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불질러 놓은 화두입니다.

 

‘정부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혁신활동’을 시작한지 제법 시간이 지났고,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뭔가 아직 개운치 않습니다.

 

지금, 보건복지부도 변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교육하고, 평가하고, 제도를 뜯어고치고 있습니다.

 

‘혁신 노이로제에 걸리겠다’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혁신 불지피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작년보다 훨씬 과격한 방법도 동원하고자 합니다.

‘혁신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직원들을 사실상 협박하고 있습니다.

 

서열과 관행을 파괴한 인사를 단행하며,

젊은 서기관들과 사무관급 직원들로 주니어보드를 구성해

혁신의 전면에 스스로 나서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미국 기업인 GE가 기업문화 혁신을 위해 만든 Work-out 프로그램을

보건복지부에 도입할 준비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공직사회의 문화를 바꿀 차례가 되었습니다.

공직자들이 가슴으로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혁신에 앞장설 수 있을 정도가 됐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그래야 성공적인 혁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혁신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공직사회는 ‘국민의 신뢰’를 먹고사는 집단입니다.

공직사회에 대한 불신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집니다.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은 국가경쟁력을 훼손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공직사회는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 공직사회는 국민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우리 공직사회의 경쟁력은 미국이나 유럽의 공직사회와 견줄만합니까?

 

저는 우리 공직사회의 능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공직사회는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 집단입니다.

업무에 대한 책임성과 열정도 매우 높습니다.

 

실제로 밤 11시가 넘도록 정부청사의 불빛이 환하게 켜져 있고,

수많은 공무원들이 땀 흘려 일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벽’입니다.

우리 공직자들은 자기가 속한 칸막이 안에서만 일하는데 너무 익숙해져있습니다.

조직 내 타 부서와 협조하고, 다른 정부부처와 협력하는데 서툽니다.

정부조직 밖에 있는 국민과 소통하는 데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국민의 소리를 가슴을 열고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국민에게 설명할 것은 설명하며,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설득도 해야 하는데 그런 경험이 너무 부족합니다.

 

이런 경향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과거에는 정책방향과 지침을 정하는 집단이 따로 있었습니다.

정부의 각 부서는 세부계획만 잘 세우면 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정부조직은 그런 의사결정 방식을 가장 효율적으로 집행하도록 설계되었고,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일해 왔습니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효율적인 실행계획을 만들기 위해

높은 칸막이를 만들고 분장된 업무에만 충실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옆을 돌아볼 틈도,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진전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정책에 대한 정부 각 부처, 부서, 담당자의 권한과 책임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익집단, 언론, 국회, 사회단체, 국민 등 직간접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참여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사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공무원조직이 효율성이 가장 높은 집단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이끌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IMF 이후 지금은 어떻습니까?

기업의 효율이 정부의 효율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정부가 기업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것으로 되고 말았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지요.

 

저는 간부들에게 보건복지부를 미국이나 영국의 보건복지부 못지않은

경쟁력 있는 부서로 만들자고 얘기합니다.

그래야 미국이나 영국보다 나은 “국민통합국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력의 핵심은 ‘벽 없는 조직’을 만드는 것입니다.

타 부서 그리고 국민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수직적 칸막이 체제에 맞게 설계된 시스템을 수평적 열린 시스템으로 바꿔야 합니다.

 

외부와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업무체계,

조직구조, 평가제도 등을 모두 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직자 스스로 환경변화를 인식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보건복지부는 국민 개개인의 건강과 삶의 질에 관해 피부에 닿는 정책을 담당하는 곳입니다.

이제 보건복지부는 한 단계 더 높은 변화를 이뤄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편지를 읽는 여러분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보건복지부가 변하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2005.3.14
김근태



 



“우리에게 ‘과거’란 무엇일까?”


요즘 들어 이런 고민에 빠질 때가 많다.

자동차 경주를 하듯 분주한 일과를 보내는 것이 요즘 일상이지만,

간혹 자동차가 꼼짝없이 정체구간에 갇혀 짬이 날때면 생뚱맞게도 이런 고민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어떤 대학교수가 정말 생뚱맞은 ‘망언’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솔직히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내용과 표현이 너무나 도발적이고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짐작 못했던 건 아니지만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두려웠다.

