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7 08:00 김삼웅
박정희의 ‘원대복귀’ 혁명공약은 헌신짝이 되고, 그가 노골적인 정치참여의 의지를 내보이는 가운데 12월 17일 개헌안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중심제 헌법을 제정하고, 몇 차례의 번의를 거듭한 끝에 12월 27일 대통령 출마 의사를 표명했다. 5ㆍ16쿠데타가 권력찬탈을 위한 수단이었음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함석헌은 1950년 3월 28일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역사>를 간행했던 것을 1961년 겨울 한 달 동안 해인사에서 대대적인 개작을 하여 간행하였다. 제목도 ‘성서적’을 빼고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바꾸었다. 개정신판은 1962년 3월 일우사에서 간행되었다. 그런데 개정판을 내고 제목을 바꾸면서도 1950년판의 ‘서문’을 ‘머릿말’로만 바꾸었을 뿐 내용은 그대로를 실었다. 왜 그랬을까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성서적 입장’의 제거가 “사슴에게서 뿔을 제하는 일”과 같고, “성서적 입장에서도 역사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 입장에서야만 역사는 쓸 수 있다”고 다짐했던 터였다. 그런데 개정판에서 ‘뜻으로 본’으로 제목을 바꾸었다. 뒤에 다시 간행한 책의 서문이다.
그래서 책을 내게 되는 전해 겨울 해인사에 한 달 가 있으면서 전체에 걸쳐 크게 수정을 하여 모든 교파주의적인 것, 독단적인 것을 없애버리고 책 이름도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고 고쳤다. ‘성서적 입장’이라는 대신 ‘뜻으로 본’이라고 붙일 때에 나는 여러 가지로 생각하였다. 많은 기독교인 더구나 무교회 신자들을 섭섭하게 할 것과 심하면 거침돌이 될 것까지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제 기독교인만 생각하고 있을 수 없다. 그들이 불신자라는 사람도 꼭 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게는 이제 믿는 자만이 뽑혀 의롭다 함을 얻어 천국 혹은 극락세계에 가서 한편 캄캄한 지옥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 보다 많은 중생을 굽어보면서 즐거워하는 그런 따위 종교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 나는 적어도 예수나 석가의 종교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석 1)
내가 보기에 <뜻으로 본 한국 역사>는 1962년 2월 30일자로 일우사에서 종서로 발행된 (456쪽 정가 2,500환) 것이 정본이 아닌가 싶다. 저자 스스로 꼼꼼히 교정을 보아서 오탈자도 거의 없다. 말미에는 유달영의 <책 끝에 붙이는 글>을 실었다. 표지 안쪽에는 회갑날의 저자 흑백 사진도 실렸다.
또한 1950년과 1954년 재판본에 비해 1962년 판본에는 제4부가 추가되었다.
제4부 <생활에 나타난 고민하는 모습>에 <고난의 의미>, <역사가 지시하는 우리의 사명>이 추가된 것이다. 이후 몇 곳 출판사가 바뀌면서 나온 책은 1962년 판본을 횡서로 고치고, 유달영의 발문을 제한 것이 대부분이다.
함석헌의 주저인 이 책의 기조(基調)는 ‘고난의 사관’이다. 신라의 통일 이래 한민족이 걸어온 길은 고난이었다는 주장이다. 당당하게 출발하여 열국시대를 거치고 풀무 속에 다듬어진 삼국시대에 고구려 아닌 신라가 통일을 주도하면서 광대한 대륙을 잃게 되고, 그 땅에 고려가 세워졌으나 ‘다하지 못한 책임’으로 민족사의 고난이 잉태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성계의 덕 없는 창업, 사대주의를 국시로 내걸고 나라를 세움으로써 ‘중축(中軸)이 부러진 역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수난인가? 두 말할 것 없이 그 다하지 못한 책임 때문이요, 그 잃어버린 정신 때문이다. 이조(李朝) 한 대의 역사는 한 마디로 하면 중축이 부러진 역사다. 축이 부러진 수레가 어찌 나갈 수 있을까? 정도 없이 국민 이상도 없이, 수레의 바퀴 같은 모든 제도 조직이 있다 한들 어떻게 역사의 진행이 있을 수 있을까? 수레의 가장 중요한 것이 축이 둣이 역사에 가장 요긴한 것도 민족정신이요 국민 이상이다.
중축 없는 바퀴를 밀면 밀수록 더 어지러이 이리 굴고 저리 굴듯이 역사도 정신이 빠지면 아무리 정치를 하고 모든 문화 활동을 하여도 어지러울 뿐이다. 그러므로 수난이다. (주석 2)
함석헌은 동명왕ㆍ혁거세ㆍ온조ㆍ왕건까지 관인대도(寬仁大度) 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성계에서는 그것을 볼 수 없다고 지적하고, 사대국시를 비판한다.
