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광주의 시인 문병란과 이 강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니 얼마 전까지도
민주개혁국민연합 광주 본부 대표를 맡아서 활동하던 이 강과
조선대 문병란 교수가 먼저 자리하고 있다.

이 강은 80 년 광주 민주화 운동 사건으로
신군부 세력에 의해 쫓기고 쫓기다가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밀항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아
망명 생활을 하고 있던 윤한봉과 더불어
광주를 지키고 광주의 민주화 운동을 일궈 낸
나의 오랜 친구다.



▲ 문병란 (1930~2015) 시인


문병란 선생은 1935년 3월28일 화순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학과(1960년)를 졸업했다.
순천고와 광주제일고 교사를 거쳐 조선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문 시인은
작품 '플라타너스'를 남긴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시 '가로수' '밤의 호흡' '꽃밭' 등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1970년 첫 시집 '문병란 시집'을 펴낸 문병란 교수는 시의 창조를 분만의 고통에 비유했다.
또 시집 '죽순 밭에서' '벼들의 속삭임' '5월의 연가' '양키여 양키여' 등
저항과 비판의식을 주제로 한 시를 창작, 대표적 저항시인으로 평가 받았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길다'로 시작하는

문 시인의 대표작 '직녀에게'는 1970년 중반 '심상'이라는 시 전문지에 발표된 뒤 노래로 만들어졌다.


문병란 선생은 젊은이들과 허심탄회하게 어울리는 자리를 마다않고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임을 즐겨하셨다.

외모로는 한없이 온화하면서도
강직한 기풍을 지닌 선비형이시다.

참으로 오랜만에 뵙는 분들이다.
우리는 서로 안부와 근황을 묻고 회포를 나누었다.

이분들은 진심으로 나를 위로했고 나 역시 이들에게
혜숙의 상태와 치료 과정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문병란 선생은 현대의학으로는
너무 감당하기 어려운 병인 모양인데
장두석 선생을 따라 믿고 의지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신다.

그러자 장 선생이 슬그머니 자리를 비우신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혜숙과도 함께 연루되었던 이 강은
"우리 혜숙 씨 생명을 구하려면 장 선생께 매달리는 방법밖에 없다"
면서 단도직입으로 말문을 연다.

이 강의 말인즉슨 장 선생은 제도교육을 거의 받지 못해서
소위 말하는 학력이란 것을 내세울 게 없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지독하게 독학하고 연구해서
동의보감을 비롯한 우리 민족의학서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의학서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간질과 폐수종을 앓고 사경을 헤매다가
산속에 들어가서 죽기살기로 병마와 싸워 건강을 찾았는데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시력이 정상인보다는
맹인에 가까울 정도로 나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돋보기를 걸치고 지금도 꾸준히
일본과 중국 의학서를 번역하고 계시단다.

그러다보니까 민족 자주의 문제
생활 공동체의 문제 등에도 일찌기 눈을 떠서
1960 년에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조직에 참여하고
1962 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농업협동조합 운동에 앞장서 왔단다.

뿐만 아니라 신용협동조합 운동을 일으켜서
광주 전남 지역은 물론이거니와 전국적으로도
이름 모르는 회원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 선생은 민족생활의학의 선구자요
당대에 독보적이다시피한 분이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고
우리 농산물, 우리 농업의 소중함을 전파하면서
유기 농업을 일으켜 세우고
이를 사람 살리기 '생명 운동'으로 발전시키면서
양서조합 운동, 인권 운동, 재야 민주화 운동으로
끊임없이 접목하고 전국을 뛰어다니는
그야말로 실천적 사회운동가로서
전형적 모범을 보이시는 분이란다.

이 강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서 나는
'이 친구 장두석 교주의 맹목적 신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설득하고
나에게 동의를 구하려는 이 강의 표정이 너무 열성적이고
문병란 선생 역시 진지하고 간곡한 분위기여서
나는 차마 다음 날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혜숙과 함께 서울로 가야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내게서 감동하거나 동의하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지
이 강은 계속 장 선생에 대한 인간적 일화를 소개한다.

80 년 5 월 그 몸서리치고 엄혹했던 광주 항쟁 때
문병란 선생과 장 선생이 보안대 지하실에 끌려가
갖은 고문과 고초를 당하고 있었는데
이 두 분이 군 교도소로 이송되기 전에
대질 신문을 받게 되었단다.

이 때 장 선생이 수사관을 향해서

"우리 문병란 선생님을 때리지 마시오! 이 분은 몸도 약하고
선비같은 사람인데 때릴 만한 데도 없지 않습니까?
이 분보다는 내가 더 건강하고 맷집도 좋으니
차라리 나를 때리시오!"

했다는 것이다.
이 일로 해서 문병란 선생은
계엄군들의 몽둥이 세례를 면한 반면 장 선생은
'그래? 그럼 당신이 다 맞아 봐라' 하면서
실로 모진 고문을 사서 당했다는 것이다.

계엄군들에 에워싸인 상무대 감옥에서도
장 선생은 험악한 분위기에 주눅들지 않고
함께 갇힌 동지들을 위로하면서
계엄군들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교육시키기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양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그야말로 의연하게 모범을 보이셨단다.

그 때 그 날의 분위기를 그 후
문병란 시인이 남긴 시를 통해서 다시금 더듬어 본다.



위대한 스승 - 자연에 바치는 노래 -


거리에 나서면
서로 다투어 서 있는 드높은 빌딩의 간판들
술집 다방 당구장 호텔 오락장 목욕탕
약방 병원 성당 교회 학교 경찰서

문명 사회의 통계를 보면
수천 배 수만 배 늘어난 온갖 범죄와 질병들
구석구석 병든 지구 위에
굶주림과 전쟁의 상처 낭자하다.

노는 문화가 건강을 좀먹고
약과 병원이 병을 키우고
성당과 교회가 사랑을 가두고
경찰서와 법원이 범죄를 보호하고

마침내 지구는 거대한 정신병동
온갖 문명의 쓰레기 넘치는 곳에서
반생명의 과학, 자연을 파괴하고 죽이는
살인의 지식이 생명을 모독하고 있다.

자연은 말없는 위대한 스승
한 잎 풀잎의 속삭임 앞에
가만히 무릎 꿇고 귀기울일 때
병은 절로 낫는다.

흙은 생명의 자양
햇살과 공기와 물은 생명의 보약
병은 낫는 게 아니라 지니고 산다.

3 백여 개 뼈마디 속마디
구절양장 오장육부 구석구석마다
은밀한 속삭임 있어 귀기울이면
동맥을 타고 피가 흐른다.
경락을 타고 우주가 속삭인다.

병은 생명의 스승
수억 개 세포와 온갖 세균의 공존공생까지도
사람을 숨쉬게 한다.
스스로 치료하는 명의가 되게 한다.
오 위대한 화타(華陀)여 자연이여

( 이상 문병란의 시 위대한 스승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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