 

사실, 사석에서 비슷한 뉘앙스의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번 한교수의 주장처럼 도발적이지는 않았지만 언뜻언뜻

‘결과적으로 근대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느냐’는 뉘앙스를 비치곤 했다.

그런 사람을 만날 때면 가급적 자리를 피했지만 가끔씩 논쟁을 했던 기억도 있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다수는 같은 논리로 ‘군부독재’도 옹호하곤 했던 것 같다.

군부독재 자체는 나쁘지만 산업화에는 기여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과정이 어떠했건 결과적으로 사회를 발전시켰으니까 공과 과를 구분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제가 패망했고, 군부독재도 국민의 선택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결과적으로’ 사회를 발전시켰다고 믿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논리의 파탄’

‘지성의 공황’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같다.

 

‘결과적으로’ 눈에 보이는 진전을 이루기만 하면 과정이 어떻건,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어떻건 상관없다는 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이완용이나 이광수 같은 친일파를 낳았고,

히틀러 같은 나치주의자들을 길렀으며,

군부독재가 활개 칠 수 있는 토양이 됐다는 점을

이 사람들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정파적 계산에만 몰두하다보니

모른 체 하는 데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스펜서 존슨의 책 ‘선물’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과거에서 배움을 얻지 못하면 과거를 보내기 쉽지 않다.

배움을 얻고 과거를 보내야 현재가 더 나아진다.”


우리는 요즘 과거를 털고 미래로 가자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과거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교훈을 얻지 못하면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그래야 현재가 더 나아질 수 있고, 미래를 환히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과거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진실규명’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단죄’만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곧 과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사회가 합의하는 과정이고,

그래야 과거의 교훈에서 현재와 미래를 발전시키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5.3.7
김근태


 

 

새해가 두 달 지났습니다.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나갑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여러분께서도 많은 계획을 세웠을 줄로 압니다.

잘 지키고 계신지요?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담배끊기’ 실패담을 예로 들며 작심삼일의 교훈을 떠올리는 분들도 많습니다.

사실, 새해를 맞으면서 저는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한 분들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솔직히 지난 연말에 담배값을 인상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서민경제가 어려운 상황인지라 ‘담배가 서민의 유일한 낙’이라는 말이 자꾸 귓전을 맴돌았습니다.

언젠가 문인들이 푸념하던 목소리도 쟁쟁했습니다.


“수입은 줄어들고 걱정거리는 늘어나는데 창작의 유일한 ‘벗’인 담배값을 올리면 우린 어쩌란 말이냐?”

 

다행히 언론보도를 보면 새해 들어 사회적으로

‘이 참에 끊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성인 남성의 8.3%가 금연을 실행했고,

이분들 가운데 73%가 담배값 인상이 금연을 결심하는데 영향을 끼쳤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담배값 인상을 결정하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정말 다행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염치불구하고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이 참에 끊어 버립시다!”

 

저는 담배를 끊은 지 3년 8개월쯤 됐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담배를 피웠으니까 ‘애연가’에 속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살면서 담배를 끊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감옥을 들락날락 하면서 원치 않게 금연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감옥에서도 담배를 피울 기회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화장실에 숨어서 피워야 한다는 사실이 싫어서 피우지 않았습니다.

 

숨어서까지 담배를 피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감옥을 나오면 다시 담배를 찾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3년 8개월 전에 완전히 끊었습니다.

 

처음 담배를 피운 것은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친구들끼리 ‘마지막으로 한판 놀자’고 모여서 술도 한잔씩 하고 담배도 한대씩 물었습니다.

 담배를 꼬나물고 거울을 보니 꽤 그럴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분들이 저처럼 우연한 계기에

어른 흉내 내다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볍게 시작한 것에 비해 담배 때문에 치러야하는 댓가가 너무 큽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보건복지부 장관이라 국민건강보험 지출이 늘어날까봐 그러는 것 아니냐고 농담도 합니다만

실제로 담배 때문에 건강을 잃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목숨을 잃는 분들도 많습니다.

