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의 지지발언 덕분에 가능성이 한층 커진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축하하고 도울 일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내키지 않고,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일본 열도를 휘몰아치고 있는 ‘극우경향’ 때문입니다.
독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억지를 부리고,
또 후손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서슴지 않는 지금의 일본 상황은
‘비정상’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독도문제는 물론이고요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는
동아시아의 미래를 ‘대결과 투쟁’의 길로 내몰 염려가 다분합니다.
이런 일본이 국제적인 리더십을 가진 나라로 발돋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마음 편하게 지켜보고 동의할 이웃은 없습니다.
지금 이대로의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은 유엔의 정신에도 걸맞지 않는 일입니다.
유엔 안보리는 국제사회에 평화를 확산시킬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그냥 진출한다면 심각한 가치충돌이 일어납니다.
일본이 국제사회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가까운 이웃들로부터
국제사회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과거의 침략행위에 대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분명하게’ 반성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져야 합니다.
평화를 위협하는 나라, 분쟁에 불을 지르는 나라라는 인식을 바꾸지 못한 채
안보리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한다면 이웃들은 위협을 느끼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북한에 대한 일본의 태도도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저는 지난해 일본을 방문해 정관계 인사들을 만났습니다.
일본 사회의 리더십들이 어떤 의도를 갖고 북한 몰아세우기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북한은 이미 일본의 경쟁상대가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를 정도로 우울한 사회분위기를 되돌리기 위해
과거의 정한론처럼 북한을 활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리더십을 지닌 나라가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제, 21세기입니다.
21세기에는 21세기의 시대정신에 맞는 방식이 있습니다.
20세기 초반, 일본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제국주의적인 방식으로 아시아를 강점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21세기에 맞는 길은 협력의 길, 화해의 길입니다.
상생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서도 솔직히 마음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적어도 당분간은 일본사회가 스스로 평화의 길로 돌아올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런 선량하지 않은 이웃과 함께 지내야 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사회를 이끄는 리더십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올해는 을사늑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당시 대한제국 말기의 리더십들은 일제의 협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권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물론 강제와 강압에 의한 조약인 만큼 원천무효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리더십들이 이 문제에 대해 더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못한 점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고종황제를 비롯해 당시 대신들은 모두 싸우다가 죽었어야 했거나
아니면 모두 자결을 해서라도 치욕적인 상황에 저항했어야 합니다.
주권문제에 있어 ‘소극적인 방어’라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장관인 저를 포함해 우리 사회의 리더십들이 모든 것을 걸고 수호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독도문제 역시 이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독도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리더십들이 이런 점에서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2005.3.21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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