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tyakov Gallery Room 43. 인싱주의 화가 콘스탄틴 코로빈 (Konstatin Korovin) 작품 전시실
러시아 최초의 인싱주의 화가 콘스탄틴 코로빈 (Konstatin Alekseyevich Korovin 1861~1939) 콘스탄틴 코로빈 (Konstatin Alekseyevich Korovin 1861~1939)은 러시아 최초의 인싱주의 화가다. 코로빈은 모스크바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가 자수성가해서 사업을 일으켰는데 대학을 졸업한 아버지는 사업보다 음악과 미술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사업에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 때문에 코로빈의 집안은 몰락하고 말았다. ‘부자 3대를 못 간다’라는 말이 있지만 2대도 가지 못했다.
Tretyakov Gallery Room 43. 인싱주의 화가 콘스탄틴 코로빈 (Konstatin Korovin) 작품 전시실
코로빈 몸 속에는 화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 같다. 형 세르게이도 사실주의 화가였고 코로빈의 친척 중에는 유명한 화가이자 모스크바 예술학교의 교수도 있었다. 14살에 모스크바 예술학교 건축과에 입학했는데, 이 때 집안이 몰락한다. 15살 때 '나는 드로잉 수업을 포기하고 빵을 벌어야 했다’ 라는 그의 회상이 있다.
2년간 학교 생활을 하다가 방학 숙제로 풍경화를 제출하고는 회화과로 전과를 한다. 이때 러시아의 풍경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느끼는 훈련을 받는다. 마지막 공부를 위해 상페테스부르그 왕립학교로 갔지만 구태의연한 교육 방법에 실망하고 3개월 만에 모스크바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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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로 돌아 온 코로빈은 바실리 플레노프의 지도를 받는데 코로빈의 일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었던가 싶다. 플레노프는 그림뿐만 아니라 당시 서구 예술, 특히 프랑스에 대해 열정적이었고 지식도 꽤 갖추고 있었다. 모스크바 예술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코로빈의 회상을 보면 좋은 스승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모스크바 미술학교에는 바실리 페로프(Vasily Perrov), 알렉세이 사브라소프(Alexei Savrasov), 발렌텐 세로프(Valentin Serov), 이삭 레비탄(Isaac Levitan)과 같은 당대 최고의 러시아 화가들이 재학 중이었다.
‘... 공정하고 친절했던 선생님들은 내 영혼에 깊은 흔적을 남겨 놓으셨다.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에 존경심과 함께 비애를 가지고 선생님들을 기억하고 있다. 내 앞에 살아계시는 것 같다. 순수하고 정직했던 선생님들...‘
코로빈은 스승인 플레노프는가 소개한 단체에 가입한다. 이 단체는 화가와 가구 디자이너, 무대 디자이너, 건축가와 같은 일군의 젊은이들이 참여했는데 모인 사람들 모두가 러시아의 전통과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코로빈은 이들과 함께 러시아의 넓고 깊은 곳으로 여행을 다니곤 했다.
Tretyakov Gallery Room 43. 인싱주의 화가 콘스탄틴 코로빈 (Konstatin Korovin) 작품 전시실
러시아 최고의 미술학교에 다니고 있던 1885년 그는 돌연 미술의 본고장 프랑스와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의 프랑스 파리유학은 코로빈의 지금까지의 생각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파리에 긴 후에 그는 그 감동을 "파리는 내게 충격적이었다. 특히 인상파들의 기법은 내가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 말하고 있다. 1880년대 후반 서유럽 특히 파리는 인상주의가 한참 유행하던 때이고 그의 파리 유학은 러시아 청년의 마음을 뒤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
모스크바에서 그가 고심하며 제작했던 화풍이 파리의 화가들에게는 이미 평범한 것이었다. 그 후 파리는 코로빈이 가장 좋아하는 도시가 되었다. 나중에 파리에서 살게 될 때 ’빛의 도시’ 파리의 저녁과 밤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들을 남기게 된다.
3년 후 코로빈은 이태리와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다. 그 뒤 새로 건설된 철도를 이용하여 러시아 북부지방 여행 길에 나섰다. 이 때 여행을 통하여 그는 그 자신의 풍경화를 제작하기 시작하는데 꼼꼼하게 직조된 회색 천에 그림을 그렸다. 이런 방법은 1890년 그의 작품의 한 전형이 된다.
Tretyakov Gallery Room 43. 인싱주의 화가 콘스탄틴 코로빈 (Konstatin Korovin) 작품 전시실
1896년 전(全)러시아 전시회가 개최된다. 코로빈은 러시아 북부철도 전시관 장식을 맡았는데 북부 여행을 해서 얻은 소품들과 장식용 작품들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기세로 1900년 파리 세계박람회 러시아 전시관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고 특히 러시아제국의 중앙아시아 부분을 직접 디자인 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드뇌르 훈장을 받게 된다. 그의 명성은 이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재능이 그를 새로운 세계로 끌어 내는 순간이었다.
Tretyakov Gallery Room 43. 인싱주의 화가 콘스탄틴 코로빈 (Konstatin Korovin) 작품 전시실
1900년 이후 코로빈은 연극 무대 장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전통적인 무대 장식에서 벗어나 연극의 감정 흐름을 전달하는, 분위기 있는 그의 무대 장식 솜씨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다고 한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 4년 간 자신이 졸업한 모스크바 예술학교의 교수로 재직한다. 1차 대전 중에는 전쟁에 참여하여 조언을 하기도 하고 종종 최전선에 나가기도 했다.
10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 난 후 러시아의 체제가 바뀌었지만 코로빈은 극장의 무대 장식 일은 계속된다. 그러는 과정 중에서 코로빈의 그림은 스타일은 더욱 커졌고 색상은 풍부해졌다. 아울러 화법도 자유스러워 졌다. 62세가 되던 1923년, 코로빈은 자신의 심장병 치료와 장애인인 아들의 치료를 위해 파리로 이사를 간다. 코로빈은 몰랐겠지만 그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 오지 못했다. 코로빈의 아들 알렉세이는 어려서 사고로 두 발을 잃었던 장애인이었다. 알렉세이도 화가였는데 나중에 자살로 53년의 생을 마감한다.
파리에서의 생활비를 위해 코로빈은 대규모 전시회를 준비한다. 그런데 그 그림을 모두 도둑맞고 말았다. 거의 무일푼이 되어 버린 코로빈은 관광엽서 같은 그림으로 우선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그의 명성이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그 후 그는 유럽과 미국, 호주의 주요 극장 무대 장식 일을 맡으며 말년을 맞이한다. 코로빈은 파리에서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코로빈을 러시아의 첫 번째 인상파 화가로 보는 사람도 있다.
A Nothern Idyll, 북녘의 목가 생활, 1886.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113 x 153 cm. Tretyakov Gallery Room 43
북쪽 지방의 전원 풍경. 민속 의상을 입은 여인들이 서 있고 아이는 엎드려서 피리를 불고 있다. 분위기는 독특한데 한 눈에 봐도 연출된 느낌이다. 그래도 탁 트인 하늘과 푸른 풀밭 사이에 서 있는 여인들의 붉은 옷이 너무 선명해서 신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러시아 민속 예술에 관심을 갖고 노력한 코로빈의 대표작이다. 파리에서 인상주의를 접한 코로빈은 러시아에 인상주의를 소개하지만, 민족적인 주제에도 심취한다. 특히 시베리아를 여행한 후 백야를 보며 느꼈던 신비로운 감정과 러시아 국토의 아름다움에 감동받아 이 작품을 그린다.
그림 속 배경은 여름 시베리아로, 울창하게 펼쳐진 초원의 잔디에서 어린 양치기가 풀피리를 불고 있고, 러시아 전통 의상을 입은 세 명의 소녀들이 부르는 전통 민요가 들리는 듯하다. 곧 추위가 닥치면 온 세상이 꽁공 어는 시베리아 벌판이지만, 그림 속그들이 만들어 내는 목가적 분위기는 아름답기 그지 없다.
In the Boat. (Portrait of the Artist Maria Yakunchikova and Self-Portrait). 1888. 보트에서 - 예술가 마리아 야쿠친고바와 자화상.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53 x 43 cm. Tretyakov Gallery Room 43
보트에서 코로빈과 같이 있는 여인은 화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마리아 야쿠친코바이다. 그녀도 모스크바 예술 학교 에서 공부를 했고 그런 인연으로 코로빈과도 교류가 있었다. 남자는 한 쪽 책장을 뒤집어 돌려서 맞접은 형태로 한 손에 책을 들고 있고, 여자는 이를 지켜 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책을 읽어 주고 있는 듯하다. 화면 구성의 초점은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여인이다. 밝은 햇살이 노란색 계열의 뱃전에 환히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어두운 물가 배경이나 남자의 그늘과 대비되어 이 여인의 흰색 블라우스로 시선이 모아진다.
이 여인은 화가의 친구인 마리아 야쿠친코바 (Maria V. Jakunchikova)이고, 책읽는 남자는 콘스탄틴 코로빈으로 화가 자신이다. 제목은 “보트에서”이지만 부제가 “예술가 야쿠친코바와 자화상”으로 되어 있다. 미술학교 친구 사이였지만, 왠지 당시 젊은 화가의 마음을 빼앗지 않았을까 싶다. 이 그림은 오카 강의 지류인 클랴지마(Klyazma) 강가의 주콥카(Zhukovka)란 마을에서 1888년 여름에 그려졌다. 인물이 자연에 서정적으로 스며드는 형식을 다루고 있는 러시아 초기 인상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야쿠친코바는 의사와 결혼을 했으니까 두 사람 사이를 의혹의 눈으로 볼 것은 없다. 그러나 책을 보는 코로빈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과 몸짓은 따뜻하다. 생각해 보면 뜻이 맞는 동료나 친구 사이에 남자, 여자가 무슨 장애가 될까?
Stream in Pechenga. 1894.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3
발렌틴 세로프와 북쪽지방 여행 후 그린 풍경화 중의 하나. 회색톤의 습작 형태로 그린게 1890년대 코로빈의 특징이다.
Paris. Boulevard des Capucines, 파리 카퓌신 거리의 정경. 1911.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65 x 80.7cm. Tretyakov Gallery Room 43
코로빈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다. 파리의 카퓌신 거리를 사랑하고 몽마르트를 좋아한 코로빈은 여러 파리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다. 쇼윈도, 레스토랑, 극장 등이 빚어내는 불빛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어지럽게 움직이는 파리지앵들의 자취를 화려하고 다채롭게 표현한 코로빈의 색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코로빈의 <북녘의 목가 생활>과 비교해서 보면 좋은 작품이다.
Boulevard des Capucines, Paris. 파리 카퓌신 거리의 정경. 1906.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73 x 60 cm. Tretyakov Gallery Room 43
After the rain Paris. 1897. by Konstatin Korovin.
Tempera on cardboard. Tretyakov Gallery Room 43
Café in Yalta. 1905.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3
Paris. Cafe de la Paix. 1906.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3
Parisian Cafe. Date unknown.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3
Boulevard des Italiens, Paris. 1908.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3
On the Beach in the Crimea. 1909.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3
Pier in Crimea. 1913.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3
Portrait of Ivan Morozov. 1902.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3
Portrait of Sofia Golitsyna. 1886.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Winter. 1894. Oil on canvas mounted on cardboard. 37 X 52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Summertime. 1895.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Fish, Wine and Fruit. 1916.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Portrait of a chorus girl. 합창단 소녀의 초상. 1883.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53 x 41 cm. Tretyakov Gallery Room 43
코로빈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린 작품이다. 나도 성가대 단원이었던 적이 있지만 저렇게 눈을 뜨는 경우는
지휘자를 바라볼 때와 높은 음을 낼 때이다. 물론 딴 짓을 할 때도 있지만... 부드러운 선과 초록 배경 그리고 노란색 모자는
자유분방한 붓 터치와 어울려 편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Bridge. 1881~1889.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3
Florence. 1888.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3
By the Balcony : Leonora and Ampara. 1881.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3 아브람체보의 주인인 마몬토프와 이태리 스페인 여행 때 그린 작품
Paris cafe. 1890. by Konstatin Korovin. Tretyakov Gallery Room 43
Beach at Dieppe. 1890.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3
In a Summer Cottage. (At the Dacha). 1895.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3
Paper lanter. 1898.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The Barn. 1900.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3
Still Life with Z. Pertseva's Portrait. 1916.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3
Roses in Blue Jugs. 1917. by Konstatin Kor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3
Girl with Peaches (also known as Portrait of Vera Mamontova). 1887. 소녀와 복숭아 Tretyakov Gallery Room 41. oil on canvas. 91 X 85 cm. Tretyakov Gallery Room 41
발렌틴 세로프발렌틴 세로프(Valentin Aleksandrovich Serov 1856~1911)는 1887년에 발표한 첫 작품 Girl with Peaches (복숭아를 든 소녀)로 크게 주목받았다. 이 작품은 22살의 세로프를 스타로 만든 출세작이자 미래의 대가를 예감하게 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당대 최고의 예술 후원가인 사바 마몬토프의 딸 베라 마몬토바의 초상을 그린 것이다. 세로프는 파리에서 돌아온 10세 때부터 마몬토프의 영지인 아브람체보에서 살았다. 많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그곳에서
러시아 최고의 예술가들의 일상을 엿보고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한 것이다.
사바 마몬토프의 여름 별장인 아브람체보에는 지금도 소녀가 앉아 있는 식탁과 의자, 벽의 장식이 하나의 흐트러짐없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숲으로 창이 난 이 하얀 방에는 금방이라도 소녀가 뛰어들어와 자리에 앉아 호흡을 고를 것 같다. 시간이 영원히 정지되고 하나의 장면의 완성을 위한 동작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 같다. 소녀는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을 것이고 복숭아의 농익은 냄새는 그녀의 달착지근한 땀 냄새와 어우러져서 영원한 청춘의 향기가 될 것이다.
이 작품은 소녀의 생기발랄한 청춘과 생명력 넘치는 환희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 그리고 빛과 어우러져 경쾌하게 표현되어 있다. 인상주의 화풍이 돋보이는 이 작품을 두고 당시 비평가들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극찬했다.
세로프는 모든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진정한 화가였다. 그는 인물의 개성을 깊이 있게 파악하고 이 개성을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영혼을 꿰뚫어보는 세로프는 얼굴 뒤에 가려진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인물의 사회적인 지위에 가려진 내적인 유약함, 소박함 속의 위대함 등 그의 눈은 인물의 진정한 모습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저렇게 자신의 영혼이 까발겨진 초상화를 보고도 주문자들이 만족하였다는 이야기는 차라리 의아스러울 정도이다.
예컨대 어린 귀공자가 혈통이 확실한 애완견과 함께 등장한다. 주인과 개의 캐릭터가 완전히 일치해 보이는 이 작품은 그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초상화의 제작을 주문하는 귀족들에게 보내는 야유이다.
<소녀와 복숭아>는 세로프가 스물 두 살이던 1887년에 완성된 것으로
그를 세상에 알린 첫 번째 작품이며 1888년 모스크바 예술가 상을 안겨 준 그림이다. 그림 속 소녀는 아브란체보의 영주이며 당대 최고의 예술 후원가
사바 마몬토프 백작의 딸 베라 마몬토프다. 밝은 햇살 속에 강하게 빛나는 소녀의 젊은 생명력이
복숭아의 풋풋함과 어우러져 빛을 발하고 있다.
Portrait of the Writer Maxim Gorky. 막심 고리키의 초상. 1905.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124 x 80 cm. Tretyakov Gallery Room 41
이미 몇 편의 장편으로 새로운 문학을 이끌어가던 문단의 기린아 고리키의 모습이다. 1907년의 대표작 “어머니”는 그의 머리 속에서 윤곽이 잡혀가고 있었을 것이다. 추측컨대 세로프가 고리키라는 인물에 대해서 심도있는 이해를 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그러나 세로프는 고리키가 지금까지 숱하게 그린 귀족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유형의 인물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거칠면서도 역동적인 실루엣, 드라마틱한 색채의 대조, 맹세를 하는 듯한 확신에 찬 커다란 손. 그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금욕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사람으로 표현이 되고 있다.
세로프는 초상화의 대가다. 세로프 초상화의 진수라 할 수 있는 <막심 고리키 초상>에는 혁명가로서 힘차고 결의에 가득 찬 고리키의 이미지가 잘 나타나 있다. 아카데믹한 터치에 벗어나 가볍고 힘찬 세로프 만의 붓놀림이 보인다. 또 정형화된 초상화의 포즈가 아닌 러시아의 혁명적 노동자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고리키의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인물의 윤곽을 잘 짜여진 틀 안에서 가두지 않고자유롭고 탄력적인 선을 사용해 내면적인 에너지 가득 찬 고리키의 힘을 느끼게 한다.
