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M 38-48> 20세기 초반 회화. 다양성의 시대 - 예술 세계파의 시대.

 

​20세기 초반 러시아 미술은 다양성의 시대라 정의 할 수 있다. 
비판적 리얼리즘이 주를 이루던 이동파의 시기를 벗어나 여러 가지 유형의 미술이 

한꺼번에 나타나 서로 각축하고 시도되던 그런 시기이며 특히 무대미술이 눈에 띄게 발전 한다. 
역사적으로는 니콜라이 2세의 통치기이며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 제1차 세계대전, 
거기다 날씨까지 흉흉하여 계속되는 흉작에 나라는 메마를 대로 메말라 있을 때였다. 
모두가 어두운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헤쳐 나갈 방법을 찾지 못하고 
예술 또한 음울한 '퇴폐적 낭만주의'에 빠져드는 시기이다.  
20세기 초반 러시아 예술가들은 '예술은 예술을 위해서 존재한다'라는 신념아래 
다양한 화파를 만들고 여러 작품들을 쏟아낸다.

 

Wedding Train in the 17th century Moscow. 1901, 17세기의 러시아 결혼 행렬 모습. 
by Andrei Petrovich Ryabushkin. oil on canvas. 90 x 206.5 cm. Tretyakov Gallery Room 38

17세기 모스크바의 모습에 흥미를 가진 역사화가.
안드레이 리아부쉬킨(Andrei Petrovich Ryabushkin, 1861-1904)은 러시아 중세사, 수리코프의 역사화, 
영웅서사시, 고대 건축물, 민요, 민속 공예 등을 연구하며 17세기의 시대상을 그림을 통해 재현하고자 한다. 
이 그림 또한 과거 결혼식 행렬을 재현한 것으로 시기는 눈이 막 녹기 시작하는 봄에 
결혼식 행렬이 무리지어 목적지로 이동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한 젊은 여자는 약간은 슬픈 듯한 표정으로 행렬을 빠져나와 다른 길로 향한다. 
그녀는 누구일까에 대한 정확한 답은 없지만 결혼 행렬과 어울려 많은 것을 상상케 한다.

안드레이 리아부쉬킨은 17세기의 러시아 평민들의 삶을 주로 그린 화가다.  
아버지와 형이 이콘화가여서 어려서부터 그들을 도왔다.  
14세에 고아가 되었는데, 그 마을을 방문했던 모스크바 미술 조각 건축학교 학생이 
그의 그림을 보고 감탄하여 모스크바 학교에 입학하도록 도왔다.  
14세의 그는 가장 어린 학생중의 하나였는데, 7년간 학교에 머물렀다.  
바실리 페로프의 지도를 받았다. 

1882년, 바실리 페로프 사후, 리아부쉬킨은 셍페테르부르그 황립미술학교로 옮겼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 흥미를 읽고 길에서 스케치를 하는 등 성적불량으로 졸업을 못하게 되는데, 
그의 훌륭한 작품을 보고 학교의 교장인 대공이 사비로 그의 유학비를 대 준다.  
그는 유럽으로 가는 대신 노브고로드, 키에프, 모스크바 등 고도를 여행하며  
그곳 주민들을 모델로 그리고, 고건축, 무기, 민속품, 자수, 벽걸이 등을 연구하고 민요를 수집했다.

리아부쉬킨은 이동파와 1890-1894년까지만 전시하고 곧 결별했다. 
그는 17세기의 그림에 전념했고, 성당 벽화도 그렸는데, 19세기 말에는 당시 러시아 농민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 "차 마시기"와 "처녀들의 댄스에 끼어든 청년"같은 그림이 탄생했다. 

리아부쉬킨의 역사에 관한 깊은 지식은 그의 그림의 신뢰도를 높였지만, 
당대의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높이 사지 않았다.  
극적인 역사적 일화를 주제로 그린 바실리 수리코프와는 달리 리아부쉬킨은 17세기의 
일상을 그렸기에 감동이 적었고, 또한 민주사상이 선호하는 계층간의 마찰도 결여되어 있었다.  
그런가하면, 러시아 부유층이 선호하는 미적 요소도 결여되었다.  
그 결과, 리아부쉬킨의 그림은 양쪽 어느 세력에도 소속되지 않은채 인정받지 못했다.
1903년 리아부쉬킨은 결핵 진단을 받아 스위스에서 요양했으나, 다음해 43세로 사망했다.

 

[영상] 안드레이 리아부쉬킨(Andrei Ryabushkin) Paintings!

 

March snow, 1904. 3월의 눈. by Igor Emmanuilovich Graba. 
oil on canvas. 62 x 80 cm. Tretyakov Gallery Room 38

러시아 색채 예술의 대가 이고르 그라바리 (Igor Emmanuilovich Grabar 1871~1960)가 그린 
<3월의 눈>에는 여전히 추운 겨울이 남겨져 있다. 
하지만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의 모습에서 추운 겨울의 움추림은 없다. 
겨우내 꽁꽁 얼어 있었을 길이 봄 바람에 녹아 촉촉해 보인다. 
또, 길게 늘어진 나무 그림자를 보며 겨울보다 해가 긴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다. 
봄 느낌을 여러 소재를 통해 보여주는 작가의 센스는 정말 탁월하며 
눈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촘촘히 찍은 듯한 터치와 눈밭에 비친 빛의 표현은 천재적이다.

 

이고르 그라바리는 러시아의 화가, 출판가, 미술사가이자 회화복원가로서
"점묘파와 비슷한 테크닉의 독특한 분할화법으로 특히 설경으로 유명한 후기인상파 화가"이다.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셍페테르부르그에서는레핀, 
뮌헨에서는 안톤 아즈베의 지도를 받았고 건축학도 공부했다.  
그라바르의 화가로서의 전성기는 1903-7년이고 20년대 후반에 미술비평가가 되었다. 
 
1910-15년에 그라바르는 최고 걸작인 "러시아 미술사"를 편집 출간했다.  
특히 그라바르 자신이 건축에 관해 썼는데 이는 누구도 따르지 못할 우수한 수준의 글이었다.  
1913년 그는 트레치코프 갤러리의 대표로 임명되어 13년간 야심찬 개혁을 했다.  
1913년 현대미술로 소장품을 확장하고 첫번째 도록을 만들었다.  
1921년에는 모스크바 국립대학의 최초의 미술복원학 교수가 되었다.

그라바르는 경력있는 정치인으로 말년까지 소비에트 예술계의 최고 자리에 있었다.  
그가 관리했던  미술복원소는 현재의 그라바르 인스티튜트이다.  
또한 그는 볼셰비키혁명 때 국유화했던 교회의 미술품을 재분배하여 새 뮤지엄을 여럿 세웠다.  
1943년에는 독일에서 세계2차대전 때 강탈했던 미술품의 보상에 관한 소비에트 독트린을 마련했다. 
전쟁후 그는 직접 스탈린에게 건축유적을 보존할 것을 조언했다고.

 

September Snow 1903. 9월의 눈.  1903. by Igor Emmanuilovich Graba.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8

 

[영상] 이고르 그라바리(Igor Grabar) A collection of 112 works (HD)

 

Whirlwind, 1906. 회오리 바람. by Philip Andreevich Maliavin. 
oil on canvas. 223 x 410 cm. Tretyakov Gallery Room 38

이 그림이 그려진 1906년의 러시아는 황실정치의 피폐에 몸서리치고
현실적 개혁과 새로운 시대를 요구할 때였다. 
필립 말랴빈 (Philip Andreevich Maliavin 1869~1940)은 그 개혁의 주체로 그림 속 여인들, 
붉은 색 러시아의 전통의상을 입고 강력한 생명력으로 움직이는 러시아 민중을 제시한다. 
말랴빈은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이동파의 대표 작가이면서도 
당시를 풍미하던 모더니즘적인 기법과 인상주의 기법을 모두 수용한 작가다. 
그러면서 러시아 혁명의 중심에 위치하며 혁명의 주체인 
농민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이기도 하다. 


말랴빈의 <회오리 바람>의 붉은 색과 푸른 색은 러시아의 전통 문양을 이루는 기본 색채로, 
<회오리 바람은>은 러시아다운 색채의 폭풍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러시아 전통 공예품이나 의상 등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러시아 전통 색채는 말랴빈의 그림처럼 붉은 색과 푸른 색이 주를 이룬다. 

넓게 퍼져 둥그렇게 펄럭이는 치마와 머리에 둘러 쓴 숄, 
흥겨운 손동작의 율동감으로 작품 전체가 정열로 가득 차 있다. 
황토 빛으로 햇볕에 그을린 춤추는 농촌 아낙네들의 
상기된 얼굴들 역시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다. 
굵직굵직한 강한 붓의 터치가 현란하다. 
널름대는 화염 같기도 하고 만개한 꽃 같기도 하다. 
이미 탄력이 붙은 춤사위에 몸을 그대로 맡겨버린 농부(農婦)들에게서 
강한 생명력과 삶의 환희가 느껴진다. 
그렇게 보면 이 그림에서 성장하고 있는 민중 봉기의 전조를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붉은 색으로 상징되는 러시아 영혼의 힘을 느낄 수도 있다.

까잔의 한 마을, 형제 많은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던 말랴빈은 
16세 때 그리스의 한 정교회 수도원으로 보내져 성상화를 6년간 수학하였는데 
거기서 만난 유명한 조각가 V. A. 베클레미세프의 추천으로 
1892년 뻬쩨르부르크의 예술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일리야 레핀을 만나 그의 후계자들 중의 하나로 명성을 얻기 시작, 
<웃음>(1899)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고대 성상화가들 이후 말랴빈의 그림에서 최초로 
‘붉은 색’이 완전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의 붉은 색도 이콘에서 많은 부분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말랴빈은 1922년 전시회 개최를 위해 외국으로 떠났다가 프랑스에 정착하게 되고 
1930년대에는 유럽 여러 도시들에서 전시회를 개최 하여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제 2차 세계 대전 때 브류셀에 머물렀는데 독일군에게 
스파이로 몰렸다가 풀려났지만 70세 고령으로 그의 집이 있던 
니스까지 걸어 도착한 후 건강 악화로 곧 사망하게 된다.

 

[영상] 필립 말리아빈(Philip Andreevich Maliavin) A collection of 97 works (HD)

 

Russia, 지금 러시아에서는. 1914.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206.4 X 483.5 cm. Tretyakov Gallery Room 39

참담한 현실을 벗어나 개혁과 변혁을 꿈꾸는 한 무리의 지식인들이 한 곳에 모여 밝은 미래를 기원한다. 
하지만 현재 그들이 보고 있는 그 곳은 그림 속 미치광이가 만들어 놓은 거짓 현실이고 
진정한 미래를 위해 현실을 직시하고 바로 캐어나 움직일 것을 일깨우는 그림이다. 
네스테로프는 러시아의 자연과 종교적 염원을 함께 표현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주제를 담아낸다. 
그의 손에 태어나는 하늘, 나무, 강, 풀 등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가장 깨끗하고 성스러운 종교 같은 것이다. 
전체적으로 그림을 지배하는 색채는 조화롭고 은은하고 깨끗하다.

미하일 네스테로프 (Mikhail Vasilievich Nesterov, 1862~1942)는 좀 특이한 장르의 작가이다. 
러시아의 종교 상징주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네스트로프는 예술에 관심이 많은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2살 되던 해 그를 기술자로 만들려고 기술학교 입학을 위해서 모스크바로 보내졌다. 
그러나 미술가이자 모스크바 예술학교의 교사였던 투르토프스키의 눈에 띄어 
그의 추천으로 러시아 예술가들의 요람인 모스크바 예술학교에 입학한다.

러시아 화가들이 공부한 경로를 보면 대개 모스크바 예술학교를 거쳐 
상페테스부르그 왕립학교 그리고 다시 모스크바 예술학교로 돌아 오는 길을 밟는데, 
네스테로프도 같은 코스를 밟았다. 
1877년 15세 되던 해 부터 4년 간은 모스크바 예술학교에서, 다시 1881년부터 3년 간은 
상페테스브르그, 그리고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2년간 학교를 다니 후 공부를 마친다. 
10년 동안의 미술공부를 하였다.

 

Silence, 고요. 1903.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저녁 무렵 조각배 두 척이 물을 따라 흐르고 있다.  
원근법 같은 것은 무시하기로 했다.  
복장으로 봐서는 앞에 가는 사람은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 같고 뒤를 따르는 배는 시종처럼 보인다.  
흘러가는 물의 몸짓이라도 보일 법한데 물은 산과 하늘의 모습을 안고 흐르는 듯 마는 듯 한다.  
세상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강 건너 작은 교회가 보이는데 산 너머 살짝 고개를 내민 교회가  
물에 흘러가는 두 사람을 내려다 보고 있다.  
얼마만에 만나는 고요인가...

화가로서의 네스테르프의 관심은 일상 생활과 역사에 대한 묘사였다. 
그러나 독실한 러시아 정교 신자였던 그는 20대 후반부터 종교적인 주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또한 표현 방법도 이전까지의 다른 러시아 화가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23살이 되던 해 네스테로프는 마리아라는 여인과 결혼한다. 
그런데 다음 해 딸 올가를 낳고 마리아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만다. 
아내의 죽음은 그의 작품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훗날 네스테로프는 ‘아내의 죽음이 나를 미술가로 만들었다’라고 했는데 
이 때를 기준으로 그의 작품에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분위기와 감정이 더 강조된다. 
물론 그 뒤로 혼자 살지는 않았다. 나중에 에카테리나라는 여인과 재혼해서 1남 2녀를 더 두었다.

상페테스브루그에서 돌아온 네스테로프는 아브람체보에 있는 한 별장을 찾게 된다. 
그곳은 당시 러시아의 ‘철도왕’으로 불리던 사바 마몬토프 소유였는데 러시아 아르누보의 진원지였다. 
네스테로프는 이 곳에서 많은 화가들을 난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종교와 새로운 화풍을 접목시키고자 했지만 
결과는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들에 가깝게 되어 버렸다. 

 

The Hermit, 1888~1889.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하늘과 세상의 진리를 알기 위해 온 몸을 던졌는데 세월은 조그만 지팡이와  
구부정해진 허리를 은둔자에게 남겨 주었다.  
왼 손에 쥔 것은 묵주로 보인다. 그렇다면 러시아 정교회 수도자이겠다.  
잔설이 남은 길을 보다가 그가 걸어온 길보다는 걸어 갈 길이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수도자의 길은 혼자 외로운 길을 걷는 것이겠다.  
외로운 길이 나눔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그리고 사회 정의를 지키는 것일 수도 있다. 

The Hermit, 1888~1889.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1890년부터 1910년까지 네스테로프는 키에프와 상테페스브르그에 머물면서 
수많은 성당의 프레스코화, 모자이크 작업에 참여한다. 
또 자주 러시아 외진 곳에 있는 수도원과 은둔 장소를 찾아 여행을 하였다. 
목적은 수도원과 은둔자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가 머물기 위한 것도 있었다.

 

The Vision to the Youth Bartholomew, 어린 바르톨레메오의 꿈. 1890.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한 소년이 현자로부터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장면이다.  
그림 속의 소년은 러시아 최대 성인으로 추앙 받는  
라도네츠의 성 세르게이 (Saint Sergius of Radonezh)의 어릴 때 모습이다.  
원래 세르게이 성인은 어려서 바르톨로메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910년 이후 네스테로프는 모스크바에 있는 수도원의 작업을 주로 한다. 
1917년 10월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났다. 
러시아 정교회의 신자였던 네스테로프는 이 혁명을 받아 들일 수 없었지만 
그는 외국으로 나가지 않고 모스크바에서 생을 마친다. 
혁명 이후 그는 당대 러시아를 대표할 만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에 몰두한다. 

 

The Vision to the Youth Bartholomew, 어린 바르톨레메오의 꿈. 1890.   

 

소년은 전쟁으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서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때 부여 받은 이름이 세르게이였다.  
성 세르게이는 곧 은둔 수도자 생활을 하면서 수도자들의 공동체인 ‘성삼 수도원’을 건립한다.  
세속의 여러 명예가 그에게 주어졌지만 그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수도자의 길을 걸었던 성인이었다.  
이 작품은 러시아 상징주의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도 평가 받고 있다.

​네스테로프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인물을 앞에 배치하고 러시아 전통 풍경, 
예를 들면 나무와 초원, 숲과 교회 그리고 강을 병풍처럼 둘렀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의 그림은 차분하고 시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그만큼 그림을 놓고 생각할 것이 많다는 이야기도 된다.

네스테로프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영혼을 울리는 듯한 장면을 간결하게 그린 점이다.  
복잡하지 않은 화면, 그러나 풍부한 색상은 작품 속에 서정성을 듬뿍 담아 놓았다.  
네스테로프를 두고 러시아 화화에 새로운 서정성의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네스테로프는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는다.  
그가 러시아 미술사에 남긴 공헌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Youth Bartholomew, 1889.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panel. Tretyakov Gallery Room 39

 

수도사 Sergius의 작품 삼부작.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Portrait of Olga Nesterova, 1905.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Archbishop (Portrait of Antoniy Volynskiy), 1917.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Alenushka, 1925.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Landscape, ​Date unknown.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Youth of St. Sergius, 1897. 성 세르지오의 청소년.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247 x 229cm. Tretyakov Gallery Room 39

캔버스의 중앙에는 젊은 세르지오가 그려져 있다. 
울창하고 혼합된 숲 사이에 가벼운 우렁이 속에 서 있는 당당한 청년. 
그의 얼굴은 가볍고 사랑과 친절로 가득 차 있다.
갈색 곰이 그의 발에 누어 있다. 

작가는 야생의 모든 색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녹색 톤을 사용했다. 
풍부한 녹지와 야생화는 계절이 봄임을 나타낸다. 
작은 목조 교회가 배경에 보인다. 
아마도 그녀와 함께 Trinity-Sergius Lavra의 역사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캔버스에는 인간과 주변 자연의 조화가 지배적이다. 
가슴 위로 팔짱을 끼고 세르지오는 멀리서 시선을 집중하며 온 세상을 위해 기도한다.
청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그의 머리 위에 빛을 묘사한다.

Mikhail Nesterov는 위대한 성도를 깊이 존경했으며 
그의 작품에서 그 의의와 순결 및 믿음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어렸을 때부터 바돌로매 청년은 금식, 끊임없는기도, 그리고 더 많은 수도원을 택했다.

 

Calvary, 1899. gouache.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Tretyakov Gallery Room 39

 

Portrait of Ekaterina Nesterova, 1905.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Three Old Men (also known as The Fox), 1915.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Philosophers (also known as S.N. Bulgakov and P.A. Florensky), 1917.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126 X 126 cm. Tretyakov Gallery Room 39

 

Girl by the Pond, 1923. by Mikhail Vasilyevich Nester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9

 

[영상] Tretyakov Gallery Room 39. 미하일 네스테로프 (Mikhail Nesterov) 작품 전시실

 

 

 

러시아 최고의 풍경화가 이삭 레비탄 (Isaak Ilyich Levitan 1860-1900) 작품 전시실

이삭 레비탄은 리투아니아 카팔타이 출생으로 어려서 부모를 잃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예술에 대한 뛰어난 재능이 인정되어 모스크바의 미술전문학교에서 수학하고 
풍경화가인 A. K. 사브라소프와 V. D. 폴레노프의 지도를 받았다.

 

이삭 레비탄은 서정적인 러시아 풍경화가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러나 초기부터 개성있는 자신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대표적인 무드 풍경화 (Mood Landscape)로 그의 그림이 불리면서 러시아 지식인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으며 그는 그림뿐 아니라 시와 음악에도 무한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안톤 체홉(Anton Chekhov, 1860~1904)과도 친구였던 이삭 레비탄은 
삶에 대한 철학적인 고뇌를 거듭하며 뛰어난 예술가로 성장했다. 
1884년부터는 이동파(移動派)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으며 리얼리즘 회화 발전에 주력하고, 
1898년 이후는 모교에서 후진들의 지도에 힘쓰는 한편 볼가를 비롯하여 
핀란드 · 독일 · 프랑스 · 스위스 · 이탈리아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독특한 풍경화를 그렸다.

 

1897년 그는 심한 심장병을 앓게 되고 죽음과의 싸움 속에서도 열정과 뛰어난 테크닉, 
특별한 영감은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새로운 스타일의 작업을 시도하게 했다. 
1900년 마흔 살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많은 전시회를 열고 
그 시대의 많은 예술가들과 깊은 우정을 나누며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인정을 받았다.

 

 “자연의 장엄한 아름다움 속에서 신비를 느끼면서도 그 웅대한 느낌을 
표현해 낼 수 없는 내 자신의 무능력함을 깨닫는 것보다 더 비극적인 일이 또 있으랴!" 
- Isaak Levitan

 

이삭 레비탄은 20세기가 시작되기 전 러시아에서 가장 사랑 받는 풍경화가였다. 
그의 작품에는 서정과 철학 그리고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고뇌가 들어 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그는 특히 조국 러시아의 대자연을 사랑하여 이를 소재로 서정적인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대표작으로 《블라디미르에의 길》《가을날》《못가》등이 있으며, 이들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과 함께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Tretyakov Gallery, Moscow)에 소장되어 있다.  

 

러시아 최고의 풍경화가 이삭 레비탄 (Isaak Ilyich Levitan 1860-1900) 작품 전시실 

 

The Vladimir's Road. 블라디미르 가는 길. 1892.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79  X 103 cm. Tretyakov Gallery Room 37

끝이 어디에 닿을 지도 모를 듯 길게 난 길. 
이 길은 누군가에게 시작 될 수도 있고 도착이 될 수도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품고 있는 저 길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실 그림 속 길은 시베리아 유형지로 연결되는 길이란다. 
수 백년의 역사 속에 수많은 눈물을 뿌렸을 저 길은 러시아인들의 존재이며 근원이라 할 수 있다.

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헤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을 장벽으로 만드는 것도 길이다. 
지평선 너머 사리지는 길의 끝은 동경의 대상이지만, 
그러나 이 길은 시베리아 유형지로 가는 길이다.  

블라디미르는 모스크바에서 동쪽의 <니쥐니 노보고로트>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으며, 
제정 러시아 당시 그 길은 시베리아로 접근하는 주요 통로 중의 하나였다. 
네를리 성당 인근의 보골류보보까지 가는 도중 깨끗하게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는, 
제정 러시아 당시에는 시대와의 불화를 겪었던 젊은 유형수들이 
시베리아의 유형지를 향해 떠나며 걸었던 길이었다. 
어쩌면 살아서는 돌아오지 못할 그 길을 가며 피눈물을 뿌렸던 바로 그 길이었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의 러시아의 풍광을 배경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필름과 같은 기억 속의 
블라디미르카 가도를 레비탄의 그림을 통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만난다.
하지만, 흙먼지 날리는 모습의 <블라지미르카 가도>, 그 길은 <수용소군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저자 솔제니친이 기나긴 소비에트에 대한 정치적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러시아에 돌아와서 맨 처음 했던, 광활한 러시아 영토에 대한 
순례를 위해 여든의 노구를 이끌고 떠난 길이기도 했다.

1958년 작가 보리스 빠스쩨르나끄는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의사 지바고>에 대한 노벨문학상 지명을 통보받는다. 
소비에트 혁명에 소극적이고, 어쩌면 비판적이기까지 했기에 조국 러시아에서 출간되지 못하고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간되었던 <의사 지바고>에 주어지는 상을 수상하면, 
혁명으로 세워진 당시의 조국인 소비에트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부정으로 간주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수상을 위해 출국한다면 소비에트로의 귀국을 허가받지 못할 것이라는 당국의 통고가 있고 나서 
"고국을 떠난 작가는 토양을 떠난 화초와 같다"라는 말을 남기면서 수상을 거부한다.

도무지 사랑하기는 어려웠던 소비에트라는 정치체제와는 별개로, 
그에게 있어 러시아는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살가운 애정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 후, 소비에트 작가동맹에서 축출되고, 마치 지바고가 평생의 연인 라라의 뒷모습을 보며 
거리에서 심장마비로 죽어갔듯이 빠르쩨르나끄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쓸쓸하게 사망하면서도 러시아 대지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빠스쩨르나끄가 잃어버리길 두려워했던, 솔제니친이 여든의 노구를 이끌고 순례한 
바로 그 러시아의 대지와 그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의 숨결이 <블라디미르카 가도> 속에 표현되어 있고, 
비록 손바닥만한 도판이지만 그 조그만 그림에서 이러한 것들을 읽어낼 수 있다.

한여름 뙤약볕에 몸을 내어말리던 금잔화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채로 피어있던 그 길을, 
그리고 몇 년 만에 친정을 다니러 왔다가 헤어짐의 눈물을 훔치며 집을 나서는 
고된 시집살이에 시달린 이웃집 누나와 늙으신 그녀 어머니의 주름진 눈매 틈으로 번져가던 
마른 눈물 사이에 고통스럽게 놓여있던 황토길을 다시 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걸어가야 했던, 아직도 기나긴 과거로부터 흙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미래를 향해 놓여 있어, 
현재의 우리 삶을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처절한 확증성을 더해주던, 
애증의 대상일 수 밖에 없는 삶과 역사의 그 길을 레비탄의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다.

분명히, 레비탄의 그 그림에 시선을 붙들어 둔 것은, 
광활한 서시베리아 순상지 평원에 뚫린 단순하면서도 지리적인 개념의 도로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잊혀진 삶의 기억의 어느 부분을 현재와의 소통이 가능하도록 
정신적 제단에 올려놓게 만드는 힘이며 그 통로일 것이다.
또한, 그 힘은 보이지 않는 미래의 시간이 우리 얼굴에 빚어놓을 그 무엇을 기대하게 하며, 
불확실함을 기대와 환호와 좌절로 변태시키면서 현실에 한발 앞서 나의 삶을 이끄는, 
돌연한 향기와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끈적한 집착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제 누가 감히 눈에 보이는 풍경만을 그렸던 풍경화가라는 단순한 수식어를 그에게 선사할 수 있을까?
비록 컴퓨터 화면으로나마 그의 그림을 접할수록, 그가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숙주로 해서, 
자연 위에 흘렀던 바람의 흔적을, 광활한 초원과 수풀을 휘감으며 어루만지면서 
들꽃과 같은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왔던 러시아 민초들의 이마와 가슴에 속삭였던 
그런 바람을 번식시켰다는 심증을 갖게 된다. 

이렇듯 레비탄의 천재성은 경계선상의 자연과, 이 안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결과, 
역사를 한꺼번에 화폭에 씨줄과 날줄로 엮어 화폭 속에 통합시켜 놓았다.
그는 영속적인 자연의 미와 적막한 빛의 환희 속에서 바람을 그린 화가였다.

 

Deep Waters, 1892.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150 X 209 cm. Tretyakov Gallery Room 37

강을 가로질러 건너 숲 속으로 뻗어 있는 길을 다리가 연결하고 있다. 
가난한 시절 돈이 없어 학비가 면제되는 것을 부끄러워 했던 레비탄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역으로 달려가 승객들을 태운 기차가 출발하기 전 기차를 스케치하고는 했다. 

대낮의 태양을 품고 있는 러시아 여름 저녁의 고즈넉함과 
외롭게 서 있는 통마무 다리가 한 편의 시 같은 느낌을 준다. 
이 그림은 실제로 보면 좋은데 다리의 방향이 내 시선을 따라 움직인다. 

 

Above the Eternal  tranquility. 영원한 평화 그 너머. 1894.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95 X 127 cm. Tretyakov Gallery Room 37

'영원한 평화 그 너머'에는 소나기가 지나간 후의 고즈넉한 여름 풍경을 그대로 품고 있다. 
그림 속 자연은 장엄하고 거룩한 느낌이다. 
작가는 언덕 위에 있는 교회 옆에 자신을 세워 놓고 광활한 자연을 둘러 보라고 말한다. 
세상 안에서 우리 인간은 아름다운 다툼을 하지만 대단한 자연 앞에 서면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며 겸허해진다. 
레비탄은 이런 풍경을 보여주며 삶을 돌이켜보라 일깨워 주는 것이다.

 

Fresh Wind. Volga. 볼가강의  시원한 바람. 1895.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72 X 123 cm. Tretyakov Gallery Room 37

볼가 강의 여름 강물과 파란 하늘이 하나되어 온 세상을 푸르게 물들인 듯한 그림이다. 
잔잔한 물결의 움직임과 하늘의 구름을 보며 
볼가 강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이 현실에서 그대로 느껴지는 듯 상쾌하다.

 

Vesper Chimes. 저녁 종. 1892.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67 X 108 cm. Tretyakov Gallery Room 37

 

Evening in the Field. 1883.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7

 

Village Savvinskaya Sloboda near Zvenigorod. 1884.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44 X 67 cm. Tretyakov Gallery Room 37

 

Golden Autumn. 1895.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126 X 82 cm. Tretyakov Gallery Room 37

 

Spring Flood. 1897.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7

 

The Lake. Study. 1898-1899.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7

 

March, 1895.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7

 

Autumn day Sokolniki. 1879. by Isaac Levita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7

 

[영상] Tretyakov Gallery Room 37. 이삭 레비탄 (Isaak Ilyich Levitan) 작품 전시실

 

 

 

34번 방까지 관람하고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 1층의 35번 방으로 간다. 
37번까지 19세기 후반의 사실적인 그림이 계속되고, 
38번 방부터 19세기 후반 20세기 초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이 시기는 19세기 후반 서유럽의 인상파로부터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까지 
다양한 유파가 한꺼번에 수용되었기 때문에 미술의 일관성을 찾기가 상당히 어렵다. 
대표적인 작가를 언급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림의 성향에 따라 몇 사람의 작품을 유형별로 나눌 수 있을 뿐이다.

38번 방에 있는 그라바르(1871-1960)의 그림은 서유럽의 인상파 그림을 모방하고 있다. 
41-42번 방에 있는 세로프(1865-1911) 역시 인상파에서 시작 아방가르드로 넘어가고 있다. 
그것은 ‘소녀와 복숭아’(1887), ‘헨리에타 기르쉬만의 초상’(1907), 
‘오이로파의 납치’(1910)를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43번 방의 코로빈(1861-1939)은 서유럽의 후기 인상파로부터 
독일 표현주의까지 작품 경향을 받아들인 것 같다. 
‘파리, 카푸친 거리’(1911)와 ‘물고기, 포도주, 과일’(1916)에서 그러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러시아 미술사에서 중요한 변화는 세기 전환기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화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념적인 지도자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와 알렉산드르 베노이스(1870-1960)를 중심으로 
잡지를 발간하면서 “예술세계 그룹 (World of Art group)”을 결성하고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해 나갔다.

그들은 페레드비츠니키의 예술이 지나치게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러한 경향은 44번 방의 세레브리야코바(1884-1967), 소모프(1869-1939)의 작품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전시공간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박스트(1866-1924)의 ‘살로메’와 
골로빈(1863-1930)의 ‘홀로페르네스로 분장한 가수 표도르 칼리아핀의 초상’이 
아주 환상적이고 그로테스크해서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46번 방부터 48번 방까지 방은 일정한 기준이 없이 여라 미술가들의 작품이 섞여 있다.
다만 이들의 그림이 바로 러시아의 아방가르드로, ‘푸른 장미’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전시회를 통해 자신들의 화풍을 보여 주었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파벨 쿠즈네초프(1878-1968), 마르티로스 사리얀(1880-1972), 
니콜라이 사푸노프(1880-1912) 등이 있다.

