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배경 음악은 정지용의 시 "고향"에 채동선 오리지널 작곡을 조수미가 부른 노래입니다.
하지만 민족 분단으로 근 반세기 정지용의 시를 보고 듣고 읽는 것이 금지되는 동안
어용작가 이은상의 "기다림"으로 번안되어서 오늘날까지 불려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떠돌고 있는 정겨운 우리 노래 "고향"을 기억해 주세요 ~

 

(우리는 하나 제 2 부 30. 고향에 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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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4월, 방북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대환영입니다.

 

지난번에 찾아뵈었을 때 ‘날이 풀리는 4월쯤 갈 생각’이라는 말씀과 함께 ‘열차로 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희망이 이뤄질 모양입니다.

이번엔 정부도 적극 협력할 방침이라니 두루두루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6.15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열차를 타고 평양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는 것은 단순한 만남 이상입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버금가는 쾌거입니다.

남북교류협력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음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지난번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전당대회가 끝나고 모시고 함께 방북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소망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걱정이 있습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기가 무섭게 한나라당이 문제를 삼고 나섰습니다.

대변인이 나서서 ‘북풍’이라며 공격하고 나섰습니다.

민주당 대변인조차 ‘연기해 달라’고 말했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이 세계 평화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을 부러운 마음으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도 카터 대통령 같은 역할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기대를 밝힌 적이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갖고 있는 국정운영 경험이나 정보 등은 소중한 국가자산입니다.

그래서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을 통해 각별히 이분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 아닙니까?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들이 활발한 외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여기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국익을 앞세워 대승적 판단을 해주길 기대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국민들이 따뜻한 4월, 그 어느 봄날을 상상하며 행복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6.2.12
김근태


 



요즘 많은 당원과 국민을 만나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당원과 국민의 목소리를 요약하면

“요즘 한나라당이 보여준 모습을 보면 아직 대한민국을 맡을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겠다.

그럼, 과연 열린우리당은 자격이 있느냐?”는 말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명확한 답이 없습니다.

당이 위기에 빠진 원인을 분명히 밝히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저의 주장에 대해 지금까지 당을 이끌고 온 분들은 스스로 당권파가 아니랍니다.

책임이 없답니다. 그렇다면 우리당에는 당권파가 없다는 말입니다.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상대가 인정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할 수밖에요.

이번 전당대회에서 김근태를 당권파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책임있는 당권파가 돼서 당원과 함께하는 열린우리당을 만들겠습니다.

당을 이끌고 온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당을 지켜온 우리의 영웅들과 함께

‘책임질 줄 아는’ 여당을 만들겠습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원칙과 방향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당원의 심판을 받겠습니다.

그걸 밑천으로 당을 확실히 바꾸겠습니다. 그리고 결과에 분명히 책임을 지겠습니다.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본질을 흐리지 않겠습니다.

갈 길을 분명히 제시하고, 분명히 평가받고, 분명히 책임지겠습니다.

2006.1.25
김근태

 



월요일 밤입니다. 일요일에 쓰는 편지를 또 월요일 밤에야 씁니다.

출마선언을 마치기가 무섭게 광주 전남을 다녀왔습니다.

묵었던 여관방이 편지 쓸 형편이 안됐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길밖에 없다고 마음을 다잡고 떠난 길이지만 그래도 오늘밤은 좀 씁쓸합니다.

‘당이 이 지경이 됐는데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했더니 돌아오는 메아리가 참으로 격렬합니다.

저를 분열주의자로 낙인찍었습니다.

김근태를 조금만 알아도 그런 얘기를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한평생을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 온몸을 던져 싸운 사람입니다.

감히 말씀드리면 연대와 통합을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했습니다.

 

그런데 분열주의자라니요?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까?

김근태는 한 번도 쉽고 편안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의 길을 가면서도 그것이 옳고 명분이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오늘까지 먼 길을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 소신과 원칙을 굽힐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각오했던 일입니다.

길을 떠날 때부터 험한 여행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담담하게 뚜벅뚜벅 앞으로 가겠습니다.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하게 앞으로만 가겠습니다.

요즘 당원들을 만나면 힘이 납니다.

