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 후반 그림 <이동파 시대> 

 

Portrait of painter Nikolai Nikolayevich Ghe. 1880. by Ilia Repine. 
by Ilya Repin. oil on canvas. 82.5 x 66.2 cm. Tretyakov Gallery Room 31 

화가 니콜라이 게 (Nikolai Nikolayevich Ghe)의 초상화.
러시아 국민화가 일리아 레핀(Ilia Repine)의 작품이다.


니콜라이 게 (Nikolai Nikolaevich Ge 1831- 1894)는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로 역사적, 종교적 그림으로 유명하다.
니콜라이 게는 조부가 18세기에 러시아로 이민 온 프랑스 혈통의 귀족 가문 태생이다.  
조실부모하고 농노 유모의 손에 컸다.  
키에프와 상 페테르부르그 대학에서 물리학과 수학 전공하다 황립예술학교로 옮긴다.  

니콜라이 게는 우크라이나 사실주의 화가이면서 상징주의자로, 
역사화와 기독교적 주제를 색다른 해석으로 진지하게 탐구했다. 
니콜라이 게의 작품은 점점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어려서부터 물리학과 화학을 공부하던 게(Ge)는 제정(帝政) 러시아 시절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대학 (Kyiv University)과 상트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공부하던 과학도였다. 
20세이던 1850년이 되어서 그동안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고, 뒤늦게 
상트페테르부르크 제국 미술학교에 입학해서 화가 수업을 쌓았다.

 

 “What is truth?”  Christ and Pilate, 진리란 무엇인가? 예수와 빌라도. 1890,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233 х 171cm. Tretyakov Gallery Room 31

<진리란 무엇인가?>는 대위법적인 화면 구성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와 예수. 전자는 등을 보이고 있고 후자는 앞을 바라보고 있다. 
한 사람은 빛을 받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그림자에 싸여 있다. 
빌라도는 자유로운 권력자의 제스처를 하고 있는 반면 예수는 손이 뒤로 결박된 상태다. 
빌라도의 몸집은 다소 뚱뚱한 편이나 예수는 바짝 말랐다. 
두 사람의 이런 대조는 화면을 매우 드라마틱하게 만들 뿐 아니라 
관객이 예수가 처한 상황 속으로 급격히 빨려들게 한다.

그림 속 빌라도는 어둠 속의 예수를 바라보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도대체 네가 말하는 진리란 무엇이냐?”
그림 속 빌라도는 예수를 가소롭다는 듯 쳐다본다. 
그는 예수를 그저 보잘 것 없는 정신병자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이 그림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가 예수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가 그럴 만한 가치조차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묵묵히 빌라도를 바라보는 예수의 눈빛에서 우리는 그가 어떤 말도 할 의사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니콜라이 게의 예수는 결코 패자가 아니다. 
저 높고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를 비롯하여 세상의 영광과 권위로 충만한 
모든 제도와 기득권자들이 승리자가 아닌 것처럼 가난하고 누추하다고 
세상에서 멸시를 받고 있다고 예수가 패자인 것은 아니다. 
그의 침묵은 굴종이 아니며, 그의 슬픔은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토록 지독한 고통을 진리와 양심을 위해 스스로 감내했기에 
니콜라이 게의 예수는 진정한 승리자인 것이다. 

진리가 무엇이냐? What is Truth? 
빌라도의 관저에 잡혀온 예수에 대한 심문 중에 로마 총독 빌라도가 던진 질문이다. 
너는 유대인인데, 네가 그 유대인들의 왕이라면서? 빌라도는 두 번이나 따지고 물었다. 
그런데 네 유대인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다. 
네가 말하는 진리가 도대체 무엇이냐? 
그러나 빌라도는 그 앞에 결박 당해 있는 예수의 다음 답변을 기다리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렸다면 진리가 과연 무엇인지, 인류가 가장 듣고 싶었던, 
들었으면 좋았을, 그 대답을 들었을 텐데. 
그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는 군중들에게 넘겨주었다.  

