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3장] 성실한 의정활동, 대안과 정책제시 2

012/09/29 08:00 김삼웅

 

 

김근태 : 지금 문제가 여러가지 있지만 작은 것은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장관께서 말씀하신 대로 IMF관리체제 3년차에 들어가면서 개혁에 대한 피로가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거시경제지표는 괜찮은데 나만 손해보는 것 아닌가 하는, 주관적인 왕따 정서가 각 계층에 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보상을 요구하게 되는 심리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총론적으로 우리 국민들은 대체로 개혁과 구조조정에 동의하는데 내 영역에서는 이제 더 이상 안 했으면 좋겠다, 주관적으로는 지난 2년 동안에 모두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제 지역구가 도봉구인데 그쪽을 보면 재래시장은 형편없이 죽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형 할인점이 들어 와서 거기는 아주 잘 됩니다. 서민이 보면 백화점 이상의 고객들은 잘 나가는데 우리는 뭐냐 이런 위화감이 상당한 정도 생기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통합시키지 못하면 중대한 난관에 부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다시 어떻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국민적 합의를 얻을 것인가, 그것을 추진해야 되는 재경부가 국민적 신뢰를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 이것이 핵심적인 초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무적인 부분이나 또 구체적인 금융시장의 취약성문제 이런 점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재경부장관을 비롯한 경제부처 관계장관들이 보다 어떻게 하면 국민적 신뢰를 끌어 모을 것인가 이 과정에서 스케줄이라든지 또 경제관련부처 장관들 사이에 단단한 협력이라든지 또 발언의 메시지의 통일성이라든지 이런 것이 장관께서도 절실하다고 생각하시지요? (2000년 5월 18일 제211회 국회재정경제위원회 회의록)

김근태 : 또 하나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이 공적자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 것이냐? 장관이 걱정 하시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정말 비효율적으로 쓰일 뿐 아니라 모럴 해저드가 금융기관에 퍼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구심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걱정되는 것은 재경부나 행정부에서 30조를 조성하면 적어도 10조는 내년으로 이월되고 올해 20조 이것은 충분합니다. 그런데 공적자금 투입하는 곳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방비하고 지금 재사용한다든지 여러가지 방식으로 하지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겠다, 저는 이 얘기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 행정부가 혹시 국회에 추가적인 공적자금을 요청을 하면 국회에서 정치적인 논쟁이 발생될 가능성이 있고 그것이 부담스러우니까 좀 옆길로 가는 것이 아니냐, 이런 의구심도 있습니다. (2000년 5월 18일, 제211회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회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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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평전/[13장] 성실한 의정활동, 대안과 정책제시

2012/09/28 08:00 김삼웅

 

 

김근태는 제15대 국회 후반기 2년은 재정경제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전문성이 인정되어 상위가 배정된 것이다. 6월항쟁 이후 국회운영이 상임위 중심이 되면서 의원들의 상임위 역할이 활발해졌다. 김근태의 주요 정책질의 몇 가지를 살펴본다.

김근태 : 이 시점에서 OECD가입에 대해서 우리 재경부는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를 정리해서 얘기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OECD가입에 대해서 유보적이거나 신중해야 된다는 보고서가 있으면 그 보고서를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점을 지적하는 것은 저는 OECD가입에 대해서 그 방향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동의를 했습니다. 다만 과정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고 주장을 했습니다. OECD가입이 되어서 저는 우리사회, 국민경제에 굉장한 부담이 왔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잘못된 것은 메시지가 우리 국민경제가 이미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됨으로써 국민들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내부의 충실도를 이루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은행뿐만 아니라 기업 또한…….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재경부 입장이 어떤지, 나아가서 정부의 입장은 현재 어떤지에 대해서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IMF문제를 얘기하겠습니다.

IMF의 근래의 보고서, 언론보도에 의하면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온 것이 해지 펀드 투기성 자본의 급격한 이동, 이것 또한 계기가 되었지만 그 못지않게 이른바 외화누락(外貨漏落)이 IMF 얘기에 의하면 80억 달러가 넘고 그것에 대해서 재경부나 한은 주장은 50억 달러가 좀 넘는 수준으로 지금 얘기가 되고 있는데 국내자본이 이탈된 것이 그 못지않은 이유였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국내 자본이탈은 명백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재경부는 이것이 어느 정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재정부는 이것이 어느 정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과 어떤 세력들에 의해서 국내에서 자본이 이탈했는지, 이것이 우리 외환위기를 충격과 부담을 주는데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1998년 10월 1일, 제198회 재정경제위 1차 회의록)

