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8 08:00 김삼웅
1961년 함석헌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개정판을 낸데 이어 12월에는 그동안에 쓴 시를 모아 시집 <수평선 너머>를 간행했다. 생각사에서 나온 이 시집은 6ㆍ25전쟁 전 개성에서 <영원의 젊은이>, 월남 뒤 공주에서 <장작불> 그리고 대전에서 <기러기>라는 프린트로 나왔던 것을 1953년 3월에 인쇄판으로 묶었고, 이번에 이 모든 것에서 고르고 장정을 바꾸어 새로 활자판으로 펴냈다.
함석헌은 이 시집에도 실린 초판 서문에서 자신은 시인이 아니라고 하면서, 시를 쓰고 시집을 낸 이유를 말한다.
의사를 배우려다 그만두고, 미술을 뜻하다가 말고, 교육을 하려다가 교육자가 못되고, 농사를 하려다가 농부가 못 되고, 역사를 연구했으면 하다가 역사책을 내던지고, 성경을 연구하자 하면서 성경을 들고만 있으면서, 집에선 아비노릇을 못하고, 나가선 국민 노릇을 못하고, 학자도 못되고, 기술자도 못되고, 사상가도 못되고, 어부라면서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사람이 시를 써서 시가 될 리가 없다. 이것은 시 아닌 시다.
시라 할 터면 하고 말터면 말고, 그것은 내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내 맘에다 칼질을 했을 뿐이다. 그것을 님 앞에다 바칠 뿐이다. (주석 9)
함석헌은 <두 번째 내놓은 말>에서 개정판을 낸 이유를 설명한다.
남의 병신 자식을, 감추어 기르는, 사랑과 미움, 귀여움과 뉘우침, 불쌍히 여김과 죽기를 기다리는 감정이 한데 섞인, 원수의 아들을 한번 봤으면 그만이지 또 다시 보자는 건 무엇인가? 그것은 너무도 잔혹한 일 아닌가? (주석 10)
이 시집에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를 비롯하여 120편이 실렸다. <선전>과 같은 격렬한 선언문 투의 시가 있는가 하면, <인생은 갈대>와 같은 서정시도 있다. 몇 절씩만 소개한다.
선전
이 세상의 주권자야, 나는 오늘 너를 향해 선전하노라.
네 힘이 아무리 강하고
네 법이 아무리 엄하고
네 조직이 아무리 치밀하여도
오늘부터 나는 네 시민이 아니도다,
나는 너를 향하여 싸움을 펴노라. -자유의 이름에서
친구들아, 나는 오늘 너희를 향하여 싸움을 펴노라.
선생들아, 나는 오늘 너희를 향하여 싸움을 펴노라.
나에게 속빈 말의 충고를 하였고
나에게 너희도 모르는 거짓 길을 가르쳤고
나에게 영원한 집을 찾지 말라 달래였으니
나는 오늘 너희를 향하여 맹렬한 싸움을 시작하노라. (주석 11)
인생은 갈대
인생은 연한 갈대 여린 순 날카로운 맘
쓴 바다 노한 물결 단숨에 무찌르자
끝끝이 뜻 머금고서 다퉈가며 서는 듯
인생은 푸른 갈대 비바람 치는 날에
자라고 자라란 뜻 하늘에 달뜻 컨만
떠는 잎 한데 얽히어 부르짖어 우는 듯. (주석 12)
함석헌은 무교회주의를 벗어나면서, 인제대학교 전 총장 이윤구의 안내로 퀘이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앞에서도 잠깐 소개한 적이 있지만 1953년에 쓴 시 <대선언>에서 이미 변화의 낌새를 찾을 수 있다. 시의 일부를 소개한다.
나는 옛날의 모험가 한 가지 노래하련다
나가는 역사의 수레채를 메고 달려나 보련다.
내 아직 얻었담도 아니요
허린 거울 속 보듯 내 눈에 희미는 하나
앞엣것 잡으려 뒤엣것 잊고 나는 닫노라
이제부터 나를 붙잡지 말라
내 즐겨 낡은 종교의 이단자가 되리라
가장 튼튼한 것을 버리면서 약하면서
가장 가까운 자를 실망케 하면서 어리석으면서
나는 산에 오르리라
거기는 꽃이 피는 곳
히말라야 높은 봉 그윽한 골 피는 이상한 꽃 같이
그 향 냄새 맡는 코를 미치고 기절케 하는 꽃
그 꽃을 맡기 전 나는 벌써 취했노라. (주석 13)
중국 17세기 초의 문인, 문학이론가로 유명한 장유(張維)는 저서 <시사서(詩史序)>에서 시(詩)와 사(史)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상의 변화를 기록하고 득실을 밝히는 것이 사(史)이고, 마음을 흡족하게 하면서 음악과 어울리는 것이 시(詩)라고 하고, 그 둘은 서로 섞일 수도 없고 겸할 수도 없다고 했다. 사람은 재능이 한정되어 있어, 사가(史家)가 시인일 수 없고, 시인이 사가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뛰어난 시인은 그 두 영역의 구분을 넘어서서, 세상일에 대한 깊은 근심을 절실하게 나타내 사실의 핵심에 이른다고 했다.” (주석 14)
3세기 전에 장유가 마치 함석헌을 예비하여 한 말 같이 들린다. ‘사가와 시인’의 좀처럼 어울리기 어려운 작업을 그는 해냈다. 뿐만 아니라 맹렬한 언론인과 격렬한 민권운동가로 이어진다.
주석
9> <수평선 너머>, 1953년 머릿말, 생각사, 1961.
