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는 성정이 곱고 성실한 사람이다. 지나칠 만큼 꼼꼼하고 세심하여 의정활동에서도 품성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그가 발언에 나서면 국무위원들과 정부 인사들이 긴장하고, 기자들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여야 동료 의원들도 그의 식견과 학식에 경의를 표하였다. 신한국당 의원들은 강경 재야출신으로 강성발언이나 일삼을 줄 알고 잔뜩 경계하다가 지극히 합리적인 언행에 오히려 경애심을 갖게 되었다.
김 부총재는 ‘마지막 재야’출신으로 과격할 것이란 선입견과는 달리 뛰어난 정책대안 제시 능력으로 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는 초선의원이다. (주석 4)
김근태는 정권교체로 여ㆍ야가 바뀐 이후 처음 맞은 1998년 국정 감사에서 ‘의회발전 시민봉사단’ 및 피감기관이 선정한 재정경제위 최우수의원으로 선정되었다. 여당이면서도 야당의원보다 더욱 철저하고, 공정하게 국정을 감사한 것이 높이 평가된 것이다.
김근태는 제15대 국회 전반기 2년은 통일외무위원회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당시는 야당 의원이었다.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었으나 끈기와 노력으로 공부하여 상임위의 가장 비중 있는 의원으로 활약하면서 동료 의원들과 출입 기자들로부터 ‘베스트의원’에 선정되었다. 2년 동안 재경위의 많은 대정부질의 중에서 정책 관련 몇 가지를 소개한다.
김근태 -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정신대 문제에 대해서 좀 확인하겠습니다. 김영삼 대통령께서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 진실규명을 해야 된다는 말씀의 취지를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일본의 일부 식자들이나 여론이 한국에서 돈을 달라고 그러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호도하고자 하는 공세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강조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강조의 언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난 일본제국주의 치하에서 당시의 일본공권력에 의해서 강제로 연행된 이른바 정신대위안부는 명백히 일본 제국주의국가의 국가범죄다, 하는 인식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고 김 대통령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확인해서 답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이것은 국가의 범죄이기 때문에 국가가 배상해야 되지만 국가의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앞의 취지가 법적으로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 그러니까 국가배상권이 소멸됐다는 것인지, 국가배상권이 우리에게 있기는 하지만 국가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으로서의 결단인지 이 점을 답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국제법학자들의 일부는 이것은 대통령의 권한 밖의 일이다, 또는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국제법 학자들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외무부의 업무현황보고에 나온 대로 UN인권소위 권고에 의하면 이것이 국가범죄이고 또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에 대한 배상을 하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아까 차관께서 말씀하신 대로 개인적 차원에서의 배상 이것은 권리가 살아있는 것이고 정당한 것이다 라는 의견을 우리 외무부 또한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통일외무위원회 제180회, 1996년 7월 23일 속기록)
사진은 김용한 시민기자.