김근태 : 다음은 세계 경제상황 특히 국제금융시장은 대단히 불안정하다고 생각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롱펌캐피털 매니지먼트라든지 크리미아 메일, 근래에는 또 다른 해지펀드들이 도산위험에 봉착하면서 미국에서도 재정적 지원을 받는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경제운용 기조는 근본적으로는 보수적이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너무 과감한 재정정책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국제경제가 이렇게 불안정하기 때문에 정책협조가 되는 측면도 있지만 특히 국제금융시장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경상수지 흑자가 굉장히 중요할 것 같고, 그래서 외환보유고를 증가시켜야 되고 단기외채를 축소시켜야 되는데, 충분히 대응하고 있는 것인지 지난번 재경부 보고에 의하면 차환율(差換率)이 4월달에 102%에서 9월달에 82%로 떨어졌는데 10월 추세가 회복되지 못하거나 더 떨어진다고 하면 굉장히 위험한 신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현재 10월달 차환율이 어떻게 예상되고 만약 플래트하게 82%로 가게 되면 우리가 대책을 세워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재정부장관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제상황이 상당히 어려운 것을 우리가 다 압니다. 투자나 성장이 다 마이너스이고 소비가 급격하게 위축되어서 저는 다소 의구심이 있습니다마는 소비가 미덕이다 라는 구호까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경기순환적인 요인 때문에 온 것만이 아니라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신용위기 때문에 왔다, IMF 관리체제에 들어가면서 모두가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불안하고 전망을 제대로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방어적인 소비와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신용이 결정적인 위기에 처해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래서 온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경부장관이 여러 차례 얘기한 대로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분명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장질서를 형성하고 그 시장질서를 안정화시켜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재경부가 지향하고 있는 시장질서가 어떤 것인지, 예를 들면 미국식 시장인지 아니면 유럽식 시장인지, 아니면 지난 시대에 우리가 했던 개발독재모델에 약간의 수정을 한 시장모델인지, 그 시장이 어떤 모델인지에 대해서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1998년 10월 20일, 제198회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회의록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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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평전/[13장] 성실한 의정활동, 대안과 정책제시 2

012/09/27 08:00 김삼웅

 

 

김근태 : 그 다음에 미국무성 대변인이 북한은 소요의 시기다, 이렇게 얘기를 했고 카트만 부차관보가 이것을 부인을 했습니다. 현재 미국이 공식적으로 북한의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다고 부총리께서는 생각을 하시는지?
왜 그렇게 미국 정부가 대외적인 발표에서 혼선이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이것에 대해서 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쭉 한꺼번에 몇 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두 번째는 아까 국민의 동의의 수준과 범위에 따라서 정책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이렇게 우리가 말로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통일정책의 기본적인 전략은 연착륙이다. 그런데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이쪽에서 전술을 선택할 수 있는 범위나 수준은 영향을 받고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정의하실 수 있는 것인지. 만약에 이렇게 정의가 된다고 하면 그 다음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임시국회의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의 질문과정에서는 오늘의 국면에서는 북한을 더 이상 대등한 관계로 보는 것을 수정해야 될지 모르겠다 이렇게 발언을 했습니다.

물론 정치인으로서 정당의 대표로서 발언한 정치적 질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것이 혹시 행정부의 현재의 속마음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상황이 이렇게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까 김상우 의원이 질의한 것 중에서 권영해 안기부장이 오프 더 레코드로 얘기한 이런 것 하고 연결되어서 실지로는 연착륙이라고 그러지만 사실은 다른 방향을 불가피하다고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런 느낌들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관계책임자로서 부총리께서 좀 말씀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외무부장관이나 또 부총리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조화와 병행의 원칙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냐, 그러니까 우리로서는 북한과 미국의 국교수립이나, 미국의 북한에 대한 평범한 경제제재, 완화에 대해서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서는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서 동의한다는 얘기냐, 기본적으로 이 방향은 우리가 동의하고 있다고 그러면 조화와 병행의 원칙이라는 것은 이것이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해라 이런 얘기인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점진적으로, 어떻게 단계적으로 할 것을 우리는 원칙과 방향을 갖고 있고 구체적인 안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선언적 원칙으로서만 현재 존재하는 것인지 이 점을 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에 북한에는 강경파와 온건파가 현재 존재하는 것인지, 아까 개혁의 문제에 대해서 유치원생 수준이라고 그랬는데 이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황장엽비서 망명사건을 보면서 북한에도 권력투쟁이 시작된 것으로 봐야 되는 것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개혁을 둘러싼 문제로 봐야 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정치적으로 강경파와 온건파가 존재하는 것인지, 또 개혁이 현재 유치원생 수준으로 밖에 나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고 우리가 소프트랜딩쪽으로 전략적인 방향을 결정했다고 그러면 지금 우리 정부 우리 정책당국은 현재의 수준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하고 있는지 이점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제183회, 1997년 3월 7일 속기록)

김근태 : 알겠습니다.
제가 이 얘기를 반복해서 부총리께 질의하는 것은 지난 카터 전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할 때 우리 정부가 취했던 태도가 참으로 일관성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다행스러웠지만, 북한 핵위협을 제거할 수 있는 그 출발과 단초가 열렸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긍정적이기는 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일관성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은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도 그것을 수락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곤혹스러운 상황이 발생을 했었습니다.

