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변화와 균형과 안정

 

 

요가에서는 변화와 균형과 안정을
3 대 원칙으로 꼽고 있다.

즉 변화를 꾀하고 균형을 유지하면서
안정되게 사는 것이다.

요가에서는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변화를 중시한다.

사람의 몸일 경우에는
먹은 것을 배설하는 흐름이 곧 변화다.

정지해서는 안 된다.
버릇이나 습관은 변화가 아니라 정지다.

계절이 변하듯 자연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인간의 감정도 싫건 좋건 변한다.

사회 환경도 항상 유동하고 있다.
그 속에 사는 사람 역시 변화하는 것이다.

균형은 어는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부분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람의 몸에서 긴장과 이완
좌측과 우측 산성과 알칼리성의 균형을
요가에서는 매우 중요시한다.

요가 수행의 대부분은
치우침을 수정하고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안정은 불안하거나 방황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걸맞는 것을 말한다.

내가 나다운 생활을 하고 있을 때가
바로 안정이다.

음식에서 다른 사람에게 영양식이 된다고
자기에게도 좋은 음식이라고 할 수 없다.

체조와 훈련에 있어서도
자기 신체에 맞지 않는 것은 무리이며
부질없고 불안정한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자기 자신에게 알맞은 것인가 하는 것은
훈련하면서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러한 변화와 균형과 안정을 3 대 원칙으로 해서
요가는 몸을 통일하고 마음을 통일하며
몸과 마음을 조화시키는
호흡식을 결론으로 삼는다.

요가라고 하면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불상처럼 앉아 있거나
온 몸을 곡예사처럼 꼬고 있는 자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체조 훈련은 모두
몸과 마음과 호흡을 조절하기 위한
방법이요 수단이다.

앉음새가 바르지 못하면 허리가 아프다.
요가에서는 바르지 못한 앉음새를 바로 잡는다.

비정상적인 식생활은 병의 원인이 된다.
요가에서는 비정상적인 식생활을 바로 잡는다.
또한 바르지 못한 행동을 고친다.

눈에 보이는 신체 활동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활동

의식할 수 있는 자신과
무의식적인 자신의 활동

이 모든 것을 조화하고 통일해서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요가 수행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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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단전과 호흡

 

 

사람의 몸은 근육과 뼈와 내장으로 구성된다.
이 세 부분의 관계가 원활하면
바른 자세 바른 동작이 된다.

협력 방식에 이상이 있으면
이상한 동작이 유발된다.

이 세 부분의 협력은
각자의 특질을 살려 나갈 때 안정을 취한다.

즉 근육은 부드럽고 뼈는 단단하며
내장은 신축성을 마음껏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근육에는 이완되는 것과 수축되는 것이 있는데
각자의 활동이 강할수록 유연성이 풍부해진다.

그러므로 근육을 이완시키고 수축시키는
자극이 필요하다.

그런데 근육에는 수축되는 자극이 많으므로
보통 동작에서는 이완시키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바른 동작 바른 자세를 가지려면
단전의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단전이란 역학으로나 생리학으로나
몸의 중심점이 되는 곳이다.

요추와 항문과 배꼽을 연결한 삼각형의 중심이 단전이다.
그러니까 배꼽 밑으로 5 cm 쯤의 안쪽에 있다.

생리학적으로 말하면 단전은
자율신경과 체액의 균형을 이루는 중심이 된다.

이 단전에만 힘을 넣고
딴 곳에서는 힘을 빼야 한다.

이런 상태가 될 때
심신의 능력이 최고로 발휘된다.

단전의 활동을 강화하려면 상반신의 힘을 빼고
하반신에 힘이 모이도록 하면서 항문을 오무린다.
가슴을 펴고 엄지발가락과 오금에 힘을 준다.

어깨와 목, 손에서는 힘을 뺀다.
목의 근육을 반듯하게 하고 깊숙히 호흡한다.

사람이 죽으면 항문이 열린다.
항문이 오무라져 있는지 아닌지를 보고
생사를 구분하기도 한다.

물에 빠져 생사지경에 처했을 때
항문을 오무리고 있으면 구조되는 수도 있다.
항문을 오무리면 몸의 안정력이 높아 진다.

인간은 먹지 않고 물만 마셔도
50 일이고 60 일이고 살 수 있지만
호흡은 단 5 분만 멈추면 죽는다.
그러므로 호흡은 인간의 생명 그 자체다.

요가에서는 호흡을 매우 중요시한다.
단전호흡은 요가의 근본이다.
모든 체위 동작도 호흡과 연결하고 일치해야 한다.

사람의 피부는 외부의 공격
즉 벌레에 물린다거나 접촉에 의해서 상처가 생기면
긁기도 하고 씻기도 하면서 스스로 조절할 수가 있지만

뼈와 근육과 장기 등은
요가의 호흡과 체위 훈련을 통해서라야 조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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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명상과 정신 통일

 

 

요가 수행의 진수는 명상이다.
명상의 의미는 넓고 깊고 높고
거룩하게 느끼고 생각하며
진실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회생활 가운데서건 사이버상에서건
어떤 사람과 우연히 만났다고 하자.

일반적으로는 단지 그 때, 그 곳에서, 그 사람과
만났다는 느낌과 생각을 가지게 될 뿐이지만

명상을 통해서는
우주 만물 가운데

이 지구상에서
한반도에서

멀리 조상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관련이 없거나
아무리 사소한 인연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 없다면
도저히 만날 수 없을 것이라 여긴다.

