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제네바와 스톡홀름을 방문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총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스웨덴을 들렀습니다.

세계화를 앞세우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숨길이 여기저기서 느껴졌습니다.

복지선진국 스웨덴도 예외가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대안은 없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세계화를 ‘다자주의’에 입각해서 추진하는 국제적인 힘을 형성하고 그 힘을 축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증오와 공포, 그에 기초한 분열적인 현재의 국제사회-이대로 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방문 마지막 일정으로 입양아들을 만났습니다.

지난 4월 OECD 회의 차 방문했던 파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네바와 스톡홀름에서도 공식 일정이 끝난 다음에 입양아들을 만났습니다.

 

아니, 이제 30대~40대가 됐으니까 ‘입양인’들을 만났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습니다.

제가 만나자고 청했습니다.

도리고 책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긴장했습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는 한참이 지나서야 풀렸습니다.

그리고 질문은 날카로웠습니다.


“왜 만나자고 했느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느냐?

경제가 발전하고 민주화도 이루고 저출산으로 야단이면서도 지금도 해외로 아이들을 입양 보내는 이유가 무엇이냐?

자신들을 내보낸 건 전쟁과 가난 때문이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올림픽과 월드컵 이후에 입양 보낸 아이들이 커서 질문을 하면 그땐 도대체 뭐라고 답변할거냐?”

두 손을 다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거운 압박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 상황이 오는 게 너무 무섭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솔직히 그건 답변이 아니었습니다. 일종의 파탄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지금도 해마다 1만명 정도의 아이들이 부모와 헤어집니다.

그 가운데 1,700명 정도를 국내에서 입양하고,

2,000명 정도를 수양부모가 맡아 가정위탁 형태로 키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2,300명 정도가 해외로 떠납니다.

이렇게 하고 남는 4,000명은 고아원 등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겐 가정이 세상의 절반을 넘습니다.

소년소녀 가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찬사는 사실상 아동학대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보건복지부에 와서야 비로소 그런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즉시 정책적으로 해외입양을 금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가정을 찾아주지 못하고 결국 고아원에서 자라게 하면서

비록 해외지만 가정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막는 결정을 하는 것은 위선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와 비판이 있습니다.

뚜렷한 해법도 없고 해오던 일이니까 당분간 그대로 가자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지혜를 짜내고 결단을 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입양인들과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중에는 분위기가 썩 괜찮아졌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 자리에 나온 사람들이 모두 그 사회에서 성공했거나 성공해가고 있는 분들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정체성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했고, 우리를 이해하고 용서해줄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수줍게 요청했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게 창피하다고 하면서 한국말과 글을 배울 수 있는 ‘한글학교’를 지원해 달라고 했습니다.

한국 방문 기회를 늘려주고, 세계 한국 입양인 모임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계로 진출하고 있는 한국 기업에 자격이 되는 사람들은 입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남는 문제는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귓전을 맴도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이 나를 편하게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입양부모를 잘 만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입양인의 상당수는 지금도 그늘에서 살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이 그들에게 손을 내밀 때가 아닌가?”

2005.5.23
김근태

 


 

오늘은 토요일에 편지를 씁니다.

내일부터 해외출장을 떠날 계획이라 서둘러 편지를 씁니다.

결국, ‘토요일에 쓰는 편지’가 됐네요.

 

지난 목요일에는 나이팅게일 탄신일을 맞아 ‘간호사 한마음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5,200명의 간호사가 ‘장기기증 서약’을 했습니다.

현장에서 서약을 지켜보며 느낌이 참 많았습니다.

 

장기를 기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굳이 유교적 전통까지 떠올리지 않더라도 자기 장기를 떼어내도 좋다는 약속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결단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흰옷 입은 5,200명의 여성이 이런 결단을 해내는 광경은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습니다.

가슴이 저릿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는 느낌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낌새를 채지 못할 정도로 소리 없이 다가오는 물결입니다.

저는 이 물결의 일렁임을 느끼며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이 물결이 우리 사회를 새로운 도약대로 이끌 것이라는 예감 때문입니다.

 

어느 자리에선가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했던 기억이 납니다.

