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반 회화. 다양성의 시대 - 예술 세계파의 시대.

 

Tretyakov Gallery Room 44. 콘스탄틴 소모프(Konstantin Somov) 전시실

 

Lady in Blue. Portrait of the Artist YelizavetaMartynova (1868-1904) 1897 - 1900, 
푸른 옷을 입은 여인. by Konstantin Somov. oil on canvas. 103 x 103 cm. Tretyakov Gallery Room 44

콘스탄틴 소모프(Konstantin Somov 1869~1939)는 러시아 아르누보아 
상징주의의 대표 작가이며 예술 세계파의 핵심 멤버였다. 
'예술은 예술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라고 주창했던 예술 세계파는 
18세기의 화려했던 시대로의 부활을 피한다. 
그림 속 여인 또한 오래된 고서를 손에 들고 유행 지난 드레스를 입고는 
핏기 가신 얼굴로 마치 유령처럼 서 있다. 

당시 이 시기 화가들은 세기말의 퇴폐적 낭만주의에 젖어 있어 
전체적인 그림의 분위기가 어둡고 절망적이다. 
하지만 우울과 암울함 속에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모프도 러시아에서 살지 못하고 
1923년 파리로 떠난 후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2007년 그의 작품<무지개>(1927)가 런던 경매에서 100억원에 낙찰되면서 
세계 예술계에서 큰 주목을 받는다.

 

Evening, 1900-1902. by Konstantin Som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4

콘스탄틴 소모프(Konstantin Somov)의 모든 작품은 삶을 사랑하고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며 
동시에 회의론과 우울한 느낌으로 내재적 인 슬픔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Alexander Benoit의 작품이 특징이다.

20 세기 초, 더 정확하게는 1900년부터 1902년까지의 기간에 
이러한 현실은 소모프의 관점에서 “저녁” 그림에 구체화되었다. 
가장 무도회 참가자일 가능성이 있는 신사 숙녀 여러분이 살아난다. 
그들은 절묘하지만 동시에 깊은 에로틱, 자세의 친밀감이다.

그림은 완전히 스타일리시하게 생각되고 모든 세부 사항은 매우 얇은 색상 행진에 따라 선택된다. 
이것은 소모프가 그의 삶을 위해 선택한 스타일, 
즉 깊은 감정의 폭동에 접한 정교함과 우아함과 매우 일치한다. 
18세기의 스타일은 여기에서 느려지고 있다. 
하늘은 정적이며 공원의 조각품은 행동의 조용한 증인이며 아케이드는 반복되며 
bosquets는 번갈아 가며 멀리 이동하며 캐릭터는 일부 의식 동작을 받아들인다.

동시대인들은 “저녁”을 현실과의 분리, 반대로 인식했다. 
선로까지 올라가지도 않은 과거 시대의 과시적인 순진함, 그리고 하늘 표면에 
더 멀어 질수록 정복하기 위해 어떻게 자연을 차지할 수 있는지, 유혹을 받아들인다.

물론 Somov의 그림은 과거 세대에 대한 회고 적 분석과 심지어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분석을 결합하지만 상상력,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부조리가없는 것은 아니다. 
생명이 전혀 없는 이 게임은 시청자를 감싸고 
신비롭고 심지어 자동적인 에로티시즘의 분위기에 그를 몰입시킨다.

 

Portrait of Euthymia Nosova, nee Ryabushinskaya (1875-?) 1911, 
by Konstantin Somov. oil on canvas. 88 x 139 cm. Tretyakov Gallery Room 44

 

Letter (also known as Mysterious Messenger), 1896. by Konstantin Som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44

 

Bathers, 1899. by Konstantin Som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4

 

[영상] 콘스탄틴 소모프(Konstantin Somov) : A collection of 255 works (HD)

 

Tretyakov Gallery Room 44. 알렉산드르 골로빈(Alexander Yakovlevich Golovin) 전시실

 

Portrait of Fyodor Chaliapin in the role of Holofernes in Serov's Opera "Judith" 1908. 
by Alexander Golovin. Gouache, Pastel, Tempera on canvas. 163 × 212cm. Tretyakov Gallery Room 44

알렉산더 세도프(Alexander Sedov)의 발레 오페라 "쥬디스(Judith)"에서 
홀로페르네스(Holofernes) 역을 하고 있는 표도르 살랴핀(Fyodor Chaliapin)의 초상화.
알렉산드로 골로빈은 당시 러시아 무대 미술에 열정을 쏟은 대표적인 작가다. 
이 그림에도 발레 쥬디스에서 홀로페르네스 역을 하는 샬랴핀을 그린 그림으로 
쥬디스에 매료된 왕의 표정 표현이 압권이다.