이를테면 상대방이나 나 자신이나
선조 대대로 내려오면서

어느 조상 한 분이
원해서건 아니건
다른 분과 혼인했더라면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므로 그 때, 그 곳에서, 그 사람을
만날 수도 없을 것이란 얘기다.

우주 만물... 지구상의 시간과 공간...
모든 환경이 한치도 틀림없이 일치하고
물샐틈없는 질서 속에서 선택되어
비로소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란 의미다.

명상은 요가의 근본 훈련이요
요가는 바로 명상 행법을 위하고
명상을 뜻하는 말이다.

명상은 주의 집중과 의식 집중
훈련에서부터 시작한다.

주의와 의식 집중을 위해서는
여유가 있고 편안할 것과 호흡이 고르고 깊을 것
그리고 마음이 하나로 통일되기 쉬운 상태일 것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을 때
감각이나 사고 활동이 강해 진다.

이를테면 사람이 드러누어서
마음이 느긋하고 편안할 때는
주위에 조그마한 소리도 크게 들린다.

감동한다든지 놀란다든지
흥미로운 사건을 접한다든지 절박한 상황 등등에서는
자연히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게 된다.

따라서 그런 조건을 의식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방법이다.

주의 집중법은 몸을 통한 통일 훈련법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뭔가 한가지 소리에 매달려 그 소리에 집중한다.

나는 감옥에서 명상에 들어 갈 때
어떤 날은 풀벌레 소리에
어떤 날은 하수구로 흐르는 물소리에
어떤 날은 빗소리에 바람소리에
매달려 집중하곤 했다.

단전 호흡을 하면서
한 소리만 집중해서 듣고 있으면
그 소리의 리듬과 음색과 변화의 흐름이
느껴지곤 한다.

처음에는 소리를 붙잡고
소리에 매달리면서 집중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무의식의 세계
명상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요가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은
음(音), 소리에 집중하는 방법이다.
때로는 스스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스스로 소리를 낼 때
숨을 오래 내쉴 수 있는 한 길게 내쉰다.

처음에는 가만히 소리를 내고
이 소리에 집중하지만

나중에는 소리를 멈추어도
마음 속에서 계속 소리를 내게 되고
그 소리에 따라 주의를 집중하게 된다.

요가에서 소리로 주의 집중하는 방법을 근거로
불가에서는 '음 ~ ~ ~' 하는 수행법이 있다.

의식 집중법은 마음을 통한 훈련법이다.
여기서는 추상적인 관념에 집중하는 방법을 활용한다.

이를테면 '나는 누구인가?'
'무(無)란 무엇인가?' '명상이란 무엇인가?' 등등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문제에 생각을 집중한다.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생각에
생각을 집중함으로써
생각하는 일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해서 긴장과 이완이 가장 균형잡힌 상태가
곧 가장 안정된 상태가 되는 것이다.

 

 

60. 선정과 무심


 

명상 훈련에는 몇 가지 수행법이 있다.
그 중 선정행법에는 눈을 감고 하는 경우와
실눈을 뜨고 하는 경우, 눈을 크게 뜨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주로 눈을 감고 수행했다.

좌선하고 턱을 끌어 당긴 상태에서 단전 호흡을 하고
조용히 눈을 감은 다음
눈알을 양쪽으로 끌어 모은다.

그리고는 머리털이 머리 위로
힘껏 뻗쳐 올라가는 기분이 되게 한다.
즉 자기 머리 꼭대기로
하늘을 떠받치는 기분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슴을 좌우로 넓게 벌려서 위로 치켜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내밀듯이 하면서 뻗쳐 준다.

이렇게 하면 자연히 단전에 힘이 집중되고 항문이 조여 진다.
등뼈가 펴지고 동시에 힘이 집중되면서
가슴에서 위의 힘이 빠져 나간다.

단전이 모든 균형의 통일점이므로
여기에 집중되는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몸의 안정력이 높아 지고 뇌의 안정도 높아 진다.

이렇게 해서 몸의 수행이
그대로 마음의 수양으로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힘이 빠지면서
무심의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무심(無心)이란
이것에나 저것에나 구애받지 않는 상태...
즉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은 상태에서
사물을 대하는 마음이다.

이 무심의 상태를 자연의 마음이라고 하는데
요가에서는 이 마음의 상태를 바른 마음이라고 본다.

우리는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으로 에고(ego)
즉 자기 중심, 자기 본위로 되기 쉬운데
요가에서는 이 에고가 악을 만드는 근본이라고 본다.

무심은 자기 마음을 버리는 훈련이다.
무심에 이르기 위해 무조건 남에게 봉사하는 훈련을 하기도 한다.

조건이 붙은 마음을 사욕이라고 한다.
이 사욕에서 불평, 불만, 분노, 저주, 증오 같은 것이 생기고
무리한 생각도 생기므로
사욕에서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본다.

조건을 붙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은 마음이 무심이다.
이처럼 평화롭고 안정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마음이 가장 활발해 지는 것이다.

 

 

 

61. 무심을 넘어 기쁨으로

 


명상에는 이밖에도 삼매와 불성계발, 법열 행법 등이 있다.
삼매(三昧)란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즉 자기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한마음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대립이나 갈등,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나'와 '너'가 함께 살고 서로 살리는 세계다.

이를테면 인생을 오랜 세월
함께 동거동락하며 살아 온 할머니 할아버지...
행복한 부부 관계가 곧 삼매의 관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쩌면 본질적으로 갖게 되는
긴장과 경계, 갈등을 넘어서서
몸과 마음을 일치할 수 있는 상태가 곧 삼매의 경지다.

