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3장] 성실한 의정활동, 대안과 정책제시

2012/09/30 08:00 김삼웅

 

원내에 진입하면서 오래잖아 그는 곧 차세대 정치유망주로 떠올랐다. 한국정당정치연구소와 <월간중앙WIN>은 1998년 11월호부터 "미래를 준비하는 정치인" 4명을 골라 검증토론을 벌이고, 매월 이를 잡지에 실었다. 시민과 정가의 뜨거운 관심을 불렀다.

집권당이 된 국민회의에서는 노무현과 김근태, 한나라당에서는 손학규와 이부영이 각각 선정되었다. 이들은 모두 현역 의원이었다. 김근태 관련 기사는 1999년 1월호 <월간중앙WIN>에 "폭넓은 대중정치로 사회 패러다임 변화추구"란 제목으로 실렸다. 기사는 중진 정치인, 차세대 주자의 일원이 된 김근태는 먼저 "이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새로운 희망과 미래를 향해"란 기조발표문을 읽은 다음, 사회자와 4명의 전문 패널리스트로부터 집중 질문을 받고, 자신의 정책과 철학, 비전을 밝혔다. 이 기획은, 사회 정대화(한국정당정치 연구소 부소장), 패널 김행(중앙일보 전문기자), 박상병(인하대 강사), 조흥이(서울대 교수), 최배근(건국대 교수), 진행 정리 윤석진(월간중앙WIN 기자)이 참여했다.

패널의 질문과 김근태의 철학, 신념을 밝히는 주요 부문을 발췌한다.

패널 : 3당통합을 통해 태생적 한계처럼 김대중 정권도 자민련과 연합이라는 준태생적 한계 때문에 민주주의의 내용을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김근태 :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런데 YS정부의 태생적 한계는 한국사회 집권세력의 정권 재창출인데 그 대표주자를 바꿨다는 의미뿐이었다. 이에 비해 DJ정부는 야당의 집권이기 때문에 보다 정통성이 높다. 추진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몇가지의 난제가 있다. 자민련과의 연대에 따른 ‘준태생적 한계’라는 지적 못지않게 더 중요한 제약요건이 있다.

첫째, 지금의 우리 사회는 경제위기뿐 아니라 패러다임의 위기다. 그런데 지난 시기의 기득권 세력을 중심으로 위기의 순간을 미봉하자는 바람이 굉장히 강하다.

두 번째는 김대중 정부의 주류는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피해를 본 세력들이다. 획기적으로 주류의 폭을 넓히고 싶지만 DJ는 손을 잡을 수 있는 상징적 정치인이 없다. YS는 이미 실패한 세력이어서 손을 잡기 힘들다. 나는 80년대 이후 민주대연합을 주장해왔고 이를 한 번도 바꾼 적이 없었다. 다만 근래에서 방향을 좀 바꿨다. 21세기라는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실제적 능력을 가진 전문가들의 역할이 간절하게 요청된다.

패널 : 정권교체 이후 지역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는 느낌이다. 김 부총재도 현정권에 대한 ‘영남지역의 악화된 정서’에 관해 듣고 있을 텐데 어떻게 생각하나.

김근태 : 한국에서 지역주의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다. 사회통합과 국민통합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큰 장애물이다. 나는 한국에서 구조적으로 보면 주류이다. 경기도 출신이고 학력은 이른바 KS(경기고ㆍ서울대) 마크다. 그러나 행태는 비주류였다. 그 이유는 실천적으로는 정권교체를 하자는 것이었다. 보다 현실정치적으로 얘기하면 지역패권주의에 대항하여 싸운다는 것이었다. 지역주의 문제는 대략 세 가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하나는 패권성, 둘째는 대외적 배타성, 셋째는 대내적 독점성의 문제다. 영남 중심의 지역패권주의는 정권교체를 통해 일정하게 붕괴된 것 아닌가. 이제 지역주의 문제는 대외적 배타성과 대내적 독점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로 시각을 좁혀야 한다. 지적대로 영남쪽의 소외감, 상실감이 상당히 크다. 이 문제는 단기적으로는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본다.

패널 : 당내 개혁세력이 지난 1년 동안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하나 김부총재는 김 대통령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가.

김근태 : 민주화운동세력이 국민대중으로부터 평가받으면서도 전폭적 신뢰를 받지 못하는 근거가 두가지 있다. 하나는 군사독재의 폭압이 깊었을 때 민주주의가 살아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와 계승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는 꿈이 필요했다. 꿈은 관념적이다. 관념성을 동반한 꿈은 실제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두 번째는 탄압이 심할 때는 인격의 연속성이나 아이텐티티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모든 힘을 발휘해 저항해야 한다. 그러려면 상대방을 철저히 부정할 수밖에 없다. 파괴적인 권위주의세력 아래서 고통받은 사람들 가슴 속에는 상처가 있게 된다.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자기정화 노력이 필요하다. 억울하지만 그렇다.

DJ와 내가 차별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더 외곽에서 돌게 될지도 모르겠다. (웃음) 우리 정치의 다음 단계 모습은 정책노선에 따른 재결집이 될 것이다. 이것을 어떤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고, 누가 또는 어떤 집단이 해낼 것인가가 문제다. 현재 우리 정치는 최고의 리더십을 빼놓고는 각종 정보가 집중되지 않기 때문에 판단과 모색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협소하다. 이를 제도화하는 것은 다음 단계 리더십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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