또렷한 눈길을 마주 보고 있으면 만화 주인공처럼 제 몸에 에너지가 차오릅니다.

 

절박해서 그런가 봅니다. 저도 그렇고, 당원들도 그렇고….

한자리에서 스물 댓 명 당원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꼭 눈이 맞는 한두 명이 있습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다 알아줄 것 같은 분들입니다.

그분들에게 에너지를 받아 하루하루 버텨냅니다.

길을 떠나 앞만 보고 왔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까마득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한걸음씩 앞으로 나가겠습니다.

 

흔들림 없이 앞만 보고 가겠습니다.

머잖아 산마루와 정상이 보이겠지요.

그때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앞으로 앞으로 가볼 생각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이 역사적인 등정에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06.1.17
김근태

 

 

어제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TV 봤느냐?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전화선 너머에서 다짜고짜 따지는 억양으로 미뤄 ‘아이쿠, 또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싶었습니다.

 

부랴부랴 사실 확인을 했습니다.

봉천동에서 어렵게 사는 할아버지․할머니들 가운데 본인도 모르게 당원에 가입하고,

통장에서 당비가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분들이 많다는 얘기였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이 하얘졌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당원이 된다는 것은 민주사회의 시민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수준의 의사표현 방식입니다.

누군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당에 입당을 시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일입니다.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범죄행위입니다.

 

열린우리당은 ‘정치개혁’을 하기 위해 만든 당입니다.

과거 민주당에서 분당을 한 첫 번째이자 마지막 이유 역시 ‘정치개혁’이었습니다.

민주당의 당권을 잡고 있는 분들이 ‘정치개혁’에 동의하지 않으니 분당을 해서라도 정치개혁을 이루자고 주장해서 분당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만든 우리당에서 ‘허위당원’이라니요?

 

사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까맣게 몰랐던 일도 아닙니다.

열린우리당은 물론이고 ‘기간당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많은 당에서 이런 문제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당비를 내고 당원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주자’는 것이 기간당원제의 취지입니다.

과거 종이당원이 당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상황에서는 당원의 의사를 물을 필요도 없이 당을 장악하고 있는 분들이

당직과 공직후보를 정했는데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만든 제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취지를 악용해서 공직 후보가 되고자 하는 분들이 허위로 당원을 만들거나,

당비를 대납한다는 경고는 오래 전부터 나왔습니다. 이미 검찰에서 수사를 시작한 예도 많습니다.

 

변화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부작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그런 사례가 너무 많고 노골적입니다.

이대로 가면 ‘정치개혁’ ‘정당개혁’ 자체가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여기서 한발만 물러서도 ‘깨끗한 정치’는 공염불이 되고 맙니다.

가장 두려운 사태는 ‘거 봐라, 안된다고 했지?’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일입니다.

‘깨끗한 정치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상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져서는 안 됩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시도당에서 확인을 하고 단속도 하지만 종이호랑이처럼 무기력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위법․탈법을 하는 바람에 안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다시 결단하고 전진해야 합니다. ‘정치개혁’은 그냥 한번 해보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로 전진하기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포기할 수 없는 국민의 염원이고, 열린우리당이 존재하는 근거입니다.

 

이미 드러난 사안에 대해서는 당 차원에서 엄정한 조사를 해야 합니다.

위법사실이 확인되면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는 것이 옳습니다.

‘고름은 살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썩은 부위는 도려내야 상처가 낫습니다.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더 큰 문제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빙산의 아랫면’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결자해지’해야 합니다.

‘정당개혁’ ‘정치개혁’을 가장 소리 높여 주장한 열린우리당이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는 것이 순리입니다.

 

먼저 당비대납이나 허위당원을 걸러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당 차원의 당무감사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처벌 수위도 높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정 시점을 정해 모든 당원의 자격을 정지하고, 불편하더라도 전 당원에 대해 직접 당원가입 의사를 다시 분명히 확인해야 합니다.

당비대납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방안이 확인되면 좀 무리가 따르더라도 추진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새로운 출발선을 만들어야 합니다.

늦어도 지방자치 단체장․의원 선거 후보를 정하기 전에 그렇게 해서 적어도 열린우리당의 공직후보는

‘돈에 오염되지 않은 후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 문제만은 분명히 하겠습니다.