국가적으로 너무 큰 손실입니다.

 

국제사회에서 ‘금연’은 이제 상식입니다.

새삼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군말처럼 생각될 정도입니다.

 

우리도 그동안 지속적인 금연정책을 펴왔고 앞으로 금연정책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방침도 갖고 있습니다.

‘가격정책을 통한 금연 확산이 가장 유력한 방법’이라는 것도 세계적으로 인정된 명제입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우리가 정말로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가격 이외의 정책을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담배값을 올리는 정책, 다시 말해 ‘가격정책’을 펼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안에 담배값을 한차례 더 올릴 생각입니다.

작년에 재경부와 기획예산처 장관을 만나 올해 한차례 더 올리기로 합의하고 발표까지 했습니다.

 

그때 가면 또 반대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생각입니다.

 

금연에 대한 ‘사회적 결단’이 내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기대하겠습니다.

정말 그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2005.2.28
김근태


 



혼란스러웠다.
여주교도소에서 이근안 씨를 만나고 돌아와서 밤잠을 설쳤다.

그때 입술이 부르텄는데 아직도 완전히 낫지 않았다.

 

사태를 악화시킨 건 장영달 의원이었다.

내가 다녀온 다음 날쯤인가 여주교도소로 이상락 전 의원을 면회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내가 이근안 씨를 면회한 얘기를 우연히 들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언론에 귀띔한 것이었다.

 

설 다음날, 방송 카메라 기자들이 집으로 밀고 들어왔다.

첫 번째 온 기자들은 성공적으로 방어해 돌려보냈지만,

그 다음에 들이닥친 기자들이 막무가내로 집으로 밀고 들어오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던 것은 물론

이근안 씨를 만난 것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잘 정리되지 않고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이근안 씨를 만날 생각이 없었다.

아니, 비서실에서 주의하지 않고 일정을 짜는 바람에 일이 어긋나서 이근안 씨를 만나게 된 셈이었다.

 

이상락 전 의원을 설 전에 면회하자는 게 비서진의 생각이었다.

내 의견을 말할 사이도 없이 이 의원을 비롯해 면회를 같이 할 사람들에게

이미 통지를 하고 약속을 해버리는 바람에 면회를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물론, 이상락 전 의원에 대해서는 상당한 연민이 있었고,

면회를 가야할 합당한 이유도 있었다.

 

학벌사회인 이 나라에서 가난해서 진학 못한 것도 억울한데

선거에서 좀 과장했다는 이유로 의원직도 뺏고 징역까지 선고한 가혹한 법원의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는 의미에서도 면회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근안 씨가 이 전의원이 있는 여주교도소에 함께 있다는 얘기가 뒤늦게 떠올랐다.

부담스러웠다. 비서관에게 안갈 수 없느냐고 묻고,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여주교도소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오면 옹졸한 사람,

국민 대통합을 주장하면서도 막상 솔선수범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내키지 않았다.

내키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다.

 

끔찍한 고문을 받던 그때가 떠오를 것이 분명해서 망설였다.

면회를 가야하는 날 오전까지 망설였다.

그러다가 교도소 당국을 통해 이근안 씨의 의견을 물어달라고 했다.

본인이 동의하면 면회를 하겠다고 했다.

 

면회실로 들어서는 이근안 씨를 보면서 당혹스러웠고 혼란스러웠다.
여전히 건장했지만 키가 나와 어슷비슷했다.

고문당하고 욕먹고 그리고 소리 지르던 그때 그곳에서와는 엄청나게 달리….


이게 분명히 현실인데, 안심해도 되는지 약간 불안해지기도 했고….
악수를 했다. 두 손을 잡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왔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도 내 눈과 마음은 다른 것을 보고 싶어 했다.

눈감을 때까지 사죄한다고 하고,

한참 있다가 무릎 꿇고 사죄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고맙다고 말했지만 마음속까지 흔쾌해지지는 않았다.

 

지난 날 받은 고문의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개운해하지 않았던 것은 내 머리와 가슴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어떤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사죄가 사실일까?