하지만 모든 인간 세계를 대상으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할 수 있을 때
이 삼매가 자기 마음에 실현되는 것이고

모든 이들의 마음을 바르게 받아들일 때
'사랑'도 이루어 지는 것이다.

'나'와 '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 그럴 때
삼매의 세계, 사랑의 세상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일의 상태가
그대로 자기의 마음으로 될 때

비로소 진실한 일이 되고
일하는 기쁨도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이 곧 깨달음이고 불성(佛性)이다.

불성이란 사람에게만 특별하게 선택해서

부여된 특성이라고 요가에서는 말한다.

불성은 변화하고 진화하는 원동력이고
사물을 성화(聖化)할 수 있는 능력이다.

비단 요가나 불교에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원리와도 일치할 수 있겠는데

마음을 성화함으로써 인격자가 될 수 있고
석가의 마음, 예수의 마음이 됨으로써

참다운 감사와 기쁨이 생기고
예배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알기 쉽게 풀면 물이 물이라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목마른 짐승도 그 본질을 알 수 있다.

이 물을 자연이랄지 신의 사랑이랄지
하느님의 은혜로 받아들이는
'거룩한 마음'이 곧 요가에서 말하는 불성이다.

이와같은 '거룩한 마음'에서 바른 사고와 행동 방식이 나오고
올바른 해결 방법이 나오는 것이다.

진실을 알고 감사하게 예배하는 '거룩한 마음'이 되었을 때
비로소 참된 기쁨 즉 법열(法悅)이 생긴다.

명상에서는 이 법열의 경지 즉 기쁨의 경지를
최고 목표로 한다.

요가에서는
'내 안에 신이 있다. 그 신을 보는 것이 깨달음이다' 라고 가르치고 있다.

깨달음을 얻고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신 -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때
비로소 참된 기쁨 즉 법열을 맛볼 수 있다.

이 기쁨의 경지, 법열 즉 니르바나(nirvana)의 경지가
요가의 가르침이요 목표이며 참 모습인 것이다.

다시금 풀어 보면
삼매의 단계는 흔히 독서삼매에 빠진다는 말처럼
글 쓴이의 마음과 정신 세계가
읽는 이의 마음과 정신 세계와
하나되고 통일되는 경지를 일컫는다.

철학적으로 풀면 어머니가 자식을 대하듯

아무런 조건없이 어머니의 마음을 자식의 마음으로 하나되게 하고 통일되게 하는
'아가페적 사랑'과 통한다.

여기에서 어머니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자식을 대하듯이 하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도 서로에게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삼매의 세계가 완성되는 것이고 기독교적 사랑의 세계가 실현되는 것이다.

불성계발은 어머니가 지금 이 세상에는 없지만
자식이 어쩌면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보다도 더 이 세상 모든 것을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는 '거룩한 마음'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듯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보고
하느님의 성령이 역사하심을 보는 것이다.
하느님의 은혜로 받아들이고 섬기는 것이다.

마지막 법열의 단계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의 세계다.

나는 감옥에서 단련해 오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요가와 명상을 통한 자연 건강법으로
혜숙의 병이 나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사실 나는 요가와 명상을 단련하면서도
정신 통일과 선정
무심 행법의 단계에서 머물곤 했다.

무심을 넘어 삼매와 불성계발
법열에 이르르는 마지막 단계는
반드시 훈련이나 단련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이를테면 기독교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자신의 모든 생활과 행동을 2 천 여 년 전의 성경 말씀대로
교리대로 곧이곧대로만 실행한다면

현대 사회에 적응하고 경쟁해서
살아 갈 능력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비현실적이고 비사회적인 인간으로
일터에서 직장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혜숙의 생명을 위해서
서양의학적 노력을 우선으로 삼고
최선을 다 한 연후에는

혹시 요가 수행을 통해
혜숙과 함께 몸과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내가 감옥 안에서 열심히 단련하면서도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던 무심의 단계를 넘어

정신적 종교적 세계인
'사랑'과 '거룩' '천국'의 마음으로
그 세계로 혜숙이 달려 갈 수 있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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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자연 환경을 이용한 치료와 풍욕

 


나는 장 선생에게 감옥에서 요가와 명상으로
심신을 단련해 왔다고 말씀드리고
앞으로 아내와 요가에 매달려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장 선생은 자연 건강법과 요가는 원리와 실행법이 같으니까
그리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처럼 생명이 위독한 중환자의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치료가 시급한 문제이니만큼
예방보다는 치료에 필요한 체위법을 선택해야 될 것이라 했다.

민족의학 치료법은
신체 어느 한 부위에 이상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그 부분의 치료에만 치중하지 않고
몸 전체를 치료하는 것이란다.

신체 어느 한 부위의 이상 증세는
곧 전체의 부조화에서 오는 것이고
평소에 허약하던 부위로 이상 증세가 집중되어 나타난단다.

하나의 요법만으로는 신체의 이상을 극복할 수 없고
여러 요법들을 통일적으로 배합해서 실행해야 될 꺼란다.

그러면서 장 선생은 우리에게
햇빛과 공기와 물을 이용한 치료법을 설명한다.

일광욕은 태양 에너지로부터 생명력을 얻기 위해
자외선과 적외선의 치료 효과를 이용하는 것이란다.

처음에는 5 분에서 시작해서 40 분까지 시간을 늘려 가면서
햇볕에 노출하는 부위도 손발부터 시작해서
점차 팔뚝, 다리, 허리, 배 순으로 넓혀 간다.

