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7장] 집권당 원내대표, 당의장 맡아

2012/10/31 08:00 김삼웅

 

 

2008년 4월 9일 실시된 제18대 총선은 김근태에게 횡액이었다.
투표 5~6일 전까지만해도 여론조사에서 훨씬 앞섰던 것이 개표결과 패배로 나타났다. 뉴라이트재단 상임이사 출신인 한나라당 신지호 후보에게 패한 것이다. 개표 결과 김근태 3만 1,335표(46.2%), 신지호 3만 2,613표(48%)였다.

1,278표 차이의 낙선이었다. 제18대 총선에서 서울 지역에 출마해 박빙의 접전을 펼치다 낙선한 상당수 통합민주당 후보들이 상대측의 ‘뉴타운공약’에 분루를 삼켜야 했다.

 


4·9 총선 서울 도봉갑에서 맞붙는 김근태 통합민주당 후보(왼쪽)와 신지호 한나라당 후보.

 

김근태의 상대 후보는 뉴타운은 물론 삼성 계열사도 유치하겠다고 화려한 공약을 남발했다. 선거 뒤에 이런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근태는 선거 과정에서 자신이 12년 동안 해온 지역사업과 국가차원의 역할을 설명했지만 뉴타운 광풍을 누르지 못했다. 18대 총선에서 김근태의 낙선은 정치권에서 이변 또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한 언론의 보도다.

김근태 전 장관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선후보 경선을 했던 대선 주자급 정치인이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 김근태 전 장관의 패배가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그의 화려한 정치경력 때문이 아니다.

김근태의 삶과 신지호의 삶을 비교할 때 ‘김근태의 패배’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민이 선택한 결과였지만, 도봉구민의 뜻이 담긴 결과였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김근태 전 장관은 정치권에서 대표적인 ‘저평가 우량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일반인들의 마음을 울리는 매력과 흡인력은 떨어지지만 그의 ‘진정성’과 자질은 정치인 가운데 단연 손꼽히는 수준이다. 정치부 기자들이 뽑은 차기 대통령감 1,2위에 이름을 오르내렸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주석 10)

 


2008년 6월 20일 저녁 서울 시청광장 앞에서 열린 '48시간 비상국민행동' 44차 촛불문화제에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부인 인재근씨가 함께 참석하여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와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제18대 총선에서 낙선한 김근태는 민주당 고문 그리고 민주당 진보 개혁모임의 대표로서 당의 개혁과 여러 세대 정치인들과 시민 사회를 규합하고 이끄는 역할에 나섰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이 낙선하면 정치인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지만, 김근태는 그동안 쌓아온 정계의 위상으로, 낙선한 전직 의원인데도 할 일이 많았고, 민주당 진보개혁세력의 수장으로서의 역할은 벗어던지기 어려웠다. 김근태는 2011년 3월 8일 ‘민주당 진보개혁 모임’을 결성하고 공동대표를 맡았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우스게 소리처럼 김근태는 다시 바빴다. 건강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운동을 열심히 했다. 틈틈이 땀 흘리는 운동을 많이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도봉구에 내시 환관 묘 수백 개가 방치되어 있는 초안산에 올라갔다 내려온다. 가을이나 겨울에도 한 번 올라갔다 오면 땀에 흠뿍 절었다. 주말에는 동호인들과 함께 축구를 했다.

김근태는 민주당 진보개혁모임을 결성하여 다시 정치일선에 나서면서 2011년 4월 11일치 <한겨레>의 <한겨레가 만난 사람>에서 모처럼 긴 대담을 나누었다. 인터뷰어가 물었다.

“진보개혁모임을 주도하고 공동대표를 맡았다. 모임을 왜 만들었나?”

“한마디로 정권교체 위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김근태는 2012년의 정권교체를 위해 다시 발을 부쳤다. 비록 원외의 처지이지만 여전히 당의 상임고문직을 맡고 있어서 당의 진로와 정책방향을 제시해왔다.

 


30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민주당 내 진보개혁성향 전·현직 의원 모임인 (가칭)‘민주연대’ 발기인대회에서 지도위원을 맡은 김근태 전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대한민국은 신공안정국'이라 규정하고, '민주연대는 민간독재에 맞서 맨 앞에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인터뷰에서 김근태는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세력이 패배한 이유, 범야권의 역할, 진보정당과의 관계, 대선승리 방안,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인식 등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범야권 통합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나?”

“브라질의 룰라가 12개 정파를 등록시켜 각 정파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통합을 이뤄냈다. 그리고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는 것이다. 민주당, 진보정당, 국민참여당 등 범야권 정당과 시민사회, 대중단체 조직, 노동자와 농민 조직이 참여하는 원탁 테이블을 구성하는게 필요하다.”

박근혜에 대한 김근태의 평가는 날카롭다.