그리고 49에서 54번까지 방에 있는 18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의 그래픽들이 전시되어 있고, 
55번 방에는 12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 그래픽이란 드로잉, 수채화, 파스텔, 프린트와 같은 형태의 그림으로 
6개월 마다 전시품이 바뀐다고 한다. 
그리고 보물이란 값진 금속과 보석으로 이루어진 예술품과 미니어쳐, 이콘 등을 말하며, 
은으로 상감된 이콘, 금으로 장식된 예배당 등이 대표적이다.

 

<ROOM 35- 37> 19세기 후반 그림

 

On the Tiberiad Lake, 타이비어리드 호숫가. 1888.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5 

이스라엘 북부 골란 고원 아래에 있는, 요즘 이름으로는 타이비어리어스 호수이다.  
주변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걷는 사람의 모습이 많이 익숙하다.  
폴레노프가 예수님과 관련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림 속 인물은 예수님을 상상한 것일 수도 있겠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제우스의 모습에서 가져와 조금씩 변형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유대 지방에서 태어나신 예수님 모습은 그림 속 남자의 모습과 많이 닮지 않았을까 싶다.  
길옆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있다.  
길은 그 사이로 이어지겠지만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도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도 돌이 많은 길인 것은 분명하다. 

‘타이비어리어스’는 영어 Tiberias의 발음을 그대로 적은 것 같다.  
우리말 표기로는 ‘티베리아스’ 또는 ‘티베리우스’라 적어야 할 것 같다.  
히브리어로는 ‘티베랴’. 본래 이스라엘 갈릴리 지방의 갈릴리 호수 서안에 있던 마을의 이름이다.  
그 이름은 로마 2대 황제 티베리우스에서 따왔다.  
그러니까 타이비어리어스 호수는 곧 갈릴리 호수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티베리우스 황제 치세 때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바실리 폴레노프(Vasily Polenov 1844-1927)는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깨끗하고 밝은 색,

색깔이 있는 그림자, 자유로운 붓 터치와 같은 기법을 소개했고 이 무렵부터

러시아 회화의 전통에 따라 사실적인 풍경화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풍경화를 통해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삶과 어우러진 러시아의 시적인 풍경들 전하고 싶어 했다.  
그의 기법은 그의 뒤를 이어 등장하는 풍경화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Moscow Backyard. 모스크바 뒷마당. 1878.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80.1 x 64.5 cm. Tretyakov Gallery Room 35 

폴레노프의 유명한 1878년 그림 "러시아의 전형적인 안마당" 이다. 
폴레노프는 상트 페테르스부르그 태생으로 1863-1871년 황립예술학교에서 공부했다.   
동급생으로 이동파 미술가이자 유명한 사진사였던 라파일 레비츠키와 막역지우였다.   
그들의 서간문은 폴레노프 저택 갤러리에 보관중으로 당대 미술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폴레노프와 레비츠키는 둘 다 독신일 때 처녀의 들판이란 뜻의 "Devich'e Pole"  
거리에 있는 집의 다락방에서 함께 살았는데, 훗날 레비츠키가 이 집의 여주인과 결혼하였다.   
밝은 햇살, 푸른 하늘, 깨끗한 공기, 세상에서 제일 환하고 평온한 모습을 

표현한 듯한 그림 속 지역은 19세기 말엽 모스크바의 모습이다.  
<모스크바의 정원>은 19세기 모스크바 스타르이 아르바트 정경을 그대로 담아 놓았다.  
지금도 모스크바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붉은 광장과 함께 꼭 들르는 관광 명소로  
현재는 빌딩 숲이 우거진 대도시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19세기에는 그림과 같았다고 한다. 

 찬란한 태양 아래 밝게 빛나는 모스크바 정원의 새파란 잔디 위에서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다.  
그렇게 펼쳐지는 평온함과 건강한 생명력이 그림의 핵심이다.  
이 그림은 19세기 모스크바를 재현한 것이기 때문에 모스크바 도시 행사의 카탈로그 표지나  
국가적 차원에서 모스크바를 보여주어야 하는 책자같은 것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그림이기도 하다.  
모스크바 시 성립 850주년 기념행사 포스터에도 이 작품이 대표 그림으로 사용되었다. 

 

Granny's Orchard. 할머니의 정원. 1878.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64.5 x 80.1cm. Tretyakov Gallery Room 35 

그림 속 정원은 잡초가 무성히 자리있고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어쩌면 버려진 듯한 느낌을 준다.  
할머니 혼자 사는 대저택 같은데 늙은 노인이 손보고 가꾸기는 너무 커 보인다.  
이미 연로한 할머니는 사실 누구의 도움 없이 산책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도시에 사는 손녀가 이렇게 찾아 와 따뜻한 햇빛을 선사해 주지 않는다면 할머니는 출입조차 힘들것이다.  
누구의 손길도 닿지않는 저택의 정원처럼 할머니의 삶도 외롭고 또 외롭다.  
할머니의 남은 인생과 내버려진 정원. 이 또한 얼마나 절묘한 비유한가. 

이제는 허리가 구부정해져 지팡이와 옆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하는 할머니가 정원 산책을 나섰다.  
뒤로 보이는 건물도 할머니만큼의 나이를 먹었겠다.  
어쩌면 훨씬 그 이전부터 그곳에 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원의 나무와 꽃들은 여름의 햇빛 아래 푸르름이 절정에 이르렀다.  
그 길을 걷는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무수한 상념이 떠오르겠다.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나만 늙어가는 것일까?  
분홍색 옷을 입은 젊은 여인에 비해 할머니가 입고 있는 검은색 옷은  
이제는 되돌아갈 시간이 없음을 알려주는 징표 같아서 마음이 언짢아진다. 

열두 살부터 체계적으로 드로잉을 배운 폴레노프는  
3년 뒤 풍경화가인 치스타코프에게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운다.  
1863년 열아홉의 폴레노프는 법률을 전공하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 입학하는데 왕립 아카데미에도 입학을 한다.  
법학과 미술을 같이 전공하기로 한 것이다.  
성격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분야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폴레노프는 해내고 만다. 

폴레노프는 러시아-터키 전쟁의 (1877-1878) 종군 화가를 지내고 돌아온 후   
Peredvizhniki (이동파)에 참여했고, 파벨 트레치코는 

그의 그림을 좋아하여 다수 구입했다.   
그는 사실적인 풍경화에 집중하며 사람의 일상과 관련된 

러시아 자연의 시적 정적감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   
폴레노프는 외광파의 생생한 색채를 예술적 구성 처리와 결합시킨 

러시아 최초의 화가 중 일인이다.   
그가 발전시킨 원칙은 훗날 소비에트의 풍경화 발달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폴레노프는 1893년 셍페테르스부그 미술학교 교수가 되었고,  
1926년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인민화가로 지명됐다.   
그는 모스크바 미술, 조각, 건축학교에서 가르쳤고, 

아르히코프, 리비탄 등이 제자였다.   
폴레노프가 살던 집은 국립박물관으로 되었고, 

그가 살던 마을은 '폴레노포'라고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927년 83세로 사망.

 

Primae noctus, 1874. 초야권.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120 X 174 cm. Tretyakov Gallery Room 35 

폴레노프는 이태리, 프랑스의 역사적 주제를 담은 그림을 다수 그렸다. 
'나리의 권리, 초야권'이라는 작품은 나리에게 세 농노 처녀를 데리고 와서 선보이는 모습이다.  
이 그림의 배경은 유럽이지만 러시아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화가는 그때까지도 농노 처녀들의 초야권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 귀족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귀족들은 농노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사랑의 대상은 더더욱이 아니었다. 

​러시아 감상주의는 진보적인 귀족 계급 문화의 한 현상으로, 18세기 후반 문학 및 

예술 속에서 계몽주의적인 이성 우월주의의 위기로 인해 형성된 흐름이었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분출과 완성, 개인의 ‘감수성’을 맹목적으로 숭배하였고,  
사회보다는 한 개인이 문학적인 지각의 중심에 들어서게 되었다.  
인간의 내면세계는 물론 인간 주위의 자연 세계도 파헤쳐 보이려는 특징을 가진다. 

​감상주의의 특징적 대비로는, 순결한 자연, 비도덕적 문명, 전원의 한적한 생활,  
번잡한 도회지 생활, 꾸밈없는 자연 그대로의 시, 이성적인 시 등이다.  
또한 감상주의적 경향에서는 민중의 정신적인 특성, 

민족적인 서사시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게 된다. 

계몽주의 시대에 발전했던 개방성, 사회적 기호와 자유로운 여론, 개성과 

독립성을 존중하는 개별 인간의 고양된 가치에 의존하였지만, 

사회적인 인간의 구체적인 성격을 밝혀내지 못했고,  
인간을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묘사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소작농이 소작세를 갚지 못했나 보다.  
이제 갓 피어 난 듯 싱그러운 소녀들이 지주에게 제물로 바쳐진다.  
지주는 음흉한 표정으로 소녀들을 훑어 보고 있다.  
그런 주인의 마음을 대변이나 하듯 지주의 사냥개들조차도 거만함이 묻어난다.  
성문 입구에서 안타깝게 가로막힌 채 절망하는 아빠의 애틋함이 

그림 한 쪽에서 강한 포인트가 되고 있다. 

젊은 여자를 대동하고 노인이 영주를 보고자 찾아왔다.  
한눈에 봐도 고약한 인상을 가진 영주는 허리에 손을 척하니 올리고  
한 계단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불안한 눈으로 영주를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처녀의 눈빛은 겁에 질려 있다.  
곧 결혼을 앞둔 처녀가 초야권을 영주에게 바치러 온 것이다.  
중세 스위스에서는 남편이 아내 될 여자의 초야권을 갖기 위해서는 ‘초야세’라는  
세금을 내야 했다는 기록도 있다는데, 지금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성직자나 그 지방의 영주가 그 권리를 행사하는 곳이 많았다고 한다.  

권력은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하는 습성이 있다.  
어린 소녀의 가느다란 한숨소리, 음흉한 영주의 웃음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고  
하루를 마감하는 해는 건물의 흰 벽에 불안한 붉은 그림자를 남기고 넘어가는 중이다.  
그건 그렇고 눈에 거슬리는 개 두 마리.  
왜 권력자들은 개를 데리고 나타나는 모습이 많을까? 하는 짓이 개와 닮아서 그런가? 

폴레노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높은 계급의 장교였고 한편으로는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미술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화가였는데, 이런 부모의 재능은  
두 사람 사이의 아이들이 미술과 과학을 좋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Early Snow. 철이른 눈. 1891.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5

아직 잎들이 다 지지도 않았는데 눈이 내렸다. 
지평선을 건너온 찬바람은 미처 떨어지지 못한 잎들을 흔들고 있고 
아스라한 지평선은 파란색으로 남아 다가올 겨울을 더욱 차갑게 만들고 있다. 
아직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크게 휘어 나가는 강 위로 쌓인 눈은 조만간 강물도 덮을 기세이다. 
겨울은 침묵해야 할 시간이다. 
우리에게 침묵해야 할 시간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침묵 뒤에 오는 고요함은 다시 그 뒤를 이을 생명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되기에.

83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 해에 폴레노프는 공화국 인민화가의 칭호를 받는다. 
러시아의 풍경화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그에게 어울리는 영예였겠다.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River Klyazma. Zhukovka. 클리즈마 강. 1888.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5

 

Pond in Abramtsevo.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5

 

Overgrown Pond, 숲이 무성한 연못. 1879.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5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 낯이 익은 풍경이다. 
수련이 떠 있는 연못, 작은 선착장은 연못에 발을 담그고 있고 
우거진 숲의 품에 안긴 듯한 벤치가 보인다. 
숨은 듯 만 듯한 여인은 벤치에 앉아 책을 펼쳤다. 고요하고 싱그럽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한, 언젠가 본 듯한 풍경화를 ‘무드 풍경화’라고 한다. 
흰 들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는 길은 여인이 앉아 있는 곳으로 이어졌다. 
조명을 흐리게 하고 음악이 있다고 해서 ‘무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괜찮다면 연못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1871년 스물일곱의 폴레노프는 변호사 자격증을 따며 대학을 졸업한다. 
또한 왕립 아카데미에서는 ‘야이로 딸을 일으키심’이란 작품으로 금메달을 수상한다. 
이렇게 되자 폴레노프의 고민이 시작된다. 
금메달에 대한 부상은 유럽 여행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었다. 
몇 달을 고민한 폴레노프는 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하느님도 편애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Sick Girl. 아픈 소녀. 1881.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5

 

Erechtheion. The Portico Of Caryatids. 에레크테이온 신전.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5

 

Fountain Of The Virgin Mary In Nazareth. 나사렛 성마리아 샘물. 1882. by Vasily Polen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5

 

[영상] Tretyakov Gallery Room 35. 바실리 폴레노프(Vasily Polenov) 작품 전시방

 

Portrait of Anton Pavlovich Chekhov, 1898.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의 초상. 
by Osip Emmanuilovich Braz. oil on canvas. 80 × 120 cm. Tretyakov Gallery Room 36 

러시아 문학의 거장 중 하나인 안톤 체홉의 초상화다.  
이 초상화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그래, 체홉이 의사였지' 하는 느낌이 든다. 
체호프는 러시아 문학사를 이야기할 때 유난히 많은 분량을 할애받는 작가다.  
이는 체호프의 작품이 워낙 뛰어나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이전과는 다른 문학 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즉, 체호프는 그간의 러시아 문학사를 톺아보고 정리하는 마디로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작가인 셈이다. 

단편소설의 거장으로서 체호프의 작품에서는 

동시대 여타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여러 특징이 나타난다.  
먼저 사건이 중요하지 않다. 사건이 뒤섞이거나,  
사건이 존재함에도 의도적으로 언급되지 않는 기묘한 서술이 발견된다.  
극단적으로는 사건이 아예 없기까지 하다.  
또 별거 아닌 사건을 침소봉대하는가 하면 심각한 사건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취급하기도 한다.  
사건이 중요하게 여겨지던 당대 리얼리즘의 영향을 생각하면 가히 파격적이다.  
그는 이러한 기법을 통해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거나 작품 자체를 순식간에 끝내버리곤 한다. 

근대 소설의 거장으로서 문학계에 큰 파란을 체호프의 세계란 명령이 없는 무념무상의 세계였다.  
이 말은 즉 체호프 이전의 문학은 명령이 있는 유념유상의 세계였다는 것이다.  
체호프는 주로 불가지론의 입장에 섰고, 혁명 전야의 혼돈기에 대다수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구체적인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끝까지 꺼렸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떠올리면 알 수 있듯이 그간의 문학은 교훈과 메시지를 담고 있었고  
또 그래야만 훌륭한 문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체호프는 그것을 거부한 것이다. 

그렇다면 체호프는 왜, 어떻게 이러한 세계관을 갖게 된 것일까? 
먼저 그의 본직이 의사였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답이 없으면 없다고,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하는 자연과학자의 입장은  
톨스토이와 같은 사상가의 삶과는 대비되는 면이 있을 테다.  
결정적인 계기는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시베리아 · 사할린 여행이었다.  
범죄자들의 유배지인 황량한 사할린에서 그는 비인간적인 삶과 일상적인 매춘,  
그리고 끊임없는 기아를 보며 인간의 극단을 목격한다.  
이 여행 이후 체호프의 작품 세계는 톨스토이를 비롯해  
당대의 주된 사조였던 비판적 리얼리즘과 완전히 단절된다.  
비판적 리얼리즘이 정말로 ‘리얼’을 담보하고 있는지 회의하게 된 것이다. 

그는 리얼리즘의 현실을 모르는 공허한 훈계조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작품에 사건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이렇듯  
리얼리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의도적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작가란 세상을 꿰뚫고 판단을 내려주는 재판관이 아니었으며, 그럴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재판관이 아닌 증인으로서 사실을 서술하는 것,  
체호프의 문학 세계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오시프 브라즈 (Osip Emmanuilovich Braz 1873 -1936)는 러시아-유대인의 사실주의 화가다. 
브라즈는 현재의 우크레이나 지역인 오데사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1891-93년 뮌헨예술학교에 다녔다.   
뮌헨에서 파리, 네덜랜드로 가서 고전의 대가들을 연구했다.   
유럽 미술을 접하며 배운 것이 평생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1895-96년 브라즈는 셍페테르부르그 예술학교에 다니며 일리야 레핀 스튜디오에서 공부했다. 

다음해, 브라즈는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 세르게이 이바노프 등 러시아 문화계 인물들의 초상을 그렸고,  
그 중 안톤 체홉의 그림(위)이 가장 유명하다.   
또한 프랑스, 크리미아, 핀랜드의 풍경화도 훌륭하다.  


1907-11년까지 브라즈는 프랑스에 머물렀기에, 프랑스미술의 발전 동향에 영향받았다.  
1914년 그는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에르미타쥐 뮤지엄의 회화 복구 위원 중 하나였고,  
소비레트 건국 초장기에 그는 에르미타쥐의 큐레이터가 되었다.   
1924년 브라즈는 해외 반출 목적으로 그림을 사 모았다는 죄목과 간첩으로 체포되어 3년형을 받았다.   
동시에 17세기 네덜랜드 명작 등 그의 콜렉션은 국가에서 차압했다.   
1926년 레닌그라드 예술협회의 탄원으로 풀려난 후,  
파리에서 정착하여 그림을 그리고 골동품 거래 및 그림 콜렉션을 하며 살았다. 

 

[영상] 오시프 브라즈(Osip Braz) : A collection of 30 paintings (HD)

 

Silence has settled, 1890. 내려 앉은 고요. by Nikolay Dubovskoy.  
oil on canvas. 76.5 x 128 cm. Tretyakov Gallery Room 36 

폭풍 전의 고요함! 우리 인간은 이런 풍경앞에서 불안한 마음에 두려움이 솟구치기도 하지만  
거대한 자연앞에 경외감을 가지기도 한다.  
작가는 폭풍 오기 전 드라마틱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거대한 먹구름이 화폭의 반을 차지하게 그려  
폭풍전야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전한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다가오는 자연의 힘을 그렇게 두보프스코이는 표현하고 있다.  
19세기 말엽 대표 풍경화이기도 하다. 

때는 늦가을 저녁, 호수 위로 거대한 구름이 밀려 와 자리를 잡았다.  
해는 이미 졌지만 구름의 머리는 남은 해의 잔광으로 하얗게 빛나고 있다.  
그 뒤 검은 구름이 다시 흰구름을 덮어 오고 있다. 

하늘의 이런 변화를 호수는 흔들림 없이 그대로 안았다,  
검은 점으로 떠 있는 배는 오색으로 불타고 있는 육지를 향하던 걸음을 잠시 멈췄다.  
그림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은 움직이는 듯 하지만 멈춰 있고  
흔들리는 듯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몽환의 세계와 같은 고요함이 그림을 가득 채웠다.

 

화가 니콜라이 두보프스코이 (Nikolay Dubovskoy 1854~1918)는 상트페테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에 대한 기록도 별로 남아 있는 것이 없어서 단편으로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아보겠다.  
그는 처음에 키에프 군사 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장학금을 받고 
상트 페테스부르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진학한다.  
군사학교가 당시에는 고급 교육기관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술 분야에서 특출한 재능을 보였겠다. 

열 여덟 살의 그를 아카데미에서 지도한 선생님은 ‘러시아 풍경화의 얼굴을 바꿨다’라는 평가를 받은  
미하일 콘스탄티노비치 클로트 (Mikhail Konstantinovich Clodt, 1832~1902)였다. 
그런데 보통은 6년 이상 공부를 하는 아카데미를 

어찌 된 영문인지 두보브스키는 4년 만인 스물 두 살에 그만 둔다.  
아카데미를 나온 두보브스키는 바로 다음 해 독립 풍경 화가로서 작품 전시회에 참석한다.  
가끔은 사회가 정해준 길을 벗어나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길은 너무 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길 위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그 길을 끝까지 간 사람들은 오래 기억 속에 남는다. 
  
낭만주의부터 상징주의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장르의 화풍을 잠깐씩 거치면서  
두보브스키의 작품 속에는 러시의 풍경들이 등장했다.  
겨울을 주제로 한 작품도 많았는데, 일출과 첫눈, 비 내리기 전의 모습과 내린 후의 풍경  
그리고 고요하고 적막한 자연의 모습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1886년, 스물 일곱의 두보브스키는 이동파의 멤버가 된다.  
기본적으로 그는 스승인 클로트처럼 확실한 사실주의 화풍을 유지하면서 수채화 작업도 병행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두보브스키와 그의 스승이었던 클로트가 걸었던 길이 달라진다. 

스승인 클로트는 아카데미 교수가 되면서 이동파를 탈퇴하라는 압력을 받고 마침내는 이동파를 떠난다. 
그런데 두보브스키는 작품을 통해 얻은 명성으로 1898년 아카데미의 준회원이 되지만  
오히려 그 다음 해 이동파의 실질적인 리더가 된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이동파도 그 이전까지 러시아 미술계를 움직이던 힘이 빠졌겠지만  
두보브스키의 인간적인 역량이 작용한 것 아닌가 싶다. 

1890년대 두보브스키는 유럽과 근동지방에 대한 여행을 시작한다.  
한 번으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빈번하게 드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1900년, 두보브스키는 아카데미 정회원이 된다.  
뒤 이어 1911년 자신이 젊었을 때 공부했던  
상트 페테스부르크 미술 아카데미 풍경화 화실의 주임 교수로 선발된다.  
경력으로 만 본다면 스승인 클로트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걸은 셈이 된다.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라는 말이 두보브스키에 대한 이야기로 가장 정확할 것 같다. 
1918년 그는 59세를 일기로 빛과 고요함이 가득한 러시아 풍경을 우리에게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난다.

 

[영상] 니콜라이 두보프스코이(Nikolay Dubovskoy) : A collection of 66 paintings (HD)

 

Golden Autumn, 1887. 황금빛 가을. by Ilya Ostroukhov. 
oil on canvas. 48.2 x 66.3 cm. Tretyakov Gallery Room 36

가지고 있는 몸 속의 모든 힘을 다 뿜어 내는 것 같은 잎들에게서 문득 경건함이 느껴진다.
마지막은 늘 이렇게 화려해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일몰과 가을의 단풍을 볼 때이다.
곧 떨어져 미라처럼 마를 잎들의 모습은 아주 멋진 삶을 살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숲 사이로 난 작은 길 위, 산새도 잠시 가을 속으로 깊게 빠져 든 모습이다.

일리야 오스트로우호프 (Ilya Ostroukhov 1858~1929)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는데 뛰어난 소질이 있었다.
​때문에 사실적인 기법으로 풍경을 그림으로 담아냈는데 거기에 시적인 느낌을 더했다.
그의 작품이 사진 같은 정교함에 머물지 않는 까닭이겠지. 
한편으로 오스트로우프는 뛰어난 미술품 수집가였다.
부유한 집안 환경을 배경으로 그는 러시아 대가들의 작품을 모을 수 있었다.
물려 받은 재산을 쉽게 날려 버리는 2세들에 비해 그는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림의 장소는 모스크바 근교에  위치한 20세기 초반 러시아 최고 예술 후원자인 
마몬토프 생가 아브라함 쩨보의 한 산책로다. 황금 가을의 최절정기를 그렸다. 
작가는 황금색의 화려한 낙엽을 표현하기 위해 인상주의적 터치를 사용하여 환상적으로 표현하였다. 
또 각 소재별로 표현의 선명도에 차이를 두어 자연스럽게 숲 속의 공간감이 느껴지게 한 기법이 대단하다.

모스크바에서 멀지 않은 곳에 러시아 예술가들이 모이던 아브람체보라는 곳이 있는데, 
마몬토프라는 사업가가 투자를 한 곳으로 문학가와 화가들이 모여 
일종의 예술인 마을로 성장한 오스트로우프는 이 곳에서 화가들과 어울리게 된다.

1885년, 스물 일곱이 되던 해 오스트로우프는 러시아의 재능 있는 젊은 화가들이 참여하는 
이동파에 가입하여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
러시아 곳곳에서 전시회를 통해 그들은 미술 작품의 대중화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1898년 오스토르우프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의 운영위원회 멤버가 되었고 
1905년부터는 미술관 운영 책임자로 있는 동안 러시아의 10월 혁명이 일어나 
혁명 발발 이후 러시아 혁명 정부는 오스트로우프가 그 동안 개인적으로 수집했던 미술품들을 
국유화 한 다음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으로 옮긴다.

1929년, 일흔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스트로우프는 
국가의 소유가 된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의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미술 이론가로로 활동을 했고 광범위한 정보를 담은 미술에 관한 책들도 펴냈다.

 

[영상] 일리야 오스트로우호프(Ilya Ostroukhov) 서정이 담긴 러시아 풍경

 

The Sick artist. 1892. 아픈 예술가. by Aleksey Korin. 
oil on canvas. 78.2 x 109 cm. Tretyakov Gallery Room 36

알렉세이 코린(Aleksey Mikhailovich Korin 1865-1923)은 러시아 장르 화가였다. 
그는 이동파(Peredvizhniki)의 회원이자 모스크바 회화, 조각 및 건축학교
(Moscow School of Painting, Sculpture and Architecture)의 교수였다.

 

여자 광부. by Nikolai Alexeyevich Kasatkin. 1894. 
oil on canvas.  65.4cm x 45cm. Tretyakov Gallery Room 36

작품의 원제목을 찾아 다녔지만 영어로 표기된 것은 없고 일어로 된 것이 있었다. 
아마 탄을 캐고 난 뒤 대충 세수를 한 모습이다. 
얼굴과 손에 남아 있는 석탄 흔적과 달리 얼굴은 아주 맑다. 
일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그녀의 얼굴을 밝게 했을까? 
노동의 고단함 보다는 건강함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미소가 참 곱다. 
자세는 또 얼마나 당당한가? 
이런 미소와 눈매가 시간이 흘러 이데올로기를 품게 되면 
웃음은 사라지고 굳게 다문 입술과 부릅뜬 눈으로 등장한다.


화가 니콜라이 카사트킨 (Nikolai Alexeyevich Kasatkin 1859~1930)은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자작농이자 석판화가였던 아버지의 지도 아래 그는 처음으로 그림을 배웠다. 
아버지의 재능이 아들에게 흘러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열 네 살이 되던 1873년, 카사트킨은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학교 
(Moscow School of Painting, Sculpture and Architecture)에 입학한다.

학교에서 10년 넘게 공부를 하는 동안 카사트킨을 지도한 선생님 중 한 명은 바실리 페로프였다. 
페로프는 카사트킨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페로프 자신이 부르주아 계급의 비도덕성에 대해 엄정한 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카사트킨 역시 스승의 그것을 배웠겠다.

학교에 재학 중이던 카사트킨은 1878년에는 초상화로, 
1882년에는 자연을 묘사한 드로잉으로 은메달을 수상한다.
졸업하던 1883년에는 ‘교회 광장의 걸인들’이라는 작품으로 또 은메달을 수상하는데 
요즘 말로 옮기면 이 때 학교 대표 화가 정도의 영예를 얻는다. 
메달이 꼭 실력의 우열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림에 대한 재능은 확실히 남달랐던 모양입니다.

1878년 처음 은메달을 수상한 때부터 카사트킨은 출판협회에서 만든 학교에서 학생을 지도한다. 
1891년, 그 유명한 방랑파의 멤버가 되는데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가입이었다. 
그의 초기 작품 시대를 1880년대 후반부터 1890년 초기까지라고 한다면 
이 시기 그의 그림 주제는 일상의 장면들을 묘사한 것으로 이야기가 담긴 것들이었다. 
1890년대 중반부터 카사트킨의 작품에 변화가 오는데, 
산업 현장들을 주제로 방향을 돌린 최초의 러시아 화가 그룹 중 한 명이 된다. 
그의 작품에 적갈색과 청색이 많이 등장했고 붓 터치에는 힘이 넘치기 시작했다.

1894년, 서른 다섯의 나이로 카사트킨은 자신이 졸업한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학교의 선생님이 된다.
모교에 선생님으로 부임하는 화가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정말 부럽다. 
선전 문구를 흉내내면 ‘기쁨 두 배’가 아닐까 싶습니다. 
1890년부터 카사트킨은 모스크바 미술애호가 협회를 비롯 여러 곳에 정기적으로 작품을 전시한다. 
이 때 톨스토이와 친분을 쌓게 되고 자주 톨스토이가 있는 농장을 방문, 많은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은메달을 수상한다. 
카사트킨은 여행을 아주 많이 한 화가다. 
러시아 전역을 자주 여행했는데 그 범위와 연대를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카서스와 우랄 산맥을 비롯 파리와 베를린 그리고 1901년부터는 매년 이탈리아를 찾았다. 
그 외에도 터키와 영국, 오스트리아,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그의 발길이 닿았으니까 대단한 에너지를 가졌던 것 같다.
1905년 1월 9일, 열악한 근무 환경과 낮은 임금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러시아 황제가 있는 동궁 앞에 모여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곧 이어 군인들의 발포가 이어졌고 수 많은 사람들이 피를 뿌렸다.
 ‘피의 일요일’이었고 1905년 러시아 혁명의 시작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혁명에 눈을 뜬 카사트킨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그 선두에 서게 된다.

1917년 10월, 마침내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다. 
카사트킨은 거리에 화실을 차리고 이 혁명 성공을 위한 축제의 디자인에 참여한다. 
1924년, 영국 내 프롤레타리아 투쟁을 묘사하기 위해 영국과 웨일즈를 찾기도 한다. 
화가와 혁명가가 동시에 그 몸 안에 있었나보다. 
1929년,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 해, 생애 처음으로 모스크바에서 개인 전시회를 개최한다. 
아마 그에 대한 세상의 축하가 아니었을까 싶다.
카사트킨은 19세기 비평적 사실주의와 혁명 러시아의 예술을 연결하는 고리라는 평을 받고 있다.
끝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움직이는 것이 예술의 속성 중의 하나라고 보면 예술가도 혁명가라고 할 수 있겠다.

카사킨은 러시아 제정시대에서 소비에트 사회주의 화가로 변신한 성공적인 예이다.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창시한 선구자로서 미술계의 '고르키'라 불린다.  
부친은 판화가이자 석판화가였다. 
모스크바 미술, 조각, 건축 학교를 졸업할 때 "교회문 앞의 거지들"로 메달을 받았다.  
"이동파" 회원이었고, 1894년부터 1917년까지 모교의 교수로 재직했다.  
30년 간 이반 사틴의 달력, 교육용 석판화에 삽화를 담당했고,  
농노해방령(Emancipation Reform) 50주년을 기리는 백과사전과 "그림 속의 러시아 역사" 전집 제작에 관여했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그가 가르치던 황립예술학교가 폐쇄되고, 
1923년에는 최초의 "공화국 인민예술가"로 호칭됐다. 
1924년 카세킨은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노동자 계급의 삶을 기록했고, 
2년 후 "혁명박물관"을 위한 초상화들을 그렸다. 

