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8장] ‘2012년을 점령하라’ 유언 남기고 영면
2012/11/03 08:00 김삼웅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영결식이 민주사회장으로 엄수된 3일 서울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서 노제가 열리고 있다.
장례 절차는 그의 동지ㆍ후배들의 뜻에 따라 <민주주의자 김근태 사회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발인제는 3일 오전 7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영결미사와 영결식은 당일 8시 30분부터 명동성당 본당에서 거행되었다.
그의 사망 소식은 많은 국민에게 충격과 아픔을 주었다.
연말 연초의 혹한에도 시신이 안치된 서울대병원에는 수많은 조문객이 찾아와 애도하였다. 그러나 국가 폭력의 하수인 이근안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추모객 1,000여 명이 참석한 영결식에서 강론을 맡은 함세웅 신부는 “착한 사람들이 악인의 피로 발을 씻고 그 보복당함을 보고 기뻐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사람들이 이르기를, ‘과연 착한 사람이 상을 받는구나. 하느님이 계셔, 세상을 다스리시는구나’ 하게 하소서.”(시편 58. 10~11)라고 기구하였다.
3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서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하관식이 엄수되고 있다.
활짝 웃고 있는 고인의 모자이크와 “2012년 투표하라. 참여하는 사람이 권력을 만들고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민주주의자 김근태”라 적힌 걸개그림이 세찬 바람에도 찢기지 않고 버티었다. 고인의 꿋꿋한 의지를 닮은 듯 했다. 추모문화제과 영결식에 참석한 시민들은 “우리 모두 그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다”고 입을 모았다.
<경향신문>은 사설 <민주화운동의 큰 별 김근태를 보내며>(12월 31일)에서 “그는 정치개혁을 위해 과감하게 행동했다. 정치권에서 그는 진정성의 정치를 실천한 몇 안 되는 존재였다”면서 “그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사람’이 되고자 늘 삼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추모했다.
<한겨레>는 사설 <‘인권’, 영면한 김근태의 영원한 희망>(1월 4일)에서 “그의 영면으로 말이 많은 빈자리가 한없이 크지만, 오히려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유지가 눈 속의 댓잎처럼 더욱 시퍼렇게 살아나”는 까닭을 전하고, “전기 고문 속에서도 그가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치, 곧 민주주의와 인권의 희망이었다. 이제 누구인가. 그가 남긴 그 희망을 품고 전진할 이들은” 이라고 생자들의 의무를 일깨웠다.
영국의 권위지 <더 타임스>는 1월 3일치에서 5단 크기의 부고 기사를 실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신문이 한국 정치인 부고를 한 면의 3분의 1 이상을 할애해 취급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기사에서 그의 민주화 투쟁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도 30일치 인터넷판에 부고 기사를 싣고, “그의 얼굴에 늘 보이는 미소는 그가 독재정권에서 당했던 고문 흔적을 가렸다”고 썼다. 19대 총선에서 도봉구민들은 고인과 함께 민주화투쟁에 헌신해온 그의 ‘바깥사람’ 인재근을 국회의원으로 뽑았다.
고 김근태동지를 대신하여 인권상을 수상하는 인재근의원
사법부와 기득권 세력의 비상식을 겨눈 영화 <부러진 화살>을 찍은 정지영 감독은 고인의 고문 실상을 주제로 <남영동 1985>를 제작하고, 석좌교수로 활동했던 우석대학에서는 2012년 9월 7일 <김근태 민주주의 연구소>(소장 최상명 행정학 교수)를 개설하여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종합대학에서 정치인 개인의 연구소를 개설한 것은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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