김근태 ㅡ 많은 위원들이 이런 배경 아래에서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독도문제에 대해서 사실은 저는 자주 상임위원회에서 거론하고 싶지 않습니다. 과정에서 여러가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지만 다만 외무부 쪽에서 좀 주의를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입니다. 법리적으로나 실효적 지배에 있어서나 정치적으로 의문의 여지가 없고 따라서 일본이 자기의 영토임을 주장해 왔다. (조어대)와 달리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저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김영삼 대통령이 지난 시기에 선거를 의식하면서 독도에 군함을 파견하고 비행기를 동원한 것은 참으로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일본) 자민당 쪽에서 총선의 공약을 거는 유발 효과를 가져왔고 자민당 단독정권을 형성을 해서 이것이 참으로 우려할 방향으로 갈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오늘 이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에서 아시아 실업인들과 유럽의 실업인들에게 질문한 결과 유럽의 실업인들은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알고 있는 것이 66%인가로 제가 보았던 것 같고, 동남아시아 실업인들도 55%나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것이 국제적으로 다른 지역의 국민들이나 주민들이 우리의 주장과 객관적인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는 것에 대해서 뭔가 대책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잘 떠오르지 않는데 이것을 정면으로 제기하는 것이 꼭 좋은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런 것을 방치할 수도 없고 한데 이 부분에 대해서 혹시 차관께서 좋은 방안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근태가 학생운동, 노동운동, 청년운동, 재야운동을 통해 추구해온 일관된 가치는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이루는 일이었다. 그리고 정치개혁을 통해 인권이 보장되고, 노동자들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서민들의 생계가 보장되어야만, 이를 통해 평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1997년 12월의 대선을 앞두고 김근태는 어느 때보다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김영삼 정권의 정치ㆍ정책 실패로 국가경제가 위기에 직면해 있고, 중소상공인들과 서민생계가 파탄지경에 이르러 구원투수가 바로 김대중 후보라고 판단하였다. 김근태는 국민회의 대통령선거 수도권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김근태는 대통령선거전에서 김대중의 당선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국회의원, 국민회의 부총재의 직위에서뿐만 아니라, 민주화운동의 리더로서 최선을 하였다. 의정활동은 제쳐두더라도 지방유세, 언론상대 토론회 등 가능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권력에 대한 야심에서가 아니라 정권교체는 시대적 당위이고 사명이라고 인식한 때문이다.
더 이상 분단ㆍ냉전ㆍ군부독재의 잔재 세력이 권력을 독식하면서 민주주의를 짓밟고, 민족사를 오염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김근태의 솔직한 심경이고 염원이었다. 그래서 대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지난날 깨끗하고 꿋꿋하게 살아온 행적이 많은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었다. 이것은 대선에서 표로 연결되었을 터였다.
1997년 12월 18일 실시된 제15대 대선에서 국민회의는 승리했다. 김대중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당초 이회창 후보가 집권여당의 프레미엄을 업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의 승세를 잡았으나, 두 아들의 병역문제 등이 불거지고, 김영삼 정부의 경제실정으로 인한 IMF 사태가 일어나면서 ‘준비된 대통령’을 내세운 김대중의 인기가 꾸준히 상승하여 중후반 이후에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했다.
제15대 대선도 과거 선거처럼 집권세력에 의한 각종 용공음해와 불법 탈법의 선거운동이 자행되었다. 특히 김대중 후보에 대한 극심한 매카시즘 공세가 전개되어 선거전을 정책대결이 아닌 색깔론으로 몰아갔다. 보수족벌 언론사는 기사와 논평을 통해 노골적으로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배척하면서 정치문제로까지 비화시키는 등 낯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대중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대규모 청중동원의 연설회 대신에 몇차례 TV토론회가 열려서 유권자들이 후보를 직접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경제위기를 맞아 이를 극복할 대안으로 김대중의 역량이 높이 평가되었다. 여기에 DJP 연합과 여당의 분열이 작용하여 정부수립 이래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동안 창업과 쿠데타ㆍ혁명ㆍ정변ㆍ반정 등 여러 가지 형태의 권력변환이 있었지만, 피지배 계층이 평화적 방법으로 권력을 교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960년 민주당의 집권은 4월혁명을 통해 일어난 ‘혁명과정의 선거’로 취득한 정권교체이고, 1992년 김영삼의 문민정부 출범은 3당 야합으로 얻어진, 군사정권의 모태에서 발생한 것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민회의의 대선 승리는 김대중의 승리이기도 했지만, 김근태의 승리이기도 하였다. 그는 이를 위해 긴 세월 동안 모진 고문과 박해를 받으며 싸웠던 것이다. 평화적 정권교체와 정치혁명은 그의 오랜 꿈이고 소망이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약체였다. 국회는 여전히 한나라당이 지배하고 지난 반세기 이상 군사정권과 유착하면서 성장해 온 거대 족벌신문과 지식인 그룹, 그리고 “정권을 빼앗겼다”고 앙앙불락하는 특정지역의 기득권 세력이 버티면서 사사건건 새정부를 헐뜯었다.