카사킨은 1930년 "혁명박물관"에서 자신의 최근작을 소개하던 중 급사했다. 
향년 71세. 1956년 소비에트는 그를 우표로 기렸고, 
1971년 다시 카사킨의 여성 광부 그림을 우표로 발행했다.

 

[영상] Nikolay Alexeyevich Kasatkin 작품 모음

 

The cranes are flying. 1891. by Alexei Stepanovich Stepanov. 
canvas, oil, 620 x 110 cm. Tretyakov Gallery Room 36

알렉세이 스테파노프 (Alexei Stepanovich Stepanov 1858 ~ 1923)는 
러시아 장르 화가, 일러스트 레이터 및 미술 교사였다. 
그는 이동파(Peredvizhniki) 회원이자 "러시아 예술가연합"의 창립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귀족 출신이었고 크림 전쟁에서 장교로 봉사했다. 
공립학교 교육을 마친 후 그는 Konstantin Surveying Institute에 들어가 1879년 공식 측량사로 졸업했다. 
1880년부터 1883년까지 그는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학교에서 
Illarion Pryanishnikov 와 Evgraf Sorokin이 주관하는 수업을 받았다. 

1888년에 그는 이동파와 함께 전시를 시작했고, 이듬해 그의 그림 
"Moose Herd"는 Pavel Tretyakov 가 구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렌틴 세로프(Valentin Serov)는 스테파노프가 그의 옛 모교인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학교에서 가르치도록 그를 초대했다. 
그는 나중에 교수로 지명되었고 1918년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1894년에 그는 미술 수집가 니콜라이 메딘체프(Nikolai Medyntsev 1841-1904)와 
그의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 독일, 이탈리아 북부, 프랑스를 방문하여 인상파의 영향을 받았다. 
이듬해 그는 메딘체프의 딸인 류드밀라(Lyudmila)와 결혼했다. 
1903년에 그는 이동파에서 나와 "러시아 예술가연합"을 결성한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2년 후, 그는 그의 그림 "아침 인사"로 임페리얼 아카데미에서 "아카데미션"칭호를 받았다. 

 

[영상] Alexei Stepanovich Stepanov 작품 모음

 

Old Suram pass. by Alexander Alexandrovich Kiselyov. Tretyakov Gallery Room 36

알렉산더 키셀료프 (Alexander Alexandrovich Kiselyov 1838-1911)는 러시아의 풍경화가였다.
그는 러시아 해군 요새의 군대에서 태어났으며 생도군단(Arakcheev Cadet Corps) 에서 
첫 번째 학교 교육을 받았다. 
1852년에 그는 제2 상트 페테르부르크 생도군단으로 편입되었지만 
1858년 훈련 과정을 마치기 전에 사임하여 상트 페테르부르크 주립대학에 입학했다. 
학교는 1861년 학생 불안의 시기에 일시적으로 문을 닫아 제국 예술 아카데미로 편입했다. 
1864년에 그는 "Artist Third-Class"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듬해에 그는 결혼하여 하르키우(Kharkiv)로 이사하여 그곳 지방은행에서 일했다. 

1875년에 그는 이동파( Peredvizhniki )의 회원이 되었다. 
2 년 후, 키셀료프는 모스크바로 이주하여 소녀들을 위한 문법 학교에서 가르쳤다. 
수년 동안 그는 러시아와 코카서스를 돌아다니며 모스크바에 있는 집에서 완성할 그림을 스케치했다. 
1893년에 그는 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임명되었고 1897년에 교수가되었다. 

 

The Return Journey, 귀환 여행. by Abram Efimovich Arkhipov
Abram Efimovich Arkhipov The Return Journey painting - The Return Journey print for sale

아브람 아르크니포프(Abram Efimovich Arkhipov 1862-1930)는 러시아의 사실주의 화가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삶에 지친 러시아 여성들이 강건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아르크니포프는 러시아 전통 드레스와 민족 의상을 차려입은 농부들을 활기찬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아르크니포프는 모스크바 동남쪽 랴잔이라는 지역의 외딴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여 열 네 살이 되던 해, 
그의 부모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모스크바 종합 예술학교을 다니도록 했다.

공부를 시작한지 7년이 지난 1883년, 아르크니포프는 상트페테스부르그에 있는 ​
왕립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면서 제작한 작품들은 왕립 아카데미가 
영구 소장품으로 지정할 정도로 뛰어 났으며, 1890년, 
아르크니포프는 이동파에 가입, 19세기 후반 러시아 미술의 역할은 대단했다.

물론 화풍은 사실주의에서 벗어나지는 않았고 화가로서의 연륜이 더 해지면서 
그의 작품은 시적인 느낌이 강해졌고 작품의 특징 중 상황이나 
인물의 행동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삶에 지친 러시아 여인들의 모습이 담긴 풍속화를 그리던 아르크니포프는 
1900년대부터 러시아 북부와 백해 (White Sea) 해변가 풍경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그리기 시작, ​러시아에 대한 애정과 헌사가 담긴 고요하고 장중한 ​그림을 그렸던 화가였다.
1924년, 아르크니포프는 소련예술가 동맹에 가입하여 
인민 예술가 칭호를 받은 첫 그룹에 그의 이름을 올려 놓는다.

 

[영상] Abram Efimovich Arkhipov : A collection of 59 paintings (HD)

 

 

 

 

 

After the Storm, Date unknown ,oil on canvas, Lviv National Art Gallery (Ukraine - Lviv)

 

Amsterdam, Date unknown. oil on panel. 

 

Amsterdam by Moonlight,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Amsterdam by Night, Date unknown ,oil on paper, Private collection

 

The Annunciation Monastery in Nizhny Novgorod, Date unknown , penci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rcaishon, Date unknown ,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rcaishon, Date unknown ,oil on panel,
Irkutsk Regiona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Irkutsk)

 

The Artist's Studio, Date unknown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t the Cemetery, Date unknown , Watercolor, Private collection

 

Baden-Baden, Date unknown , penci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aden-Baden. Haymakers,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Baltic Sea, Date unknown , oil on canvas. 

 

The Battle of the Vladimir Frigate with a Turkish-Egyptian Ship, Date unknown ,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Boats, Date unknown ,oil on panel,
Karelia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Petrozavodsk)

 

Bois de Boulogne, Date unknown ,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Breton Lugger,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uilding of a Dam,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Champagne, Date unknown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Cityscape, Date unknown , oil on  canvas, Kharkov Museum of Art (Ukraine - Kharkov) 

 

Constantinople,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Dieppe, Sunset, Date unknown ,oil on canvas, 
Stavropo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avropol)

 

Dieppe, Sunset, Date unknown ,oil on canvas, 
Chelyabinsk State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Chelyabinsk)

 

Durkheim,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Embankment in Constantinople, ​Date unknown, oil on panel,
Omsk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Omsk)

 

​Emperor Nicholas I on the Nevka Steamship, ​Date unknown ,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Emperor Nicholas Passenger Ship in the Black Sea, ​Date unknown ,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Eruption of Vesuvius, Date unknown , oil on canvas,
Buryatia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Ulan-Ude)

 

Evening, Date unknown, oil on panel. 

 

Evening in Moscow, Date unknown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Evening in Peterhof, Date unknown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Farm in Veules. Autumn, Date unknown ,oil on canvas,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Fecamp,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Fecamp,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Fishing Boat, Date unknown , Private collection. 

 

Fishing Boats,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Forest Path, Date unknown , Watercolor, Private collection

 

Haystacks, Date unknown ,oil on canvas,
Nizhny Tagil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y Tagil)

 

Holland, Date unknown ,oil on canvas,
Vladikavkaz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Vladikavkaz)

 

Honfleur, Date unknown , Watercolor,
Tula Regiona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Tula)

 

The Ilya Muromets Frigate and the Kamchatka Steamship, Date unknown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In the Park,  Date unknown ,oil on canvas,
Vladikavkaz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Vladikavkaz)

 

Italian Landscape, ​ Date unknown ,oil on canvas,
Vladikavkaz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Vladikavkaz)

 

Italian Landscape,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Journey to Oberammergau, ​Date unknown , Watercolor, Private collection

 

Jungfrau Mountain, ​ Date unknown ,oil on paper,
Nizhny Novgorod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i Novgorod)

 

Kazan, Date unknown ,oil on canvas, Poltava Regional Art Museum  (Ukraine - Poltava)

 

Kissingen. The Waterfall, Date unknown ,oil on caraboard,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attle Of Sinop, Date unknown.

 

Maiden's Tower, Date unknown ,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Marina,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arina,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Market, Date unknown, oil on canvas, Kharkov Museum of Art  (Ukraine - Kharkov)

 

Merz-Treport,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Monastery, Date unknown, oil on canvas,
Penza Regional Picture Gallery  (Russian Federation - Penza)

 

Monastery on the Riverbank,  ​Date unknown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onte Carlo, Date unknown ,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ontmorency, Date unknown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oonlit Night in Constantinople, Date unknown, oil on canvas,
Stavropo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avropol)

 

Moonlit Night in St. Petersburg, Date unknown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oonlit Night in Venice, Date unknown, oil on canvas,
Tropinin and Contemporary Moscow Artis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Moscow)

 

Moonlit Night on the Neva,  Date unknown , oil on panel,
Astrakhan State Picture Gallery  (Russian Federation - Astrakhan)

 

Morning in Dieppe Harbor, Date unknown ,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oscow, Date unknown ,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Moskva River near Zvenigorod, Date unknown ,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Moskva River near Zvenigorod, Date unknown ,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osque in Constantinople, Date unknown , oil on canvas,
State Fine Arts Museum of the Republic of Kazakhstan  (Kazakhstan - Almaty)

 

Naples, Date unknown , oil on canvas,
Dagestan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Makhachkala)

 

Nice, Date unknown ,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Night in Venice, Date unknown ,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Night Service in the Kremlin, Date unknown , oil on canvas,
Krasnoyarsk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Krasnoyarsk)

 

Nizhny Novgorod, Date unknown , oil on  canvas,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Nogent-sur-Marne, Date unknown , oil on panel,
Art Museum of Dnepropetrovsk  (Ukraine - Dnepropetrovsk)

 

Nogent-sur-Marne, Date unknown ,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Normandy Coast, Date unknown , oil on panel,
Nizhny Novgorod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i Novgorod)

 

On the Road to Oberammergau, Date unknown , Watercolor, Private collection. 

 

Oostende, Date unknown ,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Ostende, Date unknown , oil on cardboard,
Rostov Regional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Rostov-on-Don)

 

The Outskirts of Paris, Date unknown , oil on panel,
Nizhny Novgorod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i Novgorod)

 

The Outskirts of the Hague, Date unknown ,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Palermo, Date unknown , oil on  cardboard,
Buryatia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Ulan-Ude)

 

Palermo, Date unknown , oil on  cardboard,
Rostov Regional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Rostov-on-Don)

 

The Pier, Date unknown , oil on  cardboard,
Buryatia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Ulan-Ude)

 

Pier in Amsterdam, Date unknown , oil on  paper,
Astrakhan State Picture Gallery (Russian Federation - Astrakhan)

 

Port d'Anzio, Date unknown, oil on canvas,
Stavropo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avropol)

 

Port of Alassio, Date unknown,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Port of Marseille, Date unknown, oil on panel, Sumy Art Museum (Ukraine - Sumy)

 

Port on the Seine, Date unknown, oil on panel,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Ragaz, Date unknown,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Razboinik Frigate, Date unknown ,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The Revel Battle, 1790, Date unknown,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Rhine in Bonn, Date unknown,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Russian Fleet, Date unknown,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Sailing Boat, Date unknown, Private collection.

 

Sailing Boat, Date unknown, oil on panel,
Kostroma State Museum (Russian Federation - Kostroma)

 

Sailing Ship, Date unknown,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aint-Marcouf, Date unknown, oil on cardboard,
Karelia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Petrozavodsk)

 

Saint Martin, Date unknown,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aint-Valery, Date unknown,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avona, Date unknown, oil on panel,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Scheveningen, Date unknown, Watercolor,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Scheveningen, Date unknown,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ea Canal in St. Petersburg,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Seascape, Date unknown, oil on canvas, Tbilisi Fine Arts Museum (Georgia - Tbilisi)

 

Seascape, Date unknown, oil on canvas,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Seascape, Date unknown, oil on canvas,
Volgograd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Volgograd)

 

Seascape with Sailboats,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The Seashore, Date unknown, oil on canvas, Odessa Fine Art Museum (Ukraine - Odessa)

 

The Seashore, Date unknown, oil on panel. Private collection

 

The Seizure of a Turkish Cargo Ship by a Russian Steamship, Date unknown,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Ships at Sea, Date unknown, Watercolor. Private collection

 

Ships at Sea, Date unknown,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hips at Sea, Date unknown, oil on canvas,
Krasnodar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Krasnodar)

 

Ships off the Coast, Date unknown,
Nizhny Tagil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y Tagil)

 

Ships on Fire, Date unknown, oil on panel. 

 

The Shutka Cutter Attacking a Turkish Ship, Date unknown, oil on canvas,
Ulyanovsk Regiona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Ulyanovsk)

 

Sinop, Date unknown, oil on panel,
Nizhny Novgorod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i Novgorod)

 

Sorrento, Date unknown, oil on canvas,
Kramskoy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Voronezh)

 

St. Basil's Cathedral, Moscow,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Winter in Borisoglebsk, Date unknown, oil on canvas,
Yekaterinburg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Yekaterinburg)

 

Konch Lake, Date unknown. oil on canvas, Tbilisi Fine Arts Museum (Georgia - Tbilisi)

 

Kronstadt after the Flooding, Date unknown, pen abd ink,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Landscape, Date unknown.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Landscape, Date unknown, Buryatia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Ulan-Ude)

 

Landscape,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Landscape in Normandy,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Landscape with a Church, Date unknown, oil on panel,
Arkhangelsk Regional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Arkhangelsk)

 

Landscape with Windmills, Date unknown, Watercolor,
Tula Regiona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Tula)

 

Launching the Ship,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Le Havre, Date unknown, oil on panel,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Le Havre, Date unknown,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Lido, Venice, Date unknown, oil on cardboard,
The State Museum of Fine Arts of Tatarstan Republic (Russian Federation - Kazan)

 

The Lighthouse in Honfleur, Date unknown, oil on cardboard,
Volgograd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Volgograd)

 

Livadia Palace,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Low Tide in Treport, Date unknown, oil on  canvas

 

Steamship by the Pier, Date unknown, oil on canvas,
Kostroma State Museum (Russian Federation - Kostroma)

 

The Storm, date unknown, oil on panel. 

 

A Storm,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St. Petersburg Academy, Date unknown, oil on  canvas,
Vyatka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Kirov)

 

St. Petersburg at Sunset, Date unknown, oil on  canvas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A Street in Rome, Date unknown, oil on canvas,
Buryatia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Ulan-Ude)

 

Summer Day in Brittany,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Summer Day in Veules-les-Roses, France, Date unknown, oil on panel, Private collection

 

Sunset at Etretat, Date unknown,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unset by the Sea, Date unknown, oil on canvas, Kherson Regional Art Museum (Ukraine - Kherson)

 

The Surf in Menton, Date unknown,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report, Date unknow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Treport. Morning, Date unknown,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nice, Date unknown, oil on canvas,
Far-Eastern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Khabarovsk)

 

Venice, Date unknown, oil on canvas,
Tver Regional Picture Gallery (Russian Federation - Tver)

 

Venice, Date unknown, oil on canvas, Tbilisi Fine Arts Museum (Georgia - Tbilisi)

 

Venice, Date unknown, oil on canvas,
Nizhny Novgorod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i Novgorod)

 

Venice, Date unknown, oil on canvas, Tbilisi Fine Arts Museum (Georgia - Tbilisi)

 

Venice, Date unknown, oil on canvas, Nikolaev Art Museum (Ukraine - Nikolaev)

 

Venice,  Date unknown,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nice, Date unknown,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nice by Moonlight, Date unknown, oil on canvas, 71 X 58 cm, Private collection. 

 

Veules, Normandy, Date unknown, oil on canvas,
Stavropo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avropol)

 

Vichy,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A View of Moscow, Date unknown, oil on canvas,
State Literary Museum (Russian Federation - Moscow)

 

View of Mount Vesuvius,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A View of Nizhny Novgorod, Date unknown, pen and ink,
Nizhny Novgorod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i Novgorod)

 

A View of Nizhny Novgorod (study), Date unknown, oil on canvas,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A View of Sinop Bay, Date unknown, oil on canvas. 

 

A View of Smolny Monastery, St. Petersburg, Date unknown,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iew of St Isaac's Cathedral from Ekaterinhof, Date unknown, pencil, Private collection

 

View of the Venetian Lagoon from the Public Gardens,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A View of Yalta, Date unknown,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of Armenia (Armenia - Yerevan, Armenia)

 

Villiers-le-Bel, Date unknown,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Warship, Date unknown, oil on canvas

 

Washerwomen on the Beach, Date unknow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The Watermill in Veules, Date unknown,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Watermill in Veules, Date unknown,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Winter in Paris, Date unknown,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Yport, Boats, Date unknown,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영상] Alexey Bogolyubov Romanticism Realism Russian

 

 

 

The Mountain Lake, ​1873, oil on panel. 
Kostroma State Museum  (Russian Federation - Kostroma)

 

Seascape, 1874, oil on panel,
Primorye State Picture Gallery  (Russian Federation - Vladivostok)

 

The Sura River, ​1874,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Surf, ​1874,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ules, 1874,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View of Baku, 1874, oil on canvas, Donetsk Regional Art Museum  (Ukraine - Donetsk)

 

Washerwomen in Etretat, 1874,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Party in Paris, 1874~1875,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ummer Night on the Neva River,  1875,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Villa Cordier, 1875,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athing in Treport,  1876,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Battle of Gangut, 187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Battle of Gangut, 187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Battle of Gangut, 1714, 187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oats in Treport, 187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rest, 187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Cliffs in Saint Malo, 1876,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Coast in Honfleur, 1876,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Evening in Pornic, 187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Evening in Pornic, 187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Fisherman, 187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Fishermen in Treport, 187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High Tide in Treport, 187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Honfleur, 1876,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Low Tide in Pornic,  1876,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Low Tide in Treport, 1876,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Low Tide in Treport, 1876, oil on cardboard,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Low Tide in Treport, 1876,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orning in Pornic, 1876,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Path in the Outskirts of Nantes, 187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Path in the Outskirts of Nantes, 187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aint-Valery, 187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Swamp, 187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report, 1876,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report. Morning, 187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Washerwomen in Nantes, 1876,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Washerwomen in Pornic, Bretagne, 187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Artist's Estate, 1877,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Artist's Summer Cottage, 1877,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Battle of Gangut, 1714, 1875~1877,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Danube, 1877,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Etretat, Low Tide, 1877,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Explosion, 1877,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Explosion of a Turkish Battleship on the Danube, 1877,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House in Veules, 1877, oil on canvas,
Volgograd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Volgograd)

 

Kiev. The Palace Garden, 1877,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Landing of Gen. Zimmerman's Marine Corps, 1877,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Landscape, 1877,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Landscape, 1877,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Nizhny Novgorod,  1877,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Sea Battle, 1877,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Turkish Ship, 1877,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dmiral Skrydlov's Ship, ​​1878, charcoal,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A Battle in the Black Sea, 1878,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Druzhba Yacht, 1878, Watercolor,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Explosion of a Turkish Steamship, 1878, pen and ink,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Explosion of a Turkish Warship on the Danube,  ​​1878, charcoal,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Pontoon Bridge across the Danube, ​​1878, charcoal,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Rostral Column near the Stock Exchange, St. Petersburg​, 1878,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Russian Troops Crossing the Danube, 1878,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Seizure of a Turkish Cargo Ship by a Russian Steamship, ​1878, charcoal,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Setting Mines on the Danube​, 1878, charcoal,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Sinking a Turkish Ship on the Danube, 1877~1878,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A View of Nizhny Novgorod, 1878, oil on canvas,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View of Moscow from the house of G.I. Chludov, 1878. 

 

Wreck of Livadia (fragment), 1878. 

 

Autumn, 1879,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Farm in France, 1879,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Golitsyn Hospital in Moscow, 1879,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Moscow, 1879, past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own in Normandy, 1879, oil on canvas, 90.9 x 70.1 cm,
Rybinsk State Museum of History, Architecture and Fine Arts, Rybinsk, Russia

 

Autumn in Ecouen, 1880,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Ecouen, 1880,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Field in Ecouen, 1880,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Field in Ecouen, 1880,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Golitsyn Hospital in Moscow, 1880, oil on canvas,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Grove in Ecouen, 1880,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Outskirts of Paris, 1880, oil on panel,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Path in Ecouen, 1880, oil on panel,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Prechistenka Street, Moscow, 1880, oil on panel,
The Pushkin State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Moscow)

 

The Road to Savona, 1880,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oulon, 1880,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ntimiglia,1880,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ntimiglia,1880,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ntimiglia, 1880,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ules, Normandy, 1880,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A View of Alassio, 1880,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Zhukov Pond in Moscow, 1880,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iew to Michael's Castle in Petersburg from Lebiazhy Canal, 1880, oil on canvas. 

 

Auvers, 1881,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Auvers, 1881,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attle on the Danube, 1881,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Coast of Menton, 1881,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House in Menton, 1881,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L'Ile Adam,  1881,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Olive Trees in Menton, 1881,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Pine Forest near Menton,  1881,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River Oise, 1881,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Seine at Asnieres, 1881,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alley in Bulgaria, 1881,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ridge in Ecouen, 1882,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Cliffs at Fecamp, 1882,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Dieppe, 1882,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Dieppe Harbour, 1882,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Shutka Cutter Attacking a Turkish Ship, 1882,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Moonlit Night, 1883,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Moscow, 1883,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Moscow Kremlin at Night, 1883, oil on canvas,
Omsk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Omsk)

 

Storm in Treport, 1883,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report, 1883,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report, 1883,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report, 1883,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Watermill in Veules, 1882~1883,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Durkheim, 1884,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Durkheim, 1884,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Durkheim, 1884,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msterdam,, 1885,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msterdam, 1885,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Derzhava and Zabava Yachts, 1885, oil on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Scheveningen, 1885,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cheveningen, 1885,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cheveningen, 1885,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cheveningen, 1885,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ea Canal in St. Petersburg,  1885,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ea Canal in St. Petersburg, 1885,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Surf, 1885,oil on canvas, Penza Regional Picture Gallery  (Russian Federation - Penza)

 

Launching the Ship, 1886, Private collection

 

Nogent-sur-Marne. After the Rain, 188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blyazov. Radishchevskaya estate. Ravine, 1887, oil on Wood, 4.2 X 26.7 cm,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blyazov. Threshing, 1887, oil on Wood, 26.8 X 17.5 cm,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oscow, 1887,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Neva River at Night, 1887,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The Rainbow, 1887,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Razboinik Clipper in Le Havre, 1887,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Veules, 1887,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ules, 1887,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ules, 1887,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ules, 1887,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ules, 1887,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ules,1887,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ules,1887,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ules,1887,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Windmills in Ablyazovo, 1887,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Kronstadt, 1888,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Parade of the Baltic Fleet, 1888,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Ship on Fire, 1888, oil on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View of Saratov, 1887~1888,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lley in the park, Liechtenstein, 1889, oil on Wood,
Rybinsk State Museum of History, Architecture and Fine Arts, Rybinsk, Russia

 

Nice, 1889,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Seashore, 1889, oil on canvas,
Altai State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Barnaul)

 

St. Petersburg, 1889,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Autumn, 1891,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Landscape, 1891,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Le Havre, 1893,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oulon, 1893,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orre del Greco, 1895, oil on canvas,
Omsk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Omsk)

 

Koburg, 1896,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n Abandoned Village, Date unknown , Drawing,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blyazovo Estate, Date unknown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영상] Mozart (Piano Sonata No. 5) and Alexey Petrovich Bogolyubov

 

 

 

Portrait of the painter Alexey Petrovich Bogoliubov, 1876, 

By Ilia Repine, oil on canvas, 117 X 90 cm,

 

러시아 국민화가 일리야 레핀이 그린 알렉세이 보골류보프 초상화.
알렉세이 보골류보프는 Novgorod Gubernia 의 Pomeranie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은퇴한 대령 표트르 가브리일로비치 보골류보프였다. 
보골류보프의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철학자이자 사회비평가 Alexander Radishchev였다.

1841년 보골류보프는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러시아 해군에서 복무하고 
함대와 함께 여러 국가를 여행했다. 
1849년에 그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예술아카데미에 입학해서 Maxim Vorobiev 밑에서 공부했다. 
보골류보프는 바다의 화가 Ivan Ayvazovsky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853년에 그는 메이저 금메달로 아카데미를 마쳤다. 
그는 해군 장교로 은퇴하고 해군본부의 예술가로 임명되었다.

1854년부터 1860년까지 그는 유럽을 여행하며 많은 일을 했다. 
보골류보프는 1860년 러시아로 돌아와 아카데미에서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교수직을 받았다. 
얼마 동안 그는 아카데미에서 가르쳤고 1860년대에 그는 볼가 강을 따라 여행했다. 
그의 그림은 낭만주의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 그 요소를 자연의 확고한 사실주의로 대체했다. 
1871년에 그는 Imperial Academy of Arts 에 선출되었다.

 

Portrait of the painter Alexey Petrovich Bogoliubov, 1882. By Ilia Repine, oil on canvas, 65 x 53 cm
러시아 국민화가 일리야 레핀이 그린 알렉세이 보골류보프 초상화.

1870년부터 그는 이동파 미술 운동에 가까워 졌고 모든 전시회에 참여했다. 
그는 이동파 이사회 멤버가 되었지만 운동의 다른 구성원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사회적 생각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1873년, 보골류보프는 동료 순회자들과 연대하여 아카데미를 떠났다. 
그는 심지어 로마에 대안적인 러시아 예술 아카데미를 만들려고 했다. 

1873년 이후 보골류보프는 그의 심장 상태 때문에 주로 파리에 살았다. 
그의 집은 마치 러시아 기숙사 같았다. 그의 집에 빈번한 방문객으로는 Ivan Turgenev, 
Ilya Yefimovich Repin, Vasily Polenov, Mark Antokolski, Vasili Vasilyevich Vereshchagin 등이 있었다. 

1885년, 보골류보프는 그의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사라토프에 Radischev Art Museum 이라는 미술관을 열었다. 
"러시아 최초의 혁명가"인 Alexander Radishchev의 이름을 따서 박물관의 이름을 짓는 것은 
당국에 직접적인 도전이었다. 보골류보프는 허가를 얻기 위해 법적 싸움을 견뎌야 했다.
Bogolyubov는 1896년 2월 3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그의 죽음 후, 그의 모든 돈과 자본과 학교 등은 Bogolyubov의 회화 학교에 기증되었다. 

 

The Battle in the Monastery Bay, 1832, 1841,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Mercury Cutter Seizing Sweden's Venus Frigate, 1789, 1845,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Capturing of Swedish 44 gun frigate Venus by Russian 22 gun cutter Merkuriy of June 1, 1789, 
1845, oil on canvas,

 

The Pallada Frigate, 1847, Watercolor,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Kamchatka Frigate, 1848,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Venice, 1850,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Wooded Riverbank, 1850, oil on canvas,
Ples State Museum-Reserve  (Russian Federation - Ples)

 

Mosque in Istanbul, 1850, oil on canvas, 77 x 58.5 cm,

 

Palermo, 1850,

 

Shipwreck, 1850, oil on canvas, 95 x 63 cm. 

 

St. Petersburg at Sunset, 1850, oil on canvas, 151 x 103 cm. 

 

Venice, 1850. 

 

Venice at night, 1850.

 

Kronstadt, 1851, oil on canvas,
Arkhangelsk Regional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Arkhangelsk)

 

The Mercury Cutter Seizing Sweden's Venus Frigate, 1789, 1851,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Storm in Menton,1851,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nice, 1851, oil on canvas, Odessa Fine Art Museum  (Ukraine - Odessa)

 

A View of Naples, Italy, 1851,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View of Smolny Monastery, St. Petersburg, 1851, oil on canvas,
National Art Museum of the Republic of Belarus  (Belarus - Minsk)

 

 A View of Smolny Monastery, St. Petersburg, 1851,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The Imperial Yacht 'Alexandria', 1852 Watercolor,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Le Havre, ​1852,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A View of Revel, 1852, oil on canvas,
Tyumen Regional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Tyumen)

 

The Battle of Athos, 1807, 1853,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Finland, 1853,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Lighthouse in Revel, 1853, oil on canvas,
Perm State Arts Gallery  (Russian Federation - Perm)

 

Tallinn Harbor, 1853, oil on canvas, Kadrioru Kunstimuuseum  (Estonia - Tallinn)

 

A View of Revel, 1853, oil on canvas,
Cherepovets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Cherepovets)

 

Antwerp, 1854, oil on canvas, Kursk Deineka Picture Gallery  (Russian Federation - Kursk)

 

The Battle at Pitsunda Cape, 1853, 1854,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Battle at the Isakchi Fortress,  1854,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Cape St. Marin, 1854, oil on canvas,
Serpukhov Historical and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erpukhov)

 

The Departure, 1854,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Kolkhida Sreamship, 1854, Watercolor, 36 x 28 cm,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Lake Geneva, 1854, oil on caraboard,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Riding on the Neva River, 1854, oil on canvas, 221 X 132 cm,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The Seashore, 1854, oil on paper,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Capri, 1855, oil on paper,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Capri, 1855,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The Coast of Vico, 1855, oil on canvas,
Chuvash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Cheboksary)

 

Kronstadt Harbour in the Evening, 1855,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Mount Vesuvius from the Sea, 1855, oil on cardboard,
State Art Museum of Uzbekistan  (Uzbekistan - Tashkent)

 

Portrait of Afanasy Radischev, 1855,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orrento,1855, oil on canvas,
Astrakhan State Picture Gallery  (Russian Federation - Astrakhan)

 

The Attack on a Turkish Fortress on the Danube, ​1856,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Capri, 1856, oil on canvas, Kherson Regional Art Museum  (Ukraine - Kherson)

 

Constantinople, 1856, 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Rhine Valley, 1856,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Seashore, 1856, oil on canvas,
Tyumen Regional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Tyumen)

 

Sinop, 1856,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orrento, 1856,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Sorrento, 1855~1856,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nice, 1856, oil on canvas, Art Museum of Dnepropetrovsk  (Ukraine - Dnepropetrovsk)

 

View of Constantinople, 1856,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The Battle of a Russian Brig with Turkish Ships, 1857, oil on canvas,
Altai State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Barnaul

 

Constantinople, 1856~1857, oil on canvas,
Penza Regional Picture Gallery  (Russian Federation - Penza)

 

The Night Attack on the Flora Frigate, 1853, 1857, oil on canvas,
Irkutsk Regiona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Irkutsk)

 

The Outskirts of Constantinople, 1856~1857, oil on canvas,
Penza Regional Picture Gallery  (Russian Federation - Penza)

 

Rome, 1857,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Sunset, 1857, oil on canvas, Perm State Arts Gallery  (Russian Federation - Perm)

 

A Sea Battle, 1858, oil on canvas,
Krasnoyarsk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Krasnoyarsk)

 

Yport, France, 1858, oil on canvas,
Vladikavkaz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Vladikavkaz)

 

The Bay of Biscay, 1857~1859, oil on canvas,
Nizhny Tagil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y Tagil)

 

Breton Fishermen, 1859, oil on panel, Private collection

 

Fishing Boats, 1859, oil on canvas,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Rome, Castle St Angelo, 1859, oil on canvas,
Nizhny Novgorod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i Novgorod)

 

A Sea Battle, 1859, oil on canvas,

 

The Windmill in Holland, 1859, oil on canvas, Lviv National Art Gallery  (Ukraine - Lviv)

 

The Battle of Sinop, 1853, 1860,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On the Neva River, 1860,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Monastery, 1860, oil on canvas, 46 X 33 cm,

 

The Pond, 1860,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Storm, 1860, oil on canvas, Nikolaev Art Museum  (Ukraine - Nikolaev)

 

A Stormy Sea, 1860, oil on canvas,
Nizhny Novgorod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i Novgorod)

 

Venice, 1860, oil on canvas, Donetsk Regional Art Museum  (Ukraine - Donetsk)

 

Venice, 1860,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Radishchevskaya estate of Bogolyubov (homestead Ablyazov), 1860,
oil on Wood, 41.2 X 26.7 cm

 

 

Revel fight May 2, 1790, 1860, oil on canvas,90 X 71 cm,
Central Naval Museum, Saint Petersburg, Russia

 

Sailboats in the bay, 1860.

