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3장] 성실한 의정활동, 대안과 정책제시

2012/09/23 08:00 김삼웅

 

 

 

김근태는 국회의원이 되고서도 당내에서 주류가 되지 못했다.
국민회의는 김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동교동계가 일사분란하게 세력을 형성하고 주류가 되었다. 김상현ㆍ정대철 등 비주류가 있었지만, 경륜ㆍ투쟁ㆍ경력의 면에서 김대중의 상대가 되기 어려웠다. 김근태는 오래 전부터 김대중의 역량이나 인격을 존중해왔으나 친동교동계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비주류의 위치에서 비판과 견제를 통해 당내민주화를 추동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 믿고 그 길을 택하였다.
원칙과 정도를 중시해온 그의 경력으로 보아 당연한 일이었다. 국민회의는 5월 19일 서울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전당대회를 열어 대통령후보와 총재를 선출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에 따라 당내에서는 누가 봐도 대세로 굳어진 김대중을 추대하자는 측과 민주정당의 전통을 살려 경선을 하자는 측으로 갈라졌다.

김대중 진영은 하나마나인 경선으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고, 집권세력에 공작의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대해 비주류 측은 정권교체의 실현을 위해서는 국민경선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김근태는 단연 국민경선제의 주장을 폈다. 언론을 통해 이를 밝히고 당기관지의 찬반 토론에 나섰다. 당시 분위기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정권교체 실현위해 국민경선제 필요

정권교체를 실현해야 한다. 반드시 해야한다. 천금같은 이번 기회에 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돌아올 역사의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의 5%도 안 되는 사람만이 김영삼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지난 3.5 보궐선거의 결과는 이를 입증한다. 그럼에도 우리 역시 국민에게 폭넓게 신망 받고 있지 못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여전히 유효한 지난 4.11 총선의 패배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권교체에 대한 염원이 현재의 야당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로 연결되고 있지 않은 오늘의 상황은 무엇으로 극복될 수 있는가. 우리는 대선에서 YS라는 후보와 싸우는 것이 아니며 YS를 탈색한 후보와 싸우게 될 것이라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누가 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제1야당이며 민주정통세력인 우리 당이 먼저 해야 한다. 정권교체의 대의를 위해 양보하고 결단할 수 있어야 한다. 난점이 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정권교체를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우리가 쇄신하고 국민적인 참여가 지원한다면 해 볼 수 있다. 국민에게 감동의 순간을 마련하고 준비해야 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국민경선제를 비판한다면 정권교체를 실현할 어떤 방안을 가지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경선제는 야권에서 대통령후보로 나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합의하여 경선의 관리주체를 만들고 후보로 등록한 다음, 등록한 후보들이 10~15개 권역을 순회하며 국민들의 지지와 참여를 호소하고 1일 당원으로 등록하는 선거인단을 모집하여 경선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때 각 권역은 인구비례에 의해 대의원 숫자가 배정되며 이 숫자를 가장 많이 확보한 후보가 야권의 단일후보로 확정되어 후보지명 대회를 거친 뒤 본선에 나서게 된다.

이미 일본 신진당과 대만 민진당에서도 이와 유사한 국민참여 경선의 실시로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두 나라에 비해 정치의식 수준이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더 큰 성과가 있을 것이다. 야당간의 정치적 흥정만으로 본선에서 승리 가능성을 높일 수는 없다.

국민경선제가 필요하다.

첫째, 야당이 나뉜 상태에서 후보가 난립하여 서로 대립하는 것보다 출마를 원하는 야당후보가 공정한 관리하에 국민경선을 통해 야권의 단일후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야권의 힘의 소진을 막고 국민의 힘을 결집시키게 될 것이다. 비용의 문제는 경선참여 후보간의 약정과 선언을 통해 깨끗한 선거의 모범을 야당이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둘째, 국민경선은 전국의 지역을 순회하며 시차를 두고 시행하는 것이며 국민과 언론의 감시 하에 치러지는 것이며, 국민과 언론의 감시 하에 치러지는 것이기 때문에 여당이나 안기부의 공작을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여당이나 안기부에 의한 동원이 발각될 경우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쪽은 오히려 여권일 것이기 때문에 쉽게 공작을 감행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정치와 정당의 쇄신을 이루고 국민이 정치의 주인으로, 정당의 주인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국민과 정당, 정치의 거리가 좁혀져야 한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지우고 국민 스스로가 공직후보를 공천하는 제도의 정착이 정치의 선진화를 앞당길 것이다.

국민이 원하고 있다.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이 단결하고 쇄신하여 수권세력으로 결집되기를 원하고 있다. 우리가 이런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치쇄신과 정당쇄신을 이루고 야권의 후보를 공개적이고 엄정한 경선을 통해 단일화 할 수 있다면 다가올 12월 대선에서 정권교체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주석 1)

국민회의는 경선제를 받아들여 전당대회를 열었다.
대의원 4,368명과 참관인 등 1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대회는 대선후보 경선에서 김대중이 총투표수 4,157표 중 3,223표(77.5%)를 얻어 967표(21.8%)를 얻은 정대철을 크게 눌렀다. 총재 선거에서도 김대중은 73.5%의 득표로 김상현을 압도했다. 국민회의는 국민경선제를 채택함으로써 모양새도 보기 좋고 국민의 관심도 불러모아 전당대회가 흥행을 이룰 수 있었다. 김근태는 크게 보람을 느꼈다.

이날 전당대회는 또 부총재 11명도 선출하였다. 김근태는 자력으로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이제 영입케이스 부총재에서 당원들의 직선에 의해 부총재가 된 것이다. 그것도 동교동계의 지원이나 비주류 측의 연합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민회의 대의원들의 선택으로, 자력에 의해 당선된 것이다.

국민회의 대의원들은 유신과 5공체제에서 온 몸을 던져 싸우다가 입당한 김근태를 높이 평가하여, 계파의 소속감을 떠나서 그를 지지한 것이다.

김대중이 국민회의 대통령후보로 선출되면서 대선 정국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신한국당은 보수언론을 매개로 대대적인 DJ 흠집내기에 나섰다. 예의 색깔론과 천문학적인 정치자금 은닉설이었다. 신한국당 사무총장 강삼재는 김대중이 670억 원 규모의 비자금을 관리해왔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폭로했다. 그러나 이것은 허위로 밝혀졌다. 대선을 앞두고 ‘아니면 말고’ 식의 저질 폭로전이었다.

오히려 14대 대선 당시 신한국당이 3,000억 원 규모의 대선자금을 기업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뒷날 드러났다.


주석
1> 국민회의 기관지 <새정치뉴스>, 1997년 4월 1일~10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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