‘국민의 정부’의 권력은 탄생 때부터 많은 고민을 안고 출발했다. 김 대통령은 유효 투표의 40.3%의 지지로 당선되었다. 이회창 후보보다 겨우 39만 표 앞선 것이었다. 승부를 가른 이 39만 표는 김종필 총리의 지지기반인 충청권에서 나타난 김대중-이회창 후보간 표차와 정확히 일치하는 수치다. 김 총리가 공동정권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회창 총재가 이끄는 한나라당은 야당으로 입장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원내 제1당으로 막강한 국회 권력을 갖고 있었다. 39만 표의 격차에서 짐작되듯 표의 동서 양분 현상은 과거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지난해 6월의 지방선거와 두 차례의 재ㆍ보궐선거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강화되었다. 말하자면 김대중 대통령의 권력은 소수정권인데다 그나마 권력이 나뉜 연합 정권의 구조적 취약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것이다. (주석 3)
김근태는 7월 3일 열린 제184회 임시국회에서 국민회의의 대표연설자로 선정되었다. 정당대표의 국회 기조연설은 오랜 관행으로, 국회의원이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하지만 총재나 부총재급이 아닌 평의원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기회다. 김근태는 의정생활 1년여 만에 제1야당의 대표연설을 하게 되었다.
보좌관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며칠 동안 대표연설문을 작성하였다. 대선을 앞둔 시점이어서 국민회의의 당면 과제와 정책, 현실적 이슈를 많이 담았다. 대표연설은 개인의 정견ㆍ정책보다 당의 입장을 천명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김근태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치철학을 제시하는 기회로 삼았다. 반응은 뜨거웠다. 그의 위상이 한층 돋보이는 성공적인 연설이었다.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설문 제목은 <‘질서 있는 변화’로 ‘새정치’를 열자>였다. 김근태는 이날 연설에서 정부에 “대선자금 한보진실 밝히고 사과할 것” “중립내각 구성하여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할 것”과 “남북국회회담” “두 전직 대통령 사과하면 용서ㆍ화해” “자민련과 공동집권 실현으로, 국민기대 부응” 등을 제시하였다. 다음은 연설 요지.
‘질서 있는 변화’로 ‘새정치’를 열자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3당 야합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신한국당 정권은 총체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신한국당 정권은 정말로 엄청난 국민적 혼란과 국가적 혼돈을 낳고 말았습니다. 신한국당 정권에서 총리로, 당대표로, 장관으로 권력을 누려온 여당의 경선주자들은 하나같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뼈아픈 반성은 커녕 모든 책임을 김영삼 대통령에게만 떠넘기면서 권력잡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런 일입니다. 그런 태도로 국민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여당 경선에 정책대결은 없습니다. 줄세우기와 세몰이, 지역감정도 노골적으로 조장하고 있습니다. 국민분열 정권으로는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할 수 없습니다.
무한경쟁의 국제화 시대에 한 나라의 외교역량은 그 나라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외교와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외교역량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당은 국제사회에서 오랜 교분과 일관된 태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런 실력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의 중심에 서는 경제외교를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경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들로부터 ‘다시 한 번 해보자’는 신명과 의욕이 생겨야 합니다.