 

Baku, 1861,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aku. The Embankment, 1861, oil on canvas,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Barge Haulers, 1861,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Caravanserai in Armenia, 1861, oil on paper,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Ipatiev Monastery near Kostroma, 1861,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Kazan, 1861,  Kaluga Regiona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Kaluga)

 

On the Volga, 1861,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Street in Baku, 1862, oil on canvas,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Tarki Ship, 1861, pen and ink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View of Kazan,  1862, oil on canvas,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Fair in Nizhny Novgorod, 1862, oil on canvas,
Nizhny Novgorod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i Novgorod)

 

Fortress on the Seashore, 1862, oil on canvas,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Kazan, 1862, oil on canvas,  
The State Museum of Fine Arts of Tatarstan Republic  (Russian Federation - Kazan) 

 

Palermo, 1862, oil on canvas, Tbilisi Fine Arts Museum  (Georgia - Tbilisi)

 

The Alexander Nevsky Frigate and Other Ships, 1863,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Astrakhan,1863,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Landscape, 1863, oil on canvas, Tula Regiona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Tula)

 

Mount Ai-Petri, Crimea, 1863,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Pisa, 1863,  oil on canvas,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Procession in Yaroslavl, 1864,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Constantinople, 1864,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Sailing Boat at Sea, 1864, oil on canvas,  

State Vladimir-Suzdal Historical Architecture and Art Museum-Reserve  (Russian Federation - Vladimir)

 

After the Rain, 1865,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Mountain Landscape, 1865,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On the Tamina River, 1865,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River in Ragaz, 1865,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attle at Osel Island, 1719, 1866, oil on canvas,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The Battle near Kronstadt, 1790, 1866,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First Battle of the Russian Fleet, 1719, 1866,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Sea Battle, 1866, pen and ink,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Senyavin Battle, 1866, pen and ink,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lley, 1867,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Farm in Pornic, 1867, pen and ink,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Gurzuf, 1867,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High Tide in Pornic, 1867,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Nevka Steamship, 1867, Watercolor,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Oak Trees, Pornic, 1867,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Pine Grove in Pornic, 1867,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Sailing Boat, 1867, oil on canvas,
Fine Arts Museum of the Republic of Mordovia  (Russian Federation - Saransk)

 

A View of St. Petersburg, 1867. 

 

A Windmill, 1867,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irch Grove, 1868,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End of the Alexander Nevsky Frigate, 1868,
Central Naval Museum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Alley in Vichy, 1870,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Evening in Saint Malo, 1870,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Outskirts of the Hague, 1870,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Piazetta, Venice, 1870, oil on canvas,
Irkutsk Regiona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Irkutsk)

 

 Saint Malo,  1870, oil on canvas,Odessa Fine Art Museum  (Ukraine - Odessa)

 

Seascape with a Sailing Boat,  1870, Private collection

 

Still Life, 1870,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torm in Oostende, 1870,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ules, Normandy,  1870,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ichy, 1870,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ichy, Midday, 1870,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A View in Normandy, 1870.

 

Villa in Vichy, 1870,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Washerwomen in Vichy, 1870,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Smolny as seen from Bolshaya Okhta, 1879. 

 

Forest in Veules, Normandy, 1871,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A Stormy Sea, 1871,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Cliffs in Brittany, 1872, oil on canvas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In the Park, 1872,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Lido, 1872, oil on canvas, Odessa Fine Art Museum  (Ukraine - Odessa)

 

The Mouth of the Neva, 1872, oil on canvas, 54.5 x 110 cm,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The Mouth of the Neva River,  1872,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Peter the Great Bicentennial Celebration on the Neva, 1872, oil on canvas,
121.6 X 194.5 cm.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Venice, 1872, Watercolor, Perm State Arts Gallery  (Russian Federation - Perm)

 

Venice, 1872,Watercolor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Venice. Midday, 1872,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Dardanelles, 1872, oil on canvas,
Kramskoy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Voronezh)

 

House in Franzensbad, 1873,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Outskirts of Vienna, 1873, oil on panel.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Park Liechtenstein in Vienna, 1873,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Washerwomen in Franzensbad, 1873,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The Watermill in Gorki, 1873,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Boats in Etretat, 1873,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Fishing Boat, Etretat, 1873, oil on panel ,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영상] Alexey Bogolyubov: A collection of 467 works (HD)

 

 

 

<Room 32-34> 20세기 모더니즘 초기 작품 ㅡ 미하일 브루벨, 러시아 대표적인 상징주의 작가 

 

Princess Reverie, 리베리 공주. 1896.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750 x 1400 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한 개 층의 중앙 홀을 꽉 채운 작품을 만난다.
트레챠코프 미술관에서 브루벨의 전시장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 
미하일 브루벨은 러시아 상징주의의 대가이자 아르누보 예술의 최고 정점을 이룬 작가이며 
러시아 모더니즘의 시작을 연 천재 화가다.  


그는 세기말의 암울한 감수성이 반영된 우울한 영혼의 천사와 악마를 탄생시킨다. 
입체적인 붓터치와 기하학적인 무늬, 강렬한 색채를 통해 기존의 사실주의 기법에서 
과감히 탈피한 브루벨의 작품들은 러시아 미술 혁명의 대표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마몬토프(아브람체보파의 후원자)를 만나면서 브루벨의 천재성은 
벽화, 무대 미술, 의상 디자인, 삽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그의 창작물은 러시아 미술이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교량 역할을 하게 되며 많은 작가들에게 예술적 영향을 끼친다.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미하일 브루벨 (Mikhail Vrubel) 작품 전시실

미하일 브루벨은 러시아의 옴스크, 즉 시베리아의 어느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리야 레핀보다 10년 쯤 뒤에 태어나 19세기 말에 활동한 상징주의 및 아르누보 사조의 화가이다.
시베리아, 그곳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시려오는 <닥터 지바고>의 '라라의 테마'가 귀에 맴맴 돌고, 
러시아 민속 악기 발랄라이카 소리가 가슴을 후벼파는 곳이다.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땅 시베리아에서 브루벨은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냈다. 
브루벨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미술 실력을 인정 받았지만, 
집안의 뜻에 따라 188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한다. 
하지만 변호사의 길을 포기하고 그는 임페리얼 아카데미 예술 학교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한다.

1884년 브부벨은 키예프의 키릴로프스키 수도원의 프레스코화 복구 작업에 참여하게 되고, 
이 벽화 복원 과정을 통해  향후 자신의 예술 세계를 좌우할 중요한 조형적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그 후 모스크바로 나와 S. I.마몬토프의 오페라극장에서 
무대미술을 담당, 일련의 대장식(大裝飾) 패널을 완성하기도 했다. 
특히 마몬토프(아브람체보파의 후원자)를 만나면서 브루벨의 천재성은 벽화, 무대 미술, 
의상 디자인, 삽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그의 창작물은 러시아 미술이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교량 역할을 하게 되며 많은 작가들에게 예술적 영향을 끼친다.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미하일 브루벨 작품 전시실

그는 그동안 배워온 유럽 전통의 사실적이고 합리적 표현을 넘어 
비잔틴 미술 특유의 아름다운 선과 장식적인 면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중세 기독교 미술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세기말의 암울한 감수성이 반영된 우울한 영혼의 천사와 악마를 탄생시킨다. 
입체적인 붓터치와 기하학적인 무늬, 강렬한 색채를 통해 기존의 사실주의 기법에서 
과감히 탈피한 브루벨의 작품들은 러시아 미술 혁명의 대표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신화 · 성서 · 영웅서사시와 문학작품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그 강렬한 개성과 대담한 구도와 필치 등으로 독자적인 미적 세계를 확립하였다.

 

1910년 정신병으로 사망하기까지 그의 그림의 화두는 '악마'였다. 
브루벨의 등장은 러시아미술계에서 이단아로 불릴만큼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그는 악마 그림을 통한 독창적인 상징주의로 러시아 미술사에 새로운 국면을 전개한 화가였다.
그의 작품은 세기말 사상과 데카당스와 맞닿아 있으며, 비잔틴 미술을 재해석해 새롭게 재창조했다. 
브루벨은 회화 뿐만 아니라 음악, 연극 등과 같은 분야를 아우르며 시대를 앞서나간 인물로 평가받았다.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미하일 브루벨 작품 전시실

브루벨의 작품은 초기부터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눈에 띄는 재능을 보여준다. 
시베리아의 극단적인 자연 환경 속에서 어린시절 형제 자매의 죽음은 그에게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어둡고, 서늘하다.

 

브루벨은 초기 크리스트 미술을 바탕으로 동방의 문화를 흡수한 헬리니즘 미술, 
고대 아시아와 페르시아 왕조의 미술이 섞인 비잔틴 미술에 매료되었다. 
비잔틴 미술은 화려하고 장엄하지만 정신적이고, 영적인 세계를 중시하는 미술이다. 
브루벨은 그 중후하고 선명한 색채, 화려한 장식을 자신의 그림 속에 담아 낸다. 
비잔틴 미술의 또 하나의 특징인 화려한 모자이크가 그의 작품에서 종종 보여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1890년부터 브루벨은 모스크바에서 활동한다. 
그는 아르누보적인 그림, 도자기, 스테인드글라스, 건축, 의상, 무대 제작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같은 해 브루벨은 러시아의 시인 레르몬트프(Lemontov)의  
낭만적인 시와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그 유명한 '악마' 시리즈를 발표한다. 
대표작으로 <악마>(1890) <술탄왕 이야기>(1900) <라일락>(1900) 등이 있으며, 
도기나 유리를 소재로 한 작품 등도 남겼다.

 

Princess Reverie. 리베리 공주. 1896.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750 x 1400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시인의 악마는 아름다운 공주를 사랑했다. 
'타마라'라는 공주는 그를 두려워 하면서도 마침내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랑의 밤이 지나자 그녀는 싸늘한 시신으로 변하고, 
커다란 마음의 고통을 안은 이 악마는 그녀의 영혼을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나타난 천사가 그녀의 영혼을 데리고 가버렸고 악마는 그녀의 영혼을 따라 
신 앞에 나가고 싶었지만 악마로서는 허용되지 않은 신성한 곳인 신 앞에 갈 수 없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동정 받지 못하고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에게조차 버림받은 악마, 
브루벨은 그 숙명적인 존재를 슬프고 고독하게 표현했다.

브루벨은 중성적인 얼굴에 뾰족한 귀, 노을지는 하늘과 화려한 꽃을 배경으로 
깍지 낀 손으로 무릎을 감싸 안은 채 먼 산을 응시하는 악마를 창조해 냈다. 
그의 눈은 우수에 잠겨있고, 마치 눈물이 고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브루벨은 그의 작품 속 악마에 대해 '여성과 남성의 외양을 통합한 영혼, 
악하기 보다는 강하고 고귀한 존재로서 고통 받고 상처 입은 영혼' 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에 대해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은 "천재의 매력적인 교향곡으로 악마를 창조했다" 라고 극찬을 했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야생적 추함' 이라고 비판을 하기도 했다.

 

Princess Reverie. 리베리 공주. Detail (부분)

미하일 브루벨 그는 옴스크 태생으로 쌍트 뻬쩨르부르그 대학에서(1874-1880) 법학을 공부하고 
예술아카데미에서(1880-1884) 미술을 공부했다. 
그는 러시아의 대표적 상징주의 화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로서 
미술 디자이너, 무대화가,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건축가였다. 
그의 가족은 러시아, 폴란드, 타타르, 덴마크 등 여러 민족의 피가 섞여 있었다.

그의 여동생 예카테리나와 남동생 알렉산더는 어린시절 죽었고 
이것은 그에게 깊은 내적인 상처를 남았다. 
그는 라틴, 프랑스, 독일 등의 문학 작품 등을 어려서부터 배웠으며 그림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한때 독일 철학 중에서 특히 니체, 칸트, 쇼펜하우어에게 빠지기도 했다.

젊어서 부터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아 교수들의 만장일치로 1884년부터 1889년까지
키예프의 키릴로프스키 성당의 벽화(프레스코화)를 복원하는작업을 수행했다. 
한동안 그가 머물렀던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셰익스피어, 괴테, 레르몬토프 등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강렬하고도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색채와 결정을 이어 놓은 것 같은 
퀼트의 패치워크법과 같이 여러 조각을 이어 붙인 것 같은 표현법, 
그림의 대담한 구도 등으로 당대 화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확립했다.

브루벨은 "예술세계"협회 회원(1900년부터)이었으며, 예술 아카데미(1905년)의 회원이었다. 
1889년부터 아브람쩨보 콜로니에 동참하게 되었다. 
1889부터 1891년 사이 마몬또프의 모스크바 저택에서 "앉아 있는 사탄"을 그렸고 
마몬또프 가족의 초상화도 그렸다​

 

The Swan Princess, 백조공주, 1900.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42.5 x 93.5 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 <황제 술탄 이야기>에서 백조 공주를 연기한 
브루벨의 아내 자벨라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호수처럼 맑고 깊고 커다란 눈을 가진 여인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녀의 눈빛에 빨려들 거 같이 느껴진다. 
백조의 새하얀 날개에 투영된 무대 조명빛 같은 색채가 백조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돋보이게 하고 전체적으로 통일된 은빛 색감이 그림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황제 술탄 이야기>는 1900년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작곡한 오페라 작품으로,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원작을, 페루스키가 리브레토를 썼다. 
어느 날 악마의 성에서 호박벌의 습격을 받고 있던 가여운 백조를 왕자가 구해 주었는데, 
그 백조가 아름다운 공주로 변해 둘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줄거리다. 
2막 1장에 나오는 <왕벌의 비행>이 가장 대중적이다.

1896년 브루벨은 당시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했던 오페라 가수 나데즈다 자벨라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는 아내를 위해 그 유명한 오페라 <백조공주>의 무대 세트와 의상 디자인을 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브루벨은 화려하고 조형적인 작품들을 많이 제작한다. 
하지만 사랑하던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과 고통으로  
1901년 다시 '악마'를 테마로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는 심한 신경 쇠약에 시달렸고, 결국 한 정신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매독 3기로, 근육과 골격이 파괴되기 시작했고,  
병마는 이미 뇌까지 침범하여 브루벨은 회복 불능한 상태였다.  
그는 1906년부터는 전혀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고, 1910년 매독의 고통속에 생을 마감했다. 

브루벨이 무대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에는 부인 '나제즈다 자벨라'와의 만남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96년 그는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한 오페라에서 가수 나제즈다 자벨라의 노래를 듣게 된다.  
그녀의 목소리에 반한 브루벨이 무대 뒤로 찾아갔고 반년 후에 둘은 결혼했다. 
<황제 술탄 이야기>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원작을, 페루스키가 리브레토르를 쓰고 
1900년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작곡한 오페라 작품이다.
자벨라는 특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노래를 잘 불렀다. 
이 작품 "백조 공주"는 바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황제 술탄 이야기"에서 
백조 공주로 분한 아내 자벨라의 의상을 스스로 디자인한 뒤 다시 그림으로 옮긴 모습이다.

어느 날 악마의 성에서 호박벌의 습격을 받고 있던 가여운 벡조를 왕자가 구해 주었는데, 
그 백조가 아름다운 공주로 변해  둘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줄거리다. 
2막 1장에 나오는 <왕벌의 비행>이 가장 대중적이다.

여기에 동양 미술, 특히 페르시아 카펫에 대한 관심이 겹쳐지면서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거장
알폰스 무하나 구스타프 클림트와는 꽤 다르면서 어딘가 비슷하기도 한 화풍이 완성된다.
어떻게 보면 동양(페르시아)의 영향과 금색(정교회 이콘) 등 화려한 색상이라는 
두 사람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셈이다. 
브루벨 역시 회화 외에도 색유리화, 도예, 무대미술, 의상 등등에도 탁월한 역량을 보였다.

자신의 부인을 모델로 그린 백조공주는 다른 작품 속의 그 눈빛이면서도 젖어 있는 우수를 표현하는 걸로 충분한,
우아함 가득한 그림이었으나, 그가 그렇게 파들어갔던 그림은 이런 소품과는 뭔가 다른 게 있었다.
좀더 추상적이거나, 많은 부분 중동으로부터 영향받은, 장식적이고 단순화된 문양과 
색감 등이 나타나는 여러 다른 작품에서도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이 데몬 시리즈에서 작가가 찾고 싶었던 그 뭔가, 
그리고 끝내 구현해내지 못하고 정신병에 빠지게 한 그 뭔가는 사람 속에 뭔가 깊은 감정, 
그것이 슬픔이건 절망이건 사람이 겪어야 하는 지독하게 인간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Pan, 판. 1899.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24 x 106.3 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판'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달빛을 등지고 앉아있는 남자는 쉬링크스를 사랑한 반수 반인의 판으로 
열심히 구애하지만 요정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 
판의 사랑을 피해 갈대로 변해 버린 쉬링크스를 잊지 못한 판은 갈대를 꺾어 피리를 만들고 
그녀가 생각날 때마다 불었다 하는데, 사랑을 잃은 판의 마음이 실려 있어서인지 
'판의 피리-팬 플루트'는 가냘프고 애절하다. 
그렇게 사랑을 잃고 홀로 살아가는 외로운 모습의 판, 절대 고독의 모습으로 블루벨에 의해 탄생된다.

절대 고독 '판', 아르카디아 산자락에 사는 요정 쉬링크스는 아르테미스를 따르며 사냥을 즐긴다. 
천사같은 그녀를 보고 우락부락한 얼굴에 염소 다리와 뿔을 가진 괴물 판은 한눈에 사랑을 느낀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쉬링크스에게 열렬히 고백해 보지만 공포의 꽥꽥거림으로 나타나는 판의 목소리에 
요정은 필사적으로 도망만 다닌다. 
영어의 panic 이란 단어는 이 pan(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판은 존재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인 괴물이었나 보다.

그런 판의 구애에 진저리 난 쉬링크스는 결국 자신을 포기해 버리고 갈대로 변해 버린다. 
사랑을 잃어버린 판의 한숨 소리가 갈대 속을 지나 가냘프고 애끊는 소리로 변하니 
그 갈대를 엮어 만든 피리는 천상의 아름다운 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끌게 된다. 
요정의 이름을 따 '쉬링크스'라고 불리는 판의 피리인 팬 플루트는 
그 애절한 음색으로 우리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 준다. 
쓸쓸한 음색만큼 슬픈 사연의 악기다.

살다 보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참 많다. 
내 속에 너무 많은 내가 다양한 목소리로 싸우지만 그들의 언어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어떤 형태의 옷을 입고 세상과 맞이해야 할 지 몰라 마음 속 테두리에 갇혀 안으로만 잦아들게 된다. 
그럴 땐 마음의 쓸쓸함, 고독함을 바위처럼 웅크린 채로 안으로 곰삭아야 한다. 
그림의 판처럼 말이다. 그래야 내 안의 쓸쓸함은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게 사랑이든, 슬픔이든, 행복이든, 절망이든.

모두가 절대 고독이란 모습으로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마 음속에 집을 짓게 된다. 
브루벨의 <판>을 보면 그런 내 안의 절대 고독이 투영된다. 
다가가 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토닥토닥 하며 쓰다듬고 싶어진다. 
'널 이해할 거 같아’하면서 말이다. 
판의 근원적 외로움 또한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쓸쓸함과 같은 모양이다. 
사랑을 잃고 홀로 주저앉은 판의 웅크림에서, 그의 텅 빈 눈빛에서, 둥근 어깨에서, 
그리고 한 손에 꽉 움켜 쥔 요정의 분신에서 우리의 쓸쓸한 자화상을 보게 된다.

현실적 외로움과 정신적 어려움을 고귀하게 지켜내겠다는 '백석'의 굳은 의지도 브루벨의 '판'이 웅크리고 있다. 
백석 또한 자신의 쓸쓸한 내면을 그의 시적 언어로 고백한다. 백석과 판은 서로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우린 그들을 읽으며 공감하며 내 안의 나와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시와 그림은 우리 인생에 최고의 동반자가 되는 거다. 
그리고, 백석의 시적 자아와 브루벨의 판이 이렇게 질문 하는 듯 하다. 
"여러 현실적 어려움 앞에 정신적 고결함을 너는 어찌 지킬 것이냐?"라고 말이다.

넓적하고 순박한 얼굴을 하고 있다. 달이 낮게 뜬 초저녁 판은 피리를 들고 앉아 있다. 
유리알같이 파란 눈은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투명하고 텅 비어 있다. 
거친 손을 보면 금방이라도 그가 나무 등걸로 변해버릴 것만 같다. 판은 자연력의 상징이다. 
그는 사람이면서 짐승이고, 동물이면서 식물이다.  
'판'과 '백조 공주'는 모두 반인반수로 자연과의 조화 속에 살고 있다. 
카오스와 코스모스가 공존하는 보랏빛 시간에 그들은 기꺼이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는 러시아의 전래 동화와 민중 서사시에 담겨 있는 범신론적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

 

"The Demon Seated" 앉아 있는 악마. 1890.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212.5 x 115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산등성이에 앉아서 서글픈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상념에 잠겨 있는 이 아름다운 청년은 악마다.
팽팽하게 긴장된 근육은 출구 없는 열정의 꿈틀거림처럼 느껴진다. 
그는 대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 속에서 길을 잃고 이곳 카프카즈의 돌산 위에 잠시 머물러 있다. 

이 작품은 러시아 낭만주의 시인 레르몬토프의 서정시 
<악마, 1839>에서 직접 영감을 받은 것이다.  
레르몬토프의 악마는 신에 대한 반역으로 낙원에서 쫒겨났다. 
추방된 천사를 악마로 만든 것은 바로 세계의 모순과 부조화다.
이 악마는 순수한 악을 표현하는 존재가 아니라 선과 악이 대립하는 
구역질나는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영웅적인 반항이다. 
그는 지상에서도 천상에서도 위안을 찾지 못하는 데카당이다. 
세상과 불화하는 자, '악마'는 브루벨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로서 
그의 스타일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세기말의 암울한 감수성으로 브루벨은 빛을 어둠으로 바꾼다. 
이것은 보랏빛 시간이다. 
브루벨의 다른 작품 <저녁으로> <세이렌> <판> <백조공주> 등에도 
이 보랏빛 시간이 표현되어 있다. 
레르몬토프의 시구처럼 '낮도, 밤도, 황혼도, 여명도 아닌' 시간이다. 
그것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휴지부 같은 시간이다. 
모드 것이 혼돈에 빠져 있으며,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시간이다.

그에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라면 
이것 "앉아 있는 악마(Демон сидящий)"를 비롯한 악마 시리즈일 것이다.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낭만시에서 영향을 받은 이 그림은 보수적인 비평가들로부터는 
거칠고 추악하다는 악평을, 우호적인 후원가들로부터는 천재성이 번득인다는 호평을 받았다. 
레르몬토프의 시가 아니더라도 그는 예전부터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어두운 구석이 있었으나 
결혼 뒤 생활이 안정되면서 디자인과 관련된 다방면의 작업을 진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27살에 자기를 질투한 젊은 귀족들에 둘러싸여 권총 결투를 하다 사망했던 러시아의 시인 
레르몬토프가 믿어지지 않지만, 15살 때부터 구상하고 수정해서 출간했던 서사시 '악마'는 
원래 천사였다가 날개를 잃고 (신을 배반하고) 지상으로 축출된 데몬의 이야기이다.

'타마라' 라는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다.
지상에 떠돌던 데몬은 그녀에게 반하고, 그녀 곁에 있고 싶어하고,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어 했다.
그가 데몬임을 알았던 그녀의 두려움과 회피, 그리고 데몬 자신도 알고 있었던 파국에도 불구하고
모든 비극이 그렇듯 둘은 사랑하게 되고,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데몬을 사랑하겠다던 
타마라와 첫날 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데몬은 그녀의 죽음을 본다.

살아 있는 순간이 아닌 죽음 이후의 영혼은 신의 것.
그녀의 영혼이라도 자기가 지켜주고 싶었으나, 손가락 사이로 물이 쏟아지듯 데몬이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신의 하늘로 타마라의 영혼은 올라가고 데몬은 지상에 남겨졌다.

부르벨의 그림은 홀로 있는 데몬의 눈에 통곡이나 분노가 아니라 
공허하게 생명이 꺼져가는 것 같은 묘사를 해 놓았다.
너무 깊어서 감당이 안 되는 슬픔, 돌덩어리를 닮은 사람의 몸, 노을을 닮은 사람의 눈,
이리도 모질게 구는 신과 악마로 강등되어서도 굽히지 않는 그 아래의 존재.
19세기는 유달리 영웅들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수많은 영웅상이 그려졌었다.

레르몬토프의 데몬은 인간을 뛰어 넘는 하나의 영웅이었겠지만, 
부르벨의 데몬은 굴복하진 않았으나, 끝내 부러지고 죽어가는 모습이다.
짜르의 폭정에 대항하던 혁명가들이 드디어 등장하는 제정 러시아에서, 
난폭한 신 앞에 선 인간을 표현했던 데몬은 그 절망 때문에 인간적이었다.

어떤 말로도 위로 받을 수 없는 고독, 그 무엇과도 소통하지 않으려는 고집,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인내하는 비애같은 것이 앉아 있는 모습에서 배어난다. 
당시 세계를 풍미했던 데카당스, 아르누보의 러시아적 퇴폐미가 
브루벨의 손에 의해 새로운 빛깔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Demon Downcast, 상처입은 악마. 1902.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39 x 387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추락하는 악마. 가로로 매우 길다. 가운데 눈과 머리가 보인다.
브루벨의 악마 시리즈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이다. 
그림 속 악마는 온 몸이 심하게 상처받은 듯 목이 꺾여 있고 몸은 일그러져 있다. 
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온 몸으로 감내하는 예술가의 아픈 현실이 그대로 그림에 배어 있는 듯 
악마는 상처받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부루벨은 이 악마에 자신을 투영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다했다 하는데,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이미 정신병 증상이 악화되어 <상처 받은 악마>를 마지막으로 
악마 시리즈를 더 이상 그릴 수 없었다 한다. 
그래서인지 그림을 통해 고뇌하고 절규한은 듯한 작가의 울부짖음이 더욱 절절하게 느껴진다.

"패배한 악마 (Демон поверженный)"의 끝없는 작업은 그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급기야 신경 쇠약으로 정신 병원에 입원되기에 이른다.
더불어 매독에 의한 신체의 손상이 시작되고 아들이 죽으면서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던 그는
시력을 잃으면서 작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결국 1910년 사망했다.

 

The Lilacs, 라일락. 1900.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60 x 177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화사하게 만개한 연보라빛의 라일락이 달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난다. 
반복되는 그림의 터치를 보고 있자면 라일락의 알싸한 향기가 그대로 배어져 나오는 듯하다. 
브루벨은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중 <마르가리타의 정원>을 듣고 
여름 저녁의 정취를 떠올리며 이 그림을 그렸다 한다.

 

Lilacs, 라일락 꽃. 1901.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브루벨은 작품 초기부터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눈에 띄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시베리아의 극단적인 자연환경 속에서 그가 겪었던 어린 시절 형제 자매의 죽음은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어둡고, 서늘했다.
브루벨은 초기에 기독교 미술을 바탕으로 동방의 문화를 흡수한 헬레니즘과 
고대 아시아 및 페르시아 왕조의 미술이 섞인 비잔틴 미술에 매료되었다. 
비잔틴 미술은 화려하고 장엄하지만 정신적이고, 영적인 세계를 중시했다. 
브루벨은 그 중후하고 선명한 색채, 화려한 장식을 자신의 그림 속에 담아 내었다. 
비잔틴 미술의 또 하나의 특징인 화려한 모자이크가 그의 작품에서 종종 보여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미카엘 브루벨 작품에는 두 점의 라일락이 있다. 
하나는 1900년에 완성되었고 다른 하나는 1901년에 미완성으로 작성되었다 . 
작가 자신은 “작년의 라일락은 실물을 그림의 스케치로 언급합니다. 
거기에서 나는 단지 무언가를 잡을 수 있었고 , 정말로 더 잘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 이야기를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라고 말한다.

오른쪽 하단에는 벤치가 있고 소녀가 벤치에 앉아 있다. 
작가가 이 그림을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캔버스에 준비용 목탄 그림만 보인다.
미카엘 브루벨은 모든 세부 사항을 보기 위해 매우 신중하게 그림을 들여다 보게 한다. 
사물의 윤곽은 어둠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곳의 예술가는 창조주와 같이 혼돈에서 세상을 창조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캔버스에 바른 페인트는 세상이 생기는 물질이 되고 붓은 도구가 된다. 
그리고 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특정 생물이나 식물이 원자의 조합에서 태어나므로 
브루벨에게는 우연이 없지만 엄격한 법이 있다. 
원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만 가능한 유일한 순서와 리듬으로 캔버스에 페인트칠을 한다.

 

Faust. 1896.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After the Concert Portrait of Nadezhda Zabela. 1905. by Mikhail Vrubel. 
charcoal, paste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Flight of Faust and Mephisto. 1886.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Portrait of a Businessman K. Artsybushev, 1896,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The Fortune Teller. 1895,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Portrait of S. Mamontov, the Founder of the First Private Opera, 1897.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42.5 x 187 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Prophet, 1898, by Mikhail Vrubel. illustratio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Mary 공주와 Grushnitsky. 1890-1891. Tretyakov Gallery Room 32-34
검은 수채화, 백색 도료, 잉크, 세피아, 브러시, 펜, 흑연 연필 종이에.

M. Yu의 소설 삽화. Lermontov의 "우리 시대의 영웅"
브루벨의 예술적 유산에서 그래픽의 역할을 과대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The Demon Defeated (1902) 이후, 그는 사실상 유화로 전환하지 않았고 그래픽을 통해서만 
세계를 인식하고 묘사했으며 동시에 이전에는 미술이 접근할 수 없었던 한계와 깊이에 도달했다.

