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7장] ‘이제 다시 일어나’, 결연한 옥중기 2

012/08/13 08:00 김삼웅

 

김근태가 서울구치소에서 부인에게 쓴 많은 편지 중 마지막 시기는 1986년 1월이다.
이후 영등포구치소로 이감되었기 때문이다. 이 편지는 일곱 살짜리 아들 병준이가 크레용으로 써 보낸 ‘우리 아버지’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자기 아버지를 그리면서 쓴 글이다.

김근태의 아버지는 여늬 아버지들처럼 초라하고 소심한 분이셨다. 어릴적에 아버지가 3ㆍ1운동 당시 읍내 시장에는 못나가고 뒷동산에 올라가 혼자 만세를 불렀다는 말을 듣고는 심약한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었다. 이제 30대 후반이 되어 감옥에 앉아서 20년 전에 떠난 아버지의 그 따뜻했던 품속을 그리워하면서, 아버지를 원망했던 자신의 철부지를 자책한다.

20년 동안이나 아득히 먼 곳으로 떠나가셨던 우리 아버지가 바람이 거칠게 불고 해가 벌겋게 공중에 떠 있던 어제 나에게 되돌아오고 계셨다오. 아니 벌써 되돌아오고 있었던 우리 아버지를, 그 삶의 고뇌를 똑똑히 보게 된 것일 게야. 고난과 치욕의 이 겨레 20세기의 한 귀퉁이에서 당신에게 몰아쳐 왔던 그 절망과 부담에 짓눌려 겁먹은 채 살아가셨겠지. 버티느라고 부르르 부르르 떠시면서 말이요. 버티는 것이 힘겨워 몸에 늘 미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당신과 당신의 자식들을 가려 주느라고 속으로 미열을 내며 앓으셨던 그런 삶이였을 거요. (주석 10)

김근태는 작고한 아버지를 그리면서 일곱 살 아들과 네 살짜리 딸 (병민)의 모습이 겹쳤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가족이나, 해방 뒤 군사독재정권 시대의 민주화ㆍ통일운동가의 가족은 매 한가지였다. 일제 때는 ‘불령선인’으로 지목되어 온갖 감시와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고, 해방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좌경ㆍ용공 ㆍ간첩ㆍ종북’으로 색칠당하면 온전한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 딸 병민이는 1982년에 태어났다.

 


난 사실 병준이, 병민이 아버지이어야 하는 것에 은근히 겁을 내고 있는 것 같소. 그저 휘청거리면서 버텨 나가는 이 모습에서 어떤 것을 그 애들은 배우게 되고 흉내내게 될 것인지 말이요. 혹시 별 볼일없는 삶이구나, 우리 아버지는, 하며 실망할 지 모르는 것도 조바심칠 일이지만, 그 애들 가슴에 맺힐 지 모르는 상처들, 검은 그림자들의 드리움, 그것이 걱정이 된다오.

그러나 병준이 엄마의 따슨 사랑을 보면서 나는 안심을 하지. 애들이 그 속에서 몰아쳐 올지 모르는 어떤 것도 견뎌 낼 것을 나는 믿는 것이오. 그러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은 또 그 애들 자신의 삶으로 생명력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일이겠지요.
(주석 11)

김근태는 1986년 6월 영등포구치소로 이감되었다.
양심수들은 특히 권력이 ‘국사범’처럼 지목하는 수인들은 감옥을 자주 옮긴다. 그들의 용어대로 ‘불순분자’들과 차단하기 위해서다. 또 자주 이감을 시켜서 ‘신참’으로 고통을 주려는 보복성도 따른다.

김근태가 서울구치소에서 이감하는 6월 3일 같은 병동에 수감되었던 문익환 목사는 면회온 인재근에게 쪽지 하나를 은밀히 전했다. 다음의 시였다.

근태가 살던 방이란다

근태가 살던 방이란다
밤새 죽은 듯이 쓰러져 있다가
아침이면 꿈틀꿈틀 일어나 앉아
눈을 빛내던 방이란다.

해파리처럼 풀어진 몸
인재근의 고운 얼굴 아른거리지 않았으면
물거품처럼 아주 풀어졌을 몸으로
죽음을 깔아뭉개어 되살아난
근태의 방이란다.

민주주의의 손톱끝에만은 남아있어
곤두박히는 허무 나락을 쥐어뜯으며 솟구친
서울구치소 병사 10호실 근태의 방이란다.

1986년 5월 31일 토요일 근태를 이감시키고
그의 흔적을 지우려고 벽돌을 새로 페인트칠을 했단다.
그러나 어쩌리요 창문틈에 남아 있는 근태의 손톱자국을
철창에서 풍겨오는 그의 입김을
푸른 하늘에서 우뚝 솟아나는
근태의 웃는 얼굴을.

눈만 감으면 나는 바람으로 풀어져 신나게 펄럭인다.
근태가 휘두르던 민중의 깃발, 승리의 깃발로.
(주석 12)

영등포구치소에서 다시 ‘신참’이 된 김근태는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한 여름 뙤약볕에서 겹 옥고를 치렀다.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심리적 안정을 찾기 어려웠던 그에게 40줄을 바라보는 나이에 수인이 되어 잦은 이감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주석
10> 앞의 책, 183쪽.
11> 앞의 책, 184쪽.
12> 앞의 책,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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