Bullocks (study). 1885.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47.5 x 59.5 cm. Tretyakov Gallery Room 41
Autumn Evening. 1886.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71 X 54 cm. Tretyakov Gallery Room 41
Olga Trubnikova by the Window. 1886.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on cardboard. 74.5 X 56.3 cm. Tretyakov Gallery Room 41
Girl in the Sunlight. 1888.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89.5 x 71 cm. Tretyakov Gallery Room 41
Overgrown pond. Domotkanovo. 1888.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1
Tatar village in Crimea. 1893.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53 x 53 cm. Tretyakov Gallery Room 41
Confirmation of Emperor Nicholas II. 니콜라이 2세 대관식. 1897. by Valentin Serov. Graphite and watercolour on paper. Tretyakov Gallery Room 41
Rinsing Linen. 1901. by Valentin Serov.
oil on cardboard. 47.5 X 66 cm. Tretyakov Gallery Room 41
Portrait of Nadezhda Derviz and Her Child. 1888-1889. by Valentin Serov. oil on iron plate. 142 x 71 cm. Tretyakov Gallery Room 41
Portrait of Actress Maria Ermolova. 1905.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224 x 120 cm. Tretyakov Gallery Room 42
마리아 예르몰로바(Maria Ermolova)는 당시에 모두의 존경을 받는 국민 배우였다. 세로프는 위를 향해 쳐다보는 시선으로 그리고 기념비처럼 당당한 포즈로 이 노여배우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디테일을 과감히 생략하여서 여성적인 느낌을 지웠으며, 회색과 검은 색의 거의 모노톤에 가까운 색조는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느끼는 예인의 내적인 엄격함을 보여준다.
Mika Morozov. 1901.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62.3 X 70.6 cm. Tretyakov Gallery Room 42
처녀작의 엄청난 성공으로 세로프는 곧 러시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초상화가로 인정을 받으며 당시 작가, 음악가, 정치가, 배우, 시인, 가수 등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를 대거 그리게 된다. <일리야 레핀>, <막심 고리키의 초상>, <체홉>, <예르몰로바의 초상>과 같은 세로프의
일련의 초상화에는 작품 속 인물들의 풍모와 특징들이 잘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물의 혼을 잘 포착하여 그것을 깊이 있는 심리 묘사와 함께 잘 표현해내는 세로프의 능력은 뛰어났다. 예술가들의 초상 이외에도 세로프의 초상화에는 황제와 귀족들로부터 인텔리겐치아와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물들이 담겨 있다. 세로프는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공상 속에 빠뜨리지 않고 생생하고 날카롭게 묘사했다.
세로프는 화가로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로서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일과 다양한 기법을 시도했다. 세로프의 다양한 작품들을 보면 한 화가가 그렸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말년의 세로프는 모스크바 예술 아카데미에서 회화와 조각, 건축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유화, 수채화, 파스텔, 리소그래피, 목탄 드로잉 등 다양한 기법을 학생들에게 시도하도록 유도했다. 또한 교수로서 세로프는 그 자신 스스로 노력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많은 학생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세로프는 타고난 재능과 끝없는 열정으로 19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 아카데미에
선출되었고, 1911년 화가로서 최고의 성공을 누리며 생을 마감했다. 1978년 소련의 천문학자 루드미할은 자신이 발견한 소행성 3547에
세로프의 이름을 붙여 존경을 표시하기도 했다.
Portrait of Nikolay Alexandrovich Romanov. 1899. 니콜라이 2세의 초상.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71 x 58.8 cm. Tretyakov Gallery Room 42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초상>에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황제의 이미지가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림 속 남자는 잘 생긴 배우 같은 느낌을 줄 만큼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약해 보인다. 러시아라는 대국을 이끌어 갈 황제로서의 이미지와는 잘 맞지 않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여리여리한 그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황제의 불우했던 생애를 이미 알고 있어서인지 가슴 한 켠에서 측은함마저 솟구친다.
Portrait of Nikolay Alexandrovich Romanov. 1899. 니콜라이 2세의 초상.
Portrait of Grand Duke Pavel Alexandrovich. 1897. 러시아의 대공 폴 알렉산드로비치.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166.7 x 149.5 cm. Tretyakov Gallery Room 42
Portrait of Nikolai Rimskii-Korsakov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초상. 1898.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94 × 111 cm. Tretyakov Gallery Room 42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왕벌의 비행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작곡가이다.
Portrait of the Singer Angelo Mazini. 1890.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89 X 70 cm. Tretyakov Gallery Room 42
Portrait of Painter Konstantin Korovin, 1891. 화가 콘스탄틴 코로빈 초상화.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111.2 x 89 cm. Tretyakov Gallery Room 42
Portrait of Italian Singer Francesco Tamagno. 1891-1892.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78.3 x 69.2 cm. Tretyakov Gallery Room 42
Portrait of Isaac Ilyich Levitan. 이삭 레비탄 초상화. 1893.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82 X 86 cm. Tretyakov Gallery Room 42
The White Sea. 1894. by Valentin Serov. oil on cardboard. Tretyakov Gallery Room 42
Portrait of Grand Duke Mikhail Nikolayevich. 1900.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2
Portrait of Mikhail Morozov. 1902.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2
Portrait of Mikhail Morozov. 1902.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2
Portrait of Yevdokia Loseva. 1903.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97 x 112 cm. Tretyakov Gallery Room 42
Portrait of Henriette Girshman. 1907.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140 X 140 cm. Tretyakov Gallery Room 42
Portrait of Nikokai Pozniakov. 1908.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83 x 100 cm. Tretyakov Gallery Room 42
Portrait of Yevdokia Morozova. 1908.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2
The Rape of Europa. 1910.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178 x 138 cm. Tretyakov Gallery Room 42
Portico with Balustrade. 1903.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49.5 X 63 cm. Tretyakov Gallery Room 42
Portrait of Pavel Blaramberg. 1888. by Valentin Serov. oil on canvas. 49 x 59 cm. Tretyakov Gallery Room 42
20세기 초반 러시아 미술은 다양성의 시대라 정의 할 수 있다. 비판적 리얼리즘이 주를 이루던 이동파의 시기를 벗어나 여러 가지 유형의 미술이
한꺼번에 나타나 서로 각축하고 시도되던 그런 시기이며 특히 무대미술이 눈에 띄게 발전 한다. 역사적으로는 니콜라이 2세의 통치기이며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 제1차 세계대전, 거기다 날씨까지 흉흉하여 계속되는 흉작에 나라는 메마를 대로 메말라 있을 때였다. 모두가 어두운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헤쳐 나갈 방법을 찾지 못하고 예술 또한 음울한 '퇴폐적 낭만주의'에 빠져드는 시기이다. 20세기 초반 러시아 예술가들은 '예술은 예술을 위해서 존재한다'라는 신념아래 다양한 화파를 만들고 여러 작품들을 쏟아낸다.
Wedding Train in the 17th century Moscow. 1901, 17세기의 러시아 결혼 행렬 모습. by Andrei Petrovich Ryabushkin. oil on canvas. 90 x 206.5 cm. Tretyakov Gallery Room 38
17세기 모스크바의 모습에 흥미를 가진 역사화가. 안드레이 리아부쉬킨(Andrei Petrovich Ryabushkin, 1861-1904)은 러시아 중세사, 수리코프의 역사화, 영웅서사시, 고대 건축물, 민요, 민속 공예 등을 연구하며 17세기의 시대상을 그림을 통해 재현하고자 한다. 이 그림 또한 과거 결혼식 행렬을 재현한 것으로 시기는 눈이 막 녹기 시작하는 봄에 결혼식 행렬이 무리지어 목적지로 이동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한 젊은 여자는 약간은 슬픈 듯한 표정으로 행렬을 빠져나와 다른 길로 향한다. 그녀는 누구일까에 대한 정확한 답은 없지만 결혼 행렬과 어울려 많은 것을 상상케 한다.
안드레이 리아부쉬킨은 17세기의 러시아 평민들의 삶을 주로 그린 화가다. 아버지와 형이 이콘화가여서 어려서부터 그들을 도왔다. 14세에 고아가 되었는데, 그 마을을 방문했던 모스크바 미술 조각 건축학교 학생이 그의 그림을 보고 감탄하여 모스크바 학교에 입학하도록 도왔다. 14세의 그는 가장 어린 학생중의 하나였는데, 7년간 학교에 머물렀다. 바실리 페로프의 지도를 받았다.
1882년, 바실리 페로프 사후, 리아부쉬킨은 셍페테르부르그 황립미술학교로 옮겼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 흥미를 읽고 길에서 스케치를 하는 등 성적불량으로 졸업을 못하게 되는데, 그의 훌륭한 작품을 보고 학교의 교장인 대공이 사비로 그의 유학비를 대 준다. 그는 유럽으로 가는 대신 노브고로드, 키에프, 모스크바 등 고도를 여행하며 그곳 주민들을 모델로 그리고, 고건축, 무기, 민속품, 자수, 벽걸이 등을 연구하고 민요를 수집했다.
리아부쉬킨은 이동파와 1890-1894년까지만 전시하고 곧 결별했다. 그는 17세기의 그림에 전념했고, 성당 벽화도 그렸는데, 19세기 말에는 당시 러시아 농민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 "차 마시기"와 "처녀들의 댄스에 끼어든 청년"같은 그림이 탄생했다.
리아부쉬킨의 역사에 관한 깊은 지식은 그의 그림의 신뢰도를 높였지만, 당대의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높이 사지 않았다. 극적인 역사적 일화를 주제로 그린 바실리 수리코프와는 달리 리아부쉬킨은 17세기의 일상을 그렸기에 감동이 적었고, 또한 민주사상이 선호하는 계층간의 마찰도 결여되어 있었다. 그런가하면, 러시아 부유층이 선호하는 미적 요소도 결여되었다. 그 결과, 리아부쉬킨의 그림은 양쪽 어느 세력에도 소속되지 않은채 인정받지 못했다. 1903년 리아부쉬킨은 결핵 진단을 받아 스위스에서 요양했으나, 다음해 43세로 사망했다.
[영상] 안드레이 리아부쉬킨(Andrei Ryabushkin) Paintings!
March snow, 1904. 3월의 눈. by Igor Emmanuilovich Graba. oil on canvas. 62 x 80 cm. Tretyakov Gallery Room 38
러시아 색채 예술의 대가 이고르 그라바리 (Igor Emmanuilovich Grabar 1871~1960)가 그린 <3월의 눈>에는 여전히 추운 겨울이 남겨져 있다. 하지만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의 모습에서 추운 겨울의 움추림은 없다. 겨우내 꽁꽁 얼어 있었을 길이 봄 바람에 녹아 촉촉해 보인다. 또, 길게 늘어진 나무 그림자를 보며 겨울보다 해가 긴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다. 봄 느낌을 여러 소재를 통해 보여주는 작가의 센스는 정말 탁월하며 눈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촘촘히 찍은 듯한 터치와 눈밭에 비친 빛의 표현은 천재적이다.
이고르 그라바리는 러시아의 화가, 출판가, 미술사가이자 회화복원가로서 "점묘파와 비슷한 테크닉의 독특한 분할화법으로 특히 설경으로 유명한 후기인상파 화가"이다.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셍페테르부르그에서는레핀, 뮌헨에서는 안톤 아즈베의 지도를 받았고 건축학도 공부했다. 그라바르의 화가로서의 전성기는 1903-7년이고 20년대 후반에 미술비평가가 되었다.
1910-15년에 그라바르는 최고 걸작인 "러시아 미술사"를 편집 출간했다. 특히 그라바르 자신이 건축에 관해 썼는데 이는 누구도 따르지 못할 우수한 수준의 글이었다. 1913년 그는 트레치코프 갤러리의 대표로 임명되어 13년간 야심찬 개혁을 했다. 1913년 현대미술로 소장품을 확장하고 첫번째 도록을 만들었다. 1921년에는 모스크바 국립대학의 최초의 미술복원학 교수가 되었다.
그라바르는 경력있는 정치인으로 말년까지 소비에트 예술계의 최고 자리에 있었다. 그가 관리했던 미술복원소는 현재의 그라바르 인스티튜트이다. 또한 그는 볼셰비키혁명 때 국유화했던 교회의 미술품을 재분배하여 새 뮤지엄을 여럿 세웠다. 1943년에는 독일에서 세계2차대전 때 강탈했던 미술품의 보상에 관한 소비에트 독트린을 마련했다. 전쟁후 그는 직접 스탈린에게 건축유적을 보존할 것을 조언했다고.
September Snow 1903. 9월의 눈. 1903. by Igor Emmanuilovich Graba.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8
[영상] 이고르 그라바리(Igor Grabar) A collection of 112 works (HD)
Whirlwind, 1906. 회오리 바람. by Philip Andreevich Maliavin. oil on canvas. 223 x 410 cm. Tretyakov Gallery Room 38
이 그림이 그려진 1906년의 러시아는 황실정치의 피폐에 몸서리치고 현실적 개혁과 새로운 시대를 요구할 때였다. 필립 말랴빈 (Philip Andreevich Maliavin 1869~1940)은 그 개혁의 주체로 그림 속 여인들, 붉은 색 러시아의 전통의상을 입고 강력한 생명력으로 움직이는 러시아 민중을 제시한다. 말랴빈은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이동파의 대표 작가이면서도 당시를 풍미하던 모더니즘적인 기법과 인상주의 기법을 모두 수용한 작가다. 그러면서 러시아 혁명의 중심에 위치하며 혁명의 주체인 농민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이기도 하다.
말랴빈의 <회오리 바람>의 붉은 색과 푸른 색은 러시아의 전통 문양을 이루는 기본 색채로, <회오리 바람은>은 러시아다운 색채의 폭풍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러시아 전통 공예품이나 의상 등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러시아 전통 색채는 말랴빈의 그림처럼 붉은 색과 푸른 색이 주를 이룬다.
넓게 퍼져 둥그렇게 펄럭이는 치마와 머리에 둘러 쓴 숄, 흥겨운 손동작의 율동감으로 작품 전체가 정열로 가득 차 있다. 황토 빛으로 햇볕에 그을린 춤추는 농촌 아낙네들의 상기된 얼굴들 역시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다. 굵직굵직한 강한 붓의 터치가 현란하다. 널름대는 화염 같기도 하고 만개한 꽃 같기도 하다. 이미 탄력이 붙은 춤사위에 몸을 그대로 맡겨버린 농부(農婦)들에게서 강한 생명력과 삶의 환희가 느껴진다. 그렇게 보면 이 그림에서 성장하고 있는 민중 봉기의 전조를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붉은 색으로 상징되는 러시아 영혼의 힘을 느낄 수도 있다.
까잔의 한 마을, 형제 많은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던 말랴빈은 16세 때 그리스의 한 정교회 수도원으로 보내져 성상화를 6년간 수학하였는데 거기서 만난 유명한 조각가 V. A. 베클레미세프의 추천으로 1892년 뻬쩨르부르크의 예술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일리야 레핀을 만나 그의 후계자들 중의 하나로 명성을 얻기 시작, <웃음>(1899)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고대 성상화가들 이후 말랴빈의 그림에서 최초로 ‘붉은 색’이 완전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의 붉은 색도 이콘에서 많은 부분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말랴빈은 1922년 전시회 개최를 위해 외국으로 떠났다가 프랑스에 정착하게 되고 1930년대에는 유럽 여러 도시들에서 전시회를 개최 하여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제 2차 세계 대전 때 브류셀에 머물렀는데 독일군에게 스파이로 몰렸다가 풀려났지만 70세 고령으로 그의 집이 있던 니스까지 걸어 도착한 후 건강 악화로 곧 사망하게 된다.
[영상] 필립 말리아빈(Philip Andreevich Maliavin) A collection of 97 works (HD)
Russia, 지금 러시아에서는. 1914.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206.4 X 483.5 cm. Tretyakov Gallery Room 39
참담한 현실을 벗어나 개혁과 변혁을 꿈꾸는 한 무리의 지식인들이 한 곳에 모여 밝은 미래를 기원한다. 하지만 현재 그들이 보고 있는 그 곳은 그림 속 미치광이가 만들어 놓은 거짓 현실이고 진정한 미래를 위해 현실을 직시하고 바로 캐어나 움직일 것을 일깨우는 그림이다. 네스테로프는 러시아의 자연과 종교적 염원을 함께 표현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주제를 담아낸다. 그의 손에 태어나는 하늘, 나무, 강, 풀 등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가장 깨끗하고 성스러운 종교 같은 것이다. 전체적으로 그림을 지배하는 색채는 조화롭고 은은하고 깨끗하다.