 

이렇게 새로 출발선을 만들었는데도 허위당원을 만들거나 당비 대납을 한 사람이 적발되면

당원자격을 영구 박탈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형사 처벌을 의뢰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걱정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과거의 위법․탈법을 눈감아 주자는 얘기냐?’는 질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면이 있습니다.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위법 사실을 밝혀 형사 처벌을 하는 것은 검찰이 맡아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허위․대납당원을 찾아내고 바로잡아서

이런 행위를 한 사람이 부당한 이득을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에게 지금까지의 잘못을 사죄하고 솔직히 털어놓은 다음에 새 출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첫단추를 잘못 채우면 모든 단추가 잘못 채워집니다.

당이 처음부터 이런 문제에 대해 분명한 원칙을 갖고 대응했어야 했는데,

한번 두번 원칙을 훼손하면서 어느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문제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처음부터 허위대납 사례를 적발해서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옳았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당을 바로 세우고 싶습니다.

한번 정한 원칙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당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바빠지는 월요일 밤입니다.

2006.1.10
김근태

 



한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1년 7개월에 걸친 보건복지부 장관 직무를 모두 마쳤습니다.

공식적인 직무를 모두 끝내고 돌아오니 제 어깨에 놓인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은 기분입니다.

 

막상 정부의 공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1년 반 동안 익숙했던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고 험한 만큼 빨리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새해에는 더 새롭고 활기찬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다가갈 생각입니다.

 

오늘 ‘일요일에 쓰는 편지’는 복지부 직원들에게 제 마음을 담아 보내는 ‘이임사’로 대신할까 합니다.

저에게 지난 1년 7개월은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느낌이 좀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함께 고민하고 열심히 노력해준 복지부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제 마음을 담아 작별 인사를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년에 다시 뵙겠습니다.

 

정든 보건복지부를 떠납니다.

 

사랑하는 보건복지 가족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아파하고, 고민하고, 기뻐했던 지난 1년 6개월의 기억을 제 소중한 추억의 서랍에 넣으려고 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나눈 많은 고민과 다짐이 아직도 저와 여러분의 가슴 속에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는데,

그 다짐이 다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렇게 먼저 떠나게 되었습니다.

 

보건복지 가족 여러분!
지난 1년 6개월 동안 여러분과 함께 일하면서 저는 여러분의 가슴마다 소중한 꿈이 하나씩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 막 공직을 시작하는 분들은 그분들대로, 10년이 지나고 20년, 30년이 지난 분들 역시 또 그분들대로-.

처음 공직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여러분은 가슴에 소중한 꿈 하나씩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지금도 여러분의 가슴 속에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공직을 시작하면서 여러분이 가슴 속에 간직한 꿈은 4천만 국민이 더불어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꿈이었을 것입니다.

따뜻한 사회,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꿈이었을 것입니다.

 

그 꿈이 너무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공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잊지 마시고, 고이 간직하시길 기원합니다.

지치거나 마음 흔들릴 때면 가슴에 품은 꿈을 꺼내 확인하고, 스스로 격려하시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공직에 있는 동안 그 꿈이 찬란하게 피어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고백합니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같은 길을 걸어오면서 저도 여러분과 같은 꿈을 가슴에 품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사회,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소중한 꿈을 여러분과 함께 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속드립니다. 여러분과 함께 나눠가진 이 꿈을 잊지 않겠습니다.

비록 몸은 여러분 곁을 떠나지만 이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러분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언제나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처음 여러분을 만났을 때가 생각납니다.

1년 6개월 전, 이 자리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보건복지부를 국민행복 책임부서로 만들어 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국민의 눈높이를 잊지 말고 국민과 함께하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민과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벽, 우리 내부를 갈라놓은 벽을 허물자고 말씀 드렸습니다.

성과중심의 조직을 만들어보자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그런 방향으로 조직을 이끌기 위해 노력했고, 적지 않은 성취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면에서 여전히 아쉽고 부족한 점이 없지 않지만 큰 가닥은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냉정한 평가는 여러분에게 맡깁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보건복지부를 떠나면서 그동안 여러 번 강조했던 말씀을 잔소리처럼 한 번 더 드리는 것으로 ‘작별인사’를 마치고자합니다.