일반적으로 그림에서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표현할 때 키아로스쿠로 (명암 대조법)를 많이 쓰는데 
선에는 밝은 빛을 주고, 악의 영역에는 어둠을 주어 극적 효과를 내며 주제를 극대화 시킨다.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말이다. 
하지만 니콜라이 게는 그 반대로 표현하여 어둡고 칙칙한 그늘 속에 
버려진 듯한 예수를 표현함으로써 쉽게 얻을 수 있는 진리와 선의 성격을 설명한다. 
진실로 가치있는 진리는 쉽게 얻을 수 없다. 
진정 찾고 고민해야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으로 그림을 통해 그 진실의 성격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림이 시가 되고, 소설이 되고 , 철학이 되고, 그리고 가르침이 된다.
그림을 통해서 힐링을 얻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진리란 무엇인가?>는 한 편의 그림이라기보다는 철학이다.
선한 가르침을 통해 진리를 얻는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인간 본연의 선한 양심을 바탕으로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판단해야 할지 길을 잡아준다.

예수와 빌라도가 마주 보고 서 있다.
한 사람에겐 밝고 화사한 빛이 , 다른 한 사람에겐 그늘과 어둠만이 존재한다.
살찐 빌라도가 앙상히 야윈 예수에게 한쪽 손을 내밀고 거만히 어깨를 으쓱하며 질문을 한다.
"진리가 무엇이냐?"

이 그림은 <요한복음 18장>에 나오는 빌라도와 예수의 대화를 바탕으로 한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네가 왕이냐?"라고 질문을 한다.
이에 예수는 왕이다고 대답하며
"난 진리를 위해 태어났고 그것을 위해 세상에 왔으니 진리를 증언하려 한다.
그러므로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고 따를 것이다"라고 답한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에게 되묻는다
"네가 말하는 진리란 무엇이냐"
예수는 이에 답하지 않고 무섭고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빌라도에게 응한다.

과연 진리는 무엇인가
그림 앞에선 우리에게 작가는 질문에 진지해지라고 한다.
또한 예수에게 거들먹거리는 빌라도의 거만함을 보여주며 부끄러움의 민낯을 가늠케 한다.
그리고 진정 선한 것이 무엇이며 진리는 무엇인지를 고민하라 한다.
어둠 속에서 예수가 세상사 안일하고 편한 것을 찾아 쉽게 야합하는 우리를 꾸짖듯이 쳐다본다.

그림에서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표현할 때 키아로스쿠로, 명암 대조법을 많이 쓴다.
대표적으로 렘브란트의 작품을 들 수 있다.
선에는 밝은 빛을 선사하고 , 악의 영역엔 어둠을 주어 극적 효과를 내며 주제를 극대화시킨다.
그러나 게의 <진리란 무엇인가>는 반대로 진리와 선인 예수 그리스도는 어둠 속에서 묵묵히 서 있다.
살찌고 비단옷을 입은 빌라도는 환한 빛을 등에 업고 진리를 심판하려 한다.
거짓 잣대를 들고 진실인양 선을 묻으려 한다.

그렇다!
작가는 어둡고 칙칙한 그늘 속에 버려진듯한 예수를 표현함으로써
쉽게 얻을 수 없는 진리와 선의 성격을 설명한다.
진정으로 찾고 고민해야만 손에 넣을 수 있는 진리와 선은
자동인출기의 물건처럼 돈을 넣고 누르면 나오는 인스턴트 식품이 아니다.