 

Lermontov의 "Izmail-Bey". 자라와 이스마엘에게 작별을 고하십시오. M. Yu의 시 삽화. 
검은 수채화, 백색 도료, 잉크, 세피아, 브러시, 펜, 흑연 연필 종이에.

1900년대 초 브루벨의 열정적인 다큐멘터리 연필 초상화에서는 
미래의 "표현주의"와 20세기의 다양한 형태의 "현실주의"가 예견된다. 
그리고 예술적 예언의 예감이라는 주제가 그의 작품의 평범한 주제 중 하나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Duel of Pechorin and Grushnitsky, 1891, ​watercolor on paper.

 

Pechorin 및 Grushnitsky 발표. (M. Yu. Lermontov.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

"우리 시대의 영웅"을 요약하면이 소설 전체를 읽었더라도 
이 소설을 더 잘 알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미하일 레르몬토프(Mikhail Yuryevich Lermontov)의 
러시아 문학 역사상 최초의 심리학 소설이다. 
레르몬토프의 자전적 심리소설로서, 1839년 기록되었고 
1840년 Ilya Glazunov에서 출판되었으며 1841년 개정되었다.
러시아 문학의 고전이다. 

한 사람의 주인공 페초린의 행동을 중심으로 해서 3인칭 또는 
1인칭으로 엮어진 다섯 가지의 일화를 하나의 소설 형식에 묶고 있다. 
이것은 제1화 <벨라>, 제2화 <막심 막시므이치>, 제3화 <페초린의 수기>―첫째 <타마니>, 
둘째 <공작의 딸 메리>, 셋째 <운명론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하나가 훌륭한 단편을 이루고 있다.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의 전부는 이기주의자이자 고집 센 청년 사관 페초린의 성격에 있다. 
그는 20세에 불과하면서도 세상의 모든 것에 환멸을 느낄 뿐, 기쁨을 느끼는 일이 없다. 
그의 권태를 구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행동뿐이다. 
이상이나 인생의 목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그저 따분함을 벗어나기 위해 
한가닥의 들뜬 기분에서 여자의 사랑이나 남자의 우정을 희생시켰고, 
속물인 친구를 결투에서 태연히 죽인다. 
그러면서도 총명하고 진지한 감정도 지니며, 용감하고 의지가 굳은 복잡한 인물이다. 
그의 비극은 자신의 비정상적 정력과 풍부한 재능을 쏟을 목적을 못 지닌 채 이를 부질없이 낭비하는 데에 있다.

페초린은 확실히 전제 러시아 니콜라이 시대의 산물이자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주요 인물상인 ‘사냥꾼’의 하나이다. 
그러나 선악을 초월한 ‘무정부적으로 자유분방한’ 그 정신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나 <카라마조프의 형제>의 이반으로 통하는 새로운 타입이기도 하다.
 

Tamara and Demon. Ill to Lermontov's poem. 1890. by Mikhail Vrubel. 
Tretyakov Gallery Room 32-34

 

The Judgement of Paris, 1893,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Mikula Selianinovich and Volha, 1899, by Mikhail Vrubel. 
majolica, Tretyakov Gallery Room 32-34

 

At Nightfall, 1900, 저녁.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29 x 180 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Spain, 1894,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영상]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미하일 브루벨 (Mikhail Vrubel) 작품 전시실

 

 

 

19세기 중 후반 그림 <이동파 시대> 

 

Portrait of painter Nikolai Nikolayevich Ghe. 1880. by Ilia Repine. 
by Ilya Repin. oil on canvas. 82.5 x 66.2 cm. Tretyakov Gallery Room 31 

화가 니콜라이 게 (Nikolai Nikolayevich Ghe)의 초상화.
러시아 국민화가 일리아 레핀(Ilia Repine)의 작품이다.


니콜라이 게 (Nikolai Nikolaevich Ge 1831- 1894)는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로 역사적, 종교적 그림으로 유명하다.
니콜라이 게는 조부가 18세기에 러시아로 이민 온 프랑스 혈통의 귀족 가문 태생이다.  
조실부모하고 농노 유모의 손에 컸다.  
키에프와 상 페테르부르그 대학에서 물리학과 수학 전공하다 황립예술학교로 옮긴다.  

니콜라이 게는 우크라이나 사실주의 화가이면서 상징주의자로, 
역사화와 기독교적 주제를 색다른 해석으로 진지하게 탐구했다. 
니콜라이 게의 작품은 점점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어려서부터 물리학과 화학을 공부하던 게(Ge)는 제정(帝政) 러시아 시절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대학 (Kyiv University)과 상트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공부하던 과학도였다. 
20세이던 1850년이 되어서 그동안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고, 뒤늦게 
상트페테르부르크 제국 미술학교에 입학해서 화가 수업을 쌓았다.

 

 “What is truth?”  Christ and Pilate, 진리란 무엇인가? 예수와 빌라도. 1890,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233 х 171cm. Tretyakov Gallery Room 31

<진리란 무엇인가?>는 대위법적인 화면 구성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와 예수. 전자는 등을 보이고 있고 후자는 앞을 바라보고 있다. 
한 사람은 빛을 받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그림자에 싸여 있다. 
빌라도는 자유로운 권력자의 제스처를 하고 있는 반면 예수는 손이 뒤로 결박된 상태다. 
빌라도의 몸집은 다소 뚱뚱한 편이나 예수는 바짝 말랐다. 
두 사람의 이런 대조는 화면을 매우 드라마틱하게 만들 뿐 아니라 
관객이 예수가 처한 상황 속으로 급격히 빨려들게 한다.

그림 속 빌라도는 어둠 속의 예수를 바라보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도대체 네가 말하는 진리란 무엇이냐?”
그림 속 빌라도는 예수를 가소롭다는 듯 쳐다본다. 
그는 예수를 그저 보잘 것 없는 정신병자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이 그림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가 예수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가 그럴 만한 가치조차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묵묵히 빌라도를 바라보는 예수의 눈빛에서 우리는 그가 어떤 말도 할 의사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니콜라이 게의 예수는 결코 패자가 아니다. 
저 높고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를 비롯하여 세상의 영광과 권위로 충만한 
모든 제도와 기득권자들이 승리자가 아닌 것처럼 가난하고 누추하다고 
세상에서 멸시를 받고 있다고 예수가 패자인 것은 아니다. 
그의 침묵은 굴종이 아니며, 그의 슬픔은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토록 지독한 고통을 진리와 양심을 위해 스스로 감내했기에 
니콜라이 게의 예수는 진정한 승리자인 것이다. 

진리가 무엇이냐? What is Truth? 
빌라도의 관저에 잡혀온 예수에 대한 심문 중에 로마 총독 빌라도가 던진 질문이다. 
너는 유대인인데, 네가 그 유대인들의 왕이라면서? 빌라도는 두 번이나 따지고 물었다. 
그런데 네 유대인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다. 
네가 말하는 진리가 도대체 무엇이냐? 
그러나 빌라도는 그 앞에 결박 당해 있는 예수의 다음 답변을 기다리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렸다면 진리가 과연 무엇인지, 인류가 가장 듣고 싶었던, 
들었으면 좋았을, 그 대답을 들었을 텐데. 
그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는 군중들에게 넘겨주었다.  

일반적으로 그림에서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표현할 때 키아로스쿠로 (명암 대조법)를 많이 쓰는데 
선에는 밝은 빛을 주고, 악의 영역에는 어둠을 주어 극적 효과를 내며 주제를 극대화 시킨다.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말이다. 
하지만 니콜라이 게는 그 반대로 표현하여 어둡고 칙칙한 그늘 속에 
버려진 듯한 예수를 표현함으로써 쉽게 얻을 수 있는 진리와 선의 성격을 설명한다. 
진실로 가치있는 진리는 쉽게 얻을 수 없다. 
진정 찾고 고민해야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으로 그림을 통해 그 진실의 성격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림이 시가 되고, 소설이 되고 , 철학이 되고, 그리고 가르침이 된다.
그림을 통해서 힐링을 얻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진리란 무엇인가?>는 한 편의 그림이라기보다는 철학이다.
선한 가르침을 통해 진리를 얻는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인간 본연의 선한 양심을 바탕으로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판단해야 할지 길을 잡아준다.

예수와 빌라도가 마주 보고 서 있다.
한 사람에겐 밝고 화사한 빛이 , 다른 한 사람에겐 그늘과 어둠만이 존재한다.
살찐 빌라도가 앙상히 야윈 예수에게 한쪽 손을 내밀고 거만히 어깨를 으쓱하며 질문을 한다.
"진리가 무엇이냐?"

이 그림은 <요한복음 18장>에 나오는 빌라도와 예수의 대화를 바탕으로 한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네가 왕이냐?"라고 질문을 한다.
이에 예수는 왕이다고 대답하며
"난 진리를 위해 태어났고 그것을 위해 세상에 왔으니 진리를 증언하려 한다.
그러므로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고 따를 것이다"라고 답한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에게 되묻는다
"네가 말하는 진리란 무엇이냐"
예수는 이에 답하지 않고 무섭고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빌라도에게 응한다.

과연 진리는 무엇인가
그림 앞에선 우리에게 작가는 질문에 진지해지라고 한다.
또한 예수에게 거들먹거리는 빌라도의 거만함을 보여주며 부끄러움의 민낯을 가늠케 한다.
그리고 진정 선한 것이 무엇이며 진리는 무엇인지를 고민하라 한다.
어둠 속에서 예수가 세상사 안일하고 편한 것을 찾아 쉽게 야합하는 우리를 꾸짖듯이 쳐다본다.

그림에서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표현할 때 키아로스쿠로, 명암 대조법을 많이 쓴다.
대표적으로 렘브란트의 작품을 들 수 있다.
선에는 밝은 빛을 선사하고 , 악의 영역엔 어둠을 주어 극적 효과를 내며 주제를 극대화시킨다.
그러나 게의 <진리란 무엇인가>는 반대로 진리와 선인 예수 그리스도는 어둠 속에서 묵묵히 서 있다.
살찌고 비단옷을 입은 빌라도는 환한 빛을 등에 업고 진리를 심판하려 한다.
거짓 잣대를 들고 진실인양 선을 묻으려 한다.

그렇다!
작가는 어둡고 칙칙한 그늘 속에 버려진듯한 예수를 표현함으로써
쉽게 얻을 수 없는 진리와 선의 성격을 설명한다.
진정으로 찾고 고민해야만 손에 넣을 수 있는 진리와 선은
자동인출기의 물건처럼 돈을 넣고 누르면 나오는 인스턴트 식품이 아니다.

끝없는 노력과 연구, 자기 성찰을 통해야만 진리에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다.
수많은 빌라도들이 잘못된 선과 도덕의 잣대를 휘둘러
올바른 정신을 좀먹게 하는 현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진리와 선은 고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니콜라이 게는 말해준다.
조금만 주의력을 흩트려도 거짓이 참이 되는 세상이니
어둠 속에 있는 선과 진리를 밝은 곳으로 끌어내는데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는 거다

니콜라이 게는 톨스토이의 정신에 큰 감화를 받아 이 그림을 그렸다.
톨스토이는 내 안에 존재하는 이성으로 선을 찾고 사랑을 실천하는 일,
선한 목적으로 삶을 정진하는 것이 인생이라 말한다.
일신의 안위만을 추구해선 안 되며, 만인의 행복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 말하고, 교회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은 신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예수 또한 인간이므로 그를 신격화해 기도하는 것을 엄격히 반대했다.
사치와 무위도식의 생활에 빠져 있는 타락한 특권 계급을 부정하고
그들을 인간 사회에 불행을 가져다주는 악의 근원으로 규정지었다.
또한 폭력을 기반으로 세워진 국가를 부정하며
그들을 지지하는 교회 세력 , 학문, 예술 모두를 부정한다.

톨스토이를 지지한 니콜라이 게는 <진리란 무엇인가>에서
그리스도는 어둠에 갇혀 신음하는 러시아 민중, 즉 선하고 도덕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자를 대변하고,
극단적 이기심으로 자신의 안위만에 급급한 기득권층을 빌라도로 표현했다
어둠 속에서 두 손이 포박된 예수처럼 진리와 양심을 외치는 자는 외롭고 힘들 수밖에 없다.
차갑고 어두운 현실 속에 내팽개쳐질 때가 많다.
바로 진리와 선은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와 선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해야 올바른 진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것이고,
그 빛이 참다운 진리임을 빌라도와 예수 그리스도를 빌어 분명하게 전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향해 정진하는 삶이 고독하고 힘들더라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톨스토이의 가르침이며 니콜라이 게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사실주의화가들 가운데는 종교적 주제를 다룬 여러 명의 화가들이 있는데, 
그들은 사회, 정치적인 내용을 기독교적 주제에 대비시켜 
그 당시 부패하였던 정부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가하였다. 
이런 분야에서 활동한 화가 가운데 탁월한 사람이 바로 '니콜라이 게'이다.

그는 특히 네덜란드의 바로크 화가 램브란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니콜라이 게는 렘브란트로부터 빛의 효과나 그밖의 기법만을 배웠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렘브란트와 마찬가지로 복음서의 이야기를 통하여 
인간생활의 심오한 드라마를 해명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보고 있는 '진리란 무엇인가?'는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던진 짤막한 질문이다. 
오른편 자색옷을 입은 그리스도는 견딜 수 없는 사회적 억압에서 민중들을 구원하는 
하층 사회의 꿈을 대표하고, 자색옷은 희생, 헌신, 겸손, 고귀함을 표현하고 있으며, 
밝은 빛을 받아 황금색 옷이 빛나는 빌라도의 모습은 
권세, 귀족적 에고이즘, 교만함과 세속적 영화를 의미하고 있다.

물론 권세 있는 편이 오후에 어지러울 정도로 비추이는 태양빛을 받아 
그 당당함이 더욱 빛나고 있지만 그림자 속에서 빛나는 그리스도의 눈초리만큼 빛나고 있지는 않다. 
지금 그리스도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다. 
빌라도는 이런 예수를 답답하게 생각하며 절반은 조롱 섞인 말투로 묻는 것이다.

"진리가 무엇이냐? 네가 주장하는 진리란 겨우 이런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는 것이냐?"
라고 묻고 있지만, 예수는 이 질문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그렇다! 진리가 무슨 변명을 할 것인가? 진리는 변명할 수가 없다. 
진리는 그 자체인데 어떻게 진리가 변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만약 진리가 변명한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침묵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고, 
침묵은 곧 진리가 오히려 심판하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묘하게도 빌라도가 내밀은 손은 예수를 문책하면서 가리키는 손이 아니라, 
예수를 지칭하면서 <당신이 진리입니다!> 하는 듯이 보인다. 
사실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정죄하고 재판정에 예수를 세웠지만 
예수를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그들을 심판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진리이고 그 말씀이 진리이셨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해는 짧다. 
작가는 지금은 비록 빌라도가 오후의 눈부신 태양빛을 받고 있지만, 
곧 빌라도는 어두움에 묻힐 것이고 그 밝은 빛은 
예수님 쪽으로 비추어서 영적인 빛을 발할 것이다. 
이미 그것은 그리스도가 빌라도를 바라보는 눈초리에서 그 빛을 읽을 수가 있다. 
또한 그러한 염원은 작가의 마음 속에서 소원하는 민중을 대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예고하는 것이다. 항상 진리가 승리하는 것이므로.
“ …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 (요한복음 18:37)

 

Maria, sister of Lazarus, meets Jesus who is going to their house, 1864.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와 그들을 만나러 오시는 예수님.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82 x 64 cm. Tretyakov Gallery Room 31

 

Last Supper. 최후의 만찬. 1863.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누군가 서 있다. 
어떤 불길한 예감이 찾아온 듯하다가 어둠 속에 놀란 베드로의 눈과 
호기심 가득한 제자들 사이에 예수가 마지막 만찬의 침상에 비스듬이 누워 있다. 
다가 올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다빈치의 것과는 다른 분위기가 당시의 분위기를 실감하게 한다.
“유다의 검은 그림자가 일으킨 화면의 균열은 마치 <죄와 벌> 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 (균열이라는 뜻의 단어 ‘라스콜’에서 유래)를 떠올리게 한다”

최후의 만찬 Last Supper, 압권이다. 
이제 최후를 맞아들여야 하는 예수의 고뇌에 찬 표정, 즐거운 작별의 만찬 모습은 아니다. 
그 순간 모든 제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불길한 어둠 속의 거음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다. 
정말 놀라운 그림이다. 
전통적인 최후의 만찬 그림은, 서구식 식탁 의자에 두루 앉아 있는 모습이지만, 
니콜라이 게의 최후의 만찬은 예수께서 비스듬히 누워 마지막 만찬을 맞고 있다. 
당시 유대인의 만찬 모습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가 절절한 사실주의 화가이듯이, 얼마나 고증에 충실했던 화가였는지를 보여준다. 

 

Christ and his disciples entered the Garden of Gethsemane after the Last Supper, 1889.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제자들과 게세마네 동산으로 향해 가는 그리스도.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65.3 x 85 cm. Tretyakov Gallery Room 31

 

The Garden of Gethsemane. 게세마네 동산. 1869 년에 사작하여 1880년 완성.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He is Guilty! The Judgment of the Sanhedrin, 그는 유죄다, 산헤드린의 재판. 1892.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잡혀온 예수의 초라한 모습과 벽에 기대어 있는 예수를 능멸하듯 조롱하는 제사장들 
'변방 갈릴리의 촌놈 너는 유죄다!'

 

Conscience, Judas. 양심, 배반자 가롯 유다. 1891.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149 x 210 cm. Tretyakov Gallery Room 31

'유다의 가책' 그날 밤 유다이다. 

은화 30 냥을 돌려주기 위해서 어두운 길을 다시 걸어가고 있다.  
저기 길 끝에 돈을 돌려 줄 유대 제사장 무리들이 보고 있다. 밤 그람자보다 더 어두운 밤. 
겟세마네에서 기도의 모습과 가롯 유다의 가책, 상대적으로 정면 모습과 뒷면 모습이다. 


이 대조적인 그림은 고뇌에 찬 모습과 한없이 격리되어 외로운 모습이라 할까? 
특히 담요를 둘러쓰고 혼자 서서 가롯 유다가 바라보는 시선 방향 멀리 
어둑한 어둠 속 횃불들 사이로 체포되어 붙들려가는 예수의 모습이 보인다. 

그림 속에 어깨를 움츠리고 저멀리 한 무리의 사람을 바로 보고 서 있는 사람은 
예수를 은화 30냥에 팔아 넘기고 그 죄책감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가롯 유다다. 
예수의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일신을 위해 갈등하는 
유다의 양심의 빛깔은 온통 까맣게 칠해져 있다. 
작가는 일상의 갈등 속에서 부정한 양심에 손을 들어주는 우리의 모순을 
유다의 검은 욕심에 빗대어 보여주고 있다.

 

Golgotha, 골고다. 1893. oil on canvas. by Nikolai Ghe. Tretyakov Gallery Room 31

세 도둑과 함께 십자가 처형장 해골의 언덕으러 끌려가는 두려움과 고통이 가득하다.
홍포를 입은 예수가 골고다 처형의 언덕에서 로마 병정의 형 집행 지시에 두려워 벌벌 떠는 모습이다. 
맨발의 예수 옆에 서 있는 함께 처형될 두 사람 강도의 시선 처리 모습도 이채롭다. 
한 강도는 이미 체념했고, 다른 한 강도는 아직도 노려보는 시선이다. 
그 사이에 예수의 모습은 아아 이 일을 어찌할꼬 하는, 

바로 처절한 두려움 앞에 선 우리들의 모습이라 할까? 

사형을 언도받은 예수가 다른 두 명의 사형수와 함께 

처형장을 나아가는 모습에서 예수가 보여주는 파토스는 절절하다. 
왼편에 보이는 형리의 손이 그를 가리키자 

예수는 공포에 사로잡혀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 하고 있다. 
진리와 정의를 외쳐 왔지만 예수 또한 한사람의 인간으로써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아는 사람이기에 스스로 죽음을 택해 
저 자리에 선 저 남자가 진정으로 위대한 인간임을 말하고 있다. 

 

The Return from Christ's Entombement (study). 그리스도를 매장하고 돌아가는 일행들 (습작) 1859.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Harbingers of the Resurrection, 부활의 조짐. 1867.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부활의 조짐' 동이 트는 새벽, 창을 든 로마 병정과 천사의 날갯짓. 
니콜라이 게가 부활의 상징과 은유의 그림을 그렸다. 

부활을 예감케 하는 그림이다.
부활의 예감, 무덤을 지키는 로마 병정들의 실루엣, 

왼쪽 방향에서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막달라 마리아, 
시선 방향으로 멀리 예사롭지 않은 새벽 먼동이 무엇인가의 특별한 조짐을 예감하게 한다. 

예수 부활의 그 새벽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다. 
우리들의 고정관념에 맞선다 할까? 대단한 표현이다. 
사실주의 화가인 니콜라이 게를 상징주의로 불리는 것을 대변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The destruction of the Temple in Jerusalem,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 1859. 
by Nikolai Ghe. oil on paper. Tretyakov Gallery Room 31

앙토냉 아르토 (Antonin Artaud)는 천사를 가장 성스럽게 묘사하기 위해서는 
손에 뱀을 들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가장 깊은 고요만이 바늘이 떨어지는 침묵을 깨는 소리가 
가장 커다랗게 지축을 흔드는 소란이라고 표현했다. 
니콜라이 게의 그림들 속에서는 극단적인 사실이 표현되면서도 
그것이 다시 절대적인 상징을 함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자료들은 아직 미술사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다만 그의 그림들은 지금 이해되고 있는 해석이나 가치 이상으로 
앞으로 더욱 중요한 의미를 던져 줄 것이 확실해 보인다.

니콜라이 게는 다른 러시아의 이동파화가들 처럼 창작의 자유와 예술을 통한 

민중 교화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기를 원했다. 
이동파 화가들은 그림을 들고 순회 전시하며 
"민중아 꺠어나라"를 주창한 행동주의적 미술 경향이다. 
그들은 단정하고 기품 있고 보수적인 기존 아카데미 미술교육에 반발하며 
더 낮은 곧으로 그림이 달려가기르 원했다.

​그들의 기존 회화의 틀을 벗어나 창작의 자유와 예술을 통한 민중 계몽에 역점을 두었으며. 
이 혁명적인 표현운동에는 19세기 러시아 미술의 핵심물들이 참여하였다. 
따라서 미에 대한 탐구보다 사회적.윤리적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화풍도 대중에게 더 잘 어필할 수 있는 사실주의을 지향했으며 
삶의 진실이라는 러시아 미술의 전통을 극대화시켰다.

​이들 작품은 시골과 도시의 일상생활 장면이 주요 테마가 되었고 
일상과 축제 속의 농민과 도시민들이 주인공이 되었다. 
그림을 들고 민중 곁으로 달려가는 '이동전시협회'를 결성함으로써 
마침내 미술사에 이동파(Peredvizhniki)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동파의 목표는 예술을 관료행정으로 부터 해방시키고 
예술을 통해 민중을 교화시키는 것에 있었다. 

 

Christ and Nicodim. 1889.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Peter the Great Interrogating the Tsarevich Alexei Petrovich at Peterhof, 1871.
표트르 1세 대제께서 황제의 궁전 페테르호프에서 황태자 알렉세이 페트로비치를 심문하다.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이 작품은 역사화라는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페트르호프는 황금빛 조각과 분수로 장식된 표트르 대제의 여름궁전이다. 
표트르 대제의 위업을 아름답게 빛내 주는 이곳은 실내 벽면에 
대제가 수입한 서유럽의 명화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

당당한 풍채에 다리를 꽈아 자신감을 드러낸 대제에 비해 
큰 키에 마른 체형의 황태자는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나약한 안성울 풍긴다. 
강렬한 눈빛으로 자신을 배반한 아들을 노려보는 대제의 얼굴에서 비극이 암시된다. 
좌우로 나누어진 구도에 의한 대립적 인물 배치 역시 마찬가지다. 
비극에 대한 반복적인 복선을 설치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황제에 오르기 전 형인 이반과 동생인 소피아를 물리치고 어머니 세력을 덥고 황위에 오른
표트르 대제는 총병들의 반란을 격은 후 형, 동생과 그 세력을  척결하고 자리를 공고히 굳혔다. 
그리고 그 힘으로 서구화 정책을 밀고 나가기 시작한다.  
그후 유럽과의 통로 확보를 위해 스웨덴과 2차례 전쟁을 거쳐 
발트해 연안을 확보하고 상테폐테르부르크를 건설하였다. 

황태자 알렉세이는 표트르 대제와 첫 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알렉세이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알렉세이는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자라났으며 옛 러시아 방식을 숭상했다. 
대제의 개혁을 탐탁치않게 여겼던 보수주의자들은 알렉세이를 지지했다.

이를 알고 있는 포트르대제는 아들에게 생활방식을 바꾸던지 
제위 계승을 포기 하던지 선택할 것을 강요했다. 
아들은 결국 제위 계승을 포기하고 국외로 도피한다. 
이것은 단순한 부자간의 갈등이 아니고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사상적 대립이었다. 

알렉세이는 1718년 러시아로 돌아왔으나 국가 반역죄로 체포된다. 
아버지는 아들을 고문하고 자백을 받아냈으며, 사형선고라는 잔혹한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알렉세이는 사체로 발견된다. 
그림 속에서 벌어진 논쟁의 결론은 일단 역사가 증명한다. 
제위 계승의 포기와 해외 도피로 이어진 알렉세이의 행보가 반증하듯이 
그에게는 표트르 대제의 정책을 뛰어 넘을 대안이라는 것이 없었다.

실제로 이 그림이 그려진 1870년대 지식인들을 행동하게 했던 것은 서구주의자들의 사상이었다. 
벨렌스키, 헤르첸, 바쿠닌의 사상은 헤겔 등의 독일 관념론에 기초한 것이며 
훗날 사회주의 혁명의 기반이 되는 마르크시즘 역시 서구 사상이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진보와 발전, 이것은 당시 지식인들의 마음 속 깊이 새겨진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는 법이다. 
헤르첸의 영향을 받은 인민주의자(나로드니키)들은 혁명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서 
민중 속으로 흩어져 들어가는 브나로드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 운동가들은 민중들의 몰이해와 불신 속에서 좌초하고 말았다. 
진리는 현실에서는 결코 단선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승리는 표트르 대제의 것이었지만, 
그는 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은 인륜에 어긋난 아버지였다. 
그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  
부정과 악에 대해서 예술이 어떤 답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가 확신을 할 수 없었던 니콜라이 게는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가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대문호 톨스토이 때문이었다. 
니콜라이 게는 톨스토이 철학의 신봉자가 된다. 
화단에 복귀한 그가 남긴 명작 가운데 하나가 예수와 빌라도의 대화를 그린 
<진리란 무엇인가?> 라는 작품이다.

1870년 역사 주제의 이 그림 '페테스부르크에서 알렉세이 황태자를 심문하는 표토르 대제'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같은 쟝르의 다른 그림들은 냉대를 받자 니콜라이 게는
'화가는 농사를 지어먹고 살아야지 그림을 판다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니콜라이 게는 우크레이나에 농장을 사서 이주했다. 
게는 톨스토이와 친하게 됐고 그의 철학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페트르코프는 황금빛 조각과 분수로 장식된 표트르대제의 여름궁전이다 .
표트르대제의 위업을 아름답게 빛내주는 이곳은 실내 벽면에 
대제가 수입한 서유럽의 명화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  

아버지 표트르대제는 자신감 있는 자세로 앉아 아들을 매섭게 노려본다.
바닥에 떨어져 잇는 문서는 방금 그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테이블에 한손을 엊고 비스듬히 서 있는 아들 알렉세이의 허약한 실루엣은 
아버지의 당당한 풍채와 비교가 된다.

표트로대제의 발밑을 중심으로 좌우로 퍼져나가는

체스판 모양의 바닥은 심리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다 종국에는 반란까지 획책한 
아들을 심문하는 대제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Portrait of Leo Tolstoy, 레오 톨스토이의 초상. 1884.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니콜라이 게는 톨스토이와 친하게 됐고 그의 철학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후기의 게는 종교화와 인물화로 돌아왔다. 
그의 신약에 근거한 종교화는 진보파의 환영을 받았으나, 동시에 보수파의 비난을 받았다. 

니콜라이 게는 1894년, 63세의 나이로 그의 농장에서 죽었다. 
애석하게도 그가 평생을 걸려 그린 많은 작품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던 관계로 그가 그린 모든 작품은 그에게 매달 작은 봉급을 보내주던 
스위스의 후원자 베아트리체 (Beatrice de Vattville)에게 모두 넘겼다. 
그러나 후원자였던 베아트리체가 1952년에 세상을 떠났을 떼, 
그녀의 성에서는 니콜라이 게의 그림이 단 한 작품도 발견되지 않았다. 


무서워서 처치한 것은 아닐까? 
세월이 지나고 1974년이 되어서야 미궁 속의 그의 그림 중 몇몇 작품들만 
스위스의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되었다. 
1990년대부터 러시아 정부가 직접 나서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을 중심으로 
니콜라이 게의 작품 수집에 나섰다. 
러시아 국가 은행의 적극적 자금 지원으로 니콜라이 게의 그림들을 
보이기만 하면 모두 구입에 나섰지만, 아직도 그의 그림 대부분은 사라졌고 
여전히 존재 미상, 미궁인 작품이 대부분이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작품 역시 '레플리카', 모작이 대부분이다. 

 

Portrait of Natalia Petrunkevich. 나탈리아 페트룬케비츠의 초상. 1892~1893.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retyakov Gallery Room 31

 

Portrait of Shestova with Her Daughter. 1859. 쉐스토바와 그녀의 딸.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Vineyard at Vico. 1858.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Marble Quarry at Carrara, 1868.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Portrait of the Author Alexander Herzen, 1867.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Portrait of the Physiologist Moriz Schiff, 1867.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Portrait of Joseph Daumangé, 1868.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Portrait of the Historian Nikolay Kostomarov, 1870. by Nikolai Ghe.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1

 

[영상] Tretyakov Gallery Room 31. 니콜라이 게(Nikolai Ghe) 작품 전시실

 

 

 

19세기 중 후반 그림 <이동파 시대> 

 

Self-portrait, 자화상. 1887. by Ilya Rep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0

일리야 레핀(Ilya Yefimovich Repin)은 1844년 러시아의 추구예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인 그는 15세 때 고향 추구예프의 이콘 화가 

부나예프(Bunakov)의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그림을 배웠다. 

그는 종교화와 초상화를 그려 모은 돈으로 19세 되던 1863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여 예술장려협회의 미술학교에서 데생 교육을 받았다. 
이듬해인 1864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그의 평생의 스승인 
이반 크람스코이(Ivan Nikolaevich Kramskoy)를 만났다. 
크람스코이는 이동파를 이끈 지도자이자 시대를 주도하는 예술가로 
그는 레핀에게 예술의 사회적 책임을 각인시켰다.

