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모처럼 가족이나 연인과 오붓한 시간 보내셨는지요?

저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보건복지부 직원들과 함께 마포에 있는 ‘신나는 그룹 홈’을 다녀왔습니다.

‘신나는 그룹 홈’은 학대받는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이브 더 칠드런’이라는 사회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인데요,

하는 일에 비해 이름이 좀 특별하지요?

학대받는 아동들을 보호하는 곳이라는 느낌보다는 ‘아이들의 놀이터’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이름이 말해주는 것처럼 그곳은 흔히 생각하는 아동보호시설과 좀 다릅니다.

아이들이 ‘수용됐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고 가정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나하나 세심하게 배려한 곳이었습니다.

‘신나는 그룹 홈’에서 가정을 이뤄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은 모두 7명. 하나같이 표정이 밝고 맑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고 돌아오면서

‘지금까지 경험한 크리스마스 이브 가운데 단연 최고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슴 뿌듯했습니다.

복지부에서 일하면서 많은 시설을 방문했지만 이번에는 좀 특별한 느낌이었습니다.

우선, 우리 사회복지 수준이 이제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당장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시설을 짓고, 대규모로 수용하던 단계를 벗어나

‘사회적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의 인권과 감성을 고려하는 수준으로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룹 홈 운동’은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먹을거리와 입을거리 뿐만 아니라

‘가정의 따뜻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아직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은데요,

정말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도 이런 ‘시각’을 적극 받아들이고 발전시켜 나갈 생각입니다.

지난 번, 복지부 조직개편을 하면서 ‘아동권리팀’을 신설한 것도 그런 의미였는데요,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한 일보다 해야 할 일이 훨씬 많은 상황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학대받는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 그런 아이들을 찾아내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그런 아이들을 발견하고 ‘희망의 전화 129’를 통해 신고하면

24시간 핫-라인을 갖추고 있는 센터 직원들이 달려 나가 아이들을 쉼터로 인도합니다.

‘신나는 그룹 홈’도 그런 ‘쉼터’ 가운데 한곳입니다.

전국 14곳에서 이런 ‘쉼터’가 운영되고 있는데, 현재 긴급하게 보호하고 있는 아동이 109명 정도 됩니다.

물론 ‘예방센터’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방치된 아이들이 훨씬 많습니다.

제가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를 마치고 뿌듯했던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사실, 이번 행사는 제가 제안한 것이 아니고 직원들이 제안한 행사였는데요. 이날 행사에 필요한 비용은 모두 890만원이었습니다.

마침 지난 해 보건복지부가 ‘국가청렴위원회’로부터 우수기관으로 선정되어 200만원의 상금을 받았습니다.

이 상금을 어디다 쓸지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거기다가 올해 새로 시행한

‘관행적 부조리 근절을 위한 복지부 직원 행동강령’에 따라 직원들이 자진 신고한 금품이 250만원 정도 모였습니다.

이렇게 모인 450만원에 저와 직원들이 성의를 보태 모두 890만원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전국 14개 ‘쉼터’에 있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겨울 점퍼를 하나씩 선물할 수 있겠다는 제안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원들의 생각이 고맙고, 지난 일 년이 새삼 뿌듯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사실 복지부 직원들에게 처음 ‘사소하고 관행적인 부조리를 없애기 위한 캠페인을 하자’고 제안할 때만 해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처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공직사회에는 부조리가 만연해 있다’는 국민들의 인식을 씻어내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집행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정책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직사회에 대한 신뢰’가 필수적인데 그걸 위해 ‘클린 캠페인’을 해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야속하고 서운한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스스로 부조리한 집단으로 매도당하는 느낌이 들어 불편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저는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아직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회복한 수준은 아니지만 아주 사소하고 관행적인 일이라도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일 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생각해보면 작지 않은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연말을 맞아 덤으로 멋진 ‘싼타클로스’ 역할까지 하게 됐으니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혁명보다 어려운 것이 개혁이라고 합니다.

제도나 시스템을 바꾸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고정관념을 바꾸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정말 좋은 선물을 받은 것 같습니다.

복지부 직원들의 생각이 더디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느리지만 하나씩 복지부의 정책이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입니다.

2005.12.27
김근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