과거의 민주화운동이 ‘제도와 세력을 바꾸자.’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민주화운동은 ‘문화와 삶을 바꾸자.’는 것이라는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삶의 방식과 문화를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게 바꾸는 것이 ‘새로운 민주화운동’이라는 정의가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살만한 세상, 자부심을 느껴도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민주화운동’이니까요.

 

지난 3월, ‘국가적 자부심’에 대한 충격적인 조사결과를 보도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조사에 의하면 세계 32개국을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의 국력은 8위인데 비해

국민이 생각하는 ‘국가적 자부심’은 31위였습니다.

꼴찌에서 두 번째입니다.

 

32개국의 평균을 넘는 건 ‘스포츠’가 유일했고,

‘공평성’이나 ‘사회보장제도’는 평균의 70%에 불과했습니다.

한마디로 ‘빈부격차’나 ‘사회보장제도’의 부실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문제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더 모질게 준비하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라는 사실은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후손에게 이런 상황을 그대로 물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염치없지만 여러분에게도 손을 내밀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정부가 감당해야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를 ‘핵심가치’로 믿는 분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자는 소망을 갖고 있는 여러 분들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살고 있는 터전에서 시작합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동아리에서, 지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모임을 만듭시다.

이웃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소모임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 작은 눈덩이를 굴려 큰 흐름으로 바꿔냅시다.

‘희망 바이러스’를 만들고 전파합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여러분과 고민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안도 듣고 싶습니다.

작은 물결을 큰 흐름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가 혹은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내일, WHO 총회 참석을 위해 스위스로 떠납니다.

스위스를 거쳐 스웨덴도 방문할 생각입니다.

가능한 범위에서 스웨덴의 복지제도도 살펴보고 돌아오겠습니다.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이라도 인터넷을 통해 여러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제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2005.5.15
김근태

 



‘어버이날’입니다.

여러분, 부모님 가슴에 꽃은 달아드리셨는지요?

혹 저처럼 이미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분들은 하루 종일 가슴이 메었겠지요?

 

저는 어제 잊지 못할 ‘어버이날’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바로 ‘입양가족’들의 어버이날 행사였지요.

사실, 행사라고 하기엔 너무 조촐했습니다.

그저 작은 식사자리였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과천 정부청사의 식당 한쪽을 빌려 입양가족들을 초청했습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 아이들을 대신해 제가 입양 부모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서 만든 자리였습니다.

 

초청에 응해준 가족은 모두 57명이었습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가면서 잠깐 고민했습니다.

 

“아이들이 입양사실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까?”

 

그런데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하는 분들은 모두 ‘공개입양’을 택한 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부모 모두를 위해 입양사실을 미리 공개하는 편이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막상 그런 분들을 만나니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식당은 아이들 웃음과 주고받는 인사소리로 시끌벅적했습니다.

그런데 소란스런 분위기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안고 인사하는 부모님들의 표정도 마치 붕어빵처럼 똑같이 밝고 화사했습니다.

 

잠시 후, 아이들이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한 아이가 부모님께 쓴 편지를 읽었습니다.

짧은 순간인데 벌써 눈자위가 붉어진 어머니들이 눈에 띕니다.

말로 다 못할 그 마음이 전해와 가슴이 먹먹합니다.

 

다음은 제가 인사할 순서입니다.

막상 일어서니 말문이 막힙니다.

행사를 준비한 직원들이 미리 준비해준 말도 있었고,

제 나름대로 생각해둔 말도 있었지만 느낌을 표현하는 데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결국 세 마디만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여러분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앞서가는 분들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연설 가운데 가장 짧은 연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서 생각하니 ‘존경합니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한 것 같았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자꾸 제 앞자리에 앉은 세진이에게 마음이 쓰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양쪽 다리와 한쪽 손이 불편한 아이입니다.

미국으로 입양된 ‘애덤 킹’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세진이가 가지고 있는 장애도 ‘애덤 킹’과 거의 같습니다.

 

세진이는 의젓하고 씩씩했습니다.

밝고 환한 표정이 잘 어울리는 어린이였습니다.

부모님은 태어난지 6개월 만에 ‘아기 집’에 맡겨진 세진이를 입양했다고 합니다.

입양할 때 세진이는 두발과 세손가락이 없는 중증 장애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진이는 걷고, 뛰는 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피아노도 치고, 자전거도 탑니다.