 

보건복지부는 이미 우리 사회의 방향을 좌우하는 사회정책의 중심부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핵심부서라는 엄중한 책임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더 이상 예산이나 권한을 탓할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핵심과제인 저출산․고령화대책과 사회양극화를 해결해야할 책임이 모두 여러분의 두 어깨에 짐 지워져 있습니다.

사회안전망과 국민연금,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공공인프라를 튼튼히 구축함으로써

미래의 우리 사회를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사회’ ‘가장 경쟁력 있는 사회’로 만들 책임도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안전한 식탁을 지킬 책임도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여러분의 선택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사회정책, 미래정책의 책임부서로서 여러분이 맡은 역할을 다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력을 키우는 일입니다.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로 선의의 정책경쟁을 해야 국민이 행복해집니다. 균형이 잡힙니다.

 

제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지만 미처 마무리 하지 못한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튼튼한 육성체계를 세우는 일입니다.

시간에 쫒기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 어려운 것이 공직생활이지만 시간을 쪼개고 정성을 보태서 공부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경쟁력이 바로 우리 사회의 경쟁력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가서 여러분을 감시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맡은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누구보다 먼저 회초리를 들겠습니다.

 

여러분이 일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2005.12.31
김근태

 



여러분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모처럼 가족이나 연인과 오붓한 시간 보내셨는지요?

저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보건복지부 직원들과 함께 마포에 있는 ‘신나는 그룹 홈’을 다녀왔습니다.

‘신나는 그룹 홈’은 학대받는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이브 더 칠드런’이라는 사회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인데요,

하는 일에 비해 이름이 좀 특별하지요?

학대받는 아동들을 보호하는 곳이라는 느낌보다는 ‘아이들의 놀이터’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이름이 말해주는 것처럼 그곳은 흔히 생각하는 아동보호시설과 좀 다릅니다.

아이들이 ‘수용됐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고 가정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나하나 세심하게 배려한 곳이었습니다.

‘신나는 그룹 홈’에서 가정을 이뤄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은 모두 7명. 하나같이 표정이 밝고 맑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고 돌아오면서

‘지금까지 경험한 크리스마스 이브 가운데 단연 최고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슴 뿌듯했습니다.

복지부에서 일하면서 많은 시설을 방문했지만 이번에는 좀 특별한 느낌이었습니다.

우선, 우리 사회복지 수준이 이제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당장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시설을 짓고, 대규모로 수용하던 단계를 벗어나

‘사회적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의 인권과 감성을 고려하는 수준으로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룹 홈 운동’은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먹을거리와 입을거리 뿐만 아니라

‘가정의 따뜻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아직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은데요,

정말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도 이런 ‘시각’을 적극 받아들이고 발전시켜 나갈 생각입니다.

지난 번, 복지부 조직개편을 하면서 ‘아동권리팀’을 신설한 것도 그런 의미였는데요,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한 일보다 해야 할 일이 훨씬 많은 상황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학대받는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 그런 아이들을 찾아내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그런 아이들을 발견하고 ‘희망의 전화 129’를 통해 신고하면

24시간 핫-라인을 갖추고 있는 센터 직원들이 달려 나가 아이들을 쉼터로 인도합니다.

‘신나는 그룹 홈’도 그런 ‘쉼터’ 가운데 한곳입니다.

전국 14곳에서 이런 ‘쉼터’가 운영되고 있는데, 현재 긴급하게 보호하고 있는 아동이 109명 정도 됩니다.

물론 ‘예방센터’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방치된 아이들이 훨씬 많습니다.

제가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를 마치고 뿌듯했던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사실, 이번 행사는 제가 제안한 것이 아니고 직원들이 제안한 행사였는데요. 이날 행사에 필요한 비용은 모두 890만원이었습니다.

마침 지난 해 보건복지부가 ‘국가청렴위원회’로부터 우수기관으로 선정되어 200만원의 상금을 받았습니다.

이 상금을 어디다 쓸지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거기다가 올해 새로 시행한

‘관행적 부조리 근절을 위한 복지부 직원 행동강령’에 따라 직원들이 자진 신고한 금품이 250만원 정도 모였습니다.