전장에 여자의 몸으로 잠입해 전장의 목을 벤 여인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선 기원전 8세기로 돌아가야 한다. 
군사 강국이었던 아시리아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던 이스라엘의 북쪽부터 점령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남쪽 이스라엘, 유다의 왕이었던 아하즈는 북쪽의 패전을 지켜보며 
강력했던 아시리아의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전쟁의 영웅들이 이기지 못할 것을 알고도 명예를 위해 전장에 나갔지만 
아하즈의 선택은 아시리아의 속국이 되는 것이었다.

아하즈는 아시리아의 종교를 받아들이고 왕자를 제물로 바쳐 제사를 지내는 등 
비굴하다는 단어도 부족할 정도로 아시리아에 충성했다. 
아하즈는 어떠한 것보다도 전쟁과 죽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아시리아와 메디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서 생겨난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아시리아는 이스라엘과 이집트 등 주변 국가에 사신을 보내 
전쟁에 참전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아시리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의 요구에 응답한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는 몹시 분노했지만 진행 중이던 전쟁을 멈출 수도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주변국의 도움 없이도 아시리아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승리의 기쁨과 함께 네부카드네자르는 자신의 요청을 거절했던 나라들에 보복을 가할 준비를 한다.
그 보복 전쟁에 책임자로 뽑혔던 것이 바로 '홀로페르네스'이다. 

왕은 그에게 킬리키아와 다마스쿠스, 시리아의 온 영토와 모압 땅의 모든 주민들, 
암몬의 자손들, 유다 주민들을 처단하라 명한다. 
기병과 보병으로 조직된 홀로페르네스의 군대는 왕의 명에 따라 
여러 나라를 굴복시키고 유다에 다다르게 된다. 
하지만 유다가 자신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울 대비를 하자 
홀레페르네스는 그대로 부대를 움직여 유다의 배툴리아를 포위했다.

그는 군대의 손실 없이 전쟁에 승리하길 바랐기 때문에 배툴리아로 흐르는 물길을 막아 
배툴리아의 사람들의 식수를 끊어 항복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홀로페르네스의 군대에 대응할 힘이 없던 배툴리아 사람들은 하느님에게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 기도를 해 보고 그래도 소용이 없다면 그대로 투항하자고 결의한다.

이 소식을 들은 배툴리아의 과부 유디트는 모두가 무기력하게 패배를 외칠 때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녀는 맑은 물로 몸을 씻소 값비싼 향유를 바르고, 머리를 빗고 띠를 두른 후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입던 화려한 옷을 입었다. 
그리곤 자신의 시녀와 홀로페르네스의 부대로 들어가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기회를 엿보며 
며칠간 홀로페르네스의 신임을 얻으려 노력한다. 
아름다운 용모에 기품 있고 정숙했던 유디트 또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얼굴로 드러날 정도였지만 모두의 평안을 위해선 자신의 계획을 완수해야만 했다. 

홀로페르네스는 그런 그녀의 계획도 모른 채 그저 그녀의 아름다운 용모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군대에 들어간 지 4일 째 되던 날, 
홀로페르네스는 자신의 종들을 위해 연회를 열었다. 
그리고 유디트를 불러 연회에서 함께 어울릴 것을 권유했다. 
유디트는 그의 권유대로 연회에서 함께 어울렸고 홀로페르네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빠져 
지금까지 먹어본 적 없는 양의 술을 들이켜고 말았다.