지적을 하면 카터 전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은 0.1%도 없다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발언이 국민들 속에서 기억되고 있고, 그 때도 그렇고 카터 전대통령의 정치적 비중으로 봐서 북한을 방문했다가 북한의 축하사절 정도로 끝난다, 아마 이것은 절대로 수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경험도 그렇고 카터 전대통령의 정치적 비중을 봐서 명백한 메시지를 갖고 서울을 방문할 가능성이, 우리 정부를 방문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타협 가능성이 있는 어떤 제안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정보파악은 물론이고 예상되는 메시지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국민들에게 바로 공개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통일원 또 통일안보조정회의 여타의 통일정책 수립 집행의 최종 책임자로서 부총리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준비를 하셔야 되고 또 국민에게 여러 가지 심리적으로 준비하고 대처할 수 있는 과정을 선취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야 만약 카터 전대통령에게 어떤 열할이 있다고 그럴 때 그 역할이 어떤 정치인의 특정한 정치적 성과로 오지 않고 한반도에 있어서 평화를 전진시키는 것으로 올 것이고, 그 성과 또한 우리 정부나 우리 국민에게 공유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것이 우리의 분단체제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참으로 우리사회 우리 나라에서 선거가 있을 때마다 북한이 군사적인 긴장을 유발시키거나 정치적인 긴장을 유발시켰습니다.

바로 작년에 있었던 4ㆍ11 총선에 있어서도 판문점 비무장지대에 병력을 출동시켜서 당시 예민한 선거국면에서 국민을 긴장시켰고, 이것이 정당간의 날카로운 쟁점, 의구심, 불신과 오해를 발생시키는데 명백하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난 총선뿐만 아니라 거의 매번의 선거에 있어서…… 저는 이렇게 판단을 하고 있고, 그런데 북한은 우리 민주주의의 중요한 과정인 선거과정에 직접적으로 막심한 영향력을 결과적으로 미쳤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행정부의 부총리로서 북한 당국에서 앞으로 12월 18일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생각하면서 민주절차나 과정에 있어서 핵심인 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군사적인 도발이나 긴장유발, 정치적인 도발이나 긴장유발 이런 것을 하지 않도록 메시지를 보낸다든지 또는 이런 의견을 발표할 의사가 부총리가 갖고 있는지, 말씀을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185회, 1997년 9월 22일 속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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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평전/[13장] 성실한 의정활동, 대안과 정책제시

2012/09/26 08:00 김삼웅

 

 

김근태는 성정이 곱고 성실한 사람이다. 지나칠 만큼 꼼꼼하고 세심하여 의정활동에서도 품성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그가 발언에 나서면 국무위원들과 정부 인사들이 긴장하고, 기자들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여야 동료 의원들도 그의 식견과 학식에 경의를 표하였다. 신한국당 의원들은 강경 재야출신으로 강성발언이나 일삼을 줄 알고 잔뜩 경계하다가 지극히 합리적인 언행에 오히려 경애심을 갖게 되었다.

김 부총재는 ‘마지막 재야’출신으로 과격할 것이란 선입견과는 달리 뛰어난 정책대안 제시 능력으로 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는 초선의원이다. (주석 4)

김근태는 정권교체로 여ㆍ야가 바뀐 이후 처음 맞은 1998년 국정 감사에서 ‘의회발전 시민봉사단’ 및 피감기관이 선정한 재정경제위 최우수의원으로 선정되었다. 여당이면서도 야당의원보다 더욱 철저하고, 공정하게 국정을 감사한 것이 높이 평가된 것이다.

김근태는 제15대 국회 전반기 2년은 통일외무위원회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당시는 야당 의원이었다.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었으나 끈기와 노력으로 공부하여 상임위의 가장 비중 있는 의원으로 활약하면서 동료 의원들과 출입 기자들로부터 ‘베스트의원’에 선정되었다. 2년 동안 재경위의 많은 대정부질의 중에서 정책 관련 몇 가지를 소개한다.

