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4장] 정계의 차세대 지도자로 성장하다

2012/10/06 08:00 김삼웅

 

 

 

고수(高手)는 고수끼리 알아보고 순수는 순수를 좋아한다.
2000년대 초 ‘포스트DJ’를 놓고 민주진영에서는 물밑 경쟁이 조용한 가운데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큰 나무 아래에서는 작은 나무가 자라기 어렵듯이, 야권에서는 70년대 이래 김대중ㆍ김영삼 두 거목 밑에서 양김에 버금가는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재야 쪽에서 차세대 지도자그룹이 성장하고 있었다.

대표적 인물이 김근태와 노무현이었다.
노무현은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두각을 나타내며 13대 국회에 들어와, 3당야합을 거부하면서 ‘지역갈등해소’의 기치를 들고 낙선을 거듭하면서도 고난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김근태가 재야에서 반유신ㆍ반5공 투쟁을 통해 재야의 대표 주자로 성장하고 있었다면, 노무현은 법조활동과 야당의 정치활동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고난의 젊은날을 보냈으면서도 순수한 품성을 지닌 ‘비정치적인 정치인’이 되었다.

이들은 잠재적인 라이벌이면서도 서로를 존경하고 좋아하였다. 걸어온 길이 다르고, 정치적 환경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결곡한 삶의 역정과 따뜻하고 진솔한 품성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노무현의 얘기다. 당시 노무현은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이었다.

김근태 의원 때문에 나는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감격한 적이 있다.
1992년 8월, 그날은 그의 석방 환영회였다. 당시까지 나는 김 의원과 각별한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민주화운동을 함께해 온 동지의 심정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던 터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김 의원은 나를 가르켜 “이 시대의 의인이요. 정치적 희망” 이라며 당시 모였던 재야의 쟁쟁한 인사들 앞에서 소개를 했다. (주석 2)

김근태는 평소 성격상으로 치밀하고 신중한 태도와 함께 아주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런 그가 노무현에게 “이 시대의 의인이요, 정치적 희망”이라 표현한 것이다. 의례적인 답례이긴 하지만 그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느낀 ‘정제된’ 언사였다. 다음은 노무현의 김근태에 대한 평가다.

 



‘김ㆍ근ㆍ태’
이 이름 석 자는 지난 시절 내게 있어서 신비로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80년대에 가장 치열했던 반독재 투쟁조직인 민청련 의장으로 활동할 때였다. 당시 누구도 엄두를 못냈던 5ㆍ18추모식을 서울 한복판에서 최초로 가진 것과 그후 신문사회면 하단에 그의 구류 소식이 단골로 등장한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1985년 그에게 가해진 그 무시무시한 고문사건이다. ‘김근태’라는 이름이 내 뇌리에 경외의 상징으로 각인되었다. 그 당시 나도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 문을 닫다시피 하여 독재정권과 싸울 때였다. 그에게 가해진 고문에 대한 기록을 읽은 나는 전율했고, 이 사건을 당시 투쟁의 쟁점으로 삼아 독재정권의 폭력성을 부산 시민에게 알리기도 했다. (주석 3)

노무현은 이어서 “가장 원칙적이면서도 조직을 위해서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분, 음모적이지 않고 책략에만 매달리지 않는 재야의 지도자”라고 김근태를 평한다. 이 말은 주객을 바꾸어 노무현에게도 들어맞는 말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심정적’으로 통했다. 다시 노무현의 말이다.

살다보면 괜히 좋은 사람이 있다.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인데, 내게 특별히 잘해주거나 각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신뢰감이 가는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김근태 의원이 바로 그런 분이다. 정치인은 욕심이 많다.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너무 턱없는 욕심 때문에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만약 내가 김근태처럼 신중하고, 치밀하고, 의젓한 이미지를 갖고 싶어한다면 너무 큰 욕심을 낸다고 사람들이 비난할까 무섭다. (주석 4)

노무현의 김근태 평을 다소 길게 소개한 데는 까닭이 있다. 즉 다음의 글을 인용하려는 이유 때문이다. 노무현의 이같은 바람은 실제로 3년 뒤에 이루어졌다.

만약 우리나라의 미래를 앞두고 그와 내가 정치적으로 경쟁하는 1:1 카운터 파트너가 되면 우리 사이는 어떻게 될까.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한번 해봄직한 욕심이고 상상이지만 무척 행복할 것 같다. 서로 주어진 결과에 기꺼이 승복하고 나아가서는 적극 지지할 수 있는 그런 신뢰가 분명한 관계라고 단언한다. 혹은 다자간의 경쟁이 되면 제일 먼저 찾아가 “우리 같이 합시다”라는 이야기를 마음 터놓고 할 것 같다. (주석 5)

두 사람 관계는 제16대 대선 후보 경선과정에서,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수장과 각료관계로 이어진다.


주석
2> 노무현, <살다보면 괜히 좋은 사람이 있다>, <푸른내일> 14호, 1999년 5월.
3> 앞의 책.
4> 앞의 책.
5> 앞의 책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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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회] ‘차세대 1위’ 선정, ‘한반도재단’ 설립: 김근태 평전/[14장] 정계의 차세대 지도자로 성장하다 2012/10/05 08:00 김삼웅 6월 항쟁이 군사독재 세력의 청산.. http://t.co/BS6Qg4Ac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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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평전/[14장] 정계의 차세대 지도자로 성장하다

2012/10/05 08:00 김삼웅

 

 

 

6월 항쟁이 군사독재 세력의 청산에는 실패했으나 대통령의 5년 단임제 헌법을 마련하는 등 민주화의 제도적 장치에는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이후 누구도 이승만이나 박정희처럼 헌정을 짓밟으면서 장기집권을 획책하지는 못하였다.