저녁때가 되어 연회가 끝나고 홀로페르네스는 술에 잔뜩 취해 자신의 천막 침상 위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 안엔 유디트도 함께 남았다. 
정신이 멀쩡했던 유디트는 자신의 계획의 기회가 찾아 왔음을 직감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다. 
그녀의 눈에 기둥에 기대어져 있던 홀로페르네스의 검이 들어왔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채를 쥔 채 "주 하느님, 오늘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며 
온 힘을 다하여 그의 목덜미를 칼로 두 번 내리쳐서 머리를 잘라 냈다. 
그녀는 잘라낸 머리를 그녀와 함께 왔던 시녀에게 넘기고 시녀는 머리를 받아 음식 자루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둘은 그대로 진영을 가로질러 빠져나와 배툴리아로 향했다.

배툴리아의 사람들은 그녀가 가져온 적장의 머리를 보곤 환호했다. 
유디트는 사람들의 용기를 북돋으며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성벽에 걸고 동이 트고 해가 뜨면 
무기를 들고 홀로페르네스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향하라고 말했다. 
단, 진짜로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장군의 목이 날아간 
전장의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거리까지만 나아가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아시리아의 병사들은 머리 없는 홀로페르네스의 시신을 발견하고 두려움에 떨었다. 
이제 막 눈을 뜨고 있던 병사들과 장수들은 적군이 몰려온단 소식과 
장군의 죽음을 알게 되며 공포에 휩싸였다. 
그들은 누구를 기다릴 것도 없이 한꺼번에 몰려나가 산과 들길로 달아났다. 

 

In the old park. 오래된 공원에서. by Alexander Yakovlevich Gol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4

알렉산드로 골로빈 (Alexander Yakovlevich Golovin 1863~1930)은 러시아와 소련에서 
뛰어난 화가, 무대 장식가 및 세트 디자이너이며 
제국 회화 아카데미 및 공화국 인민 예술가의 정회원이다.
그는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 콘스탄틴 스타니슬라브스키(Constantin Stanislavski), 
마이어홀드(Vsevolod Meyerhold)의 작품을 디자인했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골로빈은 처음에 건축을 공부하고 나중에 회화로 전환했다. 
그는 또한 아카데미 콜라로시(Académie Colarossi)에 참여했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졸업 후 그는 인테리어 화가와 장식가로 일했다. 
가구 디자인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도 손을 뻗었다. 
1900년 그는 친구 코로빈(KA Korovin)과 함께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러시아 제국 파빌리온 디자인에 참여했다. 
당시 그는 파리의 아카데미 비티(Académie Vitti)에서 공부했다. 

 

Pavlovsk. 경치. by Alexander Yakovlevich Gol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4

알렉산드로 골로빈은 1901년에 모스크바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 지역으로 옮겨서 
오페라 및 연극적인 프로덕션에서 상징주의와 모더니즘을 결합하여 
무대 디자이너로 자신의 삶을 살게 되었다. 
1917년 혁명 이후 골로빈은 극장에서 작품을 공연하는 빈도가 점점 줄어 들었고 
그에 따라 그림과 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에 보다 더 깊이 빠져 들었다.

골로빈은 1910년 스트라빈스키(Stravinsky)의 파이어버드(The Firebird) 
발레를 제작하기 위한 세트 디자인을 했다.
골로빈은 장면 변경을 가속화하기 위해 회전 무대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 작품은 개막 날 밤 10번의 커튼콜을 거두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골로빈은 러시아 소비에트연방사회주의공화국의 인민 예술가로 임명되었다. 
그는 1930년 4월 17일 데츠코이 셀로(Detskoye Selo)에서 사망했다.

"Orpheus and Eurydice" performed at the Marlinsky Theatre in St. Petersburg in 1911. 
by Alexander Golovin. Gorache, pastel and carbon pencil on paper. 69.7 × 97 cm. 