김근태 -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정신대 문제에 대해서 좀 확인하겠습니다.
김영삼 대통령께서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 진실규명을 해야 된다는 말씀의 취지를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일본의 일부 식자들이나 여론이 한국에서 돈을 달라고 그러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호도하고자 하는 공세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강조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강조의 언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난 일본제국주의 치하에서 당시의 일본공권력에 의해서 강제로 연행된 이른바 정신대위안부는 명백히 일본 제국주의국가의 국가범죄다, 하는 인식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고 김 대통령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확인해서 답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이것은 국가의 범죄이기 때문에 국가가 배상해야 되지만 국가의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앞의 취지가 법적으로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 그러니까 국가배상권이 소멸됐다는 것인지, 국가배상권이 우리에게 있기는 하지만 국가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으로서의 결단인지 이 점을 답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국제법학자들의 일부는 이것은 대통령의 권한 밖의 일이다, 또는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국제법 학자들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외무부의 업무현황보고에 나온 대로 UN인권소위 권고에 의하면 이것이 국가범죄이고 또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에 대한 배상을 하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아까 차관께서 말씀하신 대로 개인적 차원에서의 배상 이것은 권리가 살아있는 것이고 정당한 것이다 라는 의견을 우리 외무부 또한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통일외무위원회 제180회, 1996년 7월 23일 속기록)

사진은 김용한 시민기자.

김근태 ㅡ 많은 위원들이 이런 배경 아래에서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독도문제에 대해서 사실은 저는 자주 상임위원회에서 거론하고 싶지 않습니다. 과정에서 여러가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지만 다만 외무부 쪽에서 좀 주의를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입니다.
법리적으로나 실효적 지배에 있어서나 정치적으로 의문의 여지가 없고 따라서 일본이 자기의 영토임을 주장해 왔다. (조어대)와 달리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저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김영삼 대통령이 지난 시기에 선거를 의식하면서 독도에 군함을 파견하고 비행기를 동원한 것은 참으로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일본) 자민당 쪽에서 총선의 공약을 거는 유발 효과를 가져왔고 자민당 단독정권을 형성을 해서 이것이 참으로 우려할 방향으로 갈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오늘 이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에서 아시아 실업인들과 유럽의 실업인들에게 질문한 결과 유럽의 실업인들은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알고 있는 것이 66%인가로 제가 보았던 것 같고, 동남아시아 실업인들도 55%나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것이 국제적으로 다른 지역의 국민들이나 주민들이 우리의 주장과 객관적인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는 것에 대해서 뭔가 대책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잘 떠오르지 않는데 이것을 정면으로 제기하는 것이 꼭 좋은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런 것을 방치할 수도 없고 한데 이 부분에 대해서 혹시 차관께서 좋은 방안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석
4> <국민회의 김근태 부총재>, <월간중앙 WIN>, 199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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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평전/[13장] 성실한 의정활동, 대안과 정책제시

2012/09/25 08:00 김삼웅

 

 

김근태가 학생운동, 노동운동, 청년운동, 재야운동을 통해 추구해온 일관된 가치는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이루는 일이었다. 그리고 정치개혁을 통해 인권이 보장되고, 노동자들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서민들의 생계가 보장되어야만, 이를 통해 평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1997년 12월의 대선을 앞두고 김근태는 어느 때보다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김영삼 정권의 정치ㆍ정책 실패로 국가경제가 위기에 직면해 있고, 중소상공인들과 서민생계가 파탄지경에 이르러 구원투수가 바로 김대중 후보라고 판단하였다. 김근태는 국민회의 대통령선거 수도권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김근태는 대통령선거전에서 김대중의 당선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국회의원, 국민회의 부총재의 직위에서뿐만 아니라, 민주화운동의 리더로서 최선을 하였다. 의정활동은 제쳐두더라도 지방유세, 언론상대 토론회 등 가능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권력에 대한 야심에서가 아니라 정권교체는 시대적 당위이고 사명이라고 인식한 때문이다.

더 이상 분단ㆍ냉전ㆍ군부독재의 잔재 세력이 권력을 독식하면서 민주주의를 짓밟고, 민족사를 오염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김근태의 솔직한 심경이고 염원이었다. 그래서 대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지난날 깨끗하고 꿋꿋하게 살아온 행적이 많은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었다. 이것은 대선에서 표로 연결되었을 터였다.

1997년 12월 18일 실시된 제15대 대선에서 국민회의는 승리했다. 김대중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당초 이회창 후보가 집권여당의 프레미엄을 업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의 승세를 잡았으나, 두 아들의 병역문제 등이 불거지고, 김영삼 정부의 경제실정으로 인한 IMF 사태가 일어나면서 ‘준비된 대통령’을 내세운 김대중의 인기가 꾸준히 상승하여 중후반 이후에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했다.