다가오는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새로운 세기를 여는 정부를 선택하게 됩니다. 돈 안드는 선거, 깨끗한 정치는 이제 움직일 수 없는 국민적 합의입니다. 이점에서 선거방송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의 확보는 정치의 민주적 발전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정치개혁특위의 여야 동수구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지만 우리는 일단 국회를 열자고 결단했습니다. 그러나 경기의 규칙에 해당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하는 정치개혁특위 구성을 1:1로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은 수십년 동안 국회의 관행이기도 합니다. 이를 반대하는 신한국당 정권이 진정으로 정치제도 개혁에 나설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진정으로 정치개혁 의지가 있다면 ‘중대결심’ 운운할 것이 아니라 집권당 총재로서 정부여당의 안을 먼저 국회에 내놓아야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92년 대선자금과 한보사태의 진상을 국민 앞에 밝히고 이해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정권재창출의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중립내각을 구성하여 다가올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하겠다고 결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렇게 결단한다면 국민 모두 새로운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서 나와 평범한 시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지은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역사와 국민 앞에 사과할 때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질서 있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기업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에서 기업하기 가장 편한 나라로 변화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구석구석 썩어서 돈이 아니고는 아무 것도 통하지 않는 이 숨막히는 사회에서 좀 공평하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정의로운 사회로의 변화, 남북간 전쟁의 공포에서 평화와 통일의 시대가 열리는 변화, 세대 갈등에서 노ㆍ장ㆍ청이 하나로 화합하는 변화, 차별과 분열에서 화해와 통합으로 뭉쳐지는 변화, 행복한 가정이 되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는 변화, 그리하여 신명나는 국민이 되고 신기운이 힘차게 세계속으로 뻗어나가는 변화를 국민여러분께서는 오히려 간절하게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야당에서 여당으로 정권을 교체할 줄 아는 나라만이 그런 변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유민주연합과 우리가 손잡고 두 당의 공동집권을 실현하여 국민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겠습니다. 국민 앞에 반드시 결실로 보답하겠습니다. (주석 2)
김근태는 국회의원이 되고서도 당내에서 주류가 되지 못했다. 국민회의는 김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동교동계가 일사분란하게 세력을 형성하고 주류가 되었다. 김상현ㆍ정대철 등 비주류가 있었지만, 경륜ㆍ투쟁ㆍ경력의 면에서 김대중의 상대가 되기 어려웠다. 김근태는 오래 전부터 김대중의 역량이나 인격을 존중해왔으나 친동교동계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비주류의 위치에서 비판과 견제를 통해 당내민주화를 추동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 믿고 그 길을 택하였다. 원칙과 정도를 중시해온 그의 경력으로 보아 당연한 일이었다. 국민회의는 5월 19일 서울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전당대회를 열어 대통령후보와 총재를 선출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에 따라 당내에서는 누가 봐도 대세로 굳어진 김대중을 추대하자는 측과 민주정당의 전통을 살려 경선을 하자는 측으로 갈라졌다.
김대중 진영은 하나마나인 경선으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고, 집권세력에 공작의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대해 비주류 측은 정권교체의 실현을 위해서는 국민경선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김근태는 단연 국민경선제의 주장을 폈다. 언론을 통해 이를 밝히고 당기관지의 찬반 토론에 나섰다. 당시 분위기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정권교체 실현위해 국민경선제 필요
정권교체를 실현해야 한다. 반드시 해야한다. 천금같은 이번 기회에 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돌아올 역사의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의 5%도 안 되는 사람만이 김영삼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지난 3.5 보궐선거의 결과는 이를 입증한다. 그럼에도 우리 역시 국민에게 폭넓게 신망 받고 있지 못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여전히 유효한 지난 4.11 총선의 패배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권교체에 대한 염원이 현재의 야당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로 연결되고 있지 않은 오늘의 상황은 무엇으로 극복될 수 있는가. 우리는 대선에서 YS라는 후보와 싸우는 것이 아니며 YS를 탈색한 후보와 싸우게 될 것이라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누가 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제1야당이며 민주정통세력인 우리 당이 먼저 해야 한다. 정권교체의 대의를 위해 양보하고 결단할 수 있어야 한다. 난점이 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정권교체를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우리가 쇄신하고 국민적인 참여가 지원한다면 해 볼 수 있다. 국민에게 감동의 순간을 마련하고 준비해야 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국민경선제를 비판한다면 정권교체를 실현할 어떤 방안을 가지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경선제는 야권에서 대통령후보로 나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합의하여 경선의 관리주체를 만들고 후보로 등록한 다음, 등록한 후보들이 10~15개 권역을 순회하며 국민들의 지지와 참여를 호소하고 1일 당원으로 등록하는 선거인단을 모집하여 경선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때 각 권역은 인구비례에 의해 대의원 숫자가 배정되며 이 숫자를 가장 많이 확보한 후보가 야권의 단일후보로 확정되어 후보지명 대회를 거친 뒤 본선에 나서게 된다.