공기를 이용하는 치료에는 삼림욕과 풍욕이 있다.
삼림욕은 소나무와 잣나무 숲에서 오전 11 시부터 오후 3 시 사이
약 1 시간 정도 걷거나 좌선하면서 신선한 숲 공기를 쐬는 것이다.

양성 체질로 체액이 산성인 사람은 송림욕이 좋고
음성 체질로 알칼리성인 사람은 바닷바람 해풍욕이 좋단다.

풍욕은 피부의 작용을 왕성하게 하고
공기 속에 들어 있는 산소와 질소를 몸 속에 받아들여
에너지 대사를 촉진시키며
체내의 일산화탄소를 이산화탄소로 변화시키고 체외로 배출시켜
건전한 신체를 만들어 준단다.

장 선생은 암을 비롯한 만병의 근원을
일산화탄소에 있다고 설명한다.

이 일산화탄소가 산소를 공급받아 탄산가스로 변해서
체외로 배출된다는 거다.

그래서 암의 원인을 바로 이 일산화탄소가 정체된 것이라 보고
암을 녹여 없애는 치료법으로 풍욕을 이용한다는 거다.

풍욕은 실내에서 공기 소통이 잘 되도록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담요를 준비한 다음
전신을 완전히 벗고 공기를 쏘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체로 20 초 동안 공기를 쏘이다가
담요로 머리 부분만 남기고 온 몸을 감싼 채 1 분 동안 있는다.

나체로 있는 동안은 20 초에서 120 초까지 늘려 가고
담요로 감싸 안는 시간은
나체로 20 ~ 50 초까지는 1 분
60 ~ 80 초까지는 1 분 30 초
90 ~ 120 초까지는 2 분으로 한다.

장 선생은 우리가 시간을 맞춰서 실행할 수 있도록
풍욕 테이프를 준비해 두었다.

테이프를 넣고 녹음기를 작동하니까
경쾌한 음악과 함께 전문 아나운서 음성으로
풍욕과 냉온욕에 대한 설명과 지시가 울려 나온다.

장 선생은 나가고 나와 혜숙은 벌거벗고 앉아서
아름다운 음성에 맞춰 풍욕을 실습한다.
시작에서 끝까지 30 분 가량 걸린다.

장 선생이 다시 들어와 우리에게
만사 제쳐 두고 암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
풍욕에 전적으로 매달리란다.

풍욕은 피부 호흡을 원활하게 해 준단다.
풍욕을 하면 신체 표면으로부터 요소를 비롯한
모든 노폐물이 발산되고 산소가 공급된단다.

그러므로 체내에 정체되어 있는 일산화탄소가 산화되어
탄산가스로 변해서 암세포를 없애버린단다.

혜숙은 그 얼마 후부터 풍욕에 전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풍욕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하루하루를 온전히 풍욕과 투쟁하다시피 했다.

암 환자의 경우에는 1 일 8 회에서 11 회 정도
실행해야 된다고 하는데 혜숙은 이를 채우기 위해서
거의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혜숙은 집에 아이들 친구가 오거나 손님이 와도
도중에 멈추거나 내다 보거나 하지 않았다.

풍욕은 시작해서 30 일 간은 절대 쉬지 말고
그 후 2 ~ 3 일 간 쉬었다가 다시 실행하는 식으로
3 개월 동안은 계속해야 한단다.

식사 전후에는 30 분 간격을 두어야 한단다.
목욕 전에는 상관 없지만 목욕 후에는
1 시간 이상 간격을 두어야 한단다.

이러한 규칙을 지켜가며
혜숙은 1 일 8 회를 달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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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수면 건강 실습

 

 

혜숙과 나는 납치당하다시피 이끌려서
저녁 무렵 광주에 이르르는 여행길 만으로도
몸이 몹씨 지치고 피곤해 있었다.

그런데 서양의학에 대한 불신과 비판으로 시작해서
자연식과 숙변, 잠자리 건강과 운동 요법,
일광욕과 삼림욕과 풍욕 등등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다소 엉뚱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장 선생의 장광 설명과 실습을 정신없이 따르다보니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피곤이 온 몸으로 몰려 온다.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싶다.

장 선생은 방 한구석에 겹겹으로 기대 놓은
문짝 크기의 나무 평상을 방바닥에 깔고
반 원통 모양의 목침과 얇은 홋이불을 우리에게 내 준다.

방문을 꼭꼭 닫아 두는 것도 건강을 해친다면서
창문을 반쯤 열어 놓고는 혹시 춥더라도 닫지 말란다.

환절기에 접어든 5 월 초순의 날씨
낮에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지만
새벽녁은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다.

감옥에서는 사계절 가운데
긴 겨울과 짧은 여름만 있다.

두꺼운 콘크리트 건물에
사방이 콱 막히다시피한 방안에서 갇혀 지내다 보면
여름이 채 가시지 않은 9 월달부터 내복으로 몸을 감싸고
오뉴월까지 벗지 못한다.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그 습관에 배어
아직 내복을 벗지 못하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감기를 자주 앓았다.
환절기가 되면 오는 감기 가는 감기 다 걸리다시피 했다.

그런데 장 선생은 옷은 가급적 걸치지 말고
요도 깔지 않은 평상 맨바닥에서 얇은 홋이불만 덮고
창문을 열어 둔 채 수면을 취하란다.

나는 저으기 걱정스럽다.
나도 나지만 신체적으로 저항력이 떨어질대로 떨어져 있는 혜숙이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앞선다.

