주화운동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녹화사업·군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 1985년 2.12총선 대응 활동, 5월 광주항쟁 진상규명 투쟁, 김근태 의장 고문 폭로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6월 항쟁과 1987년 대통령 선거 등 굵직한 정치적 이슈의 중심에 민청련이 있었다. 민주화운동세력 내부의 CNP논쟁, AB논쟁, 1987년 대선 전술논쟁 등 이론·노선 투쟁을 주도한 것도 이들이었다.
이 책은 민청련이라는 조직과 그 구성원들이 써 내려간 회고담이기는 하지만,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커다란 흐름을 이해하는 데 손색이 없는 교과서적인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문장이 매우 간결하고, 내용의 전개가 명쾌하다. 운동의 당사자들이 직접 쓴 스스로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다양한 조직들과 복잡한 이론·노선투쟁도 아주 쉽게 해설하고 있다.
한국민주화운동을 더 공부해보고 싶은 청소년들이나, 대학에서 한국현대사 강의를 수강한 경험이 있는 청년세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간행된 <한국민주화운동사> 제3권을 통해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큰 흐름을 일별한 뒤 곧바로 이 책을 통해 주요 사건사와 인물사, 그리고 논쟁사를 보완하는 독서를 시도해보기를 권유한다. 1980년대를 직접 겪은 세대나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기성세대들 역시 나의 이야기이거나 내 이웃의 현대사로서 접근한다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민청련 세대의 '무용담'이기도 하다. 왕년의 무용담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택'(tactics, 전술)일텐데, 역시 이 책에서도 독자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는 것은 정치노선이나 이론투쟁과 같은 딱딱한 내용이 아니라 기발한 아이디어가 빛나는 투쟁전술들이다.
기억에 남는 선전전술을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자. 요즘과 같은 SNS 시대에는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수십 만 명의 독자에게 가 닿는 선전이 가능하지만, 이 당시에는 기껏해야 수백 장의 유인물을 배포하기 위해 검거까지도 불사해야 했다. 검거를 피하면서 효과적으로 유인물을 배포하기 위한 '택'들이 고안됐다.
가장 보편적인 방식은 야간에 주택가를 돌면서 우편함에 일일이 유인물을 집어넣는 방식이었다. 낮에 거리에서 배포하는 방법으로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버스가 정류장에 서면 천정 환기구를 열고 바깥에 유인물을 올려놓고 하차하는 방식도 사용되었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유인물이 바람에 날려 시내가 유인물로 뒤덮였던 것이다.
이러한 활동이 거듭되며 신기술이 개발되기도 했다. 세로로 긴 플래카드를 유인물과 함께 두루마리처럼 말아 접은 다음 비닐 끈으로 묶고 그 매듭에 담뱃불을 묶어 놓는다. 이것을 시내의 빌딩에 가지고 올라가 창문 밖에 두고 담배에 불을 붙인 뒤 건물을 빠져나온다. 담배가 천천히 타들어가 비닐 끈이 끊어지며 플래카드가 펼쳐지고 그 안의 유인물이 흩뿌려진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다시 생각해보기
▲ 1985년 민청련 탄압에 맞서 고문수사를 규탄하는 농성을 하는 민청련 간부들의 부인들 ⓒ 푸른역사 제공
그러나 민청련의 역사가 이런 소소한 무용담으로만 기억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청련이라는 이름 뒤에는 남영동·치안본부·안기부·취조실·고문과 같은 독재의 유령들이 항상 쫓아다녔다. 책에는 민청련 지도자 김근태와 이을호 등 고문 피해자들과 수배자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들이 곳곳에 그려진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는 야수적인 고문과 반인권적인 탄압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 가족애와 동료애, 그리고 인간의 위대한 신념에 대한 이야기들이 독자들을 위로해주고 있다.
이러한 고난의 가시밭길을 지나 민청련은 1987년 6월 항쟁의 산파역을 도맡을 수 있었다. 6월 항쟁의 역사는 대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이나, 국본 출범의 모태가 된 재야의 민통련, 야당의 민추위 등을 줄기로 하여 설명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재야와 야당 조직의 '허리'를 이룬 사람들 중 대다수가 민청련 출신의 30~40대 운동가들이었다. 그들의 사상적 뿌리와 조직적 활동의 모체는 민청련에 있었다.
그런 점에서 민청련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복원한 이 책의 성과는 1987년 6월항쟁의 역사를 풍부화하는 성과이며, 나아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이론사·조직사·인물사를 한 걸음 나아가게 만든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이 1988년 이후 1992년 민청련이 해소되기까지의 시기를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집필 초기 기획된 민청련 회원 자녀들의 이야기 '민청련 가족사'가 추후 과제로 미뤄졌다는 점 또한 아쉬움을 더한다.
민청련의 고난은 곧 가족들의 고난이기도 했으며, 자아가 형성되던 어린 자녀들에게 부모의 수배·고문·투옥은 그들의 우주를 뒤흔든 사건이었을 것이다. 부디 이 책이 독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아 이 두 가지 과제 즉, 민청련을 중심으로 한 1990년대 민주화운동사의 서술과 민주화운동 가족사의 집필이라는 후속작업으로까지 꼭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처음 화두로 던졌던 김용현씨의 이야기로 돌아가 글을 마치고자 한다. 김용현씨의 사연이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그가 뇌경색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과거의 인연들에게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울림을 준 것은 김용현씨가 감독과 나눈 필답이었다.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장면은 감독이 휠체어에 의탁한 그에게 '왜 그런 삶을 살았느냐?'는 질문을 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어눌해진 말 때문에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대신해야 했던 그의 대답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젊었던 민청련 회원들 역시 김용현씨처럼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을 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며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많은 동료들이 온갖 고초를 당해 건강을 잃거나 병을 얻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많은 민청련 회원들은 여전히 이름없는 우리의 이웃으로 지하철 옆 자리에, 아파트 주민대표 회의장에, 동네 생활협동조합에, 그리고 투표소 선거 대기줄의 맨 앞자리와 촛불집회의 맨 뒷자리에 우리들과 함께하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이제는 거의 반백이 된 초로의 아저씨·아줌마들이 촛불집회가 끝난 뒷풀이 자리에서 함께 촛불을 든 자식뻘 되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조심스럽게 털어놓는 무용담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민청련이 먼저 간 동지들에 바치는 조사(弔詞)이자, 스스로의 역사를 정리한 집단적 자서전임과 동시에 후대에게 전하는 비망록이다.
민주화운동 세대에 대한 날선 감정들이 유령처럼 사회를 배회하는 요즘, 땀과 눈물로 써 내려간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찬찬히 되짚어 보며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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