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인 함석헌 평전/[9장] 민권투쟁의 중심에 서다

2013/01/09 08:00 김삼웅

 

 

함석헌은 1961년 8월 논설집 <인간혁명>을 일우사에서 펴냈다.
자유당 말기부터 최근까지 쓴 논설 10편이 실렸다. 이에 앞서 논설집 <새 시대의 전망>과 시집 <수평선 너머>, 번역서 칼 지브란의 <예언자> 그리고 <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속속 출간되었다. <인간혁명>은 두번째 논설집인 셈이다. 이 책은 군사쿠데타의 살벌한 상황에서도 1년 만에 4쇄를 찍을만큼 널리 읽혔다.

여기에 실린 논설은 <국민감정과 혁명완수>, <간디의 길>, <새나라 꿈틀거림>, <3ㆍ1정신>, <들사람 얼>, <크리스찬의 기백>, <하나님에 대한 태도>, <젊은 여성에게 주고 싶은 말>, <아름다움에 대하여>, <인간혁명>이다. 다음은 머릿말의 끝 부문이다.

친구여, 내가 주제넘게 왜 말을 하는지 아나? 깨쳐 말하면 싱거운 것이지만 정신이 분열됐다는 말까지 들은 담엔 부득이 깨쳐 말 아니할 수 없다. 내가 내 죄를 속해 보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죄가 많은 사람이라, 전날의 점잖은 친구에게 버림을 당했다. 그러니 죽어 마땅하지만, 하나님이 걷어가지 않는 목숨 내가 버리고 싶지도 않고, 사는 밖에는 지금 죽어 마땅하지만, 하나님이 걷어가지 않는 목숨 내가 버리고 싶지도 않고, 사는밖에는 조금이라도 죄를 속해 봐야지.

죽어야 할 목숨이니 될수록 낮은 일을 해야지. 그러나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러워” 평생에 배운 것이 글인지라 부득이 붓대를 끄쩍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 글의 넝마장수 사상의 넝마장수가 된 것이다.

혁명, 그것은 넝마 모으기 아닐까?
(주석 15)

이 책에는 내가(필자) 함석헌의 많은 글 중에서 으뜸으로 평가하는, <들사람 얼>을 비롯하여 표제 논설 <인간혁명>과 그가 대단한 페미니스트임을 보여 주는 <젊은 여성에게 주고 싶은 말>등은 반세기가 지냈지만 지금의 독자에게 읽혀도 생동감이 넘치는 내용이다. 좋은 문장은 시공을 초월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젊은 여성에게 주고 싶은 말

젊은 여성이라면?
생김생김을 관계 말고, 태어난 집안의 높고 낮음을 생각말고, 돈이 있거나 없거나, 지식이 많거나 적거나, 재주가 깊거나 옅거나, 그 차이를 도무지 보지 말고, 그저 젊은 여성이기만 한다면?
스물에서 마흔까지, 살갗에 꽃이 피어나 있으며, 숨에 향기가 들어 있고, 목소리에 사람의 혼을 어루만지고 흔드는 보드라움과 맑음이 잠겨 있고, 눈동자에 영원을 향해 애타는 속삭임이 들어 있는 때라면?
그것은 거룩한 생명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신비로움이 볼 수 있게 나타난 것이다.
젊은 여성의 할 일은 그 받아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스스로 깨달아 잘 쓰느냐 하는 데 있다.
잘 쓰면 심청이요, 잔 다크요, 마리아지. 잘못 쓰면 양귀비요, 크레오파트라요, 살로메지.
(주석 16)

함석헌은 여성을 ‘풀무’요 ‘용광로’라 했다.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가 풀무다. 모든 쇠붙이를 녹여 쇠를 만드는 용광로를 달구기 위해선 풀무가 있어야 한다. 글은 이어진다.

여자는 풀무요 용광로다.
산을 빼는 항우가 우미인 앞에서 녹아 버려 영웅답지 못하게 질질 울었다 해서가 아니요, 사자를 찢는 삼손이 드보라 앞에서 혼이 빠져 믿음의 사람답지 못하게 딩글었다 해서가 아니다.
모든 쇳돌, 모든 녹슨 파쇠가 반드시 한 번 풀무 속에 들어가 가지고야 찌끼를 벗고 새 쇠가 되어 나오듯이, 모든 역사 모든 문화의 낡은 찌끼와 썩음을 벗겨 치우고 새 시대를 짓는 새 사람은 반드시 여자의 탯집 속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역사의 갈려 새로워짐은 반드시 세 세대로야 되는 것인데, 새 세대의 양심의 클거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잡힌다.
모든 혁명은 여자의 탯집 속에서 시작된다.
(주석 17)

함석헌의 여성론은 전통적인 여성관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으로서 시대적인 사명과 함께 ‘여성스러움’을 강조한다. 한 대목을 더 들어보자.

예로부터 착함과 슬기로움과 날쌤을 천하에 뚫린 세 덕이라 하지만, 그 덕을 다 갖추고라도 거기 만일 아름다움, 사랑스러움, 신비롬이 없다 해 봐! 그럼 인생이 어찌 됐을까?
또 요샛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목소리를 다투어 서로 부르짖지만, 그 두 가지 권리를 다 보장 받았다 하더라도 거기 만일 조금이라도 아름다움, 사랑스러움, 신비롬이 들어있지 않다 해 봐! 그럼 이 세상이 어찌 됐을까?
그런데 길을 가노라면 하늘에서 받은 그 귀한 자격을 제 손으로 다 뜯어 망가치우고, 여성 아닌 여성, 여성도 남성도 아닌, 사람도 짐승도 아닌, 흉측하고도 가엾은 형상들이 어찌도 그리 많은가?
풀무가 깨졌으니 역사는 장차 어찌되는 것일까?
(주석 18)

함석헌의 이 책에는 또 그가 이화대학에서 한 강연 <아름다움에 대하여>가 실렸다. 내용 중에는 “너희의 너희 이상으로 잘 뵈잔 모든 허영심의 화장을 긁어 치워라”고 하면서 다음의 내용을 강조한다.

억만 년이나 살 듯 문화주택을 지어 단꿈에 취해 보자던 이 땅을 박차고 너희가 정말 영원 무한한 정신의 우주에 머리를 하늘 가에 대고 높이 선다면, 그런다면 그때 해 달이 너희 귀고리가 되고, 수없는 별들이 너희 머리에 보석이 되고, 흐르는 구름이 너희 어깨에 쇼율을 던지는데, 옷은 무슨 옷이 걱정이 되며 단장은 무슨 단장이 문제가 된단 말이냐? (주석 19)

이 구절에서 천의무봉한 사유의 세계와 함께 그의 여성관을 읽을 수 있다.

내 사랑아, 마음을 아름답게 가져야지, 어떤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이냐? 무한을 안은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이지. 어떤 마음이 무한한 마음이냐? 참된 마음이지. 허영심이 가장 작고 착한 마음이다. 네 마음 속에서 허영심을 버려라. (주석 20)



주석
15> 함석헌, <인간혁명>, 7쪽, 일우사, 1961.
16> 앞의 책, 248~249쪽.
17> 앞의 책, 249~250쪽.
18> 앞의 책, 251쪽.
19> 앞의 책, 276쪽.
20> 앞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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