10> 앞의 책, 9쪽.
11> 앞의 책, 191쪽.
12> 앞의 책, 36쪽.
13> <수평선 너머>, 170쪽.
14> 조동일, <한국시가의 역사의식>, 5쪽, 문예출판사, 1994.
함석헌은 이 시집에도 실린 초판 서문에서 자신은 시인이 아니라고 하면서, 시를 쓰고 시집을 낸 이유를 말한다.
의사를 배우려다 그만두고, 미술을 뜻하다가 말고, 교육을 하려다가 교육자가 못되고, 농사를 하려다가 농부가 못 되고, 역사를 연구했으면 하다가 역사책을 내던지고, 성경을 연구하자 하면서 성경을 들고만 있으면서, 집에선 아비노릇을 못하고, 나가선 국민 노릇을 못하고, 학자도 못되고, 기술자도 못되고, 사상가도 못되고, 어부라면서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사람이 시를 써서 시가 될 리가 없다. 이것은 시 아닌 시다.
시라 할 터면 하고 말터면 말고, 그것은 내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내 맘에다 칼질을 했을 뿐이다. 그것을 님 앞에다 바칠 뿐이다. (주석 9)
함석헌은 <두 번째 내놓은 말>에서 개정판을 낸 이유를 설명한다.
남의 병신 자식을, 감추어 기르는, 사랑과 미움, 귀여움과 뉘우침, 불쌍히 여김과 죽기를 기다리는 감정이 한데 섞인, 원수의 아들을 한번 봤으면 그만이지 또 다시 보자는 건 무엇인가? 그것은 너무도 잔혹한 일 아닌가? (주석 10)
이 시집에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를 비롯하여 120편이 실렸다. <선전>과 같은 격렬한 선언문 투의 시가 있는가 하면, <인생은 갈대>와 같은 서정시도 있다. 몇 절씩만 소개한다.
선전
이 세상의 주권자야, 나는 오늘 너를 향해 선전하노라.
네 힘이 아무리 강하고
네 법이 아무리 엄하고
네 조직이 아무리 치밀하여도
오늘부터 나는 네 시민이 아니도다,
나는 너를 향하여 싸움을 펴노라. -자유의 이름에서
친구들아, 나는 오늘 너희를 향하여 싸움을 펴노라.
선생들아, 나는 오늘 너희를 향하여 싸움을 펴노라.
나에게 속빈 말의 충고를 하였고
나에게 너희도 모르는 거짓 길을 가르쳤고
나에게 영원한 집을 찾지 말라 달래였으니
나는 오늘 너희를 향하여 맹렬한 싸움을 시작하노라. (주석 11)
인생은 갈대
인생은 연한 갈대 여린 순 날카로운 맘
쓴 바다 노한 물결 단숨에 무찌르자
끝끝이 뜻 머금고서 다퉈가며 서는 듯
인생은 푸른 갈대 비바람 치는 날에
자라고 자라란 뜻 하늘에 달뜻 컨만
떠는 잎 한데 얽히어 부르짖어 우는 듯. (주석 12)
함석헌은 무교회주의를 벗어나면서, 인제대학교 전 총장 이윤구의 안내로 퀘이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앞에서도 잠깐 소개한 적이 있지만 1953년에 쓴 시 <대선언>에서 이미 변화의 낌새를 찾을 수 있다. 시의 일부를 소개한다.
나는 옛날의 모험가 한 가지 노래하련다
나가는 역사의 수레채를 메고 달려나 보련다.
내 아직 얻었담도 아니요
허린 거울 속 보듯 내 눈에 희미는 하나
앞엣것 잡으려 뒤엣것 잊고 나는 닫노라
이제부터 나를 붙잡지 말라
내 즐겨 낡은 종교의 이단자가 되리라
가장 튼튼한 것을 버리면서 약하면서
가장 가까운 자를 실망케 하면서 어리석으면서
나는 산에 오르리라
거기는 꽃이 피는 곳
히말라야 높은 봉 그윽한 골 피는 이상한 꽃 같이
그 향 냄새 맡는 코를 미치고 기절케 하는 꽃
그 꽃을 맡기 전 나는 벌써 취했노라. (주석 13)
중국 17세기 초의 문인, 문학이론가로 유명한 장유(張維)는 저서 <시사서(詩史序)>에서 시(詩)와 사(史)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상의 변화를 기록하고 득실을 밝히는 것이 사(史)이고, 마음을 흡족하게 하면서 음악과 어울리는 것이 시(詩)라고 하고, 그 둘은 서로 섞일 수도 없고 겸할 수도 없다고 했다. 사람은 재능이 한정되어 있어, 사가(史家)가 시인일 수 없고, 시인이 사가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뛰어난 시인은 그 두 영역의 구분을 넘어서서, 세상일에 대한 깊은 근심을 절실하게 나타내 사실의 핵심에 이른다고 했다.” (주석 14)
3세기 전에 장유가 마치 함석헌을 예비하여 한 말 같이 들린다. ‘사가와 시인’의 좀처럼 어울리기 어려운 작업을 그는 해냈다. 뿐만 아니라 맹렬한 언론인과 격렬한 민권운동가로 이어진다.
주석
9> <수평선 너머>, 1953년 머릿말, 생각사, 1961.
10> 앞의 책, 9쪽.
11> 앞의 책, 191쪽.
12> 앞의 책, 36쪽.
13> <수평선 너머>, 170쪽.
14> 조동일, <한국시가의 역사의식>, 5쪽, 문예출판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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