 



제15대 대선도 과거 선거처럼 집권세력에 의한 각종 용공음해와 불법 탈법의 선거운동이 자행되었다. 특히 김대중 후보에 대한 극심한 매카시즘 공세가 전개되어 선거전을 정책대결이 아닌 색깔론으로 몰아갔다. 보수족벌 언론사는 기사와 논평을 통해 노골적으로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배척하면서 정치문제로까지 비화시키는 등 낯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대중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대규모 청중동원의 연설회 대신에 몇차례 TV토론회가 열려서 유권자들이 후보를 직접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경제위기를 맞아 이를 극복할 대안으로 김대중의 역량이 높이 평가되었다. 여기에 DJP 연합과 여당의 분열이 작용하여 정부수립 이래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동안 창업과 쿠데타ㆍ혁명ㆍ정변ㆍ반정 등 여러 가지 형태의 권력변환이 있었지만, 피지배 계층이 평화적 방법으로 권력을 교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960년 민주당의 집권은 4월혁명을 통해 일어난 ‘혁명과정의 선거’로 취득한 정권교체이고, 1992년 김영삼의 문민정부 출범은 3당 야합으로 얻어진, 군사정권의 모태에서 발생한 것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민회의의 대선 승리는 김대중의 승리이기도 했지만, 김근태의 승리이기도 하였다. 그는 이를 위해 긴 세월 동안 모진 고문과 박해를 받으며 싸웠던 것이다. 평화적 정권교체와 정치혁명은 그의 오랜 꿈이고 소망이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약체였다. 국회는 여전히 한나라당이 지배하고 지난 반세기 이상 군사정권과 유착하면서 성장해 온 거대 족벌신문과 지식인 그룹, 그리고 “정권을 빼앗겼다”고 앙앙불락하는 특정지역의 기득권 세력이 버티면서 사사건건 새정부를 헐뜯었다.

‘국민의 정부’의 권력은 탄생 때부터 많은 고민을 안고 출발했다. 김 대통령은 유효 투표의 40.3%의 지지로 당선되었다. 이회창 후보보다 겨우 39만 표 앞선 것이었다. 승부를 가른 이 39만 표는 김종필 총리의 지지기반인 충청권에서 나타난 김대중-이회창 후보간 표차와 정확히 일치하는 수치다. 김 총리가 공동정권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회창 총재가 이끄는 한나라당은 야당으로 입장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원내 제1당으로 막강한 국회 권력을 갖고 있었다. 39만 표의 격차에서 짐작되듯 표의 동서 양분 현상은 과거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지난해 6월의 지방선거와 두 차례의 재ㆍ보궐선거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강화되었다. 말하자면 김대중 대통령의 권력은 소수정권인데다 그나마 권력이 나뉜 연합 정권의 구조적 취약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것이다.
(주석 3)


주석
3> 전영기,
, <월간중앙 WIN>, 199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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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평전/[13장] 성실한 의정활동, 대안과 정책제시

2012/09/24 08:00 김삼웅

 

 

김근태는 7월 3일 열린 제184회 임시국회에서 국민회의의 대표연설자로 선정되었다.
정당대표의 국회 기조연설은 오랜 관행으로, 국회의원이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하지만 총재나 부총재급이 아닌 평의원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기회다. 김근태는 의정생활 1년여 만에 제1야당의 대표연설을 하게 되었다.

보좌관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며칠 동안 대표연설문을 작성하였다.
대선을 앞둔 시점이어서 국민회의의 당면 과제와 정책, 현실적 이슈를 많이 담았다. 대표연설은 개인의 정견ㆍ정책보다 당의 입장을 천명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김근태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치철학을 제시하는 기회로 삼았다. 반응은 뜨거웠다. 그의 위상이 한층 돋보이는 성공적인 연설이었다.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설문 제목은 <‘질서 있는 변화’로 ‘새정치’를 열자>였다.
김근태는 이날 연설에서 정부에 “대선자금 한보진실 밝히고 사과할 것” “중립내각 구성하여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할 것”과 “남북국회회담” “두 전직 대통령 사과하면 용서ㆍ화해” “자민련과 공동집권 실현으로, 국민기대 부응” 등을 제시하였다. 다음은 연설 요지.

‘질서 있는 변화’로 ‘새정치’를 열자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3당 야합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신한국당 정권은 총체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신한국당 정권은 정말로 엄청난 국민적 혼란과 국가적 혼돈을 낳고 말았습니다. 신한국당 정권에서 총리로, 당대표로, 장관으로 권력을 누려온 여당의 경선주자들은 하나같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뼈아픈 반성은 커녕 모든 책임을 김영삼 대통령에게만 떠넘기면서 권력잡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런 일입니다. 그런 태도로 국민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여당 경선에 정책대결은 없습니다. 줄세우기와 세몰이, 지역감정도 노골적으로 조장하고 있습니다. 국민분열 정권으로는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할 수 없습니다.

무한경쟁의 국제화 시대에 한 나라의 외교역량은 그 나라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외교와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외교역량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당은 국제사회에서 오랜 교분과 일관된 태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런 실력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의 중심에 서는 경제외교를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경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들로부터 ‘다시 한 번 해보자’는 신명과 의욕이 생겨야 합니다.

