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무심을 넘어 기쁨으로

 


명상에는 이밖에도 삼매와 불성계발, 법열 행법 등이 있다.
삼매(三昧)란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즉 자기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한마음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대립이나 갈등,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나'와 '너'가 함께 살고 서로 살리는 세계다.

이를테면 인생을 오랜 세월
함께 동거동락하며 살아 온 할머니 할아버지...
행복한 부부 관계가 곧 삼매의 관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쩌면 본질적으로 갖게 되는
긴장과 경계, 갈등을 넘어서서
몸과 마음을 일치할 수 있는 상태가 곧 삼매의 경지다.

하지만 모든 인간 세계를 대상으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할 수 있을 때
이 삼매가 자기 마음에 실현되는 것이고

모든 이들의 마음을 바르게 받아들일 때
'사랑'도 이루어 지는 것이다.

'나'와 '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 그럴 때
삼매의 세계, 사랑의 세상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일의 상태가
그대로 자기의 마음으로 될 때

비로소 진실한 일이 되고
일하는 기쁨도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이 곧 깨달음이고 불성(佛性)이다.

불성이란 사람에게만 특별하게 선택해서

부여된 특성이라고 요가에서는 말한다.

불성은 변화하고 진화하는 원동력이고
사물을 성화(聖化)할 수 있는 능력이다.

비단 요가나 불교에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원리와도 일치할 수 있겠는데

마음을 성화함으로써 인격자가 될 수 있고
석가의 마음, 예수의 마음이 됨으로써

참다운 감사와 기쁨이 생기고
예배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알기 쉽게 풀면 물이 물이라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목마른 짐승도 그 본질을 알 수 있다.

이 물을 자연이랄지 신의 사랑이랄지
하느님의 은혜로 받아들이는
'거룩한 마음'이 곧 요가에서 말하는 불성이다.

이와같은 '거룩한 마음'에서 바른 사고와 행동 방식이 나오고
올바른 해결 방법이 나오는 것이다.

진실을 알고 감사하게 예배하는 '거룩한 마음'이 되었을 때
비로소 참된 기쁨 즉 법열(法悅)이 생긴다.

명상에서는 이 법열의 경지 즉 기쁨의 경지를
최고 목표로 한다.

요가에서는
'내 안에 신이 있다. 그 신을 보는 것이 깨달음이다' 라고 가르치고 있다.

깨달음을 얻고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신 -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때
비로소 참된 기쁨 즉 법열을 맛볼 수 있다.

이 기쁨의 경지, 법열 즉 니르바나(nirvana)의 경지가
요가의 가르침이요 목표이며 참 모습인 것이다.

다시금 풀어 보면
삼매의 단계는 흔히 독서삼매에 빠진다는 말처럼
글 쓴이의 마음과 정신 세계가
읽는 이의 마음과 정신 세계와
하나되고 통일되는 경지를 일컫는다.

철학적으로 풀면 어머니가 자식을 대하듯

아무런 조건없이 어머니의 마음을 자식의 마음으로 하나되게 하고 통일되게 하는
'아가페적 사랑'과 통한다.

여기에서 어머니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자식을 대하듯이 하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도 서로에게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삼매의 세계가 완성되는 것이고 기독교적 사랑의 세계가 실현되는 것이다.

불성계발은 어머니가 지금 이 세상에는 없지만
자식이 어쩌면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보다도 더 이 세상 모든 것을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는 '거룩한 마음'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듯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보고
하느님의 성령이 역사하심을 보는 것이다.
하느님의 은혜로 받아들이고 섬기는 것이다.

마지막 법열의 단계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의 세계다.

나는 감옥에서 단련해 오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요가와 명상을 통한 자연 건강법으로
혜숙의 병이 나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사실 나는 요가와 명상을 단련하면서도
정신 통일과 선정
무심 행법의 단계에서 머물곤 했다.

무심을 넘어 삼매와 불성계발
법열에 이르르는 마지막 단계는
반드시 훈련이나 단련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이를테면 기독교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자신의 모든 생활과 행동을 2 천 여 년 전의 성경 말씀대로
교리대로 곧이곧대로만 실행한다면

현대 사회에 적응하고 경쟁해서
살아 갈 능력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비현실적이고 비사회적인 인간으로
일터에서 직장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혜숙의 생명을 위해서
서양의학적 노력을 우선으로 삼고
최선을 다 한 연후에는

혹시 요가 수행을 통해
혜숙과 함께 몸과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내가 감옥 안에서 열심히 단련하면서도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던 무심의 단계를 넘어

정신적 종교적 세계인
'사랑'과 '거룩' '천국'의 마음으로
그 세계로 혜숙이 달려 갈 수 있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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