국민의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특히 언론은 대선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기’를 거론하는 조급성을 보인다.
대선을 2년 쯤 앞두고 이에 대한 여론조사 등이 실시되고 ‘예상후보’가 나타난다. 김근태는 국내외의 언론에서 주목받는 정치인이 되었다.

1998년 월간 <신동아> 8월호는 여론조사에서 정치부 기자 100명이 뽑은 ‘차세대 정치인 1위’로 김근태가 선정된 사실을 보도했다. 이회창ㆍ이인제 등 쟁쟁한 후보군을 제치고 ‘1위’에 뽑혔다. 기자들에게 술밥 사주고 명절 때에 촌지 주어서 나타난 결과가 아니었다.

같은 해 11월 3일, 유엔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에 김근태를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한 사건의 구제를 권고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그는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인물이 되고 있었다.

1999년 1월호 <뉴스위크(일본편)>는 “21세기를 움직일 세계의 100인”에 김근태를 선정하였다. 각계의 유망한 인물들을 제치고 그를 선정한 <뉴스위크>의 안목은 대단했다.

같은 해 4월 아시아ㆍ태평양 지도자회의(FDL-AP)의 이사에 위촉되고, 5월에는 국민회의의 당 쇄신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되었다. 당 쇄신위원장은 능력과 도덕성에서 ‘쇄신’된 인물이어야 했다. 같은 달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로 위촉되어 사망 때까지 유지되었다. 한양대 뿐만 아니라 경향 각 대학에서 특강의 요청을 받고 정치현안과 자신의 역사관을 강의했다. 6월에는 군부쿠데타로 실종되었던 인도네시아가 44년 만에 총선거를 실시하면서, 국제적으로 저명인사들을 ‘국제선거감시단’으로 위촉하였다. 카터 전미국대통령 등이 함께 참여 했다.

김근태는 2000년 7월 13일 (사)한국여성유권자연맹으로부터 ‘남녀평등 정치인상’을 받았다.
오래 전부터 시민사회운동 과정에서 그리고 의정활동에서 성실하게 노력해온 것이 평가되었다. 그의 도봉구 비좁은 집에는 부인과 함께 나란히 문패가 걸렸다. 2001년 4월에 ‘한반도 평화와 경제발전 전략 연구재단’(한반도재단)을 창립하고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국회외무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더욱 익히게 된 문제들을 중심으로, 당내외 인사, 사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설립한 것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한반도의 평화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던 터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으로 그동안 국제적으로 유일하게 남은 냉전지대 한반도가 어느 정도 해빙되어가고 있던 시점이다.

김근태는 한반도재단을 설립하면서 <희망의 한반도를 만드는 세 가지 키워드>를 천명하였다. ‘세 가지 키워드’로 평화ㆍ경제시스템ㆍ리더십을 제시한다. 다음은 주요 부문이다.

평화

지난 세기 내내 이룰 수 없는 꿈처럼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지만, 이제는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유일한 방책이 되었다. 또한 평화가 동아시아의 경제협력 방안과 연결될 때, 그 힘은 가히 폭발적일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우리가 평화에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공존과 발전의 문제이기도 하다.

1970년 동서독 정상의 만남이 20세기 말 동구의 민주화와 개방으로 이어졌듯이 지난해 남북 정상의 만남은 21세기 한반도 평화의 시원(始原)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평화협력 방안과 공동의 발전모델을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과제라는 생각이다.

경제 시스템

지금은 세계화를 적극 수용하고, 정보화 인프라를 기반으로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할 시점이다. 이제 우리가 핵심기술과 세계표준을 만들어야 한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지 못한 제품은 살아남지 못할 만큼 세계화는 이미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유일한 길은 위기를 관리하면서 구조개혁을 지속하는 것 뿐이다.

또한 시장의 자율성을 확대해가면서, 정부 역할의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기업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정책의 예측성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경제의 일차적 과제인 것이다. 경제에서 실패하면 모든 것이 실패한다는 심정으로 공동의 전략과 목표를 세우고, 계획과 실행이 일치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 우리는 다시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리더십

새로운 시대는 그 시대 정신에 부응하는 새로운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 도덕적 일관성, 민주적 포용력, 비전과 자질이 지도자의 덕목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물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바위처럼 굳세게 버티면서 국민과 함께, 국민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바로 국민 ‘속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시대를 극복하고 민주적 리더십이 우리 사회에 정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경제시스템의 변화에 걸맞는 ‘정치구조와 인식의 대전환’을 모색하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강구하고자 한다. ‘더 많은 민주주의, 미래에 대한 책임’에 복무하는 리더십의 형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한 사회의 리더십은 그 사회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동시에 선택된 지도자의 역량이, 그 사회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인지 아니면 뒤로 물러서게 할 것인지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주석 1)


주석
1> 김근태, <한반도재단을 창립하며>, <희망은 힘이 세다>, 101~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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