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일이 많은 지난 일주일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슴이 휑 빈 것 같은 참담한 심정으로 뉴스를 지켜보았습니다.

황우석 교수를 둘러 싼 의혹과 공방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졌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한결같이 큰 기대를 갖고 있던 터라 사회적 충격도 컸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밝히고, 고쳐야 합니다.

문제가 생긴 원인을 찾아내 감당할 일이 있으면 가혹하더라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고 미래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진실이 바로 국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세계 속의 당당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일로 우리 과학계가 위축되거나 과학기술 연구가 후퇴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 후유증은 크겠지만 우리에겐 자정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실규명의 계기는 섀튼 교수나 ‘사이언스’지가 한 게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소장 과학자들이 한 것입니다.

양심적인 내부고발자의 용기있는 증언이 있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재기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우리 과학기술은 계속 발전해야 합니다.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생명공학 발전을 위한 투자도 위축돼선 안 됩니다.

 

아직 가려진 부분이 너무 많고,

우리 사회가 감당할 마음의 준비도 덜 된 상태라 이런 말씀이 좀 과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우울한 소식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눈에 확 띄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바로, 신애라-차인표 부부의 입양 소식입니다. 답답하던 국민들의 가슴에 신선한 기쁨을 안겨준 소식이었습니다.

특히 ‘가슴으로 낳은 딸’이라는 신애라 씨의 말은 많은 분들의 가슴에 작지 않은 울림을 일으켰습니다.

그 딸을 낳기 위해 두 분이 오랫동안 진정으로 기도하고 봉사해왔다는 소식을 들으며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정말, 새로운 생명을 얻는 일은 그런 마음으로 해야 하는 소중한 일입니다.

 

‘마땅히 축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신애라-차인표 씨 가족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두 분의 결단에 박수를 보냅니다.

 

처음 이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쁘게 받아들일 분들은 해외입양을 떠난 입양인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에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기 스타 부부가 공개입양을 했다는 소식은 아주 특별하게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마침 해외 입양을 떠났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분들의 모임인 ‘해외입양인연대(G.O.A'.L. Global Overseas Adoptees’ Link)'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토요일 늦은 밤, 파티가 열리는 신촌의 한 카페를 불쑥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마지막에는 ‘우리는 친구’라고 말하고 결국, 못 부르는 ‘친구여’라는 조용필의 노래도 한곡조 뽑고 돌아왔습니다.

 

사실, 맨 처음 해외 입양인들을 만났을 때는 차마 ‘친구’라고 말할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몇 차례 해외 입양인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아픔을 나누면서 ‘친구가 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해외 입양인들을 만났습니다.

국내에서도 몇 차례 만났고,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입양인들을 만났습니다.

만날 때마다 그분들이 간곡하게 부탁하는 말이 있습니다. 국내입양을 활성화해달라는 것입니다.

 

‘이제 해외입양을 중단하고, 국내에서 모두 감당할 때가 되지 않았나?’
‘과거에는 가난 때문에, 또 전쟁 때문에 할 수 없었다고 하겠지만, 먹고 살만한 지금도 해외 입양을 계속하는 것은 웬일인가?’
‘지금 해외로 떠나는 아이들이 커서 왜 대한민국이 나를 버렸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더 참담한 것은 그분들의 그 말씀에 100퍼센트 동의하면서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이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있는 나는 “당장이라도 정책적으로 ‘해외입양 중단’을 선언하고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국내입양’의 어려운 현실을 잘 알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선택은 결국, 가정을 잃은 아이들이 해외에서라도 가정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빼앗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별 수 없이 중기계획을 세워 ‘해외입양중단’을 실현할 계획입니다.

정책적 지원과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전환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국내입양을 늘려나갈 생각입니다.

동시에 수양부모 맺기 운동도 적극 뒷받침하겠습니다.


반대로 해외입양은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멀지 않은 장래에 그 어느 날 반드시 ‘해외입양 중단’이 결정될 수 있도록 첫 발자욱을 내딛겠습니다.

 

그러나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몇 차례 정부가 그런 생각을 갖고 정책을 추진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생각만큼 국내입양이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입양은 한 생명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신애라 씨의 말처럼 ‘가슴이 아파 낳은 자식’이 ‘배가 아파 낳은 자식’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신애라-차인표 씨가 내린 결단이 소중한 계기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두 분의 입양이 우리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핏줄’과 ‘입양’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큰 전환점이 됐으면 하는 기도를 바칩니다.

2005.12.20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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