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2장] 제15대 국회의원 당선, 원내 진출

2012/09/20 08:00 김삼웅

 

 

김근태는 초선 국회의원이 되어 국회 외무통상위에서 전반기 의정활동을 시작하였다.
외통위는 국회의원들이 기피하는 상임위지만 그는 당당하게 이를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하였다. 남북관계와 주변 4강외교에 대한 전문지식을 높이고자 관계 자료를 읽고 상임위의 정책질의 수준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가 따랐다.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의원 중의 하나였다. 국회 외통위의 가장 뛰어난 의원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후반기에는 재정경제위로 상임위가 바뀌었다. 재경위에서도 그의 활동은 돋보였다.

김 의원은 정치적 경력을 쌓기 위해 특유의 끈기와 성실로 의정활동에 전념하는 방식을 채택한 듯하다.
그는 15대 국회 전반기 의원평가에서 통일외무위원회의 가장 뛰어난 활동을 한 의원으로 선정됐다.(중앙일보 제4회 의원평가).

후반기 들어 재경위로 상임위를 옮긴 김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우리나라 법인(法人)의 기밀비ㆍ접대비의 규모를 밝혀내는 등 눈부신 활동력을 보여줬다. 한건주의나 비약적 성장보다 치밀한 사전준비와 실력 쌓기를 중시하는 장기전ㆍ지구전(持久戰)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는 ‘지구전적 인물’이다. 혹은 대기만성(大器晩成) 형일 수도 있다.
(주석 10)

김근태는 30년에 걸친 재야투쟁의 길에서 현실 정치인이 되어 지역구를 관리하고 민원을 챙기는 일에 능숙하지 않았다. 또한 오랜 재야활동으로 인해 대중성이 부족하다는 한계도 따랐다. 하지만 몸에 밴 성실성과 부드러운 심성, 공부하는 모습은 곧 여의도 정가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김근태 의원을 몇 번 만나본 사람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보통 ‘재야출신 치고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역시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재야’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재야’라는 말이 주는 비타협성, 강경함, 완고함 같은 분위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답변이 이어지곤 한다.

사실 ‘진지하고 매너가 부드러우면서 사고가 유연하고 합리적' 이라는 김 의원에 대한 평가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다. 단순한 국회의원이 아니라 한 시대의 리더가 되기를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품성들을 그가 대체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 성품이 갖춰졌다는 것과 정치지도자로 성공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정치리더로 발돋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대중성이다. 타고난 대중성이 부족하면 대중적 이미지를 창조해내려는 노력도 리더를 꿈꾸는 정치인이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주석 11)

 



원칙과 정의를 주장하던 재야운동에서 현실정치인의 길은 그에게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정치적 쇼를 할 줄 모르고, 여느 정치인들처럼 언론을 활용하는 방법도 몰랐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선 신문 사진과 TV화면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보도사진에 자신의 모습이 잘 드러날 수 있는 자리를 선정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기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김 부총재는 확실히 낙제생임에 틀림없다. 지난 3일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대회를 참관할 때도 그는 단상 맨 뒷줄 한귀퉁이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다른 부총재들이 앞줄 중앙에 당당히 자리를 잡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또 지난달 28일 이기택 총재 일행과 대구 가스폭발사고 현장을 방문했을 때도 그는 일행의 후미로 밀려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나 있었다.

다소 소극적인 그의 태도에 대해 주변에서 조언도 많았다 한다. 특히 이해찬 의원으로부터는 “김 부총재가 소극적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개인은 물론 국민회의, 재야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과감히 앞에 나서야 한다”는 코치를 받기도 했다고.

그는 민주당에 입당한 국민회의 출신이 당내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가 오는 통합협상에서 합의된 8월 전당대회 이후 부총제직 보장을 사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처음부터 개인의 몫을 챙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총재직을 사양하는 대신 국민회의에 약속된 지분을 더욱 확고히 보장받기 위한 결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각이 정치판에는 도저히 통하지 않을 만큼 순진했음을 인정해야 했다.……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차분한 성품의 김 부총재지만 이에 대해서는 “당내 현실은 참으로 야박한 것 같다”며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주석 12)


주석
10> 전영기, 앞의 책 <월간중앙 WIN>, 84쪽.
11> 앞과 같음.
12> <뉴스메이커>, 1995년 5월 18일자, 김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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