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우리 민족의 식생활

 

 

냉온욕을 실습하고 한결 상쾌해진 기분으로 돌아오니
장 선생은 목욕 후 1 시간 동안은 풍욕을 쉬어야 한다면서도
우리에게 이야기를 계속한다.

우리나라는 오랜 옛적부터 가축을 길러 왔지만
잡아 먹기 위해서 기르는 경우는 드물었단다.

곡식과 채식을 위주로 식생활을 삼아 왔고
고기는 명절이나 특별한 잔치날 등
1 년에 서너 차례 정도 먹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수천년 동안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까
우리의 신체도 그런 조건에 알맞게 맞춰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신체를 보면 허리가 길고 다리가 짧다.
대개 상체에 비해서 하체가 짧다.

채식하는 동물들이 허리가 길단다.
허리가 긴 것은 장이 길기 때문이란다.

채소와 곡식을 흡수하고 소화해서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한 다음에 배설하기 위해서는
장이 길어야 하고 그러다보니 허리가 길다는 것이다.

또한 채소나 곡식은 소화되는 과정에서
독소가 별로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장에 오래 머물러 있어도 큰 피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기처럼 단백질과 지방질이 많은 음식물은
소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고
분해되는 과정에서 독이 많이 발생한단다.

그러므로 육식을 할 경우
소화하고 흡수하고 배설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빨라야 하는데
그래서 서양사람들은 그에 알맞게 장이 짧아야 했다는 것이다.

장 선생의 이야기는 종횡무진으로 거침없이 이어진다.

요즈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염려스러운 게
한 두가지가 아니란다.
우선 몸이 허약하고 참을성이 없고 이기적이라는 거다.

조금만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투정을 부린단다.
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처럼 이해타산에 따라 행동한단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되어 가는 건가?
부모의 과잉 보호 때문이란다.

강하게 키워야 하는데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부모들이 매를 들거나
따끔하게 타이르지를 않는단다.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생활 환경에 문제가 있어서란다.

요즈음 어머니들은 아이를 출산할 때
정상 분만이 가능한 경우라도 대부분 제왕절개를 한다.
아니면 촉진제를 맞거나 흡인기로 뽑아 내기도 한다.

수술로 칼을 대고 약물을 투입하고 흡인기로 뽑아 내고 하니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서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단다.

더우기 아이들은 엄마 젖을 먹고 자라야 하는데
대부분 우유에 의존하고 있다.

우유는 송아지 먹거리다.
소가 유순하다고 하지만 어쨌거나 동물이고 짐승이다.
사람보다 지능이 떨어지고 셈판이 없으며 포악하다.

송아지 먹거리를 아기 인간이 먹고 자라는데
셈판없고 포악해 지는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엄마 품에 안겨 엄마 젖을 먹으면서
엄마로부터 따뜻한 정을 듬뿍 받고 자라야 할 아이가
혼자서 벌렁 누어 플라스틱 젖병을 저 혼자 쥐고
소 젖을 빨아 먹고 자라야 하니
아이가 장차 어찌 되겠는가?

유아기를 지나 아동기에 접어 들면서도 마찬가지란다.
요즈음 아이들은 우유와 라면, 과자, 빵, 햄 소시지 등등
가공 식품들을 주로 먹고 자란다.

사랑과 정성으로 만든 음식을 먹지 않고
기계가 만든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자란다.
우리 사회가 점점 포악해 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동물들도 일반적으로 육식 동물은 성질이 포악하고 급한데
채식 동물은 느긋하고 유순한 경향이 있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육식을 위주로 하는 서양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동적이고 공격적인데 비해
채식을 위주로 하는 동양 사람들의 정서는 정적이고 온순하다.

우리 조상들은 음식이 곧 보약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순환계의 원리에 따라
춘하추동 사계절의 변화에 맞는 음식을 조절해서 먹었다.

여름이면 찬 음식인 보리밥으로 내장을 서늘하게 조절했다.
수박, 참외, 포도 등 과일도 모두 더위를 이겨내도록
조절하는 차가운 먹거리다.
겨울이면 쌀밥과 고춧가루, 무, 김치 등으로 몸을 보호했다.

우리 민족의 전통 음식에는 수천 년 동안 전해져 내려 온
조상들의 비법과 혼이 깃들어 있다.

모든 민족은 나름대로 고유의 음식으로
건강을 지키며 대대손손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토불이다.
조상들의 식생활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그야말로 거침없고 숨쉴새 없이
종횡무진으로 끝도없이 이어지는 장 선생의 이야기는
점심상이 차려졌다는 전갈을 받고도
식사가 차려진 안방으로 건너 가는 중에도
식사 중에도 계속된다.

된장과 고추장, 제철에 난 각종 야채
현미 잡곡밥 등등으로 상이 가득하다.
김과 조개젓, 고등어구이 등
바다에서 나는 음식도 곁들여 있다.

상추와 깻잎쌈에 삼겹살이나 소고기를 얹고
싸 먹는 일이야 흔하지만
나는 거기에 생선을 얹어 싸 먹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생선은 비린 음식이라서
그냥 밥과 함께 따로 먹는 것인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장 선생 댁 식구들 모두가
고등어구이를 야채쌈에 싸 먹는 것을 보고
나도 그렇게 따라 해 보았다.

선입견으로는 야채쌈에 배어 있는 물기와 생선기름이 섞여서
느끼한 비린내가 역겨움을 더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맛이 그렇게 고소하고 쫄깃쫄깃하면서 좋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나는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로부터 10 여 년 후에
간호사로 아내의 보호자 역할을 했던 처제가
아내와 똑같은 병으로 수술을 받았다.
우리 가족은 또다시 아연 긴장했다.

그 때 혜숙의 수술 주치의였던 김용일 박사는
삼성병원으로 옮겨 있었다.

가족들과 의논한 끝에
처제는 십 수 년간 근무하던 한양대 병원을 휴직하고
삼성병원에 입원해서 김용일 박사에게 수술을 받았다.

처제는 항암제 치료와 방사선 치료 과정을 온전히 끝마쳤다.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처제는 내 주선으로
산 좋고 물 좋은 충북 제천군 백운면 도동계곡 마을에서
자연 건강식으로 생활하는 가정에 요양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장 선생 댁에서 야채쌈에 싸 먹던 맛을 떠올리면서
처제를 방문할 때마다 얼음에 재 놓은 고등어를
여러 박스씩 차에 싣고 갔다.

첩첩산골 도동계곡 마을에서
제철에 난 각종 야채와 알맞게 구운 고등어를 싸 먹는 맛은
역시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장 선생 댁 식구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끼니 때마다 조금씩 바뀌는 밑반찬과 국, 찌게류 등등을
나는 유심히 살피고 맛을 보았다.

하지만 혜숙은 그 싱싱하고 맛난 음식들을
어느 것 하나에도 맛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억지로라도 먹어 보려고 애를 쓰지만
속에서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잘라 낸 위를 대신해서 장으로 연결해 놓은 부위가
아마도 제 역할과 기능을 전혀 못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맴돌면서 마음이 불안해 진다.

함께 식사하는 이들 모두가 긴장하면서
혜숙이 무엇을 먹는지 얼마만큼 먹는지를
은연 중에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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