레핀은 1871년 성서를 주제로 한 <야이로의 딸의 부활>로 아카데미 졸업 작품전에서 금상을 받았다. 
그는 이것으로 일급 공식화가 자격을 취득했고, 우수 연수생으로 6년간 해외 유학의 기회를 얻었다. 
레핀은 유학을 떠나기에 앞서 볼가 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의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고, 
유학을 미룬 채 이 장면을 그리는 데 매달렸다. 
3년 뒤에 탄생한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은 각각의 인물 속에 개성 넘치는 성격과 
다양한 삶의 흔적, 강인함과 절망, 비극적인 러시아의 상황을 담아낸 수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레핀은 1873년 5월 유럽으로 향했다. 
비엔나, 베니스, 로마를 방문한 그는 파리에 자리를 잡았다. 
1874년 파리에서는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레핀은 인상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예술의 흐름과 창작의 자유에 대해서는 옹호했다.

레핀은 1876년 예정보다 일찍 귀국하여 <성직자>, <황녀 소피야 알렉세예브나>, 

<쿠르스크 현의 십자가 행렬> 등 러시아적 가치와 전통에 바탕을 둔 작품을 발표했다. 
1877년 추구예프에서 모스크바로 온 레핀은 모스크바 근교에 있는 
사바 마몬토프(Savva Mamontov))의 영지 아브람체보를 자주 방문했다. 
이곳에는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 모데스트 무소륵스키(Modest Petrovich Mussorgsky), 
파벨 트레티야코프(Pavel Tretyakov) 등 예술가 및 재력 있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다. 
레핀은 이념적으로 자유로웠던 아브람체보의 분위기를 즐겼고, 

이 모임의 가장 활동적인 회원이 되었다.

1882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다시 옮긴 레핀은 이동파 화가들의 전시회에 참여했다. 
이동파는 특정 계층의 사람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여러 도시로 이동해 가며 전시회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러시아 사회를 통찰력 있게 묘사한 이동파 화가들의 작품은 
이후 러시아 미술의 성격을 규정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레핀은 이 시기에 혁명을 주제로 한 역동적인 삶을 주로 그렸는데, 
특히 삶 속에 내재된 다양한 심리에 초점을 맞췄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그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유형지에서 고향의 집으로 돌아온 
혁명가와 그를 맞이하는 가족들 간의 긴장된 심리 상황이 날카롭게 포착되어 있다.

레핀은 초상화의 대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880년대부터 수많은 러시아 문화 엘리트들의 초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톨스토이, 이반 투르게네프(Ivan Turgenev), 고골(Nikolai Gogol) 등을 비롯한 문학가, 
무소륵스키, 림스키 코르사코프(Rimskii-Korsakov) 등의 음악가, 스타소프(Vladimir Stasov) 같은 예술 비평가, 
그밖에 왕족과 귀족, 우아한 상류사회 여성 등 문화계의 거의 모든 유명 인사들이 레핀의 모델이 되었다. 
레핀은 모델의 특징적인 포즈와 몸동작, 행동 등을 통해 각각의 인물이 지닌 독특한 개성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예리한 사색과 관조에 의거한 인물 내면의 심리 묘사에 탁월했다.

1894년 레핀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의 교수로 임명되어 
1907년 교수직에서 은퇴할 때까지 학생지도에 전념했다. 
1901년에는 러시아 국가 의회 100주년을 기념하여 대형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다. 
레핀의 마지막 대작이 된 <1901년 5월 7일 국가의회 100주년 기념회의>를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핀은 오른손 관절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왼손으로 그리려고 노력했지만 이전의 명성에 걸맞는 작품에는 미치지 못했다. 
레핀은 생애 말년을 핀란드의 쿠오칼라에서 보냈다. 
그리고 1930년 9월 29일 그곳에서 8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레핀이 거주하던 쿠오칼라 마을은 그의 예술적 업적을 기념하여 

1948년 레핀의 이름을 따 ‘레피노’로 개칭되었다.

 

Krestny Khod (Religious Procession) in Kursk Gubernia. 쿠르스크 지방의 십자가 행렬. 1883. 
by Ilya Repin. oil on canvas. 280 x 175 cm. Tretyakov Gallery Room 29

쿠르스크 구베르니아의 십자가 행렬 Religious Procession in Kursk Province (1880–1883년) 
​1880년에서 1883년 사이, 3년여에 걸쳐 완성된 이 이 작품은 쿠르스크 지역의 
코렌나야 수도원 (Korennaya Monastery)에 모셔진 신령한 기적의 성상
 '쿠르스크 성모상 (Our Lady of Kursk)'과 십자가를 들고 

거리 행진 행사를 펼치는 대규모 러시아 정교회 축제다. 
거지와 장애인과 치안 경찰과 군인들을 위시해 지역 유지들이 앞장서서 
그 뒤를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오며 대오를 이룬다.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 어떻게 술 취한 취객이 

성상을 들고 있느냐 하며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 그림은 평범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러시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십자가 행렬로, 

교회 안에 있는 이콘(성상화)이나 성물을 들고 행진을 하는 행사라고 한다.
 종교가 사람들에게 어떤 신념으로 자리잡을 때는 분명 인간의 귀천을 가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과 인간을 연결지어주는 인간이 개입하게 되면, 

이상하게도 계급에 따라 신의 사랑은 차별을 두게 된다. 


행렬에 참가한 사람들의 표정은 재미있다.
이콘을 들고 걷는 귀부인은  자부심에 차 있으며, 

화려한 복장의 성직자는 지루한 것처럼 보인다. 
두 명의 여인은 조심스레 성물 상자를 들고 걷고 있다. 
행렬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치안 담당자는 말을 타고 거만하게 가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채찍을 휘두르기까지 한다. 
지친 아이들은 동행하는 어른의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행렬에 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림의 왼쪽 하단, 그러나 화면에서 감상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그들이다.

 

쿠르스크 구베르니아의 종교 행렬 Religious Procession in Kursk Province, Detail (부분)

 

쿠르스크 구베르니아의 종교 행렬 Religious Procession in Kursk Province, Detail (부분)

 

쿠르스크 구베르니아의 종교 행렬 Religious Procession in Kursk Province, Detail (부분)

 

쿠르스크 구베르니아의 종교 행렬 Religious Procession in Kursk Province, Detail (부분)

 

쿠르스크 구베르니아의 종교 행렬 Religious Procession in Kursk Province, Detail (부분)

 

쿠르스크 구베르니아의 종교 행렬 Religious Procession in Kursk Province, Detail (부분)

 

쿠르스크 구베르니아의 종교 행렬 Religious Procession in Kursk Province, Detail (부분)

 

레핀은 원래 십자가 행렬을 위해 숲을 지나는 배경을 선택했다고 한다. 
르노아르의 <물랭 드라 갈레트의 무도회>(1876)에서 표현된 

일렁리는 햇빛의 효과를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핀은 참나무 숲 속의 햇빛 효과를 포기한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인상을 포기하고 

화창한 하늘 아래, 뽀얀 먼지 일어나는 흙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레핀이 얻은 효과는 무엇일까? 바로 사람들이다. 

 

The Reply of the Zaporozhian Cossacks to Sultan Mahmoud IV. 1880.
by Ilya Repin. oil on canvas. oil on canvas. 67 X 87 cm. Tretyakov Gallery Room 29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터키 술탄 메메드 4세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쓰는 자포로제 카자흐인의 회신(回信)'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4세가 카자크 족에게 항복을 권고하는 편지를 보내자, 
이에 대해 어마어마한 쌍욕이 담긴 답장을 보내서 복수했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묘사한 그림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말대로 세상에서 일리야 레핀만큼 사람의 삶을 잘 표현해서 그린 화가는 없는 것같다.
저 많은 사람들이 다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데 너무 익살스러우면서도 너무 진지하고...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편지 한 장 쓰면서 쓰러지고 난리가 났다. 

16세기 몽골로부터 독립한 러시아는 모스크바랑 키예프랑 이런 곳에서 
몽골이 살고 있던 시베리아로 제국을 넓혀갔다. 
남쪽으로도 영토를 넓혔는데, 이제 독립해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가던 때라 
아직 제대로 만들어진 체계가 없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이 그림 역시 레핀의 주특기인 굉장한 사실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권한을 등에 업고, 시베리아 등 각종 미개척지를 돌아다닌 자유분방한 민족답게
그들 얼굴 하나하나에 사실감이 넘친다.
그림의 배경인 조롱거리로 답장을 쓰는 현장답게 편지를 쓰는 서기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타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구도를 가진다.

가운데 탁자위에서 글을 쓰는 서기는 정작 이 중요한 현장에서 답장을 쓰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건만,
그의 모습은 안경쓴 샌님같은 모습에 복장도 시커먼 것이, 별반 중요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않게 한다.
작가가 신경써서 연출한 중요한 인물들은 탁자를 중심으로 배치된 코사크족 인물 개개인들임을 알 수 있겠다.
진지한 모습, 익살스런 모습, 박장대소하는 모습, 담배 피우는 모습 등 개개인의 얼굴은 참으로 다양하다.

주요한 얼굴 모습은 모욕적 답장을 씀으로 인해 비웃음이다.
근데 이렇게 많은 인물들 개개인의 웃는 얼굴을 자연스럽게 담아낸 그림을 보기는 쉽지 않다.
마치 실제 현장에서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이다.

또한 인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장비류도 사실주의가 묻어난다.
유목민족 특유의 야생적인 복장과 러시아의 투르크 양쪽의 영향을 받은 듯한 장비와 장비에 그려진 문양.
거칠게 살아왔음을 반증하는 멋드러진(?) 수염과 쭈글쭈글한 주름.
지금 쓰고 있는 답장이 여차하면 거대한 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음에도
아주 자연스럽게 하하하 웃고 있는 것이 이들의 와일드함과 저항정신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1676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메트 4세는 현재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던 
자포로제 코사크인들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다. 
자포로제 코사크는 코사크의 한 일파로 드네프르강 유역에 위치해 있었고, 
그동안 폴란드-리투아니아, 러시아 등과 함께 오스만 제국에 대항해서 여러 번 싸운 적이 있었다.

오스만 제국 술탄의 편지 내용인즉슨
"술탄이자, 무함마드의 아들, 해와 달의 형제, 하느님의 손자이자 총독으로,
마케도니아와 바빌론, 예루살렘, 상 이집트 왕국의 지배자, 황제 중의 황제, 군주 중의 군주,
패배할 줄 모르는 훌륭한 기사, 예수 그리스도의 묘를 지키는 단호한 파수꾼,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자,
무슬림들의 희망이자 기쁨, 그리스도교의 확고한 방어자로써 짐은 그대들 자포로제 코사크인들이 
어떠한 저항없이 자발적으로 짐에게 복종할 것과 무의미한 공격으로 짐의 심기를 건들지 않을 것을 명하노라"

쉽게 말해 "순순히 항복하고, 국경지대를 찝적거리지 말도록"이란 말을
아주 거창하게 타이르듯 내지른 편지다.
이에 대해 코사크인들은 콧방귀 뀌듯이 답장을 쓴다.
편지를 쓰는 현장이 박장대소의 장이 될 정도의 내용이 어떤 것이었느냐 하면,
10원짜리 대사가 난무하는 무지막지한 편지였다.

 -자포로제 코사크 형제들이 술탄에게
터키의 임프이자 똥같은 악마들의 친구이자 형제이며 루시퍼의 꼬붕인 술탄아. 
얼마나 병신같은 기사길래 니 후장에 붙은 고슴도치 한마리도 족치지 못하냐? 
악마의 똥같은 짬 찌끄레기야. 너 같은 개새끼는 절대로 기독교 형제들을 이기지 못할꺼다. 
우린 니네 좆만한 쫄따구들이 무섭지도 않고, 땅에서든 바다에서든 박살내서 니 애미를 따먹어 주마! 

너는 바빌론의 설걷이꾼, 마케도니아의 마부, 예루살렘의 양조자, 알렉산드리아에서 염소와 떡칠 새끼, 
이집트의 돼지치기, 아르메니아의 돼지새끼, 포돌리아의 도둑놈, 타타르의 창남, 카먀네트의 망나니, 
그리고 이 모든 세상에서 가장 골빈 놈이다. 
신 앞의 천치, 독사의 손자, 우리의 쥐가 난 좆 대가리, 돼지 주둥아리, 
당나귀 엉덩이에 도살장의 똥개이자 이교도의 대갈통이나 달고 있고 니 애미와 할 씨발새끼야!

이것이 너같은 좆만한 새끼에게 주는 우리 자포로제 형제들의 답장이다. 
너는 기독교의 돼지에게 먹이를 줄 정도도 안되거든? 
이제 끝을 맺는데, 우리는 달력 그딴거 안키워서 오늘이 몇 일인가 몰라. 
달은 하늘에 있는 것이고, 몇 년인가는 책에 적혀있고, 날짜는 니가 있는 동네와 똑같다. 
우리 똥꾸녕이나 쭈욱 빨아라!
-코사크의 수령 이반 시르코와 자포로제의 형제들-

어쨌든 이 편지를 보내고 나서도 메흐메트 4세는 별반 다른 군사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당시는 이미 다른지역과의 전쟁으로 너무 바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편지 자체가 코사크인들에게 한번 크게 패하고 나서 보낸 것이기에
다시 전투를 치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터키와 러시아가 전통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으르렁거린 역사적 사실의 한가운데에서
이 정도의 역작을 그려낸 일리야 레핀에게 박수를 보낸다.

3, 6m가 넘는 이 대형 그림은 2년 여에 걸쳐 완성된 대작이다.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4세 술탄 (재위 1648-1687)의 역사적인 장면을 재현한 그림 타블로이다. 
이 그림을 본 알렉산드르 3세는 감탄하면서 즉석에서 3만 5천 루블을 하사했다. 
이 금액은 러시아 황실 그림 역사상 가장 많은 액수의 그림 값이다. 
일리야 레핀의 그림들은 러시아의 생생한 역사 현장을 극명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 러시아 미술관과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국립 미술관을 장식하고 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Detail (부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Detail (부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Detail (부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Detail (부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Detail (부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Detail (부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Detail (부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Detail (부분)

 

Tsarevna Sophia Alexeevna in the Novodevitchy Convent. 1879. 

노보데비치 수녀원에 감금된 소피아 알렉세예브나 황녀. 

by Ilya Repin. oil on canvas. 145 x 202 cm. Tretyakov Gallery Room 29

이상적 군주란 어떤 사람일까. 
나라를 잘살게 만들고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애틋하게 살핀 왕을 
우리 역사에서 찾는다면 사람들은 단연 조선조의 세종을 꼽을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세종은 충무공과 더불어 흠결을 찾을 수 없는 신화적 존재이다. 
그에게는 ‘대왕’이란 칭호가 따라붙는다. 
‘대왕’이란 이름이 익숙한 군주로는 민족의 영웅 광개토대왕도 있다. 
그는 상세한 행적을 알기 힘든 고대사의 인물이지만, 한때 우리가 동북아시아를 
호령하였다는 것만으로도 이 좁은 땅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적 스케일을 확장시켜준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걸출한 이 두 군주의 업적들을 몽타주하여 러시아 역사에 대입했을 때 
로마노프 왕조의 제4대 차르 표트르 대제(재위 1682-1725)를 떠올리게 된다면 좀 무리가 있을까. 
‘대제’가 이룬 성과를 나열하자면 너무 길다. 
요컨대 군사·행정·산업·교육·종교 등 전 방위에 걸친 서구화 개혁을 통해, 유럽 변방의 이류 국가 
‘모스크바대공국’을 세계 열강 ‘제정러시아’로 환골탈태시킨 것이 바로 그다. 
역사를 만들어 온 주체는 한 사람의 군주가 아니라 민중이란 명제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한 나라의 역사가 이만큼 한 인물의 업적에 의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러시아의 거장 일리야 레핀은 1879년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소피아 알렉세예브나 공주>를 내놓았다. 
화가는 그로부터 약 180년 전 아름다운 노보제비치 수녀원 어느 방 안에서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다. 
탁자에 몸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는 여인은 표트르 대제의 이복 누나 소피아 공주이다. 
번쩍거리는 치장이 그녀의 높은 신분을 나타내고 있지만 어딘지 퇴락해 보인다. 
사자처럼 위풍당당한 모습과 부릅뜬 눈매가 사뭇 위협적이지만 어딘지 서글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지금 무려 아홉 해 동안 이 수도원에 갇혀 지내는 신세인 것이다. 
게다가 오른쪽 창밖에는 한 남자의 주검이 매달려 있다. 
심상찮은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소피아 알렉세브나(Sophia Alexeevna)의 전성시대 
표트르 대제의 부왕인 로마노프왕조 제2대 차르 알렉세이에게는 
두 명의 왕후와 그들이 낳은 많은 자녀들이 있었다. 
제3대 차르 표도르 2세는 알렉세이 사후에 장자로서 왕위를 계승하였지만 
1682년 스물 한 살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뜬다. 
따라서 후계자는 자연히 수많은 형제들 가운데에서 찾게 되었다. 
차르가 죽었을 때 같은 어머니 마리아 소생으로 여섯 남매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부왕의 후처 나탈리아가 낳은 이복동생 삼남매가 생존해 있었는데 표트르가 그 가운데 하나였다. 
왕후를 배출한 두 가문은 차르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대립한다. 
한쪽이 승리하는 순간 다른 쪽은 멸문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를 파국적 상황이었다.

여기서 사태는 일단 표트르에게 유리한 쪽으로 전개되었다. 
러시아정교회의 최고위자인 총대주교 요아킴이 각 계급의 대표들과 뜻을 모아 
표트르를 차르로 선포해 버린 것이다. 
차르 알렉세이의 첫 부인 마리아의 소생으로 16세의 이반이 있었지만 
병약하여 왕의 재목이 아니었고, 둘째 부인 나탈리아의 아들 표트르는 
아직 10살에 불과했지만 건강하고 군주로서의 자질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는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다. 
이반의 장성한 친누나 소피아 공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큰 야심을 가지고 있었던 소피아 공주의 외가 밀로슬라브스키(Miloslavsky) 가문은 
표트르의 외가 나리쉬킨(Naryshkin) 가문이 왕자 이반을 살해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린다. 
이로 인해 모스크바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스트렐치 근위대는 
표트르의 친척과 우호 세력 40여 명을 살해한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긴급히 모인 고위성직자와 정부 관계자들은 
타협책으로서 이반과 표트르를 공동 차르로 옹립한다. 
이처럼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표트르가 죽지 않고 차르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민심이 그에게 상당히 쏠려 있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공동 차르’는 허울뿐인 자리였다. 
실제 권력은 공식적으로 섭정이 된 소피아가 틀어쥐게 된다.

1698년 노보데비치 수녀원에 감금된지 일년 뒤의 소피아 알렉세에브나 황녀, 
그녀의 친위대가 처형당하고 시녀 전부가 고문을 당하고 있을 때를 묘사한 작품이다. 

그림 속에 나타나는 여성들은 크게 세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찬미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이다. 
아름다움과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자태, 

그 내면에 산재한 고고함이 뭇 사람들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경우다.
두 번째는 사랑하는 대상으로서의 여성이다. 
피카소의 그림이나 샤갈의 그림, 클림트의 그림 등을 보면 

사랑하는 직접적인 대상으로의 여성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세 번째는 의인화 된 여성이다. 
신의 대리인으로서, 문학 속 주인공으로서, 현실 속에 포치된 타자적 시각에 의한 여성이다. 
물론 이밖에도 여성은 여러가지 의미로서 그려진다.

그렇다면 그림 속 여자가 가장 고통스럽거나 정말스러울 때는 언제일까? 
그것은 어떠한 연유로 절대적 위치에서 강제로 벗어났을 때 느끼는 분노로 

이성을 조절하지 못할 때가 아닐까 싶다. 
장희빈이 그러했고 서태후가 그러했음만 보아도 이는 타당성이 있다​.

서양미술사에서 리얼리즘을 논할 때 거론되는 몇 안 되는 동유럽권 화가이자 
19세기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독보적인 존재인 일리야 레핀의 그림 

소피아 알렉 셰에브나 황녀 정말 무시무시한 표정이다.
무언가 증오에 찬 나머지 붉게 이글거리는 눈은 세상에 대한 분노를 읽어 내게 하고 
꽉 다문 입술은 백 마디 말 보다 강인하게 다가온다. 
자세는 매우 당당하고 심지어 패기마저 넘쳐 보인다. 덤빌테면 덤벼보라는 식이다. 
그러나 이 황녀가 처한 당시의 입장은 상당히 불안했다​.

황금빛 의상을 걸치고는 있지만 험악한 표정을 잔뜩 짓고 있는 이 여성은 

러시아 표트르 대제 (즉, 러시아 노마노프왕조 제 4대 황제)의 친누나이다. 
그런 그녀가 수도원에 감금되었다. 
원래는 표트르와 또 다른 동생 이반과 함께 1682년 러시아의 권력을 장악했으나 
표트르와의 동맹이 깨지면서 불행은 시작되었다.
소피아는 동생에게 대항하려다 실패하면서 결국 감금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일종의 쿠데타가 미수로 그친 셈이었다. 

쿠데타의 실패는 곧 동생의 지독한 앙갚음임을 의미했다​.

그림 뒷편을 보면 참수되어 목이 내걸린 병사를 볼 수 있다. 
황녀를 지켜주던 근위병이지만 이미 죽음에 이르렀다. 
대제는 이렇게 누나의 수족들을 눈 앞에서 하나씩 죽여 나갔고 
누나마저 서서히 죽음에 이르도록 평생 수도원에서 놓아주질 않았다​.
이를 기록하는 몸종 (그림 왼쪽 뒤)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듯 앉아 
조심스러운 표정을 보이며 당시의 상황에 어쩔줄 몰라한다. 

이는 진실에 관한 두려움이다. 
죽음에 이를 사람이나 이를 보는 사람이나 모두 불안정하긴 매한가지이다​.

이 그림은 권력이라는, 인간이 결코 벗지 못할 굴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한 때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절대 권력자였으나 

그녀의 현재는 덧없는 무상함이 감돌 뿐이다. 
또한 그녀의 미래는 대략 짐작해도 결코 밝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일리야 레핀은 이 그림을 통해 역사를 조명하면서도 
인간이 가야할 길이 결국 어디로 나 있는지를 일러주려 한다​.

 

Refusal of the Confession. 고해를 거절하다. 1879~1885. by Ilya Repin. 
oil on canvas. 58 x 48 cm. Tretyakov Gallery Room 29

죽음이 현실 앞에 놓여 있어도 자신의 신의를 버리지 않고 
조국을 위해 생을 다한 것임을 당당히 밝히는 혁명가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남루한 모습의 혁명가지만 결의에 찬 표정이 압권이다.

 

Dragon Fly. Portrait of Vera Repina, the Artist's Daughter. 1884. by Ilya Repin. 
oil on canvas. 84 x 111 cm. Tretyakov Gallery Room 29

 

Portrait of the Composer Anton Rubinstein. 작곡가 안톤 루빈스타인 초상화. 1881
by Ilya Rep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29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작곡가 및 지휘자 안톤 루빈스타인

 

Portrait of the Artist Vasily Surikov. 화가 바실리 수리코프 초상화. 1885. 
by Ilya Rep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29 

 

Portrait of an old woman. 1870. by Ilya Repin. 
oil on canvas.  87 x 111 cm. Tretyakov Gallery Room 29 

 

Portrait of Vera Repina, 1874. by Ilya Repin. 
oil on canvas. 60 x 75 cm. Tretyakov Gallery Room 29 

 

Portrait of Actress Pelageya Strepetova as Elizaveta.1881. by Ilya Rep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29

 

Hunchback 1. 1881. by Ilya Repin. 
oil on canvas.  53.5 x 64.5 cm. Tretyakov Gallery Room 29 

 <곱추소년 1> (Hunchback)

레핀의 <쿠르스크 구베르니아의 십자가 행렬 (Religious Procession in Kursk Province)>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행렬에 끼지 못하는 사람, 그 중에서도 곱추 소년이다. 
소년은 레핀이 가장 공을 들인 인물이었다. 
그는 절름발이 곱추소년을 위해 여러 장의 습작을 남겼는데, 다양한 표정을 연구한 흔적이 보인다. 
그 중에서 그는 슬픈 표정이 아니라 무표정한 듯 앞으로 열심히 나가는 소년의 모습을 선택했다. 
소년의 얼굴에는 행렬에 낀 사람들의 오만함도, 지루함도 없다.  

 

Portrait of V. E. Repin, the Artist's brother. 1867.  by Ilya Repin. 
oil on canvas. 68 x 86 cm. Tretyakov Gallery Room 29 

 

Portrait of the Actress Pelagey Strepetova. 1882. by Ilya Repin. 
oil on canvas. 50 x 61 cm. Tretyakov Gallery Room 29 

 

Portrait of the Artist Vasily Polenov. 1877. by Ilya Repin. 
oil on  canvas. 65 x 89 cm. Tretyakov Gallery Room 29 

 

Portrait of the Artist Ivan P. Pohitonov. 1882. by Ilya Repin. 
oil on canvas. 53.5 x 64.5 cm. Tretyakov Gallery Room 29 

 

Portrait of Yuriy Repin, the Artist's son. 1882. by Ilya Repin. 
oil on canvas. 55 x 110 cm. Tretyakov Gallery Room 29 

 

​Portrait of poet and slavophile Ivan Sergeyevich Aksakov. 1878. 
by Ilya Repin. oil on canvas. 76 x 97 cm. Tretyakov Gallery Room 29 

 

Putting a Propagandist Under Arrest. 1890~1892. 
by Ilya Repin. oil on canvas. 55 x 35 cm. Tretyakov Gallery Room 29 

 

Portrait of the Surgeon Nikolay Pirogov. 1881. by Ilya Repin. 
oil on canvas. 53 X 64 cm. Tretyakov Gallery Room 29 

 

Portrait of the Narratorb of the Folk Tales V. Tschegolionkov. 1879. 
by Ilya Rep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29 

 

Warrior XVII century. 1879. by Ilya Rep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29 

 

[영상] Tretyakov Gallery Room 29. 일리야 레핀 작품 전시실

 

Tretyakov Gallery Room 30. 일리야 레핀 작품 전시실

 

Ivan the Terrible and His Son Ivan on November 16, 1581. 
아들 이반 이바노비치를 죽인 뒤 오열하는 이반뇌제. 1581년 11월 16일', 1885. 

by Ilya Repin. oil on canvas. 254 x 199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이반 뇌제'라고도 불리우는 이반 4세는 

특유의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남다른 정치를 펼친 인물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대귀족들의 궁정 혁명과 전횡으로 

숱한 고초를 겪은 까닭에 의심이 많고 성품이 잔인했다. 
그의 어머니 옐레나 대공비는 그가 친정에 나서기 전 

권력 투쟁의 희생양으로 독살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그의 치세 동안 치위대는 그의 사촌 형제와 친척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다.

한때 중앙집권화를 위해 개혁을 단행하고 ‘타고난 예지와 뛰어난 언변 

그리고 평론가적인 재능을 지녔다'고 평가되기도 한 그였지만, 궁중의 어두운 유산인 

암투와 음모 때문에 광신적인 사람, 모든 일에 의심을 품는 기인이 되었다. 
이 최초의 공식 차르는 심지어 아들을 때려 죽이기까지 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날 아들의 처소에 들른 이반 뇌제는 

며느리인 황태자비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런데 며느리가 입은 옷이 매우 무례하고 음란해 보였다. 
진노한 뇌제는 갑자기 임신한 며느리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내가 지르는 비명에 놀란 황태자가 허겁지겁 현장으로 달려왔는데, 
그 모습을 본 뇌제는 더욱 분이 치밀어 쇠지팡이로 아들의 관자놀이를 내려쳤다. 
결국 그렇게 유일하게 믿던 아들을 저 세상으로 보낸 것이다. 

이반 4세가 자신의 황태자인 이반을 

지팡이로 폭행해서 죽인 장면을 상상해서 그린 작품이다. 
제목의 '1581년 11월 16일'은 이반 4세가 이 일을 저지른 날짜이다. 
이 그림을 그리기 전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 테러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일로 러시아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고 레핀도 예외가 아니었다.

 
레핀은 여기서 영감을 얻어서 이 이반 4세의 일화를 통해 

그 광기와 공포의 감정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반 4세의 모델은 시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어느 노인의 얼굴을 

레핀이 발견해서 따왔고, 황태자 이반의 모델은 당시 레핀이 매우 아꼈던 

작가인 프세블로드 가르쉰(Всеволод Гаршин)의 얼굴에서 따왔다고 하고 다른 설도 있다.

그런데 레핀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 그림은 

러시아에서 이반 4세를 재평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 이반 4세는 단순히 난폭한 폭군이란 평가만 받았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는 이반 4세를 대단히 역동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해서 '인간미'를 느끼게 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반 4세의 또다른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가 단순한 

폭군이 아닌 입체적인 면모를 가진 군주라는 재평가를 내리게 된 계기가 된 것.

이 그림은 살해 장면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해 

그림을 본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다. 
이반 뇌제의 모델로 레핀은 시인 겸 화가였던 그리고리 먀소예도프를, 
왕세자의 모델로는 작가 프세볼로드 가르신을 택했다고도 한다.

그 후 일어난 일들이 물론 모두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년 후 정신이 이상해진 가르신은 계단으로 떨어지면서 세상을 마감했다. 
계단에서 떨어질 때 그가 부딪힌 머리 부분은 불운한 그림에서 왕세자가 피를 흘리는 부분과 같았다.

 

아들 이반 이바노비치를 죽인 뒤 오열하는 이반뇌제 Detail (부분)

공포에 질린 이반과 아들 이반
잔인했지만 용맹하고 현명한 황제였는데 

한번은 이반 4세가 왕자의 집을 저녁에 방문했하고 한다. 
황제를 맞는 왕자비는 겉 옷을 한 벌만 입고 있었다. 
당시 풍습은 손님을 맞이할 때는 세 벌의 옷을 입어야 했는데 이를 수상히 여긴 황제는

며느리를 폭행하고 왕자가 이를 말렸고 격한 성격의 자제력이 없었던 이반 대제는 

언쟁을 하다가 뜻하지 않게 맏아들 이반을 죽이게 된다.

황제는 순간적으로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왕자의 관자노리를 내려쳤다. 
이 장면은 바로 머리를 후려 치고 난 그 다음 장면이다. 
그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아들의 머리를 가슴에 끌어안고 손으로 상처를 누르고 있으며, 
죽음을 앞둔 황자는 무력한 손으로 주단을 짚고 있다.

이렇듯 레핀은 이반 대제의 신경질적인 외모와 복잡한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아들을 죽인 자의 폭군의 비극을 여실히 폭로하였다. 
바로 그 순간 벌어진 사태를 바로잡고자 하는 희망으로 아들을 향해 몸을 던진다. 
레핀은 종종 인생에 있어서 극도로 긴장된 열정으로 인해 발생되는 비상한 사건들에 흥미를 보였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깨닫고 정신이 나간 아버지 이반 4세와 한 팔로는 아버지 어깨를 잡고 
한 팔로는 바닥에 팔을 기댄 아들 이반의 비극적인 모습이 펼쳐있다. 
새빨간 피가 스며 나오는 듯한 화면의 색채는 이 작품의 정서를 더욱 고양시켜준다. 
또한 이 작품 속에서 보이는 섬세한 심리, 조형적, 색채적인 뉘앙스에 대한 레핀의 붓놀림은 
이 비극적인 상황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켜준다.

