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18 06:50 김삼웅
5일 저녁 서울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 로비에서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부미방)의 주범으로 위암을 앓고 있는 김은숙씨를 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김은숙을 위한 작은 음악회'에서 윤민석씨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노래를 부르고 있다.ⓒ유성호
노태우의 6ㆍ29선언은 위기 탈출을 위한 유화책이었다. 야당과 재야가 6ㆍ29선언을 받아들이면서 6월항쟁의 국민적 민주화 열기는 체제내로 수용되고, 10월 27일 국민투표를 거쳐 직선제 개헌안이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정국은 급속히 제13대 대통령선거 국면으로 바뀌었다.
세상이 바뀌는 것 같았다. 폭압과 살륙의 시대가 어느새 대화와 타협의 시대로 변하는 듯하였다. 야당이 속속 창당되고 기회주의 언론은 온통 차기 대권과 대선의 향방관련 기사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죽은 자들과 감옥에 들어가 있는 양심수들은 잊혀지고, 산 자와 갇히지 않은 사람들이 제각기 이념과 이해와 입지를 쫓아 분주하게 움직였다. 여전히 경주교도소에 갇힌 김근태는 6월항쟁을 주도한 민중의 위대한 역량을 믿으면서도 바깥 소식에,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희망과 좌절, 안도와 비감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8월 28일 아내에게 <자유ㆍ석방 앞에서 의연함, 태연함은 태풍 속의 낙엽이지요>라는 제하의 편지에서 심중의 일단을 밝히고 있다.
바깥세상에 대한 그리움, 바깥소식이 동반하는 설레임과 안타까움이 마음을 흔들어 놓는 탓도 있겠지만, 이 높은 담벼락 안에서의 삶이 영혼을 무척 피폐케 만드는 것 같소. 이 시대의 징표인 적나라한 폭력, 제도화된 폭력과 경멸이 한껏 도드라지고 있는 이곳에서의 살아냄, 그리고 분노와 항거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긴장될 것을 요구해왔고, 그 때문에 꽤 바빴던 것도 같구려. 지난 2년 말이오.(…)
나갈 것 같으면서도 풀리지 않는 이 상태, 이런 우리 마음을 뭐라 말해야 할지요. 지난 7월 10일과 8ㆍ15의 내 심정은 참으로 복잡 미묘했소. 내 차례는 아직 안 되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자신에게 타일러 왔는데도, 열렸다 허무하게 도로 닫히는 교도소 정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다리에 힘이 빠지고 휘청거리는 것 같았소. 곧 몸져 드러누울 지경이었소. 차마 그럴 수는 없어 버티었지만 말이오. (주석 3)
이 대목에 이르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7월 10일과 8ㆍ15에 양심수와 일반범에 대한 정부의 감형ㆍ출소 조처가 있었다. 김근태도 대상자의 명단에 오르내렸으나 끝내 배제되었다. 수인들에게 3ㆍ1절과 광복절이 특히 기다려지는 것은 특사라는 ‘성은’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취임식 연단에 나란히 앉아있는 전직 대통령들. 왼쪽부터 김영삼 전대통령, 노태우 전대통령, 전두환 전대통령, 최규하 전대통령.ⓒ주간사진공동취재단
나가는 사람들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어른답게 해내지 못했다오. 결국 나는 못 나가고 말았구나 라는 그 냉엄한 사실에 짓눌려 허둥대고 만 것이지요.
이번은 아니지만 여하튼 나가는 것이 가까웠으니 여러 가지를 미리 깊이 생각해두고자 하면서 이 민주화의 변화는 무엇인가,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그리고 나는 무엇이고 참된 민주화와 민족자주를 위해서 우리는 나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하고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떤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등을 헤아리느라고 무척 바빴었다오.
간혹 생각이 엉키거나 잠자리에 들 때 쯤이면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여 빨리 나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은 아닐까 하며 조바심 치고 가슴 저려 하다가 자신을 돌아보곤 실소도 하였었소. 시계는 네편이야, 대범해야지라고 중얼거리기도 했었다오.
그러나 말이오. 자유ㆍ평등ㆍ석방 앞에서 의연함, 대범함, 어른다움 등은 한낱 태풍 속의 낙엽이었을 뿐이었소. 여러 가지 논리적인 숙고 과정 속에서 진짜 커지고 커져왔던 것은 폭발할 듯한 해방에의 갈망, 자유에의 그리움이었소.
거기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고 그냥 원색적인 해방에의 욕구만 있었던 것이오. 나가고 싶은 것이오. 이곳을 떠나가고 싶었던 것이오. 뻔히 예상되었던 것인데도 이런 강렬한 욕구가 차단되었던 그때의 충격은 굉장한 것이었소. 나는 통째로 교환되었던 것이오. (주석 4)
이 대목에 이르면 김근태의 소박한 인간적 감성을 만나게 된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누군들 감옥에서 풀려나길 바라지 않겠는가. 행여나 하며 ‘조바심 치고’, ‘가슴 저려’하는 수인의 모습에서 투사 김근태가 아닌 보통사람 김근태가 눈에 선하다. 그는 혁명가나 투사이기 전에 평범한 인간이었다.
김근태의 이 편지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대목이 있다. 이른바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역 김부식ㆍ김은숙ㆍ김현장 등이 경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느끼게 된 심경이다.
내가 이곳 경주에 와서 꽤 괜찮아했던 가장 큰 이유 하나는 은숙이가 여기서 살다가 나갔다는 사실이었소. 그것을 알게 된 순간 묘한 안도감과 구원 비슷한 감정을 갖게 되었소. 어찌보면 얄팍하고 뻔뻔스런 것일 수 있는데 은숙이가 고생하던 그곳에서 나도 고생 좀 했다는 사실이 성립하게 된 것이오. 나중에 나가서 은숙이, 부식이, 현장이를 볼 때 말을 틀 건덕지가 생겨준 것이지.
그네들이 결단을 내리고 투쟁할 때, 갇히고 매맞고 외로워할 때, 앞 세대로서 선배로서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소. 광주사태 이래로 눈물 많은 사내가 되어 쥐죽은 듯 엎어져 있었을 때 그네들은 일어섰고, 나는 또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소.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조그만 꼬투리가 우연히 생기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왔소. 이 경주에 와서 말이오. (주석 5)
주석
3> 김근태 옥중서간집, <열려진 세상으로 통하는 가냘픈 통로에서>, 202~203쪽, 한울,
1992.
4> 앞의 책, 203~204쪽.
5> 앞의 책,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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