미하일 네스테로프 (Mikhail Vasilievich Nesterov, 1862~1942)는 좀 특이한 장르의 작가이다. 러시아의 종교 상징주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네스트로프는 예술에 관심이 많은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2살 되던 해 그를 기술자로 만들려고 기술학교 입학을 위해서 모스크바로 보내졌다. 그러나 미술가이자 모스크바 예술학교의 교사였던 투르토프스키의 눈에 띄어 그의 추천으로 러시아 예술가들의 요람인 모스크바 예술학교에 입학한다. 러시아 화가들이 공부한 경로를 보면 대개 모스크바 예술학교를 거쳐 상페테스부르그 왕립학교 그리고 다시 모스크바 예술학교로 돌아 오는 길을 밟는데, 네스테로프도 같은 코스를 밟았다. 1877년 15세 되던 해 부터 4년 간은 모스크바 예술학교에서, 다시 1881년부터 3년 간은 상페테스브르그, 그리고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2년간 학교를 다니 후 공부를 마친다. 10년 동안의 미술공부를 하였다.
Silence, 고요. 1903.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저녁 무렵 조각배 두 척이 물을 따라 흐르고 있다. 원근법 같은 것은 무시하기로 했다. 복장으로 봐서는 앞에 가는 사람은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 같고 뒤를 따르는 배는 시종처럼 보인다. 흘러가는 물의 몸짓이라도 보일 법한데 물은 산과 하늘의 모습을 안고 흐르는 듯 마는 듯 한다. 세상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강 건너 작은 교회가 보이는데 산 너머 살짝 고개를 내민 교회가 물에 흘러가는 두 사람을 내려다 보고 있다. 얼마만에 만나는 고요인가...
화가로서의 네스테르프의 관심은 일상 생활과 역사에 대한 묘사였다. 그러나 독실한 러시아 정교 신자였던 그는 20대 후반부터 종교적인 주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또한 표현 방법도 이전까지의 다른 러시아 화가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23살이 되던 해 네스테로프는 마리아라는 여인과 결혼한다. 그런데 다음 해 딸 올가를 낳고 마리아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만다. 아내의 죽음은 그의 작품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훗날 네스테로프는 ‘아내의 죽음이 나를 미술가로 만들었다’라고 했는데 이 때를 기준으로 그의 작품에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분위기와 감정이 더 강조된다. 물론 그 뒤로 혼자 살지는 않았다. 나중에 에카테리나라는 여인과 재혼해서 1남 2녀를 더 두었다.
상페테스브루그에서 돌아온 네스테로프는 아브람체보에 있는 한 별장을 찾게 된다. 그곳은 당시 러시아의 ‘철도왕’으로 불리던 사바 마몬토프 소유였는데 러시아 아르누보의 진원지였다. 네스테로프는 이 곳에서 많은 화가들을 난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종교와 새로운 화풍을 접목시키고자 했지만 결과는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들에 가깝게 되어 버렸다.
The Hermit, 1888~1889.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하늘과 세상의 진리를 알기 위해 온 몸을 던졌는데 세월은 조그만 지팡이와 구부정해진 허리를 은둔자에게 남겨 주었다. 왼 손에 쥔 것은 묵주로 보인다. 그렇다면 러시아 정교회 수도자이겠다. 잔설이 남은 길을 보다가 그가 걸어온 길보다는 걸어 갈 길이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수도자의 길은 혼자 외로운 길을 걷는 것이겠다. 외로운 길이 나눔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그리고 사회 정의를 지키는 것일 수도 있다.
The Hermit, 1888~1889.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1890년부터 1910년까지 네스테로프는 키에프와 상테페스브르그에 머물면서 수많은 성당의 프레스코화, 모자이크 작업에 참여한다. 또 자주 러시아 외진 곳에 있는 수도원과 은둔 장소를 찾아 여행을 하였다. 목적은 수도원과 은둔자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가 머물기 위한 것도 있었다.
The Vision to the Youth Bartholomew, 어린 바르톨레메오의 꿈. 1890.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한 소년이 현자로부터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장면이다. 그림 속의 소년은 러시아 최대 성인으로 추앙 받는 라도네츠의 성 세르게이 (Saint Sergius of Radonezh)의 어릴 때 모습이다. 원래 세르게이 성인은 어려서 바르톨로메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910년 이후 네스테로프는 모스크바에 있는 수도원의 작업을 주로 한다. 1917년 10월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났다. 러시아 정교회의 신자였던 네스테로프는 이 혁명을 받아 들일 수 없었지만 그는 외국으로 나가지 않고 모스크바에서 생을 마친다. 혁명 이후 그는 당대 러시아를 대표할 만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에 몰두한다.
The Vision to the Youth Bartholomew, 어린 바르톨레메오의 꿈. 1890.
소년은 전쟁으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서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때 부여 받은 이름이 세르게이였다. 성 세르게이는 곧 은둔 수도자 생활을 하면서 수도자들의 공동체인 ‘성삼 수도원’을 건립한다. 세속의 여러 명예가 그에게 주어졌지만 그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수도자의 길을 걸었던 성인이었다. 이 작품은 러시아 상징주의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도 평가 받고 있다.
네스테로프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인물을 앞에 배치하고 러시아 전통 풍경, 예를 들면 나무와 초원, 숲과 교회 그리고 강을 병풍처럼 둘렀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의 그림은 차분하고 시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그만큼 그림을 놓고 생각할 것이 많다는 이야기도 된다.
네스테로프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영혼을 울리는 듯한 장면을 간결하게 그린 점이다. 복잡하지 않은 화면, 그러나 풍부한 색상은 작품 속에 서정성을 듬뿍 담아 놓았다. 네스테로프를 두고 러시아 화화에 새로운 서정성의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네스테로프는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는다. 그가 러시아 미술사에 남긴 공헌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Youth Bartholomew, 1889.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panel. Tretyakov Gallery Room 39
수도사 Sergius의 작품 삼부작.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Portrait of Olga Nesterova, 1905.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Archbishop (Portrait of Antoniy Volynskiy), 1917.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Alenushka, 1925.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Landscape, Date unknown.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Youth of St. Sergius, 1897. 성 세르지오의 청소년.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247 x 229cm. Tretyakov Gallery Room 39
캔버스의 중앙에는 젊은 세르지오가 그려져 있다. 울창하고 혼합된 숲 사이에 가벼운 우렁이 속에 서 있는 당당한 청년. 그의 얼굴은 가볍고 사랑과 친절로 가득 차 있다. 갈색 곰이 그의 발에 누어 있다.
작가는 야생의 모든 색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녹색 톤을 사용했다. 풍부한 녹지와 야생화는 계절이 봄임을 나타낸다. 작은 목조 교회가 배경에 보인다. 아마도 그녀와 함께 Trinity-Sergius Lavra의 역사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캔버스에는 인간과 주변 자연의 조화가 지배적이다. 가슴 위로 팔짱을 끼고 세르지오는 멀리서 시선을 집중하며 온 세상을 위해 기도한다. 청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그의 머리 위에 빛을 묘사한다.
Mikhail Nesterov는 위대한 성도를 깊이 존경했으며 그의 작품에서 그 의의와 순결 및 믿음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어렸을 때부터 바돌로매 청년은 금식, 끊임없는기도, 그리고 더 많은 수도원을 택했다.
Portrait of Ekaterina Nesterova, 1905.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Three Old Men (also known as The Fox), 1915.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Philosophers (also known as S.N. Bulgakov and P.A. Florensky), 1917.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126 X 126 cm. Tretyakov Gallery Room 39
Girl by the Pond, 1923.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영상] Tretyakov Gallery Room 39. 미하일 네스테로프 (Mikhail Nesterov) 작품 전시실
러시아 최고의 풍경화가 이삭 레비탄 (Isaak Ilyich Levitan 1860-1900) 작품 전시실
이삭 레비탄은 리투아니아 카팔타이 출생으로 어려서 부모를 잃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예술에 대한 뛰어난 재능이 인정되어 모스크바의 미술전문학교에서 수학하고 풍경화가인 A. K. 사브라소프와 V. D. 폴레노프의 지도를 받았다.
이삭 레비탄은 서정적인 러시아 풍경화가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러나 초기부터 개성있는 자신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대표적인 무드 풍경화 (Mood Landscape)로 그의 그림이 불리면서 러시아 지식인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으며 그는 그림뿐 아니라 시와 음악에도 무한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안톤 체홉(Anton Chekhov, 1860~1904)과도 친구였던 이삭 레비탄은 삶에 대한 철학적인 고뇌를 거듭하며 뛰어난 예술가로 성장했다. 1884년부터는 이동파(移動派)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으며 리얼리즘 회화 발전에 주력하고, 1898년 이후는 모교에서 후진들의 지도에 힘쓰는 한편 볼가를 비롯하여 핀란드 · 독일 · 프랑스 · 스위스 · 이탈리아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독특한 풍경화를 그렸다.
1897년 그는 심한 심장병을 앓게 되고 죽음과의 싸움 속에서도 열정과 뛰어난 테크닉, 특별한 영감은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새로운 스타일의 작업을 시도하게 했다. 1900년 마흔 살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많은 전시회를 열고 그 시대의 많은 예술가들과 깊은 우정을 나누며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인정을 받았다.
“자연의 장엄한 아름다움 속에서 신비를 느끼면서도 그 웅대한 느낌을 표현해 낼 수 없는 내 자신의 무능력함을 깨닫는 것보다 더 비극적인 일이 또 있으랴!" - Isaak Levitan
이삭 레비탄은 20세기가 시작되기 전 러시아에서 가장 사랑 받는 풍경화가였다. 그의 작품에는 서정과 철학 그리고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고뇌가 들어 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그는 특히 조국 러시아의 대자연을 사랑하여 이를 소재로 서정적인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대표작으로 《블라디미르에의 길》《가을날》《못가》등이 있으며, 이들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과 함께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Tretyakov Gallery, Moscow)에 소장되어 있다.
러시아 최고의 풍경화가 이삭 레비탄 (Isaak Ilyich Levitan 1860-1900) 작품 전시실
The Vladimir's Road. 블라디미르 가는 길. 1892.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79 X 103 cm. Tretyakov Gallery Room 37
끝이 어디에 닿을 지도 모를 듯 길게 난 길. 이 길은 누군가에게 시작 될 수도 있고 도착이 될 수도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품고 있는 저 길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실 그림 속 길은 시베리아 유형지로 연결되는 길이란다. 수 백년의 역사 속에 수많은 눈물을 뿌렸을 저 길은 러시아인들의 존재이며 근원이라 할 수 있다.
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헤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을 장벽으로 만드는 것도 길이다. 지평선 너머 사리지는 길의 끝은 동경의 대상이지만, 그러나 이 길은 시베리아 유형지로 가는 길이다.
블라디미르는 모스크바에서 동쪽의 <니쥐니 노보고로트>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으며, 제정 러시아 당시 그 길은 시베리아로 접근하는 주요 통로 중의 하나였다. 네를리 성당 인근의 보골류보보까지 가는 도중 깨끗하게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는, 제정 러시아 당시에는 시대와의 불화를 겪었던 젊은 유형수들이 시베리아의 유형지를 향해 떠나며 걸었던 길이었다. 어쩌면 살아서는 돌아오지 못할 그 길을 가며 피눈물을 뿌렸던 바로 그 길이었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의 러시아의 풍광을 배경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필름과 같은 기억 속의 블라디미르카 가도를 레비탄의 그림을 통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만난다. 하지만, 흙먼지 날리는 모습의 <블라지미르카 가도>, 그 길은 <수용소군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저자 솔제니친이 기나긴 소비에트에 대한 정치적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러시아에 돌아와서 맨 처음 했던, 광활한 러시아 영토에 대한 순례를 위해 여든의 노구를 이끌고 떠난 길이기도 했다.
1958년 작가 보리스 빠스쩨르나끄는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의사 지바고>에 대한 노벨문학상 지명을 통보받는다. 소비에트 혁명에 소극적이고, 어쩌면 비판적이기까지 했기에 조국 러시아에서 출간되지 못하고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간되었던 <의사 지바고>에 주어지는 상을 수상하면, 혁명으로 세워진 당시의 조국인 소비에트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부정으로 간주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수상을 위해 출국한다면 소비에트로의 귀국을 허가받지 못할 것이라는 당국의 통고가 있고 나서 "고국을 떠난 작가는 토양을 떠난 화초와 같다"라는 말을 남기면서 수상을 거부한다.
도무지 사랑하기는 어려웠던 소비에트라는 정치체제와는 별개로, 그에게 있어 러시아는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살가운 애정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 후, 소비에트 작가동맹에서 축출되고, 마치 지바고가 평생의 연인 라라의 뒷모습을 보며 거리에서 심장마비로 죽어갔듯이 빠르쩨르나끄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쓸쓸하게 사망하면서도 러시아 대지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빠스쩨르나끄가 잃어버리길 두려워했던, 솔제니친이 여든의 노구를 이끌고 순례한 바로 그 러시아의 대지와 그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의 숨결이 <블라디미르카 가도> 속에 표현되어 있고, 비록 손바닥만한 도판이지만 그 조그만 그림에서 이러한 것들을 읽어낼 수 있다.
한여름 뙤약볕에 몸을 내어말리던 금잔화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채로 피어있던 그 길을, 그리고 몇 년 만에 친정을 다니러 왔다가 헤어짐의 눈물을 훔치며 집을 나서는 고된 시집살이에 시달린 이웃집 누나와 늙으신 그녀 어머니의 주름진 눈매 틈으로 번져가던 마른 눈물 사이에 고통스럽게 놓여있던 황토길을 다시 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걸어가야 했던, 아직도 기나긴 과거로부터 흙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미래를 향해 놓여 있어, 현재의 우리 삶을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처절한 확증성을 더해주던, 애증의 대상일 수 밖에 없는 삶과 역사의 그 길을 레비탄의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다.
분명히, 레비탄의 그 그림에 시선을 붙들어 둔 것은, 광활한 서시베리아 순상지 평원에 뚫린 단순하면서도 지리적인 개념의 도로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잊혀진 삶의 기억의 어느 부분을 현재와의 소통이 가능하도록 정신적 제단에 올려놓게 만드는 힘이며 그 통로일 것이다. 또한, 그 힘은 보이지 않는 미래의 시간이 우리 얼굴에 빚어놓을 그 무엇을 기대하게 하며, 불확실함을 기대와 환호와 좌절로 변태시키면서 현실에 한발 앞서 나의 삶을 이끄는, 돌연한 향기와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끈적한 집착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제 누가 감히 눈에 보이는 풍경만을 그렸던 풍경화가라는 단순한 수식어를 그에게 선사할 수 있을까? 비록 컴퓨터 화면으로나마 그의 그림을 접할수록, 그가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숙주로 해서, 자연 위에 흘렀던 바람의 흔적을, 광활한 초원과 수풀을 휘감으며 어루만지면서 들꽃과 같은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왔던 러시아 민초들의 이마와 가슴에 속삭였던 그런 바람을 번식시켰다는 심증을 갖게 된다.
이렇듯 레비탄의 천재성은 경계선상의 자연과, 이 안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결과, 역사를 한꺼번에 화폭에 씨줄과 날줄로 엮어 화폭 속에 통합시켜 놓았다. 그는 영속적인 자연의 미와 적막한 빛의 환희 속에서 바람을 그린 화가였다.
Deep Waters, 1892.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150 X 209 cm. Tretyakov Gallery Room 37
강을 가로질러 건너 숲 속으로 뻗어 있는 길을 다리가 연결하고 있다. 가난한 시절 돈이 없어 학비가 면제되는 것을 부끄러워 했던 레비탄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역으로 달려가 승객들을 태운 기차가 출발하기 전 기차를 스케치하고는 했다.
대낮의 태양을 품고 있는 러시아 여름 저녁의 고즈넉함과 외롭게 서 있는 통마무 다리가 한 편의 시 같은 느낌을 준다. 이 그림은 실제로 보면 좋은데 다리의 방향이 내 시선을 따라 움직인다.
Above the Eternal tranquility. 영원한 평화 그 너머. 1894.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95 X 127 cm. Tretyakov Gallery Room 37
'영원한 평화 그 너머'에는 소나기가 지나간 후의 고즈넉한 여름 풍경을 그대로 품고 있다. 그림 속 자연은 장엄하고 거룩한 느낌이다. 작가는 언덕 위에 있는 교회 옆에 자신을 세워 놓고 광활한 자연을 둘러 보라고 말한다. 세상 안에서 우리 인간은 아름다운 다툼을 하지만 대단한 자연 앞에 서면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며 겸허해진다. 레비탄은 이런 풍경을 보여주며 삶을 돌이켜보라 일깨워 주는 것이다.
