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식은 땀만 흐르고



감옥에서 출소할 때마다
나는 며칠 씩 미열이 오르고
식은 땀이 끈적지게 흐르면서
밤잠을 설치곤 했다.

처음에는 까닭을 알 수 없어
그저 몸이 허해지고
골아서 그렇거니 했다.

그런데.....
석방될 때마다
되돌이병처럼 계속 반복해서 앓게 되자
왜 이럴까??? 하고
까닭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감옥에서는 독방에서
웬종일 앉아 있고 누어 있고
잠자는 게 일과인데......

그러면서도 저녁 잠에 떨어지면
아침 기상나팔 소리에
단잠 깨기에 여간 꾀를 부리곤했는데......

방안을 밤새도록 밝혀 놓는
전기불도 없고
잠자리도 더 편안한데
왜 이리 잠이 안 오나......

처음에는 여러날 계속되고 나서야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신경안정제를 꺼내 주셨다.
그 후부터서 출소할 때마다 나는 한 일주일 가량
잠자리에 들기 전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야 했다.

감옥 안에 있을 때 눈에 들어오는 모습
시야에 잡히는 풍경은 항상 일정하다.
색깔도 단순하다.

담벽은 온통 백색으로 칠해져 있고
건물 내부는 허리춤을 기준으로 해서
아래쪽은 회색이고 위쪽은 백색이다.

옷 색깔은 청색
그리고 하늘과 땅.....

오로지 똑같은 풍경만 있어 사시사철 그런 풍경만 볼 수 있고
그런 색깔 그런 풍경에만 젖어 지낸다.

그러다가 감옥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세상에 널려 있는 온갖 색상이 눈으로 입력되고
갖가지 풍경이 스치면서 머리 속에 잔영으로 남게 된다.

눈으로 코로 귀로 피부로 온몸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스쳐 지나고 느껴지는 세상의 온갖 모습들은
감옥 안에서 담아 낸 용량에 비하면 가히 견줄 수 없을만큼

커다란 육체적 정신적 환경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대단하고도 엄청난 혼란이다.
그러니 출소할 때마다 복잡다단한 혼란과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한동안 식은땀이 흐르고 잠을 설쳐 댈 수밖에.....

나는 이미 온 몸이 식은땀에 젖을대로 젖어 있었다.
시시큼큼한 땀내가 진동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후각을 자극했다.

머리에서 발바닥까지 온통 기름으로 뒤집어 쓴 듯 온몸이 끈적거렸다.
그런 몰골로 망연자실해서 한동안 병실 벽에 몸을 의지하고 기대 있었다.

주치의 김용일 박사 방에서 진료실로 내려 오라는 전갈이 왔다.
처남과 처제 그리고 혜숙의 친구 천영초와 함께 진료실로 향했다.

나는 마치 재판정에 끌려가는 심정이었다.
마지막 판결을 받으러 가는 피고인의 심경이었다.

사형인지 무기 징역형인지.....
혹시라도 무죄 석방되는 기적은 없는지.....

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 심판하는
재판장의 처분을 받아야 하는
피고인의 심정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그보다 더더더더더.....

하느님 앞에서
최후의 심판을 받는 심정이었다.

지옥인지.....
연옥인지.....

기적과 희망의 천국은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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