이렇게 모인 450만원에 저와 직원들이 성의를 보태 모두 890만원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전국 14개 ‘쉼터’에 있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겨울 점퍼를 하나씩 선물할 수 있겠다는 제안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원들의 생각이 고맙고, 지난 일 년이 새삼 뿌듯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사실 복지부 직원들에게 처음 ‘사소하고 관행적인 부조리를 없애기 위한 캠페인을 하자’고 제안할 때만 해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처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공직사회에는 부조리가 만연해 있다’는 국민들의 인식을 씻어내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집행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정책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직사회에 대한 신뢰’가 필수적인데 그걸 위해 ‘클린 캠페인’을 해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야속하고 서운한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스스로 부조리한 집단으로 매도당하는 느낌이 들어 불편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저는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아직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회복한 수준은 아니지만 아주 사소하고 관행적인 일이라도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일 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생각해보면 작지 않은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연말을 맞아 덤으로 멋진 ‘싼타클로스’ 역할까지 하게 됐으니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혁명보다 어려운 것이 개혁이라고 합니다.

제도나 시스템을 바꾸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고정관념을 바꾸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정말 좋은 선물을 받은 것 같습니다.

복지부 직원들의 생각이 더디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느리지만 하나씩 복지부의 정책이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입니다.

2005.12.27
김근태

 



 



우울한 일이 많은 지난 일주일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슴이 휑 빈 것 같은 참담한 심정으로 뉴스를 지켜보았습니다.

황우석 교수를 둘러 싼 의혹과 공방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졌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한결같이 큰 기대를 갖고 있던 터라 사회적 충격도 컸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밝히고, 고쳐야 합니다.

문제가 생긴 원인을 찾아내 감당할 일이 있으면 가혹하더라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고 미래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진실이 바로 국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세계 속의 당당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일로 우리 과학계가 위축되거나 과학기술 연구가 후퇴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 후유증은 크겠지만 우리에겐 자정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실규명의 계기는 섀튼 교수나 ‘사이언스’지가 한 게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소장 과학자들이 한 것입니다.

양심적인 내부고발자의 용기있는 증언이 있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재기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우리 과학기술은 계속 발전해야 합니다.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생명공학 발전을 위한 투자도 위축돼선 안 됩니다.

 

아직 가려진 부분이 너무 많고,

우리 사회가 감당할 마음의 준비도 덜 된 상태라 이런 말씀이 좀 과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우울한 소식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눈에 확 띄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바로, 신애라-차인표 부부의 입양 소식입니다. 답답하던 국민들의 가슴에 신선한 기쁨을 안겨준 소식이었습니다.

특히 ‘가슴으로 낳은 딸’이라는 신애라 씨의 말은 많은 분들의 가슴에 작지 않은 울림을 일으켰습니다.

그 딸을 낳기 위해 두 분이 오랫동안 진정으로 기도하고 봉사해왔다는 소식을 들으며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정말, 새로운 생명을 얻는 일은 그런 마음으로 해야 하는 소중한 일입니다.

 

‘마땅히 축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신애라-차인표 씨 가족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두 분의 결단에 박수를 보냅니다.

 

처음 이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쁘게 받아들일 분들은 해외입양을 떠난 입양인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에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기 스타 부부가 공개입양을 했다는 소식은 아주 특별하게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마침 해외 입양을 떠났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분들의 모임인 ‘해외입양인연대(G.O.A'.L. Global Overseas Adoptees’ Link)'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토요일 늦은 밤, 파티가 열리는 신촌의 한 카페를 불쑥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마지막에는 ‘우리는 친구’라고 말하고 결국, 못 부르는 ‘친구여’라는 조용필의 노래도 한곡조 뽑고 돌아왔습니다.

 

사실, 맨 처음 해외 입양인들을 만났을 때는 차마 ‘친구’라고 말할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몇 차례 해외 입양인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아픔을 나누면서 ‘친구가 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해외 입양인들을 만났습니다.

국내에서도 몇 차례 만났고,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입양인들을 만났습니다.

만날 때마다 그분들이 간곡하게 부탁하는 말이 있습니다. 국내입양을 활성화해달라는 것입니다.