등산도 했다고 합니다.

 

세진이를 이렇게 건강하게 키워준 그 부모님께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두 분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두 번 세 번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고가 어디 말로 다 감당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입양을 결심한 분들의 결단은 정말 숭고한 것입니다.

저는 그분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어버이’라고 믿습니다.

바로 이런 분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5월 11일은 내년부터 시행될 ‘입양의 날’입니다.

본격적으로는 내년부터 시행되지만 올해는 ‘입양의 날’ 제정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립니다.

 

입양, 특히 국내입양에 대해서는 아직 정부의 지원이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제가 장관으로 있는 동안 국내입양 활성화를 실질적으로 이룰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아직 다른 부처와 협의하고 설득하고, 준비할 일이 더 남아 있습니다.

 

서두르겠습니다.

국내 입양 활성화가 유일한 대안입니다.

‘아동 수출국가’라는 말을 더는 듣지 않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관심을 갖고 응원해 주십시오.

 

2005.5.9
김근태


 



오늘은 하소연하는 심정으로 말씀드릴 작정입니다.

이 편지를 읽는 분들이 혹 ‘솔로몬의 지혜’를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너무 부담 갖진 마십시오.

들어만 주셔도 좋습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모든 국무위원이 참여하는 ‘재원배분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정부 예산을 어디에 중점을 두고 쓸 것인지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였습니다.

조금 전까지 합숙하며 토론하다 돌아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긴장했던 것 같습니다.

가뭄을 만난 농부가 ‘물싸움’을 하기 위해 논둑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어릴 적, 가뭄이 한창이던 시골이 생각납니다.

부천, 평택, 양평…. 벌써 세상을 떠나신 제 아버님은 경기도 농촌마을을 구석구석 찾아다닌 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어린 날을 속절없는 ‘농촌아이’로 지냈습니다.

그래서 한여름 가슴을 바짝바짝 태우던 그 ‘가뭄’이 농사꾼에게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듯합니다.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진 논바닥을 애타게 바라보다 마침내 냇물마저 말라 버리면

‘박박’ 소리가 날 때까지 우물 바닥을 긁어대던 그 심정 말입니다.

 

그 정도로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복지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획기적인 복지재원 확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고 주장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습니다.

안되면 어거지나 땡깡을 동원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곤혹스러웠습니다.

모든 국무위원이 나름대로 마음을 가다듬고 토론회에 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모두가 자기 논에 먼저 물을 대야 하는 절박한 사연을 갖고 온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물싸움’은 그래서 벌어지는 모양입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복지다운 복지’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국민의 정부’ 이후 여러 제도를 도입했지만 아직 아닙니다.

큰 배가 방향을 돌리자면 한참이 걸리는 것처럼 여전히 ‘복지’는 부차적인 문제,

좀 나중에 해도 되는 고민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상당합니다.

지난 60년대 이후 ‘고도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모시면서 인내하고 감당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 국민은 그동안 잘 참아왔습니다.

‘가난문제를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가난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쪽이었습니다.

가끔 정 많은 민족성과 이런 생각이 충돌해 국민들이 벌컥 화를 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대세는 ‘복지보다는 성장’이었습니다.

성장과 분배를 함께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OECD 사회장관회의에 참석했을 때도 느꼈던 일입니다만 우리 복지제도는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지체되어 있습니다.

경제규모는 10위권인데 복지수준은 맨 끝에서 순서를 매기는 것이 훨씬 빠릅니다.

외국 전문가들이 “그런 상황에서 사회가 분열과 대립으로 치닫지 않는 것이 놀랍다.”며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우리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나라는 모두 적극적인 복지투자를 해왔습니다.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은 시점에 OECD 국가는 평균적으로 GDP의 20.4%를 사회복지분야에 지출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8.7%입니다.

어떤 전문가는 말합니다.

2030년이 되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이 성숙되어, 지금 복지 선진국인 유럽 여러나라 수준에 자동적으로 이르게 된다고.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 아닐까요?

설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30년을 그냥 이렇게 세월이 가기를 바라면서 기다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국민이 언제까지나 참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일입니다.

솔직히 저는 요즘 마음이 급합니다.

