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6장] 엉터리 재판 5년 징역형 선고 2

012/08/09 08:00 김삼웅

 

 

김근태의 정연한 논리와 감동적인 진술은 그러나 군부정권의 하수인격인 판ㆍ검사들에게는 우이독경이 되었다. 그들은 이같은 진술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국민이 알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순간만 넘기면 책임을 면하고, 승진도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서성 판사는 김근태에게 국보법과 집시법 위반으로 징역 7년, 자격정지 6년을 선고했다.
판사는 “승진은 따 놓은 당상이군”, “창피한 줄 여기시오”라는 방청석의 야유를 귓전에 흘리면서 총총 자리를 떴다.

판사의 유죄판결의 이유 중에는 모리스 돕의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를 갖고 있었다는 것도 포함되었다. 이 책이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이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검찰이 <내외문제연구소>라는 관변 단체의 김영학에게 이 책의 감정을 의뢰하고, 그의 감정서를 바탕으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김영학은 돕의 주저인 <정치경제학과 자본주의>, <자본주의 발전연구> 등의 책 이름조차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20세기 후반기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서, 돕의 저서가 국보법 위반으로 처벌되는 한국이었다. 모리스 돕은 영국의 경제학자로서 이론경제학, 경제사, 사회주의경제학, 후진국문제 등 다방면에 걸친 저작을 발표한 세계적 학자다.

김근태는 항소심을 거쳐 5년 장기수가 되어 서울구치소에서 수형생활에 들어갔다. 전두환 군부독재가 마지막 독기를 뿜어내는 1986년 봄이었다. 김근태는 인간도살장 남영동에서 풀려나 서울구치소에 수감될 때, 지옥에서 천국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설마 "5년 장기수"가 될 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때 인왕산 언덕배기에 피어 있는 노랑 개나리와 검붉은 진달래를 바라보면서 감상에 젖었다. 그는 서정시인이었다.

얕은 골짜기 여기저기 띄엄띄엄 응달진 곳에 붉은 얼룩이 보인다. 노랑천지 속에 얼핏 보이는 저것은, 불그스레한 그 번짐은 무엇일까. 이제는 까맣게 멀어져 간 4월의 함성이 이 봄에 슬그머니 되살아나고 있는가. 부릅 뜬 눈으로 아직은 절대로 잠들 수 없는 피맺힌 5월이, 아스팔트에 낭자하게 쏟아졌던 피, 그 피가 은연중 배어나고 있는가. 아니면 작년 9월. 아! 그 남영동에서 내가 토해냈던 울부짖음의 파편이 튀어서 저리 붉게 피어나는가. 물고문에, 불고문에 바스라졌던 내 넋의 한 조각이 다시 새롭게 물올라 한 무데기 진달래로 피었는가. (주석 18)

김근태가 군사정권과 온몸을 던져 싸우며 재판을 받고 있을 즈음 그가 산모 역할을 했던 민청련의 <민주화의 길> 제12호에는 강성준이 "다시 우리 시작하자 김근태 형 재판에 부쳐"란 시를 실었다.


기나긴 바람타고
곤고한 발걸음
여기 이렇게 모여들었구나
아직 살아 있음을 더듬어 보는
여윈 손과 부르튼 입술
다하지 못한 사랑 그리워
서로 안고 뒹구는 구나
어디쯤 왔을까
얼마나 가야할까
짓이겨진 육신 높다랗게 걸어두고
남영동의 그 비명만 이리로 보낸
아름다운 이여
우리 어린 자식들의 웃음소리
언제나 되찾을까.

그러나 우리
살아 있음을 서로 부끄러워 함으로,
죽음을 건너 그이가 건진
노동의 힘찬 망치질 소리
우리 가슴 다긋히 두들김으로
해방의 모진 뚬은
곤고한 발길을 멈추지 않는구나
지친 깃발들 일으켜 세우는 구나

다시 시작하자
부르튼 입술 부벼대며
다시 시작하자
짓이겨진 육신 서로 안아 세우며
다시 시작하자
다시 우리 시작하자
(주석 19)

주석
18> 앞의 책, 103쪽.
19> <민주화의 길>, 제12호,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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