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 / 15. 의문의 죽음

산행을 마치고 장 선생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이번 산행으로 내 몸의 컨디션을 시험해 보는 기회가 됐고
더군다나 든든한 분들과 함께 하게 돼서 참 고마웠소...
혹시 불편하지 않다면 다음엔 광주 무등산으로 해서
홍남순 변호사도 뵙고 여기저기 들러
지역에 계신 분들과 인사도 나누면서
진주로 해서 3박 4일 쯤으로 함께 여행을 갔다 왔으면 하는데...
함께 가 줄 수 있겠소?"

"그럼요. 저희들이 모시고 가겠습니다."

우리는 장 선생과 이렇게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 이후 국회에서는 당시 야당의 적극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회안전법이 통과되었다.

사회안전법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이나 국가내란예비음모 등으로 재판에 회부되어
실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다가 석방된 사람들은
관할 경찰서 구역을 떠나거나 돌아올 때
반드시 사전 또는 사후에 즉시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

이를 어기거나 어길 우려가 있는 자에게는
재판에 의하지 않고도 보호 관찰과 감호 조치 등에 따라
무한정 격리 수감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테면 정치범 양심범으로 석방된 이들에게
거주 이전의 자유와 통행 활동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박탈하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법을 반대하는 집회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당시에는 우리도 사회안전법 신고 대상자였지만
우리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신고를 거부했다.

이 법에 따르면 여순반란사건 당시 구속 수감되었다가
동료들을 배반한 댓가로 석방된 박정희 대통령도
사회안전법의 신고 대상이었다.
지학순 주교님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정희부터 먼저 신고하라고 하시오!...
박정희가 먼저 신고하면 나도 할 용의가 있지만
박정희가 신고 안 하면 나도 못하겠소..."

하고 주장하셨다.
당시 재야에서는 전체적인 의견이 모아지지 않아
이 법을 거부하자는 합의는 이루어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우리는
'장 선생님께서 우리를 만나 피해를 받으시면 어쩌나’
하면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장준하 선생 역시
'이 와중에 함께 여행을 다니다가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면 어쩌나'
하시며 서로가 염려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장 선생과 약속한 여행 일정을
자연스레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이 전화를 걸기도 조심스럽고
장 선생님을 직접 찾아 뵙기는 더더욱 조심스런 일이어서
전화 연락도 없이 장 선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장 선생님은 우리를 꽤 기다리셨던 듯하다.
약속한 6월이 지나고 7월이 되어도 연락이 없으니
당신 혼자 광주로 여행을 다녀오셨다.

그 후 8월에 접어들면서 어떤 젊은 사람이 찾아와
평소에 장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젊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산행을 하려 하는데
함께 동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부탁을 하자
장 선생은 우리들과 산행했을 때
뜻 깊고 자랑스런 일들을 생각 하셨던지 선뜻 따라 나섰고
이 일로 8월 17일 포천 이동면에 있는 약사봉으로 등산을 가셨다가
그만 의문의 죽음을 당하셨다.

이 사실은 동아일보 의정부 주재 기자가 즉각
의문사로 보도해서 구속되는 등
정치 사회적으로 큰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함석헌 선생님도

"이건 장 선생님의 당시 행동 계획과 정황으로 보아
타살임에 틀림없다"

고 주장하셨다.
장 선생님은 당시 비장한 결심을 하고 계셨단다.

박 정권 하에서 이렇게 살아 뭐 하겠나...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일을 한 번 크게 일으키고
감옥에 들어가 옥사하고 말겠다 하시며
큰 일을 준비하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결행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등산을 갔다가
그만 뜻을 실행하지 못하고 의문의 죽음 당하신 것이다.

나와 나병식과 황인성은
장 선생님 댁에 마련된 빈소로 달려가
밤을 지새며 울분을 억눌렀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장 선생님은 아주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분이어서
그렇게 위험한 곳에서 미끄러지실 분이 아닌데...
우리가 모시고 갔더라면
결코 이런 변을 당하지 않으셨을 텐데...


빈소에서 나는 서울의대 본과에 재학 중인 서광태와

만나서 서로 인사하게 되고 이 인연으로 두 달 후 큰 사건을 겪게 된다.


▲ 1975년 8월 22일 명동 천주교 대성당 장준하 선생의 장례식

요즘도 그때를 되돌아 보면
도무지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지만
비상약을 가지고 다니시며
'내가 혼절하게 되면 이 약을 꺼내어 입에 넣어 달라'
고 하신 말씀이 떠올라 혹시라도 동행한 사람들이
잘못 보좌해서 벌어진 일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우리들의 불찰인 것 같아 죄송스운 마음 금할 길 없다.


▲ 홍남순 변호사


훗날 내가 월간 <씨알의 소리> 편집장을 할 때
광주의 홍남순 변호사를 만난 자리에서
나는 홍 변호사님께 나와 나병식, 황인성이
장준하 선생님과 광주를 가기로 약속했는데
사회안전법 등등으로 상황이 여의치 못해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말씀을 드렸다.
홍 변호사님은

"장 선생은 그때 광주에 내려와서 나를 만나고 가셨어"

하시며 당시 광주에서 장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내게 보여주셨다.

"장 선생이 자네들과 등산한 얘기를
꽤나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더군.
그래서 김용환이라는 젊은이가 등산을 가자고 하니까
그런 기분을 기대하고 쫓아간 거겠지..."


▲ 장준하 선생 묘소에서 추도가를 합창하는 청년


우리는 그 이후 장 선생님 주기마다 묘소에 찾아갔다.
장 선생님은 돌아가신 후에도 우리에게 갈 길을 지도해 주셨다.

1983년 장 선생님 추도식이 거행된 포천군 약사봉에서
우리는 민주화운동년연합을 결성하기로 다짐하기도 한다.


▲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한 약사봉 계곡을 답사하고 있는 참가자들


▲ [동영상] 장준하 선생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SBS 장준하 선생 죽음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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