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7장] ‘이제 다시 일어나’, 결연한 옥중기
2012/08/16 08:00 김삼웅
2005년 4월 서울대 교정에 세워져 있는 김세진ㆍ이재호 열사 추모비에 향불과 국화가 놓여져있다.
편지의 일부를 소개한다.
세진이 아버지, 어머니
이 욕된 어둠이 얼마나 더 계속될 것인지요. 그 속에서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젊음들을 잃어버리게 될 것인지요. 나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접근하지 말라. 접근하지 말라”고 외쳤다는 세진이의 금속성 목소리에서 “살고 싶다 살고 싶다”라는 여운이 긴 메아리를 나는 들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젊은 생명을, 세진이, 재호, 영진이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그 젊음들이 죽음의 골짜기로 몰리는 동안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도저히 발뺌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진이 아버지, 어머니. 나는 세진이, 재호가 정말로 마지막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종철이의 죽음은 무엇입니까. 이 팽만한 배와 흥건하게 젖은 물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느님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은 어디 있습니까. 물 먹고 팽만한 배가 되어 죽어 버렸거나, 잠깐 활활 타오르는 불이 되었다가 연기를 남기고 공중으로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닌지요.
세진이 아버지, 어머니. 세진이의 죽음 이후 두 분이 떨쳐 일어나셨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눈물이 핑 돌면서 나는 머리를 끄덕거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뿐입니다. 그것이 세진이의 부활일뿐만 아니라, 두 분의 새 생명, 우리 모두가 거듭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나는 믿기 때문입니다. 이소선 어머니에게서 우리는 그 모습을 이미 본 적이 있습니다.
세진이 아버지, 어머니!
우리는 두 분의 일어섬을 기뻐합니다. 사망의 세계를 떨치고 일어선 두 분을 존경합니다. 후둘 후둘 하는 다리 떨림, 가슴 무너짐은 얼마나 지독한 것이었는지요. 두 분 속에서 저는 종철이의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을 뵈는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의 기대옴을 받쳐 주는 두 분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소선 어머니 모습이 겹쳐지기도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주석 20)
김근태는 3월 14일 경주교도소에서 <기정이 어머니의 구속 소식을 듣고> 의 편지를 썼다.
짧은 글이어서 전문을 소개한다. 구속된 자식들을 풀어놓으라고 시위한 죄로 구속된 ‘기정이 어머니’에 대해 쓴 글이다.
어머니, 기정이 어머니, 기도하고 계신가요. 기도하면 희끄무레한 먹방이 조금은 환해지던가요. 뜨거운 가슴 설운 마음 주체할 길 없어 15척 높은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 들어오셨습니다. 그리 던지고 물어뜯고 침뱉으며 사납게 사납게 소리치며 쳐들어 오셨습니다.
당신은 잠시 피하시라는 유혹 따위는 발길로 걷어차 버리고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 대달리려 이렇게 입성하셨습니다. 그렇게 어두움 속으로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외롭지 않으신가요. 우울해지지 않던가요. 기죽지 않던가요. 혹시 소리 죽여 울지는 않으셨는지요.
어머니, 어머니, 기정이 어머니. 추운 대관령 바람 한가운데 서 있던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스름달 비껴 걸린 나무 위로 일지매처럼 날아 올라가셨었지요. 거기 앉아 담벼락 노려보면서 아들들을 불러대셨지요. 내공 깊게 무림계 고수처럼 어머니의 외침은 하늘을 뒤덮었었습니다. 그렇게 아들들 가슴을 뒤흔들었습니다. 당신은 참다가 참다가 참지 못하여 아들 딸 가슴속으로, 이 설움 많은 담장 안으로 그리하여 먹방 속으로 직행해 버리셨습니다.
어머니는 —.
아, 비열한 저 자들에게 저주 있으라. (주석 21)
2010년 MBC 노조 파업 당시, 현장을 찾아 연대사를 하다가 소녀처럼 웃고 있는 이소선 어머니
김근태는 민주화운동옥중투쟁의원회(가칭)의 구성을 제안하면서, △ 양심수들의 합방ㆍ합사문제 △ 재소자에 대한 폭행ㆍ폭언근절 △ 전 재소자의 삭발거부와 소내에서 면회ㆍ서신ㆍ서책검열 등에 관해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인 요소를 근절해야 한다고 실천 방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재소자들이 결속하여 투쟁할 것을 권려했다.
주석
20> 앞의 책, 198~199쪽.
21> 200~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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