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만 기 병


일반적으로 군에 입대해서 복무를 하다가
제대할 때에 이르르게 되면
근무가 제대로 안 되고 식욕이 떨어지면서
잠을 못 이루게 된다.

환자처럼 몸이 비쩍비쩍 말라 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열외' 로 특별 대접을 받기도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겪게 되는
이런 현상을 일컬어
소위 '만기병'이라고 한다.

국가의 명령이나 강제, 또는 절차에 따라
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곳으로
'감옥'이 있다.

감옥에서도 마찬가지다.
감옥에서 징역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만기병'을 더 호되게 앓는다.

특히 오랜 세월을 복역하게 되는 장기수들일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하다.

아마도 사회와 철저하게 격리되면 될수록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정도에 비례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형법 제 72조에 보면

"징역 또는 금고의 집행 중에 있는 자가
그 행장이 양호하여 개전의 정이 현저한 때에는
무기에 있어서는 10년, 유기에 있어서는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한 후
행정처분으로 가석방을 할 수 있다"

고 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유기 징역형에서 가장 긴 2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에 있는 사람이
자기 죄를 뉘우치고 반성의 빛이 뚜렷한 가운데
성실하게 살면서 7 년 정도를 경과하게 되면
가석방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행형법 제51조에는

"가석방 구신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수형자의 연령, 죄명, 범죄의 동기, 형명, 형기,
수형 중의 행장, 석방 후의 생활과 보호 관계,
재범의 우려 유무, 기타 사항을 참작하여야 한다"

고 되어 있다.
이를테면 수형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박 씨가 있었다.

형편과 사정을 정확하게 검증해 본 것은 아니지만
그는 시골에서 논 농사 20 여 마지기
밭 농사 2,000 여 평을 짓는
중농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부모님의 대를 이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했다.

23 세 때 결혼해서
딸, 아들 남매를 낳고
그야말로 세상을 무난하고 별탈없이
나름대로는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단다.

읍내에 장이 서는 어느날
그는 소가 이끄는 마차에
쌀가마니를 싣고 나섰다.

쌀을 매매하고
할아버지 제사에 쓸 제물을 마련하고
아이들 옷가지며 생활용품을 흥정한 다음

학교 동창과 국밥집에 들러 요기를 채우면서
막걸리 1 되를 사발에 나누어 걸치기도 했다.

땅거미가 내려 앉을 즈음
그는 마차를 끌면서 시오리 되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신작로를 따라서 터덜터덜거리는 마차 위에 앉아
삼거리에 접어 들 즈음이었다.

느닷없이 장정 두 사람이 나타나서 마차를 세웠다.
그 중 한 사람은 곡괭이 자루를 들고 있었다.
나이를 보아하니 두어 살 쯤 아래인 듯 했다.

"어! 형씨... 잠깐 얘기 좀 합시다."

"뭔데 그러슈?"

"어! 잠깐 얘기 좀 하자니까!"

영문을 몰라 하는 어미소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목을 크게 치흔들고
둥그런 원을 그리면서 한바퀴 돌려 댔다.

그러자 그들은 흠칫 놀랐던 게 자존심을 상한 듯
곡괭이 자루로 어미소의 앞다리를
따~악 소리가 나도록 내리쳤다.

"왜 이러는 거유?"

그는 마차에서 벌떡 내려서면서
곡괭이 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에게 달려 들었다.

그는 곡괭이 자루에 얻어 맞아 가며
두 사람을 상대로 뒤엉켰다.

신작로에 엎어지는 순간 등짝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는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 비틀대고 일어 섰다.

두 사람은 마차 위에 놓여 있는 봉투를 이것저것 뒤지더니
아이들 옷가지와 제물을 흩어트려 놓고 있었다.

그는 상대방이 경계심을 갖지 않도록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툴툴 털고
천천히 다리를 끌면서 다가 갔다.

그리고는 갑자기 곡괭이 자루를 뺏어 들고
힘껏 내리쳤다.

곡괭이 자루를 빼앗기고 한 대 얻어 맞은 사람은
'퍽' 하고 쓰러지면서 머리를 마차바퀴에 부딪쳤다.

나머지 한 사람과 서로 으르렁대며 대치하던 그는
상대방의 기가 한풀 꺾인 듯한 기세를 느끼자

"이러지 말구... 저 사람 데리구 그냥 가쉬우"

했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경계를 풀고 어미소에 다가가
앞다리를 어루만져 주고는
천천히 마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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