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3장] 성실한 의정활동, 대안과 정책제시

2012/10/01 08:00 김삼웅

 

패널 : 재야세력이 김 대통령과 차별성이 없는 것보다 오히려 지금은 김 대통령을 많이 못 도와줘서 문제가 아닌가.

김근태 : 그렇다. 단적인 예를 들어 DJ를 싫어하는 것은 좋다. 또 권력과 일정한 비판적 거리를 갖고자 하는 것도 좋다. 그런데 DJ개혁이 이번에 실패하게 되면 그 다음 한국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때 당신들의 위치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것을 생각해야 한다.

패널 : ‘마지막 재야’로 불렸던 김 부총재에게 요즘 과격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가.

김근태 : 폭압의 시대에는 지식인으로서 싸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 나를 보고 과격하다는 것은 억울하다. 국회에 들어와 처음 상임위를 선택할 때 재경위를 희망했다. 전반기에는 당내 사정이 있어 외통위에 있었고 후반기에 내 뜻대로 됐다. 내가 경제학과 출신이었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단순히 과격한 사람이 아니라 정책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대안세력으로 동의받고 싶어서였다.

패널 : 김 부총재는 재야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민주대연합론을 주장해왔다. 그것은 재야에서 민주당에 입당할 때의 명분이기도 했다. 그뒤 현 김 대통령의 정계복귀와 함께 민주당이 깨지고 국민회의가 만들어졌을 때 그것을 비관하기보다 따라갔는데 30년 이상 주장했던 민주대연합론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김근태 : 국민회의를 만드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회의행 마지막 차를 탔다. 그런 선택이 정당하지 않다는 비판의식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감옥에 가는 것에 버금가게 고통스러웠다. 재야운동의 주류는 비판적지지론 (87년 대선 당시 후보단일화론, 독자후보론과 함께 재야의 3가지 대선전략 중 하나)이었다. 이를 지지했던 사람 중 다수가 국민회의에 참여하고 있다는 인간관계가 우선 옥죄어왔다.

두 번째는 그래도 야당은 그곳 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민주당에 부총재로 참여해 6ㆍ10지방선거에서 당시 경기도지사 후보 공천과정을 보면서 이렇게 해서는 정권교체의 희망은 없다고 생각했다. 앞에 든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참여하게 됐다.

(김 부총재는 당시 “권력 쪽에 가까운 사람들”이 나서 ‘민주당에 남으면 사면복권 시키고 국민회의에 가면 안 시키겠다’고 회유하고 협박했던 사실을 털어놨다. 정치인에게 사면복권 여부는 선거 출마자격과 직결되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문제다. 김 부 총재는 사면복권을 포기하고 결국 국민회의에 참여했지만 뜻밖에 곧 사면복권됐다. 이에 대해 김 부총재는 “YS의 직접 요청으로 미국 케네디가의 압력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면서 “기가 막히는 일”이라고 탄식했다)

패널 : 밉건 곱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재벌이 경제성장을 주도해왔다. 재벌 중심이 아닌 21세기 산업구조 모델을 구상해 본 적이 있는가.

김근태 : 대만과 홍콩은 외환위기가 없었다. 대만에는 한국과 같은 재벌그룹이 없다. 재벌그룹이 지금 무너지면 한국 경제에는 큰 타격이 온다. 하지만 기업 경영방식의 변화가 반드시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쟁력 있는 대기업으로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개발독재의 유효성은 80년 초에 끝났다고 본다. 10년 이상 지연된 것으로 막대한 코스트를 지금 지불하고 있다. 위기에 직면해 지불해야 할 코스트가 더 늘고 있는 상황에서 우회할 수 있는 길이 우리에게는 없다. 대만 모델도 있고, 독자적인 중소기업과 조립산업 중심의 대기업을 양립시키는 모델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패널 : IMF체제로 들어선 이후 커다란 사회문제로 등장한 실업사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보나.

김근태 : 지금까지 우리 경제가 고도성장하면서 한 직장을 그만둬도 다른 직장을 언제든지 구할 수 있어 사실은 사회적 충격이 별 것 아니었다. 그런데 실업률 8%에 2백만 명의 실업사태는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다. 이들 가족까지 연계돼 나중에 어떤 분노로 나타날지 두렵다. 이들에 대한 약속이 제도화될 수 있도록 전문가들에 의해 대안이 나왔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는 도대체 그 2백만 명이 누군지부터 실업자들의 면면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미국식 개념으로 벤처기업을 몇 만개 만들어 몇 십만 명을 금방 취업시킬 수 있다는 것은 환상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유럽식의 해결방법밖에 없는데 우리는 이에 대한 경험이 없다. 문제를 알면서도 대책을 세울 수 없는 좌절감이 깊다.

 



패널 : 김 부총재는 자신에게 반인권적 고문을 자행했던 이근안 전 경감을 이제는 용서하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용서하고 싶더라도 고문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근태 : 날씨가 안 좋으면 감기몸살이 쉽게 찾아온다. 그때 고문의 후유증이다. 우선은 원한이 나 자신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나 자신 네 번에 걸쳐 도합 7년 동안 도피생활을 해봤다. 그 피신생활 자체가 굉장히 고통스럽다. 사실상 처벌이다. 이근안 씨가 만 10년을 피신하면서 겪은 고초는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세 번째는 이근안 씨도 군사독재의 하수인으로써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였다. 이 세 가지를 생각하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남아공의 만델라처럼 진실로 화해했으면 한다. 그리고 국민의 대표를 자임하는 정치인으로서 과거에 대한 복수로 한계를 보이고 싶지 않다는 바람에서였다.

 



패널 : 국가인권위원회 구성을 두고 논란이 많다. 과거에 대표적인 인권 피해자로서 누구보다 관심이 높을 것으로 보는데 어떤 입장인가.

김근태 : 지금 국민회의에서 국가인권위원회를 독립된 국가기구로 하자는 안을 내놓고 있다. 로마시대 호민관이 독립성을 가졌던 것처럼 그 방향이 유엔의 권고에 비춰보더라도 합당한 것이다. 법무부안이 아니라 당안이 통과되기를 기대한다. 이에 대해 사회단체뿐 아니라 국민의 관심도 좀더 높아졌으면 한다. 야당도 적극 참여해주기를 바라는데 아직 참여하고 있지 않다. 야당이 참여하면 국민회의 당안도 부분적으로 수정할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위상 자체는 국가기구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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