끝없는 노력과 연구, 자기 성찰을 통해야만 진리에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다.
수많은 빌라도들이 잘못된 선과 도덕의 잣대를 휘둘러
올바른 정신을 좀먹게 하는 현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진리와 선은 고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니콜라이 게는 말해준다.
조금만 주의력을 흩트려도 거짓이 참이 되는 세상이니
어둠 속에 있는 선과 진리를 밝은 곳으로 끌어내는데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는 거다

니콜라이 게는 톨스토이의 정신에 큰 감화를 받아 이 그림을 그렸다.
톨스토이는 내 안에 존재하는 이성으로 선을 찾고 사랑을 실천하는 일,
선한 목적으로 삶을 정진하는 것이 인생이라 말한다.
일신의 안위만을 추구해선 안 되며, 만인의 행복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 말하고, 교회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은 신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예수 또한 인간이므로 그를 신격화해 기도하는 것을 엄격히 반대했다.
사치와 무위도식의 생활에 빠져 있는 타락한 특권 계급을 부정하고
그들을 인간 사회에 불행을 가져다주는 악의 근원으로 규정지었다.
또한 폭력을 기반으로 세워진 국가를 부정하며
그들을 지지하는 교회 세력 , 학문, 예술 모두를 부정한다.

톨스토이를 지지한 니콜라이 게는 <진리란 무엇인가>에서
그리스도는 어둠에 갇혀 신음하는 러시아 민중, 즉 선하고 도덕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자를 대변하고,
극단적 이기심으로 자신의 안위만에 급급한 기득권층을 빌라도로 표현했다
어둠 속에서 두 손이 포박된 예수처럼 진리와 양심을 외치는 자는 외롭고 힘들 수밖에 없다.
차갑고 어두운 현실 속에 내팽개쳐질 때가 많다.
바로 진리와 선은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와 선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해야 올바른 진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것이고,
그 빛이 참다운 진리임을 빌라도와 예수 그리스도를 빌어 분명하게 전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향해 정진하는 삶이 고독하고 힘들더라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톨스토이의 가르침이며 니콜라이 게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사실주의화가들 가운데는 종교적 주제를 다룬 여러 명의 화가들이 있는데, 
그들은 사회, 정치적인 내용을 기독교적 주제에 대비시켜 
그 당시 부패하였던 정부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가하였다. 
이런 분야에서 활동한 화가 가운데 탁월한 사람이 바로 '니콜라이 게'이다.

그는 특히 네덜란드의 바로크 화가 램브란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니콜라이 게는 렘브란트로부터 빛의 효과나 그밖의 기법만을 배웠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렘브란트와 마찬가지로 복음서의 이야기를 통하여 
인간생활의 심오한 드라마를 해명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보고 있는 '진리란 무엇인가?'는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던진 짤막한 질문이다. 
오른편 자색옷을 입은 그리스도는 견딜 수 없는 사회적 억압에서 민중들을 구원하는 
하층 사회의 꿈을 대표하고, 자색옷은 희생, 헌신, 겸손, 고귀함을 표현하고 있으며, 
밝은 빛을 받아 황금색 옷이 빛나는 빌라도의 모습은 
권세, 귀족적 에고이즘, 교만함과 세속적 영화를 의미하고 있다.

물론 권세 있는 편이 오후에 어지러울 정도로 비추이는 태양빛을 받아 
그 당당함이 더욱 빛나고 있지만 그림자 속에서 빛나는 그리스도의 눈초리만큼 빛나고 있지는 않다. 
지금 그리스도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다. 
빌라도는 이런 예수를 답답하게 생각하며 절반은 조롱 섞인 말투로 묻는 것이다.

"진리가 무엇이냐? 네가 주장하는 진리란 겨우 이런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는 것이냐?"
라고 묻고 있지만, 예수는 이 질문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그렇다! 진리가 무슨 변명을 할 것인가? 진리는 변명할 수가 없다. 
진리는 그 자체인데 어떻게 진리가 변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만약 진리가 변명한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침묵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고, 
침묵은 곧 진리가 오히려 심판하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묘하게도 빌라도가 내밀은 손은 예수를 문책하면서 가리키는 손이 아니라, 
예수를 지칭하면서 <당신이 진리입니다!> 하는 듯이 보인다. 
사실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정죄하고 재판정에 예수를 세웠지만 
예수를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그들을 심판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진리이고 그 말씀이 진리이셨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해는 짧다. 
작가는 지금은 비록 빌라도가 오후의 눈부신 태양빛을 받고 있지만, 
곧 빌라도는 어두움에 묻힐 것이고 그 밝은 빛은 
예수님 쪽으로 비추어서 영적인 빛을 발할 것이다. 
이미 그것은 그리스도가 빌라도를 바라보는 눈초리에서 그 빛을 읽을 수가 있다. 
또한 그러한 염원은 작가의 마음 속에서 소원하는 민중을 대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예고하는 것이다. 항상 진리가 승리하는 것이므로.
“ …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 (요한복음 18:37)