 

‘끓는 국은 맛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복지에 대한 국민의 욕구가 속에서는 이미 펄펄 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출산 고령사회’라는 메가톤급 시한폭탄이 째깍거리며 돌아가고 있는 사실까지 생각하면 오싹해지기도 합니다.

지난 몇십년을 ‘경제대국-복지후진국 모델’로 사회를 밀고 왔지만 더 이상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그 부담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고 느낍니다.

 

고민은 여기서 새롭게 시작됩니다.

복지재원을 어디서 얼마나 늘릴 수 있을까요?

지금 감당하고 있는 것도 버거워 하는 국민이 상당수인데 짐 하나를 더 짊어져 달라고 요청해도 괜찮은 걸까요?

과연 우리가 걸어온 지난 과정과 지금 닥친 상황을 종합해서

국민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명하고 마음을 모아나갈 수 있을까요?

 

저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어렵더라도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무위원 토론회를 마치고 돌아온 제 기분은 한마디로 ‘희망적’입니다.

앞으로도 난관은 많겠지만 경제와 복지를 ‘선순환 시키자.’는 총론에는 상당한 합의가 이뤄져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각론입니다.

첩첩산중은 아니지만 아직 ‘산 너머 산’입니다.

 

그러나 꿋꿋이 앞으로 갈 작정입니다.

가다가 지치거나 다치면 여러분에게 소리치겠습니다.

그리고 허락하신다면 여러분께 기대기도 하겠습니다.

 

그리고나서 다시 일어나 앞으로 또 가겠습니다.

‘아자! 아자!’하면서 가겠습니다.


2005.5.2.

김근태





지지난 토요일, 오마이뉴스 축구팀과 시합하다가

눈썹 언저리가 찢어져 일곱 바늘을 꿰맨 적이 있다.

의사선생이 상처를 꿰매는 동안 작년에 있었던 가슴 아픈 사연이 생각났다.

 

눈썹 근처 이마가 찢어졌는데 병원비가 무서워서 치료도 못 받고

그냥 집에서 혼자 바늘과 실로 상처를 꿰맸다는 50대 남자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울컥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주에 바로 이 50대 남성을 치료해준 병원을 찾았다.

요셉의원-. 원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셉의원 원장의 설명을 듣다가 문득 ‘정문화’라는 유능한 후배 생각이 났다.

노숙자로 전락해 몇 년간 잊혀졌던 그 친구는 폐결핵으로 이미 수습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나서야 우리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곧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버렸다.

 

빈곤층의 건강을 지켜주는 의료급여 제도의 사각지대는 약 200만 명에 이른다.

대부분 주민등록증이 말소된 사람들이다.

건강보험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사람의 상당수도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건강보험과 의료급여 제도만으로 건강을 지켜줄 수 없는 국민이 왜 그렇게 많은지,

왜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제때에 이뤄지고 있지 못한지 철저히 확인해야겠다.

 

물론 완벽한 제도는 없다.

그러나 그걸 핑계로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사회는 당연히 활력을 잃게 된다.

책임감을 느낀다. 분발하겠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고 말할 만한 분들에 대해 말씀 드리려고 한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책임을 전가할 생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로 희망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다.

 

18년 동안 우리 사회의 맨 밑바닥의 사람들을 끌어안고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열정이 펄펄 끓어 넘치는 요셉의원 원장님.

평생을 낯선 한국 땅에서 수녀로서, 의사와 간호사로서 살아왔다는

아일랜드 출신의 성 골롬반 수녀님들. 이분들을 만나면서 궁금한 것이 있었다.

 

이분들의 가슴 속은 머나 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퍼렇게 멍들어있을까

아니면 자부심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을까?

고맙다, 고맙다고 하면서 연방 악수를 했다.

솔직히 포옹을 하고 싶었지만 수녀님들이라 망설였다.

결국 못하고 돌아왔는데 지금은 후회가 된다.

 

어느 정신 병원 원장님. 여의사인데 아주 명랑했다.

정신 질환자들이 약이 떨어져도 병원을 찾지 않는다면서

환자들을 만나러 이렇게 현장으로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 말은 왜 그렇게 울림이 큰지, 또 그렇게 말하는 그 여의사가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그 외에도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부부 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그리고 많은 자원 봉사자들, 프랑스로 입양을 갔던 우리 청년 형제,

금주 프로그램의 세계적 권위자인 재미 동포 의사 선생님 등등….

