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냉온욕

 

 

얼마만인가 무슨 기척에선지
잠에서 헤어 나와 눈을 뜬다.

순간 눈에 익지 않은 천장과 주위 풍경이
의아스럽게 머리를 스치면서
번쩍 긴장감이 들고 제정신으로 돌아 온다.

창문으로는 어둠을 제치고 어슴프레 새날이 밝아 온다.
새벽이 다가옴을 알리듯
온몸으로 부르짖는 참새의 지저귐이 귀청을 울린다.

고개를 돌려 보니 혜숙도 언제 깨어났는지
벌써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고 있다.

우리는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옷을 벗는다.
녹음기를 켜고 풍욕으로 새날 새벽을 맞는다.

온몸을 담요로 감쌌다가 알몸으로 있는 동작을 30 분 쯤
그러면서 지압과 마사지 동작으로 이루어진
예비 운동을 곁들인다.

이어서 옷을 가볍게 걸치고
운동 기구를 이용해서 모관 운동과 붕어 운동을 실습한다.

장 선생이 들어 오고 혜숙은 합장합척과 등배 운동을
반복해서 훈련 받는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내 방식대로 요가와 명상에 젖어든다.

운동이 끝나고 아침 식사를 하기 전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도
장 선생은 숨쉴새 없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쏟아 붓는다.

혜숙은 먹기를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뱃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구토를 견딜 수 없었던지
이내 수저를 내려 놓고 건넌방으로 나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장 선생은 멀쩡하게 고칠 수 있는 병을
몸에 칼을 대어서 이리저리 다 잘라내고 말았으니
저리 고통스러운게 당연하지 않느냐면서
다시금 서양의학의 치료 방법에 분개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 한구석으로
말씀이 너무 지나치다 싶으면서
신뢰성에 의심이 가기도 한다.

장 선생은 조상 전래의 민족생활의학에 의존해서
믿고 따르라 했지만
나는 그 말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를
여전히 삼가하고 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건넌방으로 가 보니
혜숙은 못 먹는 식사대신인가...
풍욕을 하고 있다.

풍욕을 마치자 장 선생이 기척하고 들어 오신다.
장 선생은 한 30 분 가량 휴식을 취한 다음
냉온욕을 해야 한단다.

집 근처 목욕탕에 가서 장 선생 댁에서 왔다고 하면
목욕비가 800 원 할 적에 500 원이던가?
정확한 기억이 아닐 수 있지만
아무튼 그런 정도로 할인해 준단다.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들어가는 냉온욕법은
림프액을 정화시키고 혈액순환을 촉진시킬 뿐 아니라
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고 피로회복을 촉진시킨단다.

물의 온도로 온탕은 섭씨 41 ~ 43 도
냉탕은 18 ~ 20 도 사이가 적당하단다.

냉탕에 들어가면 몸이 산성으로 기울고
온탕에 들어가면 알칼리성으로 기울어
냉온탕을 거듭하면 체액이
중성 내지는 약알칼리성으로 개선된단다.

주의할 점은 사우나실이나 한증막에 들어가
억지로 땀 빼는 일을 삼가하고
매일하는 목욕에서 비누나 때밀이 수건을 사용하면
피부에 손상이 갈 수밖에 없으니 사용하지 말란다.

장 선생은 혜숙이 병 나을 때까지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냉온욕을 하란다.

우리는 장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목욕탕으로 가서 목욕을 했다.

처음에는 냉탕에 들어가는 것이
몸에 익숙하지 않아서 긴장하고 참아내야 했다.
여러번을 거듭할수록
견디기가 훨씬 수월하고 기분도 상쾌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혜숙과 열심히 목욕탕에 다녔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우리는 냉온욕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15 년 간
나는 거의 매일 냉온욕을 하고 있다.

냉온욕을 하면서 나는 가급적
장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나름대로 방식을 터득했다.

장 선생은 몸에 비누칠을 하지 말 것과
사우나실에 들어가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나는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조절하기로 했다.

요즈음엔 어느 온천이나 목욕탕에 가도
사우나 시설이 잘 되어 있다.
핀란드식 사우나, 소금 사우나, 증기나 물방울, 쑥과 한약재,
진흙과 통나무, 숯과 옥돌, 자외선, 습식, 건식..... 등등
시설이 점점 대형화되고 좋아 진다.

기왕에 목욕을 하면서
나는 사우나실을 굳이 외면하는 것도
시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여겨졌다.

사우나실마다 걸려 있는 이용 방법이나
효과, 효능에 대한 설명문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나는 몸을 건강하게 유지시키고
나름대로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한다는 내용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나의 냉온욕법은 이렇다.