남영동의 책임자였던 박처원 씨의 치사한 배신에 분노하고,

권력에 의해 토사구팽 당했다고 말하고 있는 저 말속에

짐승처럼 능욕하고 고문했던 과거에 대한 진실한 참회가 과연 있는 것일까?

중형을 받을까봐 충분히 계산해서 나에 대한 고문범죄의 공소시효가 지난 시점에서야

비로소 자수했던 저 사람의 저 말에 대해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인가?”

 

끊임없이 의구심이 떠올랐다.

눈물을 흘리면서 얘기하는지, 또 어느 정도 흘리고 있는지 나는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아, 그러나 그것은 신의 영역이구나.

감옥살이를 하고 있고, 기대에는 못미치더라도 사죄를 하고 있는 저것이 분명 현실이다.

저런 저 사람에게 더욱 진실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내 권리를 넘어서는 게 아닌가?”

 

어제 어느 목사님을 만나 말씀을 들으면서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솔직히 조금 아쉽다.

그러나 이제 지나가고자 한다.

정말로 넘어가고자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진정으로 하늘에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지금 나는….

2005.2.21
김근태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 내외분을 모시고 자활후견기관을 방문했다.

첫 느낌은 이름이 좀 난해하다는 것이었다.

그냥 ‘자활지원센터’라고 하면 어떨까?

 

이곳은 근로능력이 있는 빈곤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훈련도 시키는 곳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일할 의지로 충만한 분들이 모인 곳이다.

 

이곳에서는 얼마 전 국민의 질책을 크게 받았던 ‘결식아동 도시락’에

사랑을 담아 만들고 배달하는 일도 한다.

간병일도 하고, 도배 같은 집수리 일도 열심이다.

 

그런 일을 하는 분들 가운데 비교적 자활에 성공한 네 분을 모시고

대통령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은 대략 다음과 같다.

 

“사실, 그동안 좀 혼란스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중소기업에 일손이 딸리고 사람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데 공공근로를 시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이것은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래서 결국 외국 노동자들이 대거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미스매치 되어서 그렇겠거니 생각해왔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의 말씀을 들으니 정말로 이해가 된다.

빈곤층의 상당수는 근로능력이 없거나 부족하고,

또 근로능력이 있더라도 사회와 국가가 실질적으로 도와주고 훈련시켜야 스스로 일을 해서 빈곤을 탈출할 수 있다.

또 그래야 자부심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20대 초반인 딸을 데리고 산다는 40대 초반쯤 된 한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상당히 세련되고 미인이며 지금은 자활에 성공하고 있다는 그 아주머니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였다.

 

아마도 설움에 북받쳐서 그랬던 것 같다.

“희망이 있어야 살지요. 희망이 있어야…”

 

그 말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하다.

자활사업은 경쟁에서 탈락한 이웃이 다시 경쟁의 장으로 돌아오도록 사회가 돕는 일이다.

희망을 잃은 사람이 희망을 갖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는 말과 동의어다.

 

우리 사회가 이웃과 희망을 나누는 따뜻한 사회로 발전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지난 설 연휴를 지내면서 이런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편지를 읽는 여러분께서도 그런 생각을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우리 사회 희망의 질량도 커지는 셈이니까...


2005.2.14
김근태




 

 

지난 주말에는 ‘사랑의 연탄 나누기 운동’에 참여했다.

지금은 독립공원, 그전에는 서대문구치소 병사 위쪽에 있는 달동네였다.

 

‘서대문구치소 병사’는 나에게 아픈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곳이다.

85년, 남영동에서 야만적인 고문을 받고 내동댕이쳐졌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내 삶을 되찾기 위해 모든 마음을 다 모았다.

 

매일 세 번씩 따뜻한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았다.

그때의 그 ‘따뜻함’이 나를 ‘삶’의 방향으로 되돌려내는 어머니 같은 힘이 되었다.

그 ‘따뜻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연탄에서 느끼는 것이 바로 그런 따뜻함이다.

전형적인 산동네 비탈길에서 40~50명이 늘어서서 연탄을 받아 넘기는 일은 참으로 리드미컬했다.