Fresh Wind. Volga. 볼가강의 시원한 바람. 1895.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72 X 123 cm. Tretyakov Gallery Room 37
볼가 강의 여름 강물과 파란 하늘이 하나되어 온 세상을 푸르게 물들인 듯한 그림이다. 잔잔한 물결의 움직임과 하늘의 구름을 보며 볼가 강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이 현실에서 그대로 느껴지는 듯 상쾌하다.
Vesper Chimes. 저녁 종. 1892.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67 X 108 cm. Tretyakov Gallery Room 37
Evening in the Field. 1883.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7
Village Savvinskaya Sloboda near Zvenigorod. 1884.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44 X 67 cm. Tretyakov Gallery Room 37
Golden Autumn. 1895.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126 X 82 cm. Tretyakov Gallery Room 37
Spring Flood. 1897.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7
The Lake. Study. 1898-1899.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7
March, 1895.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7
Autumn day Sokolniki. 1879.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7
34번 방까지 관람하고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 1층의 35번 방으로 간다. 37번까지 19세기 후반의 사실적인 그림이 계속되고, 38번 방부터 19세기 후반 20세기 초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이 시기는 19세기 후반 서유럽의 인상파로부터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까지 다양한 유파가 한꺼번에 수용되었기 때문에 미술의 일관성을 찾기가 상당히 어렵다. 대표적인 작가를 언급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림의 성향에 따라 몇 사람의 작품을 유형별로 나눌 수 있을 뿐이다.
38번 방에 있는 그라바르(1871-1960)의 그림은 서유럽의 인상파 그림을 모방하고 있다. 41-42번 방에 있는 세로프(1865-1911) 역시 인상파에서 시작 아방가르드로 넘어가고 있다. 그것은 ‘소녀와 복숭아’(1887), ‘헨리에타 기르쉬만의 초상’(1907), ‘오이로파의 납치’(1910)를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43번 방의 코로빈(1861-1939)은 서유럽의 후기 인상파로부터 독일 표현주의까지 작품 경향을 받아들인 것 같다. ‘파리, 카푸친 거리’(1911)와 ‘물고기, 포도주, 과일’(1916)에서 그러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러시아 미술사에서 중요한 변화는 세기 전환기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화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념적인 지도자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와 알렉산드르 베노이스(1870-1960)를 중심으로 잡지를 발간하면서 “예술세계 그룹 (World of Art group)”을 결성하고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해 나갔다.
그들은 페레드비츠니키의 예술이 지나치게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러한 경향은 44번 방의 세레브리야코바(1884-1967), 소모프(1869-1939)의 작품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전시공간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박스트(1866-1924)의 ‘살로메’와 골로빈(1863-1930)의 ‘홀로페르네스로 분장한 가수 표도르 칼리아핀의 초상’이 아주 환상적이고 그로테스크해서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46번 방부터 48번 방까지 방은 일정한 기준이 없이 여라 미술가들의 작품이 섞여 있다. 다만 이들의 그림이 바로 러시아의 아방가르드로, ‘푸른 장미’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전시회를 통해 자신들의 화풍을 보여 주었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파벨 쿠즈네초프(1878-1968), 마르티로스 사리얀(1880-1972), 니콜라이 사푸노프(1880-1912) 등이 있다.
그리고 49에서 54번까지 방에 있는 18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의 그래픽들이 전시되어 있고, 55번 방에는 12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 그래픽이란 드로잉, 수채화, 파스텔, 프린트와 같은 형태의 그림으로 6개월 마다 전시품이 바뀐다고 한다. 그리고 보물이란 값진 금속과 보석으로 이루어진 예술품과 미니어쳐, 이콘 등을 말하며, 은으로 상감된 이콘, 금으로 장식된 예배당 등이 대표적이다.
<ROOM 35- 37> 19세기 후반 그림
On the Tiberiad Lake, 타이비어리드 호숫가. 1888.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5
이스라엘 북부 골란 고원 아래에 있는, 요즘 이름으로는 타이비어리어스 호수이다. 주변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걷는 사람의 모습이 많이 익숙하다. 폴레노프가 예수님과 관련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림 속 인물은 예수님을 상상한 것일 수도 있겠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제우스의 모습에서 가져와 조금씩 변형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유대 지방에서 태어나신 예수님 모습은 그림 속 남자의 모습과 많이 닮지 않았을까 싶다. 길옆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있다. 길은 그 사이로 이어지겠지만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도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도 돌이 많은 길인 것은 분명하다.
‘타이비어리어스’는 영어 Tiberias의 발음을 그대로 적은 것 같다. 우리말 표기로는 ‘티베리아스’ 또는 ‘티베리우스’라 적어야 할 것 같다. 히브리어로는 ‘티베랴’. 본래 이스라엘 갈릴리 지방의 갈릴리 호수 서안에 있던 마을의 이름이다. 그 이름은 로마 2대 황제 티베리우스에서 따왔다. 그러니까 타이비어리어스 호수는 곧 갈릴리 호수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티베리우스 황제 치세 때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바실리 폴레노프(Vasily Polenov 1844-1927)는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깨끗하고 밝은 색,
색깔이 있는 그림자, 자유로운 붓 터치와 같은 기법을 소개했고 이 무렵부터
러시아 회화의 전통에 따라 사실적인 풍경화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풍경화를 통해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삶과 어우러진 러시아의 시적인 풍경들 전하고 싶어 했다. 그의 기법은 그의 뒤를 이어 등장하는 풍경화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Moscow Backyard. 모스크바 뒷마당. 1878.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80.1 x 64.5 cm. Tretyakov Gallery Room 35
폴레노프의 유명한 1878년 그림 "러시아의 전형적인 안마당" 이다. 폴레노프는 상트 페테르스부르그 태생으로 1863-1871년 황립예술학교에서 공부했다. 동급생으로 이동파 미술가이자 유명한 사진사였던 라파일 레비츠키와 막역지우였다. 그들의 서간문은 폴레노프 저택 갤러리에 보관중으로 당대 미술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폴레노프와 레비츠키는 둘 다 독신일 때 처녀의 들판이란 뜻의 "Devich'e Pole" 거리에 있는 집의 다락방에서 함께 살았는데, 훗날 레비츠키가 이 집의 여주인과 결혼하였다. 밝은 햇살, 푸른 하늘, 깨끗한 공기, 세상에서 제일 환하고 평온한 모습을
표현한 듯한 그림 속 지역은 19세기 말엽 모스크바의 모습이다. <모스크바의 정원>은 19세기 모스크바 스타르이 아르바트 정경을 그대로 담아 놓았다. 지금도 모스크바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붉은 광장과 함께 꼭 들르는 관광 명소로 현재는 빌딩 숲이 우거진 대도시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19세기에는 그림과 같았다고 한다.
찬란한 태양 아래 밝게 빛나는 모스크바 정원의 새파란 잔디 위에서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다. 그렇게 펼쳐지는 평온함과 건강한 생명력이 그림의 핵심이다. 이 그림은 19세기 모스크바를 재현한 것이기 때문에 모스크바 도시 행사의 카탈로그 표지나 국가적 차원에서 모스크바를 보여주어야 하는 책자같은 것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그림이기도 하다. 모스크바 시 성립 850주년 기념행사 포스터에도 이 작품이 대표 그림으로 사용되었다.
Granny's Orchard. 할머니의 정원. 1878.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64.5 x 80.1cm. Tretyakov Gallery Room 35
그림 속 정원은 잡초가 무성히 자리있고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어쩌면 버려진 듯한 느낌을 준다. 할머니 혼자 사는 대저택 같은데 늙은 노인이 손보고 가꾸기는 너무 커 보인다. 이미 연로한 할머니는 사실 누구의 도움 없이 산책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도시에 사는 손녀가 이렇게 찾아 와 따뜻한 햇빛을 선사해 주지 않는다면 할머니는 출입조차 힘들것이다. 누구의 손길도 닿지않는 저택의 정원처럼 할머니의 삶도 외롭고 또 외롭다. 할머니의 남은 인생과 내버려진 정원. 이 또한 얼마나 절묘한 비유한가.
이제는 허리가 구부정해져 지팡이와 옆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하는 할머니가 정원 산책을 나섰다. 뒤로 보이는 건물도 할머니만큼의 나이를 먹었겠다. 어쩌면 훨씬 그 이전부터 그곳에 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원의 나무와 꽃들은 여름의 햇빛 아래 푸르름이 절정에 이르렀다. 그 길을 걷는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무수한 상념이 떠오르겠다.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나만 늙어가는 것일까? 분홍색 옷을 입은 젊은 여인에 비해 할머니가 입고 있는 검은색 옷은 이제는 되돌아갈 시간이 없음을 알려주는 징표 같아서 마음이 언짢아진다.
열두 살부터 체계적으로 드로잉을 배운 폴레노프는 3년 뒤 풍경화가인 치스타코프에게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운다. 1863년 열아홉의 폴레노프는 법률을 전공하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 입학하는데 왕립 아카데미에도 입학을 한다. 법학과 미술을 같이 전공하기로 한 것이다. 성격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분야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폴레노프는 해내고 만다.
폴레노프는 러시아-터키 전쟁의 (1877-1878) 종군 화가를 지내고 돌아온 후 Peredvizhniki (이동파)에 참여했고, 파벨 트레치코는
그의 그림을 좋아하여 다수 구입했다. 그는 사실적인 풍경화에 집중하며 사람의 일상과 관련된
러시아 자연의 시적 정적감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 폴레노프는 외광파의 생생한 색채를 예술적 구성 처리와 결합시킨
러시아 최초의 화가 중 일인이다. 그가 발전시킨 원칙은 훗날 소비에트의 풍경화 발달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폴레노프는 1893년 셍페테르스부그 미술학교 교수가 되었고, 1926년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인민화가로 지명됐다. 그는 모스크바 미술, 조각, 건축학교에서 가르쳤고,
아르히코프, 리비탄 등이 제자였다. 폴레노프가 살던 집은 국립박물관으로 되었고,
그가 살던 마을은 '폴레노포'라고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927년 83세로 사망.
Primae noctus, 1874. 초야권.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120 X 174 cm. Tretyakov Gallery Room 35
폴레노프는 이태리, 프랑스의 역사적 주제를 담은 그림을 다수 그렸다. '나리의 권리, 초야권'이라는 작품은 나리에게 세 농노 처녀를 데리고 와서 선보이는 모습이다. 이 그림의 배경은 유럽이지만 러시아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화가는 그때까지도 농노 처녀들의 초야권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 귀족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귀족들은 농노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사랑의 대상은 더더욱이 아니었다.
러시아 감상주의는 진보적인 귀족 계급 문화의 한 현상으로, 18세기 후반 문학 및
예술 속에서 계몽주의적인 이성 우월주의의 위기로 인해 형성된 흐름이었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분출과 완성, 개인의 ‘감수성’을 맹목적으로 숭배하였고, 사회보다는 한 개인이 문학적인 지각의 중심에 들어서게 되었다. 인간의 내면세계는 물론 인간 주위의 자연 세계도 파헤쳐 보이려는 특징을 가진다.
감상주의의 특징적 대비로는, 순결한 자연, 비도덕적 문명, 전원의 한적한 생활, 번잡한 도회지 생활, 꾸밈없는 자연 그대로의 시, 이성적인 시 등이다. 또한 감상주의적 경향에서는 민중의 정신적인 특성,
민족적인 서사시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게 된다.
계몽주의 시대에 발전했던 개방성, 사회적 기호와 자유로운 여론, 개성과
독립성을 존중하는 개별 인간의 고양된 가치에 의존하였지만,
사회적인 인간의 구체적인 성격을 밝혀내지 못했고, 인간을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묘사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소작농이 소작세를 갚지 못했나 보다. 이제 갓 피어 난 듯 싱그러운 소녀들이 지주에게 제물로 바쳐진다. 지주는 음흉한 표정으로 소녀들을 훑어 보고 있다. 그런 주인의 마음을 대변이나 하듯 지주의 사냥개들조차도 거만함이 묻어난다. 성문 입구에서 안타깝게 가로막힌 채 절망하는 아빠의 애틋함이
그림 한 쪽에서 강한 포인트가 되고 있다.
젊은 여자를 대동하고 노인이 영주를 보고자 찾아왔다. 한눈에 봐도 고약한 인상을 가진 영주는 허리에 손을 척하니 올리고 한 계단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불안한 눈으로 영주를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처녀의 눈빛은 겁에 질려 있다. 곧 결혼을 앞둔 처녀가 초야권을 영주에게 바치러 온 것이다. 중세 스위스에서는 남편이 아내 될 여자의 초야권을 갖기 위해서는 ‘초야세’라는 세금을 내야 했다는 기록도 있다는데, 지금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성직자나 그 지방의 영주가 그 권리를 행사하는 곳이 많았다고 한다.
권력은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하는 습성이 있다. 어린 소녀의 가느다란 한숨소리, 음흉한 영주의 웃음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고 하루를 마감하는 해는 건물의 흰 벽에 불안한 붉은 그림자를 남기고 넘어가는 중이다. 그건 그렇고 눈에 거슬리는 개 두 마리. 왜 권력자들은 개를 데리고 나타나는 모습이 많을까? 하는 짓이 개와 닮아서 그런가?
폴레노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높은 계급의 장교였고 한편으로는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미술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화가였는데, 이런 부모의 재능은 두 사람 사이의 아이들이 미술과 과학을 좋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Early Snow. 철이른 눈. 1891.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5
아직 잎들이 다 지지도 않았는데 눈이 내렸다. 지평선을 건너온 찬바람은 미처 떨어지지 못한 잎들을 흔들고 있고 아스라한 지평선은 파란색으로 남아 다가올 겨울을 더욱 차갑게 만들고 있다. 아직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크게 휘어 나가는 강 위로 쌓인 눈은 조만간 강물도 덮을 기세이다. 겨울은 침묵해야 할 시간이다. 우리에게 침묵해야 할 시간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침묵 뒤에 오는 고요함은 다시 그 뒤를 이을 생명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되기에.
83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 해에 폴레노프는 공화국 인민화가의 칭호를 받는다. 러시아의 풍경화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그에게 어울리는 영예였겠다.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River Klyazma. Zhukovka. 클리즈마 강. 1888.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5
Pond in Abramtsevo.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5
Overgrown Pond, 숲이 무성한 연못. 1879.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5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 낯이 익은 풍경이다. 수련이 떠 있는 연못, 작은 선착장은 연못에 발을 담그고 있고 우거진 숲의 품에 안긴 듯한 벤치가 보인다. 숨은 듯 만 듯한 여인은 벤치에 앉아 책을 펼쳤다. 고요하고 싱그럽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한, 언젠가 본 듯한 풍경화를 ‘무드 풍경화’라고 한다. 흰 들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는 길은 여인이 앉아 있는 곳으로 이어졌다. 조명을 흐리게 하고 음악이 있다고 해서 ‘무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괜찮다면 연못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1871년 스물일곱의 폴레노프는 변호사 자격증을 따며 대학을 졸업한다. 또한 왕립 아카데미에서는 ‘야이로 딸을 일으키심’이란 작품으로 금메달을 수상한다. 이렇게 되자 폴레노프의 고민이 시작된다. 금메달에 대한 부상은 유럽 여행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었다. 몇 달을 고민한 폴레노프는 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하느님도 편애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Sick Girl. 아픈 소녀. 1881.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5
Erechtheion. The Portico Of Caryatids. 에레크테이온 신전.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5
Fountain Of The Virgin Mary In Nazareth. 나사렛 성마리아 샘물. 1882.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5
[영상] Tretyakov Gallery Room 35. 바실리 폴레노프(Vasily Polenov) 작품 전시방
Portrait of Anton Pavlovich Chekhov, 1898.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의 초상. by Osip Emmanuilovich Braz. oil on canvas. 80 × 120 cm. Tretyakov Gallery Room 36
러시아 문학의 거장 중 하나인 안톤 체홉의 초상화다. 이 초상화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그래, 체홉이 의사였지' 하는 느낌이 든다. 체호프는 러시아 문학사를 이야기할 때 유난히 많은 분량을 할애받는 작가다. 이는 체호프의 작품이 워낙 뛰어나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이전과는 다른 문학 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즉, 체호프는 그간의 러시아 문학사를 톺아보고 정리하는 마디로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작가인 셈이다.
단편소설의 거장으로서 체호프의 작품에서는
동시대 여타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여러 특징이 나타난다. 먼저 사건이 중요하지 않다. 사건이 뒤섞이거나, 사건이 존재함에도 의도적으로 언급되지 않는 기묘한 서술이 발견된다. 극단적으로는 사건이 아예 없기까지 하다. 또 별거 아닌 사건을 침소봉대하는가 하면 심각한 사건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취급하기도 한다. 사건이 중요하게 여겨지던 당대 리얼리즘의 영향을 생각하면 가히 파격적이다. 그는 이러한 기법을 통해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거나 작품 자체를 순식간에 끝내버리곤 한다.