극적 묘사에 탁월했던 레핀의 감성은 정말 최고이다. 
실제로 아들 이반은 며칠 후 세상을 떠나고 이반 4세가 죽고 나서 왕조는 바뀌고 만다. 
광기어린 폭군이 자신의 손으로 황태자를 죽였고, 이로 인해 사실상 왕조의 대가 끊기게 된다. 
폭군 사후 대혼란의 시대가 도래하자 찬탈자들은 남은 폭군의 아들을 암살하고, 
병약해서 후손을 생산할 수 없는 폭군의 다른 아들을 허수아비로 세웠다가 그가 죽자 왕국을 빼앗는다.
하지만  “폭군의 암살된 아들은 사실 도망쳤고, 다른 소년이 대신 살해된 것”이라는 소문을 통해 
가짜 왕자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민중의 지지를 얻고 정권을 얻었던 소설 같은 역사가 있다.

 

[영상] 아들을 죽인 미친 왕, 뇌제 이반 4세

 

Il'ia Efimovich Repin: They Did Not Expect Him. Unexpected Visitors. 1884~1888. 
by Ilya Repin. oil on canvas. 160.5 x 167.5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거실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여기는 그의 집이다. 

이 비쩍 마른 남자는 퀭한 눈으로 가족을 바라본다. 
모자를 든 손을 몸 안쪽으로 붙인 경직된 모습에서 우리는 그가 

지금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또 얼마나 위축되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한 노파가 그를 보고 엉거주춤 일어난다. 

놀란 모습이 역력하다. 이 노파는 그의 어머니다. 
거실 구석에서 피아노를 치다가 뒤를 돌아본 여인은 이 상황에 경악하는 모습이다. 

이 여인은 그의 아내다. 
테이블 한쪽 구석에서 어린 여자아이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경계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어쩌면 이 아이는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반면에 그 옆에 앉아 있는 소년의 표정은 한결 밝다. 
이 아이는 기쁜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본다. 

하녀로 보이는 여성은 문고리를 붙잡고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예기치 않았던 한 남자의 갑작스러운 출현. 그 긴장의 순간. 
창문에서 들어온 은은한 햇살이 이 가족과 축축한 실내를 감싼다.  
거실로 보이는 공간 좌측의 큰 창문과 

정면으로 열린 문 뒤쪽 작은 창문을 통해 밝은 빛이 들어온다.
빛으로 인해 그림의 전체적인 색조는 밝고 따뜻하고 부드럽다.
이렇게 채색함으로써 돌발 상황이지만 

이 순간이 기본적으로 기쁘고 행복하다는 걸 암시한다. 

​목에 스카프를 매고 낡고 긴 모직 코트를 걸친 초췌한 남자가 

한 손에 모자를 움켜쥐고 거실 안으로 들어온다.
지나치게 길어 구겨진 코트의 소매가 두 손목 아래를 덮었다. 
낡은 부츠와 다듬지 않은 턱수염, 

마른 얼굴은 그의 모습을 더욱 초췌해 보이게 만든다.
약간 머뭇거리며 서 있는 남자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확신하지 못하는지 눈빛에 불안한 기색이 스친다.

​의자에서 황급히 일어나 엉거주춤 서 있는 검은 옷의 노파는 

돌아온 남자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남자가 자신의 아들임을 바로 알아본다.
등을 돌리고 있어서 그녀의 얼굴 전체를 볼 순 없지만, 

지금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는 헤아리고 남는다.
그녀는 아들의 갑작스러운 귀환이 몰고 온 놀람과 흥분에 휩싸여 
떨리는 왼손을 의자로 가져가 몸을 의지하려고 하는 것 같다.
어머니는 곧 늙은 몸을 천천히 가누며 아들에게로 걸음을 옮길 것이다.

​그림 오른쪽 테이블에 두 아이가 앉아 있다.
어린 여자아이는 뜻밖의 남자의 등장에 어리둥절해 하고, 
또 겁을 먹은 듯 숙제를 하다 말고 낯선 방문자를 유심히 지켜본다.
이 아이는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아마 아이가 엄마 태중에 있을 때 아버지가 집을 떠났거나, 
아니면 너무 어릴 때 헤어져 그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불안감에 어깨를 움츠리고 사태를 파악하려고 애쓴다.
이 아이의 태도와는 아주 다르게 아이 오빠는 곧바로 반가움에 겨워 활짝 웃는다.
안으로 들어온 남자가 아버지임을 확인하자마자 소년의 두 눈에는 기쁨의 빛이 가득하다. 

​아이들 뒤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던 젊은 여인은 오래전 시베리아로 유배를 갔던 남편이 
불쑥 찾아오자 깜짝 놀라 급히 연주를 멈추고 몸을 돌려 그를 응시한다. 
그녀의 표정에는 지금의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가족들 중  아무도 그가 돌아오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남자 뒤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하녀로 보이는 인물이 거실 쪽 문을 열고 서 있다.
아마 남자에게 문을 열어준 사람이 이 하녀일 것이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문 손잡이를 잡고 있는데, 주인집 가족들이 집안으로 들어간 

낯선 남자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고 살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녀 뒤로 빼꼼히 얼굴만 보이고 있는 사람은 요리사로 생각된다. 
그녀는 단지 이 상황이 무얼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레핀은 그림의 주인공 격인 혁명가 아들과 그의 노모를 

세로줄 마루에서 출발해 하녀와 요리사, 열린 거실문을 통과해 

창문으로 이어지는 축선의 중심에서 좌우로 조금 벗어나게 배치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림을 보는 사람의 시선을 인물에 더 집중시키고, 
정서적인 공감의 강도를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노렸다. 


끝으로 이 그림의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그림 속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 표정과 눈빛이 보여주는 느낌일 것이다. 
레핀은 그가 만족할만한 인물들의 표정과 감정 표현을 얻기 위해 
주요 인물들을 네 번이나 고쳐 그렸다고 한다.

​그림을 통해서 레핀은 러시아의 혁명가들이 진리를 위해 몸 바친 

그리스도에 비견될 수 있다고 진술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대의(大義)가 옳고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혁명가들 역시 
가족들의 반응이 어떨까 걱정하며 서 있는 그림 속 남자처럼 결국 러시아 민중들의 
평가와 검증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오랜 유형(流刑)에서 어느날 갑자기 집에 나타난 혁명가.
유형지는 분명 춥고 황량한 머나먼 시베리아였을 것이다. 

레핀의 그림을 통해 그는 어떤 출신 배경을 가진 인물이었을까를 추정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피아노를 포함한 집안의 집기와 거실 내부의 인테리어, 하녀와 요리사를 부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걸 보면 그는 최상류층의 귀족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류 이상의 사회경제 기반을 가진 계급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그는 인민주의주의자, 공화주의자, 혹은 사회주의자로 상당한 지식과 

문화적 소양을 지닌 인텔리겐차였을 거라는 단서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러시아의 역사를 보면 초기의 혁명운동인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으로부터 시작해서 나로드니키들, 
그리고 이후의 직업 혁명가들은 대부분 귀족이나 혹은 중류 이상의 출신 성분을 가진 
인텔리겐차 (러시아의 특수한 지식계급 집단)들이 많이 분포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그림은 혁명가가 먼 유배지에서 가족에게 돌아온 광경, 그 한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다. 
시대적 정황을 감안하면 이 남자는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으로 널리 알려진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반체제 농민운동과 관련된 혁명가일 것이다. 
그는 체포되어 아주 오랜 시간 유배지에서 고생한 후 집에 돌아왔다. 

벽에 걸려 있는 초상화는 작품에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나는 타라스 셰브첸코(Tarasa Shevchenka, 1814~1861)의 초상화이고, 
다른 하나는 니콜라이 네크라소프(Nikolay Nekrasov, 1821~1878)의 초상화다. 
두 사람 모두 러시아 차르 체제 하에서 고통받던 농민을 위한 계몽 운동에 헌신했던 시인이다. 
특히 셰브첸코는 10년 간의 유배 생활 끝에 사면되어 집에 돌아왔으나 
유배 생활에서 얻은 중병으로 인해 외로움 속에서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이 두 시인으로 대표되는 혁명가를 위한 일종의 헌사가 될 것이다. 

벽면에 걸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두 초상화 사이 가운데 있는 그림은  ‘골고다(Golgotha)’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다가 두 초상화 사이에 존재하게 함으로써 
레핀은 러시아 혁명가들의 투쟁과 고통을 순교자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이 가족이 이 그림들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혁명가는 가족과 떨어져 있었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자의 갑작스러운 출현으로 긴장된 그 순간에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은 
이 가족과 러시아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란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못 박히심’의 순간을 묘사한 그림이다. 
화가는 러시아 혁명가들의 투쟁과 고난에 종교적 순교의 의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레핀은 1885, 1887, 1888년 3차례에 걸쳐 방으로 들어오는 주인공의 얼굴이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이 그림에 심혈을 기우려 이동파 전시회에 출품하였다.

직접적인 사회 상황 반영과 간접적인 심리 표현이 돋보이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에서
레핀은 그 다음을 철저히 감상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우리가 이 그림에서 마주치는 상황은 오랫동안 부재하던 가족 누군가의 급작스러운 출현과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으로 인해 아직 긴장이 깨지지 않은 상태일 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 그림의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가족들은 기다리지 않았지만 갑작스레 돌아온 아버지 또는 언니를 
가슴으로 맞이할 준비로 곧 부산해질 것이다.
딸 아이는 재빨리 가방과 코트를 받아들 것이고, 막내 아들은 편안한 자리를 권할 것이고, 
부인은 따뜻한 차를 준비할 것이다.
물론 당분간, 아니 어쩌면 영원히 언니와 아버지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할 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의 근거는 이들이 정치적, 사회적 신념 체계를 초월해 
하나가 될 수 있는 가족이라는 위대한 사실에 기인한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Detail (부분)

예기치 않은 방문객’은 레핀의 심리 묘사가 화폭에 그대로 펼쳐진 작품이다. 
1883년 알렉산더 3세가 즉위하면서 정치적인 이유로 유배를 갔던 사람들에 대해 사면령이 내려졌다. 
니콜라이 체르니세프스키가 21년 만에 시베리아에서 집에 온 것을 맞는 
식구들의 표정과 시선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긴장감이 다 드러나 있다.

유형지에 고생을 한 주인공은 창백하고 야윈 얼굴이지만 눈빛은 아직 살아 있다. 
그를 유형지로 몰아넣은 이념이 아직도 그의 눈빛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문을 열어 준 하녀의 표정은 놀람과 황당한 표정이 함께 떠 있다.

농노 제도의 폐지 이후, 러시아 농민의 삶은 이미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이에 진취적인 성향의 교사, 의사, 점원, 노동자가 앞장서서 러시아의 독자적인 농민 자치 공동체를 기초로,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사회주의로 이행이 가능하다고 믿고 '브 나로드(v narod)'운동을 펼쳤다.
그림 속의 아버지 또한 브 나로드 운동에 참여했다는 죄목으로 유배당했고, 
어느 날 예고 없이 집으로 불쑥 들어온 것이다.

초췌한 몰골로 집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온 이 사람을 누가 이 집안의 가장으로 생각했겠는가.
가족들은 마치 낯선 이방인처럼 자신의 아들을, 자신의 남편을,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맞이하고 있다.
두려움과 조심스러움이 치열하게 교차하고, 경계심과 놀라움이 분주히 섞이는 지점에서
우리도 서서히 상황을 공감하게 된다. 
어떤 예술 장르가 이처럼 단시간에 이와 같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Detail (부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들을 보고 늙은 어머니는 벌떡 몸을 일으키고 있고 
피아노 앞의 아내는 아직 들어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이 안 된 듯한 표정이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Detail (부분)

공부를 하다가 낯 선 사람 그러나 처음 보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린 딸의 표정은 차라리 공포에 가깝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밝은 표정의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눈빛이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Detail (부분)

거실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여기는 그의 집이다. 

이 비쩍 마른 남자는 퀭한 눈으로 가족을 바라본다. 
모자를 든 손을 몸 안쪽으로 붙인 경직된 모습에서 우리는 

그가 지금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또 얼마나 위축되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The Reply of the Zaporozhian Cossacks to Sultan Mahmoud IV (study). 1880.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by Ilya Repin. oil on canvas. 67 x 87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터키 술탄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쓰는 자포로제의 카자흐인들'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4세가 카자크 족에게 항복을 권고하는 편지를 보내자, 
이에 대해 어마어마한 쌍욕이 담긴 답장을 보내서 복수했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묘사한 그림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말대로 세상에서 일리야 레핀만큼 사람의 삶을 잘 표현해서 그린 화가는 없는 것같다.
저 많은 사람들이 다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데 너무 익살스러우면서도 너무 진지하고...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편지 한 장 쓰면서 쓰러지고 난리가 났다. 

16세기 몽골로부터 독립한 러시아는 모스크바랑 키예프랑 이런 곳에서 
몽골이 살고 있던 시베리아로 제국을 넓혀갔다. 
남쪽으로도 영토를 넓혔는데, 이제 독립해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가던 때라 
아직 제대로 만들어진 체계가 없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이 그림 역시 레핀의 주특기인 굉장한 사실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권한을 등에 업고, 시베리아 등 각종 미개척지를 돌아다닌 

자유분방한 민족답게 그들 얼굴 하나하나에 사실감이 넘친다.
그림의 배경인 조롱거리로 답장을 쓰는 현장답게 편지를 쓰는 서기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타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구도를 가진다.

가운데 탁자위에서 글을 쓰는 서기는 정작 이 중요한 현장에서 답장을 쓰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건만, 그의 모습은 안경쓴 샌님같은 모습에 복장도 시커먼 것이, 

별반 중요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않게 한다.
작가가 신경써서 연출한 중요한 인물들은 탁자를 중심으로 배치된 

코사크족 인물 개개인들임을 알 수 있겠다.
진지한 모습, 익살스런 모습, 박장대소하는 모습, 

담배 피우는 모습 등 개개인의 얼굴은 참으로 다양하다.

주요한 얼굴 모습은 모욕적 답장을 씀으로 인해 비웃음이다.
근데 이렇게 많은 인물들 개개인의 웃는 얼굴을 

자연스럽게 담아낸 그림을 보기는 쉽지 않다.
마치 실제 현장에서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이다.
또한 인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장비류도 사실주의가 묻어난다.
유목민족 특유의 야생적인 복장과 러시아의 투르크 

양쪽의 영향을 받은 듯한 장비와 장비에 그려진 문양.
거칠게 살아왔음을 반증하는 멋드러진(?) 수염과 쭈글쭈글한 주름.

지금 쓰고 있는 답장이 여차하면 거대한 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음에도 아주 자연스럽게 하하하 웃고 있는 것이 

이들의 와일드함과 저항정신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1676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메트 4세는 현재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던 
자포로제 코사크인들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다. 
자포로제 코사크는 코사크의 한 일파로 드네프르강 유역에 위치해 있었고, 
그동안 폴란드-리투아니아, 러시아 등과 함께 오스만 제국에 대항해서 여러 번 싸운 적이 있었다.

오스만 제국 술탄의 편지 내용인즉슨
"술탄이자, 무함마드의 아들, 해와 달의 형제, 하느님의 손자이자 총독으로,
마케도니아와 바빌론, 예루살렘, 상 이집트 왕국의 지배자, 황제 중의 황제, 군주 중의 군주,
패배할 줄 모르는 훌륭한 기사, 예수 그리스도의 묘를 지키는 단호한 파수꾼,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자,
무슬림들의 희망이자 기쁨, 그리스도교의 확고한 방어자로써 짐은 그대들 자포로제 코사크인들이 
어떠한 저항없이 자발적으로 짐에게 복종할 것과 무의미한 공격으로 짐의 심기를 건들지 않을 것을 명하노라"

쉽게 말해 "순순히 항복하고, 국경지대를 찝적거리지 말도록"이란 말을
아주 거창하게 타이르듯 내지른 편지다.
이에 대해 코사크인들은 콧방귀 뀌듯이 답장을 쓴다.
편지를 쓰는 현장이 박장대소의 장이 될 정도의 내용이 어떤 것이었느냐 하면,
10원짜리 대사가 난무하는 무지막지한 편지였다.

-자포로제 코사크 형제들이 술탄에게
터키의 임프이자 똥같은 악마들의 친구이자 형제이며 루시퍼의 꼬붕인 술탄아. 
얼마나 병신같은 기사길래 니 후장에 붙은 고슴도치 한마리도 족치지 못하냐? 
악마의 똥같은 짬 찌끄레기야. 너 같은 개새끼는 절대로 기독교 형제들을 이기지 못할꺼다. 
우린 니네 좆만한 쫄따구들이 무섭지도 않고, 땅에서든 바다에서든 박살내서 니 애미를 따먹어 주마! 

너는 바빌론의 설걷이꾼, 마케도니아의 마부, 예루살렘의 양조자, 알렉산드리아에서 염소와 떡칠 새끼, 
이집트의 돼지치기, 아르메니아의 돼지새끼, 포돌리아의 도둑놈, 타타르의 창남, 카먀네트의 망나니, 
그리고 이 모든 세상에서 가장 골빈 놈이다. 
신 앞의 천치, 독사의 손자, 우리의 쥐가 난 좆 대가리, 돼지 주둥아리, 
당나귀 엉덩이에 도살장의 똥개이자 이교도의 대갈통이나 달고 있고 니 애미와 할 씨발새끼야!

이것이 너같은 좆만한 새끼에게 주는 우리 자포로제 형제들의 답장이다. 
너는 기독교의 돼지에게 먹이를 줄 정도도 안되거든? 
이제 끝을 맺는데, 우리는 달력 그딴거 안키워서 오늘이 몇 일인가 몰라. 
달은 하늘에 있는 것이고, 몇 년인가는 책에 적혀있고, 날짜는 니가 있는 동네와 똑같다. 
우리 똥꾸녕이나 쭈욱 빨아라!
-코사크의 수령 이반 시르코와 자포로제의 형제들-

어쨌든 이 편지를 보내고 나서도 메흐메트 4세는 별반 다른 군사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당시는 이미 다른지역과의 전쟁으로 너무 바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편지 자체가 코사크인들에게 한번 크게 패하고 나서 보낸 것이기에
다시 전투를 치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터키와 러시아가 전통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으르렁거린 역사적 사실의 한가운데에서
이 정도의 역작을 그려낸 일리야 레핀에게 박수를 보낸다.

 

'터키 술탄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쓰는 자포로제의 카자흐인들' Detail (부분)

 

'터키 술탄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쓰는 자포로제의 카자흐인들' Detail (부분)

 

'터키 술탄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쓰는 자포로제의 카자흐인들' Detail (부분)

 

'터키 술탄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쓰는 자포로제의 카자흐인들' Detail (부분)

 

'터키 술탄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쓰는 자포로제의 카자흐인들' Detail (부분)

 

'터키 술탄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쓰는 자포로제의 카자흐인들' Detail (부분)

 

'터키 술탄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쓰는 자포로제의 카자흐인들' Detail (부분)

 

'터키 술탄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쓰는 자포로제의 카자흐인들' Detail (부분)

 

'터키 술탄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쓰는 자포로제의 카자흐인들' Detail (부분)

 

Aleksander III receiving rural district elders in the yard of Petrovsky Palace in Moscow. 
모스크바의 페트롬스키궁에서 농촌지역원로들을 맞이하는 알렉산르드 3세. 1885~1886. 
by Ilya Repin. oil on canvas. 58 x 48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writer Ivan Sergeyevich Turgenev (1818-1883). 1874, by Ilya Repin. 
oil on canvas. 116.5 x 89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작가 투르게네프 (Ivan Sergeyevich Turgenev 1818-1883)의 초상
예술아카데미 학생이었던 레핀과 투르게네프의 만남은 예술아카데미의 작업실이었고
이때 레핀은 '볼가강의 배끄는 인부들'을 막 완성한 때였다
이들은 레핀이 아카데미 연수생으로 파리에 체류할 때 더욱 가까워 졌는데 물론 초상화를
그리면서 오래 면대하며 이야기와 토론을 하는동안 가까워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늘진 얼굴에서 오히려 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동자와 반대편 눈동자의 생동감, 
투박한 듯 섬세하게 그려진 손과 고상한 무늬의 의자, 대상의 성격을 하나하나 펼쳐내어 
꾹 꾹 눌러 놓은 듯 한 배경의 붓자국은 투르게네프의 낭만성과 소탈한 성격을 잘 나타내며 
레핀이 이 초상화를 성공적으로 완성하였음을 보여준다.

관객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 한 표정과 대 문호의 존재감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이 초상화는 
투르게네프가 파리에 체류하던 시기에 러시아의 거상이자 예술후원가인 트레티야코프의 주문으로 
당시 역시 파리에 있던 일리야 레핀에 의해 완성되었다. 

 

Portrait of the Composer Modest Musorgsky. 1881. by Ilya Repin. 
oil on canvas. 57 X 69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러시아의 음악가 "무소르그스키'의 초상화. 술에 취한 모습을 그렸다는데... 
레핀은 당대 러시아 예술가들의 초상화-인물화를 많이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Portrait of Leo Tolstoy. 레오 톨스토이 초상화. 1887. by Ilya Repin. 
oil on canvas. 88 x 124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Pavel Tretyakov, Founder of the Tretyakov Gallery. 1883. 
트레티야코프 갤러리 창립자 파벨 트레티야코프 초상화. 
by Ilya Repin. oil on canvas. 76 x 98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the Author Alexey Pisemsky. 1880. by Ilya Rep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the Composer Mikhail Glinka. 1887. by Ilya Repin. 
oil on canvas. 117 x 98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Autumn Bouquet. Portrait of Vera Repina. 1892. by Ilya Repin. 
oil on board. 65 x 111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Baroness Varvara Ikskul von Hildenbandt. 1889. by Ilya Repin. 
oil on canvas. 71 x 169.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the Military Engineer Andrey Delvig. 1882. by Ilya Repin. 
oil on canvas. 108 X 86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painter and sculptor Mikhail Osipovich Mikeshin. 1888.
by Ilya Repin. oil on canvas. 87 x 108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the Artist D.N. Kardovskiy. 1896~1897. by Ilya Repin. 
oil on canvas. 71.5 x 79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Nadezhda Repina, the Artist's Daughter. 1900. by Ilya Repin. 
oil on canvas. 67 x 94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the Author Leonid Andreev. 1904. by Ilya Repin. 
oil on canvas. 66.5 x 76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the Poet Afanasy Fet. 1882. by Ilya Repin. 
oil on canvas. 82 x 64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V. Repin, musician, brother of the artist. 1876. by Ilya Rep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Doctor Constantine Franzevich Yanitsky. 1865. by Ilya Rep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the Artist Grigory Myasoedov. 1886. by Ilya Rep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the physiologist Ivan Petrovich Pavlov. 1924. by Ilya Repin. 
oil on canvas. 48 X 54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Tatiana Rechinskay. 1882. by Ilya Repin. 
oil on canvas. 77 X 57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오똑한 콧날, 살짝 벌린 아이 같은 입술과는 대조적으로 
살며시 내려뜬 그녀의 깊은 눈이 우리를 궁금하게 한다.  
모스크바의 부유한 상공업자이며 예술 후원가였던 S. I. 마몬토프의 조카인 
타티야나 마몬토바를 그린 이 작품은 러시아의 국민화가이자 
인물화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일리야 레핀의 드문 여성 초상화이다.

거장의 솜씨답게 18살 아름다운 소녀의 풍부한 감수성을 붓질 하나하나에 살려낸 화면에서는 
그녀의 오랜 고민과 조심스러운 희망이 엿보이고 단정하고 품위 있는 옷차림에 
곱슬머리를 단단히 올려 묶은 현재의 그녀가 꿈꾸듯 표현되어 있다.

예술사가 그라바르는 “구성의 참신함과 놀라운 기법, 섬세한 붓터치로 인해 
레핀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작품의 하나”라고 평했다. 
카키의 의자덮개와 벽의 색감이 정말 부드럽게 잘 어울린다.
우울한 모습의 표정 표현이 리얼하다.

 

Evening party. 1881. by Ilya Repin. oil on canvas. 186 x 116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members of State Council Ivan Logginovich Goremykin and 

Nikolai Nikolayevich Gerard. Study (습작). 1903. 
by Ilya Repin. oil on canvas. 45 x 63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Sergey Vitte. 1903. by Ilya Repin. 
oil on canvas. 60 X 84 cm.​ Tretyakov Gallery Room 30

 

Portrait of V. K. Menk. 1884. by Ilya Rep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0

 

Duel between Onegin and Lenski. 1897. by Ilya Repi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0

 

[영상] Tretyakov Gallery Room 30. 일리야 레핀 작품 전시실

 

 

 

 

19세기 중 후반 그림 <이동파 시대> 

 

Tretyakov Gallery Room 28. 바실리 수리코프 작품 전시실

러시아 역사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하게 되는 화가는 바실리 수리코프다. 
수리코프의 역사화는 유장하고 장엄한 분위기와 다소 음울하고 사색적인 색조가 특징이다. 
그래서 누가 봐도 '러시아적'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런 인상은 고정관념이나 편견에서 비롯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수리코프의 장엄함과 음울함에는 분명 저 대륙의 광활함과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가 담겨 있다.

다른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러시아적 풍미가 충만하다. 
이 작품은 자신의 신앙과 신념을 위해 어떤 핍박도 마다하지 않은 용감한 귀족 여성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건초가 깔린 수레 위에 쇠사슬로 묶인 모로조바. 
그녀가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비웃는 사람도 있지만, 안타까 워하고 슬퍼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지체 높은 여인이 무슨 이유로 이렇게 추운 눈밭을 가르며 무서운 형벌의 운명을 지게 되었을까?

바실리 수리코프는 '이동파' 일원으로 레핀과 함께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주로 대형 크기의 러시아 역사와 관련된 주제를 즐겨 그렸으며,  
사실주의 역사화의 거장으로 칭송 받았다.  
1877년부터 모스크바에서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하였다 

​시베리아의 카자흐 가정에서 태어난 수리코프는 조상들의 파란만 장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 일찍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이주민' 혹은 '일당 노동자'라는 의미를 지닌 '카자흐'는 무거운 세금과  
강제노역을 피해 변경으로 달아난 농노와 그 자손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들은 품팔이, 수렵, 약탈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시베리아를 정복하는 등  
용맹성과 강인한 개척정신을 보여주었다.  
수리코프는 이런 조상들의 삶을 의식하고 자신의 예술 속에서  
민중적이고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가치를 중시 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

 

Tretyakov Gallery Room 28. 바실리 수리코프 작품 전시실

이 작품은 그리스 정교의 구교와 신교의 분쟁을 테마로 민중적 주제를 제시한 그림이다.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구교(분리교) 즉, 러시아 구세력을 상징하는 
모로조바 부인을 중심으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그림의 중심에 있다. 
그들은 선택 받지 못한 계층으로 삶의 고통, 소외감을 상징한다. 
그리고, 모델의 대부분이 여성들이다. 
굴곡있는 러시아의 힘든 역사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러시아 여인들의 굳은 의지가 그림에 절절히 배어 나온다. 
이 작품은 여성 심리 묘사가 탁월한 작품으로 손꼽히며 레핀과 함께 
19세기 러시아 미술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끌어 올린 대표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림은 17세기 러시아의 종교 대분열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총대주교였던 니콘이 교회 개혁과 교권 확대를 위해 러시아 교회의 전례를 
그리스 식으로 개편하려 하자 전통을 중시하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들고 일어났다. 
후자는 옛 의식을 고수하는 점에서 구교도로 불렸는데, 이들 구교도 뒤에는 일부 대귀족이 있었다. 
이들은 구교도 운동을 통해 구습을 지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차르 알렉세이의 중앙집권적 권력을 약화시키기를 원했다.

반면 차르는 니콘의 종교개혁에 기대어 전 동방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를 원했다. 
양쪽 다 열정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한 까닭에 그 충돌은 요란했으며, 
결국 차르는 구교도들을 파문하고 화형에 처했다. 
구교도의 중추인 대주교 아바쿰(1621-1682)도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이와 같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2만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분신자살하는 등 
구교도들은 격렬히 저항했으며, 끝내 짜르도 이들을 완전히 '박멸'할 수 없었다. 
이들의 신앙은 면면히 이어져 18세기에는 그 권리를 다시 인정받았고, 
1905년에는 이들에게 종교적 관용을 허락하는 칙령이 발표되었다.

그림의 여주인공 모로조바는 종교 대분열시 구교도 편에 섰던 대귀족 
프로 코피 소코부닌의 딸이자 역시 특권 귀족인 모로조프의 부인이다. 
여동생 우르소바와 더불어 옛 신앙을 수호하려고 개혁에 완강히 저항했으나 
끝내 보로프스크 수도원 감옥에 유폐되어 삶을 마감했다. 
모로조바는 구교 의 지도자 아바쿰과 왕래하며 그의 가족을 재정적으로 도와 차르의 분노를 샀다.

화가는 이 순교자를 세상의 어떤 징벌로도 제어할 수 없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묘사했다. 
하늘을 향해 치켜뜬 그녀의 눈은 자신의 행동이 신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확신으로 가득하다. 
아니, 확신이라기보다 거의 광기에 가까운 빛을 발한다. 
수레 곁에서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쫓아가는 동생 우르소바는 신앙적 열정 속에서도 초탈한 듯한 인상을 보여 준다.

겉으로 드러난 빛깔은 어떠하든 이 두 사람의 신앙 목표는 같다. 
이들의 신앙 앞에 무릎 꿇고 가호를 빌거나 동정의 눈물을 흘리는 
모스크바 거리의 사람들은 절대 권력에 억눌린 민중의 한을 대변한다. 
지독한 탄압 속에서도 구교도의 신앙이 농민과 상인, 장인 등 민중의 마음을 사고 
그들의 연대 의식과 저항 정신과 만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포착된 그림이다. 

그림은 분리파의 거물이었던 대귀족 모로조바가 어느 겨울날 먼 귀양길을 떠나는 장면이다.  
사슬에 묶인 채 짚으로 바닥을 깐 초라한 썰매에 몸을 맡긴 모로조바의 깡마르고 창백한 얼굴.  
그는 오른손을 들어 두 개의 손가락을 허공에 내지르며 저항의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화면 우측에는 분리파들이 안타깝고 슬픈 얼굴로 그를 배웅하고 있고,  
뒤쪽으로는 개혁파들이 유쾌한 얼굴로 패배자를 조롱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 대립의 패배자는 분리파 뿐이었을까.  
니콘은 러시아정교회를 과도한 민족주의로부터 구하고 교회의 일체성을 강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투쟁의 과정에서 파문한 수많은 인재들을 상실함으로써 
교회의 역량을 현저히 약화시키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우위의 환상을 버리지 못한 니콘은 차르 알렉세이와 대립하다가  
1667년 주교회의에서 파면되고 수도원에 유폐되어,  
1681년 아바쿰보다 오히려 한 해 먼저 세상을 마감하게 된다. 
그 후 18세기 표트르 대제가 실행한 사회전반의 개혁에서 교회는 공식적으로  
국가의 한 기관으로 전락하고 정교회의 수장은 차르의 신하로 완전히 복속하게 된다.  
이처럼 러시아 정교회는 두 번에 걸친 내부분열을 거치면서  
그 화려했던 권력을 세속 군주에게 반납하고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Self-Portrait. 1879. 바실리 수리코프 자화상. by Vasili Surikov.
Oil on canvas . 80 X 135 cm. Tretyakov Gallery Room 28.