 

Maria, sister of Lazarus, meets Jesus who is going to their house, 1864.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와 그들을 만나러 오시는 예수님.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82 x 64 cm. Tretyakov Gallery Room 31

 

Last Supper. 최후의 만찬. 1863.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누군가 서 있다. 
어떤 불길한 예감이 찾아온 듯하다가 어둠 속에 놀란 베드로의 눈과 
호기심 가득한 제자들 사이에 예수가 마지막 만찬의 침상에 비스듬이 누워 있다. 
다가 올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다빈치의 것과는 다른 분위기가 당시의 분위기를 실감하게 한다.
“유다의 검은 그림자가 일으킨 화면의 균열은 마치 <죄와 벌> 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 (균열이라는 뜻의 단어 ‘라스콜’에서 유래)를 떠올리게 한다”

최후의 만찬 Last Supper, 압권이다. 
이제 최후를 맞아들여야 하는 예수의 고뇌에 찬 표정, 즐거운 작별의 만찬 모습은 아니다. 
그 순간 모든 제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불길한 어둠 속의 거음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다. 
정말 놀라운 그림이다. 
전통적인 최후의 만찬 그림은, 서구식 식탁 의자에 두루 앉아 있는 모습이지만, 
니콜라이 게의 최후의 만찬은 예수께서 비스듬히 누워 마지막 만찬을 맞고 있다. 
당시 유대인의 만찬 모습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가 절절한 사실주의 화가이듯이, 얼마나 고증에 충실했던 화가였는지를 보여준다. 

 

Christ and his disciples entered the Garden of Gethsemane after the Last Supper, 1889.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제자들과 게세마네 동산으로 향해 가는 그리스도.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65.3 x 85 cm. Tretyakov Gallery Room 31

 

The Garden of Gethsemane. 게세마네 동산. 1869 년에 사작하여 1880년 완성.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He is Guilty! The Judgment of the Sanhedrin, 그는 유죄다, 산헤드린의 재판. 1892.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잡혀온 예수의 초라한 모습과 벽에 기대어 있는 예수를 능멸하듯 조롱하는 제사장들 
'변방 갈릴리의 촌놈 너는 유죄다!'

 

Conscience, Judas. 양심, 배반자 가롯 유다. 1891.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149 x 210 cm. Tretyakov Gallery Room 31

'유다의 가책' 그날 밤 유다이다. 

은화 30 냥을 돌려주기 위해서 어두운 길을 다시 걸어가고 있다.  
저기 길 끝에 돈을 돌려 줄 유대 제사장 무리들이 보고 있다. 밤 그람자보다 더 어두운 밤. 
겟세마네에서 기도의 모습과 가롯 유다의 가책, 상대적으로 정면 모습과 뒷면 모습이다. 


이 대조적인 그림은 고뇌에 찬 모습과 한없이 격리되어 외로운 모습이라 할까? 
특히 담요를 둘러쓰고 혼자 서서 가롯 유다가 바라보는 시선 방향 멀리 
어둑한 어둠 속 횃불들 사이로 체포되어 붙들려가는 예수의 모습이 보인다. 

그림 속에 어깨를 움츠리고 저멀리 한 무리의 사람을 바로 보고 서 있는 사람은 
예수를 은화 30냥에 팔아 넘기고 그 죄책감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가롯 유다다. 
예수의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일신을 위해 갈등하는 
유다의 양심의 빛깔은 온통 까맣게 칠해져 있다. 
작가는 일상의 갈등 속에서 부정한 양심에 손을 들어주는 우리의 모순을 
유다의 검은 욕심에 빗대어 보여주고 있다.