 

‘이제 해외입양을 중단하고, 국내에서 모두 감당할 때가 되지 않았나?’
‘과거에는 가난 때문에, 또 전쟁 때문에 할 수 없었다고 하겠지만, 먹고 살만한 지금도 해외 입양을 계속하는 것은 웬일인가?’
‘지금 해외로 떠나는 아이들이 커서 왜 대한민국이 나를 버렸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더 참담한 것은 그분들의 그 말씀에 100퍼센트 동의하면서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이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있는 나는 “당장이라도 정책적으로 ‘해외입양 중단’을 선언하고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국내입양’의 어려운 현실을 잘 알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선택은 결국, 가정을 잃은 아이들이 해외에서라도 가정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빼앗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별 수 없이 중기계획을 세워 ‘해외입양중단’을 실현할 계획입니다.

정책적 지원과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전환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국내입양을 늘려나갈 생각입니다.

동시에 수양부모 맺기 운동도 적극 뒷받침하겠습니다.


반대로 해외입양은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멀지 않은 장래에 그 어느 날 반드시 ‘해외입양 중단’이 결정될 수 있도록 첫 발자욱을 내딛겠습니다.

 

그러나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몇 차례 정부가 그런 생각을 갖고 정책을 추진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생각만큼 국내입양이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입양은 한 생명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신애라 씨의 말처럼 ‘가슴이 아파 낳은 자식’이 ‘배가 아파 낳은 자식’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신애라-차인표 씨가 내린 결단이 소중한 계기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두 분의 입양이 우리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핏줄’과 ‘입양’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큰 전환점이 됐으면 하는 기도를 바칩니다.

2005.12.20
김근태

 


얼마 전에 결재를 하면서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사실, 어지간한 일에는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입니다.

좀 모자라는 점이 있어도 믿고 맡기거나 격려하는 편이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좀 화가 났습니다.

 

위원회 때문이었습니다.

정부 일을 하다보면 위원회를 많이 만들게 됩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의 완결성을 높이는데 위원회가 효과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위원회를 구성할 때 제가 좀 까다롭게 굽니다. 잔소리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형식적으로 구성해서는 안 된다,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을 반반으로 구성해야 한다,

듣기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이 있다고 배제해서는 안 된다 등등.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이런 위원회가 불편하게 마련입니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위원을 구성해 신속하게 정책을 결정하고 일을 진전시키고 싶은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그날, 결재를 하면서 화를 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복지부 일을 한 지난 1년 반 동안 ‘실질적인 토론을 벌일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수도 없이 강조했는데

또 옛날 방식대로 위원회를 구성해서 결재해 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위원회를 구성해 심의한 정책은 반드시 뒤탈이 납니다.

당장은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꼭 사고가 터집니다.

정책 결정과정에서 소외된 분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사회적인 논쟁으로 번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쉽게 일하려다가 시간도 더 걸리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에 찬반이 팽팽한 위원회를 구성하면 당장은 삐걱거리고 힘겨워 보일지 모르지만

일단 정책이 결정되고 나면 훨씬 쉽게 일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팽팽한 토론 과정에서 모난 부분은 깎이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지게 마련입니다.

정책에 대한 집행력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집니다.

보건복지부의 특성상 위원회 구성만 잘 해도 일을 반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흔히 보건복지부를 ‘지뢰밭’이라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 대형사고가 터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 복지부 일을 시작하면서 주위에서 그런 걱정을 많이 들었습니다.

잘해야 경상이고, 잘못해서 지뢰를 밟으면 중상을 면하기 어렵다는 농담도 많이 들었습니다.

 

복지부에 널려 있는 지뢰 가운데 가장 큰 지뢰는 역시 이해집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분쟁입니다.

복지부에는 서로 이해를 달리하는 수많은 산하 단체들이 있습니다.

이런 단체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면 타협의 여지가 없는 극단적인 충돌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약분업을 둘러싼 분쟁이나 한약분쟁이 대표적입니다. 약대 6년제 문제를 놓고도 치열한 줄다리기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보건복지부 일을 하는 동안에 큰 분쟁은 없었습니다.

조마조마한 순간은 있었지만 서로 이해하고 한발씩 양보해 큰 충돌은 피했습니다.