그렇지 않아도 주치의는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특별히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혜숙에게 당부했다.
사소한 병균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혜숙에게 너무 무리한 변화도
자연스런 신체적 흐름에 부담이 될 수도 있을테니까
일단은 내가 먼저 옷을 벗고 자 볼테니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내복을 입고 자라고 권했다.
그리고 창문을 실눈만큼만 남긴 정도로 해서 닫아 버렸다.

나는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설친다.
어렸을 적에는 잠자리를 바꾸는 일이 없어서 그랬을 테고
자라면서 단체 여행이나 모임 등등으로
외박하게 되는 일이 더러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혼하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출장이나 회의 등등으로 외박하는 일이 점점 잦아졌지만
역시 그 모양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 아니면 나는 가급적 외박을 안 하는 편이다.
기왕에 잠이 들 거라면 나는 새벽이거나 아침이거나
30 분이 되었건 1 시간이 되었건 집에 들러 잠을 자야했다.

감옥 생활 중에도 그랬다.
감방의 모양과 크기가 같은데도
방을 옮기게 되면 2 ~ 3 일 정도는 잠을 설쳐야 했다.
감옥 말로 천장이 바뀌면 나는 잠을 설치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장 선생 댁에서는 천장이 바뀌는 정도가 아니었다.
딱딱한 나무평상 맨바닥에서 한주먹 높이도 안 되는
나무베개를 베고 누어 있으려니
생고문을 사서 당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훈련이라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어떤 이들은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하고 등산도 하지만
그것을 학교나 군대같은 조직에서 훈련으로 하면
심리적 육체적으로 운동이라기보다는
지긋지긋한 기합이고 체벌이고 고문일텐데.....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청하는 사이
하루종일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긴장했던 탓인지
나는 어느덧 잠 속 깊숙히 빠져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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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냉온욕

 

 

얼마만인가 무슨 기척에선지
잠에서 헤어 나와 눈을 뜬다.

순간 눈에 익지 않은 천장과 주위 풍경이
의아스럽게 머리를 스치면서
번쩍 긴장감이 들고 제정신으로 돌아 온다.

창문으로는 어둠을 제치고 어슴프레 새날이 밝아 온다.
새벽이 다가옴을 알리듯
온몸으로 부르짖는 참새의 지저귐이 귀청을 울린다.

고개를 돌려 보니 혜숙도 언제 깨어났는지
벌써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고 있다.

우리는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옷을 벗는다.
녹음기를 켜고 풍욕으로 새날 새벽을 맞는다.

온몸을 담요로 감쌌다가 알몸으로 있는 동작을 30 분 쯤
그러면서 지압과 마사지 동작으로 이루어진
예비 운동을 곁들인다.

이어서 옷을 가볍게 걸치고
운동 기구를 이용해서 모관 운동과 붕어 운동을 실습한다.

장 선생이 들어 오고 혜숙은 합장합척과 등배 운동을
반복해서 훈련 받는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내 방식대로 요가와 명상에 젖어든다.

운동이 끝나고 아침 식사를 하기 전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도
장 선생은 숨쉴새 없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쏟아 붓는다.

혜숙은 먹기를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뱃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구토를 견딜 수 없었던지
이내 수저를 내려 놓고 건넌방으로 나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장 선생은 멀쩡하게 고칠 수 있는 병을
몸에 칼을 대어서 이리저리 다 잘라내고 말았으니
저리 고통스러운게 당연하지 않느냐면서
다시금 서양의학의 치료 방법에 분개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 한구석으로
말씀이 너무 지나치다 싶으면서
신뢰성에 의심이 가기도 한다.

장 선생은 조상 전래의 민족생활의학에 의존해서
믿고 따르라 했지만
나는 그 말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를
여전히 삼가하고 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건넌방으로 가 보니
혜숙은 못 먹는 식사대신인가...
풍욕을 하고 있다.

풍욕을 마치자 장 선생이 기척하고 들어 오신다.
장 선생은 한 30 분 가량 휴식을 취한 다음
냉온욕을 해야 한단다.

집 근처 목욕탕에 가서 장 선생 댁에서 왔다고 하면
목욕비가 800 원 할 적에 500 원이던가?
정확한 기억이 아닐 수 있지만
아무튼 그런 정도로 할인해 준단다.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들어가는 냉온욕법은
림프액을 정화시키고 혈액순환을 촉진시킬 뿐 아니라
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고 피로회복을 촉진시킨단다.

물의 온도로 온탕은 섭씨 41 ~ 43 도
냉탕은 18 ~ 20 도 사이가 적당하단다.

냉탕에 들어가면 몸이 산성으로 기울고
온탕에 들어가면 알칼리성으로 기울어
냉온탕을 거듭하면 체액이
중성 내지는 약알칼리성으로 개선된단다.

주의할 점은 사우나실이나 한증막에 들어가
억지로 땀 빼는 일을 삼가하고
매일하는 목욕에서 비누나 때밀이 수건을 사용하면
피부에 손상이 갈 수밖에 없으니 사용하지 말란다.

장 선생은 혜숙이 병 나을 때까지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냉온욕을 하란다.

우리는 장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목욕탕으로 가서 목욕을 했다.

처음에는 냉탕에 들어가는 것이
몸에 익숙하지 않아서 긴장하고 참아내야 했다.
여러번을 거듭할수록
견디기가 훨씬 수월하고 기분도 상쾌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혜숙과 열심히 목욕탕에 다녔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우리는 냉온욕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15 년 간
나는 거의 매일 냉온욕을 하고 있다.