 

Golgotha, 골고다. 1893. oil on canvas. by Nikolai Ghe. Tretyakov Gallery Room 31

세 도둑과 함께 십자가 처형장 해골의 언덕으러 끌려가는 두려움과 고통이 가득하다.
홍포를 입은 예수가 골고다 처형의 언덕에서 로마 병정의 형 집행 지시에 두려워 벌벌 떠는 모습이다. 
맨발의 예수 옆에 서 있는 함께 처형될 두 사람 강도의 시선 처리 모습도 이채롭다. 
한 강도는 이미 체념했고, 다른 한 강도는 아직도 노려보는 시선이다. 
그 사이에 예수의 모습은 아아 이 일을 어찌할꼬 하는, 

바로 처절한 두려움 앞에 선 우리들의 모습이라 할까? 

사형을 언도받은 예수가 다른 두 명의 사형수와 함께 

처형장을 나아가는 모습에서 예수가 보여주는 파토스는 절절하다. 
왼편에 보이는 형리의 손이 그를 가리키자 

예수는 공포에 사로잡혀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 하고 있다. 
진리와 정의를 외쳐 왔지만 예수 또한 한사람의 인간으로써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아는 사람이기에 스스로 죽음을 택해 
저 자리에 선 저 남자가 진정으로 위대한 인간임을 말하고 있다. 

 

The Return from Christ's Entombement (study). 그리스도를 매장하고 돌아가는 일행들 (습작) 1859.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Harbingers of the Resurrection, 부활의 조짐. 1867.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부활의 조짐' 동이 트는 새벽, 창을 든 로마 병정과 천사의 날갯짓. 
니콜라이 게가 부활의 상징과 은유의 그림을 그렸다. 

부활을 예감케 하는 그림이다.
부활의 예감, 무덤을 지키는 로마 병정들의 실루엣, 

왼쪽 방향에서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막달라 마리아, 
시선 방향으로 멀리 예사롭지 않은 새벽 먼동이 무엇인가의 특별한 조짐을 예감하게 한다. 

예수 부활의 그 새벽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다. 
우리들의 고정관념에 맞선다 할까? 대단한 표현이다. 
사실주의 화가인 니콜라이 게를 상징주의로 불리는 것을 대변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The destruction of the Temple in Jerusalem,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 1859. 
by Nikolai Ghe. oil on paper. Tretyakov Gallery Room 31

앙토냉 아르토 (Antonin Artaud)는 천사를 가장 성스럽게 묘사하기 위해서는 
손에 뱀을 들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가장 깊은 고요만이 바늘이 떨어지는 침묵을 깨는 소리가 
가장 커다랗게 지축을 흔드는 소란이라고 표현했다. 
니콜라이 게의 그림들 속에서는 극단적인 사실이 표현되면서도 
그것이 다시 절대적인 상징을 함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자료들은 아직 미술사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다만 그의 그림들은 지금 이해되고 있는 해석이나 가치 이상으로 
앞으로 더욱 중요한 의미를 던져 줄 것이 확실해 보인다.

니콜라이 게는 다른 러시아의 이동파화가들 처럼 창작의 자유와 예술을 통한 

민중 교화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기를 원했다. 
이동파 화가들은 그림을 들고 순회 전시하며 
"민중아 꺠어나라"를 주창한 행동주의적 미술 경향이다. 
그들은 단정하고 기품 있고 보수적인 기존 아카데미 미술교육에 반발하며 
더 낮은 곧으로 그림이 달려가기르 원했다.

​그들의 기존 회화의 틀을 벗어나 창작의 자유와 예술을 통한 민중 계몽에 역점을 두었으며. 
이 혁명적인 표현운동에는 19세기 러시아 미술의 핵심물들이 참여하였다. 
따라서 미에 대한 탐구보다 사회적.윤리적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화풍도 대중에게 더 잘 어필할 수 있는 사실주의을 지향했으며 
삶의 진실이라는 러시아 미술의 전통을 극대화시켰다.