목욕탕에 들어서면
나는 입구에서 1 회용 칫솔을 구입한다.
옷을 벗은 다음 마른 수건을 들고 사우나실로 들어가서
한 5 분 가량 머문다.

사우나실 온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땀이 흠뻑 흘러 내리도록 머물지 않고
몸에서 솟아 오를 때쯤 해서 밖으로 나온다.

샤워는 의자에 앉아서 하는 곳을 택한다.
의자에 앉아 양치질하고 머리를 감는다.
그러는 동안에도 땀은 몸에서 계속 흘러 내린다.
비누수건으로 땀을 씻어 낸다.

그러니까 입과 머리, 온몸 순으로
씻는 범위를 넓혀 가는 것이다.

자연건강 목욕법에서는 사우나실 이용과
몸에 비누칠하는 것을 삼가도록 하고 있지만
나는 무언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어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서 조절한 것이다.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자연건강 냉온욕법을 따른다.
우선 먼저 냉탕에서 1 분 동안 있고 바로 온탕에서 1 분
다시 냉탕에서 1 분, 온탕에서 1 분...
이렇게 일곱 차례를 반복하면서
마지막으로 냉탕에서 끝낸다.

냉탕에서 시작하고 냉탕에서 끝내게 되니까
일곱 차례 반복에 15 번을 왕복하는 것이다.

나는 냉온욕을 하면서
머리만 늘 물밖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쉬웠다.

그렇다고 머리까지 물속에
계속 담그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여러모로 궁리하고 연습하던 중에
나는 처음 20 초 동안은 머리를 포함해서
온몸을 물에 잠기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다보니까 냉탕에서는 별 일 없는데
온탕에서는 곳에 따라서
적지않이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한동안 우리가 자주 애용하던 충남 아산온천에는
온탕과 열탕마다 이런 팻말이 놓여 있다.

"공중보건을 위해서 온탕에 머리를 담그지 마시오!"

머리까지 물에 담그는 냉온욕법을 시행한 이후로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이다시피 얼굴을 냉온탕으로
물맛사지 하는데 안 좋아질 리가 있겠는가?

이런 방식으로 십 수 년 냉온욕을 하다보니까 나는
냉탕이나 온탕이나 더 차고 더 뜨거운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혜숙과 함께 온천이라고 하면 전국적으로
안 가본 곳 없다시피 했지만
나는 뜨겁거나 차가워서 들어가지 못한 적 없다.

물이 뜨거우면 사람들이 보통 발을 살짝 넣어 보다가
발목부터 조심조심 들어가게 되는데
발과 손과 얼굴을 비교하면 발이 온도에 가장 민감하고
그 다음이 손, 얼굴 순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얼굴이 온도에 가장 둔감하다.
발을 집어 넣을 수 있으면 얼굴은 당연히 넣을 수 있다.

경기도 화성 월암온천에는
항상 섭씨 45 도 이상을 유지하는 열탕이 있다.
그 물에 머리까지 집어 넣고 있으면 주위 사람들이
그야말로 혀를 차면서 경이롭게 나를 힐끗힐끗 본다.

냉탕에서는 몸이 긴장하고 수축된다.
온탕에서는 이완된다.

몸과 피부가 수축과 이완을 거듭하면서
노폐물이 빠져 나가고 탄력이 생긴다.

냉온욕을 하고 나면
온몸의 살갗이 숨을 쉬고 있는 듯 느껴지면서
상쾌하기 이를데 없다.

혜숙이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나자
배와 등이 바늘구멍만한 반점으로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땀구멍, 숨구멍, 잔털구멍들이 방사선 열을 받아서
속속들이 온통 시커멓게 타 버린 것이다.

혜숙은 마침 풍욕과 냉온욕에 매달려 있었고
덕분에 쉽사리 없어질 것 같지 않던 시커먼 반점들이
어느새 깨끗한 살결로 돌아왔다.

마지막 냉탕에 몸을 담근 다음 막바로 욕탕 밖으로 나와
공기나 선풍기 바람으로 물기를 말리면서
시원한 음료수 한 잔을 마시는 맛이며 기분이란
이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상쾌하기 그지없다.

시간은 대개 목욕탕 안에서 30 분 정도
목욕탕에 들어가고 나오면서 몸 말리고 옷 갈아 입는데 15 분 정도
해서 한 45 분 정도 걸린다.

냉온욕...
여기에 나는 중독 들어 있다시피 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하루라도 건너뛰기를 나는 주저했다.

다행인 것이 우리 나라는 어디를 가든지
서 있는 자리에서 반경 200 ~ 300 미터 둘러보면
새벽부터 저녁까지 사이에 목욕탕이 영업을 하고 있다.
요즈음 들어서는 24 시간 하는 곳도 점점 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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