냉온욕을 하면서 나는 가급적
장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나름대로 방식을 터득했다.

장 선생은 몸에 비누칠을 하지 말 것과
사우나실에 들어가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나는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조절하기로 했다.

요즈음엔 어느 온천이나 목욕탕에 가도
사우나 시설이 잘 되어 있다.
핀란드식 사우나, 소금 사우나, 증기나 물방울, 쑥과 한약재,
진흙과 통나무, 숯과 옥돌, 자외선, 습식, 건식..... 등등
시설이 점점 대형화되고 좋아 진다.

기왕에 목욕을 하면서
나는 사우나실을 굳이 외면하는 것도
시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여겨졌다.

사우나실마다 걸려 있는 이용 방법이나
효과, 효능에 대한 설명문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나는 몸을 건강하게 유지시키고
나름대로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한다는 내용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나의 냉온욕법은 이렇다.

목욕탕에 들어서면
나는 입구에서 1 회용 칫솔을 구입한다.
옷을 벗은 다음 마른 수건을 들고 사우나실로 들어가서
한 5 분 가량 머문다.

사우나실 온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땀이 흠뻑 흘러 내리도록 머물지 않고
몸에서 솟아 오를 때쯤 해서 밖으로 나온다.

샤워는 의자에 앉아서 하는 곳을 택한다.
의자에 앉아 양치질하고 머리를 감는다.
그러는 동안에도 땀은 몸에서 계속 흘러 내린다.
비누수건으로 땀을 씻어 낸다.

그러니까 입과 머리, 온몸 순으로
씻는 범위를 넓혀 가는 것이다.

자연건강 목욕법에서는 사우나실 이용과
몸에 비누칠하는 것을 삼가도록 하고 있지만
나는 무언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어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서 조절한 것이다.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자연건강 냉온욕법을 따른다.
우선 먼저 냉탕에서 1 분 동안 있고 바로 온탕에서 1 분
다시 냉탕에서 1 분, 온탕에서 1 분...
이렇게 일곱 차례를 반복하면서
마지막으로 냉탕에서 끝낸다.

냉탕에서 시작하고 냉탕에서 끝내게 되니까
일곱 차례 반복에 15 번을 왕복하는 것이다.

나는 냉온욕을 하면서
머리만 늘 물밖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쉬웠다.

그렇다고 머리까지 물속에
계속 담그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여러모로 궁리하고 연습하던 중에
나는 처음 20 초 동안은 머리를 포함해서
온몸을 물에 잠기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다보니까 냉탕에서는 별 일 없는데
온탕에서는 곳에 따라서
적지않이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한동안 우리가 자주 애용하던 충남 아산온천에는
온탕과 열탕마다 이런 팻말이 놓여 있다.

"공중보건을 위해서 온탕에 머리를 담그지 마시오!"

머리까지 물에 담그는 냉온욕법을 시행한 이후로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이다시피 얼굴을 냉온탕으로
물맛사지 하는데 안 좋아질 리가 있겠는가?

이런 방식으로 십 수 년 냉온욕을 하다보니까 나는
냉탕이나 온탕이나 더 차고 더 뜨거운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혜숙과 함께 온천이라고 하면 전국적으로
안 가본 곳 없다시피 했지만
나는 뜨겁거나 차가워서 들어가지 못한 적 없다.

물이 뜨거우면 사람들이 보통 발을 살짝 넣어 보다가
발목부터 조심조심 들어가게 되는데
발과 손과 얼굴을 비교하면 발이 온도에 가장 민감하고
그 다음이 손, 얼굴 순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얼굴이 온도에 가장 둔감하다.
발을 집어 넣을 수 있으면 얼굴은 당연히 넣을 수 있다.

경기도 화성 월암온천에는
항상 섭씨 45 도 이상을 유지하는 열탕이 있다.
그 물에 머리까지 집어 넣고 있으면 주위 사람들이
그야말로 혀를 차면서 경이롭게 나를 힐끗힐끗 본다.

냉탕에서는 몸이 긴장하고 수축된다.
온탕에서는 이완된다.

몸과 피부가 수축과 이완을 거듭하면서
노폐물이 빠져 나가고 탄력이 생긴다.

냉온욕을 하고 나면
온몸의 살갗이 숨을 쉬고 있는 듯 느껴지면서
상쾌하기 이를데 없다.

혜숙이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나자
배와 등이 바늘구멍만한 반점으로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땀구멍, 숨구멍, 잔털구멍들이 방사선 열을 받아서
속속들이 온통 시커멓게 타 버린 것이다.

혜숙은 마침 풍욕과 냉온욕에 매달려 있었고
덕분에 쉽사리 없어질 것 같지 않던 시커먼 반점들이
어느새 깨끗한 살결로 돌아왔다.

마지막 냉탕에 몸을 담근 다음 막바로 욕탕 밖으로 나와
공기나 선풍기 바람으로 물기를 말리면서
시원한 음료수 한 잔을 마시는 맛이며 기분이란
이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상쾌하기 그지없다.

시간은 대개 목욕탕 안에서 30 분 정도
목욕탕에 들어가고 나오면서 몸 말리고 옷 갈아 입는데 15 분 정도
해서 한 45 분 정도 걸린다.

냉온욕...
여기에 나는 중독 들어 있다시피 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하루라도 건너뛰기를 나는 주저했다.

다행인 것이 우리 나라는 어디를 가든지
서 있는 자리에서 반경 200 ~ 300 미터 둘러보면
새벽부터 저녁까지 사이에 목욕탕이 영업을 하고 있다.
요즈음 들어서는 24 시간 하는 곳도 점점 늘고 있고...