다가오는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새로운 세기를 여는 정부를 선택하게 됩니다. 돈 안드는 선거, 깨끗한 정치는 이제 움직일 수 없는 국민적 합의입니다. 이점에서 선거방송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의 확보는 정치의 민주적 발전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정치개혁특위의 여야 동수구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지만 우리는 일단 국회를 열자고 결단했습니다.
그러나 경기의 규칙에 해당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하는 정치개혁특위 구성을 1:1로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은 수십년 동안 국회의 관행이기도 합니다. 이를 반대하는 신한국당 정권이 진정으로 정치제도 개혁에 나설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진정으로 정치개혁 의지가 있다면 ‘중대결심’ 운운할 것이 아니라 집권당 총재로서 정부여당의 안을 먼저 국회에 내놓아야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92년 대선자금과 한보사태의 진상을 국민 앞에 밝히고 이해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정권재창출의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중립내각을 구성하여 다가올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하겠다고 결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렇게 결단한다면 국민 모두 새로운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서 나와 평범한 시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지은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역사와 국민 앞에 사과할 때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질서 있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기업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에서 기업하기 가장 편한 나라로 변화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구석구석 썩어서 돈이 아니고는 아무 것도 통하지 않는 이 숨막히는 사회에서 좀 공평하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정의로운 사회로의 변화, 남북간 전쟁의 공포에서 평화와 통일의 시대가 열리는 변화, 세대 갈등에서 노ㆍ장ㆍ청이 하나로 화합하는 변화, 차별과 분열에서 화해와 통합으로 뭉쳐지는 변화, 행복한 가정이 되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는 변화, 그리하여 신명나는 국민이 되고 신기운이 힘차게 세계속으로 뻗어나가는 변화를 국민여러분께서는 오히려 간절하게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야당에서 여당으로 정권을 교체할 줄 아는 나라만이 그런 변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유민주연합과 우리가 손잡고 두 당의 공동집권을 실현하여 국민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겠습니다. 국민 앞에 반드시 결실로 보답하겠습니다.
(주석 2)


주석
2> <새 정치뉴스>, 1997년 7월 7일~24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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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평전/[13장] 성실한 의정활동, 대안과 정책제시

2012/09/23 08:00 김삼웅

 

 

 

김근태는 국회의원이 되고서도 당내에서 주류가 되지 못했다.
국민회의는 김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동교동계가 일사분란하게 세력을 형성하고 주류가 되었다. 김상현ㆍ정대철 등 비주류가 있었지만, 경륜ㆍ투쟁ㆍ경력의 면에서 김대중의 상대가 되기 어려웠다. 김근태는 오래 전부터 김대중의 역량이나 인격을 존중해왔으나 친동교동계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비주류의 위치에서 비판과 견제를 통해 당내민주화를 추동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 믿고 그 길을 택하였다.
원칙과 정도를 중시해온 그의 경력으로 보아 당연한 일이었다. 국민회의는 5월 19일 서울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전당대회를 열어 대통령후보와 총재를 선출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에 따라 당내에서는 누가 봐도 대세로 굳어진 김대중을 추대하자는 측과 민주정당의 전통을 살려 경선을 하자는 측으로 갈라졌다.

김대중 진영은 하나마나인 경선으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고, 집권세력에 공작의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대해 비주류 측은 정권교체의 실현을 위해서는 국민경선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김근태는 단연 국민경선제의 주장을 폈다. 언론을 통해 이를 밝히고 당기관지의 찬반 토론에 나섰다. 당시 분위기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정권교체 실현위해 국민경선제 필요

정권교체를 실현해야 한다. 반드시 해야한다. 천금같은 이번 기회에 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돌아올 역사의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의 5%도 안 되는 사람만이 김영삼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지난 3.5 보궐선거의 결과는 이를 입증한다. 그럼에도 우리 역시 국민에게 폭넓게 신망 받고 있지 못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여전히 유효한 지난 4.11 총선의 패배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권교체에 대한 염원이 현재의 야당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로 연결되고 있지 않은 오늘의 상황은 무엇으로 극복될 수 있는가. 우리는 대선에서 YS라는 후보와 싸우는 것이 아니며 YS를 탈색한 후보와 싸우게 될 것이라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누가 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제1야당이며 민주정통세력인 우리 당이 먼저 해야 한다. 정권교체의 대의를 위해 양보하고 결단할 수 있어야 한다. 난점이 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정권교체를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우리가 쇄신하고 국민적인 참여가 지원한다면 해 볼 수 있다. 국민에게 감동의 순간을 마련하고 준비해야 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국민경선제를 비판한다면 정권교체를 실현할 어떤 방안을 가지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경선제는 야권에서 대통령후보로 나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합의하여 경선의 관리주체를 만들고 후보로 등록한 다음, 등록한 후보들이 10~15개 권역을 순회하며 국민들의 지지와 참여를 호소하고 1일 당원으로 등록하는 선거인단을 모집하여 경선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때 각 권역은 인구비례에 의해 대의원 숫자가 배정되며 이 숫자를 가장 많이 확보한 후보가 야권의 단일후보로 확정되어 후보지명 대회를 거친 뒤 본선에 나서게 된다.