정말 고맙고 다행스런 일입니다.

 

대신, 새로운 기풍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건강보험 수가 및 보험료 인상폭을 둘러싸고 해마다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습니다.

공급자인 보건의료계는 수가인상을 주장하고, 시민단체를 비롯한 가입자 대표들은 보험료 인상 반대를 주장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서로 평행선처럼 같은 주장만 반복하다 협상결렬을 선언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국민의 최저생활기준을 정하는 ‘중앙생활보장심의위원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서 정하는 기준이 ‘최저임금’의 기준이 되고, 기초생활수급권자를 정하는 기준도 되기 때문에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이 팽팽히 맞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합의’에 의해 기준이 정해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복지부 일을 시작하고 나서 2년 연속으로 네 차례에 걸쳐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처음에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지만 지루한 토론과정과 치열한 의견충돌을 거쳐

결국 ‘합의’를 이끌어내고 박수를 주고받으며 협상을 마쳤습니다.

 정말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는 정부와 보건의료계의 각 단체들이 모여 보건의료계 투명사회협약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 국민들은 보건의료계를 아직도 리베이트와 뒷거래가 많이 남아있는 분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국민의 불신을 털어내기 위해 보건의료계의 각 단체 대표들이 모여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자고 결의한 것입니다.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거북한 부분은 좀 가려놓고, 속 시원하게 본질적인 부분까지 손대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합의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합의하면서 점차 투명성을 높여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투명함’을 흔들리지 않는 큰 방향으로 세우고 우선 쉽게 합의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진전시켜 나가면

국민이 기대하는 수준으로 투명성을 높여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일수록 이런 합의를 이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협상에 임하는 대표들의 입장에서는 ‘협상결렬’을 선언하는 것은 가장 쉽고 안전한 선택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렬’을 선언한 대표는 자기가 속한 단체에 돌아가 ‘선명성’을 주장하고 박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어렵더라도 양보해 합의를 이루면 ‘배신자’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고 곤경에 처하기 십상입니다.

그런 어려움을 각오하고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결단’해준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사회에는 ‘합의’를 이뤄야 할 일이 수없이 많습니다.

삐걱거리고 있는 노사정위원회를 정상화 시키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크지만 정작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은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인내를 갖고 추진하면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번거롭고 둔해 보이지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이런 합의의 기풍이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이 길밖에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합의’는 ‘통합’과 ‘발전’으로 향하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2005.12.13
김근태

 

 

국회에 국민연금 특별위원회가 구성됐습니다.

아직 속도를 내고 있지는 않지만 기대가 큽니다.
일단 본격적인 논의의 장이 만들어 졌다는 데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물론 곧 속도도 낼 것이고, 강력한 동력도 만들어져야 하겠지요.

국회의원들과 각 정당 지도부의 고충은 이해가 됩니다.


민심의 바다를 항해할 수밖에 없는 의원과 지도부 입장에서 국민을 향해

‘더 내고, 덜 받자’고 요청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미래에 닥칠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지금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고 요청하는 것은

현실 정치 세력으로서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곤혹스런 처지를 이해합니다.

정치는 숙명적으로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이 얼음처럼 냉정하다면, 미래는 안개처럼 막연합니다.

미래에 닥칠 ‘재앙’이 아무리 엄청난다 하더라도,

국민이 겪고 있는 현실의 고달픔과 팍팍함을 고려해야 하는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당장에 닥친 현실을 먼저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연금개혁’은 정권의 명운을 걸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안전한 내일’을 위해 연금개혁이 필수적이라는데 대해 국제사회가 예외 없이 동의하면서도

막상 개혁을 성공시킨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과정에서 정권이 흔들린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사정을 잘 알면서도 우리 국회는 ‘국민적 토론’이라는 정공법을 받아 들였습니다.

이런 결정을 내린 대한민국 국회에 박수를 보냅니다.

차일피일 외면하거나 회피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인데 여야 지도부는

국민연금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토론을 시작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처음 보건복지부 일을 시작할 때가 생각납니다.