 

1911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말린스키 극장에서 공연한 오페라 

"Orpheus and Eurydice"의 세트 디자인 그림 

 

소녀와 도자기. by Alexander Yakovlevich Gol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4

 

정물. by Alexander Yakovlevich Gol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4

 

여성 초상화. by Alexander Yakovlevich Gol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4

 

움브리아 계곡. by Alexander Yakovlevich Golov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4

[영상] Tretyakov Gallery Room 44. 알렉산드로 골로빈(Aleksandr Golovin) : A collection of 120 works (HD)

 

Tretyakov Gallery Room 44. 보리스 쿠스토디예프 (Boris Mikhaylovich Kustodiev) 전시실

 

Beauty. 러시아 미녀. 1915. by Boris Mikhaylovich Kustodiev. 
oil on canvas. 141 × 185cm. Tretyakov Gallery Room 44

보리스 쿠스토디예프(Boris Mikhaylovich Kustodiev 1878-1927)의 그림 속 여인은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신들처럼 풍성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 
그런 뚱뚱한 여인을 러시아 미녀라 칭한 제목을 보고 '말도 안돼'를 연신 되뇌이겠지만 
여기서 작가가 말하는 미는 시대가 요구하는 러시아 미인의 표상인 '민중적 미의 이상형'을 말하는 거다. 
기근에 시달려 못 먹고 못 입고 말라 비틀어진 그런 나약한 여인이 아니라 
앞으로 시대를 이끌어갈 여인의 강인함과 건강함의 기준을 보여준다 하겠다.

 

Maslenitsa, 1916. 마슬레니짜. by Boris Mikhaylovich Kustodie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4

마슬레니차는 춘분 무렵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러시아인들의 축제다. 
일주일간 행해지는 축제 기간 중 많은 파티가 벌어지며 사람들은 실컷 마시고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아직 눈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지만 이제 봄에게 자리를 내 주어야겠다. 
동화 속 세계처럼 선명한 색으로 묘사되어서 춥다기 보다는 오히려 환하게 다가온다. 
혹한의 겨울 동안 집안에 갇혀있다가 밖에 나오면 누구를 만나도 반갑겠다. 
생명이 시작되는 시기는 늘 소란스럽고 유쾌하다.

 

Maslenitsa (Pancake Tuesday), 마슬레니짜 (참회의 화요일). 1916. 
by Boris Mikhaylovich Kustodiev. oil on canvas. 61 x 123 cm. Tretyakov Gallery Room 44

마슬레니차 둘째 날은 유희의 날이다. 
유희의 날에는 러시아의 민속놀이가 시작되는 날인데 젊은 남녀들은 
얼음 덮인 산에서 미끄럼을 타거나 썰매를 탔다. 
앞 부분에는 마차 썰매를 타는 모습이 있지만 

왼쪽 뒤편 언덕에서 미끄럼을 타는 모습에 눈길이 간다. 
지금도 그렇지만 눈 덮인 비탈을 얇은 판에 앉아 미끄러져 내려올 때는 

한없이 이렇게 내려갔으면 하게 된다. 
이야기 소리는 명쾌하지 않지만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건너오고 있다.

 

Portrait of P. L. Barc, 1909. by Boris Mikhaylovich Kustodie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4

 

Portrait of Y. E. Kustodieva with daughter Irina, 1908. 아내 Y. E. 쿠스토디예프와 딸 이리나의 초상
by Boris Mikhaylovich Kustodie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4

 

Moscow Tavern, 1916, by Boris Mikhaylovich Kustodiev. 
oil on canvas, 99.3 x 129.3 cm. Tretyakov Gallery Room 44

 

Haymaking, 1917. by Boris Mikhaylovich Kustodie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44

 

[영상] 보리스 쿠스토디예프(Boris Kustodiev) : A collection of 357 paintings (HD)

 

Tretyakov Gallery Room 44. 지나이다 세레브라코바 (Zinaida Serebryakova) 전시실

 

Serebriakova Zinaida For the toilet. Self-Portrait. 화장대 앞에서 자화상. 1909.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65 x 75 cm. Tretyakov Gallery Room 44

지나이다 세레브라코바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1884~1967)
화장대 앞에서 포즈을 취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다. 
1900년대 그려진 초상화라 믿겨지지 않을 만큼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당시 이 그림이 발표되었을 때 러시아 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넣어 줄
 커다란 선물같은 작품이다 라고 칭송받았다 한다. 
사실적이면서도 마치 일러스트 같은 느낌을 주는 매력 넘치는 초상화다.