근대 소설의 거장으로서 문학계에 큰 파란을 체호프의 세계란 명령이 없는 무념무상의 세계였다. 이 말은 즉 체호프 이전의 문학은 명령이 있는 유념유상의 세계였다는 것이다. 체호프는 주로 불가지론의 입장에 섰고, 혁명 전야의 혼돈기에 대다수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구체적인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끝까지 꺼렸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떠올리면 알 수 있듯이 그간의 문학은 교훈과 메시지를 담고 있었고 또 그래야만 훌륭한 문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체호프는 그것을 거부한 것이다.
그렇다면 체호프는 왜, 어떻게 이러한 세계관을 갖게 된 것일까? 먼저 그의 본직이 의사였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답이 없으면 없다고,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하는 자연과학자의 입장은 톨스토이와 같은 사상가의 삶과는 대비되는 면이 있을 테다. 결정적인 계기는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시베리아 · 사할린 여행이었다. 범죄자들의 유배지인 황량한 사할린에서 그는 비인간적인 삶과 일상적인 매춘, 그리고 끊임없는 기아를 보며 인간의 극단을 목격한다. 이 여행 이후 체호프의 작품 세계는 톨스토이를 비롯해 당대의 주된 사조였던 비판적 리얼리즘과 완전히 단절된다. 비판적 리얼리즘이 정말로 ‘리얼’을 담보하고 있는지 회의하게 된 것이다.
그는 리얼리즘의 현실을 모르는 공허한 훈계조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작품에 사건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이렇듯 리얼리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의도적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작가란 세상을 꿰뚫고 판단을 내려주는 재판관이 아니었으며, 그럴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재판관이 아닌 증인으로서 사실을 서술하는 것, 체호프의 문학 세계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오시프 브라즈 (Osip Emmanuilovich Braz 1873 -1936)는 러시아-유대인의 사실주의 화가다. 브라즈는 현재의 우크레이나 지역인 오데사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1891-93년 뮌헨예술학교에 다녔다. 뮌헨에서 파리, 네덜랜드로 가서 고전의 대가들을 연구했다. 유럽 미술을 접하며 배운 것이 평생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1895-96년 브라즈는 셍페테르부르그 예술학교에 다니며 일리야 레핀 스튜디오에서 공부했다.
다음해, 브라즈는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 세르게이 이바노프 등 러시아 문화계 인물들의 초상을 그렸고, 그 중 안톤 체홉의 그림(위)이 가장 유명하다. 또한 프랑스, 크리미아, 핀랜드의 풍경화도 훌륭하다.
1907-11년까지 브라즈는 프랑스에 머물렀기에, 프랑스미술의 발전 동향에 영향받았다. 1914년 그는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에르미타쥐 뮤지엄의 회화 복구 위원 중 하나였고, 소비레트 건국 초장기에 그는 에르미타쥐의 큐레이터가 되었다. 1924년 브라즈는 해외 반출 목적으로 그림을 사 모았다는 죄목과 간첩으로 체포되어 3년형을 받았다. 동시에 17세기 네덜랜드 명작 등 그의 콜렉션은 국가에서 차압했다. 1926년 레닌그라드 예술협회의 탄원으로 풀려난 후, 파리에서 정착하여 그림을 그리고 골동품 거래 및 그림 콜렉션을 하며 살았다.
[영상] 오시프 브라즈(Osip Braz) : A collection of 30 paintings (HD)
Silence has settled, 1890. 내려 앉은 고요. by Nikolay Dubovskoy. oil on canvas. 76.5 x 128 cm. Tretyakov Gallery Room 36
폭풍 전의 고요함! 우리 인간은 이런 풍경앞에서 불안한 마음에 두려움이 솟구치기도 하지만 거대한 자연앞에 경외감을 가지기도 한다. 작가는 폭풍 오기 전 드라마틱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거대한 먹구름이 화폭의 반을 차지하게 그려 폭풍전야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전한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다가오는 자연의 힘을 그렇게 두보프스코이는 표현하고 있다. 19세기 말엽 대표 풍경화이기도 하다.
때는 늦가을 저녁, 호수 위로 거대한 구름이 밀려 와 자리를 잡았다. 해는 이미 졌지만 구름의 머리는 남은 해의 잔광으로 하얗게 빛나고 있다. 그 뒤 검은 구름이 다시 흰구름을 덮어 오고 있다.
하늘의 이런 변화를 호수는 흔들림 없이 그대로 안았다, 검은 점으로 떠 있는 배는 오색으로 불타고 있는 육지를 향하던 걸음을 잠시 멈췄다. 그림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은 움직이는 듯 하지만 멈춰 있고 흔들리는 듯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몽환의 세계와 같은 고요함이 그림을 가득 채웠다.
화가 니콜라이 두보프스코이 (Nikolay Dubovskoy 1854~1918)는 상트페테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에 대한 기록도 별로 남아 있는 것이 없어서 단편으로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아보겠다. 그는 처음에 키에프 군사 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장학금을 받고 상트 페테스부르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진학한다. 군사학교가 당시에는 고급 교육기관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술 분야에서 특출한 재능을 보였겠다.
열 여덟 살의 그를 아카데미에서 지도한 선생님은 ‘러시아 풍경화의 얼굴을 바꿨다’라는 평가를 받은 미하일 콘스탄티노비치 클로트 (Mikhail Konstantinovich Clodt, 1832~1902)였다. 그런데 보통은 6년 이상 공부를 하는 아카데미를
어찌 된 영문인지 두보브스키는 4년 만인 스물 두 살에 그만 둔다. 아카데미를 나온 두보브스키는 바로 다음 해 독립 풍경 화가로서 작품 전시회에 참석한다. 가끔은 사회가 정해준 길을 벗어나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길은 너무 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길 위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그 길을 끝까지 간 사람들은 오래 기억 속에 남는다. 낭만주의부터 상징주의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장르의 화풍을 잠깐씩 거치면서 두보브스키의 작품 속에는 러시의 풍경들이 등장했다. 겨울을 주제로 한 작품도 많았는데, 일출과 첫눈, 비 내리기 전의 모습과 내린 후의 풍경 그리고 고요하고 적막한 자연의 모습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1886년, 스물 일곱의 두보브스키는 이동파의 멤버가 된다. 기본적으로 그는 스승인 클로트처럼 확실한 사실주의 화풍을 유지하면서 수채화 작업도 병행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두보브스키와 그의 스승이었던 클로트가 걸었던 길이 달라진다.
스승인 클로트는 아카데미 교수가 되면서 이동파를 탈퇴하라는 압력을 받고 마침내는 이동파를 떠난다. 그런데 두보브스키는 작품을 통해 얻은 명성으로 1898년 아카데미의 준회원이 되지만 오히려 그 다음 해 이동파의 실질적인 리더가 된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이동파도 그 이전까지 러시아 미술계를 움직이던 힘이 빠졌겠지만 두보브스키의 인간적인 역량이 작용한 것 아닌가 싶다.
1890년대 두보브스키는 유럽과 근동지방에 대한 여행을 시작한다. 한 번으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빈번하게 드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1900년, 두보브스키는 아카데미 정회원이 된다. 뒤 이어 1911년 자신이 젊었을 때 공부했던 상트 페테스부르크 미술 아카데미 풍경화 화실의 주임 교수로 선발된다. 경력으로 만 본다면 스승인 클로트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걸은 셈이 된다.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라는 말이 두보브스키에 대한 이야기로 가장 정확할 것 같다. 1918년 그는 59세를 일기로 빛과 고요함이 가득한 러시아 풍경을 우리에게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난다.
[영상] 니콜라이 두보프스코이(Nikolay Dubovskoy) : A collection of 66 paintings (HD)
Golden Autumn, 1887. 황금빛 가을. by Ilya Ostroukhov. oil on canvas. 48.2 x 66.3 cm. Tretyakov Gallery Room 36
가지고 있는 몸 속의 모든 힘을 다 뿜어 내는 것 같은 잎들에게서 문득 경건함이 느껴진다. 마지막은 늘 이렇게 화려해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일몰과 가을의 단풍을 볼 때이다. 곧 떨어져 미라처럼 마를 잎들의 모습은 아주 멋진 삶을 살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숲 사이로 난 작은 길 위, 산새도 잠시 가을 속으로 깊게 빠져 든 모습이다.
일리야 오스트로우호프 (Ilya Ostroukhov 1858~1929)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는데 뛰어난 소질이 있었다. 때문에 사실적인 기법으로 풍경을 그림으로 담아냈는데 거기에 시적인 느낌을 더했다. 그의 작품이 사진 같은 정교함에 머물지 않는 까닭이겠지. 한편으로 오스트로우프는 뛰어난 미술품 수집가였다. 부유한 집안 환경을 배경으로 그는 러시아 대가들의 작품을 모을 수 있었다. 물려 받은 재산을 쉽게 날려 버리는 2세들에 비해 그는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림의 장소는 모스크바 근교에 위치한 20세기 초반 러시아 최고 예술 후원자인 마몬토프 생가 아브라함 쩨보의 한 산책로다. 황금 가을의 최절정기를 그렸다. 작가는 황금색의 화려한 낙엽을 표현하기 위해 인상주의적 터치를 사용하여 환상적으로 표현하였다. 또 각 소재별로 표현의 선명도에 차이를 두어 자연스럽게 숲 속의 공간감이 느껴지게 한 기법이 대단하다.
모스크바에서 멀지 않은 곳에 러시아 예술가들이 모이던 아브람체보라는 곳이 있는데, 마몬토프라는 사업가가 투자를 한 곳으로 문학가와 화가들이 모여 일종의 예술인 마을로 성장한 오스트로우프는 이 곳에서 화가들과 어울리게 된다.
1885년, 스물 일곱이 되던 해 오스트로우프는 러시아의 재능 있는 젊은 화가들이 참여하는 이동파에 가입하여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러시아 곳곳에서 전시회를 통해 그들은 미술 작품의 대중화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1898년 오스토르우프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의 운영위원회 멤버가 되었고 1905년부터는 미술관 운영 책임자로 있는 동안 러시아의 10월 혁명이 일어나 혁명 발발 이후 러시아 혁명 정부는 오스트로우프가 그 동안 개인적으로 수집했던 미술품들을 국유화 한 다음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으로 옮긴다.
1929년, 일흔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스트로우프는 국가의 소유가 된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의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미술 이론가로로 활동을 했고 광범위한 정보를 담은 미술에 관한 책들도 펴냈다.
[영상] 일리야 오스트로우호프(Ilya Ostroukhov) 서정이 담긴 러시아 풍경
The Sick artist. 1892. 아픈 예술가. by Aleksey Korin. oil on canvas. 78.2 x 109 cm. Tretyakov Gallery Room 36
알렉세이 코린(Aleksey Mikhailovich Korin 1865-1923)은 러시아 장르 화가였다. 그는 이동파(Peredvizhniki)의 회원이자 모스크바 회화, 조각 및 건축학교 (Moscow School of Painting, Sculpture and Architecture)의 교수였다.
여자 광부. by Nikolai Alexeyevich Kasatkin. 1894. oil on canvas. 65.4cm x 45cm. Tretyakov Gallery Room 36
작품의 원제목을 찾아 다녔지만 영어로 표기된 것은 없고 일어로 된 것이 있었다. 아마 탄을 캐고 난 뒤 대충 세수를 한 모습이다. 얼굴과 손에 남아 있는 석탄 흔적과 달리 얼굴은 아주 맑다. 일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그녀의 얼굴을 밝게 했을까? 노동의 고단함 보다는 건강함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미소가 참 곱다. 자세는 또 얼마나 당당한가? 이런 미소와 눈매가 시간이 흘러 이데올로기를 품게 되면 웃음은 사라지고 굳게 다문 입술과 부릅뜬 눈으로 등장한다.
화가 니콜라이 카사트킨 (Nikolai Alexeyevich Kasatkin 1859~1930)은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자작농이자 석판화가였던 아버지의 지도 아래 그는 처음으로 그림을 배웠다. 아버지의 재능이 아들에게 흘러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열 네 살이 되던 1873년, 카사트킨은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학교 (Moscow School of Painting, Sculpture and Architecture)에 입학한다.
학교에서 10년 넘게 공부를 하는 동안 카사트킨을 지도한 선생님 중 한 명은 바실리 페로프였다. 페로프는 카사트킨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페로프 자신이 부르주아 계급의 비도덕성에 대해 엄정한 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카사트킨 역시 스승의 그것을 배웠겠다.
학교에 재학 중이던 카사트킨은 1878년에는 초상화로, 1882년에는 자연을 묘사한 드로잉으로 은메달을 수상한다. 졸업하던 1883년에는 ‘교회 광장의 걸인들’이라는 작품으로 또 은메달을 수상하는데 요즘 말로 옮기면 이 때 학교 대표 화가 정도의 영예를 얻는다. 메달이 꼭 실력의 우열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림에 대한 재능은 확실히 남달랐던 모양입니다.
1878년 처음 은메달을 수상한 때부터 카사트킨은 출판협회에서 만든 학교에서 학생을 지도한다. 1891년, 그 유명한 방랑파의 멤버가 되는데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가입이었다. 그의 초기 작품 시대를 1880년대 후반부터 1890년 초기까지라고 한다면 이 시기 그의 그림 주제는 일상의 장면들을 묘사한 것으로 이야기가 담긴 것들이었다. 1890년대 중반부터 카사트킨의 작품에 변화가 오는데, 산업 현장들을 주제로 방향을 돌린 최초의 러시아 화가 그룹 중 한 명이 된다. 그의 작품에 적갈색과 청색이 많이 등장했고 붓 터치에는 힘이 넘치기 시작했다.
1894년, 서른 다섯의 나이로 카사트킨은 자신이 졸업한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학교의 선생님이 된다. 모교에 선생님으로 부임하는 화가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정말 부럽다. 선전 문구를 흉내내면 ‘기쁨 두 배’가 아닐까 싶습니다. 1890년부터 카사트킨은 모스크바 미술애호가 협회를 비롯 여러 곳에 정기적으로 작품을 전시한다. 이 때 톨스토이와 친분을 쌓게 되고 자주 톨스토이가 있는 농장을 방문, 많은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은메달을 수상한다. 카사트킨은 여행을 아주 많이 한 화가다. 러시아 전역을 자주 여행했는데 그 범위와 연대를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카서스와 우랄 산맥을 비롯 파리와 베를린 그리고 1901년부터는 매년 이탈리아를 찾았다. 그 외에도 터키와 영국, 오스트리아,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그의 발길이 닿았으니까 대단한 에너지를 가졌던 것 같다. 1905년 1월 9일, 열악한 근무 환경과 낮은 임금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러시아 황제가 있는 동궁 앞에 모여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곧 이어 군인들의 발포가 이어졌고 수 많은 사람들이 피를 뿌렸다. ‘피의 일요일’이었고 1905년 러시아 혁명의 시작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혁명에 눈을 뜬 카사트킨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그 선두에 서게 된다.
1917년 10월, 마침내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다. 카사트킨은 거리에 화실을 차리고 이 혁명 성공을 위한 축제의 디자인에 참여한다. 1924년, 영국 내 프롤레타리아 투쟁을 묘사하기 위해 영국과 웨일즈를 찾기도 한다. 화가와 혁명가가 동시에 그 몸 안에 있었나보다. 1929년,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 해, 생애 처음으로 모스크바에서 개인 전시회를 개최한다. 아마 그에 대한 세상의 축하가 아니었을까 싶다. 카사트킨은 19세기 비평적 사실주의와 혁명 러시아의 예술을 연결하는 고리라는 평을 받고 있다. 끝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움직이는 것이 예술의 속성 중의 하나라고 보면 예술가도 혁명가라고 할 수 있겠다.
카사킨은 러시아 제정시대에서 소비에트 사회주의 화가로 변신한 성공적인 예이다.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창시한 선구자로서 미술계의 '고르키'라 불린다. 부친은 판화가이자 석판화가였다. 모스크바 미술, 조각, 건축 학교를 졸업할 때 "교회문 앞의 거지들"로 메달을 받았다. "이동파" 회원이었고, 1894년부터 1917년까지 모교의 교수로 재직했다. 30년 간 이반 사틴의 달력, 교육용 석판화에 삽화를 담당했고, 농노해방령(Emancipation Reform) 50주년을 기리는 백과사전과 "그림 속의 러시아 역사" 전집 제작에 관여했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그가 가르치던 황립예술학교가 폐쇄되고, 1923년에는 최초의 "공화국 인민예술가"로 호칭됐다. 1924년 카세킨은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노동자 계급의 삶을 기록했고, 2년 후 "혁명박물관"을 위한 초상화들을 그렸다.