사랑이 손에서 손으로 따뜻하게 전달되는 듯했다.

 

내 옆으로 한두 명 건너편에는 젊은 여성과 청년들이 떠들썩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두어 명이 구두를 벗어던지고 양말 바람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비탈이어서 굽이 있는 구두가 불편하다고 했다.

왠지 콧등이 시큰해졌다.

 

그리고 별안간 박세리가 생각났다.

골프화와 양말을 벗어버리고 ‘맨발’로,

그 ‘하얀 맨발’로 물속으로 들어가 공을 쳐내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98년이었던가? IMF 위기로 경제가 어렵고,

국민 모두가 미국에 기죽어 있을 때,

박세리는 미국에서 벌어진 미국의 운동경기인 골프에서 우승을 한 것이다.

 

그때 박세리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용기를 주었던가?

 

민생경제가 어렵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

연탄나누기에 참여한 젊은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기대한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맨발의 사랑나누기’ 같은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게 할 수는 없을까?

 

곧 설날이다.

이번 설에는 그런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지내야겠다.

여러분께서도 그런 생각을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

 

2005.2.7
김근태

 


 

 

지난 주에는 소록도를 찾아갔다.


대구, 경북 지역에 뿌리를 내린 ‘참길회’ 회원 130여명이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호남에 기반을 둔 ‘소록도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 함께 방문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동행에 나서기로 했다.

‘한센병 환우들과 인사할 때는 손에 힘을 주고 악수를 해야 한다’
‘인사가 끝난 다음에 바로 손을 씻지 마라. 그렇게 하면 수군거림 속에 욕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한센병 환자들이 상처를 입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들이 준엄하게 행동수칙을 정해 주었다.

약간 긴장되었다.

에이즈 환자를 만나러 갈 때도 그랬는데 그에 버금가는 부담감이 없지 않았다.

녹동에서 배를 타고 소록도를 향하면서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가 떠올랐다.

그 피리소리를 들으려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삘릴리~’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그 사이 사이에 무덤도 남기지 못하고 흔적없이 사라져간

만여 명의 한센병 환자들의 한숨과 슬픔이 뿌옇게 다가오는 듯 했다.

얼마간 결심이 필요했다.

노인 환자들이 식사하시는 것을 도왔다.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침이 튀기는 듯했다.

움찔 물러났다.

 

영화 ‘빠삐용’에서 주인공이 환자들을 대담하게 만나는 장면이 순간 스쳐갔다.

‘거리를 두어서는 안된다. 장관이 거리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힘을 주어 악수했다.

병실 모두를 방문해서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마을도 찾아갔다.

손 또는 발이 없는 분들과 손과 눈이 마주치는 악수를 했다.

 

그 분들 중 몇 분이 마음을 여는 듯 했다.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분들이 세상은 물론

가족, 친구 그리고 국가로부터도 외면당해 왔던 지난날의 아픔과 고통에 비해

이것은 아주 작은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언제 시작할 수 있는가?

자문하면서 소록도를 떠나왔다.

저 건너편에 소록도를 남겨두고 말이다….

2005.1.24
김근태



‘부실 도시락’ 문제가 많은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수준이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자괴감을 느낀 분들이 많았습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문제의 발단은 ‘준비부족’ 때문이었습니다.

 

작년 하반기, 방학 때 여러 가지 이유로 밥을 못 먹는 아이들이 많다는 점이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니까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일을 시작했던 것이 드러났습니다.

 

실은, 정부 안에서도 준비가 부족하다는 문제제기가 있었고 논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밥 못 먹는 아이는 없게 하자’는 쪽으로 정책결정이 이뤄졌습니다.

 

‘학기 중에 학교에서 무료급식을 받는 아이들을 방학 때는 아무 대책 없이 방치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판단과 주장 앞에 ‘준비가 덜 되어 있다’

‘5만 5천 명에서 25만 명으로 확대할 때 뒷받침이 가능한 인프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대가 있었지만 ‘그래도 해내자’ 하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이런 방침에 따라 실제로 이 일을 맡을 지방자치단체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정책결정 취지에 대해 일선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나아가지 못한게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마음’을 전달하는 데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정책이라는 재료에 ‘사랑과 정성’을 보태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이들의 입장에서 한번만 더 생각했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질책을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지행정은 정책이라는 그릇에 세심하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 전달하는 일입니다.

