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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Shall Overcome
이 노래를 작곡한 피트 시거(Pete Seeger)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포크 가수 겸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피트 시거는 바이올린 연주자 어머니와 버클리 음대 학장이던 아버지로 태어났다
191센티미터 장신으로 하버드대에서 수학하던 피트 시거는 우디 거스리의 권면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보다나은 세상을 추구하며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 곁으로 다가간다
2014년 9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 할때까지 초지일관 노래를 통한 환경 인권 반전 등 보다나은 세상을 추구하며 노래하였다.
포크 송은 대개 멜로디가 쉽고,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포크 가수들은 현재 사건에 대한 곡을 쓰는데, 피트 시거도 다르지 않았다.
피트 시거가 공동으로 작곡한 <우리 승리하리라 We Shall Overcome>는 1960년대의 민권 시위 때 자주 부른 노래였다.
이 노래를 부른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은
1960년대 가장 중요한 사회 문제였던 흑인 민권 운동에 상징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그녀가 부른 프로테스트 송 ''We Shall Overcome''은 당시 인권 운동의 찬가였다.
마할리아는 특히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그 유명한 워싱턴 연설에 앞서 열창했고,
1968년 킹 목사의 장례식 때에도 애도 곡을 불렀다.
그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스펠 여성 싱어이다.
가스펠 송은 그녀에 의해 전세계에 전파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을 비롯한 여러 소울 가수들의 영웅이 바로 마할리아 잭슨이다.
We shall overcome, we shall overcome,
We shall overcome someday.
Darling, Here in my heart, I do believe,
We shall overcome someday.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승리하리라,
언젠가는 반드시 승리하리라,
그대여, 내 마음 속 깊이, 나는 믿네,
우리 반드시 승리하리라,
We'll walk hand in hand, we'll walk hand in hand,
We'll walk hand in hand someday.
Darling, Here in my heart, I do believe,
We'll walk hand in hand someday.
손에 손을 잡고, 우리 행진하려네,
우리 반드시 서로의 손을 잡고 나아가려네,
그대여, 내 마음 속 깊이, 나는 믿네,
우리 반드시 함께 손잡으리라,
We shall live in peace, we shall live in peace,
We shall live in peace someday;
Darling, Here in my heart, I do believe,
We shall live in peace someday.
평화롭게 살려네, 평화롭게 살려네,
언젠가는 반드시 평화롭게 살려네,
그대여, 내 마음 속 깊이, 나는 믿네,
우리 반드시 평화롭게 살려네,
We are not afraid, we are not afraid,
We shall overcome someday;
Darling, Here in my heart, I do believe,
We shall overcome someday.
두렵지 않네, 두렵지 않네,
언젠가는 반드시 승리하리라,
그대여, 내 마음 속 깊이, 나는 믿네,
우리 반드시 승리하리라,
We shall overcome, we shall overcome,
We shall overcome someday.
Darling, Here in my heart, I do believe,
We shall overcome someday.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승리하리라,
언젠가는 반드시 승리하리라,
그대여, 내 마음 속 깊이, 나는 믿네,
우리 반드시 승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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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ent Night, Holy Night
- Mahalia Jackson -
Silent night, holy night
All is calm, all is bright
Round yon virgin, mother and child
Holy infant so tender and mild
Sleep in heavenly peace
Sleep in heavenly peace
Silent night, holy night
Shepherds quake at the sight
Glories stream from heaven afar
Heavenly hosts sing Alleluia
Christ the savior is born
Christ the savior is born
Silent night, holy night
Son of God love's pure light
Radiant beams from thy holy face
With dawn of redeeming grace
Jesus Lord, at thy birth
Jesus Lord, at thy birth...
◇ Mahalia Jackson
그녀는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행복을 안겨 주었다.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은 1911년 10월 26일 미국에서 태어나 1972년 1월 27일 소천했다.
그녀는 다섯살 되던 해에 일찌기 어머니를 여의고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이모의 엄격한 통제와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가정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게 된다.
어릴 적부터 가족들과 함께 교회를 다니면서 가스펠과 처음으로 접했던 마할리아 잭슨은
집안의 엄격한 신앙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뉴올리언즈에 널리 퍼져 있는 재즈 음악과 불루스에 점점 심취하게 된다.