자화상 속에서 나타난 그녀는 마치 현대시대의 전문 모델같은 모습으로 
익숙하고 세련된 자세로서 그림을 보는 사람을 유혹하듯이 고혹적이고 매력적인 자세를 취한다. 
또한 그녀가 의도적으로 그녀 자신 앞에 놓아둔 그녀의 소품들 
화장품들 또한 그녀를 의도적으로 돋보이게 만든다. 

그녀 내부에 모델처럼 자신을 매혹적으로 카메라에 비치게 만드는 타고난 끼와 매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입고 있는 하얀 백색의 옷은 그녀를 겸손과 흰색으로서 지배하는 
아름다운 신부로서의 모습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녀가 취하고 있는 자세는 흰색의 옷과는 대조적으로 도발적이다. 
하지만 이 두가지 상태는 서로 어울림으로서 아름답게 빛난다.

 

Bleaching Cloth, 1917, 세탁부.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141.8 x 173.6 cm. Tretyakov Gallery Room 44

러시아 최초 여류 작가인 세례브라코바의 역동적이고 활기찬 힘을 가진 그림이다. 
강렬한 색채 대비와 과감한 구도는 세탁부의 역동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At breakfast, 1914. 아침식사.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107 x 88,5 cm. Tretyakov Gallery Room 44

아침 식사하는 어린애들을 참 생기있게도 그려 놓았다. 
귀여운 아이들이 식탁에서 물을 마시거나 스프를 먹고 있는 모습이다.
여자아이는 스프 접시에 손을 얹고 관객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애는 셋중 가장 나이가 많아보이기도 하지만 
뭔가 시크한 표정으로 관심 없다는 듯 물을 마시고 있다.

가운데 큰 수프 볼에 들어 있는 것은 아마 순무와 야채, 
고기를 넣고 끓인 러시아 전통 수프인 보르쉬나 양배추 수프인 쉬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접시에 담긴 수프에 건더기가 안보이는 걸로 봐서 양배추 수프일 것 같다. 
왼편에 있는 빵도 맛이 있어 보인다.

 

Self portrait. 1906. 자화상.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69.5 x 6.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그녀는 대체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 
비록 한때의 우울이 있었지만 그녀는 비교적 행복하게 살았다. 
1900년대 러시아에서 여자로 태어나 그녀는 어느 남자들보다도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그녀가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데에는 타고났던 낙천적이고 선량하며 
동시에 여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용감했던 성격 탓도 있었다. 
그녀는 이상적인 여성상으로서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Self-portrait, 1907. 자화상.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Girl with a candle. Self portrait, 소녀와 촛불, 자화상. 1911.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72 x 58 cm.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촛불은 곧바로 보이지 않지만 빛을 통해 인물에게 집중을 시켜놓았다.
지나이다 세레브랴코바가 태어난 집안은 예술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가정이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건축가였으며 건축가들의 사회의장인 동시에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의 일원이었다. 
그녀의 삼촌 알렉산드레 베노이스는 꽤 유명한 화가였다.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 에브게니 니콜라이에비치 란세레이는 유명한 조각가였다. 
또한 알렉산드레 베노이스의 자매였던 그녀의 어머니도 그림을 그리는 소질이 있었다. 
지나이다 세레브랴코바는 그녀의 집안에 가득한 예술적 풍취에 의해서 
화가가 될 소질을 이미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

지나이다 세레브랴코바의 아버지와 어머니 뿐만 아니라 그녀의 형제 중의 하나인 
니콜라이 에브게니에비치 란세레이 또한 재능 있는 건축가였으며 
그녀의 형제인 란세레이가 지은 미술관은 러시아에서 중요한 예술적 문화재가 되었다. 
러시아인이자 영국인이었던 배우이자 작가 피터 유스티노프 또한 그녀와 인척 관계에 있었다. 
그녀의 예술적 소질은 이미 타고났던 것이다. 
그녀는 어린시절 러시아에서 미술을 공부했으며 1902년과 1903년에 이탈리아에서 미술을 배웠다. 
1905년에는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같은 해에 러시아로 돌아온 세레브랴코바는 철도 기술자인 그녀의 사촌 보리스 세레브랴코바와 결혼했다. 
그녀의 예술은 젊은 시절부터 계속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사랑과 
그녀의 사랑의 시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그녀의 첫 시도는 대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젊고 여성이었지만 표현에 있어서 용감했고 그녀가 표현하려는 주제에 대해서 망설이지 않았다.