​이들 작품은 시골과 도시의 일상생활 장면이 주요 테마가 되었고 
일상과 축제 속의 농민과 도시민들이 주인공이 되었다. 
그림을 들고 민중 곁으로 달려가는 '이동전시협회'를 결성함으로써 
마침내 미술사에 이동파(Peredvizhniki)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동파의 목표는 예술을 관료행정으로 부터 해방시키고 
예술을 통해 민중을 교화시키는 것에 있었다. 

 

Christ and Nicodim. 1889.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Peter the Great Interrogating the Tsarevich Alexei Petrovich at Peterhof, 1871.
표트르 1세 대제께서 황제의 궁전 페테르호프에서 황태자 알렉세이 페트로비치를 심문하다.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이 작품은 역사화라는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페트르호프는 황금빛 조각과 분수로 장식된 표트르 대제의 여름궁전이다. 
표트르 대제의 위업을 아름답게 빛내 주는 이곳은 실내 벽면에 
대제가 수입한 서유럽의 명화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

당당한 풍채에 다리를 꽈아 자신감을 드러낸 대제에 비해 
큰 키에 마른 체형의 황태자는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나약한 안성울 풍긴다. 
강렬한 눈빛으로 자신을 배반한 아들을 노려보는 대제의 얼굴에서 비극이 암시된다. 
좌우로 나누어진 구도에 의한 대립적 인물 배치 역시 마찬가지다. 
비극에 대한 반복적인 복선을 설치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황제에 오르기 전 형인 이반과 동생인 소피아를 물리치고 어머니 세력을 덥고 황위에 오른
표트르 대제는 총병들의 반란을 격은 후 형, 동생과 그 세력을  척결하고 자리를 공고히 굳혔다. 
그리고 그 힘으로 서구화 정책을 밀고 나가기 시작한다.  
그후 유럽과의 통로 확보를 위해 스웨덴과 2차례 전쟁을 거쳐 
발트해 연안을 확보하고 상테폐테르부르크를 건설하였다. 

황태자 알렉세이는 표트르 대제와 첫 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알렉세이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알렉세이는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자라났으며 옛 러시아 방식을 숭상했다. 
대제의 개혁을 탐탁치않게 여겼던 보수주의자들은 알렉세이를 지지했다.

이를 알고 있는 포트르대제는 아들에게 생활방식을 바꾸던지 
제위 계승을 포기 하던지 선택할 것을 강요했다. 
아들은 결국 제위 계승을 포기하고 국외로 도피한다. 
이것은 단순한 부자간의 갈등이 아니고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사상적 대립이었다. 

알렉세이는 1718년 러시아로 돌아왔으나 국가 반역죄로 체포된다. 
아버지는 아들을 고문하고 자백을 받아냈으며, 사형선고라는 잔혹한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알렉세이는 사체로 발견된다. 
그림 속에서 벌어진 논쟁의 결론은 일단 역사가 증명한다. 
제위 계승의 포기와 해외 도피로 이어진 알렉세이의 행보가 반증하듯이 
그에게는 표트르 대제의 정책을 뛰어 넘을 대안이라는 것이 없었다.

실제로 이 그림이 그려진 1870년대 지식인들을 행동하게 했던 것은 서구주의자들의 사상이었다. 
벨렌스키, 헤르첸, 바쿠닌의 사상은 헤겔 등의 독일 관념론에 기초한 것이며 
훗날 사회주의 혁명의 기반이 되는 마르크시즘 역시 서구 사상이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진보와 발전, 이것은 당시 지식인들의 마음 속 깊이 새겨진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는 법이다. 
헤르첸의 영향을 받은 인민주의자(나로드니키)들은 혁명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서 
민중 속으로 흩어져 들어가는 브나로드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 운동가들은 민중들의 몰이해와 불신 속에서 좌초하고 말았다. 
진리는 현실에서는 결코 단선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승리는 표트르 대제의 것이었지만, 
그는 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은 인륜에 어긋난 아버지였다. 
그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  
부정과 악에 대해서 예술이 어떤 답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가 확신을 할 수 없었던 니콜라이 게는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가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대문호 톨스토이 때문이었다. 
니콜라이 게는 톨스토이 철학의 신봉자가 된다. 
화단에 복귀한 그가 남긴 명작 가운데 하나가 예수와 빌라도의 대화를 그린 
<진리란 무엇인가?> 라는 작품이다.