특히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서귀포에서 부실 도시락이 전달 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며칠 뒤 ‘밤골 공부방’이라는 곳을 방문했습니다.

천주교 수녀님들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공부도 가르치고 점심도 제공하는 곳입니다.

 

여기 아이들은 모두 명랑하고 활발했습니다.

그 다음에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초등학교 여학생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 학생으로부터 ‘못산다고 친구들이 잘 놀아주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는 목이 메었습니다.

 

이 여자 아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양극화의 두려운 결과이고, 참으로 무서운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정말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뇌관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배고픔이나 외로움보다

주위에서 ‘낙인찍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주의를 기울여 왔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걱정이 태산입니다.

 

이번에 우리 사회 복지 시스템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특히 복지정책을 전달하는 시스템에 허점이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 해결할 방법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니까요.

그렇게 노력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편지를 읽으시는 여러분께 ‘참여’도 함께 고려해 주실 것을 요청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공직사회가 자기 역할을 다하도록 각별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사회 구석구석에 빠짐없이 피가 돌게 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참여가 무엇보다 절실합니다.

공직사회가 핏줄 구실을 제대로 하는 바탕 위에 지역사회가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그렇게 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이뤄나갈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널리 모아질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도 함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2005.1.24

김근태

하늘이 보내온 구원의 선물

 

지난 주에 남아시아에서 가슴 뭉클한 사연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인도네시아의 한 청년이 9일 동안 나무등걸 하나에 의지한 채 망망대해를 떠돌아다니다가

지나가는 화물선을 만나 극적으로 구조됐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사진 속의 그 청년은 우리를 향해 두 팔을 크게 흔들고 있었습니다.

 

몰아치는 해일에 맞서 두 아이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한 어머니의 이야기도 가슴을 뒤흔들었습니다.

 

어머니는 한 살배기 자식을 지키기 위해 다섯 살 아들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며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고백했습니다.

어머니의 그 마음이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 다섯 살짜리 아들이

다시 살아서 돌아왔다며 기뻐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지켜보았습니다.

 

두 가지 뉴스를 들으며 저는 하늘이 세계인을 향해

‘구원은 이렇게 이뤄진다’고 말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늘의 구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많은 나라에서 민간과 정부가 힘을 합쳐 지진해일 피해자들을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번 사태는 그 자체로 인류에 대한 엄청난 재앙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면 인류가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는 계기도 된 것 같습니다.

세계인이 서로 단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눈에 거슬리는 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웃을 돕고 격려하면서 자신들의 주도권과 국가이익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향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번 기회를 활용해 은근슬쩍 자국 군대를 파견하고

이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좀 과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과거에 외국의 원조를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도 어린시절에 미군들이 달리는 쓰리쿼터 안에서 껌을 던지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때는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솔직히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차마 그 껌을 줍지 못했습니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도와주는 사람들은 먼저 그 아픔을 가슴에 생생히 담아야합니다.

그리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의 자존심이 다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합니다.

모욕감이 들게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남을 도우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집니다.

남을 도울 때는 주도권이나 이익을 생각하기에 앞서

‘높아진 자부심’에 만족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정말 감상에 불과한 것일까요?

 

한밤중에 열린 군사분계선

 

한밤중에 군사분계선을 넘는 것을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말만 들어도 긴장되고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남북이 협력해서 안전하게 그것도 한밤중에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사람이 있습니다.

 

주목해서 본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북한 쌀 지원을 나갔던 무역협회 직원 한 분이 갑작스럽게 상을 당했습니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속만 태웠을 일입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적극 협조하고 아마도 북한 군 지휘부가 결단해서

이 분이 한밤중에 군사분계선을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여기까지 와있는 것입니다.

더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2005년에는 반드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으면 합니다.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나는 것을 계기로 많은 분들이 개성공단과 금강산으로 가고,

원산과 신의주에서 서울로 와야 합니다.

