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3장] 성실한 의정활동, 대안과 정책제시

2012/10/04 08:00 김삼웅

 

 

'사랑의 집' 건설현장을 찾은 김근태 최고위원

 

2000년 4월 13일 제16대 총선이 실시되었다. 김근태는 선거구인 서울 도봉갑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손쉽게 당선되었다. 유효표의 50.9%인 34.233표를 얻어 한나라당 후보를 크게 따돌렸다. 15대 (38.9%)보다 2% 포인트를 더 득표, 유권자들이 지난 4년 동안 의정활동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었다.

민주당은 여당이면서도 다수당이 되지 못했다. 총의석 273석 중 한나라당 133, 민주당 115, 자유민주연합 17, 민주국민당 2석이었다.

김대중 정부와 공동정부를 구성한 김종필의 자민련이 내각제 개헌을 둘러싸고 분열하여 ‘2여 1야’의 후보난립이 주요 패인이 되었다. 민주국민당과 민주노동당(1.2%)은 정당 존립이 무너졌다.

민주당은 의석수에서는 약진했으나 다수당은 한나라당에 넘겨줘야 했다. 민주당 소속의원 4명이 자민련에 입당하는 ‘의원 꿔주기’ 형태로, 자민련이 간신히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면서 DJP연대는 다시 복원되었으나 여전히 불안한 공동정부였다.

김근태는 15대와 16대 국회에서 두 차례 ‘백봉 신사상’을 받았다.
이 상의 첫 수상자가 된 것은 1999년 11월이었다. 독립운동가 출신 백봉 라용균 전의원을 기려 제정된 상이다. 육탄과 욕설로 뒤범벅이 된 국회를 ‘신사적’으로 운영하라는 취지에서 제정돼 ‘신사적인’ 의원에게 주어진다.

김근태는 1,2회 백봉 신사상을 받고, “연속 두 번의 ‘백봉 신사상’ 수상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조금 과분한 영광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훌륭한 인격을 갖춘 다른 의원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번 제2회 백봉 신사상 수상은 신사와 대중정치인이라는 문제를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주석 8)고 소회를 밝혔다.

여기에는 한국정치의 실상, 그리고 국회의 운영이 ‘신사’가 서식하기가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깔렸다.

끊임없는 줄세우기와 편가르기, 계보만들기와 수에 의한 힘겨루기….
그래서 정책을 위한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지역 패권에 의지한 보스의 힘에 의한 독선과 오만이 리더십으로 인식되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적 정치현실이라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신사와 정치인은 양립할 수 없다. 오랜 벗 하나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백봉 신사상 계속 받으면 대중정치인으로는 낙제라는 얘기야!”

나는 이 말을 웃으며 받아넘겼지만, 옆구리에 뭔가가 걸리는 듯한 느낌이 없지는 않았다.
(주석 9)

 


술잔을 나누는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과 민주당 김근태 최고의원

 

김근태에게 ‘대중정치인과 신사’는 양립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대중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언론과 대중의 눈길을 끄는 발언과 적절한 쇼맨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이건 딱 질색이다. 점잖게, 신사적으로 하면 언론에 뜨지 않고, 대중의 관심을 받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신사적’ 또는 ‘영혼을 지키면서’의 심성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김근태의 딜레마는 여기가 근원인 셈이다. 강준만 교수의 뼈아픈 지적이다.

김 부총재의 경우 그런 쇼맨십이랄까 쇼에 대한 감각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아마도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김 부총재가 지나치게 신중하고 자기방어적이라는 평가도 자신의 ‘영혼을 지키려는’ 노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주석 10)

김근태가 재선에 성공하고 집권당의 지도부가 되면서 언론과 국민 중에 그를 지켜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당연히 ‘차기 대권주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이런 저런 주문이 따랐다. 역시 딜레마는 친화력은 좋은데 ‘대중성’이 모자란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치인이 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중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는 천성적으로 신사적이어서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다시 강준만의 지적이다.

나는 김 부총재의 경우 친화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건 그의 겸손과 성실 덕분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마냥 좋게만 보진 않는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보통 사용되는 ‘친화력’의 정체에 대해선 깊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나는 기자들에게 술은 커녕 밥 한끼 사지 않아 욕을 먹는 정치인들이 적잖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정치인은 아무리 능력이 탁월해도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기자들로부터 욕먹게 마련이고 또 그런 부정적인 평가는 언론에 그대로 반영돼 대중의 인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모든 걸 원칙대로 하려는 정치인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반면 능력과 윤리에 있어서 상당한 문제가 있어도 술 잘 마시고 마당발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정치인들도 적지 않다. 물론 이건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통용되는 문화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문화를 거스르면서 리더가 될 수는 없으니 이게 바로 딜레마라는 것이다.
(주석 11)

김근태는 ‘신사정치인’이 되었으나 ‘대중정치인’으로 성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대중성과 친화력, 쇼맨십이 부족했다. 그래선지 백봉 신사상의 의미를 바꾸었으면 하고 바랐다. 김근태가 바라는 ‘정치인상’이기도 하다.

백봉 신사상이 단지 점잖고 교양 있고 예의바른 정치인에게 주는 상에 머물지 않고, 시대정신이 살아 있는 사람을 기념하는 상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내가 속으로 암암리에 꿈꾸는 바람이다. (주석 12)


주석
8> 김근태, <정치인과 신사>, <국회보>, 2001년 1월호.
9> 앞과 같음.
10> 강준만, <국민회의 부총재 김근태의 딜레마>, <인물과 사상> 제10권, 87~88쪽, 1999.
11> 앞의 책, 89쪽.
12> 앞의 책, <국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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