카사킨은 1930년 "혁명박물관"에서 자신의 최근작을 소개하던 중 급사했다. 향년 71세. 1956년 소비에트는 그를 우표로 기렸고, 1971년 다시 카사킨의 여성 광부 그림을 우표로 발행했다.
[영상] Nikolay Alexeyevich Kasatkin 작품 모음
The cranes are flying. 1891. by Alexei Stepanovich Stepanov. canvas, oil, 620 x 110 cm. Tretyakov Gallery Room 36
알렉세이 스테파노프 (Alexei Stepanovich Stepanov 1858 ~ 1923)는 러시아 장르 화가, 일러스트 레이터 및 미술 교사였다. 그는 이동파(Peredvizhniki) 회원이자 "러시아 예술가연합"의 창립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귀족 출신이었고 크림 전쟁에서 장교로 봉사했다. 공립학교 교육을 마친 후 그는 Konstantin Surveying Institute에 들어가 1879년 공식 측량사로 졸업했다. 1880년부터 1883년까지 그는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학교에서 Illarion Pryanishnikov 와 Evgraf Sorokin이 주관하는 수업을 받았다.
1888년에 그는 이동파와 함께 전시를 시작했고, 이듬해 그의 그림 "Moose Herd"는 Pavel Tretyakov 가 구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렌틴 세로프(Valentin Serov)는 스테파노프가 그의 옛 모교인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학교에서 가르치도록 그를 초대했다. 그는 나중에 교수로 지명되었고 1918년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1894년에 그는 미술 수집가 니콜라이 메딘체프(Nikolai Medyntsev 1841-1904)와 그의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 독일, 이탈리아 북부, 프랑스를 방문하여 인상파의 영향을 받았다. 이듬해 그는 메딘체프의 딸인 류드밀라(Lyudmila)와 결혼했다. 1903년에 그는 이동파에서 나와 "러시아 예술가연합"을 결성한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2년 후, 그는 그의 그림 "아침 인사"로 임페리얼 아카데미에서 "아카데미션"칭호를 받았다.
[영상] Alexei Stepanovich Stepanov 작품 모음
Old Suram pass. by Alexander Alexandrovich Kiselyov. Tretyakov Gallery Room 36
알렉산더 키셀료프 (Alexander Alexandrovich Kiselyov 1838-1911)는 러시아의 풍경화가였다. 그는 러시아 해군 요새의 군대에서 태어났으며 생도군단(Arakcheev Cadet Corps) 에서 첫 번째 학교 교육을 받았다. 1852년에 그는 제2 상트 페테르부르크 생도군단으로 편입되었지만 1858년 훈련 과정을 마치기 전에 사임하여 상트 페테르부르크 주립대학에 입학했다. 학교는 1861년 학생 불안의 시기에 일시적으로 문을 닫아 제국 예술 아카데미로 편입했다. 1864년에 그는 "Artist Third-Class"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듬해에 그는 결혼하여 하르키우(Kharkiv)로 이사하여 그곳 지방은행에서 일했다.
1875년에 그는 이동파( Peredvizhniki )의 회원이 되었다. 2 년 후, 키셀료프는 모스크바로 이주하여 소녀들을 위한 문법 학교에서 가르쳤다. 수년 동안 그는 러시아와 코카서스를 돌아다니며 모스크바에 있는 집에서 완성할 그림을 스케치했다. 1893년에 그는 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임명되었고 1897년에 교수가되었다.
The Return Journey, 귀환 여행. by Abram Efimovich Arkhipov Abram Efimovich Arkhipov The Return Journey painting - The Return Journey print for sale
아브람 아르크니포프(Abram Efimovich Arkhipov 1862-1930)는 러시아의 사실주의 화가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삶에 지친 러시아 여성들이 강건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아르크니포프는 러시아 전통 드레스와 민족 의상을 차려입은 농부들을 활기찬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아르크니포프는 모스크바 동남쪽 랴잔이라는 지역의 외딴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여 열 네 살이 되던 해, 그의 부모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모스크바 종합 예술학교을 다니도록 했다.
공부를 시작한지 7년이 지난 1883년, 아르크니포프는 상트페테스부르그에 있는 왕립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면서 제작한 작품들은 왕립 아카데미가 영구 소장품으로 지정할 정도로 뛰어 났으며, 1890년, 아르크니포프는 이동파에 가입, 19세기 후반 러시아 미술의 역할은 대단했다.
물론 화풍은 사실주의에서 벗어나지는 않았고 화가로서의 연륜이 더 해지면서 그의 작품은 시적인 느낌이 강해졌고 작품의 특징 중 상황이나 인물의 행동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삶에 지친 러시아 여인들의 모습이 담긴 풍속화를 그리던 아르크니포프는 1900년대부터 러시아 북부와 백해 (White Sea) 해변가 풍경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그리기 시작, 러시아에 대한 애정과 헌사가 담긴 고요하고 장중한 그림을 그렸던 화가였다. 1924년, 아르크니포프는 소련예술가 동맹에 가입하여 인민 예술가 칭호를 받은 첫 그룹에 그의 이름을 올려 놓는다.
[영상] Abram Efimovich Arkhipov : A collection of 59 paintings (HD)
After the Storm, Date unknown ,oil on canvas, Lviv National Art Gallery (Ukraine - Lviv)
Amsterdam, Date unknown. oil on panel.
Amsterdam by Moonlight,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Amsterdam by Night, Date unknown ,oil on paper, Private collection
The Annunciation Monastery in Nizhny Novgorod, Date unknown , penci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rcaishon, Date unknown ,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rcaishon, Date unknown ,oil on panel, Irkutsk Regiona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Irkutsk)
The Artist's Studio, Date unknown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t the Cemetery, Date unknown , Watercolor, Private collection
Baden-Baden, Date unknown , penci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aden-Baden. Haymakers,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Baltic Sea, Date unknown , oil on canvas.
The Battle of the Vladimir Frigate with a Turkish-Egyptian Ship, Date unknown ,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Boats, Date unknown ,oil on panel, Karelia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Petrozavodsk)
Bois de Boulogne, Date unknown ,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Breton Lugger,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uilding of a Dam,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Champagne, Date unknown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Cityscape, Date unknown , oil on canvas, Kharkov Museum of Art (Ukraine - Kharkov)
Constantinople,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Dieppe, Sunset, Date unknown ,oil on canvas, Stavropo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avropol)
Dieppe, Sunset, Date unknown ,oil on canvas, Chelyabinsk State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Chelyabinsk)
Durkheim,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Embankment in Constantinople, Date unknown, oil on panel, Omsk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Omsk)
Emperor Nicholas I on the Nevka Steamship, Date unknown ,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Emperor Nicholas Passenger Ship in the Black Sea, Date unknown ,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Eruption of Vesuvius, Date unknown , oil on canvas, Buryatia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Ulan-Ude)
Evening, Date unknown, oil on panel.
Evening in Moscow, Date unknown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Evening in Peterhof, Date unknown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Farm in Veules. Autumn, Date unknown ,oil on canvas,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Fecamp,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Fecamp,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Fishing Boat, Date unknown , Private collection.
Fishing Boats,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Forest Path, Date unknown , Watercolor, Private collection
Haystacks, Date unknown ,oil on canvas, Nizhny Tagil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y Tagil)
Holland, Date unknown ,oil on canvas, Vladikavkaz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Vladikavkaz)
Honfleur, Date unknown , Watercolor, Tula Regiona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Tula)
The Ilya Muromets Frigate and the Kamchatka Steamship, Date unknown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In the Park, Date unknown ,oil on canvas, Vladikavkaz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Vladikavkaz)
Italian Landscape, Date unknown ,oil on canvas, Vladikavkaz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Vladikavkaz)
Italian Landscape,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Journey to Oberammergau, Date unknown , Watercolor, Private collection
Jungfrau Mountain, Date unknown ,oil on paper, Nizhny Novgorod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i Novgorod)
Kazan, Date unknown ,oil on canvas, Poltava Regional Art Museum (Ukraine - Poltava)
Kissingen. The Waterfall, Date unknown ,oil on caraboard,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attle Of Sinop, Date unknown.
Maiden's Tower, Date unknown ,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Marina,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arina,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Market, Date unknown, oil on canvas, Kharkov Museum of Art (Ukraine - Kharkov)
Merz-Treport,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Monastery, Date unknown, oil on canvas, Penza Regional Picture Gallery (Russian Federation - Penza)
Monastery on the Riverbank, Date unknown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onte Carlo, Date unknown ,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ontmorency, Date unknown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oonlit Night in Constantinople, Date unknown, oil on canvas, Stavropo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avropol)
Moonlit Night in St. Petersburg, Date unknown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oonlit Night in Venice, Date unknown, oil on canvas, Tropinin and Contemporary Moscow Artis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Moscow)
Moonlit Night on the Neva, Date unknown , oil on panel, Astrakhan State Picture Gallery (Russian Federation - Astrakhan)
Morning in Dieppe Harbor, Date unknown ,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oscow, Date unknown ,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Moskva River near Zvenigorod, Date unknown ,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Moskva River near Zvenigorod, Date unknown ,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osque in Constantinople, Date unknown , oil on canvas, State Fine Arts Museum of the Republic of Kazakhstan (Kazakhstan - Almaty)
Naples, Date unknown , oil on canvas, Dagestan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Makhachkala)
Nice, Date unknown ,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Night in Venice, Date unknown ,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Night Service in the Kremlin, Date unknown , oil on canvas, Krasnoyarsk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Krasnoyarsk)
Nizhny Novgorod, Date unknown , oil on canvas,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Nogent-sur-Marne, Date unknown , oil on panel, Art Museum of Dnepropetrovsk (Ukraine - Dnepropetrovsk)
Nogent-sur-Marne,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Normandy Coast, Date unknown , oil on panel, Nizhny Novgorod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i Novgorod)
On the Road to Oberammergau, Date unknown , Watercolor, Private collection.
Oostende, Date unknown ,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Ostende, Date unknown , oil on cardboard, Rostov Regional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Rostov-on-Don)
The Outskirts of Paris, Date unknown , oil on panel, Nizhny Novgorod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i Novgorod)
The Outskirts of the Hague, Date unknown ,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Palermo, Date unknown , oil on cardboard, Buryatia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Ulan-Ude)
Palermo, Date unknown , oil on cardboard, Rostov Regional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Rostov-on-Don)
The Pier, Date unknown , oil on cardboard, Buryatia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Ulan-Ude)
Pier in Amsterdam, Date unknown , oil on paper, Astrakhan State Picture Gallery (Russian Federation - Astrakhan)
Port d'Anzio, Date unknown, oil on canvas, Stavropo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avropol)
Port of Alassio, Date unknown,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Port of Marseille, Date unknown, oil on panel, Sumy Art Museum (Ukraine - Sumy)
Port on the Seine, Date unknown, oil on panel,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Ragaz, Date unknown,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Razboinik Frigate, Date unknown ,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The Revel Battle, 1790, Date unknown,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Rhine in Bonn, Date unknown,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Russian Fleet, Date unknown,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Sailing Boat, Date unknown, Private collection.
Sailing Boat, Date unknown, oil on panel, Kostroma State Museum (Russian Federation - Kostroma)
Sailing Ship, Date unknown,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aint-Marcouf, Date unknown, oil on cardboard, Karelia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Petrozavodsk)
Saint Martin, Date unknown,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aint-Valery, Date unknown,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avona, Date unknown, oil on panel,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Portrait of the painter Alexey Petrovich Bogoliubov, 1876,
By Ilia Repine, oil on canvas, 117 X 90 cm,
러시아 국민화가 일리야 레핀이 그린 알렉세이 보골류보프 초상화. 알렉세이 보골류보프는 Novgorod Gubernia 의 Pomeranie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은퇴한 대령 표트르 가브리일로비치 보골류보프였다. 보골류보프의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철학자이자 사회비평가 Alexander Radishchev였다.
1841년 보골류보프는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러시아 해군에서 복무하고 함대와 함께 여러 국가를 여행했다. 1849년에 그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예술아카데미에 입학해서 Maxim Vorobiev 밑에서 공부했다. 보골류보프는 바다의 화가 Ivan Ayvazovsky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853년에 그는 메이저 금메달로 아카데미를 마쳤다. 그는 해군 장교로 은퇴하고 해군본부의 예술가로 임명되었다.
1854년부터 1860년까지 그는 유럽을 여행하며 많은 일을 했다. 보골류보프는 1860년 러시아로 돌아와 아카데미에서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교수직을 받았다. 얼마 동안 그는 아카데미에서 가르쳤고 1860년대에 그는 볼가 강을 따라 여행했다. 그의 그림은 낭만주의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 그 요소를 자연의 확고한 사실주의로 대체했다. 1871년에 그는 Imperial Academy of Arts 에 선출되었다.
Portrait of the painter Alexey Petrovich Bogoliubov, 1882. By Ilia Repine, oil on canvas, 65 x 53 cm 러시아 국민화가 일리야 레핀이 그린 알렉세이 보골류보프 초상화.
1870년부터 그는 이동파 미술 운동에 가까워 졌고 모든 전시회에 참여했다. 그는 이동파 이사회 멤버가 되었지만 운동의 다른 구성원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사회적 생각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1873년, 보골류보프는 동료 순회자들과 연대하여 아카데미를 떠났다. 그는 심지어 로마에 대안적인 러시아 예술 아카데미를 만들려고 했다.
1873년 이후 보골류보프는 그의 심장 상태 때문에 주로 파리에 살았다. 그의 집은 마치 러시아 기숙사 같았다. 그의 집에 빈번한 방문객으로는 Ivan Turgenev, Ilya Yefimovich Repin, Vasily Polenov, Mark Antokolski, Vasili Vasilyevich Vereshchagin 등이 있었다.
1885년, 보골류보프는 그의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사라토프에 Radischev Art Museum 이라는 미술관을 열었다. "러시아 최초의 혁명가"인 Alexander Radishchev의 이름을 따서 박물관의 이름을 짓는 것은 당국에 직접적인 도전이었다. 보골류보프는 허가를 얻기 위해 법적 싸움을 견뎌야 했다. Bogolyubov는 1896년 2월 3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그의 죽음 후, 그의 모든 돈과 자본과 학교 등은 Bogolyubov의 회화 학교에 기증되었다.
The Battle in the Monastery Bay, 1832, 1841,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Mercury Cutter Seizing Sweden's Venus Frigate, 1789, 1845,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Capturing of Swedish 44 gun frigate Venus by Russian 22 gun cutter Merkuriy of June 1, 1789, 1845, oil on canvas,
The Pallada Frigate, 1847, Watercolor,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Kamchatka Frigate, 1848,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Venice, 1850,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Wooded Riverbank, 1850, oil on canvas, Ples State Museum-Reserve (Russian Federation - Ples)
Mosque in Istanbul, 1850, oil on canvas, 77 x 58.5 cm,
Palermo, 1850,
Shipwreck, 1850, oil on canvas, 95 x 63 cm.
St. Petersburg at Sunset, 1850, oil on canvas, 151 x 103 cm.
Venice, 1850.
Venice at night, 1850.
Kronstadt, 1851, oil on canvas, Arkhangelsk Regional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Arkhangelsk)
The Mercury Cutter Seizing Sweden's Venus Frigate, 1789, 1851,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Storm in Menton,1851,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nice, 1851, oil on canvas, Odessa Fine Art Museum (Ukraine - Odessa)
A View of Naples, Italy, 1851,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View of Smolny Monastery, St. Petersburg, 1851, oil on canvas, National Art Museum of the Republic of Belarus (Belarus - Minsk)
A View of Smolny Monastery, St. Petersburg, 1851,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The Imperial Yacht 'Alexandria', 1852 Watercolor,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Le Havre, 1852,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A View of Revel, 1852, oil on canvas, Tyumen Regional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Tyumen)
The Battle of Athos, 1807, 1853,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Finland, 1853,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Lighthouse in Revel, 1853, oil on canvas, Perm State Arts Gallery (Russian Federation - Perm)
Tallinn Harbor, 1853, oil on canvas, Kadrioru Kunstimuuseum (Estonia - Tallinn)
A View of Revel, 1853, oil on canvas, Cherepovets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Cherepovets)
State Vladimir-Suzdal Historical Architecture and Art Museum-Reserve (Russian Federation - Vladimir)
After the Rain, 1865,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Mountain Landscape, 1865,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On the Tamina River, 1865,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River in Ragaz, 1865,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attle at Osel Island, 1719, 1866,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Battle near Kronstadt, 1790, 1866,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First Battle of the Russian Fleet, 1719, 1866,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Sea Battle, 1866, pen and ink,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Senyavin Battle, 1866, pen and ink,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lley, 1867,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Farm in Pornic, 1867, pen and ink,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Gurzuf, 1867,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High Tide in Pornic, 1867,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Nevka Steamship, 1867, Watercolor,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Oak Trees, Pornic, 1867,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Pine Grove in Pornic, 1867,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Sailing Boat, 1867, oil on canvas, Fine Arts Museum of the Republic of Mordovia (Russian Federation - Saransk)
A View of St. Petersburg, 1867.
