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6장] 노무현정부의 국무위원으로 국정 참여

2012/10/24 08:00 김삼웅

 

 

 

김근태는 복지부장관 취임 무렵부터 퇴임 후인 2007년 여름까지 2년여 동안, 한 인터넷 홈페이지에 일요일이면 만사를 제치고 짧지만 정감 넘치는 편지를 썼다. <일요일에 쓰는 편지>라는 타이틀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복지ㆍ책 얘기, 드라마 얘기까지, 마음 닿는 대로 편하게 쓰는 편지였다. 당연히 많은 조회수와 댓글이 붙었다.

2004년 12월 15일에 쓴 <일요일, 편지쓰기를 시작하며>에는 김근태의 소박한 정감이 담겼다.

마음 편하게 쓰겠습니다. 잘 정리된 글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냥 제가 일주일을 보내면서 품었던 ‘생각의 조각’을 여러분과 함께 나눈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일주일을 보내고 제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 추억이건 감상이건 눈물이건 분노건…. (주석 9)

 



김근태는 정부 각료로서 국민과 소통을 위해 글쓰기를 시작하고, 2년 뒤에 그 가운데 46편과 네티즌들의 댓글 120편을 모아 <일요일에 쓰는 편지 - 김근태, 따뜻한 세상을 꿈꾸다>를 간행했다. 여섯 번째의 저서인 셈이다. 그는 또 2004년 3월 <김근태 아저씨의 국회 이야기-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를 올벼 출판사에서 간행하였다. 일종의 어린이용 국회 소개 책자다. 노현정 화백이 그림을 그렸다. 어린이들에게 국회ㆍ국회의원의 역할을 정확히 알려서 정치에 대한 인식과 관심, 그리고 미래 세대들이 좋은 정치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김근태의 ‘일요일에 쓰는 편지’에는 그의 성실성과 휴머니즘, 군림하는 장관이 아닌 현장을 찾는 목민관의 모습을 보게한다. 에이즈 환자를 만나고, 소록도를 방문하여 한센씨병 환자들을 찾았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들려준, ‘패자부활전’이 있는 사회를, 저출산문제를 여성의 입장에서, ‘고령화’라는 재앙을 대비하자는, 정책 제안에 이르기까지의 편지글에서 담았다.

녹동에서 배를 타고 소록도를 향하면서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가 떠올랐습니다.
그 피리소리를 들으려고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삘릴리~’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그 사이에 무덤도 남기지 못하고 흔적없이 사라져간 만여 명의 한센병 환자들의 한숨과 슬픔이 아련히 다가오는 듯 했습니다.

얼마간 결심이 필요했습니다. 노인환자들이 식사하시는 것을 도왔습니다.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침이 튀기는 듯 했습니다. 움찔 물러났습니다. 영화 ‘빠삐용’에서 주인공이 환자들을 대담하게 만나는 장면이 순간 스쳐갔습니다. “거리를 두어서는 안 된다. 장관이 거리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스스로 마음을 다졌습니다.

힘을 주어 악수했습니다. 병실 모두를 방문해서 굳은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마을도 찾아갔습니다. 손이나 발이 없는 분들과 손과 눈이 마주치는 악수를 했습니다. 그분들 중 몇 분이 마음을 여는 듯 했습니다.
(주석 10)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라고 말합니다. ‘무한경쟁의 정글’에 비유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번 비정규직이 되면 영원히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고, 사업에 한 번 실패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은 제자리로 돌아가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입니다.

결과는 참혹합니다.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직장인들은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합니다. 사업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나무랄 수도 없습니다. 노동조합은 타협 없는 외길 투쟁을 반복하고, 이웃에 대한 관심은 점점 메말라 갑니다.

이런 일들이 ‘무한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쟁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고 말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국경없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너무 한가한 얘기를 한다는 타박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2005년 12월 30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 본회의에서 차기 복지부장관으로 유력한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을 찾아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 장관은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했지만, 표결에는 불참했다. 사진은 오마이뉴스 이종호 기자.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가 꼭 행복하고 바람직한 것일까요? 정말 어쩔 수 없는 ‘외길수순’인 걸까요? (주석 11)

이제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보건복지부를 떠나면서 그동안 여러 번 강조했던 말씀을 잔소리처럼 한 번 더 드리는 것으로 ‘작별인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보건복지부는 이미 우리사회의 방향을 좌우하는 사회정책의 중심부서로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핵심부서라는 엄중한 책임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더 이상 예산이나 권한을 탓할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핵심과제인 저출산, 고령화대책과 사회양극화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모두 여러분의 두 어깨에 짐지워져 있습니다. 사회안전망과 국민연금,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공공인프라를 튼튼히 구축함으로써 미래의 우리 사회를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사회’ ‘가장 경쟁력 있는 사회’로 만들 책임도 여러분께 있습니다.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안전한 식탁을 지킬 책임도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여러분의 선택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제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지만 미처 마무리 하지 못한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튼튼한 육성체계를 세우는 일입니다. 시간에 쫓기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 어려운 것이 공직생활이지만, 시간을 쪼개고 정성을 보태서 공부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경쟁력이 바로 우리 사회의 경쟁력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가서 여러분을 감시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주석 12)


주석
9> 김근태, <일요일에 쓰는 편지>, 8쪽, 샛별 D&P, 2000.
10> 앞의 책, 25~26쪽.
11> 앞의 책, 91쪽.
12> 앞의 책,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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