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8장] ‘2012년을 점령하라’ 유언 남기고 영면

2012/11/01 08:00 김삼웅

 

 

 

김근태는 자신까지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이 피와 땀을 흘려 회복한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권에서 5, 6공 시대로 역류하는 것을 한동안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의를 날카롭게 투시하던 그의 시선은 민주주의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활동으로 나타났다. 분주하게 거리를 누비면서 리영희 선생이 말한 ‘1인분의 역할’을 하고자 하였다.

2008년의 촛불집회에 시민들과 함께 참여하고, 2009년 ‘용산참사’의 현장에도 빠지지 않았다.
용산에서는 여러 날째 살을 에는 차거운 바람에 콧물이 흐르면 수시로 손수건으로 닦아내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슬퍼해주십시오. 그래야 서민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를 울먹였다. 그의 목이 메이는 듯 하자 어느 중년 여성이 따뜻한 음료수 한 병을 건네주자 그는 마시는 듯 하더니 옆에 있던 청년에게 넘겨 주었다.(저자의 목격)

 



 

2011년 그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해결을 위한 3차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 이들을 성원하였다. 그리고 위기에 몰린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하자 이를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2008년 2학기부터 한양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초빙교수 자격으로 한국정치론을 강의했다.
2011년에는 전주소재 우석대학에서 석좌 교수로 임용되어 강의를 맡았다. 강의실에는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고, 그의 강의는 대학가의 화제가 되었다. 이명박 정권이 취임 초기부터 난폭성을 드러내자 ‘민간독재’라고 줄기차게 비판했다. 2009년 봄 이명박 정권의 사병화된 검찰의 날선 수사가 노무현의 심장을 겨냥하자 “검찰의 정치수사를 중단하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많은 현역 정치인들이 침묵할 때이다.

천안함사건과 북한의 연평도 폭격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위기로 치닫고 신공안 정국이 조성되었다.
김근태는 MB정권과 수구세력의 광신적 반공주의와 맹목적 냉전의식, 민족분단의 영구화정책을 맹렬히 비판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기 위해서는 제3기 민주정부의 수립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야권통합에 힘을 보탰다. 민주통합당의 ‘통합’에는 그의 숨은 노력이 컸다. 민주통합당은 그를 상임고문으로 추대하였다.

 


송영길 민주당 인천시장 후보가 24일 인천 부평역 유세에서 정세균 대표, 김근태 선대위원장과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사찰 대상에는 김근태가 포함되었다. 비록 총선에서 낙선한 원외 인사이지만, 그의 비중과 끝임없는 민주화 활동을 MB정권은 샅샅히 추적하였다. 민간인 김종익 씨를 불법 사찰한 국무총리 지원관실 원충연 전 조사관의 수첩에 김근태를 비롯하여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의 동향보고 사실이 나와 있다.

국무총리실이 이러했을 때 전문 정보기관에서는 어떠했을까 의문이 따른다. 그는 젊은 시절 민주화운동을 주도할 때 일상적이 되다시피한 수배와 사찰에 이골이 난 까닭에, 그리고 사생활이 깨끗하고 사회활동이 공개적이어서 불법사찰에도 빌미가 잡힐 일이 없었다.

김근태는 공부하는 정치인이었다. 2009년 8월부터 신자유주의 극복과 대안 모색을 위해 공부모임을 만들어 입원 직전까지 22차례의 세미나를 열었다.

김근태는 2011년 10월 18일 자신의 블로그에 한 편의 글을 올렸다.
<2012년을 점령하라>는 제목으로 사실상 유언이 되다시피한 대국민 메시지였다.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그의 의지와 소망이 담긴, 짧지만 울림이 긴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는 걸개 그림으로 만들어져 그의 영결식장과 안장식장에 내걸렸다.

김근태는 2012년의 대선에 큰 비중을 두었다. <2012년을 점령하라>는 메시지보다 3개월여 앞서 정치경영연구소와 <프레시안>과 가진 인터뷰 (앞장에서 일부 소개)에서 대선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민생문제’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에 비중을 두었다.

내년에 총선이 있고 대선이 있다. 총선과 대선을 통해서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또 한 번의 정권교체, 다시 말해 세번째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절박한 민생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수출대기업에만 이롭고 국민들이 피부적으로 느끼는 물가는 폭등하는 고환율 제도나 부동산 버블의 원인이 되는 인위적 저금리 등의 정책을 고쳐 나아가야 한다. 정권교체를 통해서 철학과 마인드를 바꾸지 않으면 이러한 정책의 변화를 이루기 힘들고, 민생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보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는 국가경제의 구성주체 중에 재벌과 부자들을 우선 고려하고 있다. 진정으로 민생문제를 해결하려면 경제정책운용의 철학적 기저를 거시지표 중심의 ‘국가경쟁력’ 보다는 국가 구성원 하나 하나가 경쟁력을 갖추는 ‘국민경쟁력’에 기초하는 경제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한국이 놓인 국제사회 현실에서 보더라도 냉전 이후 아시아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냉전이 지속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중국, 여기에 친미세력과 친중세력이 동아시아에서 갈등을 하고 있다. 한국은 상당한 딜레마에 놓여 있다. 한국은 그간 정치경제적, 그리고 군사적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확대 심화,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 최근에 경제관계에서 중국과의 교역이 획기적으로 늘고 인적교류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일 미국과 중국이 갈등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는가. 물론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것만 바라고 이에 대한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2012년 총선과 대선은 큰 변화, 즉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위상과 관계를 고민하고 추진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정권이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치비전의 정책연합을 기초로 통합과 연대의 과정을 이루는 원탁테이블의 구성을 통해 한나라당과 1:1구도를 만들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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