 

또 있다.

현역 시절부터 오랫동안 이 일에 참여해온 장군 출신의 어느 자원 봉사자.

이 분은 언제나 평상복 차림으로 와서 처음에는 ‘별’인 줄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전역한 후에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 ‘카이로 프라틱’이라는 기술을 배웠고,

가족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해 본 다음, 요셉의원 방문 환자들에게 서비스 해왔다는 것이었다.

 

콧등이 찡했다.

사실, 요셉의원을 방문하게 된 것도 이 분의 채근과 성화 때문이었다.

마음으로부터 이 ‘장군’에게, 이 ‘참군인’에게 감사드린다.

 

정부에서 끈질기게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선의를 갖고 봉사하면서도 보상이라고는 오직 가슴에 차오르는 자부심뿐인

이런 분들이 있어 이 세상은 살만하고 또 아름다운 것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다.
"요셉의원에 참여하고 있는 여러분, 여러분을 신뢰하고 존경합니다.
여러분이 우리의 내일이고 우리의 희망입니다."

 

2005.4.25
김근태

 

 

꽃이 만발하였습니다.
임시 국회 때문에 이번 주엔 여의도를 자주 갔습니다.

국회를 오고가며 보는 꽃은 아름다왔습니다.

꽃길을 오가는 시민들의 여유 있는 발걸음과 밝은 표정들이 참으로 좋아 보였습니다.

봄은 꽃이고, 다시 솟아나는 힘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봄이라고 어느 곳에서나 다 꽃이 피지는 않나 봅니다.
국회를 둘러싼 신작로 가에선 꽃이 만발해 있고 머지않아 푹신한 눈 같은 꽃비가 쏟아져 내릴 텐데도

정치가 몸담고 있는 여의도는 약간 냉랭한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께서 언급했던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한 몇몇 비판은 상당한 추위를 느끼게 할 정도였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반도에 내내 햇볕이 쏟아졌건만 유독 일부 정치권만 지독하게 외면하고 반대했던

그때 그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로 의사당 안은 춥기까지 했습니다.

 

어떤 분들이 어떤 비판을 했는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크게 두 가지 비판이 있었습니다.

한미동맹에 상처를 입혀 오히려 안보에 부담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리고 우리가 도대체 균형자 역할을 할 만한 힘이 있느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동북아균형자론은 비젼이고 실현해야 할 우리의 목표입니다.

국민이 인지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정치지도자는 방향에 대해 말을 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역시 국민이 희망이고 힘입니다.
의원의 56%가 부정적이지만 국민들 74%가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하여

긍정적이라는 보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탄핵에 맞서 촛불을 들고 나섰던 것이 국민이었듯이,

우리 국민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평가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협력과 번영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국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구요.

 

이것은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체험되고 전승되면서 한반도의 산과 들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최근 일본의 UN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 시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한미동맹보다 더 강력한 미일동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재확인하게 되었습니다.

UN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고 있음에도 일본이 과거제국주의 침략사를 미화하는 태도나 자세

그리고 독도에 대한 망령된 주장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더욱 강화되고 있는 일부 정권 담당세력인 미국 네오콘과의 동맹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일본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미국정부마저 조기의 일본 UN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 지지를 다소 뒤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군사강국이고 경제강국인 두 나라가 힘을 합쳤음에도 마음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외교문제가 군사력과 경제력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님을 말해줍니다.

우리에게 미국과의 동맹은 여전히 여러 가지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빛과 그림자를 정확히 이해해야 우리의 미래를 제대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동북아균형자론은 아직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동북아균형자론을 말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고충을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동북아균형자론을 지속적으로 말하는 것은 왜 이겠습니까.

한반도 평화에 대한 걱정과 근심 때문입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에 따른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은

자칫 한반도의 전쟁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안되는 일이지요.

 

그래서 대통령께서 한국국민의 동의 없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어떤 군사적 행동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이것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하는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서 나오는 당연한 의무이고 권리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의 고충을 이해하고 결단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동북아균형자론은 6자회담을 마침내 다자간평화안보체제로 전환 발전시키고,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미래에 만들어내고,

남북간 협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외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문제는 그것의 실현 방안이고 실천입니다.