이미 일본 신진당과 대만 민진당에서도 이와 유사한 국민참여 경선의 실시로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두 나라에 비해 정치의식 수준이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더 큰 성과가 있을 것이다. 야당간의 정치적 흥정만으로 본선에서 승리 가능성을 높일 수는 없다.

국민경선제가 필요하다.

첫째, 야당이 나뉜 상태에서 후보가 난립하여 서로 대립하는 것보다 출마를 원하는 야당후보가 공정한 관리하에 국민경선을 통해 야권의 단일후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야권의 힘의 소진을 막고 국민의 힘을 결집시키게 될 것이다. 비용의 문제는 경선참여 후보간의 약정과 선언을 통해 깨끗한 선거의 모범을 야당이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둘째, 국민경선은 전국의 지역을 순회하며 시차를 두고 시행하는 것이며 국민과 언론의 감시 하에 치러지는 것이며, 국민과 언론의 감시 하에 치러지는 것이기 때문에 여당이나 안기부의 공작을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여당이나 안기부에 의한 동원이 발각될 경우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쪽은 오히려 여권일 것이기 때문에 쉽게 공작을 감행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정치와 정당의 쇄신을 이루고 국민이 정치의 주인으로, 정당의 주인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국민과 정당, 정치의 거리가 좁혀져야 한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지우고 국민 스스로가 공직후보를 공천하는 제도의 정착이 정치의 선진화를 앞당길 것이다.

국민이 원하고 있다.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이 단결하고 쇄신하여 수권세력으로 결집되기를 원하고 있다. 우리가 이런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치쇄신과 정당쇄신을 이루고 야권의 후보를 공개적이고 엄정한 경선을 통해 단일화 할 수 있다면 다가올 12월 대선에서 정권교체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주석 1)

국민회의는 경선제를 받아들여 전당대회를 열었다.
대의원 4,368명과 참관인 등 1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대회는 대선후보 경선에서 김대중이 총투표수 4,157표 중 3,223표(77.5%)를 얻어 967표(21.8%)를 얻은 정대철을 크게 눌렀다. 총재 선거에서도 김대중은 73.5%의 득표로 김상현을 압도했다. 국민회의는 국민경선제를 채택함으로써 모양새도 보기 좋고 국민의 관심도 불러모아 전당대회가 흥행을 이룰 수 있었다. 김근태는 크게 보람을 느꼈다.

이날 전당대회는 또 부총재 11명도 선출하였다. 김근태는 자력으로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이제 영입케이스 부총재에서 당원들의 직선에 의해 부총재가 된 것이다. 그것도 동교동계의 지원이나 비주류 측의 연합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민회의 대의원들의 선택으로, 자력에 의해 당선된 것이다.

국민회의 대의원들은 유신과 5공체제에서 온 몸을 던져 싸우다가 입당한 김근태를 높이 평가하여, 계파의 소속감을 떠나서 그를 지지한 것이다.

김대중이 국민회의 대통령후보로 선출되면서 대선 정국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신한국당은 보수언론을 매개로 대대적인 DJ 흠집내기에 나섰다. 예의 색깔론과 천문학적인 정치자금 은닉설이었다. 신한국당 사무총장 강삼재는 김대중이 670억 원 규모의 비자금을 관리해왔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폭로했다. 그러나 이것은 허위로 밝혀졌다. 대선을 앞두고 ‘아니면 말고’ 식의 저질 폭로전이었다.

오히려 14대 대선 당시 신한국당이 3,000억 원 규모의 대선자금을 기업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뒷날 드러났다.


주석
1> 국민회의 기관지 <새정치뉴스>, 1997년 4월 1일~10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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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평전/[12장] 제15대 국회의원 당선, 원내 진출

2012/09/22 08:00 김삼웅

 

사람이 출세하면 목이 굳어진다고들 한다. 특히 정치 속물들이 의원 뱃지를 달거나 청와대에 들어가면 목에 기브스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근태는 늘 자성하는 마음으로 의정활동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어려웠던 지난 날을 잊지 않으려고 서민들의 생활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틈이 나면 지역구의 어려운 고아나 독거노인들을 찾았다. 그에게는 아픈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 수배 중일 때 가족의 생계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 친구들이 가족을 격려하려고 김근태의 집을 찾았다가 단칸방에서 아내 인재근과 갓난 아기 병준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을지 모르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소식을 뒤늦게야 들은 김근태는 평생을 서민들을 위해 살고자 마음을 다지고 다졌다.