일을 시작하면서 많은 분들이 ‘과연 김근태가 국민연금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지켜보자’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더 내고 덜 받자’는 기존의 정부 입장과 달리 국민의 입장에서 속 시원한 해답을 내길 기대하는 분들,

뭔진 모르지만 ‘뾰족한 해법’을 던질 거라고 기대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민스러웠습니다. ‘정부안’을 만든 분들과 함께 다른 대안은 없는지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국가재정을 대거 투입하는 방법이 있지만, 결국 그만큼 국민의 세금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묘안’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을 하지 않으면 재앙적 미래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분명했습니다.

이것이 냉엄한 현실이라는 점을 국민에게 알리고 이해를 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댓가는 컸습니다.

오랫동안 같은 생각을 하고 저를 지지해주던 상당히 많은 분들이 ‘실망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가깝게 지내던 분들은 ‘그렇게 하면 정치인 김근태의 미래는 포기해야 한다’는 말로 겁을 주기도 했습니다.

“국민연금제도는 과거 군사정권이 국민을 속이고 ‘막대한 자금’을 손쉽게 끌어다 쓰기 위해 시작한 것인데

왜 그 책임을 다 짊어지려고 하느냐 또 그게 도대체 가능한 일이냐?”는 말도 들었습니다.

 

흘러간 냇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습니다.

‘미래의 재앙’이라는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는데 과거 군사정권 탓만 하는 건 무의미한 일입니다.

시한폭탄의 시계바늘을 최대한 뒤로 되돌리거나 시한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국민의 입장에 서서 국민연금 기금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지켜내고,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 가장 냉정한 오늘의 ‘현실’입니다.

 

연금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분들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첫단추부터 잘못 채운 연금제도 때문에 심각한 불신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그런 불신이 가슴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렇다고 무책임한 선택을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사회가 최소한의 안전판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초고령사회’라는 핵폭탄을 맞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예상치 못한 일도 있었습니다.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불신이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국민연금 기금을 동원해 대규모 투자사업을 하겠다’는 경제부처의 언급이 있었습니다.

또 적대적 M&A를 국민연금기금을 동원해 막겠다고 하는 경제부처 장관의 주장도 있었습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그리고 경영권 보장을 위해 경제부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는 할 수 있는 얘기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사정이 크게 달라진 것을 외면하는 발언이었습니다.
국민의 눈에는 결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국민연금 기금을 갖다 쓰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이 되어 안 된다,

더 큰 후유증이 남는다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을 지켜야하는 보건복지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가 편하게 돈을 끌어다 쓰기 위해 연금제도를 도입한 것이 아니냐는 국민적 불신이 심각한 상황에서

내부 토론 및 합의 없이 국민설득과정 없이 마치 각본대로 기금 동원이 경제부처의 생각대로 결정되는 것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제가 단호하게 나섰습니다. 경제부처에 대한 정책적 문제 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적 문제제기가 정치적인 해석이 보태지면서 한바탕 혼선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문제는 국회를 설득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당조차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개혁방향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메아리 없이 외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복잡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각 정당의 지도부들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맨 몸으로 각 당을 방문해 지도부를 만나고 요청했습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 그리고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서로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이대로는 못 간다.

머리를 맞대고 토론해 보다 나은 안을 만들자’고 뜻을 모아 주었습니다.

 

복잡한 몇 구비의 고비를 넘어 마침내 연금제도에 대한 토론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런 일입니다.

연금제도에 대한 범국민적인 토론은 단순히 좋은 제도를 만드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국민적 토론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라는 기본 인프라를 이뤄낼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훨씬 중요합니다.

 

국제사회의 예를 보더라도 연금제도 개혁방안에 대한 국민적 토론을 제대로 진행하고 합의를 이룬 나라는

예외 없이 사회통합을 이루고 더 큰 경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반면, 당장의 어려움과 혼란을 이겨내지 못하고 논쟁과 토론을 회피한 나라일수록 국민통합에 실패한 경우가 많습니다.

 

국회 특별위원회의 역할을 기대하고 마음 졸이고 있습니다.

국민의 미래가 걸린 중대사인 만큼 국회에서 충실한 논쟁이 벌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결론을 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국회 국민연금 특별위원회가 국민통합을 위한 소중한 첫걸음을 뗐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정말 바랍니다.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2005.12.6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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