1870년 역사 주제의 이 그림 '페테스부르크에서 알렉세이 황태자를 심문하는 표토르 대제'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같은 쟝르의 다른 그림들은 냉대를 받자 니콜라이 게는
'화가는 농사를 지어먹고 살아야지 그림을 판다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니콜라이 게는 우크레이나에 농장을 사서 이주했다. 
게는 톨스토이와 친하게 됐고 그의 철학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페트르코프는 황금빛 조각과 분수로 장식된 표트르대제의 여름궁전이다 .
표트르대제의 위업을 아름답게 빛내주는 이곳은 실내 벽면에 
대제가 수입한 서유럽의 명화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  

아버지 표트르대제는 자신감 있는 자세로 앉아 아들을 매섭게 노려본다.
바닥에 떨어져 잇는 문서는 방금 그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테이블에 한손을 엊고 비스듬히 서 있는 아들 알렉세이의 허약한 실루엣은 
아버지의 당당한 풍채와 비교가 된다.

표트로대제의 발밑을 중심으로 좌우로 퍼져나가는

체스판 모양의 바닥은 심리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다 종국에는 반란까지 획책한 
아들을 심문하는 대제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Portrait of Leo Tolstoy, 레오 톨스토이의 초상. 1884.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니콜라이 게는 톨스토이와 친하게 됐고 그의 철학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후기의 게는 종교화와 인물화로 돌아왔다. 
그의 신약에 근거한 종교화는 진보파의 환영을 받았으나, 동시에 보수파의 비난을 받았다. 

니콜라이 게는 1894년, 63세의 나이로 그의 농장에서 죽었다. 
애석하게도 그가 평생을 걸려 그린 많은 작품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던 관계로 그가 그린 모든 작품은 그에게 매달 작은 봉급을 보내주던 
스위스의 후원자 베아트리체 (Beatrice de Vattville)에게 모두 넘겼다. 
그러나 후원자였던 베아트리체가 1952년에 세상을 떠났을 떼, 
그녀의 성에서는 니콜라이 게의 그림이 단 한 작품도 발견되지 않았다. 


무서워서 처치한 것은 아닐까? 
세월이 지나고 1974년이 되어서야 미궁 속의 그의 그림 중 몇몇 작품들만 
스위스의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되었다. 
1990년대부터 러시아 정부가 직접 나서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을 중심으로 
니콜라이 게의 작품 수집에 나섰다. 
러시아 국가 은행의 적극적 자금 지원으로 니콜라이 게의 그림들을 
보이기만 하면 모두 구입에 나섰지만, 아직도 그의 그림 대부분은 사라졌고 
여전히 존재 미상, 미궁인 작품이 대부분이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작품 역시 '레플리카', 모작이 대부분이다. 

 

Portrait of Natalia Petrunkevich. 나탈리아 페트룬케비츠의 초상. 1892~1893.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retyakov Gallery Room 31

 

Portrait of Shestova with Her Daughter. 1859. 쉐스토바와 그녀의 딸.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Vineyard at Vico. 1858.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Marble Quarry at Carrara, 1868.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Portrait of the Author Alexander Herzen, 1867.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Portrait of the Physiologist Moriz Schiff, 1867.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Portrait of Joseph Daumangé, 1868.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Portrait of the Historian Nikolay Kostomarov, 1870.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영상] Tretyakov Gallery Room 31. 니콜라이 게(Nikolai Ghe) 작품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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