그리고 겸손하고 도덕적 바탕에서 원칙과 상식을 지키면서 정치활동을 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런 자세는 재선에 이어 장관이 되고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것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강경한 투사라는 인상을 먼저 떠올립니다. 정계에 나온 뒤의 나의 모습이나 행보를 보고서 또 어떤 사람들은 진지하고 원만한 것은 좋은데 유약해 보인다, 너무 점잖고 도덕적이다. 논리적이어서 차가워 보인다고도 합니다. 최근에는 균형감각이 있고, 내재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는, 과분한 평가도 듣곤 합니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모두 달게 듣고자 합니다. 또한 반성도 하고 때론 힘도 얻습니다. 그런 평가들이 ‘나’라는 사람 됨됨이와 꼭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크게 틀리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은 도덕적인 자신감에서 오는 자유로움을 갖추고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는 것입니다. 진지하게 고민하며 더 나은 내일에의 비전을 가질 만큼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내가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주석 18)

국회의원 김근태는 남다른 길을 걸었다. 그의 투명한 의정활동으로 우선 유관기관과 기업인들이 긴장했다. 그리고 여의도에 똬리를 틀고 있는 각종 로비스트들이 겁을 먹었다. 그에게는 로비가 통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후원금이 모이지 않았고, 명절 때이면 국회 의원회관에 산더미처럼 쌓이는 선물 꾸러미가 그의 방은 피해갔다.

새로운 정치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나는 그 출발점이 정치자금의 투명성과 민주적 공천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피감기관에는 후원회 초청장을 돌리지 않았다. 한 번도 촌지를 주지 않은 나를 이해해주는 기자들이 고맙다. 당론과 다르게도 투표할 수 있는 크로스보팅과 표결 내용을 그대로 공개하는 표결실명제를 통해서 정책 투명성을 높일 수 있게 되면 참으로 좋겠다.
(주석 19)

국민회의 총재 김대중은 김영삼 정권의 야당 파괴를 막고 차기 집권을 위해 자민련 총재 김종필과 연합을 서둘렀다. 두 총재는 5월 4일 국회에서 전격 회동하고 대여 공동투쟁을 다짐했다. 이것은 사실상 DJP공조의 신호탄이 되었다. 두 김 총재는 △ 검찰의 표적수사 중단 △ 과반수 확보 중단 △ 입당자의 원상회복을 촉구하면서,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15대 국회 원구성을 거부키로 합의했다.

또 5월 26일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국민회의는 자민련과 함께 대규모 합동집회를 열고 양당공조를 통해 ‘총선민의 수호투쟁’을 결의, 등원 거부 투쟁을 전개하였다. 두 당의 공조체제는 9월 정기국회에서 더욱 강화되어 10여 차례의 합동의총과 정책토론회, 양당 인사들간 식사모임 등으로 이어졌다.

1997년의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은 자민련이 후보 단일화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의원내각제 개헌에 대해 “15대 국회에서는 어려우나 16대에 가서는 추진할 수도 있다.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제 개헌을 선거공약으로 내걸 수 있다”는 등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이와 관련 김근태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수평적 정권교체를 오래 전부터 절체절명의 가치로 추구해 왔다. 박정희 정권 이래 36년 동안 철옹성을 쌓아오며 구축된 특정 지역의 패권주의를 깨뜨리는 일이 쉽지 않다는 현실정치의 장벽을 지켜보면서도 5ㆍ16군사쿠데타와 유신정변의 핵심 중의 한 사람인 김종필과의 정치연대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김근태는 의원총회와 기자회견을 통해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하는 자민련과의 후보단일화 에 찬성할 수 없다”고 천명하였다. 당 부총재의 위치에서 이같은 발언은 국민회의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김대중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원칙과 대의를 중시해온 그로서는 하지 않을 수 없는 발언이었다. 김근태가 원칙과 타협, 이상과 현실, 가치와 실용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에 대세는 이미 ‘DJP연합'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김근태는 민주당과의 통합을 서둘렀다. 정치적 ‘친정’이기도 하지만, 옛 재야 시절 상당수 동지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들은 4ㆍ11총선에서 대부분 낙마하고, 당내 갈등과 분열로 심한 내홍을 앓고 있었다. 자민련과의 연합도 중요하지만 정통민주세력의 연대가 더욱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인식이었다.

“옳게 또 떳떳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오직 그러한 사실만으로서 능히 불행을 견디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을 나는 입증하고 싶다.”라는 베토벤의 말이 이즈음 김근태의 심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주석
18> 김근태, <부드러운 힘>, <희망은 힘이 세다>, 22~23쪽.
19> 김근태, <시린 겨울을 보내며>, <희망은 힘이 세다>,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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