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7장] 집권당 원내대표, 당의장 맡아

2012/10/29 08:00 김삼웅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원은 27일 오후 2시부터 한미 FTA 협상중단을 촉구하며 국회 본관 로텐더홀 앞에서 시한부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사진은 오마이뉴스 이종호 기자.

 

김근태가 이라크파병 문제에 이어 또 한번 겪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난제는 정부의 한미 FTA협상 문제였다. 김근태는 한미 FTA 협상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로 인하여 정부와 충돌하고 당내에서도 코너로 몰리고, 수구언론에 의해 매도되었다. 정부는 2006년 2월 3일 대한민국과 미국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의 협상 출범을 공식 선언하고, 2007년 4월 2일, 14개월 간 긴 협상을 마치고 최종 타결의 뜻을 밝혔다. 5월 25일에는 협정문 내용이 공개되었다.
당의장직에서 물러난 김근태는 2007년 3월 27일 <한미 FTA 협상 중단을 추구하며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발표하고,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불과 얼마 전까지 집권당의 당의장을 지낸 처지에서 단식농성이 적절치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졸속적인 협상을 막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이 길을 택했노라는 설명이었다. 다음은 단식 성명의 요지.

한미 FTA 협상 중단을 촉구하는 단식이 김근태에게는 큰 생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히 말씀드립니다. 생채기를 피할 수 없고, 얼마쯤 가지가 부러지고 타버리더라도 천둥번개를 피하지 않고 제 몸으로 막아내는 들판의 나무 한 그루처럼, 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김근태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우리는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조건 한미 FTA 반대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정부와 협상단의 화려한 미사여구만을 믿고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천히 따져보자는 것입니다. 그 후에도 늦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오늘의 협상결과가 또 다른 저성장과 더욱 심각한 양극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국민 앞에 솔직히 고백해야 합니다. 한미 FTA 협상을 두고 국론이 양분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이대로 묵과한다면, 파국적 상황이 올 수 있음을 심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온통 한미 FTA 체결에 매달리는 협상단과 정부를 이대로 묵과할 수 없습니다. 권한만 있을 뿐 훗날 국민의 삶에 아무런 정치적 책임을 지지도 않을 관료와 정부의 무책임과 무모함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밥을 굶는 일 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단언컨대 지금 우리의 협상은 성공하고 있지 못합니다. 스위스도, 말레이시아도 미국과의 FTA를 중단했습니다. 자국 국민을 위해 정부가 용단을 내렸습니다. 당장, 지금 진행되는 한미 FTA 협상을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당장, 한미 FTA 협상을 국민과 국회에 돌려줄 것을 요구합니다.
(주석 6)

김근태의 단식투쟁에는 당내외의 찬반이 엇갈렸다. 반대측은 ‘개인적인 정치쇼’라고 비판하고, 지지측은 ‘역시 김근태’라는 성원이 따랐다.

김근태는 단식 1주일 만인 4월 2일 초췌해진 몸으로 의사의 권고에 따라 단식을 풀면서 다시 <국민 여러분께 무릎 꿇고 말씀드립니다>는 제하의 성명을 통해, 거듭 한미 FTA 협상의 졸속 체결을 비판했다.

이 성명에서 김근태는 협상의 본질과 함께 이를 강행하는 내부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일부 관료와 일부 보수언론, 일부 정치권이 삼각동맹을 맺고 펼치고 있는 저급한 이데올로기 공세입니다. 이들은 한미 FTA 에 대해 우상숭배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시한에 쫒겨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주장, 합리적인 주장 조차 쇄국주의자, 개방에 반대하는 철부지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협상내용은 안중에도 없고, 한미 FTA를 하면 나라가 살고 안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외눈박이식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분통하는 심경을 쏟아냈다.

진정성이 담긴 김근태의 목소리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시민, 사회 단체의 촛불 집회와 서명운동이 전개되었지만, 노무현 정부와 모처럼 한 목소리를 낸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에 곧 묻히고 말았다. 김근태의 반대 주장은 당차고 결연했다. 그는 계속하여 한미 FTA의 졸속 추진을 비판하였다.

먼저,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동원해 협상 결과를 파악하고, 정부 관계자들이 국민의 입장에서 협상에 임했는지 책임을 추궁하겠습니다. 권한에는 합당한 책임이 뒤따르는 법입니다. 그동안 정부 관계자들이 협상정보와 협상전략을 독점해온 만큼 책임추궁은 추상같이 엄하고 가혹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오는 6월, 정부간 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저지하는데 매진하려고 합니다. 남은 석 달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협정체결을 저지할 생각입니다. 정당과 국회의 울타리를 훌훌 뛰어넘어 정부에 협정체결 유보를 요구하고 관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떤 기득권이나 저 자신의 유불리도 계산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열린우리당의 전직 당의장으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 국민 여러분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앞만 보고 가겠습니다.

정부간 협정체결을 저지해야 하는 이유는 간명합니다. 협정체결을 저지해야만 시간을 갖고 충분한 재협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협정이 체결되고 나면 재협상의 길은 봉쇄됩니다. 오직 찬성이냐 반대냐, 비준을 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만 남습니다.
(주석 7)

 


6월항쟁 24돌이던 지난 2011년 6월 10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이행 촉구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모습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당시의 한미 FTA 협상은, 그러나 한국의 권익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었다. 정권이 바뀌고 한나라당은 2011년 11월 22일 더욱 불리해진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날치기로 처리했다. 병마와 싸우면서 이 소식을 전해들은 김근태는 긴 한숨을 쉴 뿐 입을 열지 못했다.



주석
6> <오마이뉴스>, 2007년 3월 27일.
7> <오마이뉴스>, 2007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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