실천의 과정에서 더 훌륭한 전략과 지향이 생겨날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예감합니다.

 

여의도 길에서처럼 정치의 중심인 국회 안에도 꽃비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한반도에 국가적 민족적 자긍심의 꽃비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황사대신 평화의 꽃비가 동북아에 두루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꽃길을 걷고 싶습니다.

 

2005.4.19
김근태



한참 클 때, 식은땀을 흘리면서 소리소리 지르다가

소스라쳐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곤 했습니다.

악몽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 또 악몽이 떠오릅니다.

일본의 냉전수구세력은 확실히 악몽입니다.

그것도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혐오스런 악몽입니다.

누구 말마따나 이사 갈 수도 없고,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악몽입니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식민지 제국주의 침략역사가 약간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식민지 근대화를 이루기 시작했다고 주장합니다.

 

또 영․미 제국주의에 대항해 싸웠던 일본 때문에

동양 여러 나라가 결국 독립을 이룰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았느냐고 항변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일본의 미래세대가 배울 역사교과서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일본의 다음 세대가 정당화되고 미화된 제국주의 역사와 철학을 교육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지금 일본의 냉전 수구세력이 총궐기하고 있습니다.

뒤로 미국의 ‘네오콘’들과 손잡으면서 말입니다.

 

더욱 가관인 일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직접적인 도발도 서슴지 않으면서 그에 맞대응하면 국내 정치용이라고 야유합니다.

나아가 한․일의 미래를 위해 냉정해야 한다고 설교까지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교양은 물론 염치도 다 내팽개친 형국입니다.

어떻게 보면 은근한 협박같이도 들립니다.

 

분명하고 단호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냉정해야 합니다.

 

동양의 평화를 깰 가능성이 높은 냉전수구세력이 좌지우지하는 지금의 일본이

UN 상임이사국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총회에서 선출하는 중견국가로 정하면 됩니다.

그것이 오히려 국제정의 실현에 부합하는 길일 것입니다.

 

우리는 수준 낮은 극우세력이 좌우하는 지금 이대로의 일본과 싸우면서 교류하고,

교류하면서 싸워 나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강심장이 되어야죠.

그러면서 국내의 얼토당토않은 친일세력의 역사도 정리해야 합니다.

 

박정희 정권을 비롯한 과거 군사정권은 근본적으로 친일 굴종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참여정부의 대부분은 극우적인 일본과는 단호하고 강력하게 맞서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그런 의지와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과 함께 할 것입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동아시아 평화를 옹호하고자 하는 세력은 모두 단결해야 합니다.

일본과 미국의 시민사회세력은 물론이고, 중국 시민들과 협력하는 것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북한 형제들을 포함해서 북한 당국과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북한과 여러 차원의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일본 냉전수구세력과의 대결에서 공동전선을 구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즉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동아시아 평화를 이루기 위해 6자회담이 개최될 수 있는 여건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지도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바랍니다.

바로 지금, 지체없이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국민과 함께, 우리 민족과 함께….

 

2005.4.11
김근태

 



유럽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공식일정을 끝내고 프랑스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모네의 집과 뽕삐두센터도 찾았습니다.

 

우리 국민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도 인상파를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후기 인상파를 좋아합니다.

특히 고흐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평생 한 작품도 팔지 못했다는 고흐,

고갱과 싸우고 헤어진 다음 귀를 잘라버리고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으로 나타난 자화상 속의 고흐....

 

도저히 다른 길은 없었던 것일까요?

과거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절에는 자살했던 고흐의 권총소리가 별안간 들려올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사실, 나는 “수련”을 그린 화가가 마네인지 모네인지 잘 구별을 못했습니다.

모네의 연못에는 꽃은 피어있지 않았지만 수련이 떠 있는 모습이 제법 좋았습니다.

탁한 연못물이었지만 거기에 봄이 잔뜩 쏟아져 내리고 있었거든요.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약간 김새는 바도 있었습니다.
이쁘긴 하지만 약간 거북한 느낌을 주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불편했습니다.

 

이미 생전에 작품이 잘 팔렸던 작가였다는 말도

“예술가”라는 나의 고정화된 이미지와 충돌하는 것이었지만 더 큰 이유는 딴 데 있었습니다.