바실리 수리코프 (Vasili Ivanovich Surikov)는 1848년 시베리아의 카자흐 출생,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하였다. 
졸업 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베로네제, 티치아노, 틴토레토 등의 그림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그들의 색채 기법을 받아들였다.

1870년대의 러시아 제실(帝室)아카데미에 대항하여 회화의 리얼리즘을 지향한 진보적 그룹인 
'이동파(移動派)'에 들어가 레핀(Ilya Repin, 1844~1930)과 함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주로 러시아 역사에서 소재를 찾았으며, 대표작에 <예르마크의 시베리아 정복>
<베료조프에서의 멘시코프><스테판 라진>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파웰 트레치야코프가 구입을 했고, 
그의 후원으로 수리코프는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87년 사랑하던 아내가 우울증으로 자살을 하자 수리코프는 
그림을 포기하고 종교에 빠져들었으며 고향인 시베리아로 떠났다. 
오랜 친구들과 가족들은 그를 포기하지 않았고, 
몇 년 뒤 그는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1916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Boyarynya Morozova 대귀족부인 모로조바. 1887. by Vasili Surikov. 
oil on canvas 304 x 587.5 cm. Tretyakov Gallery Room 28.

모로조바(Feodosia Prokopiyevna Morozova ,1632–1675)는 귀족(okolnichi)인 
프로코피 소고브닌(Prokopy Feodorovich Sokovnin)의 딸로 열일곱 살에 
역시 귀족(boyar)인 모르조프(Gleb Morozov)과 결혼을 하였다. 
남편이 1662년에 사망하여 일찍 홀로 되었으나 그녀의 지위는 여전했다고  한다. 
전례 개편 과정에서 구교도를 이끌었던 대주교 아바쿰 (Avvakum)이 모로조바의 정교회 신부였다. 
모로조바는 계급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구교도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여동생 우르소바(Evdokia Urusova)도 구교도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모르조바는 차르 알렉세이 1세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1671년에 체포되어 보로프스키의 성 파프누티우스 수도원(St. Paphnutius Monastery, Borovsk)에 
감금되었고 그곳에서 1675년 1월에 일생을 마친다. 
이런 그녀의 일생은 구교도들에게 순교자의 삶이었을 것이다. 

레핀과 더불어 러시아 이동파의 대표적인 역사화가인 수리코프는 개편된 전례에 반대하고 
전통을 지키기 위해 격렬한 저항을 벌인 대귀족부인 구교도 모로조바가 끌려가는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을 보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건에 대한 세력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그녀의 주장이 뭔지가 모스크바 길거리의 설경과 함께 펼쳐져 있다.

<대귀족 부인 모로조바>는 이 반대파의 저항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모로조바는 차르에 맞서다 수도원에 유폐돼 삶을 마감한 역사적 인물이다.  
“화가는 이 순교자를 세상의 어떤 징벌로도 제어할 수 없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묘사했다. 

하늘을 향해 치켜뜬 그의 눈은 자신의 행동이 신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확신으로 가득하다.”  
쇠사슬에 묶인 이 귀족 여성 주위에서 민중들이 눈물을 흘린다.  
구교도와 민중이 내적으로 결속돼 있음을 보여주는 이 역사화는  
당대 현실을 향한 정치적 발언임이 분명하다.  -고명섭 한겨레신문 기자

까마귀처럼 새까만 옷, 창백한 낯색에 광기 어린 표정, 
이 강렬한 인상의 여인은 대귀족 부인 모로조바다. 
17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기를 이루는 사건은  
바로 총주교 니콘과 사제 아바쿰의 대결이었다. 
교회에서 미신적 요소를 제거해 근대화한다는 니콘 주교의 개혁은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그것은 교회 권력보다 교묘한 왕권강화정책이었다. 

사제 아바쿰은 교회 개혁에 반대하고 기존의 전근대적 종교의식을 옹호했다.  
사제 아바쿰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소박한 종교생활을 하던 기층 민중들이었다.  
그들은 황제보다도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개혁이 단행되었고 아바쿰을 지지하던 구교도들은 탄압받기 시작한다.  
대귀족 부인 모로조바는 구교를 신봉하는 사람이었다. 

수리코프가 그리고자 한 것은 그녀의 순교 자체가 아니라 그녀의 순교를 둘러싼 여러 반응들이다.  
그림 왼쪽에 이빨 빠진 하아버지와 그 옆의 남자는 노골적으로 비웃는다.  
가운데 고개를 숙이고 어쩔줄 몰라하는 젊은 여인은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이고,  
그 옆의 여인도 고개를 숙여 숭고한 순교에 깊이 경배한다.  
마차 옆에 걸어가는 붉은 색을 입은 여인은 그녀의 동생인 우루소바 공작 부인이다.  
언니를 따라서 먼 길을 함께 거어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들은 그저 재밌다고 키득거린다. 

모로조바 부인을 싣고 가는 썰매는 물건을 실어 나르기 위한 것이다.  
비록 그녀에게 동감하더라도 검은 옷의 사제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다.  
두려움 없이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은 화면 오른편의 걸인이다.  
추운 겨울 맨발에 어깨의 맨살까지 드러난 참혹한 모습이지만 목에 걸린 사슬로 보아 고행승이다.  
오므라든 발가락은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를 실감나게 한다. 

수리코프의 <대귀족 부인 모로조바>는 장대한 서사성과 더불어 놀라운 장식성을 가지고 있어서  
베누아는 카펫의 그림 같다고 평했다.  
수리코프는 사실적인 장면 묘사를 위해 우르소바 부인의 진주 장식 모자,  
노부인이 걸친 금실로 수놓은 숄과 외투, 17세기의 의상과 장신구, 건물의 외관 등을 아주 섬세하게 재현해 냈다. 
화려한 러시아의 전통 의상은 흰 눈과 어울려 하나의 합창이 되었다. 
다양한 색채를 화면에 구사하되 하나의 톤으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Young lady with his arms folded(Study to Boyarynya Morozova), 1885. 
by Vasili Ivanovich Surikov, oil on canvas. 46 x 35.5 cm. Tretyakov Gallery Room 17.

바실리 수리코프의 “대귀족부인 모로조바” 연습 작품
이 그림은 크기가 304 x 587.5 cm나 되는 대작이다. 
그림을 몇 개의 작품으로 나눠놓아도 될 정도로 생생하다. 
실제로 수리코프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수많은 부분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바실리 수리코프의 “대귀족부인 모로조바” 연습 작품 
실제로 수리코프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수많은 부분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Young lady with violet overcoat. oil on canvas. sketch and study. 습작

 

Young lady with blue fur coat. 1887. oil on canvas. sketch and study. 습작

 

Boyarynya Morozova, 대귀족부인 모로조바. Detail (부분 1)

그림의 이해를 돕기 위해 대귀족부인 모로조바 그림을 여러 개로 나누어 보았다. 
하나하나가 별도의 작품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그림의 주인공인 '대귀족부인 모로조바' 이다. 그녀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다. 
쇠사슬에 묶여 있지만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손은 두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오늘 차르의 손에 죽는 한이 있어도 나는 이전처럼 두 손가락으로 기도하겠다"는 결의가 보인다.

 

Boyarynya Morozova, Detail (부분 2)

모로조바의 여동생인 우르소바(Evdokia Urusova)는 수레 옆에서 
기도하는 모습으로 언니를 따라가고 있다. 
그녀의 눈빛을 보면 종교적 믿음과 삶을 초월한 듯한 인상을 준다.

 

Boyarynya Morozova, Detail (부분 3)

거지같은 모습을 한 수도승이다. 
한 겨울인데 헤진 옷을 입고 쇠사슬로 연결된 십자가를 걸고 있다. 
이 수도승 또한 손가락 두 개를 들고서 순교의 결의를 보이고 있다.

그림의 오른 편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모로조바와 같은 구교도이거나 
그녀의 행동에 공감하는 사람들이다. 
민중들의 눈물을 동해서 구교도와 민중이 내적으로 결속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Boyarynya Morozova, Detail (부분 4)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에서 정복이라고 하면 알렉산더와 칭기즈 칸을 떠올리지만 
21세기까지 “영토”의 의미로 정복을 완성한 나라는 러시아다.
레핀의 그림에 아들을 때려죽였다고 등장하는 이반 4세 바실리예비치 
(Иван IV Васильевич, 1530-1584)는 보통 그가 폭정을 펼쳤다고 해서 
이반 그로즈니 (Ива́н Гро́зный,Ivan the Terrible) 이반 뇌제(雷帝)라고 한다. 
러시아는 당시 1582년에는 시베리아 정복을 시작으로 동방 진출을 도모했고, 
1588년에는 발트 해 연안까지 진출하려다 패전하기도 했다. 

이반 4세의 류리크 왕조는 러시아 통지세력인 자신들에게 로마제국의 정통성을 부여하고자 
카이사르(Caesar, 케사르, 시저)를 본 따 차르(tsar)라는 호칭을 처음 사용하여 
차르의 시대를 열었지만 1598년에 표도르 1세가 사망하고 막을 내리게 된다.

1613년 이반 4세의 황후의 집안인 로마노프(Romanov) 가의 
미하일 표도로비치 로마노프가 미하일 1세 차르로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차르의 전제 정치라고 하면 떠올리는 로마노프 왕조(Romanov dynasty)가 이들이다. 

로마노프 왕조는 지배구조가 혼란스럽고 영토가 좁았던 모스크바 차르국의 후반 시대 즉
"1613년 – 1721년 루스 차르국 시대"와 표트르 1세 (표트르 대제)에 의해 
서구화 정책과 영토 확장으로 건국된 “러시아 제국 시대(1721년 – 1917년)”로 구분한다. 
이 과정에서 15세기만 해도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나라가 
1894년까지 영토 확장을 거듭하여 시베리아를 정복하고 
태평양까지 진출하여 오늘날의 러시아 영토가 형성되었다. 

한마디로 러시아는 약 300여 년 동안 내부의 권력투쟁과 암투를 벌이며 
끊임없이 주변 국가와 민족들과 전쟁을 벌이며 영토를 확장한 나라이다.

 

Boyarynya Morozova, Detail (부분 5)

수리코프의 “대귀족부인 모로조바”는 로마노프 왕조의 2대 황제인 알렉세이 1세 
(Aleksey I Mikhailovich Romanov, 1629-1676, 재위: 1645-1676) 시기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알렉세이 1세 시기에 큰 사건 몇 개를 꼽자면 1649년에 농민들의 이동권을 박탈하여 
농민들은 땅과 지주에게 예속시키고 완전한 농노로 만들었다. 
그리고 1650년대 말부터 우크라이나를 편입하기 위하여 
폴란드와 발트 해 연안의 지배권을 놓고 스웨덴과의 전쟁을 벌였다. 


러시아 정부의 재정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러시아 정부는 
재정 위기를 해결할 목적으로 소금세를 인상하고 담배 유통을 확대하였다. 
그것도 부족하여 은화 대신 동전을 유통시켜 통화량이 증가하면서,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다. 
당연히 민중의 삶은 피폐해져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가장 유명한 반란이 
바로 1670년대에 코사크의 농민지도자 스텐카 라진(Stenka Razin)의 봉기이다.

오늘 소개하는 “대귀족부인 모로조바”의 직접적 배경은 러시아인들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러시아 정교회의 전례수정에 대한 갈등이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러시아 정교의 주도권을 누가 가질 것인가의 문제가 있었다. 
러시아 정교에 대한 영향력 강화는 차르의 중압 집권적 권력을 강화하는 일이었다.

이미 이반 뇌제(雷帝)때부터 그리스 정교가 러시아로 오면서 나타난 
번역의 오류를 고쳐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있어 왔다. 
1649년에는 동방정교회 예루살렘 총대주교가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러시아의 전례에 이단적 요소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여기에 새롭게 확장된 남부 슬라브 지방의 우크라이나인들 등을 교화시키기 위해 
단일한 올바른 전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명분도 충분했다. 


이런 시기인 1652년 알렉세이 1세와 교분이 깊었던 노브고로드 대주교 
니콘 (Nikon, 1605–81)이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사람들을 그리스로 보내 그리스 전례들을 확인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1653~1655년에 걸쳐 전례 수정 작업을 벌이고, 
1655년에 종교회의를 열거 전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Boyarynya Morozova, Detail (부분 6)

당시 개정된 내용은 상당히 많지만 대략적으로 요약하면 성호를 두 손가락으로 긋던 것을 
세 손가락으로 긋게 하고, 예수의 철자를 Ісусъ에서 Іисусъ로 바꾸고, 
할렐루야도 두 번 외치던 것을 세 번 외치게 하였다. 
그리고 태양의 이동방향에 따라 교회 주변을 도는 예배의식을 도입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 동안은 전례 개정에 동의하고, 실제로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대주교 아바쿰 (Avvakum, Petrovich, 1621~1682) 등이 대대적으로 반발하였다. 
반대파들은 너무 급격한 변화로 러시아 전통 방식을 버리고 
그리스 식을 대대적으로 도입한 것에 반발하였다.

전통을 중시하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반기를 들었고 
차르의 권력 강화에 반대하는 귀족 계급들도 여기에 동조하였다. 
농민과 상공인 지대의 사람들에게는 구교파 운동이 농노제와 
차르 지방관들의 횡포에 대한 저항의 형태로 생각되었다. 
결국 전례 수정을 둘러싼 갈등은 신교도 중심의 차르 지지 세력과 
구교도를 중심으로 한 일부 귀족과 농민들의 싸움으로 확장되었다. 
차르는 결국 반대파를 파문하고 주동자를 화형에 처했다. 
구교도의 일부는 볼가 강을 건너가 숲 속에 종교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했다. 
차르의 정부군은 구교도들의 수도원과 공동체를 수년간 포위 공격했고, 
구교도들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분신자살로 격렬히 저항했다. 
이 갈등은 러시아 정부가 구교들의 권리를 인정한 18세기까지 이어졌고, 
감정의 골은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될 때까지 지속되었다고 한다.

대격돌의 중심에 섰던 두 종교지도자의 마지막은 모두 비참했다. 
니콘은 한때 차르 알렉세이 1세와 함께 대주권자(Great Sovereign)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차르의 버림을 받아 1658년 총대주교직에서 밀려났다. 
그리고 알렉세이 1세는 1666년 종교 회의를 열어 공석이 된 모스크바 총대주교 자리에 
새 인물을 앉히고, 군주의 권력이 교회보다 강하다는 것을 공인받았다. 
그리고 니콘은 추방되고, 유폐되었다가 알렉세이 1세 사후에 모스크바로 돌아오지만 길에서 죽었다. 
구교도들을 이끌었던 아바쿰은 시베리아로 유배를 갔다가 
겨우 모스크바로 둘아 왔지만 1682년에 화형 당했다.

 

Boyarynya Morozova, Detail (부분 7)

그림의 오른 편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조바가 받는 고통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철모르는 아이들도 이 모습에 즐거워하고 있다.

 

Boyarynya Morozova, Detail (부분 8)

모로조바(Feodosia Prokopiyevna Morozova ,1632–1675)는 귀족(okolnichi)인 
프로코피 소고브닌(Prokopy Feodorovich Sokovnin)의 딸로 열일곱 살에 역시 
귀족(boyar)인 모르조프(Gleb Morozov)과 결혼을 하였다. 
남편이 1662년에 사망하여 일찍 홀로 되었으나 그녀의 지위는 여전했다고 한다. 
전례 개편 과정에서 구교도를 이끌었던 대주교 아바쿰 (Avvakum)이 모로조바의 정교회 신부였다. 
모로조바는 계급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구교도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여동생 우르소바(Evdokia Urusova)도 구교도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모로조바는 차르 알렉세이 1세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1671년에 체포되어 보로프스키의 성 파프누티우스 수도원
(St. Paphnutius Monastery, Borovsk)에 감금되었고 그곳에서 1675년 1월에 일생을 마친다. 
이런 그녀의 일생은 구교도들에게 순교자의 삶이었을 것이다.
 
레핀과 더불어 러시아 이동파의 대표적인 역사화가인 수리코프는 개편된 전례에 반대하고 

전통을 지키기 위해 격렬한 저항을 벌인 대귀족부인 구교도 모로조바가 끌려가는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을 보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건에 대한 세력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그녀의 주장이 뭔지가 모스크바 길거리의 설경과 함께 펼쳐져 있다.

 

Boyarynya Morozova, Detail (부분 9)

반대파의 고통에 즐거워하고는 모습. 
우리나라에도 극히 일부 노인들이 이런 행위를 한다.

<대귀족 부인 모로조바>는 반대파의 저항을 극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역사화는 또한 수리코프가 살던 시대에 대한 발언임이 분명하다. 
차르의 전제 정치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민중들의 각성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민주주의자들의 주장과 
러시아에 있어서 민주를 지향하는 예술로써 이동파의 열망이 들어있는 그림이기도 하다.

 

Boyarynya Morozova, Detail (부분 10)

레핀과 더불어 러시아 역사화가의 양대산맥인 수리코프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17세기 러시아 니콘의 종교 개혁시, 귀족 모로조프의 부인이던 모로조바는  
새로이 개편된 전례에 반대하고 원래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격렬한 저항을 벌인다.  
결국 수도원에 유폐되어 생을 마감한 그녀는 여전히 러시아 국민들에게는 성녀처럼 추앙되고 있다. 

그 현장을 생동감있게 그려낸 수리코프의 그림을 통해 좌우로 대칭되는 사람들의 행동과 표정,  
그 가운데를 모로조바가 쇠사슬에 묶여 무언가를 격렬히 호소하며 끌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모스크바의 겨울 길거리의 모습을 훌륭하게 묘사해 더욱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Boyarynya Morozova, Detail (부분 11)

이 작품의 역사적 배경을 이루는 것은 17세기 러시아 정교의 대분열이다.  
당시 총대주교였던 니콘이 교권을 확장하려 러시아 교회 전례를 뒤바꾸자  
전통을 중시하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반기를 들었다.  
교권 확장은 러시아 정교의 우두머리인 차르의 중압집권적 권력을 강화하는 일이기도 했다. 

반대파에는 차르의 권력 강화에 반대하는 귀족 계급이 포함돼 있었다.  
차르 중심의 신교도와 귀족 중심의 구교도는 끝까지 맞섰다.  
차르는 결국 반대파를 파문하고 주동자를 화형에 처했다.  
2만명의 구교도가 분신자살로 격렬히 저항했다.  
구교도의 반차르 저항 정신은 이후 수백년 동안 도도히 흐를 반역의 저류가 됐다. 

 

Boyarynya Morozova, Detail (부분 12)

주인공 모로조바는 차르에 맞서다 수도원에 유폐돼 삶을 마감한 역사적 인물이다.  
“화가는 이 순교자를 세상의 어떤 징벌로도 제어할 수 없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묘사했다. 
하늘을 향해 치켜뜬 그의 눈은 자신의 행동이 신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확신으로 가득하다.”  
쇠사슬에 묶인 이 귀족 여성 주위에서 민중들이 눈물을 흘린다.  
구교도와 민중이 내적으로 결속돼 있음을 보여주는 이 역사화는  
당대 현실을 향한 정치적 발언임이 분명하다. 

까마귀처럼 새까만 옷, 창백한 낯색에 광기 어린 표정, 
이 강렬한 인상의 여인은 대귀족 부인 모로조바다. 
17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기를 이루는 사건은  
바로 총주교 니콘과 사제 아바쿰의 대결이었다. 
교회에서 미신적 요소를 제거해 근대화한다는 니콘 주교의 개혁은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그것은 교회 권력보다 교묘한 왕권강화정책이었다. 

 

Boyarynya Morozova, Detail (부분 13)

사제 아바쿰은 교회 개혁에 반대하고 기존의 전근대적 종교의식을 옹호했다.  
사제 아바쿰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소박한 종교생활을 하던 기층 민중들이었다.  
그들은 황제보다도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개혁이 단행되었고 아바쿰을 지지하던 구교도들은 탄압받기 시작한다.  
대귀족 부인 모로조바는 구교를 신봉하는 사람이었다. 

수리코프가 그리고자 한 것은 그녀의 순교 자체가 아니라 그녀의 순교를 둘러싼 여러 반응들이다.  
그림 왼쪽에 이빨 빠진 하아버지와 그 옆의 남자는 노골적으로 비웃는다.  
가운데 고개를 숙이고 어쩔줄 몰라하는 젊은 여인은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이고,  
그 옆의 여인도 고개를 숙여 숭고한 순교에 깊이 경배한다.  
마차 옆에 걸어가는 붉은 색을 입은 여인은 그녀의 동생인 우루소바 공작 부인이다.  
언니를 따라서 먼 길을 함께 거어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들은 그저 재밌다고 키득거린다. 

 

Boyarynya Morozova, Detail (부분 14)

모로조바 부인을 싣고 가는 썰매는 물건을 실어 나르기 위한 것이다.  
비록 그녀에게 동감하더라도 검은 옷의 사제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다.  
두려움 없이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은 화면 오른편의 걸인이다.  
추운 겨울 맨발에 어깨의 맨살까지 드러난 참혹한 모습이지만 목에 걸린 사슬로 보아 고행승이다.  
오므라든 발가락은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를 실감나게 한다. 

수리코프의「대귀족 부인 모로조바」는 장대한 서사성과 더불어 

놀라운 장식성을 가지고 있어서 베누아는 카펫의 그림 같다고 평했다.  
수리코프는 사실적인 장면 묘사를 위해 우르소바 부인의 진주 장식 모자,  
노부인이 걸친 금실로 수놓은 숄과 외투, 17세기의 의상과 장신구, 

건물의 외관 등을 아주 섬세하게 재현해 냈다. 
화려한 러시아의 전통 의상은 흰 눈과 어울려 하나의 합창이 되었다. 
다양한 색채를 화면에 구사하되 하나의 톤으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The old woman with a patterned headscarf. 1886. by Vasili Surikov. 
oil on canvas. sketch and study. 습작. 36 x 43.7 cm. Tretyakov Gallery Room 28

 

Head of Boyarynya Morozova. 1886. by Vasili Surikov. Series: Boyarynya Morozova. 

sketch and study 습작.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28

 

Wanderer. 1885. by Vasili Surikov. sketch and study 습작. 
watercolor. paper. Tretyakov Gallery Room 28

 

Morning of the Strelets’ Execution. 친위대 병사 처형의 날 아침. 1881. 
by Vasili Surikov. oil on canvas. 379 x 218 cm. Tretyakov Gallery Room 28 

<친위대 병사 처형의 날 아침> 
바실리 수리코프의 첫 역사화 대작인 <친위대 병사 처형의 날 아침>은 

죽음을 눈앞에 둔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수리코프의 첫 번째 대작으로 표트르 대제(1672~1725) 시대의 친위병 반란을 소재하고 있다. 
표트르 대제는 권력을 잡자 여러 개혁을 추진하였고, 그 일환으로 친위병들을 정규군으로 대체하였다. 
그러자 정규군으로 편입되지 못한 기존의 친위병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표트르 대제의 누나 소피아 공주는 왕위에 오르기 위해 그들을 이용하려 하지만, 
반란은 실패로 끝이 났고, 이들은 잔혹하게 진압 당했다. 
결국 소피아 공주는 1704년 47세로 죽을 때까지 노보데비치 사원에 위폐 당했고, 
봉기에 가담했던 친위병들은 색출되어 처형당했다.

1698년 최초의 친위병 공개 처형이 있었는데, 표트르 대제는 직접 5명의 친위병의 머리를 베었다. 
그리고 그 날 57명이 처형당했다. 그리고 6개월 동안 1182명이 처형당했다. 
그 후 10년 간 반란의 여파로 처형이 계속되었고, 그 일로 사형당한 이가 2000명에 달했다

수리코프의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실존 인물들을 모델로 하고 있다. 
검은 수염의 친위병은 화가의 외삼촌인 스테판 페도로비치 토르고쉰이었고, 
여인들은 화가의 고향인 시베리아의 아낙네들이며, 친위병 노인은 시베리아 유형수였고, 
붉은 수염의 친위병은 고향의 묘지기를 모델로 하고 있다.

그림 속 수레는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그곳에서 보고 그렸다고 한다. 
성 바실리 사원을 배경으로 붉은 광장에 결박당한 친위병들이 처형을 기다리고 있다. 
이른 아침의 푸르스름한 전경 속에서 사형수들의 흰 셔츠가 더 두르러지게 보인다.  
여인의 절망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들의 죽음과 마딱드린 노파의 고통이 전해집니다. 
사형을 앞두고 있는 마지막 몇 분의 시간은 처연하기만 하다.

그림의 배경을 러시아 모스크바의 심장'붉은 광장'이다. 
표트르 대제가 강력한 개혁 정책을 펼치던 당시, 구조 조정 당한 
황제의 총병(스트렐치, 이반 뇌제 시절 창설된 사격부대)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 반란은 순식간에 제압되고 2000명도 넘는 총병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그림은 바로 그 처형 장면이다. 
그림의 속 뜻은 신구 세력의 갈등, 소통하지 않는 황실 세력과 

민중과의 갈등을 빗대 표현한 것이라 한다.

 

Morning of the Strelets’ Execution. 친위대 병사 처형의 날 아침. Detail (부분)

 

Menshikov in Berezovo. 베레조보의 멘쉬코프. 1883. by Vasili Surikov. 
oil on canvas. 204 x 169 cm. Tretyakov Gallery Room 28

멘쉬코프 (Menshikov 1673-1729)는 군인이자 행정가로 

미천한 신분에서 당대 최고의 실력자로 올랐던 인물. 
표트르 1세 사후 그의 왕비 카테리나를 통치자로 세우고 승승장구했고, 
그 후에는 어린 표트르 2세를 왕위에 앉히고 섭정을 꾀했으나 귀족들의 반격으로 실각.  
부와 권력을 모두 잃고 베레조보에서 사망했다.  

이 그림은 몰락한 멘쉬코프와 가족을 그린 것이다.

표트르 대제의 가장 충실한 심복이며 권력 2인자였던 멘시코프는 
대제 사후에 실각하게 되고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진다. 
그림은 시베리아로 유배된 권력자, 권세가 다한 권력자의 고독을 그린것이다. 
커다란 주먹을 불끈 쥐고 미래를 다짐하는 멘시코프지만 이미 되돌리기에는 늦어버린 감이 있다. 
모든 것이 다 허무한 것임을 색바랜 갈색 톤의 색채가 대변해 준다. 


다만 아버지의 신세와 함께 시베리아에서 혹독한 삶을 살아야 하는 
딸들의 청춘만이 안타까울 뿐이다. 
풍요롭던 귀족의 삶에서 하루 아침에 조락한 그녀들의 삶에 병마저 찾아 온 것인지 
검은 옷을 입은 셋째 딸은 병색이 완연하다. 참으로 부질없는 과거의 부귀와 영화다.

수리코프의 역사화로 두 번째 작품이다.
수리코프의 첫 역사화 대작인 <총기병 처형의 아침>이 표트르 대제 시대를 강타했던 
‘신구(新舊) 러시아의 충돌’이 빚은 비극을 다루었다면, 

두 번째 작품인 <베료조프의 멘쉬코프>는 표트르 대제의 개혁 선봉에 섰던 

한 권력자의 몰락을 통해 본 ‘전제권력의 은총과 징벌의 변덕스러운 충돌’을 보여주었으며, 
세 번째 작품인 <귀족부인 모로조바>는 17세기 러시아 종교분열이라는 ‘신구교(新舊敎) 충돌’을 다루었다. 

수리코프의 초기 작품들이 포착하고 있는 일련의 충돌 지점들은 
수리코프의 역사적 사유 안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초기 삼부작이 서로 상이한 시공간 – ‘17세기 후반 모스크바 붉은 광장’, ‘18세기 초반 시베리아의 베료조프 마을’, 
‘17세기 후반 모스크바의 파프누티예프-보롭스키 수도원 가는 길’ – 을 각각 보여주고 있지만,
수리코프의 역사적 사유의 전개는 첫 작품인 <친위대 병사 처형의 날 아침>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쉐코토프(Н. Щекотов)는 <베료조프의 멘쉬코프>를 “수리코프의 표트르 대제에 관한 전반적인 사유의 지맥 중 하나”
라고 보았는데, 쉐코토프의 이러한 주장을 수리코프 작품 전체로 확대할 수 있다고 본다. 

 

Tsarevna's visit of nunnery. 황녀의 수녀원 방문. 1912. by Vasili Surik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28

제목은 황녀의 수녀원 방문이지만 유배되어 온 황녀이다. 
뒷쪽에서 수근거리면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보인다. 
황녀는 유배되어서 그런지 멍하니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19세기까지는 이처럼 사실적인 그림이 많았지만  20세기초가 되면서부터 급격하게 러시아 미술은 바뀌게 된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사진기술이 발달하면서 더이상 사물과 그대로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어진 것이겠다. 
그래서 아방가드로라고 하는 추상화가 대표적인 화풍으로 자리잡게 된다.

 

The Apostle Paul explains the tenets of faith in the presence of King Agrippa, 
his sister Berenice, and the proconsul Festus 1875. by Vasili Surikov. 
oil on canvas. 142 x 218.5 cm. Tretyakov Gallery Room 28

사도 바울이 아그리파왕 앞과 그의 자매 베르니케와 

총독 페니투스 앞에서 믿음의 실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그리파는 바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짧은 시간에 나를 설득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오.’” (사도행전 26:28)


바울은 주후 58년에 헤롯 아그리파 2세와 그의 누이 베르니케가 
카이사레아에 있는 로마 총독 포르키우스 페스투스를 방문하였다. 
총독 페스투스의 초대를 받은 그들은 
‘아주 뽐내는 태도로 사령관들과 그 도시의 저명한 사람들과 함께 공청실에 들어갔’다. 
페스투스의 명령으로 그리스도인 사도 바울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불려 들어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추종자는 어떻게 해서 

총독 페스투스의 재판석 앞에 서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25:13-23)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 하더라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일러 가로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사도행전 25:30-33)

 

Portrait of Olga Surikova, the artist's daughter. 1888. by Vasili Surikov. 
oil on canvas. 80 x 135 cm. Tretyakov Gallery Room 28

 

Strelets with cap. 1879. by Vasili Surikov. sketch and study 습작. oil on canvas. 

 

Winter in Moscow. 1885. by Vasili Surik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28

 

Portrait of T. K. Domozhilova. 1891. by Vasili Surik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28

 

Portrait of L. T. Matorina. Cossack woman. 1892. by Vasili Surikov.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28

 

Portrait of A. I. Yemelyanova.  née Schreider. 1909. by Vasili Surikov. 
oil on canvas. 37.5 X 43.5 cm. Tretyakov Gallery Room 28

 

Portrait of doctor A. D. Yesersky. 1910. by Vasili Surikov. 
oil on canvas. 102 X 62 cm. Tretyakov Gallery Room 28

 

[영상] Tretyakov Gallery Room 28. 바실리 수리코프 작품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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