중축이 부러진 역사! 그것이 욿은 제도를 밟아 바른 길을 나갈 수 있을 리가 없다. 500년 동안의 일은 그저 어긋남이요. 거꾸러짐이요. 깨짐이다. 당초부터 이소사대(以小事大)를 표어로 삼고 된 구차한 건국인지라, 구차 아닌 것이 없다. 내 나라를 가지고도 남에게 줬다가 다시 빌어 받기에 힘이 들었고, 내 스스로 된 임금이건만 남의 승인을 얻기에 부끄럼이 그지 없었다. 그러면서도 두 세 임금과 신하를 내놓고는 분해 하지도 아쉬워 하지도 않고 멍청하고 있었다. (주석 3)
함석헌의 이 책에는 ‘조선’을 ‘이조’로 표기하는 등 용어 사용에서 ‘한계’도 없지 않다. 우리 역사에 ‘이조’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병탄하면서 ‘조선’을 ‘이조’ 또는 ‘이씨조선’ 라고 쓴 것을 그대로 표기한 것이다.
일제는 조선(대한)이 한 왕조가 못 되고, ‘이씨’의 씨족사회라고 비하하는 뜻으로 이런 용어를 써 온 것이다. 교과서는 물론 역사학자들의 연구서적도 마찬가지였다. 함석헌 역시 이 책을 펴낼 때 그대로 사용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면서 E. H. 카의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내용이나, 아놀드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의 사관”은 알아도, 신채호의 “역사란 아(我)와 비야(非我)의 투쟁과정”이란 말은 잘 모른다. 또한 함석헌의 씨알사관에도 백지상태다.
지나간 것(과거)이라 하지만 역사는 결코 지나간 것이 아니다. 정말 지나간 것이라면 지금(현금)의 우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을 것이요, 따라서 기록할 필요도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또 기록하고 알려해도 알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조금이라도 기록할 필요, 알 필요를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지나간 것이 아니다. 현재 안에 아직 살아있다. 완전히 끝맺어진 것이 아니라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주석 4)
다음은 연구가와 언론에서 많이 인용하는 부문이다.
쓰다가 말고 붓을 놓고 눈물을 닦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눈물을 닦으면서도 그래도 또 쓰고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써 놓고 나면 찢어버리고 싶어 못 견디는 이 역사, 찢었다가 그래도 또 모아대고 쓰지 않으면 아니 되는 이 역사, 이것이 역사냐? 나라냐? 그렇다. 네 나라며 내 나라요, 네 역사며 내 역사니라. (주석 5)
이 책의 마지막 부문은 이렇게 장식된다.
그러면 젊은 혼들아, 일어나라. 이 고난의 짐을 지자. 위대한 사명을 믿으면서 거룩한 사랑에 불타면서 죄악에 더럽힌 이 지구를 메고 순교자의 걸음으로 고난의 연옥을 걷자. 그 불길에 이 살이 다 타고 이 뼈가 녹아서 다하는 날 생명은 새로운 성장을 할 것이다. 진리는 새로운 광명을 더할 것이다. 역사는 새로운 단계에 오를 것이다. (주석 6)
함석헌의 사관은 강단사학자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어떻게 다를까.
과거의 다수한 사가들이 공정한 역사를 쓰기 위하여 해석 없는 사실기록을 하다가 수십 백권의 납골당명록(納骨堂名錄) 만을 쓰고 만 것이다. 그것은 역사가 아니다. 적어도 민중의 역사는 아니다. (주석 7)
사실 기록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역사에 대한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가 ‘납골당명록’ 만이어서는 의미가 없다.
“함석헌은 역사를 이렇게 정의한다. 과거란 현재에 살아 있는 과거이고, 역사적 사실이란 현재와의 관련에서 선택된 유의의(有意義)한 것이고, 의미 없는 사실은 사실이 아니고 사실의 중요성은 그 의미에 있다. 따라서 역사서술은, 그 의미 있는 사실들을 인과관계적 상호연관의 연쇄 속에 통일적인 체계로 엮어야 한다. 그 체계는 생명체와 같은 것으로 부분들이 전체에서 유리될 수 없다.” (주석 8)
주석
1> <네째 판에 부치는 말>, <전집> 1, 18쪽.
2> <뜻으로 본 한국역사>, 223쪽, 일우사, 1962.
3> 앞의 책, 227쪽.
4> 앞의 책, 229쪽.
5> 앞의 책, 302쪽.
6> 앞의 책, 452쪽.
7>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 13쪽,
1954년판.
8> 노명식, <한국의 역사가 함석헌>, <한국사시민강좌> 제20집, 121쪽, 일조각, 2000.
'▷ 참스승 함석헌 > 함석헌 평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45회] 논설집 <인간혁명> 발간 (0) | 2014.08.08 |
---|---|
[44회] 시집 <수평선 너머>의 시학적 의미 (0) | 2014.08.07 |
[42회] 쿠데타 주체 ‘정신분열증 노인’ 망발 (0) | 2014.08.05 |
[41회] 5·16쿠데타에 첫 포문 열어 (0) | 2014.08.02 |
[40회] 44일간의 단식투쟁 (0) | 2014.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