특히 그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첫 번째 여성 불루스 가수 Ma Rainy와 Bessie Smith의 음악을 즐겨 들었고,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은 후일 가스펠 가수로 대성하는 그녀의 창법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열 여섯 살이 되던 1927년, 가족과 함께 대도시인 시카고로 이주한 마할리아 잭슨은 가정부와 세탁부 등의 일을 하는 한편,
살렘 침례교회(Greater Salem Baptist Church)의 성가대에 들어가 주일이면 가스펠을 부르며 생활하게 된다.
또한 프로 가스펠 그룹인 Johnson Gospel Singers와 함께 인근 지역의 교회를 순회하며 가스펠 공연을 하였다.
1929년 가스펠의 아버지(Father of Gospel)라 불리어지는 토마스 도르시(Thomas A. Dorsey)를 만나
193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투어에서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1931년 데뷔 싱글 "You Better Run, Run, Run"을 발표하였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는 못 하였다.
하지만 이 싱글 음반은 마할리아 잭슨의 데뷔 싱글이라는 이유로 많은 음반가들이 찾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체로 찾아보기 힘든 희귀 음반으로 남게 된다.
1935년 한 장례식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녀를 우연히 보게된 데카(Decca)레코드 관계자의 눈에 띄어 음반 계약을 체결하고
1937년에 "God's Gonna Separate the Wheat From the Tares"와 "My Lord" 그리고 "God Shall Wipe All Tears Away"와
"Keep Me Everyday"라는 곡들을 발표하였지만 모두 실패하게 되자 마할리아 잭슨은 데카 레코드사를 나오게 된다.
1947년 마할리아 잭슨은 가스펠 전문의 소규모 레이블인 아폴로(Apollo)와 계약하였고
이때부터 그녀는 눈부신 비상을 시작하여 "가스펠의 전설"로 남게 된다.
그 시작은 1948년에 발표하여 가스펠의 명곡이된 "Move on Up A Little Higher"로 이 곡은 목사이자 가스펠 작곡가인
윌리엄 허버트 브루스터(William Herbert Brewster)가 천국으로 통하는 사다리를 오르는 기독교도를 상상하면서 작곡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전쟁 때 전투 중인 주한 미군 병사들을 위문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온 그녀는
영감으로 부르는 영혼의 노래를 열창하여 음악을 좋아하는 많은 한국인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기도 했다.
마할리아 잭슨은 1960년대 가장 중요한 사회 문제였던 흑인 민권 운동에 상징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그녀가 부른 프로테스트 송 ''We Shall Overcome''은 당시 인권 운동의 찬가였다.
그녀는 특히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그 유명한 워싱턴 연설에 앞서 열창했으며,
1968년 킹 목사의 장례식 때도 애도곡을 불렀다.
그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스펠 여성 싱어이다.
가스펠 송은 그녀에 의해 전세계에 전파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을 비롯한 여러 소울 가수들의 영웅이 바로 마할리아 잭슨이다.
마할리아 잭슨은 1972년 1월 27일 투병 중이던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1972년 자신을 존경한 후배 가수 아레사 프랭클린이 장례식에서 가스펠 ''Precious Lord''를 불렀다.
그녀의 사망 후 76년 그래미어워드 최우수 소울 가스펠상을 비롯 각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고
'가스펠의 여왕(Queen of Gospel)'이라는 극찬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Mahalia Jackson~!
목석도 눈물을 흘리게 한다는 그녀의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투터운 입술과 거구, 그리고 흑인. 누가 보더라도 전혀 노래를 부를 것 같지 않은 그녀의 외모로 인해
'과연 저 여성이 노래를 불렀단 말인가'라며 의구심과 호기심, 궁금해 공연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Mahalia의 콘서트에 한없이 침몰하다 결국은 같이 눈물을 흘리고 만다.
거구의 몸을 겨우 지탱하면서도 늘 깍지낀 손을 다소곳이 모아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영혼 깊숙히 몰입해서 눈물을 흘리며 영감으로 노래를 부르는 마할리아 잭슨~
하나가 되어 같이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청중들~
출신이나 성장 배경, 외모와는 전혀 상관없이 하늘이 주신 목소리와 영혼이 담긴 천상의 노래로
그녀는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행복을 안겨 주었다.