“나는 그가(대통령이) 안 됐으면 좋겠다. 지난 대선 때 ‘줄푸세’(줄이고, 풀고, 세우고)는 대표적인 시장만능주의 공약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복지를 얘기한다. 일관성이 없고 설명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체계적인 철학과 비전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사학법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그가 반대할 때 보니까 정서와 마인드가 7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더라. 정치인으로서는 괜찮은 사람일 수 있지만, 국가지도자로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신문 1면을 다 차지한 인터뷰 끝에는, 김근태가 인터넷 홈페이지 <김근태가 살아온 길>에 “누군가 해야 한다면 김근태가 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인용했다.

1970년대 어느 추운 겨울날, 저는 수배자로서 길가의 갈대밭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어쩐지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칠흑 같은 어둠이 슬며시 먹빛으로 변하고, 먹빛 하늘이 청동색으로 물들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기적 같았습니다. 결국 저에게 아침은 왔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죽도록 몸살을 앓았지만, 저는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주석 11)

김근태는 이해 7월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보도된 인터뷰에서 근황과 시대상에 대해 소신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김대중ㆍ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여당의 중요한 정치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에 정권을 잃고 중산층과 서민들이 고통스럽게 살 수밖에 없게 만든 것에 말할 수 없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 인터뷰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진행하고 <프레시안>에서 보도한 것이다.
두 정권에서 요직에 있었던 누구도 이같이 진솔한 사과를 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민주당의 개혁방향에 대해 진지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민주당이 반 한나라당 전선에 자신을 위치 짓고, 현 정권을 심판하는 국민 정서에 안주해서 그로 인한 승리를 향유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하는 정치노선과 정치를 과감하게 실천해야 한다. 정권교체를 위해선 야권과 한나라당이 1대1 구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결단을 해야 한다. 기득권을 양보하는 모습, 또 진보정당들과 시민사회와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결단하고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냐는 드러날 것이다. 그 토론의 과정에 충실하게 임해야 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민주당 내에서 대혁신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근태는 인터뷰에서 실업과 비정규직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죄송스럽다는 말과 함께 분노하고 계속 싸우자”고 힘주어 역설했다.

사실 지난 정권의 책임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젊은이들에게 이런 고통스러운 제도를 물려준 것이 너무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청년들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들을 때마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래서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미안하고 면목이 없다. 하지만 청년들이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정치인들이 여기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사실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도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노하고 도전을 해야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것을 극복할 힘이 생긴다. 분노할 것을 보고 분노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해야 할 마땅한 행동이다. 나도 함께 분노하고 계속 싸울 것이다. 분노하자.

 


2008년 12월 2일 민주당내 개혁성향 모임인 민주연대 창립대회에서 정세균 대표와 김근태 전 의원 등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근태는 인터뷰에서 2012년의 대선을 앞두고, “한국사회에 필요한 리더십”과 관련하여 예리한 진단을 내렸다.

두 가지 기준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압도적 다수의 사회경제적 약자, 그리고 아주 소수의 사회경제적 강자 간의 대타협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두번째는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아닌 상호 존중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말 그대로 G2의 책임과 역량을 동아시아에서 건설적으로 기여하는 방안과 과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리더십이다. 또 6자 회담을 통해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동아시아 협력에 기여할 수 있는 리더십, 이러한 비전을 갖고 이해하고 그 필요성을 채울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근태는 인터뷰에서 ‘한국사회의 미래상’을 미국식 모델보다 유럽식 모델이 더 적합하다고 역설했다.

미국 시스템보다는 북유럽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더 적합한 모델이라고 보는 이유는 우리에게 힘이 없는 다수와 가진 것이 많은 소수가 대타협을 해 나아가자는 시스템이 다른 그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유럽 시스템에는 사회협약, 사회합의의 구조와 정신이 베겨있다. 그런 제도들을 통해 우리 사회시스템에 대해 논의를 함으로써 우리의 제도적 시행착오를 줄이고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토대로 한국 고유의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데,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사회 시스템을 보니 한국의 시스템으로도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스웨덴 인구가 천만 명 정도인데 한국은 오천만 명, 남북한 합치면 칠천만 명 정도 되니 동아시아의 큰 스웨덴이 되자는 것이다.

인터뷰어의 “현재 꿈이 있다면?”의 질문에 김근태는 생전에 이루지 못한 꿈을 제시한다.

북한과 중국의 동북 3성을 왕래하고 방문하고, 그리고 물류를 이동시키는 상황을 꿈꾼다. 그리고 우리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북한도 가난에서 극복되었으면 좋겠다. 동아시아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북한뿐만이 아닌 동북 3성의 조선족, 중국의 한족, 러시아 등과 협력도 하며 머리를 맞대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을 만들어 가는데 한국이 솔선수범할 수 있기를 꿈꾸어본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소수자, 다문화 가정 등 사회적 소수집단이 보호받고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만 시혜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의 친구로 한국 사회에서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 (주석 12)


주석
10> <연합뉴스>, 2008년 4월 17일, 기자칼럼, <‘김근태’ 버리고 ‘신지호’ 택했던 18대 총선>.
11> <한겨레>, 2011년 4월 11일, 인터뷰/성한용 선임기자, 정리 석진환 기자.
12> <프레시안>, 2011년 7월 5일, <청년들이여 미안하다, 그러나 분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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