 

House of cards, 1919. 카드로 만든 집.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65 x 75.5 cm.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세레브랴코바의 네 자녀들이다.
지나이다 세레브랴코바는 그 당시에 유행하던 아르누보를 따라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만의 그림 스타일을 유지했다. 
비록 그녀가 그 누구의 스타일을 따라가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그림들 속에서 
르느와르의 그림들이 지니고 있는 따뜻하고 고혹적인 아름다움이 보인다. 
그녀는 꽤 안정된 집안에서 자라났다. 
매력적인 소녀들이 그렇듯이 그녀 또한 집안의 안정된 보호를 받으며 자라났다. 
그녀는 대채로 그녀의 인생에 대해서 낙천적이었고 항상 성실했다. 
일하는 화가로서도 집안의 어머니로서도 남편의 아내로서도 그녀는 항상 성실했다.

 

Portrait of Eugene Serebryakov, 1909.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그녀는 그녀의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서 그녀 자신의 카논(이상적인 인체비례)을 창조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카논에 따라서 그녀 자신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 카논의 모습은 강렬한 밝고 아름다운 순수로 가득 차 있다. 
그녀의 아이들 그림에서 그녀의 아이들은 섬세하며 강하고 온순한, 
독립된 에너지가 가득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릴 때 심리학도 활용했다. 
그녀는 그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지식에도 밝았다.

 

Dressing-room, Ballet Dancers. 1923.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105 x 85 cm.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예술가의 집안이라 그런지 세레브랴코바의 딸 타티야냐(Tatiana)는 발레 댄서가 되었다. 
세레브랴코바는 자녀들의 그림과 발레 장면과 분장실, 대기실 등의 장면을 여러 점 화폭에 남겼다.

 

Young Sylphids, 1924. 작은 공기의 요정들.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82.5 x 103 cm.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세레브랴코바의 딸 타티야냐가 발레 댄서가 되어서인지 
1920년대 전반기에 발레 관련 그림을 많이 그렸다.

 

Ballerinas in the Dressing Room, 1923.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드레스룸에서 발레슈즈 끈을 매고 있는 발레리나 딸 타티야나의 모습.

 

Portrait of the artist Bush in a fancy dress. 1922. by Zinaida Serebryakova. 
Pastel on paper. 64 x 45 cm.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Portrait of S. R. Ernst. 1921.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81 x 72 cm.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Self-Portrait in a Scarf, 1911. by Zinaida Serebryakova. 
Tempera on paper, 36.9 x 29.6 cm.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Self-Portrait in a White Blouse. 1922.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69 x 56 cm. Tretyakov Gallery Room 44

'흰 블라우스를 입은 자화상'은 지나이다 세레브랴코바가 삼십대 후반 때인 1922년의 자화상이다.
아프리카와 모로코에서 그녀는 아프리카의 풍경에 매료되었고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었던 아프리카의 아랍여인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묘사한다. 
그녀가 주로 표현하려고 했던 지향점은 이 대자연의 모습과 
대자연에서 어울리는 바로 자기자신과 같은 여성들의 아름다운 모습들이었다.

 

Bather, 1911.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98 x 89 cm.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Footwear peasant woman, 1915.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2명의 농부 소녀들. 1915.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Peasants, 농민들. 1914.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123.5 x 98 cm.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Cypress trees in the Crimea. 1911. by Zinaida Serebryakova. 
Tempera on paper. 43.3 x 43.5 cm.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The Shoots of Autumn Crops, 1908.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In the meadow, 1912. by Zinaida Serebryakova. 
oil on canvas. Zinaida Evgenevna Serebryakova 특별전시회

 

Tretyakov Gallery Room 44 작품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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