A Windmill, 1867,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irch Grove, 1868,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End of the Alexander Nevsky Frigate, 1868,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Alley in Vichy, 1870,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Evening in Saint Malo, 1870,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Outskirts of the Hague, 1870,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Piazetta, Venice, 1870, oil on canvas, Irkutsk Regiona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Irkutsk)
Saint Malo, 1870, oil on canvas,Odessa Fine Art Museum (Ukraine - Odessa)
Seascape with a Sailing Boat, 1870, Private collection
Still Life, 1870,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torm in Oostende, 1870,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ules, Normandy, 1870,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ichy, 1870,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ichy, Midday, 1870,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View in Normandy, 1870.
Villa in Vichy, 1870,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Washerwomen in Vichy, 1870,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molny as seen from Bolshaya Okhta, 1879.
Forest in Veules, Normandy, 1871,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A Stormy Sea, 1871,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Cliffs in Brittany, 1872,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In the Park, 1872,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Lido, 1872, oil on canvas, Odessa Fine Art Museum (Ukraine - Odessa)
The Mouth of the Neva, 1872, oil on canvas, 54.5 x 110 cm,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The Mouth of the Neva River, 1872,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Peter the Great Bicentennial Celebration on the Neva, 1872, oil on canvas, 121.6 X 194.5 cm.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Venice, 1872, Watercolor, Perm State Arts Gallery (Russian Federation - Perm)
Venice, 1872,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nice. Midday, 1872,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Dardanelles, 1872, oil on canvas, Kramskoy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Voronezh)
House in Franzensbad, 1873,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Outskirts of Vienna, 1873,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Park Liechtenstein in Vienna, 1873,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Washerwomen in Franzensbad, 1873,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Watermill in Gorki, 1873,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oats in Etretat, 1873,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Fishing Boat, Etretat, 1873,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영상] Alexey Bogolyubov: A collection of 467 works (HD)
Pōkarekare ana, ngā wai o Waiapu Whiti atu koe hine, marino ana e. E hine e, hoki mai ra Ka mate ahau i te aroha e.
Tuhituhi taku reta, tuku atu taku rīngi Kia kite tō iwi, raru raru ana e. E hine e, hoki mai ra Ka mate ahau i te aroha e.
E kore te aroha, e maroke i te rā Mākūkū tonu i aku roimata e. E hine e, hoki mai ra Ka mate ahau i te aroha e.
Whati whati taku pene, kua pau aku pepa Ko taku aroha, mau tonu ana e. E hine e, hoki mai ra Ka mate ahau i te aroha e
- 연가 -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그대 오늘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도 아름답지만 사랑하는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이 노래는 뉴질랜드 북섬 로토루아의 로토루아 호수에 살던 마오리족의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호수섬 모코이아에 살던 휘스터족 소족장의 아들 트타네카이는 육지에 사는 아리족 대족장의 딸 히네모아를 짝사랑하고 있었지만 1년에 한번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대축제 때 멀리서 바라만 볼 뿐 신분격차로 인해 차마 고백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실 히네모아 역시 트타네카이를 연모하고 있었으며 이를 알게된 한 사람의 중재로 인해 결국 만나게 된다.
서로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은 둘이 결합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기회를 노렸으나, 이미 눈치를 챈 아리족 사람들에게 감시를 받게 된다. 어느 폭풍우 치는 날 히네모아는 더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카누를 타고 호수섬 모코이아로 건너가기로 결심하나 아리족 사람들이 만약을 위해 카누를 전부 육지로 올려 놓아서 카누를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
히네모아는 이에 굴하지 않고 반드시 호수섬을 건너가기로 결심하고 폭풍우 치는 밤에 헤엄을 치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일설에는 트타네카이의 전통 플롯 소리에 따라) 호수섬에 도착한 히네모아는 트타네카이의 천막으로 들어가고 놀란 트타네카이와 히네모아는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
다음날 아침 휘스터족 사람들이 모두 모여 들었으나 트타네카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족장은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는데 무슨 큰일이 벌어진 모양이라고 트타네카이 천막으로 사람을 보내 확인하게 한다. 그 사람이 히네모아를 발견하고 달려오자 모두들 트타네카이 천막으로 가서 놀라면서 기뻐하며 두 사람을 축하해 줬으며 두 사람은 행복한 여생을 보내게 된다.
1900년대 초반까지 트타네카이와 히네모아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 지역에 살았다고 한다. 노래는 남자인 트타네카이가 부른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남한을 지원하기 위해 온 마오리족들에 의해 전파된 것이 한국어 가사로 번안되었다.
<Room 32-34> 20세기 모더니즘 초기 작품 ㅡ 미하일 브루벨, 러시아 대표적인 상징주의 작가
Princess Reverie, 리베리 공주. 1896.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750 x 1400 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한 개 층의 중앙 홀을 꽉 채운 작품을 만난다. 트레챠코프 미술관에서 브루벨의 전시장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 미하일 브루벨은 러시아 상징주의의 대가이자 아르누보 예술의 최고 정점을 이룬 작가이며 러시아 모더니즘의 시작을 연 천재 화가다.
그는 세기말의 암울한 감수성이 반영된 우울한 영혼의 천사와 악마를 탄생시킨다. 입체적인 붓터치와 기하학적인 무늬, 강렬한 색채를 통해 기존의 사실주의 기법에서 과감히 탈피한 브루벨의 작품들은 러시아 미술 혁명의 대표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마몬토프(아브람체보파의 후원자)를 만나면서 브루벨의 천재성은 벽화, 무대 미술, 의상 디자인, 삽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그의 창작물은 러시아 미술이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교량 역할을 하게 되며 많은 작가들에게 예술적 영향을 끼친다.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미하일 브루벨 (Mikhail Vrubel) 작품 전시실
미하일 브루벨은 러시아의 옴스크, 즉 시베리아의 어느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리야 레핀보다 10년 쯤 뒤에 태어나 19세기 말에 활동한 상징주의 및 아르누보 사조의 화가이다. 시베리아, 그곳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시려오는 <닥터 지바고>의 '라라의 테마'가 귀에 맴맴 돌고, 러시아 민속 악기 발랄라이카 소리가 가슴을 후벼파는 곳이다.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땅 시베리아에서 브루벨은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냈다. 브루벨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미술 실력을 인정 받았지만, 집안의 뜻에 따라 188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한다. 하지만 변호사의 길을 포기하고 그는 임페리얼 아카데미 예술 학교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한다.
1884년 브부벨은 키예프의 키릴로프스키 수도원의 프레스코화 복구 작업에 참여하게 되고, 이 벽화 복원 과정을 통해 향후 자신의 예술 세계를 좌우할 중요한 조형적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그 후 모스크바로 나와 S. I.마몬토프의 오페라극장에서 무대미술을 담당, 일련의 대장식(大裝飾) 패널을 완성하기도 했다. 특히 마몬토프(아브람체보파의 후원자)를 만나면서 브루벨의 천재성은 벽화, 무대 미술, 의상 디자인, 삽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그의 창작물은 러시아 미술이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교량 역할을 하게 되며 많은 작가들에게 예술적 영향을 끼친다.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미하일 브루벨 작품 전시실
그는 그동안 배워온 유럽 전통의 사실적이고 합리적 표현을 넘어 비잔틴 미술 특유의 아름다운 선과 장식적인 면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중세 기독교 미술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세기말의 암울한 감수성이 반영된 우울한 영혼의 천사와 악마를 탄생시킨다. 입체적인 붓터치와 기하학적인 무늬, 강렬한 색채를 통해 기존의 사실주의 기법에서 과감히 탈피한 브루벨의 작품들은 러시아 미술 혁명의 대표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신화 · 성서 · 영웅서사시와 문학작품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그 강렬한 개성과 대담한 구도와 필치 등으로 독자적인 미적 세계를 확립하였다.
1910년 정신병으로 사망하기까지 그의 그림의 화두는 '악마'였다. 브루벨의 등장은 러시아미술계에서 이단아로 불릴만큼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그는 악마 그림을 통한 독창적인 상징주의로 러시아 미술사에 새로운 국면을 전개한 화가였다. 그의 작품은 세기말 사상과 데카당스와 맞닿아 있으며, 비잔틴 미술을 재해석해 새롭게 재창조했다. 브루벨은 회화 뿐만 아니라 음악, 연극 등과 같은 분야를 아우르며 시대를 앞서나간 인물로 평가받았다.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미하일 브루벨 작품 전시실
브루벨의 작품은 초기부터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눈에 띄는 재능을 보여준다. 시베리아의 극단적인 자연 환경 속에서 어린시절 형제 자매의 죽음은 그에게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어둡고, 서늘하다.
브루벨은 초기 크리스트 미술을 바탕으로 동방의 문화를 흡수한 헬리니즘 미술, 고대 아시아와 페르시아 왕조의 미술이 섞인 비잔틴 미술에 매료되었다. 비잔틴 미술은 화려하고 장엄하지만 정신적이고, 영적인 세계를 중시하는 미술이다. 브루벨은 그 중후하고 선명한 색채, 화려한 장식을 자신의 그림 속에 담아 낸다. 비잔틴 미술의 또 하나의 특징인 화려한 모자이크가 그의 작품에서 종종 보여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1890년부터 브루벨은 모스크바에서 활동한다. 그는 아르누보적인 그림, 도자기, 스테인드글라스, 건축, 의상, 무대 제작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같은 해 브루벨은 러시아의 시인 레르몬트프(Lemontov)의 낭만적인 시와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그 유명한 '악마' 시리즈를 발표한다. 대표작으로 <악마>(1890) <술탄왕 이야기>(1900) <라일락>(1900) 등이 있으며, 도기나 유리를 소재로 한 작품 등도 남겼다.
Princess Reverie. 리베리 공주. 1896.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750 x 1400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시인의 악마는 아름다운 공주를 사랑했다. '타마라'라는 공주는 그를 두려워 하면서도 마침내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랑의 밤이 지나자 그녀는 싸늘한 시신으로 변하고, 커다란 마음의 고통을 안은 이 악마는 그녀의 영혼을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나타난 천사가 그녀의 영혼을 데리고 가버렸고 악마는 그녀의 영혼을 따라 신 앞에 나가고 싶었지만 악마로서는 허용되지 않은 신성한 곳인 신 앞에 갈 수 없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동정 받지 못하고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에게조차 버림받은 악마, 브루벨은 그 숙명적인 존재를 슬프고 고독하게 표현했다.
브루벨은 중성적인 얼굴에 뾰족한 귀, 노을지는 하늘과 화려한 꽃을 배경으로 깍지 낀 손으로 무릎을 감싸 안은 채 먼 산을 응시하는 악마를 창조해 냈다. 그의 눈은 우수에 잠겨있고, 마치 눈물이 고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브루벨은 그의 작품 속 악마에 대해 '여성과 남성의 외양을 통합한 영혼, 악하기 보다는 강하고 고귀한 존재로서 고통 받고 상처 입은 영혼' 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에 대해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은 "천재의 매력적인 교향곡으로 악마를 창조했다" 라고 극찬을 했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야생적 추함' 이라고 비판을 하기도 했다.
Princess Reverie. 리베리 공주. Detail (부분)
미하일 브루벨 그는 옴스크 태생으로 쌍트 뻬쩨르부르그 대학에서(1874-1880) 법학을 공부하고 예술아카데미에서(1880-1884) 미술을 공부했다. 그는 러시아의 대표적 상징주의 화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로서 미술 디자이너, 무대화가,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건축가였다. 그의 가족은 러시아, 폴란드, 타타르, 덴마크 등 여러 민족의 피가 섞여 있었다.
그의 여동생 예카테리나와 남동생 알렉산더는 어린시절 죽었고 이것은 그에게 깊은 내적인 상처를 남았다. 그는 라틴, 프랑스, 독일 등의 문학 작품 등을 어려서부터 배웠으며 그림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한때 독일 철학 중에서 특히 니체, 칸트, 쇼펜하우어에게 빠지기도 했다.
젊어서 부터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아 교수들의 만장일치로 1884년부터 1889년까지 키예프의 키릴로프스키 성당의 벽화(프레스코화)를 복원하는작업을 수행했다. 한동안 그가 머물렀던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셰익스피어, 괴테, 레르몬토프 등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강렬하고도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색채와 결정을 이어 놓은 것 같은 퀼트의 패치워크법과 같이 여러 조각을 이어 붙인 것 같은 표현법, 그림의 대담한 구도 등으로 당대 화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확립했다.
브루벨은 "예술세계"협회 회원(1900년부터)이었으며, 예술 아카데미(1905년)의 회원이었다. 1889년부터 아브람쩨보 콜로니에 동참하게 되었다. 1889부터 1891년 사이 마몬또프의 모스크바 저택에서 "앉아 있는 사탄"을 그렸고 마몬또프 가족의 초상화도 그렸다
The Swan Princess, 백조공주, 1900.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42.5 x 93.5 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 <황제 술탄 이야기>에서 백조 공주를 연기한 브루벨의 아내 자벨라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호수처럼 맑고 깊고 커다란 눈을 가진 여인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녀의 눈빛에 빨려들 거 같이 느껴진다. 백조의 새하얀 날개에 투영된 무대 조명빛 같은 색채가 백조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돋보이게 하고 전체적으로 통일된 은빛 색감이 그림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황제 술탄 이야기>는 1900년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작곡한 오페라 작품으로,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원작을, 페루스키가 리브레토를 썼다. 어느 날 악마의 성에서 호박벌의 습격을 받고 있던 가여운 백조를 왕자가 구해 주었는데, 그 백조가 아름다운 공주로 변해 둘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줄거리다. 2막 1장에 나오는 <왕벌의 비행>이 가장 대중적이다.
1896년 브루벨은 당시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했던 오페라 가수 나데즈다 자벨라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는 아내를 위해 그 유명한 오페라 <백조공주>의 무대 세트와 의상 디자인을 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브루벨은 화려하고 조형적인 작품들을 많이 제작한다. 하지만 사랑하던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과 고통으로 1901년 다시 '악마'를 테마로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는 심한 신경 쇠약에 시달렸고, 결국 한 정신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매독 3기로, 근육과 골격이 파괴되기 시작했고, 병마는 이미 뇌까지 침범하여 브루벨은 회복 불능한 상태였다. 그는 1906년부터는 전혀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고, 1910년 매독의 고통속에 생을 마감했다.
브루벨이 무대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에는 부인 '나제즈다 자벨라'와의 만남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96년 그는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한 오페라에서 가수 나제즈다 자벨라의 노래를 듣게 된다. 그녀의 목소리에 반한 브루벨이 무대 뒤로 찾아갔고 반년 후에 둘은 결혼했다. <황제 술탄 이야기>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원작을, 페루스키가 리브레토르를 쓰고 1900년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작곡한 오페라 작품이다. 자벨라는 특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노래를 잘 불렀다. 이 작품 "백조 공주"는 바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황제 술탄 이야기"에서 백조 공주로 분한 아내 자벨라의 의상을 스스로 디자인한 뒤 다시 그림으로 옮긴 모습이다.
어느 날 악마의 성에서 호박벌의 습격을 받고 있던 가여운 벡조를 왕자가 구해 주었는데, 그 백조가 아름다운 공주로 변해 둘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줄거리다. 2막 1장에 나오는 <왕벌의 비행>이 가장 대중적이다.
여기에 동양 미술, 특히 페르시아 카펫에 대한 관심이 겹쳐지면서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거장 알폰스 무하나 구스타프 클림트와는 꽤 다르면서 어딘가 비슷하기도 한 화풍이 완성된다. 어떻게 보면 동양(페르시아)의 영향과 금색(정교회 이콘) 등 화려한 색상이라는 두 사람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셈이다. 브루벨 역시 회화 외에도 색유리화, 도예, 무대미술, 의상 등등에도 탁월한 역량을 보였다.