 

19세기 중후반시대를 살았던 모네가 당시 간직하고 있었다는 일본의 판화들이 아뜨리에 실내를 도배하고 있었습니다.

자존심도 약간 상했고, 근래 일본의 태도를 보면서 입었던 상처가 도지는 듯 했습니다.

 

질투심일지도 모릅니다.

여러 가지가 연상되었습니다.

모네재단이 일본 관광객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당시의 교양인들이 근대화에 성공해 가고 있던 서구나라가 아닌 일본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영향을 미쳐

일본 판화를 그렇게 수집케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때맞춰 근대화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현대화 또는 탈근대화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뽕삐두 도서관 여기저기에서 “삼성” 브랜드가 붙은 컴퓨터를 만난 것은 기분 괜찮은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미래로 전진하고 있는 어떤 증거같이 느껴졌습니다.

 

피카소, 브라크, 마티스, 레제, 칸딘스키, 몽드리안, 쟈코메티, 브랑쿠치, 마가레트, 발투스 등등

미술책에서 들어봤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습니다.

 

“장미의 정원”이었던가, 이름은 자신이 없습니다.

여하튼 잠수함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작품 속으로 관람객이 걸어들어가 봐야하는 설치작품,

팝아트, 옵아트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랍게 다가왔던 것은 30년 전에 지었다는 뽕삐두 센터 자체였습니다.

한 마디로 기가 막혔습니다.

물론, 지금도 잘 지은 건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지금도 파격적이고 포스트모던한 건물임에는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여러 가지 계산이 있었겠지만, 참으로 성공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고색창연한 건물을 비롯해 옛것들을 지켜냄으로써 관광객들도 아주 많이 끌어들이고

또 효과적으로 세계에 세일즈하고 있는 프랑스 정책결정자들이, 그리고 프랑스 국민들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어쩌면 실패할 지도 모르는 이런 실험적이고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그 자유로운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OECD 사회정책장관회의에서도 프랑스는 당당히 존재했습니다.
불어가 영어와 더불어 공용어였습니다.

그리고 복지정책 실현에 있어서 민간과 정부역할 분담에 대해 미국과 프랑스는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견해차가 있을 만한 문제였지만, 그 대립이 두드러짐으로써 이득을 보는 것은 단연 프랑스 쪽이지요.

 

대사들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프랑스 정책결정자들이 유럽연합처럼 동아시아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지,

그 과정에서 한국이 한반도 평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이니시어티브를 행사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무척 궁금해 한다는 것입니다.

 

근래에는 프랑스가 중국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일본 쪽이 배신당한 애인처럼 삐져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느끼는 바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는 유럽과 다르고, 한반도는 프랑스와 분명히 다릅니다.
하지만 프랑스가 프랑스라고 주장함으로써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다, 한반도는 한반도다.’라는 우리들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폐쇄적이 아닌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자기 인식, 자기 긍정으로부터 다시 시작할 때

“한류”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역할하는 “동아시아류”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으로 나는 확신합니다.


2005.4.4
김근태



잠시 유럽에 다녀오겠습니다.
일주일동안 프랑스 파리 OECD 본부에서 열리는 사회정책장관회의에 참석합니다.

 

“기회의 확대 - 적극적 사회정책을 통한 국민의 편익증진 방안”이라는 주제로 회의가 열리는데

가족․아동정책, 연금문제, 빈곤경감 정책 등에 관해 토론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복지 선진국인 유럽에 가서 복지정책에 대해 배우고 오겠습니다.

 

제가 유럽을 다녀오는 동안 우리당에서는 성대한 당원축제가 열립니다.

특히 이번 전당대회는 25만 기간당원이 당의 지도부를 직접 뽑는 매우 역사적인 행사입니다.

우리당이 명실상부하게 ‘기간당원’에 의해 운영되는 완전히 새로운 정당으로 탈바꿈했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우리 정치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신나는 자리에 함께 할 수 없어 아쉽습니다.

그 현장에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모든 분들이 지혜를 모아 잘 해낼 것으로 믿습니다.

 

사실, 제 개인적으로도 ‘기간당원제의 완전 정착’은 매우 감격적인 일입니다.