 

그런 2005년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05.1.10

김근태

 

새해 아침 복 많이 받으셨는지요?


처음 ‘일요일에 쓰는 편지’를 시작할 때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편지를 쓰는 건 역시 쉽지 않은 일입니다.

 

평소에는 할말이 많았는데 막상 편지를 쓸려고 하면 쉽게 써지지가 않습니다.

생각을 정리할 여유도 없고 이것저것 걸리는 것도 많아서 그런가 봅니다.

 

지난 한 주는 거의 날마다 국회로 출근을 했습니다.

새해 예산안과 보건복지부 관련 법안 여럿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정부는 예산과 법률이 국회를 통과해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예산안과 보건복지부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로 출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회의가 열린 시간보다 회의를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데도 아직 통과시켜야할 법률안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남아시아 지진해일 참사가 세계인을 슬프게 한 한주였습니다.

뜻밖의 참변을 당하신 모든 분들께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번 사태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분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시아의 손꼽히는 아름다운 휴양지들이 해일에 휩쓸렸습니다.

스리랑카,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성탄연휴를 즐기던 분들과 현지 주민들이 다치고 생명을 잃었습니다.

 

사망자 수만 15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인류에 대한 엄청난 재난입니다.

게다가 전염병이 창궐할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한주동안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움직였습니다.

적십자사를 비롯해 의사협회, 병원협회와 같은 민간보건의료단체들이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긴급히 사고지역에 의료진을 파견하는 등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이 많은 민족이라고 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이런 민족성은 더욱 빛납니다.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말처럼 서로 돕는 아름다운 품성은 때론 마을, 지방, 나라를 넘어 발휘되기도 했습니다.

 

1999년 9월 대만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119 구조대가 대만 현지에서 벌인 활동은

단교 이래 대만 국민이 한국에 대해 가져온 거리감을 좁히는 계기가 될 정도로 정말로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작년 북한의 용천 폭발사고 때에도 우리 국민들은 성금을 모으고 기꺼이 북한 동포들을 지원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남북이 하나였고 동북아가 하나였습니다.

 

아시아도 하나입니다.

남아시아 피해 복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겠습니다.

 

제가 보건복지부에 부임한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장관 역할을 잘하려면 최소한 6개월은 지나야한다는 시중의 농담이 있습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요즘은 ‘장관 2기’를 맞는 기분입니다.

지난 6개월 동안 경험하고 파악한 내용을 바탕으로 새롭게 일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새해를 맞아 신년을 맞는 포부를 밝힌 글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합니다.

 

▼ ▼ ▼

 

2005년을 ‘국민통합 원년’으로 만듭시다.

 

여러분은 새해에 어떤 희망을 갖고 있습니까?

‘좋은 터를 잡아야 좋은 집을 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굳은 마음을 먹고 계획을 세워야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새해 설계를 하시기 바랍니다.

 

새해에는 ‘국민통합의 튼튼한 밑받침을 놓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빈익빈 부익부라는 ‘양극화의 함정’을 넘어

‘새로운 성장을 위한 사회통합’이라는 큰 길로 나아가야겠습니다.

 

국민통합의 길로 사회의 물줄기를 돌린 원년!

저는 세월이 흐른 다음에 우리 사회가 2005년을 그렇게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맡은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저희들은 새해를 맞아 ‘국민과의 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이 ‘그 정도면 괜찮다’고 할만한 새해 계획을 세우겠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국민 여러분에게 보고하고 반드시 실천하겠다고 ‘계약’을 맺을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사회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준비가 되는대로 국민 여러분께 보고하겠습니다.

 

새해에는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뛰겠습니다.

 

무엇보다 보건복지부는 국민 속에서 어머니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을 잊지 않겠습니다.

한숨짓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행정을 혁신하겠습니다.

투명한 행정, 국민에게 다가가는 행정을 하겠습니다.

 

2005년에는 우리 사회가 서로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따뜻한 사회,

인간적인 사회로 몇 발자국 전진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서 함께 웃을 수 있는 오늘이 되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고, 만사형통 하십시오.

 

2005.1.3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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