자신의 부인을 모델로 그린 백조공주는 다른 작품 속의 그 눈빛이면서도 젖어 있는 우수를 표현하는 걸로 충분한, 우아함 가득한 그림이었으나, 그가 그렇게 파들어갔던 그림은 이런 소품과는 뭔가 다른 게 있었다. 좀더 추상적이거나, 많은 부분 중동으로부터 영향받은, 장식적이고 단순화된 문양과 색감 등이 나타나는 여러 다른 작품에서도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이 데몬 시리즈에서 작가가 찾고 싶었던 그 뭔가, 그리고 끝내 구현해내지 못하고 정신병에 빠지게 한 그 뭔가는 사람 속에 뭔가 깊은 감정, 그것이 슬픔이건 절망이건 사람이 겪어야 하는 지독하게 인간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Pan, 판. 1899.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24 x 106.3 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판'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달빛을 등지고 앉아있는 남자는 쉬링크스를 사랑한 반수 반인의 판으로 열심히 구애하지만 요정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 판의 사랑을 피해 갈대로 변해 버린 쉬링크스를 잊지 못한 판은 갈대를 꺾어 피리를 만들고 그녀가 생각날 때마다 불었다 하는데, 사랑을 잃은 판의 마음이 실려 있어서인지 '판의 피리-팬 플루트'는 가냘프고 애절하다. 그렇게 사랑을 잃고 홀로 살아가는 외로운 모습의 판, 절대 고독의 모습으로 블루벨에 의해 탄생된다.
절대 고독 '판', 아르카디아 산자락에 사는 요정 쉬링크스는 아르테미스를 따르며 사냥을 즐긴다. 천사같은 그녀를 보고 우락부락한 얼굴에 염소 다리와 뿔을 가진 괴물 판은 한눈에 사랑을 느낀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쉬링크스에게 열렬히 고백해 보지만 공포의 꽥꽥거림으로 나타나는 판의 목소리에 요정은 필사적으로 도망만 다닌다. 영어의 panic 이란 단어는 이 pan(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판은 존재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인 괴물이었나 보다.
그런 판의 구애에 진저리 난 쉬링크스는 결국 자신을 포기해 버리고 갈대로 변해 버린다. 사랑을 잃어버린 판의 한숨 소리가 갈대 속을 지나 가냘프고 애끊는 소리로 변하니 그 갈대를 엮어 만든 피리는 천상의 아름다운 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끌게 된다. 요정의 이름을 따 '쉬링크스'라고 불리는 판의 피리인 팬 플루트는 그 애절한 음색으로 우리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 준다. 쓸쓸한 음색만큼 슬픈 사연의 악기다.
살다 보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참 많다. 내 속에 너무 많은 내가 다양한 목소리로 싸우지만 그들의 언어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어떤 형태의 옷을 입고 세상과 맞이해야 할 지 몰라 마음 속 테두리에 갇혀 안으로만 잦아들게 된다. 그럴 땐 마음의 쓸쓸함, 고독함을 바위처럼 웅크린 채로 안으로 곰삭아야 한다. 그림의 판처럼 말이다. 그래야 내 안의 쓸쓸함은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게 사랑이든, 슬픔이든, 행복이든, 절망이든.
모두가 절대 고독이란 모습으로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마 음속에 집을 짓게 된다. 브루벨의 <판>을 보면 그런 내 안의 절대 고독이 투영된다. 다가가 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토닥토닥 하며 쓰다듬고 싶어진다. '널 이해할 거 같아’하면서 말이다. 판의 근원적 외로움 또한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쓸쓸함과 같은 모양이다. 사랑을 잃고 홀로 주저앉은 판의 웅크림에서, 그의 텅 빈 눈빛에서, 둥근 어깨에서, 그리고 한 손에 꽉 움켜 쥔 요정의 분신에서 우리의 쓸쓸한 자화상을 보게 된다.
현실적 외로움과 정신적 어려움을 고귀하게 지켜내겠다는 '백석'의 굳은 의지도 브루벨의 '판'이 웅크리고 있다. 백석 또한 자신의 쓸쓸한 내면을 그의 시적 언어로 고백한다. 백석과 판은 서로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우린 그들을 읽으며 공감하며 내 안의 나와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시와 그림은 우리 인생에 최고의 동반자가 되는 거다. 그리고, 백석의 시적 자아와 브루벨의 판이 이렇게 질문 하는 듯 하다. "여러 현실적 어려움 앞에 정신적 고결함을 너는 어찌 지킬 것이냐?"라고 말이다.
넓적하고 순박한 얼굴을 하고 있다. 달이 낮게 뜬 초저녁 판은 피리를 들고 앉아 있다. 유리알같이 파란 눈은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투명하고 텅 비어 있다. 거친 손을 보면 금방이라도 그가 나무 등걸로 변해버릴 것만 같다. 판은 자연력의 상징이다. 그는 사람이면서 짐승이고, 동물이면서 식물이다. '판'과 '백조 공주'는 모두 반인반수로 자연과의 조화 속에 살고 있다. 카오스와 코스모스가 공존하는 보랏빛 시간에 그들은 기꺼이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는 러시아의 전래 동화와 민중 서사시에 담겨 있는 범신론적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
"The Demon Seated" 앉아 있는 악마. 1890.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212.5 x 115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산등성이에 앉아서 서글픈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상념에 잠겨 있는 이 아름다운 청년은 악마다. 팽팽하게 긴장된 근육은 출구 없는 열정의 꿈틀거림처럼 느껴진다. 그는 대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 속에서 길을 잃고 이곳 카프카즈의 돌산 위에 잠시 머물러 있다.
이 작품은 러시아 낭만주의 시인 레르몬토프의 서정시 <악마, 1839>에서 직접 영감을 받은 것이다. 레르몬토프의 악마는 신에 대한 반역으로 낙원에서 쫒겨났다. 추방된 천사를 악마로 만든 것은 바로 세계의 모순과 부조화다. 이 악마는 순수한 악을 표현하는 존재가 아니라 선과 악이 대립하는 구역질나는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영웅적인 반항이다. 그는 지상에서도 천상에서도 위안을 찾지 못하는 데카당이다. 세상과 불화하는 자, '악마'는 브루벨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로서 그의 스타일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세기말의 암울한 감수성으로 브루벨은 빛을 어둠으로 바꾼다. 이것은 보랏빛 시간이다. 브루벨의 다른 작품 <저녁으로> <세이렌> <판> <백조공주> 등에도 이 보랏빛 시간이 표현되어 있다. 레르몬토프의 시구처럼 '낮도, 밤도, 황혼도, 여명도 아닌' 시간이다. 그것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휴지부 같은 시간이다. 모드 것이 혼돈에 빠져 있으며,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시간이다.
그에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라면 이것 "앉아 있는 악마(Демон сидящий)"를 비롯한 악마 시리즈일 것이다.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낭만시에서 영향을 받은 이 그림은 보수적인 비평가들로부터는 거칠고 추악하다는 악평을, 우호적인 후원가들로부터는 천재성이 번득인다는 호평을 받았다. 레르몬토프의 시가 아니더라도 그는 예전부터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어두운 구석이 있었으나 결혼 뒤 생활이 안정되면서 디자인과 관련된 다방면의 작업을 진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27살에 자기를 질투한 젊은 귀족들에 둘러싸여 권총 결투를 하다 사망했던 러시아의 시인 레르몬토프가 믿어지지 않지만, 15살 때부터 구상하고 수정해서 출간했던 서사시 '악마'는 원래 천사였다가 날개를 잃고 (신을 배반하고) 지상으로 축출된 데몬의 이야기이다.
'타마라' 라는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다. 지상에 떠돌던 데몬은 그녀에게 반하고, 그녀 곁에 있고 싶어하고,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어 했다. 그가 데몬임을 알았던 그녀의 두려움과 회피, 그리고 데몬 자신도 알고 있었던 파국에도 불구하고 모든 비극이 그렇듯 둘은 사랑하게 되고,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데몬을 사랑하겠다던 타마라와 첫날 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데몬은 그녀의 죽음을 본다.
살아 있는 순간이 아닌 죽음 이후의 영혼은 신의 것. 그녀의 영혼이라도 자기가 지켜주고 싶었으나, 손가락 사이로 물이 쏟아지듯 데몬이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신의 하늘로 타마라의 영혼은 올라가고 데몬은 지상에 남겨졌다.
부르벨의 그림은 홀로 있는 데몬의 눈에 통곡이나 분노가 아니라 공허하게 생명이 꺼져가는 것 같은 묘사를 해 놓았다. 너무 깊어서 감당이 안 되는 슬픔, 돌덩어리를 닮은 사람의 몸, 노을을 닮은 사람의 눈, 이리도 모질게 구는 신과 악마로 강등되어서도 굽히지 않는 그 아래의 존재. 19세기는 유달리 영웅들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수많은 영웅상이 그려졌었다.
레르몬토프의 데몬은 인간을 뛰어 넘는 하나의 영웅이었겠지만, 부르벨의 데몬은 굴복하진 않았으나, 끝내 부러지고 죽어가는 모습이다. 짜르의 폭정에 대항하던 혁명가들이 드디어 등장하는 제정 러시아에서, 난폭한 신 앞에 선 인간을 표현했던 데몬은 그 절망 때문에 인간적이었다.
어떤 말로도 위로 받을 수 없는 고독, 그 무엇과도 소통하지 않으려는 고집,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인내하는 비애같은 것이 앉아 있는 모습에서 배어난다. 당시 세계를 풍미했던 데카당스, 아르누보의 러시아적 퇴폐미가 브루벨의 손에 의해 새로운 빛깔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Demon Downcast, 상처입은 악마. 1902.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39 x 387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추락하는 악마. 가로로 매우 길다. 가운데 눈과 머리가 보인다. 브루벨의 악마 시리즈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이다. 그림 속 악마는 온 몸이 심하게 상처받은 듯 목이 꺾여 있고 몸은 일그러져 있다. 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온 몸으로 감내하는 예술가의 아픈 현실이 그대로 그림에 배어 있는 듯 악마는 상처받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부루벨은 이 악마에 자신을 투영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다했다 하는데,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이미 정신병 증상이 악화되어 <상처 받은 악마>를 마지막으로 악마 시리즈를 더 이상 그릴 수 없었다 한다. 그래서인지 그림을 통해 고뇌하고 절규한은 듯한 작가의 울부짖음이 더욱 절절하게 느껴진다.
"패배한 악마 (Демон поверженный)"의 끝없는 작업은 그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급기야 신경 쇠약으로 정신 병원에 입원되기에 이른다. 더불어 매독에 의한 신체의 손상이 시작되고 아들이 죽으면서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던 그는 시력을 잃으면서 작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결국 1910년 사망했다.
The Lilacs, 라일락. 1900.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60 x 177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화사하게 만개한 연보라빛의 라일락이 달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난다. 반복되는 그림의 터치를 보고 있자면 라일락의 알싸한 향기가 그대로 배어져 나오는 듯하다. 브루벨은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중 <마르가리타의 정원>을 듣고 여름 저녁의 정취를 떠올리며 이 그림을 그렸다 한다.
Lilacs, 라일락 꽃. 1901.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브루벨은 작품 초기부터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눈에 띄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시베리아의 극단적인 자연환경 속에서 그가 겪었던 어린 시절 형제 자매의 죽음은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어둡고, 서늘했다. 브루벨은 초기에 기독교 미술을 바탕으로 동방의 문화를 흡수한 헬레니즘과 고대 아시아 및 페르시아 왕조의 미술이 섞인 비잔틴 미술에 매료되었다. 비잔틴 미술은 화려하고 장엄하지만 정신적이고, 영적인 세계를 중시했다. 브루벨은 그 중후하고 선명한 색채, 화려한 장식을 자신의 그림 속에 담아 내었다. 비잔틴 미술의 또 하나의 특징인 화려한 모자이크가 그의 작품에서 종종 보여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미카엘 브루벨 작품에는 두 점의 라일락이 있다. 하나는 1900년에 완성되었고 다른 하나는 1901년에 미완성으로 작성되었다 . 작가 자신은 “작년의 라일락은 실물을 그림의 스케치로 언급합니다. 거기에서 나는 단지 무언가를 잡을 수 있었고 , 정말로 더 잘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 이야기를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라고 말한다.
오른쪽 하단에는 벤치가 있고 소녀가 벤치에 앉아 있다. 작가가 이 그림을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캔버스에 준비용 목탄 그림만 보인다. 미카엘 브루벨은 모든 세부 사항을 보기 위해 매우 신중하게 그림을 들여다 보게 한다. 사물의 윤곽은 어둠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곳의 예술가는 창조주와 같이 혼돈에서 세상을 창조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캔버스에 바른 페인트는 세상이 생기는 물질이 되고 붓은 도구가 된다. 그리고 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특정 생물이나 식물이 원자의 조합에서 태어나므로 브루벨에게는 우연이 없지만 엄격한 법이 있다. 원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만 가능한 유일한 순서와 리듬으로 캔버스에 페인트칠을 한다.
Faust. 1896.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After the Concert Portrait of Nadezhda Zabela. 1905. by Mikhail Vrubel. charcoal, paste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Flight of Faust and Mephisto. 1886.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Portrait of a Businessman K. Artsybushev, 1896,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The Fortune Teller. 1895,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Portrait of S. Mamontov, the Founder of the First Private Opera, 1897.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42.5 x 187 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Prophet, 1898, by Mikhail Vrubel. illustratio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Mary 공주와 Grushnitsky. 1890-1891. Tretyakov Gallery Room 32-34 검은 수채화, 백색 도료, 잉크, 세피아, 브러시, 펜, 흑연 연필 종이에.
M. Yu의 소설 삽화. Lermontov의 "우리 시대의 영웅" 브루벨의 예술적 유산에서 그래픽의 역할을 과대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The Demon Defeated (1902) 이후, 그는 사실상 유화로 전환하지 않았고 그래픽을 통해서만 세계를 인식하고 묘사했으며 동시에 이전에는 미술이 접근할 수 없었던 한계와 깊이에 도달했다.
Lermontov의 "Izmail-Bey". 자라와 이스마엘에게 작별을 고하십시오. M. Yu의 시 삽화. 검은 수채화, 백색 도료, 잉크, 세피아, 브러시, 펜, 흑연 연필 종이에.
1900년대 초 브루벨의 열정적인 다큐멘터리 연필 초상화에서는 미래의 "표현주의"와 20세기의 다양한 형태의 "현실주의"가 예견된다. 그리고 예술적 예언의 예감이라는 주제가 그의 작품의 평범한 주제 중 하나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Duel of Pechorin and Grushnitsky, 1891, watercolor on paper.
Pechorin 및 Grushnitsky 발표. (M. Yu. Lermontov.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
"우리 시대의 영웅"을 요약하면이 소설 전체를 읽었더라도 이 소설을 더 잘 알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미하일 레르몬토프(Mikhail Yuryevich Lermontov)의 러시아 문학 역사상 최초의 심리학 소설이다. 레르몬토프의 자전적 심리소설로서, 1839년 기록되었고 1840년 Ilya Glazunov에서 출판되었으며 1841년 개정되었다. 러시아 문학의 고전이다.
한 사람의 주인공 페초린의 행동을 중심으로 해서 3인칭 또는 1인칭으로 엮어진 다섯 가지의 일화를 하나의 소설 형식에 묶고 있다. 이것은 제1화 <벨라>, 제2화 <막심 막시므이치>, 제3화 <페초린의 수기>―첫째 <타마니>, 둘째 <공작의 딸 메리>, 셋째 <운명론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하나가 훌륭한 단편을 이루고 있다.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의 전부는 이기주의자이자 고집 센 청년 사관 페초린의 성격에 있다. 그는 20세에 불과하면서도 세상의 모든 것에 환멸을 느낄 뿐, 기쁨을 느끼는 일이 없다. 그의 권태를 구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행동뿐이다. 이상이나 인생의 목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그저 따분함을 벗어나기 위해 한가닥의 들뜬 기분에서 여자의 사랑이나 남자의 우정을 희생시켰고, 속물인 친구를 결투에서 태연히 죽인다. 그러면서도 총명하고 진지한 감정도 지니며, 용감하고 의지가 굳은 복잡한 인물이다. 그의 비극은 자신의 비정상적 정력과 풍부한 재능을 쏟을 목적을 못 지닌 채 이를 부질없이 낭비하는 데에 있다.
페초린은 확실히 전제 러시아 니콜라이 시대의 산물이자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주요 인물상인 ‘사냥꾼’의 하나이다. 그러나 선악을 초월한 ‘무정부적으로 자유분방한’ 그 정신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나 <카라마조프의 형제>의 이반으로 통하는 새로운 타입이기도 하다.
Tamara and Demon. Ill to Lermontov's poem. 1890. by Mikhail Vrubel. Tretyakov Gallery Room 32-34
The Judgement of Paris, 1893,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Mikula Selianinovich and Volha, 1899, by Mikhail Vrubel. majolica, Tretyakov Gallery Room 32-34
At Nightfall, 1900, 저녁.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29 x 180 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Spain, 1894,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영상]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미하일 브루벨 (Mikhail Vrubel) 작품 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