재야활동을 마무리하고 제도정치권에 입문한 직후 저는 엄청난 돈이 드는 정치현실에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그런 구조에서 깨끗한 정치,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치를 한다는 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궁리 끝에 제가 속한 지구당만이라도 당비를 내는 당원에 의해 운영해 보기로 마음먹고

‘기간당원’을 모집하고, 당내에 ‘기간당원제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물론,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순진한 김근태, 철없는 김근태라고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깨끗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나중에는 비명을 지르는 심정으로 정치자금 양심고백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로 재판을 받게 되었고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당비를 내는 25만 기간당원에 의해 운영되는

기간당원 중심의 정당체제가 완성되는 순간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인가 봅니다.


얼마 전, 꽃샘추위에 얼어 죽은 개구리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경칩을 맞아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이 갑작스런 한파로 얼어 죽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찌 개구리뿐이겠습니까.

10여년전에 ‘기간당원제 도입’을 주장한 저의 생각도 마치 너무 일찍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 같은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조금 일찍 잠에서 깨었을 뿐 봄은 이미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지금 열린우리당은 기간당원이 내는 당비가 당 운영비의 3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당대회도 기간당원들의 열렬하고 자발적인 참여와 활약 속에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앞으로 모든 기간당원의 직접투표로 지도부를 뽑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비록 며칠 추웠지만 분명 봄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추위는 잠깐이고 햇살은 갈수록 곱고 따스할 겁니다.

잠에서 깬 나무들마다 새 잎과 꽃들로 만발할 것입니다.

 

귀국하는 날엔 따스한 햇살사이로 화사한 봄꽃을 보게 되길 기대해봅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2005.3.28

김근태






일본이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의 지지발언 덕분에 가능성이 한층 커진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축하하고 도울 일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내키지 않고,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일본 열도를 휘몰아치고 있는 ‘극우경향’ 때문입니다.

독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억지를 부리고,

또 후손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서슴지 않는 지금의 일본 상황은

‘비정상’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독도문제는 물론이고요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는

동아시아의 미래를 ‘대결과 투쟁’의 길로 내몰 염려가 다분합니다.

이런 일본이 국제적인 리더십을 가진 나라로 발돋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마음 편하게 지켜보고 동의할 이웃은 없습니다.

 

지금 이대로의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은 유엔의 정신에도 걸맞지 않는 일입니다.

유엔 안보리는 국제사회에 평화를 확산시킬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그냥 진출한다면 심각한 가치충돌이 일어납니다.

 

일본이 국제사회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가까운 이웃들로부터

국제사회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과거의 침략행위에 대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분명하게’ 반성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져야 합니다.

 

평화를 위협하는 나라, 분쟁에 불을 지르는 나라라는 인식을 바꾸지 못한 채

안보리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한다면 이웃들은 위협을 느끼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북한에 대한 일본의 태도도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저는 지난해 일본을 방문해 정관계 인사들을 만났습니다.

일본 사회의 리더십들이 어떤 의도를 갖고 북한 몰아세우기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북한은 이미 일본의 경쟁상대가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를 정도로 우울한 사회분위기를 되돌리기 위해

과거의 정한론처럼 북한을 활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리더십을 지닌 나라가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제, 21세기입니다.

21세기에는 21세기의 시대정신에 맞는 방식이 있습니다.

 

20세기 초반, 일본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제국주의적인 방식으로 아시아를 강점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21세기에 맞는 길은 협력의 길, 화해의 길입니다.

상생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서도 솔직히 마음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적어도 당분간은 일본사회가 스스로 평화의 길로 돌아올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런 선량하지 않은 이웃과 함께 지내야 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사회를 이끄는 리더십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올해는 을사늑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당시 대한제국 말기의 리더십들은 일제의 협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권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물론 강제와 강압에 의한 조약인 만큼 원천무효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리더십들이 이 문제에 대해 더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못한 점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고종황제를 비롯해 당시 대신들은 모두 싸우다가 죽었어야 했거나

아니면 모두 자결을 해서라도 치욕적인 상황에 저항했어야 합니다.

 

주권문제에 있어 ‘소극적인 방어’라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장관인 저를 포함해 우리 사회의 리더십들이 모든 것을 걸고 수호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독도문제 역시 이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독도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리더십들이 이런 점에서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2005.3.21

김근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