 



 

65. 우리 민족의 식생활

 

 

냉온욕을 실습하고 한결 상쾌해진 기분으로 돌아오니
장 선생은 목욕 후 1 시간 동안은 풍욕을 쉬어야 한다면서도
우리에게 이야기를 계속한다.

우리나라는 오랜 옛적부터 가축을 길러 왔지만
잡아 먹기 위해서 기르는 경우는 드물었단다.

곡식과 채식을 위주로 식생활을 삼아 왔고
고기는 명절이나 특별한 잔치날 등
1 년에 서너 차례 정도 먹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수천년 동안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까
우리의 신체도 그런 조건에 알맞게 맞춰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신체를 보면 허리가 길고 다리가 짧다.
대개 상체에 비해서 하체가 짧다.

채식하는 동물들이 허리가 길단다.
허리가 긴 것은 장이 길기 때문이란다.

채소와 곡식을 흡수하고 소화해서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한 다음에 배설하기 위해서는
장이 길어야 하고 그러다보니 허리가 길다는 것이다.

또한 채소나 곡식은 소화되는 과정에서
독소가 별로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장에 오래 머물러 있어도 큰 피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기처럼 단백질과 지방질이 많은 음식물은
소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고
분해되는 과정에서 독이 많이 발생한단다.

그러므로 육식을 할 경우
소화하고 흡수하고 배설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빨라야 하는데
그래서 서양사람들은 그에 알맞게 장이 짧아야 했다는 것이다.

장 선생의 이야기는 종횡무진으로 거침없이 이어진다.

요즈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염려스러운 게
한 두가지가 아니란다.
우선 몸이 허약하고 참을성이 없고 이기적이라는 거다.

조금만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투정을 부린단다.
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처럼 이해타산에 따라 행동한단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되어 가는 건가?
부모의 과잉 보호 때문이란다.

강하게 키워야 하는데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부모들이 매를 들거나
따끔하게 타이르지를 않는단다.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생활 환경에 문제가 있어서란다.

요즈음 어머니들은 아이를 출산할 때
정상 분만이 가능한 경우라도 대부분 제왕절개를 한다.
아니면 촉진제를 맞거나 흡인기로 뽑아 내기도 한다.

수술로 칼을 대고 약물을 투입하고 흡인기로 뽑아 내고 하니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서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단다.

더우기 아이들은 엄마 젖을 먹고 자라야 하는데
대부분 우유에 의존하고 있다.

우유는 송아지 먹거리다.
소가 유순하다고 하지만 어쨌거나 동물이고 짐승이다.
사람보다 지능이 떨어지고 셈판이 없으며 포악하다.

송아지 먹거리를 아기 인간이 먹고 자라는데
셈판없고 포악해 지는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엄마 품에 안겨 엄마 젖을 먹으면서
엄마로부터 따뜻한 정을 듬뿍 받고 자라야 할 아이가
혼자서 벌렁 누어 플라스틱 젖병을 저 혼자 쥐고
소 젖을 빨아 먹고 자라야 하니
아이가 장차 어찌 되겠는가?

유아기를 지나 아동기에 접어 들면서도 마찬가지란다.
요즈음 아이들은 우유와 라면, 과자, 빵, 햄 소시지 등등
가공 식품들을 주로 먹고 자란다.

사랑과 정성으로 만든 음식을 먹지 않고
기계가 만든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자란다.
우리 사회가 점점 포악해 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동물들도 일반적으로 육식 동물은 성질이 포악하고 급한데
채식 동물은 느긋하고 유순한 경향이 있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육식을 위주로 하는 서양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동적이고 공격적인데 비해
채식을 위주로 하는 동양 사람들의 정서는 정적이고 온순하다.

우리 조상들은 음식이 곧 보약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순환계의 원리에 따라
춘하추동 사계절의 변화에 맞는 음식을 조절해서 먹었다.

여름이면 찬 음식인 보리밥으로 내장을 서늘하게 조절했다.
수박, 참외, 포도 등 과일도 모두 더위를 이겨내도록
조절하는 차가운 먹거리다.
겨울이면 쌀밥과 고춧가루, 무, 김치 등으로 몸을 보호했다.

우리 민족의 전통 음식에는 수천 년 동안 전해져 내려 온
조상들의 비법과 혼이 깃들어 있다.

모든 민족은 나름대로 고유의 음식으로
건강을 지키며 대대손손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토불이다.
조상들의 식생활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그야말로 거침없고 숨쉴새 없이
종횡무진으로 끝도없이 이어지는 장 선생의 이야기는
점심상이 차려졌다는 전갈을 받고도
식사가 차려진 안방으로 건너 가는 중에도
식사 중에도 계속된다.

된장과 고추장, 제철에 난 각종 야채
현미 잡곡밥 등등으로 상이 가득하다.
김과 조개젓, 고등어구이 등
바다에서 나는 음식도 곁들여 있다.

상추와 깻잎쌈에 삼겹살이나 소고기를 얹고
싸 먹는 일이야 흔하지만
나는 거기에 생선을 얹어 싸 먹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생선은 비린 음식이라서
그냥 밥과 함께 따로 먹는 것인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장 선생 댁 식구들 모두가
고등어구이를 야채쌈에 싸 먹는 것을 보고
나도 그렇게 따라 해 보았다.