이미 일본 신진당과 대만 민진당에서도 이와 유사한 국민참여 경선의 실시로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두 나라에 비해 정치의식 수준이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더 큰 성과가 있을 것이다. 야당간의 정치적 흥정만으로 본선에서 승리 가능성을 높일 수는 없다.
국민경선제가 필요하다.
첫째, 야당이 나뉜 상태에서 후보가 난립하여 서로 대립하는 것보다 출마를 원하는 야당후보가 공정한 관리하에 국민경선을 통해 야권의 단일후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야권의 힘의 소진을 막고 국민의 힘을 결집시키게 될 것이다. 비용의 문제는 경선참여 후보간의 약정과 선언을 통해 깨끗한 선거의 모범을 야당이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둘째, 국민경선은 전국의 지역을 순회하며 시차를 두고 시행하는 것이며 국민과 언론의 감시 하에 치러지는 것이며, 국민과 언론의 감시 하에 치러지는 것이기 때문에 여당이나 안기부의 공작을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여당이나 안기부에 의한 동원이 발각될 경우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쪽은 오히려 여권일 것이기 때문에 쉽게 공작을 감행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정치와 정당의 쇄신을 이루고 국민이 정치의 주인으로, 정당의 주인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국민과 정당, 정치의 거리가 좁혀져야 한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지우고 국민 스스로가 공직후보를 공천하는 제도의 정착이 정치의 선진화를 앞당길 것이다.
국민이 원하고 있다.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이 단결하고 쇄신하여 수권세력으로 결집되기를 원하고 있다. 우리가 이런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치쇄신과 정당쇄신을 이루고 야권의 후보를 공개적이고 엄정한 경선을 통해 단일화 할 수 있다면 다가올 12월 대선에서 정권교체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주석 1)
국민회의는 경선제를 받아들여 전당대회를 열었다. 대의원 4,368명과 참관인 등 1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대회는 대선후보 경선에서 김대중이 총투표수 4,157표 중 3,223표(77.5%)를 얻어 967표(21.8%)를 얻은 정대철을 크게 눌렀다. 총재 선거에서도 김대중은 73.5%의 득표로 김상현을 압도했다. 국민회의는 국민경선제를 채택함으로써 모양새도 보기 좋고 국민의 관심도 불러모아 전당대회가 흥행을 이룰 수 있었다. 김근태는 크게 보람을 느꼈다.
이날 전당대회는 또 부총재 11명도 선출하였다. 김근태는 자력으로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이제 영입케이스 부총재에서 당원들의 직선에 의해 부총재가 된 것이다. 그것도 동교동계의 지원이나 비주류 측의 연합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민회의 대의원들의 선택으로, 자력에 의해 당선된 것이다.
국민회의 대의원들은 유신과 5공체제에서 온 몸을 던져 싸우다가 입당한 김근태를 높이 평가하여, 계파의 소속감을 떠나서 그를 지지한 것이다.
김대중이 국민회의 대통령후보로 선출되면서 대선 정국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신한국당은 보수언론을 매개로 대대적인 DJ 흠집내기에 나섰다. 예의 색깔론과 천문학적인 정치자금 은닉설이었다. 신한국당 사무총장 강삼재는 김대중이 670억 원 규모의 비자금을 관리해왔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폭로했다. 그러나 이것은 허위로 밝혀졌다. 대선을 앞두고 ‘아니면 말고’ 식의 저질 폭로전이었다.
오히려 14대 대선 당시 신한국당이 3,000억 원 규모의 대선자금을 기업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뒷날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