Mahalia Jackson의 영상 ↓
Silent Night, Holy Night
https://www.youtube.com/embed/1QGj2xgnN8A
We Shall Overcome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TmR1YvfIGng
http://www.youtube.com/watch?v=TmR1YvfIGng&feature=player_detailpage
Danny Boy
http://www.youtube.com/watch?v=vn6Bcw7RFbY&feature=player_embed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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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4 08:00 김삼웅
김근태가 꿈꾼 나라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였다.”(인재근)
김근태는 말했다.
그가 생애를 두고 추구하는 목표가 민주주의였다면, 병마에 쓰러질 때까지 스스로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인간의 존엄’이었다. 민주주의적 ‘목표’는 인간존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수단치였다. <한겨레> 성한용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담론과 슬로건’을 묻자 “경제의 인간화라고 할까,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정책을 도입하자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소록도를 방문하여 한센병 환자들을 껴안은 것이나, 서울역 노숙자들을 찾고 노숙을 체험한 일 등은 입이나 구호로만 떠드는 사람들의 ‘소외계층 사랑’과는 격이 달랐다. 지난날의 힘겨웠던 삶이 내면을 깨끗하게 하고, 내면에 꽉찬 휴머니즘이 ‘인간의 존엄’으로 배양된 것이다.
이제 마무리 하자.
64세, 아직 할 일이 많은 나이였다.
아시아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도 벵갈 출신의 작가 타고르의 시, <혼자서 걸어가라>를 김근태 선생의 영전에 헌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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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평전/[18장] ‘2012년을 점령하라’ 유언 남기고 영면
2012/11/02 08:00 김삼웅
2011년 3월 8일 민주당 내 재야·친노·486 그룹을 망라한 '진보개혁모임' 창립대회에서 김근태 공동대표와 임채정 전 국회의장, 정세균 최고위원 등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6월항쟁 24돌이던 지난 2011년 6월 10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이행 촉구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시민들과 함께 앉아 있는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모습
10년 만에 정권 탈환에 성공한 이명박 정권은 거칠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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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평전/[18장] ‘2012년을 점령하라’ 유언 남기고 영면
2012/11/01 08:00 김삼웅
김근태는 자신까지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이 피와 땀을 흘려 회복한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권에서 5, 6공 시대로 역류하는 것을 한동안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의를 날카롭게 투시하던 그의 시선은 민주주의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활동으로 나타났다. 분주하게 거리를 누비면서 리영희 선생이 말한 ‘1인분의 역할’을 하고자 하였다.
2011년 그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해결을 위한 3차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 이들을 성원하였다. 그리고 위기에 몰린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하자 이를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송영길 민주당 인천시장 후보가 24일 인천 부평역 유세에서 정세균 대표, 김근태 선대위원장과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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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 08:00 김삼웅
4·9 총선 서울 도봉갑에서 맞붙는 김근태 통합민주당 후보(왼쪽)와 신지호 한나라당 후보.
2008년 6월 20일 저녁 서울 시청광장 앞에서 열린 '48시간 비상국민행동' 44차 촛불문화제에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부인 인재근씨가 함께 참석하여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와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30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민주당 내 진보개혁성향 전·현직 의원 모임인 (가칭)‘민주연대’ 발기인대회에서 지도위원을 맡은 김근태 전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대한민국은 신공안정국'이라 규정하고, '민주연대는 민간독재에 맞서 맨 앞에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8년 12월 2일 민주당내 개혁성향 모임인 민주연대 창립대회에서 정세균 대표와 김근태 전 의원 등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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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내 예비대선주자인 손학규ㆍ김혁규ㆍ이해찬ㆍ한명숙ㆍ정동영ㆍ천정배 후보 6인은 지난 7월 4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김근태 전 의장 주선으로 열린 대선예비주자 6인 연석회의에서 만나 대선체제 정비와 국민경선을 통한 후보선출문제를 논의했다.
28일 오후 서울 수유리 통일교육원에서 열린 제17대 대통령선가 대통합민주신당 중앙선대위 발대식 '가족행복시대 여는 날'에서 정동영 대선후보(가운데)와 공동선대위원장인 이해찬 전 총리, 손학규 전 지사, 오충일 당 대표,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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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은 2006년 12월 28일 긴급조찬회동을 갖고 '원칙있는 국민의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전당대회에서 평화개혁세력과 미래세력이 대통합을 결의한다는 데 합의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이 28일 긴급조찬회동에서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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