선입견으로는 야채쌈에 배어 있는 물기와 생선기름이 섞여서
느끼한 비린내가 역겨움을 더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맛이 그렇게 고소하고 쫄깃쫄깃하면서 좋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나는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로부터 10 여 년 후에
간호사로 아내의 보호자 역할을 했던 처제가
아내와 똑같은 병으로 수술을 받았다.
우리 가족은 또다시 아연 긴장했다.

그 때 혜숙의 수술 주치의였던 김용일 박사는
삼성병원으로 옮겨 있었다.

가족들과 의논한 끝에
처제는 십 수 년간 근무하던 한양대 병원을 휴직하고
삼성병원에 입원해서 김용일 박사에게 수술을 받았다.

처제는 항암제 치료와 방사선 치료 과정을 온전히 끝마쳤다.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처제는 내 주선으로
산 좋고 물 좋은 충북 제천군 백운면 도동계곡 마을에서
자연 건강식으로 생활하는 가정에 요양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장 선생 댁에서 야채쌈에 싸 먹던 맛을 떠올리면서
처제를 방문할 때마다 얼음에 재 놓은 고등어를
여러 박스씩 차에 싣고 갔다.

첩첩산골 도동계곡 마을에서
제철에 난 각종 야채와 알맞게 구운 고등어를 싸 먹는 맛은
역시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장 선생 댁 식구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끼니 때마다 조금씩 바뀌는 밑반찬과 국, 찌게류 등등을
나는 유심히 살피고 맛을 보았다.

하지만 혜숙은 그 싱싱하고 맛난 음식들을
어느 것 하나에도 맛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억지로라도 먹어 보려고 애를 쓰지만
속에서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잘라 낸 위를 대신해서 장으로 연결해 놓은 부위가
아마도 제 역할과 기능을 전혀 못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맴돌면서 마음이 불안해 진다.

함께 식사하는 이들 모두가 긴장하면서
혜숙이 무엇을 먹는지 얼마만큼 먹는지를
은연 중에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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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죽염과 생수

 


장 선생은 중간중간 우리가 풍욕하는 시간을 빼고
한시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말씀을 이어간다.

우리 조상들이 소금을 볶아 먹고
죽염을 만들어 먹었던 것에서
우리는 참으로 조상들의 먹거리 지혜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단다.

소금에는 인체에 유익한 각종 유기물질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서해의 바닷물과 햇빛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천혜의 양분이 들어 있단다.

하지만 소금에는 인체에 해를 끼치는
무서운 핵비소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 조상들은 이 핵비소를 제거하고
인체에 유익한 물질만 남기기 위해서
볶은소금과 죽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죽염은 서해에서 얻은 토반염을
대나무에 넣어 황토흙으로 막고
소나무 장작불로 아홉 번을 구어서 만든 것이란다.

이 과정에서 핵비소는 대나무 속의 유황정과 화합해서
약성만 남게 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소금은
악성 종양 등 인체 내의 극심한 염증을 바로고칠 수 있는
명약 중의 명약이라는 것이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그는 조상들의 지혜 또한 놀랍단다.
천연 소금을 장독에 담고 햇볕에 쪼여서
핵비소를 중화시키는 데다가
콩과 밀가루 등의 곡식을 섞어 만든 간장, 된장, 고추장은
최상의 염분과 단백질을 지닌 보약 식품이란 것이다.

암 환자들은 특히 생수를 많이 마셔야 한단다.
끓인 물은 산소를 비롯해서 인체에 유익한 물질뿐만 아니라
생수의 생명력인 기(氣)가 없어져 버린단다.

우리 사회에서 기생충과 전염성 질환이 크게 번졌을 때는
물을 끓여 먹어야 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단다.

끓인 물을 화초에 계속해서 뿌려 주면
화초가 자라지 못하고 시들시들하다가 결국 죽고 마는데
이는 생수 속에 들어 있는 생명력이 생물이 자라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는 본보기가 되는 것이란다.

생수를 자주 마시고 또 많이 마시기 위해서는
늘 생수병과 죽염을 가지고 다니란다.
물이 안 먹힐 때는 맛이 짠 죽염가루를 입에 넣고
물을 마시라는 거다.

물을 끓여 먹기 보다는 수돗물을 그냥 먹는 게 좋단다.
생수를 구하기 번거로우면 수돗물을 정수해 마시란다.

장 선생 댁 거실에는 커다란 정수기가 있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정수기가 그리 보급되지 않을 때여서
가정에 정수기를 들여 놓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장 선생은 혜숙의 병을 고치려거든 무엇보다도
집에 정수기를 꼭 들여 놓으라고 한다.

나는 죽염과 생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리가 있겠다 싶었다.

어렵거나 힘든 일도 아니고
굳이 시간을 더 쪼개거나 맞추어야 되는 일도 아니고
아무튼 우리는 가급적 죽염과 생수를 자주 먹고 마시기로 했다.

하지만 생수를 구하기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정수기를 구입하려 해도 가정용으로 나온 것이 없을 적이다.
마침 청주에서 사업하는 대학교 후배 노영민(전 국회의원, 청와대 비서실장)이
식당용 정수기를 보내 주었다.

이후부터 십 수 년 동안 정수기는
언제나 우리집 냉장고 옆에 자리하면서
우리 가정에 없어서는 안 될 역할과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혜숙은 늘 죽염을 가까이에 준비해 두고 있었다.
몇 년이 흐른 뒤 정수기는 모든 가정의 생활 필수품이 되었고
생수는 어느 곳에서나 구할 수 있는 음료수가 되었다.

죽염으로 만든 치약이 등장하면서
나는 그것을 특별히 애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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